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대를 보내고 2020년대를 맞이하며 IZM이 새해 특집을 준비했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채우기 위해, IZM 필자들이 ‘내 인생의 음악 10곡’을 선정해 소개했다. 한 사람의 삶을 정의하는 데 10곡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취향과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총 8회에 걸쳐 진행될 ‘내 인생의 음악 10곡’의 세번째 차례는 한동윤, 김반야 필자다.

공일오비 ‘비워진 너의 자리 속에’
공일오비는 내 인생의 아티스트다. 지금도 거의 매일 이들의 노래를 듣는다. 특히 이 노래는 잘 때 1번 곡으로 틀어 놓곤 한다. 간주의 색소폰 솔로, 토토의 ‘Georgy Porgy’를 닮은 후주 악센트를 지나서 나오는 호른 연주, 은은하게 겹쳐 흐르는 남녀 가수의 스캣이 관능미를 발산한다. 진짜 멋진 재즈 퓨전 팝이다. 자려고 듣지만 이 노래에서는 잠이 들지 않는다.
김원준 ‘언제나 (Always)’
김원준은 데뷔 앨범부터 자신이 쓴 노래를 수록한 싱어송라이터였음에도 수려한 외모 때문에 낮게 평가됐다. 표절 문제가 있긴 했지만 앨범마다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아티스트였다. 그를 향한 애정을 담아 노래방에 가면 거의 매번 김원준의 노래를 부른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이별된 침묵’이지만 노래방에 등록되지 않은 게 아쉽다. 언제나 으뜸 애창곡은 ‘언제나 (Always)’다.
넥스트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
구성, 분위기도 훌륭하지만 가사도 굉장히 멋졌다. 이 노래를 듣고 남들과 다르게 살기로,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해서 얻은 건 가난과 냉대뿐인 듯하다. 그럼에도 나는 ‘껍질의 파괴’를 사랑한다. “언젠가 내 마음은 빛을 가득 안고 영원을 날리라.” 노래의 이 마지막 문장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싶다.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 ‘Since you walked into my life’
뉴 키즈 온 더 블록은 유일하게 좋아했던 남자 아이돌 그룹이다. 5집 < Face The Music >은 전성기에 낸 앨범들 중 음악적으로 가장 근사했음에도 가장 낮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말았다. 처음 앨범을 샀을 때에는 테디 라일리가 만든 노래들을 즐겨 들었지만 어느 순간 머라이어 캐리의 오랜 동료였던 월터 아파나시에프가 만든 ‘Since you walked into my life’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이 노래와 함께 뉴 키즈 온 더 블록은 내 인생 최고의 남자 아이돌 그룹으로 남았다.
로저 트라우트맨(Roger Troutman) ‘In the mix’
일렉트로 펑크의 개척자, 토크박스의 명인, 로저 트라우트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흑인음악 뮤지션이다. 그의 음악은 탄력과 활력이 넘친다. 춤을 그만둔 지 오래됐지만 그의 음악을 들으면 몸이 절로 반응한다.
미스터 빅(Mr. Big) ‘To be with you’
이 노래를 엄청나게 좋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중요한 한 순간을 장식했던 작품임은 분명하다. 중학교 2학년 때 뮤지션이 되고 싶어서 어렵게 학원을 찾아 작곡과 미디를 공부했다. 그때 처음 카피한 것이 ‘To be with you’였다. 그 시절의 노래방 반주처럼 조악했지만 뭔가를 해냈다는 생각에 기뻤다. 그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
블랙스트리트(Blackstreet) ‘Before I let you go’
테디 라일리 덕분에 뉴 잭 스윙과 사랑에 빠지게 됐다. 가이도 좋았지만 부드러움과 정교함이 업그레이드된 블랙스트리트를 더 좋아한다. 이 노래를 삐삐 배경음악으로 한동안 쓰기도 했는데, 반응은 2집의 ‘Happy song (Tonite)’를 배경음악으로 했을 때가 더 좋았다. 배경음악을 듣기 위해 삐삐를 쳤다는 이성 친구도 여럿 있었다. 나한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음악이 듣고 싶어서. 이로 인한 억울함 때문에 ‘Happy song (Tonite)’보다는 ‘Before I let you go’를 더 아끼게 됐다.
캡틴 퓨쳐 ‘거울 속의 그녀 (Version 2.0)’
캡틴 퓨쳐를 처음 접했을 때 ‘아니, 한국에 이런 음악이 있다니!’ 하면서 무척 흥분했다. 프린스에게 영향을 받았음이 다분하지만 당시 이렇게 세련된 흑인음악이 거의 전무했기에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캡틴 퓨쳐는 컴퓨터 음악, 아카펠라의 선구자기이기도 했다. 가면을 쓰고 다시 돌아올 날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쿨 ‘너이길 원했던 이유’
한국 힙합 최고의 노래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이 노래를 얘기한다. 재즈 랩, 힙 하우스, 브레이크비트, 뉴 잭 스윙, 힙합 솔, 팝 랩, R&B, 랩 록, 일렉트로 합, 클래식 크로스오버 등 많은 장르가 어색함 없이 융화되고 있다. 복잡하지만 세련된, 선진적인 얼터너티브 힙합이다. 춤과 패션도 정말 멋있었다. 이때의 쿨이 정말 ‘쿨’했다.
한상원 ‘어쩔 수가 없나 봐’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싹틀 때면 인공위성의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랑 한상원의 ‘어쩔 수가 없나 봐’를 듣곤 했다. 둘 다 설렘을 표현하고 있지만 강도는 한상원의 노래가 훨씬 높다. 두근거림을 넘어 쿵쾅거림이라고 할 만하다. 후반부의 베이스 솔로 연주는 자신 있게 고백해 보라는 권유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라서 그 소리에 휘둘리지 않았다. 거절당했을 때 맞닥뜨릴 초라함과 부끄러움을 생각하니 없던 이성이 샘솟더라.

칠리 곤잘레스(Chilly Gonzales) ‘Tearjerker’
나이가 들면서 음악 취향은 계속 바뀌었지만, 괴짜를 좋아하는 건 여전하다. 온갖 기행을 일삼아 광기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칠리 곤잘레스와 펄프(Pulp)의 프런트맨 자비스 쿠커(Jarvis Cocker)가 만났다. 앨범 < Room29 >은 ‘만약 호텔방이 살아있는 존재라면, 그리고 자신이 목격한 인생과 사건을 소리로 표현한다면’이라는 독특한 가정(假定)에서 시작되었다. ‘Tearjerker(최루성영화)’에 담긴 사연은 제목처럼 구슬프고 쓸쓸하다. 음악을 듣자마자 류이치 사카모토가 생각났는데, 실제로 그가 참여해 ‘역시’ 하고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좋아하는 세 뮤지션이 함께해 더욱 아끼고 아끼는 음악. ‘Tearjerker Returns’도 좋지만 ‘Tearjerker’의 칠리 곤잘레스의 저음도 멋지다.
범프 오브 치킨 (Bump Of Chicken) ‘K’
스스로 한가지 거짓말을 했다.
「아직 할 수 있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거짓말은 진짜가 되었다.
「아직 할 수 있어」라고 노래했다.
계속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왔다.
하나의 거짓말에게까지 의지하는 나에게 바치자- 맹세의 노래
– バトルクライ(배틀 크라이)-
어쩐일인지 1980년대생에겐 일본 음악에 흠뻑 빠지던 그런 시대가 있었다. 시작은 엑스재팬, 다른 뮤지션은 시들해졌지만 지금까지 챙겨 듣는 것은 범프 오브 치킨이다. ‘약자의 반격’이라는 팀명도, 후지와라 모토오(藤原 基央)의 고양이 같은 보컬도, 단편 소설 같은 가사도, 이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끝없이 끄적일 수 있다. 2004년 부산락페스티벌에 참여한 그들을 보기 위해 8시간도 넘게 서있던, 20대의 나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즐겁다. 이들의 가사는 모두 좋지만 특히 ‘K’는 표절작이 모 학생문예대전에서 대상을 받을 정도로 감동적이다. 가사를 알면 눈물을 멈출 수 없는 노래. (범프 오브 치킨 노래만 여러 개 고를 수 없어 추천곡은 아니지만 배틀 크라이의 가사를 서두에 넣었습니다.)
E.S.T. (에스뵈욘 스벤숀 트리오 Esbjorn Svensson Trio) ‘The Goldheart Miner’
‘사랑’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이 음악으로 하겠다. 꿈결같은 사운드에 포근하고 부드러운 선율. 멍하게 이성을 놓게 되는 그런 기분.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이 처음으로 들려준 앨범이며, 아기에게 처음 들려줬던 음악이기도 하다. ‘황금심장’이라는 제목처럼 음악 자체가 반짝 반짝거린다. 사랑의 순간들처럼.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Take it back’
핑크 플로이드 하면 데이비드 길모어(David Gilmour)가 좋은가? 로저 워터스(Roger Waters)가 좋은가? 어느 앨범이 명반인가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저 좋아한다는 의미로 보면 < The Division Bell >을 꼽겠다.핑크 플로이드 ‘광’팬인 남편을 만나 데이트 내내 들었던 드라이브송이기도 한데, 비상하듯 직선으로 솟는 느낌이 질주와 잘 어울린다. 음악 덕분인지, 분위기 덕분인지 그와 함께라면 어디로든 갈 수 있겠다는, 그런 용기가 생겼다.
미셸 페트루치아니(Michel Petrucciani) ‘September Second’
100센치도 되지 않는 키, 연신 땀을 뻘뻘 흘리는 피아니스트. 그의 라이브를 보면 마음에 큰 생채기가 난다. 신에 대한 원망과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부끄러움을 떨치기 힘들다. 작은 충격에도 골절이 생겼던 그는 온몸을 부수고 삶을 바쳐서 음악을 만들었다. 선천적 질환으로 늘 죽음을 생각해야 했고 (결국 3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숱한 통증 속에서 피아노를 쳤던 그가 우리에게 들려준 것은 필사의 고통이 아니라 살아가는 기쁨과 아름다움이었다. 격정적인 기타 사운드를 좋아하던 나에게 피아노의 격동을 알려준 음악이기도 하다.
니나 시몬 (Nina Simone) ‘Baltimore’
“시대를 반영하지 않고 어떻게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겠어요” 정치 투사였던 그녀의 인생은 불우하고 불행했다. 평생을 인종차별과 남편의 폭력과 음반회사의 횡포에 시달렸고 말년에는 쫓겨나다시피 타국으로 망명했다. 미국 사회에서 가장 약자에 위치했던 유색인종 여성, 그녀의 피부는 검었지만 목소리는 늘 핏빛이다. 분노가 맺히고, 외로움과 고단함이 흘러나온다. ‘Baltimore’는 작곡가 랜디 뉴먼(Randy Newman)의 곡으로 그녀가 레게 버전으로 리메이크했다. 좋아하는 레게를 니나 시몬의 보컬로 듣는 것이 즐겁다. 특히 2분 정도에서 등장하는 “Oh Baltimore~”부분은 그녀의 곡’Feeling Good’에서 40초 정도에 나오는 극적인 브라스처럼 늘 벅차게 만든다.
비욘세(Beyonce) ‘Pretty Hurts’
미모는 고통, 미모는 고통이야
우린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에만 주목해
항상 고치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고칠 수 없지
수술이 필요한 건 내 영혼이지
(Pretty hurts, pretty hurts / We shine the light on whatever’s worse
Tryna fix something / But you can’t fix what you can’t see
It’s my soul that needs the surgery)
카니예 웨스트가 내뱉은 말 중에 딱 하나 동의하는 게 있다면 여러 시상식에서 “이 상은 비욘세에게 가야 한다”하고 광분한 것이다. 사람들은 비욘세의 화려함과 파워풀한 이미지를 좋아하지만 이런 가사를 들으면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노래. 비욘세마저 젠더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이에 굴복하지 않고 ‘Who run the world? Girls!’를 외치는 그녀가 있어 힘을 얻는다.
수프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 ‘Blue Bucket of Gold’
앨범 아트워크의 부부 ‘Carrie & Lowell’은 그의 어머니와 재혼한 새아버지이다. 그의 어머니는 정신질환과 재혼으로 그와 많은 시간을 떨어져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몇 년간 음악을 하지 못할 정도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 그 괴로움을 빚어 만든 것이 이 노래. 앨범 전체에서 그는 자주 흐느끼고 목이 메인다.
정재일 한승석 ‘너는 또 그렇게’
‘너는 또 그렇게’는 이주 여성들의 한과 눈물을 판소리에 담았다. 가요에서 찾아보기 힘든 주제이자 장르를 교차한 크로스오버인데 이 새로운 시도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번에 ‘인생의 음악’을 정리하면서 리스트에 슬픔이나 맺힌 노래가 많길래 ‘나는 나름대로 한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생각을 했다. 이 곡을 들으면 ‘씻김굿’처럼 응어리가 풀려나간다.
알로에 블라크(Aloe Blacc) ‘I need A Dollar’
나는 직장이 있었지만, 사장이 날 해고했지 /
그가 말했어 / 미안하지만 이젠 네 도움은 필요 없을 거 같다 /
난 말했지 / 제발요 사장님, 당신이 아는 것보다 이 직장이 더 필요해요 /
하지만 그렇게 마지막 월급을 주고는 문밖으로 쫓아내더군 /
그래 난 돈이 필요해 필요해, 내가 필요한 건 달러
(I had a job but the boss man let me go / He said /
I’m sorry but I won’t be needing your help no more /
I said / Please mister boss man I need this job more than you know /
But he gave me my last paycheck and he sent me on out the door /
Well I need a dollar dollar, a dollar is what I need)
비정규직으로 서울에서 자취를 하면 비일비재하게 생기는 일이다. 월세를 위해서라도 한시도 돈 버는 일을 멈출 수 없다. 노래를 부른 알로에 블라크 또한 1996년에 데뷔해 이름이 알리기 까지 언더그라운드에서 오랜 시간 고생을 했다.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노래처럼 가끔은 숨막히게 절박하고 숨이 넘어갈 것처럼 조급하다. 뜬구름 잡는 희망보다 함께 주저앉아 울부짖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