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ZM 필자들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음악 10곡’ – 김도헌, 정효범

2010년대를 보내고 2020년대를 맞이하며 IZM이 새해 특집을 준비했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채우기 위해, IZM 필자들이 ‘내 인생의 음악 10곡’을 선정해 소개했다. 한 사람의 삶을 정의하는 데 10곡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취향과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총 8회에 걸쳐 진행될 ‘내 인생의 음악 10곡’의 두번째 차례는 김도헌 메인 에디터, 정효범 에디터다.

존 레논(John Lennon) ‘Imagine’
1980년대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를 꿈꾸며 노래하던 포크 청년은 10여년 후 부산 어촌의 한 낡은 아파트에서 가정을 꾸렸다. 당신은 이제 막 몸을 가누고 뛰어다니던 어린 아들에게 붉은색의 ‘히트곡 기타 악보 모음집’을 펼쳐 두고 못다 이룬 낭만을 노래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라이너스의 ‘연’, 마이클 잭슨의 ‘Ben’, 존 덴버의 ‘Annie’s song’, 모두 좋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가장 큰 선물은 존 레논의 ‘Imagine’이었다. 아버지는 상상도 못 하셨겠지만 그 순간 내 삶은 이미 정해져 버렸다. ‘음악과 야구는 아버지에게 배운다’는 격언, 절대 진리다.

에픽하이 ‘I remember’
여드름 가득하던 상고머리 중학생은 힙합으로 음악을 배웠다. 쉬는 시간 교실 뒤편에서 수업 시간 몰래 써 내려간 랩 가사를 친구들과 경쟁하듯 뱉어대던 것이 암울한 사춘기 시절의 행복이었다. 이제는 ‘탑골 힙합’으로 기억되는 많은 그룹들 중 으뜸 영웅은 단연 에픽하이. ‘내 어린 시절 주제가는 엄마가 치던 통기타 소리와 나팔바지 아버지의 하모니카’라는 가사가 너무 나의 얘기 같았다. 당시 노래방 부동의 1번 트랙.

윤하 ‘Audition (Time 2 rock)’
인생 최초의 록스타이자 아이돌. 일본에서 먼저 발표한 ‘혜성’엔 큰 감흥이 없었지만 ‘Audition’의 당차고 자신만만한 윤하는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빛나고 말 거야’라 다짐하던 소녀와의 만남을 수없이 상상하고 고대하며 살았던 사춘기 시절이었다. 2017년 인터뷰 때 티 내지 않으려 굉장히 애를 썼다.

검정치마 ‘Antifreeze’
영원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비웃었다. 그런 제멋대로인 사람을 기다리고 사랑을 줄 사람이 있으리라고도 절대 상상하지도 않았다. 조휴일이 노래한 빙하기 속 사랑을 듣기 전까진. ‘긴 세월에 변치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 그 사랑을 기다려 줄 그런 사람을 찾는 거야’ 앞에 회의와 냉소는 천천히 녹아 사라졌다.

다크니스(The Darkness) ‘I believe in a thing called love’
2000년대 새로 태어난 AC/DC 같았던 영국 밴드 다크니스는 2003년 < Permission To Land >로 뮤즈와 스테레오포닉스를 물리치고 브릿 어워즈 ‘베스트 브리티시 앨범’을 수상했다. 코믹한 외관과 레트로에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지만, 록 앤섬(Anthem)을 찾고 있던 학창 시절의 나에게 이 곡은 완벽한 노래였다. 지금도 본능에 충실한 한 마리 야수가 되고플 때 찾아 듣는다. 심지어 제목조차 섹시하다.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 ‘God save the queen’
그땐 아직 친구들끼리 밴드를 만들곤 하던 시절이었다. 학창 시절 합주실 대여비가 없어 학교 방송실을 전전하던 우리 밴드는 결국 14층짜리 아파트 옥상에서 대부분 나날을 보냈다. 지금이야 비틀스의 해체 전 마지막 공연처럼 멋진 추억이라 기억하지만 당시에는 격렬했다. 아파트 옥상 펑크 록 전사들은 동네 산에 위치한 학교를 올려다보며 거친 육두문자와 함께 섹스 피스톨스, 그린 데이, 클래시, 위저를 노래했다. 우리가 그토록 조롱하던 ‘Queen’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훗날 대통령에 오르나 탄핵당하고 만 독재자의 딸도 아니었다. 그저 악명 높던 학교 담임 선생님이었을 뿐.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Killing in the name’
목숨처럼 아꼈던 3R 밴드가 있다. 라디오헤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그리고 레드 핫 칠리 페퍼스다. 과장 하나 안 보태고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은 그야말로 인생을 지배했다. 잭 드 라 로차의 혁명 선언문은 역사와 사상을 가르쳤고, 기타 발명가 톰 모렐로의 기상천외한 소리는 과학과 기술을 탐구하게 만들었다. 완벽한 신문물에 감격한 나는 ‘X까. 네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테다’라는 노랫말에 하루 종일 머리를 흔들어댔다. 그 때문이었을까. 스스로를 ‘과격한 혁명가’라 생각했던 스무 살 시절, 첫 이즘 회의 시간에서 나를 ‘극좌’로 선언하는 실수를 범하고 만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Give it away’
악기를 잡은 녀석들에게도, 랩 좀 한다는 녀석들에게도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영웅이었다. 앤소니 키디스의 난해한 노랫말을 해석하는 것이 고역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존 프루시안테와 플리는 악기로 기인 열전을 선보였고 채드 스미스의 통쾌하고 그루비한 드럼은 속을 뚫어 놨다. 모든 앨범을 다 갖고 있고 사랑하지만 < Blood Sugar Sex Magik >이 최고고, ‘Give it away’를 들으면 언제 어디서라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

킬러스(The Killers) ‘Jenny was a friend of mine’
2019년 킬러스의 글라스톤베리(Glastonbury) 공연 영상을 보다 괜스레 눈물이 났다. 스트록스, 프란츠 퍼디난드, 인터폴, 폴 아웃 보이, 킨… 밀레니얼 록 밴드들의 음악이 나의 모든 추억과 일상 곳곳에 파고들어있는 탓이다. 짙은 안갯속 희미한 불빛이 밝아오듯 황홀히 시작하는 ‘Jenny was a friend of mine’은 지금도 여전히 마음 깊은 곳의 소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제니는 나의 소중한 친구였다. 가끔은 치기 어렸고, 보이지 않는 먼 곳에 있었지만,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많은 것을 알려준 친구.

존 메이어(John Mayer) ‘Slow dancing in the burning room’
새벽 6시 끝없이 하얗게 쌓인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걸어 학교로 가는 광역 버스를 타러 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마치 위저의 < Pinkerton > 앨범 커버가 생각나는, 그 추운 길에 존 메이어가 있어 다행이었다. 음악도 잘하고 외모도 출중한 데다 새 시대 기타 히어로까지 다 하다니. 반칙이라 생각하며 시디 플레이어에 < Continuum >을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모든 정규 앨범을 다 사놓은 상태였지만 그 중에서도 자주 손이 갔다. ‘Slow dancing in the burning room’의 기타 플레이와 우아한 솔로는 단연 일품이었다. 수능 시험이 끝난 후 내가 받은 첫 생일 선물 역시 존 메이어의 라이브 앨범, < Where The Light Is >였다.

샤프 ‘연극이 끝난 후’
가사, 선율 모두 완벽한 곡.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면 이곳에 기대어 쉬었다.

더 클래식 ‘여우야’
어린 시절에는 ‘마법의 성’을 듣고, 어른이 되어서는 이 곡을 들었다. 도입부만 들어도 행복해지는 마법이 있다.

이한철 ‘슈퍼스타’
불독맨션 때의 음악도 좋지만 희망찬 노랫말과 어쿠스틱 기타, 밝은 이한철의 보컬을 듣고 있으면 무슨 일이든 잘 될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유 ‘푸르던’
싱그러운 여름 내음을 품고 있는 노래. 내 인생의 10곡에 포함하기엔 다소 역사가 짧은 곡이지만, 오래 알고 지냈다고 다 각별한 사이인 건 아니니까. 열대야로 잠 못 이루던 여름날의 추억이 담겨있다.

길버트 오 설리번(Gilbert O’Sullivan) ‘Alone again (Naturally)’
비 내리는 날이면 듣는 노래 중 하나다. 지극히 우울한 노랫말에다 별다른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보컬이라 왠지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것만 같았다. 1972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연말 차트에서는 2위를 했다)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나와 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안심(?)한 기억이 난다. 비 제이 토마스의 ‘Raindrops keep fallin’ on my head’와 이 곡 중 뭘 해야 할지 고민됐지만, 이걸 들어야만 비로소 비가 온 것만 같다.

드바지(DeBarge) ‘I like it’
도회적인 드바지 음악은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다. 인트로만 듣고도 ‘이 곡은 끝까지 들어도 좋을 거야’라며 확신했던 기억이 난다.

피보 브라이슨(Peabo Bryson) ‘If ever you’re in my arms again’
디즈니 영화의 영향으로 남녀 듀엣곡을 즐겨 들었다. ‘Beauty and the beast’로 피보 브라이슨을 알았고 그다음에는 ‘Tonight, I celebrate my love’와 이 곡을 만나게 됐다. 셋 다 영롱하고 낭만적인 팝이다. 돌이켜보니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정말 좋아하나 보다.

맥스웰(Maxwell) ‘Sumthin’ sumthin”
네오 소울 하면 떠오르는 뮤지션은 많지만, 맥스웰의 애드리브와 잊을 수 없는 베이스 연주 두 가지만으로 이 곡을 선택할 이유는 충분하다.

구 구 돌스(Goo Goo Dolls) ‘Iris’
밴드를 세상에 알린 곡. 영화 < 시티 오브 엔젤 >에 쓰여 유명해졌다고는 하지만, 나는 후바스탱크의 ‘The reason’과 비슷한 느낌의 노래를 찾아 떠돌던 중 발견하게 됐다. 먼저 알고 있던 곡이 아닌 ‘Iris’가 인생곡 리스트에 오른 이유는 단순하다. 딱 내 취향이었기 때문이다.

에드 시런(Ed Sheeran) ‘Thinking out loud’
데미안 라이스를 좋아했던 내게 에드 시런의 등장은 반가움 그 자체였다. 신기한 건 낯선 여행지에서 어느 밴드의 라이브를 듣고 그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멜로디가 좋아서 고이 기억해두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 곡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