IZM 독자들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10곡’ – 4주차

[IZM 필자들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음악 10곡’] 독자 투고에 많은 분들께서 삶을 대표하는 10곡을 적어 보내주셨습니다. 소중한 경험을 IZM에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난 2주간 보내주신 많은 사연 중 선정된 두 독자분의 사연을 먼저 소개하고자 합니다.

* IZM 독자 투고는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webzineizm@gmail.com 으로 보내주신 사연을 검토하여, 매주 두 분의 인생 10곡을 소개합니다.

분당에 거주하시는 마성완 씨의 인생 10곡을 소개합니다.

드바지(Debarge) ‘A Dream’
밑에 나온 2pac의 샘플링을 디깅하다 알게된 그룹인데 80년대에 나왔음에도 특유의 가성과 세련된 멜로디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Time will reveal’, ‘I like it’ 등의 노래는 얼마나 많은 후배들에게 영감과 영향을 주었을까요? 매일 들어도 질리지 않은 내인생의 1픽송!!!

유재하 ‘내 마음 속에 비친 내 모습’
중1 시절 소방차 음반과 무엇을 고를까 고민하던 때 어머니가 소방차를 사주시면서 자연스럽게 인생에서 처음 산 음반이 되었네요. 너무 젊은 가수의 유작앨범이여서 슬프고 안타깝지만 그가 뿌리내린 음악이 한국대중음악에 얼마나 큰 자양분이 되었음을 알기에 더더욱 소중하고 감사한 앨범입니다.

노이즈 ‘내가 널 닮아갈 때’
1집의 큰 성공이후 냈던 음반인데 상업적이나 대중적으로는 이전만 못했으나 다양한 장르와 신선함으로 구성된 음반이었습니다. 특히 이노래는 매스컴에서 베이비 힙합이라 홍보했던 기억과 이전 인터뷰에서 프로듀서 천성일씨가 2집의 실패후 3집부터 다시 라인음향의 메이저 색깔로 돌아가면서 본인의 음악적 정체성을 만들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기사가 생각나네요.

넥스트 ‘불멸에 관하여’
1994년 ‘도시인’과 ‘인형의 기사’를 기대했던 내게 이전과 다른 분위기로 살짝 어색했지만 그때도 이 노래가 주는 특별한 느낌이 있었네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은 이별과 죽음을 경험하고 특히 돌아가신 신해철 씨를 보면서 더더욱 의미있게 다가온 노래입니다. 지금 들어도 웅장한 사운드에 철학적인 가사는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네요.

이승철 ‘겨울그림’
큰 성공과 인기를 가졌던 그가 여러 사정상 아티스트적인 부분을 더욱 부각해 자유롭게 만든 앨범이라 생각이 듭니다. 외국 스튜디오에서 녹음해 코러스가 살짝 어색했지만 시작부분 아카펠라부터 버터 느낌이 많이 났던 기억이 ㅎㅎ. 다른 히트곡보다 덜 알려졌지만 저에게는 남다른 무엇보다 엔지니어 김홍순이란 이름을 알게 해준 음반이네요.

정원영 ‘다시 시작해’
군대시절 밤보초를 서며 우연히 들었는데 살아가면서 연애, 직장, 사업등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때 나에게 힘을 주었던 노래입니다. 앞 전주부분이 너무 좋아 아는 동생에게 샘플링을 추천해준 적이 있었는데 정중하게 거절당했던 기억도 나구요.

투팍(2Pac) ‘I ain’t mad at cha’
힙합씬에서 이렇게 아이콘화 되었던 사람이 있었을까요?? 동부와 서부의 랩전쟁에서 산화한 ‘Thug life’를 외친 리얼 갱스터인지, ‘Dear mama’를 만든 시인인지 아직도 말과 탈이 많은 MC입니다. 하지만 이 노래만큼은 친구의 죽음을 덤덤하게 풀어나가는 문학가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솔리드 ‘끝이 아니길’
1997년 대형기획사에서 준비된 아이돌 음악들이 하나둘 나올때쯤 솔리드가 낸 마지막 음반이었고 이전 전적에 비해 스포트라이트가 적었지만 이 노래만큼은 그들의 한국화 된 알앤비를 마지막으로 보여준 아쉬운 음반입니다. 미국 LA 교포였던 그들이 찍었던 미제같던 뮤직비디오와 나중에 015B가 샘플링했던 ‘그녀에게 전화오게 하는 방법’도, 무엇보다 재작년 공연도 너무 반가웠네요 ^^

보이즈 투 멘(Boyz II Men) ‘Do in’ just fine’
많고 많은 그들의 히트곡중이 어학연수 시절 팝송을 본토에서 처음 들어서 특이했던 음반입니다. 1집부터 주옥같은 곡들이 너무 많아서 하나를 고르기 어럽네요. 내한할 때 마다 꼭 출석했었는데 건강상의 이유로 멤버가 줄고 나날이 아재가 되어가는 그들을 보면서 세월의 야속함을 느끼게 합니다.

킵루츠(Keeproots) ‘Showdown’
한국 1세대 부산 DMS 프로듀서였던 킵루츠의 단체곡입니다. 그당시 한국에는 재지한 비트가 없던 시절이어서 특별했고 마지막 부분 MC 메타와 권투링 메치같던 벌스는 이곡의 백미지요. 지인 통해 사적으로도 알게 되어 가끔 만나는 오래된 술친구이기도 합니다. 만날때마다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과 애정은 동생이지만 존경스럽기까지 하네요.

미국에 거주하시는 황은희 씨의 인생 10곡을 소개합니다.

변진섭 ‘숙녀에게’
매사에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이 남자는 계절의 변화에도 덤덤하다. 꽃 구경을 가고싶어하면 길가의 꽃을 가리키는 이 남자. 낙엽을 슬퍼하는 내게 나무도 살기위해서 잎을 떨구는 거라는 이 남자. 익숙함 너머의 권태와 마주한것이 이 남자의 실체인지 나의 실체인지 모를일이다. 처음으로 장미를 샀다는 스물일곱의 그는 만난지 한달 만에 내게 청혼을 했었다. 세상이 멈췄던 그 순간, 그의 낡은 트럭에서 흘러나왔던 ‘숙녀에게’를 기억한다. 열정의 태양과 권태의 산을 넘어 의리로 살고있는 우리는 올해 결혼 25주년이 되었다. 요즘엔 스물일곱의 그를 가끔씩, 다시 만나기도 한다.

김장훈 ‘사노라면’
평생을 아끼기만 하면서 살았건만 여전히 아껴야만 한다. 갱년기의 호르몬 탓인지 내 삶이 진짜 쭈글해서인지, 울컥 치밀어 오르는 무엇에 받쳐서 수렁으로 빠져들 때가 있다. 각자의 산을 오르고 있는 가족들에게 나를 업고 가자고 할수는 없다. 아직은 업히고 싶지 않다. 언젠가는 좋은날도 올거라는 참 평범한 말이 때때로 나를 다시 웃게 한다. 유일한 빽이던 젊음도 기울고 있지만 다시 웃어보려 한다.

에어 서플라이(Air Supply)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미니카세트는 80년대 십대들의 로망이었고 좀 사는집의 상징이기도 했었다. 첫사랑은 예고없이 나에게 밀려들었고 큰키에 젠틀했던 그 아이는 내앞에서 항상 웃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 될 줄도 모른채. 그 아이는 미니카세트를 나에게 건네며 귀에 이어폰을 꽂아주었다. 경쾌하기도 슬프기도 했던 에어 서플라이의 노래들은 소나기 같았던 첫사랑의 증거이기도, 아팠던 청춘의 위로기도 했다. 30년 만에 다시 그 아이를 만나던 날 이 노래를 기억하는지 물었다. “당연하지” 라며 웃는다.

진미령 ‘하얀민들레’
스스로 수학 포기자임을 선언하는것이 창피함이 아니었던 고2 수학시간. 수업내내 나에게 고정시킨 선생님의 시선 때문에 나는 늘 가시방석에 앉아 있었다. 선생님의 애정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친구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은건 확실했다. ‘자네가 노래를 한 곡 불러주면 오늘 수업을 면제해 주겠네’. 그 자네가 나인줄 알았을때 뜨거워진 목덜미를 잊지못하는 것은 노래를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들은 정글 속 고릴라들 처럼 괴성과 재촉으로 내 정신을 빼놓았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고 고요한 교실에서 무반주로 하얀 민들레를 불렀다. 50분의 자유를 선물한 나를 친구들은 더이상 미워하지 않았고, 우리는 수학선생님을 계속 미워했다.

강산에 ‘넌 할수 있어’
초등학생 여자 아이라면 흔히 들고다니던 피아노 가방을 잡아보지 못했다. 스무살에 처음 배운 피아노로 서른 셋에 입학을 했다. 두 아이의 엄마였고, 쫓아가기에도 버거운 실력의 학생이었다. 수많은 교수진과 친구들 손님들앞에서의 졸업연주는 긴장이라기보단 공포에 가까웠다. 고단함과 좌절의 시간마다 나에게 할수 있다고 수백번을 외쳐준 노래였다. 용기라는것이 대단한 어떤것에서 부터 솟구치는 것이 아니더라.

손현희 ‘이름 없는 새’
가난한 집 칠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났고 일찍 아버지를 잃었다. 산업화의 80년대 낮에는 공장에서 베를 짰고 밤에는 야간고등학교를 다녔었다. 서러운 프리지아 같았던 열일곱. 마지못해 살아냈던 소녀는 새가 되어서라도 간절히 살고 싶었나보다. 죽지않고 살아 마흔일곱의 하늘을 볼수 있음이,다시 노래를 들어볼수 있음이 좋다.

이선희 ‘그 중에 그대를 만나’
2012년 겨울 우리 부부는 고1,중2였던 두 아들과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모든 익숙함을 뒤로 하고 불안정의 시,공간으로 뛰어드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누가 등 떠밀어서 선택한 이민이 아니었기에 묵묵히 걸었다. 작년 어머니날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깔렸고, 4분 가량의 영상과 자막이 흘렀다. 자신들을 위해 낯선 땅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부모의 인생을 머리 굵은 자식은 아파했다. 누군가가 나의 수고와 인내의 시간을 알아 준다는것은 참 가슴 뭉클한 일이다. 기적처럼 나에게로 와준 그들에게 나도 기적이 되어주고 싶다.

녹색지대 ‘준비 없는 이별’
고등학교 1학년 오월의 눈부신 날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보냈다. 나의 첫번째 아버지는 나에게 미움을 남겼지만 그래도 내 생명의 근원이었다. 결혼 후 나에게는 선물처럼 참 따스한 아버지가 생겼다. 그분은 내게 아버지의 사랑이 어떤것인지를 가르쳐 주셨다. 2009년 가을밤에 걸려온 아버님의 전화는 119 대원의 낮선 음성이 대신했다. 나의 두번째 아버지는 14년을 나와 함께 살아주시고 떠났다. 나의 두 아버지들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느닷없이 내게 이별을 고했다. 사랑한다고 감사했다고 마지막 인사를 못했다. 그것이 서럽다.

김진호 ‘가족사진’
가난하면서 자식만 많이 낳아 잘 가르치지도 못했다고 부모님을 원망했다. 7남매와 함께 찍은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한 아버지를 미워했었다. 내 부모도 꽃이었던 시절이 있었음이 시리다. 내 부모가 그랬듯이 나도 거름이 되어가고 있다. 나의 꽃들이 그들만의 향기로 활짝 펴주기를 소망한다. 그래도 나는 가족사진 한 장 남길수 있는 삶이지 않은가.

은희 ‘연가’
깊은 산속에서 나고 자란 형제같은 친구들과 모닥불 옆에 둘러 앉았다. 감자와 옥수수를 불 속에 넣어두고 우리는 연가를 불렀다. 15세 언저리의 우리들은 인생도 사랑도 몰랐지만 십대의 감성만은 넘쳤다. 달빛은 차갑지 않았고 우리는 깊은 밤의 적막함을 사랑했다. 중년의 나는 모닥불의 온기와 나무타는 냄새를 그리워한다. 아득하지만 소중했던 친구들의 안부를 묻고싶어진다. “어디에서든지 행복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