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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Feature

IZM 필자들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음악 10곡’ – 손기호, 조지현

2010년대를 보내고 2020년대를 맞이하며 IZM이 새해 특집을 준비했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채우기 위해, IZM 필자들이 ‘내 인생의 음악 10곡’을 선정해 소개했다. 한 사람의 삶을 정의하는 데 10곡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취향과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총 8회에 걸쳐 진행될 ‘내 인생의 음악 10곡’의 일곱번째 차례는 손기호, 조지현 에디터다.

에미넴(Eminem) ‘Lose yourself’
비장미 넘치는 도입부에 언제나 가슴이 뛴다. 고등학생 때 처음 접했던 그의 < Curtain Call: The Hits >은 충격이었고, 에미넴이란 ‘랩 스타’의 등장은 어린 힙합 키드에게 꿈을 가지게 했다. 이제 이 곡은 면접, 시험 등 중요한 일을 치르기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 플레이리스트 최상단에 자리 잡아 감정을 고양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일생일대의 선택 혹은 기회 앞에서 작아지지 않게 용기를 주는 노래이다.

아델(Adele) ‘When we were young (Live at The Church Studios)’
어느 때보다 외로웠던 날이었다. 술에 취해 생각 없이 아무 노래나 듣고 흘리고 있을 때 이 영상이 내 마음을 붙잡았다. 수도 없이 반복했던 앨범이었는데 음원과 라이브의 느낌이 완전히 달랐던 이유는 취기 혹은 그때의 감성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 아련하게 남은 그 순간의 감정을 잊지 못해 지금도 잔뜩 취하고 나면 이 영상을 찾는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소리가 나를 위로했다.

아이유 ‘그 애 참 싫다’
이십 대 초반의 사랑은 김풍 작가의 웹툰 제목처럼 ‘찌질의 역사’ 그 자체였다. 비슷한 사연의 가사를 찾아 감정을 설명하며 타인에게 공감을 구하려 한 것도 그때의 어설픈 방식 중 하나였다. ‘그 애 참 싫다’는 나의 마음을 대변했다. 이야기는 조금 다르지만 ‘날 보지 않는 그 사람이 너무 좋아 오히려 싫어졌다.’는 비극적인 소재를 시련의 주인공이 된 내가 놓칠 리가 없었고 몇 날 며칠을 반복해서 들었다. 순수로 포장된 흑역사는 끔찍하지만, 가끔 꺼내 보면 나쁘지 않을 추억이 되었다.

나스(Nas) ‘Represent’
한국형 랩으로 힙합 음악을 접한 뒤 미국 본토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하고자 들었던 나스의 < Illmatic >은 고등학생, 어린 힙합 키드였던 나에겐 고전 문학처럼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 앨범이 클래식으로 칭송받는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천천히 받아들인 만큼 오랜 시간 기억될 명반이 됐다. 특히 이 곡은 ‘우주에서 랩을 누가 제일 잘해?’란 유치한 질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 되었다.

언니네 이발관 ‘아름다운 것’
첫사랑의 기억, 못 이룬 꿈도 모두 이 곡에 담겨있다. 언니네 이발관의 ‘아름다운 것’은 미련이다. 떠나간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억지로 붙잡을 때마다 이 노래를 찾아 들었다.

디쉬왈라(Dishwalla) ‘Home’
앨범을 추천받고 한동안 기억에서 잊었다가 2009년 여행을 갔던 미국 보스턴의 한 레코드 샵에서 Dishwalla의 < Opaline >을 발견한 건 기막힌 운명이었다. 수록된 모든 곡을 사랑하지만 일을 마치고 늦게 귀가하던 어느 밤 차가운 바람과 함께 들었던 ‘Home’은 특별했다. 휘날리는 나무 소리와 곡의 2분 30초부터 시작하는 절정이 어우러져 마치 그곳에 나 혼자만 존재하는 기분을 느꼈다. 집을 소재로 위로를 건네는 노래는 많지만 ‘Home’처럼 황홀한 체험을 주진 못했다.

이승열 ‘비상’
중학교 2학년 처음 들었던 순간부터 이승열의 열렬한 지지자를 자처하며 그의 음악과 함께 했다.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게 해줬다. ‘어둠이 가로막아서도, 나도 모르는 눈물이 흘러도 참을 수 없는 설레임에 알 수 없는 내일을 기다려.’ 이 가사는 내 인생을 지탱하는 희망이 되었다. 무심한 듯 던지는 그의 위로에 언젠가 날아오를 나를 꿈꾼다.

이소라 ‘Track 9’
언제부터인가 내 기분을 잘 모르게 됐다. 뭐가 기쁜지 슬픈지 딱히 우울한 건 아닌데 위로는 받고 싶고 그런데 원인을 모르니 도움을 구할 수도 없다. 이소라의 ‘Track 9’은 그런 나의 투정을 이해하고 받아준다.

대그(DAG) ‘Our Love Would Be Much Better (If I Gave a Damn About You)’
중학생. 부모님을 졸라 아이리버의 MP3를 선물로 받았지만 남들과 똑같이 되기 싫다는 무서운 반항심은 이미 시대가 저물어가는 CDP를 사게 했다. 돈이 생기면 지금은 잠실새내역이 된 신천역 앞에 있던 음반 매장에 가 CD를 구경했는데, 어떤 정보도 없이 앨범을 사서 듣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 대그(DAG)의 < Apartment 635 >는 내가 발견한 최고의 보물이었다. 첫 번째 트랙이었던 이 곡은 멜로디 중심이 아닌 펑키(Funky) 리듬으로 연주된 음악 자체에 몸을 맡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숨겨진 소리를 찾는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으니 들을 때마다 새로운 곡이다.

이적 ‘매듭’
친구가 죽었다. 불과 사흘 전까지만 해도 나랑 술을 마시며 서류 합격을 축하해줬던 녀석이 사고를 당했고, 세상을 떠났다. 그날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고 싶었던 회사의 면접 날이었다. 그때의 감정은 꼬일 대로 꼬여 내 가슴의 커다란 매듭이 되어 남았다. 아직 이적의 노래를 듣지 못하는 이유는 유독 ‘매듭’을 좋아했던 친구가 떠올라서이다.

토토(Toto) ‘Georgy porgy’
이 글의 필자 이름을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실용음악과 출신인 나의 대학 시절 별명은 ‘조지 포지(Georgy porgy)’였다. 토토는 실용음악과 학생들의 우상이었고, 앙상블 수업 때면 토토의 음악은 연주곡의 필수 항목이었다. 별명 때문에 알게 된 이 곡은 건조한 피아노 리프 위에 ‘Georgy porgy pudding pie!’를 외치는 후렴구가 묘미더라. 이건 ‘좋아서’ 고른 인생곡이자 ‘진짜’ 내 인생과 직결돼있다.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 ‘Elephant’
고3 입시생이었을 때, 연습을 끝마치고 집으로 가던 새벽길을 가득 메운 곡이다. 연습실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거리 10분, 이 노래를 두 번 들으면 집에 도착했다. ‘내 인생은 어디로 가는가, 나의 도착점은 어디인가..’를 되뇌며 그때만큼은 누구보다 괴로운 내가 되어 귀가하던 새벽 1시, 잔잔한 기타 소리를 머금는 데미안 라이스의 목소리는 19살 소녀의 마음을 쿵, 쿵 내리쳤다. 세상 슬픈 일은 다 내 것인 것만 같게 느껴졌던 노래.

알 자로(Al Jarreau) ‘We’re in this love together’
기억한다. 혼자 떠난 여행, 생전 처음 밟는 땅에서 나는 이 노래를 주저 없이 틀었다. 햇살이 내리쬐는 벤치에 앉아 몇 번을 반복해 들었는지 모른다. 이 곡이 수록된 < Breakin’ away > 앨범은 전곡이 다 내 취향이다. 나를 퓨전 재즈에 흠뻑 젖게 한 내 인생의 명반. 이 노래만 있으면 뭐가 됐든 사랑에 빠질 수 있다. ‘We’re in this love together(우린 사랑에 빠졌어요) / We got the kind that’ ll last forever(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기대해요)’ 이 노래를 사랑하는 내 마음도 영원히 지속되리!

윤종신 ‘동네 한 바퀴’
이별 후, 윤종신의 ‘동네 한 바퀴’를 들으며 동네 열 바퀴는 걸었다. 이별 노래인데도 템포는 미디엄, 멜로디는 한없이 희망적이다. 그 덕분에 덜 슬프고, 덜 울었다. ‘몇 해 전 너와 나의 이별 이야기’. 이 노래에는 되찾을 수 없는 누군가의 시절이 담겨있다. 나 또한 그랬다. 인생곡이 뭐 있나, 나의 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그 곡이면 충분하다.

캣 스티븐스(Cat Stevens) ‘Morning has broken’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Morning has broken’을 오랜만에 들었다. 사실 처음이라고 해도 무방한 게, 어릴 적 어디선가 들었던 흐릿한 기억 때문에 익숙하다고 여겨지는 탓이다. 투박하고 꾸밈없는 피아노 인트로가 처음에는 좀 방정맞다 싶더니, 웬걸. 듣다 보니 이렇게 서정적일 수가 없다. 그의 다정한 목소리와 촌스러운 창법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 이 노래만 들었다. 원곡은 찬송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기독교는 기독교를 알아보는 법’인가, 우스운 생각도 해봤다.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 ‘Step’
그럴 때가 있다. 여행을 갔는데 괜히 창밖 풍경에 심취하고 싶을 때, 잠들기 전에 센치한 밤을 보내고 싶을 때! 한 마디로 그냥 분위기 잡고 싶을 때 듣는 음악이다. 둔탁한 드럼 사운드와 몽롱한 기타 소리, 특히 중간에 나오는 ‘뚬~ 뚜둠, 뚜둠’하는 허밍 소리는 너무 짧아서 아쉬울 지경이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냥 좋다.

황신혜 밴드 ‘짬뽕’
이 노래를 언제, 어떻게 알게 됐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중학교 때 죽어라 다니던 노래방에서 이 곡은 나의 18번이었다. (사실 함께 간 친구들이 내가 이 노래만 부르면 배꼽을 잡고 웃는 모습에 더 흥이 났다.) 황신혜가 ‘배우’ 황신혜인 줄 알았더니 익살스러운 남자의 목소리로 ‘짬뽕!’을 외치지를 않나, 게다가 알고 보니 황신혜 밴드의 ‘황신혜’는 ‘황당하고 신기하며 혜성 같은’의 줄임말이더라. 말 그대로 황당하고 신기했다. 세상에 이런 노래도 있구나 싶었다. 나는 아직도 짬뽕을 먹을 때면 이 노래가 생각난다.

브로콜리 너마저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중고 서점, 시디 코너에 갔다. 이름은 익숙하지만, 음악은 들어본 적이 없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시디를 샀다. 집에 와서 플레이어에 시디를 넣어 놓고는 책을 펼쳤다. 앨범의 두 번째 수록곡, 평범하기 그지없는 피아노 인트로가 흘러나왔다. 관심 없다. 갑자기 쟁쟁한 일렉트로닉 기타가 등장한다. 조금 놀랐다. “그런- 날이- 있어“ 덕원이 노래를 부른다. 자꾸 한 템포씩 쉬면서 노래를 하는데, 이게 나를 멈칫하게 만든다. 책장을 넘기던 손이 멈추고, 가사를 곱씹는다. 그래,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지! 그럼에도 위로받던 순간들을 불쑥불쑥 들춰낸다.

토이 ‘우리는 어쩌면 만약에..’
돌이켜보니 이별을 참 많이도 했다. 어릴 적의 이별은 무방비한 슬픔으로 가득 차서 애써 좋았던 순간들을 꺼내 보고, 애써 눈물을 흘려댔다. 난생처음 겪는 슬픔에 심취한 모양이다. 고조 없는 이 음악은 불 꺼진 방에서 가만히 듣기 딱 좋은 이별 송이었다. 담담한 윤상의 노래와 잔향이 짙게 깔린 일렉트로닉 피아노로 메워진 이 곡은, 슬픔을 부추기는 웬만한 발라드보다 더 슬펐다. 앞으로도 내 이별 송은 이 노래다. 아니, 이별은 이제 그만~~~

아론 네빌(Aaron Neville) ‘Don’t go please stay’
나의 아빠는 음악을 유독 사랑했다. 중학교 시절, 오래된 LP로 아빠가 들려준 이 곡은 우습게도 한국 발음으로 ‘똥-꼬(Don’t go)’로 시작되었다. 동생과 배꼽을 잡으며 웃어더랬다. 아론 네빌 특유의 느끼한 창법으로 보나, 촌스러운 멜로디로 보나 영 내 취향은 아니다만 이 곡을 듣자면 엘피판을 만질 거리던 아빠의 투박한 손길과 왁자지껄 웃던 동생의 모습, 그리고 주방에서 들리던 엄마의 칼질 소리까지 배경음악처럼 떠올라 마음 따뜻해지는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