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 부평과 함께 하는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이곳 출신의 여러 뮤지션들이 자리해 자신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스물여덟 번째 주인공은 록밴드 부활의 버팀목인 드러머 채제민이다.

호인(好人). 35년 경력의 베테랑 드러머 채제민이 준 인상이다. 따스한 언행과 호탕한 웃음에 분위기가 밝아졌고 이야기도 술술 풀려나갔다. 1987년 강변가요제 수상작 ‘매일 매일 기다려’의 주인공 티삼스로 데뷔한 이후 신승훈과 김건모의 세션 드러머로 활약해온 그는 1998년 동경했던 록밴드 부활에 가입했다. 1년간의 짧은 활동과 안타까운 이별. 하지만 명곡 ‘Never ending story’가 수록된 여덟 번째 앨범 < 새, 벽 >에 참여했고 그 이후 20년째 부활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고 있다.
채제민에게 인천은 어떤 의미일까? 나고 자라며 막대한 음악적 영감을 받음과 동시에 십여 년간 드럼 학원을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한 곳. 배움과 가르침이 공존했던 인천은 음악 인생의 터전이자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 ‘재능형이 아닌 철저한 노력형’이며 ‘가늘고 길게 음악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땀 흘린 자의 무게감과 겸손이 묻어 나왔다. 올해 각종 페스티벌에서 펼쳐질 부활의 공연에 흥분된다는 그는 현재 대학교 겸임 교수와 인터넷 라디오 디제이 등 다방면에 긍정적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이즘과의 인터뷰를 기억하는지?
기억이 생생하다. 2005년이니 벌써 17년이 지났다.
원래 인천에 거주하시는지?
인천 토박이다. 태어난 곳은 율목동이고 지금은 청라에 산다.
부활 활동은 몇 년째인가?
1998년에 들어와서 6집 < 理想 시선 >부터 활동하고 있으니 25년째이다. 리더 겸 기타리스트 김태원 다음으로 오래된 멤버이다.
2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활의 드러머로 활약하고 계시는데 롱런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 어렸을 적 헤비메탈을 들을 때도 멜로디컬한 음악을 선호했고 자연스레 부활의 팬이 되었다. 부활 특유의 서정성에 매혹되었달까? 이승철 밴드에서 세션 활동을 하던 시기 키보디스트 최승찬이 부활을 소개해 준 계기로 가입하게 되었다. 워낙 오래전부터 흠모해왔던 분들이라 따로 굳은 마음을 먹지 않아도 오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7집 < Color > 은 참여하지 않았다. 재합류 이후 8집 < 새, 벽 >에 수록한 ‘Never ending story’가 성공하며 완전한 멤버십을 확립했다고 보이는데 그동안 가장 즐거웠던 때는 언제인가?
뻔한 답변이 될 수도 있지만 역시 2002년 ‘Never ending story’의 성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실 처음에는 반응이 오지 않았다. < 윤도현의 러브레터 >에서 이 노래를 연주하다가 보컬 이승철이 감정에 북받쳤는지 눈물을 흘렸는데 아마 뮤지션으로서 승패의 갈림길이 될 수 있는 시험대로 여긴 것 같다. 이 일을 기점으로 봐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곡과 앨범에 대한 인기가 대폭 상승해 50여 개의 도시를 돌며 순회공연했다. 얼핏 듣기론 곡이 교과서에도 수록됐다고 들었다. 감사한 일이다.
일찍이 부활을 좋아하셨다고 했는데 언제부터였는가?
부활의 인천 시민회관에서 공연에 간 적이 있다. 나는 당시 티삼스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부활을 흠모했던 것 같다. 시나위도 그렇고 백두산도 좋아했지만 감성을 자극하는 부활의 음악을 선호했다.
*티삼스: 1987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매일 매일 기다려’로 동상을 수상한 캠퍼스 밴드

부활 활동과 후학 양성을 병행했다. 새로운 활동 분야를 개척했다고 볼 수 있는데 계기는 무엇인가?
‘필 음악학원’이라는 드럼 교습소를 1990년대 초중반에도 운영했다. 인천 출신 뮤지션들이 꽤 많이 거쳐 간 곳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많은 보람을 느꼈다.
레슨할 때 주요 포인트는 무엇인가?
기본적인 루디먼트(Rudiment)을 가르친다. 각 친구의 특성을 유심히 관찰해 그쪽을 특화하려 한다. 모든 노래를 잘 소화하기는 어렵기에 빠른 곡을 좋아하고 잘하는 친구라면 그 장점을 살리도록 도와준다.
*드럼 루디먼트(Drum Rudiment): 더욱 확장되고 복잡한 드럼 패턴의 기초를 형성하는 비교적 작은 패턴들의 모음
여전히 강의하고 있는지?
백석 예술대학교의 겸임 교수다. 실용음악과에서 강의하면서 밴드 앙상블과 합주를 지도한다. 강의를 열심히 하면서도 밴드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노력한다.
교육자의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것을 강조하는지?
마음속 행복을 가장 강조한다. 음악을 비롯해 무엇이든 자발적으로 원하는지가 중요하다. 마음이 시키지 않으면 즐겁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기 싫은 공부 등 떠밀면 더 잘 안 하게 되듯 음악도 마찬가지다.
드러머로서, 또 교육자로서 영화 < 위플래시 >를 보았는가? 감상이 궁금하다.
감명 깊게 본 영화 중 하나다. 외국의 뮤지션은 물론이고 영화 및 각종 예술 작품들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 위플래시 >같은 음악영화들뿐만 아니라 음악가의 일대기를 그린 외국 영화들을 보면 배우와 실존 인물 간 싱크가 거의 완벽할 정도로 맞아떨어진다.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연습했으리라 생각한다. 가혹한 가르침은 지양해야 하겠지만 스틱을 들 만한 힘이 있다면 계속 노력해야 한다.

채제민 드럼이 가진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레이드 백(Laid Back)이다. 같은 리듬을 쳐도 약간 뒤로 밀어 안정감을 준다. 정박의 템포에서 약간씩 빨라지는 습성의 드러머도 있고 느려지는 사람도 있는데, 그 안에서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야 한다. 점점 가속도가 붙는 연주자는 신나는 곡에 강하지만 발라드를 연주할 때는 깊이가 부족하다. 저 같은 경우에는 약간 뒤쪽에 붙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서정적인 부활 음악에 잘 맞아떨어진다. 반면 신나는 음악에서는 부족한 면도 있다.
레이드 백(Laid Back): 리듬을 정박보다 조금 뒤로 밀며 그루브를 만드는 것.
최근 감명 깊게 본 드럼 연주가 있는지?
시베리아노(Estepario Siberiano)라는 사람이다. 결코 세계적인 드러머는 아니지만, 구독자가 60만이 넘는 유튜버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드럼을 연주하다 하나의 스타일에 치중하기 마련인데 시베리아노라는 두 가지 모두를 훌륭하게 해낸다. 그의 일과를 영상으로 봤는데 종일 연습만 하더라. 굉장한 연습량을 통한 결실이라고 느꼈고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렇다면 연주자로서 훌륭한 뮤지션은 연습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보는가? 아니면 어느 정도는 타고난 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는 연습형이다. 타고난 재능이 하나도 없다. 고등학교 때까지 운동하다가 그만두고, 친구이자 밴드 사라하의 기타리스트 인재홍의 합주실에 따라갔다. 그렇게 시작한 음악이 너무 좋았다. 당시에는 하루에 10시간씩 연습했다.

부활 25주년을 한번 정리하자면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17년 전 인터뷰했을 때는 주로 어려움을 토로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버티는 것’의 가치를 말하고 싶다. 예전만 해도 모든 걸 버리고 음악에 올인하는 문화였다. 요즘은 좀 바뀌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학원을 운영했던 것도 음악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워낙에 인생의 모토가 ‘가늘고 길게’이다.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드러머로서 음악 인생에 영향을 많이 준 앨범이나 아티스트가 있다면?
내가 하는 음악과 느낌이 다르지만, 토토를 정말 좋아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제프 포카로는 리듬 하나로 세계를 평정했다. 완전히 상반된 스타일을 가진 머틀리 크루의 토미 리도 들고 싶다. 기본기가 좋을 뿐 아니라 퍼포먼스가 정말 멋있었다. 밴 헤일런의 음악도 많이 들었고 ‘음악을 해야겠다’라고 마음먹게 해준 밴드는 저니다.
언급한 밴드 중에서 채제민의 인생곡을 뽑자면?
머틀리 크루의 ‘Looks that kill’과 ‘Too young to fall in love’를 들겠다.
진행: 임진모, 염동교
정리: 염동교
사진: 염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