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ZM 필자들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음악 10곡’ – 박수진, 이홍현, 황인호

2010년대를 보내고 2020년대를 맞이하며 IZM이 새해 특집을 준비했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채우기 위해, IZM 필자들이 ‘내 인생의 음악 10곡’을 선정해 소개했다. 한 사람의 삶을 정의하는 데 10곡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취향과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총 8회에 걸쳐 진행될 ‘내 인생의 음악 10곡’의 네번째 차례는 박수진, 이홍현, 황인호 에디터다.

서영은 ‘혼자가 아닌 나’
시작부터 신파다! 누가 나의 삶에 버거움을 주었나… 초등학생 때부터 엄마에게 혼나든 세상에게 혼나든 힘들 땐 꼭 이 노래를 들었다. 노래는 그대론데 짊어진 고민은 날로 무거워지니. 별 수 있나. 리플레이!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 ‘Complicated’
울 엄마의 박수진 키우기 프로젝트에는 두 가지 큰 목표가 있었다. 하나는 미스 춘향 대회 내보내기, 또 하나는 양희은 같은 포크 가수 만들기. 말하자면 가슴 아픈 이유로 모두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이 곡을 얻었다. 중학교 내내 통기타로 연습하던 곡. 내게 에이브릴 라빈은 ‘Sk8er Boi’보다 ‘Complicated’다.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 ‘Because of you’
내 안에 ‘소울’이 있는 줄 알았다. 너도 나도 씨야, 가비엔제이, 장혜진에 빠져 가창력, 코창력을 선보일 때 난 조용히 프린트한 가사지를 꺼내들고 이 곡을 연습했다. 그가 오디션 프로그램인 < 아메리칸 아이돌 >의 우승자란 것도 나중에 알았다. 모든 세상의 중심이 나인 줄만 알던 그때 그 시절 억지로 새긴 내 눈물 자국은 바로 이 곡에서 시작됐다.

3호선 버터플라이 ‘스모우크 핫 커피 리필’
단 하나의 명반을 뽑으라면 주저 없이 3호선 버터플라이의 < Dreamtalk >(2012)다. 대학 시절 처음 듣고 느낀 카타르시스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소음과 불협화음이 미끄러져 난해한데 뭔가 알 거 같은 그 감정. 음악이 내 마음을 그려내는 것만 같았다. 그 음반의 첫 곡. 스모크가 아닌 ‘스모우크’라 발음하는 시적 여운에 취한 자, 이 곡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니.

브로큰 발렌타인 ‘화석의 노래’
홍대의 라이브 클럽을 전전하며 이들을 처음 알게 됐다. 굵직하고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와 시원시원한 가창. 그리고 무엇보다 강한데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에 취해 다이어트를 위한 줄넘기를 돌리며 이들의 곡을 많이 불렀다. 뜨겁고 습한 방콕의 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보컬 반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그래서 더 믿기지 않았다. 열기 가득한 내 20대 초반을 담고 있는 곡.

트레이시 채프만(Tracy chapman) ‘Fast car’
유튜브를 타고 타며 음악을 듣다가 이 곡에서 딱 멈췄다. 나른하고 쫀쫀한 어쿠스틱 기타 선율과 중성적인 보컬의 목소리. 별 생각 없이 노래에만 꽂혀 반복 재생을 하다 몇 년 뒤 우연히 이 곡을 다시 만났다. 한 음악 강의에서였는데 알고 보니 흑인의 처연한 일상을 비유한 가치 있는 곡이더랬다. 내가 요새 그 강의 조교를 한다. 이즘과의 첫 만남 어찌 잊을 수 있으랴!

파이스트(Feist) ‘My moon my man’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 판의 미로 >처럼 몽환적이고 판타지스러운 노래다. 기본이 되는 베이스 리듬과 요기저기 가미되는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한번 들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파이스트의 보이스 칼라까지. 음악을 좀 제대로 들어볼까 싶어 당시 열심히 읽던 매거진에서 발견한 곡으로 이후 주구장창 플레이리스트에 있다. 이 노래의 백미가 무엇이냐 하면 중후반 몰아치는 사운드 격돌이니 놓치지 마세요.

스타세일러(Starsailor) ‘Alcoholic’
전반에 서린 멜랑꼴리한 비장미. 칼을 빼내듯 튀어나가는 속도감 있는 전개. 록, 어디까지 만나봤니 하면 한 때 전 이 정도로 ‘록에 젖어 있었습니다’ 답하며 살며시 이 노래를 귀에 꽂아 주고 싶다. 2012년 < 부산 록 페스티벌 >에 갈 요량으로 출연진을 검색하다가 이 곡을 알게됐고 이후 난 깨달았다. 뒤늦게 내 인생이여 음악이란 파도를 만나 헤엄치겠구나. 하지만 지금의 나는 삶에 허덕이는 가방 끈만 긴 학생이여라.

콜드플레이(Coldplay) ‘Don’t panic’
나도 안다. 콜드플레이가 지금 얼마나 비싼 음악을 하는지. 다만 ‘Viva la vida’, ‘Adventure of a lifetime’, ‘Paradise’ 등 듣자마자 황홀경이 그려지는 요즘 날의 그들도 좋지만 가끔은 1집 < Parachutes >(2000)의 감성이 그리울 때가 있다. ‘얘네가 그렇게 잘나간다며?’ 하며 전 음반을 구매할 목적으로 산 그들의 첫 음반. ‘Don’t panic’을 들으며 돌아나갈 수 없는 우울감과 서정성에 매료됐다.

켄트(Kent) ‘Socker’
켄트와 나의 접점은 없다. 스웨덴 밴드고 노래도 다 스웨덴어로 부른다. 그래서 난 이들의 노래를 멜로디로만 떠올린다. 그리고 내 멋대로 상상하는데 이 곡은 내게 슬프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기억된다. 어떻게 알게 됐는지도 모르고 그냥 어느 순간 내게 남아 있는 곡. 2016년 해체했고 마지막 음반의 타이틀 ‘Air ar inte langre dar(We are no longer there)’을 들으며 이들을 멋지게 보냈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Billie jean’
중학교에 다닐 때는 MP3 플레이어와 스마트폰을 수업 전에 내야 했기 때문에 교내에서 음악을 듣지 못했다. 괴로운 시간을 참지 못한 나는 쉬는 시간마다 복도를 무대 삼아 홀로 노래를 불러대며 욕구를 해소하곤 했다. 많은 곡 중 최고 애창곡은 이 노래. 당시 나의 영웅이었던 마이클 잭슨의 목소리, 표정, 춤을 엉성하게 따라 하며 딸꾹질 소리를 중간중간 섞어 넣으면 구경하던 친구들이 깔깔거리며 웃곤 했다. 지금도 춤이나 노래에 소질이 조금 있는 편이라 생각하는데, 그 끼의 시작이 여기인 것 같다.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Superstition’
처음 들었을 때 음악의 정점이 여기라고 생각했다. 마약을 섞은 듯 매혹적인 신시사이저 리프와 눈에 떠다니는 듯 선명한 보컬 멜로디, 춤을 참을 수 없게 하는 펑키 리듬, 정신없이 갈겨대는 악기 연주가 하나로 섞여 만들어진 경이로운 소음. 시간이 지나 수백 번도 넘게 들었지만 지금도 경탄이 터져 나온다. 뭐랄까, 음악가의 영혼 같은 게 담겨있다.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And Fire) ‘September’
재생하면 자동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빠데야!’를 따라 외치게 되는 노래. 좋은 음악의 정의나 훌륭한 예술의 조건, 그런 건 따질 겨를도 없다.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기분이 좋아지는, 내가 생각하는 좋은 ‘팝’의 표본.

라디오헤드(Radiohead) ‘No surprises’
그런 날이 있다. 머릿속에 우울한 생각만 가득하고 마음의 무거움이 무기력으로 이어지는, 신나는 댄스곡을 들어도, 달콤한 위로의 가사를 읽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그럴 때 나는 별수 없이 이 노래를 꺼내 듣는다. 감정의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멜로디, 극도로 절망적인 가사, 덤덤하게 읊조리는 보컬이 나에게 조용히 기댈 어깨를 빌려주며 슬픔에 젖을 시간을 내어주는 것 같다. 톰 요크는 이 곡이 자살에 관한 노래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나는 들을 때마다 그 내용을 담고 있다고 느낀다.

본 조비(Bon Jovi) ‘This ain’t a love song’
처음으로 외국 밴드 음악을 접할 무렵 본 조비를 좋아했다. 말랑말랑한 가요로 음악을 들은 나였기에 너무 강하고 극단적인 록보다는 선명하고 어렵지 않은 선율이 있는 그들의 음악에 손이 많이 갔다. 그중 가장 즐겨 들은 노래는 6집 < These Days >의 수록곡인 이 노래. 지금도 전주의 기타 리프만 들으면 가장 순수하게 음악을 듣던 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Monster’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무서워서 껐던 기억이 난다. 혁신이자 신기원, 힙합은 국내 곡 몇 개 말고는 몰랐던 나에게는 과하게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빠져들었다. 온갖 상스러운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노랫말이지만 사운드와 랩이 주는 쾌감에 재생을 멈출 수 없었다. 지금도 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찾아 듣는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i’
켄드릭 라마의 목소리는 내 마음속의 저항심을 대신 배설해주는 분출구 같다. 자신이 바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그것을 극복과 긍정으로 승화시켜 ‘난 나를 사랑해!’를 외치는 이 노래의 노랫말은 특히나 나에게 큰 울림이었다. 나에게 자신감을 가르쳐준 소중한 노래.

유재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20살 무렵, 지방에서 서울로 홀로 올라와 모든 걸 고군분투하던 때 접한 곡이다. 처음에는 서정적인 선율이 좋았는데 거듭 들을수록 가사에 마음이 움직였다. ‘이제 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빠르게 달려가는 세상 속 때로는 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여유가 필요하다. 이 노래는 나에게 그 여유를 내어준다.

김하온 ‘붕붕’
하늘과 바람, 자연이 떠오르는 힙합 노래. 발매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의 인생곡 중 하나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탁 트인 편곡과 빠르게 뱉는 랩이 나의 취향을 저격하고 젊음의 패기를 꾹꾹 눌러 담은 노랫말은 자유로움을 동경하는 나의 어떤 이념과도 닮아있다. 걱정, 고민을 버리고 하늘 위로 붕붕! 날아오르게 만드는 노래.

프린스(Prince) ‘Purple rain’
죽기 직전 딱 한 곡만 들을 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별 인사.

넬 (Nell) ‘기생충’
나도 대부분의 사람처럼 ‘기억을 걷는 시간’으로 넬을 처음 접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 이 밴드를 규정하는 건 어디에도 들어맞지 못하는 부적응자의 정서다. 2008년 이 곡을 처음 듣고 접신(接神)이라도 하는 듯한 도입부에, 어딘가 단단히 비뚤어진 듯한 가사에 매료됐다. 나는 이때 마침 중학교 2학년이었으니, 그랬을 만도 하다.

동경사변(東京事変) ‘전기가 없는 도시'(電 のない都市)
일본어는 하나도 모르지만 듣고 있자면 언제나 눈물이 흐른다. 시이나 링고 (椎名林檎)의 처량한 목소리와 서글픈 피아노 반주, 그 사이를 꽉 채우는 기타 사운드는 내 마음속에 있는 서글픔을 끌어내 함께 공명한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던 10대 소년은 이 노래를 듣고 자신의 치기 어린 분노속에 들어있던 외로움과 나약함을 직시할 수 있었다. 마음 놓고 울어도 된다고 허락을 받은 것만 같던 그 당시의 마음이 이 노래를 듣기만 하면 떠오른다.

모임별 ‘푸른전구빛’
소리의 질감에 대한 무신경을 단숨에 녹여버리고, 음악적 세계관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해준 곡이다. 결코 뛰어난 가창도, 연주도 들어있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 >의 퇴폐적 몽환에 더욱 귀 기울일 수 있다. 퇴폐나 몽환과는 거리가 있는 인생을 살면서도 사이키델릭한 음악을 들으며 슬픔에 대한 자기연민에 빠져 보낸 20대 초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언니네 이발관 ‘청승고백’
인디음악에 입문을 해야겠다며 유명한 앨범들을 닥치는 대로 듣다가 < 후일담 >을 접했다. 곡 제목도 확인하지 않고 순서대로 듣다가 후반부에 나온 3분짜리 기타 솔로에서 눈물을 흘렸다. 제목을 보고 내 청승맞음이 꼼짝없이 폭로 당한 기분에 나는 눈물이 채 가시기도 전에 웃음을 터뜨렸다. 내게 딱 필요했던 만큼의 자아비판이었다.

디어 클라우드 ‘무너져’
중성적인 목소리로 곡에 녹여낸 감정의 기승전결에 한번, 당신의 행동에는 ‘나에게만 통할 수 있는 무기’가 숨어있다는 가사에 다시 한번 감동했다. 내 삶에서 이별의 순간에는 항상 이 노래가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무너짐과 무기력, 나약함으로만 이별이 정의되던 시기는 시간과 함께 흘러갔다. 그러나 그 아픔의 방식에 대한 기억만은 남아, 내가 걸어온 길을 추억하게 해준다.

서태지 ‘Take five’
아이유가 팬들에게 ‘역조공’을 하기로 유명하지만, 자신의 팬을 향해 바치는 찬가로는 서태지가 한 수 위다. 파도치듯 분출하는 에너지에 몸을 맡기면 금방 공연장에 온 것만 같다.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2년 만에 전해온 첫 소식으로 이 노래를 접했다면 얼마나 가슴 벅찼을까. 이른바 “서태지 세대”에 내가 속하지 못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김윤아 ‘다 지나간다’
김윤아는 ‘파애’에서 시작해, ‘샤이닝’과 ‘피터의 노래’에 이르기까지 아픔을 노래해 왔다. 이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다 지나간다’는 단단한 진정성은 흔치 않은 안도감을 선사한다. 비록 그 종류가 다를지언정, 함께 ‘열병’과 ‘상념’의 시기를 겪어왔다는 동질감 덕분이다.

미츠키(Mitski) ‘First love / Late spring’
중2병을 극복한 나를 기다리는 건 대2병이었다. ‘당신의 말 한마디면 나는 내가 서 있는 절벽에서 뛰어내릴 수 있으니, 내가 기어 돌아오도록 말려달라’는, 여전히 감정에 휘둘리는 ‘키만 큰 어린애’의 모습에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가사의 내용만큼 날 것의 느낌이 살아있는 사운드는 곡의 몰입도를 극대화해, 기타 솔로에서 눈물을 참을 도리가 없다.

다프트 펑크(Daft Punk) ‘Robot rock’
이 정도로 반복적이고 단순한 구성의 곡이 이렇게 신날 수가 없다. 다프트 펑크는 록 팬인 내 머릿속에 로봇도 록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줬고, 그 덕분에 전자음악의 팬이 됐다.

버브 (The Verve) ‘The drugs don’t work’
제목에 끌려 우연히 MTV에서 공연한 어쿠스틱 편곡의 영상을 접했다. 영국의 록에서 날 선 에너지가 아닌, 달콤씁쓸한 서정성을 처음 발견한 경험이었기에 이 기억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통기타와 일렉기타, 그리고 리처드 애쉬크로프트의 목소리만으로 자아내는 감동은 음원의 그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이 곡이 듣고 싶을 때는 여전히 그 영상을 찾아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