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대를 보내고 2020년대를 맞이하며 IZM이 새해 특집을 준비했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채우기 위해, IZM 필자들이 ‘내 인생의 음악 10곡’을 선정해 소개했다. 한 사람의 삶을 정의하는 데 10곡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취향과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총 8회에 걸쳐 진행될 ‘내 인생의 음악 10곡’의 여섯번째 차례는 임선희, 장준환 에디터다.

체리필터 ‘Head-up’
허세 가득했던 중학교 시절, 밴드부 정도는 들어가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선배가 ‘밴드부면 체리필터는 기본으로 알아야지’라며 압박했다. ‘낭만고양이’, ‘오리날다’처럼 메가 히트곡만 알았던 터라 당장 집에 가서 1집부터 시작했다. 첫 앨범의 첫번째 트랙 ‘Head-up’. 보컬 조유진의 휘슬 창법은 정말 강렬했다. ‘파리’나 ‘헤비메탈 콩쥐’를 뽑을까 고민했지만 첫인상이 주는 임팩트는 이길 수가 없다. 결국 밴드부는 꼰대의 싹을 보인 선배들 덕분에 한 달 만에 탈퇴했다만 어쨌든 인생곡을 찾게 해줬으니 감사하다.
보아 ‘아틀란티스 소녀(Atlantis princess)’
전주만 들어도 탁 트인 광경 속에 바람이 감싸는 기분이 든다. 어두운 부분은 잠시도 없는 이 노래는 괜히 짜증 나고 모든 게 귀찮은 날의 나를 위로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 같은 곡.
무디 블루스(Moody Blues) ‘Nights in white satin’
영화 < 다크 섀도우 >는 정말 재미도, 감동도 없다. 건진 건 오프닝에 나오는 ‘Nights in white satin’뿐이다. 나중에 이즘에 들어와서 프로그레시브 록의 대표 주자임을 배웠지만, 자세히 몰랐던 그 당시에도 멜로트론과 플루트 연주에 소름이 돋았다. 을씨년스러운 멜로디로 인해 집 가는 버스 안에서 처량한 주인공 역할 놀이에 심취하곤 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I’m not a girl, not yet a woman’
본격 성숙한 이미지에 집중하기 전,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갈팡질팡한 모습을 보였던 적이 있다. 소녀는 아닌데, 어른이기에는 뭔가 부족한. 누구나 그런 시기를 겪고 나도 그랬었다. ‘Womanizer’, ‘Toxic’같은 도발적인 노래도 좋다만 girl-next-door 콘셉트가 그립다. 더 이상 소녀가 아닌 나로서는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을 되새기고 싶은 날에 슬쩍 들어보곤 한다.
록시트(Roxette) ‘The look’
대단한 사연이 얽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방송을 보다가 BGM으로 흘러나오길래 ‘어 좋네?’ 하고 검색했을 뿐. 전주의 흥겨운 기타와 신시사이저에 곧바로 매료되어 하루 종일 들었다. 2019년 12월, 듀엣의 보컬 마리 프레드릭슨이 영면했다는 뉴스를 접했던 순간에도 나는 이 노래를 듣고 있었다.
힐러리 더프(Hilary Duff) ‘I am’
하이틴 스타 하면 마일리 사이러스, 데미 로바토가 있지만 조상 격인 힐러리 더프를 빼놓을 수 없다.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도, 한 시대를 풍미한 것도 아니지만 추억의 힘은 어마무시하다. ‘난 특별해, 난 멋져, 난 아름다워’같이 유치한 가사에도 감동을 받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아른거린다.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 ‘The chain’
시작은 < 스쿨 오브 락 >이다. 규율과 질서를 중시하던 깐깐한 교장 선생님이 스티비 닉스(Stevie Nicks)의 ‘Edge of seventeen’을 즐겨 듣는다는 장면이 계속 기억이 남았다. 교장 선생님처럼 나도 스티비에게 반해버렸다. 그렇게 그가 속했던 플리트우드 맥과 < Rumours > 앨범을 알게 되었고, 듣는 즉시 인생의 명반으로 남았다. ‘The chain’의 정수는 라이브 영상에 있다. ‘정말 신들린 듯이 노래하는구나’를 느끼고 싶다면 꼭 보길 추천한다.
비틀스(The Beatles) ‘please please me’
비틀스의 노래 중 인생 곡을 단 하나 고르라는 것만큼의 고역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수한 레전드 곡 사이에서 ‘Please please me’가 머리 속에 바로 떠올랐다. 들으면 크리스마스가 떠오르는, 왠지 몰라도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이다.
미카(Mika) ‘Love today’
옛날에는 단지 이지 리스닝의 밝은 댄스 팝이라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모두가 오늘을 사랑할 거야’라고 외치고 앨범 커버처럼 알록달록한 색채로 가득 찼지만 마냥 가볍지 않다. 부모님의 꼭두각시인 아이, 미성년자의 성매매, 왕따 등등 안타까운 현실에 처한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가사를 나중에 알고 나서야 이마를 탁 쳤다. 이래서 영어 공부를 해야 하나 싶다.
낵(Knack) ‘My sharona’
정확한 앨범명도 모른다. 표지에 EMI 레코드와 ‘Do you remember the time?’이 적혀 있는 것만 기억한다. 블론디, 컬처 클럽, 킴 와일드, 빌리 아이돌 등등 1970, 80년대를 수놓은 많은 가수의 노래가 담겨있었고 그중 하나가 낵의 ‘My sharona’였다. 전주의 드럼과 기타가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어느새 ‘마이 쉐로나!’를 외치고 있더라. 신나는 팝 록에다 내가 그 시절을 살아온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먹먹해진다. 어떻게 해서든 그 앨범을 찾아내야겠다.

다프트 펑크(Daft Punk)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음악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던 초등학생이 형의 MP3에서 우연히 마주한 전자음의 인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보코더에서 나오는 인위적인 낯선 음성도, 약간의 변조를 두고 반복되는 가사가 만들어내는 무섭도록 기계적인 분위기도. 모든 것이 새롭고 크게 다가올 나이지만, 특히 이 곡은 어린 친구의 콩콩 뛰는 가슴을 쉽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핸드폰에 녹음한 파일을 등굣길과 하굣길 내내, 마치 누군가와 전화하는 척 귀에 대어 듣고 다녔다. 아마 이 사건이 인생에 있어 변환점이 아니었나 싶다. 나를 음악의 세계로 인도했던 것은 한 프랑스 일렉트로니카 듀오의 능란한 디스코였다.
저스티스(Justice) ‘D.A.N.C.E’
여느 때처럼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다프트 펑크’를 검색하는 과정을 반복하던 도중, 인터넷 세상은 같은 나라 출신의 또 다른 아티스트를 내 눈앞에 내놓았다. 검은 배경 위 떡하니 놓인 거대한 십자가의 형상. 호기심에 듣게 된 ‘D.A.N.C.E.’는 내 귀를 세차게 잡아끌며 내면의 분석 본능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적당히 쉬운 ‘DVNO’부터 공격적인 파열음의 ‘Stress’까지, 나는 마치 하면 안 되는 비행처럼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이를 완벽히 섭렵하고 싶다는 욕구로 금단의 사운드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어쩌겠는가, 어린 친구는 결국 매일 밤 부모님 몰래 이 앨범을 들었으니.
콜드플레이(Coldplay) ‘Lost!’
어느덧 중학생이 되어 기본적인 영어 해석도 되겠다, 자신감이 붙을 즈음 본격적으로 빌보드 홈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접한 콜드플레이의 음악은 마치 저스티스로 마구 헤집어 놓은 마음의 영혼을 씻어내는, 일종의 정화 의식과도 같았으니, 명징한 기타 사운드 위로 매력적인 크리스 마틴의 음색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콜드플레이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태도로 전집을 전부 찾아 듣기 시작한 나는 결국 <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의 2번 트랙, ‘Lost!’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힘찬 박수 소리와 리드미컬한 퍼커션으로 마치 군대가 힘차게 전진하듯 다가온 이 곡, 확고한 방향은 없었어도 내게 늘 ‘정진’에 대한 벅찬 열망을 갖게 했다.
고릴라즈(Gorillaz) ‘Feel good inc’
결국 나에게도 오고야 올 것이 왔다, 고치기 여간 힘들다는 그 중2병. 또래들과 다른 걸 찾아다니며 내 가치와 존재를 입증받으려 했던 나는 방구석에서 그린데이와 뮤즈, 라디오헤드를 들으며 귀엽고 비관적인 힙스터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고릴라즈의 ‘Feel good inc.’를 본 순간 내심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내가 정착할 영토를 찾았구나!’하고. 이 얼마나 좋은 타깃인가. 실제 가수는 없고 캐릭터로만 이루어진 밴드, 비관적인 종말론의 세계관, 그리고 이들이 취하는 반(反) 문화적 삐딱함. 당시엔 고릴라즈의 특이함은 보잘것없던 내게 특별함을 부여하는 존재였다. 이제 와서 부끄럽게 고백하자면, 이때 나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캐릭터 ‘투디(2-D)’였다.
블러(Blur) ‘Girls and boys’
고릴라즈의 흐름에 몸을 맡기다 자연스레 도달한 지점은 블러였다. ‘GIrls and boys’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두 번이나 크게 놀랐다. 원래 이리 고운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는가에 한번, 그리고 세련되고 감각적인 록이 존재했다는 것에 대해 또 한 번. 이맘때쯤 나의 롤 모델은 데이먼 알반(Damon Albarn) 이었다. 그의 패션 스타일과 음악적 스타일, 그리고 그가 구사하는 제스처도 전부 예의주시했다. 개구쟁이같이 엉뚱하지만 냉철한 모습,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지만 실전은 달랐다. 어설프게 따라 하다 이상한 녀석 취급만 받은 나는 결국 본전도 못 챙겼다.
패닉 ‘강(江)’
매일 밤 네이트온으로 같이 음악 얘기를 나누던 동급생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패닉을 아주 좋아하던 친구였다. 당시 나는 이상한 사대주의에 빠져 오로지 해외에만 눈길을 보내던 바라 국내 음악은 거의 문외한 수준이나 다를 바가 없었는데, 그가 들려준 패닉의 음악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가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메리트를 곁에 둔 채 어리석게도 한참이나 먼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처음으로 패닉의 ‘강(江)’의 가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나는 음악을 들은 지 5년 만에 그제야 진정으로 곡을 음미하는 법을 배웠다.
크라잉넛 ‘밤이 깊었네’
마치 보물을 꺼내보듯 국내 음악을 하나하나 탐사하다 내가 도착한 곳은 바로 ‘조선 펑크’였다. 처음에 크라잉넛의 음악을 들었을 때는 ‘이게 뭐야’ 하듯 그냥 넘겼는데 자꾸 생각나더라. 노래를 특출나게 잘한다거나 연주가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그 특유의 투박한 노랫말과 유쾌한 쌈마이 감성이 뇌의 개척되지 않은 영역을 자극한 셈이다. 하굣길에 자주 들었던 3집 < 하수연가 >의 ‘밤이 깊었네’. 아직까지도 내 퇴근용 플레이리스트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이 곡은 반드시 지켜야 할 주의사항이 있다. 함부로 낮에 꺼내지 말 것, 그리고 꼭 밤의 버스 안에서 들을 것.
악틱 몽키스(Arctic Monkeys) ‘Cornerstone’
몸에 좋다는 것은 닥치는 대로 마구 먹던 시절이다. 개러지 록과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같은 수많은 작업물을 꼬리를 물어가며 꾸역꾸역 찾아 들었다. 소화가 안 될 정도로 과식을 하긴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후회하지 않는다. 이때 억지로 삼킨 영양분은 지금 음악관 성장에 큰 도움을 준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특히 ‘Cornerstone’은 수많은 건빵 같은 트랙들 사이 별사탕 같은 노래였다. 한없이 늘어지는 기타와 알렉스 터너의 성숙해진 보컬, 그리고 절절한 가사는 내 눈물샘을 여전히 쿡쿡 자극한다.
시규어 로스(Sigur Ros) ‘Svefn-G-Englar’
수능 당일 아침, 어떤 곡으로 문지방을 나서야 할지 한참 고민하다 선택한 곡은 다름 아닌 시규어 로스의 ‘Svefn-G-Englar’였다. 광대한 우주가 연상되는 공허한 신비, 이는 마치 시험을 앞두고 절대적인 안정을 취하려는 한 수험생의 포부를 담은 곡이었으리라. 물론 노래 덕분에 편안하게 시험장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정작 수능은 망치고 말았다. 그 후로 징크스 때문에 시험날에는 잘 꺼내지 않지만 평소 잠이 잘 오지 않을 때엔 이 노래를 곁에 틀어놓는다. 그날 집을 나서면서 그들의 음악에서 받은 안도감은 거짓이 아니었기에.
네온 인디언(Neon Indian) ‘Slumlord’
내 음악 인생은 방랑의 역사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듯 바다를 떠다니다 눈에 띄는 섬이 나타나면 정착하고, 슬슬 질리기 시작하면 다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가장 최근에 상륙한 곳은 ‘칠웨이브’의 영토다. 당시 친구가 알려준 영화 < 블레이드 러너 >에 빠져 있던 나는 적절한 시기에 네온 인디언(Neon Indian)과 와시드 아웃(Washed Out)으로 대변되는 뉴트로 감성과 사이버 펑크의 토지를 발견한 것이다. 그중 ‘Slumlord’는 짙게 깔린 사이키델릭 사운드로 환락이 지배하는 형광빛 미래를 그려내고 있었다. 전에 본 적 없는 키치함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다프트 펑크로 시작해 칠웨이브로 마무리하는, 내 음악 인생의 분기점을 전부 소개했다. 이제 슬슬 채비를 할 시간이다. 또다시 나를 사로잡을 무인도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