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ZM 필자들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음악 10곡’ – 소승근

2010년대를 보내고 2020년대를 맞이하며 IZM이 새해 특집을 준비했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채우기 위해, IZM 필자들이 ‘내 인생의 음악 10곡’을 선정해 소개했다. 한 사람의 삶을 정의하는 데 10곡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취향과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총 8회에 걸쳐 진행될 ‘내 인생의 음악 10곡’의 첫 스타트는 소승근 IZM 대표가 끊는다.

쿼터플래시(Quarterflash) ‘Harden my heart’
초등학교 5학년 때 우연히 들은 이 노래를 다시 듣기 위해 거실에 있던 카세트라디오를 방으로 들여왔을 때, 내 미래는 결정됐다. 가수도 모르고 노래 제목은 더더욱 몰랐던 초등학생은 이 곡을 듣기 위해 하염없이 라디오를 켜놨고 그 덕분에 이런 노래, 저런 노래를 들으면서 팝송에 빠졌다. 아직도 이 노래의 색소폰 연주만 들으면 심장이 벌렁벌렁해진다.

알 스튜어트(Al Stewart) ‘Year of the cat’
1990년 봄,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처음 들었다. 초면임에도 사랑에 빠진 나는 알 스튜어트의 LP를 사서 90분짜리 테이프에 ‘Year of the cat’만 녹음해서 들을 정도였다. ‘고양이의 해’라는 웃기지도 않은 제목과 얍삽한 알 스튜어트의 가느다란 음색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피아노로 시작해 신시사이저로 끝나는 6분 30초의 러닝타임 동안 넋을 놓고 들을 수밖에 없는 악기 운용과 편곡이 오감을 마비시켰다. 만약 음악을 고급과 저급으로 나눌 수 있다면 ‘Year of the cat’은 고급의 최상층에 위치할 것이다.

마돈나(Madonna) ‘Holiday’
나에겐 ‘마여사’보다 ‘마누님’이라는 표현이 더 살갑다. 10대 소년은 1983년 겨울, 라디오에서 이 곡을 듣자마자 평생의 팬이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사실 그 약속은 오래가진 못했다. 20대가 되면서 감성이 변했는지 마음속 언약은 변절됐지만 아직도 ‘마누님’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은 가지고 있다. 나에게 펑키(Funky)한 음악을 눈뜨게 만들어준 고마운 노래.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 ‘In your eyes’
이 노래는 가을이고, 쓸쓸함이고, 외로움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 음악을 듣는다’고 자랑하고 허세부리기 좋은 곡이고 그런 잘난 체에 어울리는 가수지만 나는 정말, 단연코, 진심으로 ‘In your eyes’를 좋아했고 지금도 변함없다. 내 말이 거짓말이나 허풍처럼 들린다면 10월의 어느 가을날, 혼자서 이 노래를 들으며 낙엽이 쌓인 가을 길을 걸어보시라.

케이트 부시(Kate Bush) ‘Wuthering heights’
마돈나가 ‘누님’이라면 케이트 부시는 ‘선생’이다. 그의 노래는 어려웠고, 어떤 노래는 비정상적으로 들렸으니까. ‘Running up that hill’을 통해 그를 알게 됐지만 그에게 빠진 건 이 노래다. 춥고 을씨년스런 피아노, 예민한 목소리, 예상을 빗나가는 드럼 연주 등 모든 게 신세계였다. 심연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그의 음악세계에 몰두했고 결국엔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 폭풍의 언덕 >까지 읽었지만 재미는 없었다. 동글동글한 얼굴형에 볼살 있는 여성을 이상형이라고 말하게 만들었던 인물은 케이트 부시다.

델리 스파이스 ‘챠우챠우’
나는 동요와 만화 주제가에서 곧바로 팝송으로 건너뛰었기 때문에 가요 감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 노래 중에서도 조용필의 ‘미지의 세계’, 윤수일의 ‘아름다워’, 최헌의 ‘도시의 밤’, 도시의 그림자의 ‘이 어둠의 이 슬픔’처럼 팝송 같은 노래들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에 듣게 된 ‘챠우챠우’는 가요에 대한 내 선입견을 바꿨다. 김민규가 음악평론가들을 저주(?)하며 만든 이 노래는 음악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고 나도 그 중 한 명이 됐다.

보니 레이트(Bonnie Raitt) ‘Nick of time’
1989년도 앨범 < Nick Of Time >이 여러 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야 보니 레이트의 음반이 우리나라에 처음 라이센스로 발매됐다. 지금은 그래미에 애정이 없지만 그 당시엔 그래미는 영광의 훈장처럼 느껴져서 그래미 트로피를 탄 가수와 음반은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착각했다. 내가 처음 구입한 블루스 앨범 < Nick Of Time >에서는 ‘Love letter’, ‘Have a heart’, ‘Thing called love’가 유명하지만 나는 음반 타이틀 ‘Nick of time’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어느 하나 과욕 없이 시냇물 졸졸 흐르듯 자연스런 곡 진행과 과시하지 않는 보니 레이크의 보컬은 잔잔한 충격이자 소박한 감동이었다. 헤비메탈처럼 화려한 연주가 없어도, 머라이어 캐리나 마이클 볼튼처럼 열창을 하지 않아도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Nick of time’을 통해 깨달았다.

더 후(The Who) ‘Baba O’Riley’
브리티시 인베이젼의 3인방 중에서 누굴 가장 좋아하냐고 질문을 받으면 주저하지 않고 더 후라고 대답하게 만든 곡이다. 중학교 때 AFKN 라디오를 통해 알게 된 ‘Baba O’Riley’의 무그신시사이저 연주는 독보적이었고 장작을 패듯 두들기는 키스 문의 드럼 연주는 통쾌했으며 로저 달트리의 보컬은 호쾌했다. 진지한 척하면서 매가리 없는 1990년대 브릿팝에 흥미를 잃게 만든 영국 밴드의 노래.

버브 파이프(Verve Pipe) ‘Freshmen’
90분짜리 테이프에 녹음해서 주구장창 들었던 두 번째 노래. 대학교 때 실수로 아이를 낙태시킨 버브 파이프의 보컬리스트 브라이언 밴더 아크의 쓰라린 경험을 속죄하는 내용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1996년에 처음 들었을 때는 음악 자체만으로도 내 마음을 후벼 팠다. 뭔가 슬프다고 생각했으니까. 가사를 몰라도 선율과 분위기로 감동을 주는 것이야말로 음악이 존재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다.

러시(Rush) ‘Spirit of radio’
밴드에서 드러머는 늘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지만 이상하게 캐나다의 록 밴드 러시의 드러머 닐 피어트는 보컬리스트 게디 리와 기타리스트 알렉스 라이프슨을 압도한다. 러시의 모든 가사를 쓴다고 하지만 해석할 수 없는 심오한 가사는 내겐 그저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일 뿐이다. 그러다가 러시의 공연실황에서 ‘Spirit of radio’를 연주하는 닐 피어트를 보고 반했고 노래 중간에 등장하는 ‘Freedom of music’이라는 가사가 내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드럼 연주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