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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M X 부평구문화재단] #3 김구라, 그리(GREE)

“어렵겠지만 기본 중의 기본인 음악을 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웹진 이즘(IZM)이 인천 부평구 문화재단과 함께 하는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는 과거와 현재의 아티스트를 포괄해 접근하는 인터뷰 기획이다. 비와이와 홍이삭을 잇는 세 번째 인터뷰 주인공은 스타 방송진행자 김구라와 그 아들인 뮤지션 그리(GREE)다.

가장 잘나가는 방송 예능프로그램 진행자인 김구라는 코미디 뿐 아니라 음악에 대해서도 풍부한 지식과 일가견을 가진 인물로 유명하다. 대중스타로 떠오르기 전에는 팝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방송을 통해 알려진 대로 또 1998년생 그의 아들 동현은 ‘MC그리’란 예명이 말해주듯 음악의 길을 걷고 있다.

음악광 아버지와 뮤지션 아들. 둘과 음악 얘기를 나눌 기회를 마련했다. 음악을 바라보는, 부자간의 비슷한 그러나 세대차로 어쩔 수 없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시각을 기대했지만 둘은 합(合)의 장면을 연출했다. 두 사람은 음악 관련 대화에 즐겁게 그리고 성의 있게 임했다. 김구라는 “아들의 진로와 행보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어렵겠지만 기본 중의 기본인 음악을 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이제 장르범주를 넘어 음악적 보폭을 넓히겠다는 의지를 보인 아들(김동현)은 최근 앞에 MC를 떼어냈다면서 “근래 음악에 다시 재미를 붙였다”고 했다. 둘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다루는 또 다른 일정을 모두 인천 부평시장 근처 카페에서 진행해 이즘과 부평문화재단의 기획에 부응했다. 김구라는 인천맨임을 강조했다. 인터뷰 시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인터뷰에 응해줘 감사하다. 그리(김동현)가 음악의 길을 걷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없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아버지는 방송에서 “나를 잡아주고 있는 것은 팝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힐 만큼의 음악광이다. 그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밑에서 자랐는데 음악과 관련해 아버지의 인상은.
그리 : 사실 제가 힙합을 했지만 아빠는 아시다시피 록입니다. 당연히 옛날부터 제게 록 그리고 서구 팝을 많이 들었지요. 프린스, 마이클 잭슨 등등. 아버지가 그런데 어느 날 에미넴(Eminem) 노래를 들려주셨어요.

에미넴? 나중 래퍼가 되는 데 이 부분이 영향으로 작용했을 것 같다. 처음 들은 에미넴 노래는 뭐였나?
아빠의 영향, 당연하죠. 노래는 영화 <8 마일>의 ‘Lose yourself’였어요. 이 곡을 접하면서 랩에 대한, 음악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그걸 시작으로 다른 래퍼들의 음악도 찾아 듣고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막상 음악세계 활동이 만만치 않다는 걸 익히 알지 않는가. 아들이 음악 쪽으로 가는 걸 쉬 동의하지 못했을 듯한데…
구라 : 나는 차 안에서 항상 음악을 튼다. 사실 내가 음악을 틀면 가족들이 싫어한다. 동현이 엄마는 음악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럼에도 동현이한테는 많이 들려줬다. 팝도 많이 들려주고. 가끔 래퍼 흉내도 내주고. 나의 경우 음악적으로 이모의 영향이 컸다. 이모가 팝을 많이 좋아해서 덩달아 나도 팝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동현하고 같이 방송하고 다니면서… 뭐 사실 그 나이 때 되면 자동으로 음악에 빠지게 되는 것 아닌가. 그 무렵 랩을 하겠다고 하더라. 사실 처음에 반대했는데 굳이 하겠다는 거다. 그런데 나는 별로 아들의 진로에 간섭을 하지 않는 편이다.

결국 가수가 업이 됐다. 아버지로서는 아들이 직업적으로 음악을 하는 게 기쁜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생각이 많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20대 초중반까지 좋아하는 일도 못 찾고 방황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나. 동현이는 본의 아니게 방송을 하게 됐고, 길도 찾고 그랬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음악 안 하고 연기 하고 그랬으면 이도저도 아니었을 것 같다. 이쪽으로 뻗어가는 게 그래서 좋다.

아버지는 음악을 좋아하고 아들은 음악에 뜻과 방향을 잡고 가는 게 좋아 보인다.
아직 돈을 벌고 하지는 않지만, 자기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뭐 조금 능력이 있으니 도와주고.

이 상태에선 아버지의 위치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아들이 어느 정도 입지를 꾸리려면 아버지가 도와줘야할 것 같다.
그리 : 실제로 많이 도와주고 계십니다. 지금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나중에 두 배로 갚을 생각이에요.
구라 : 나는 또 그렇게 생각하는데.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돈 버느라 스트레스 많이 받고, 저도 그랬지만 공황장애도 겪고 그렇지 않은가. 나도 옛날에 무명시절이 있었지만 안 될 때의 스트레스와 잘 될 때의 스트레스는 또 다르잖아요. 지금처럼!

‘그리’는 혹시 아빠가 쓴 음악 글 봤는지. 아빠가 음악을 그냥 취미 수준으로 듣는 게 아니라 듣는 걸 넘어 평론가처럼 글까지 쓰셨다. 한번 찾아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책을 내셨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글을 잘 안 읽습니다(웃음).

1990년대 말 잡지에 팝 칼럼니스트로 기고도 했고 얼마 후 김현동 인터넷방송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데….
구라 : 조선일보에 1년 정도 연재도 했다. 말씀하신 것처럼 잡지에도 쓰고. 음악 글 쓰는 게 꿈이어서. 그런데 글을 쓰는 거 즐겁기보다는 스트레스가 엄청나고 그 때문에도 현재는 조금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언젠가는 다시 필자로 돌아갈 수 있으려나. 하지만 음악과는 뭔가 연이 맺어진 게 있는 것 같다. 본의 아니게 요즘 음악적인 유튜브 방송을 많이 하고 음악관련 내용이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니는 걸 보면 운명적인 관계 같고 그렇다.

이즘과 함께 하는 부평 문화재단 < MEETS 시리즈 >는 가수 관련 기획인데 음악광이고 아들이 음악을 하고 있어서 뮤지션 범주 내에 섭외했다. 먼저 방송에서 고향인 인천 얘기를 자주하고 인하대 출신이라는 걸 강조한다. 인천과의 연결고리가 분명해 보인다.
아시다시피 고향이 인천이다. 그런데 본적은 서울이다. 어쨌든 본적은 서울이지만, 태어나기는 인천에서 태어났다. 형은 1968년도에 태어났고 (김구라는 1970년생이다) 그때 우리가 살던 곳은 가정동인가, 대우자동차 사원아파트였다. 아파트가 없던 시절이었는데 난 그 5층짜리 아파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까지 살았다. 이후 간석동에도 살았고 신혼집을 계양구 계산동에서 차렸고 완벽한 ‘인천맨’이다. 인천은 나의 홈타운이다. 그리고 내 방송 타입이 신변잡기 이런 이야기도 많이 하는 편 아닌가. 그래서 인천 얘기가 많다.

서울이 본적인데도 굳이 인천출신임을 강조한다. 고향을 ‘서울’이라고 하고 싶지 않은가. 그리고 이것도 궁금한데 성공하고 나서 많은 유명인사들이 그런 것처럼 서울로 가지 않았다. 인천 아니면 경기도에 남아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구라 : 대학 졸업 후에는 인천이 아니라 김포다. 지금은 일산이고… 서울로 가지 않는 이유라… 글쎄 동현이 엄마가 소위 말해 교육에 집중하지 않는 편이다. 김포에 식구도 있고 하니깐. 동현이 엄마가 (서울로) 가자고 했으면 갔을 것 같다. 또 딱히 서울 행 의지도 없었다. 나중 집 분양도 일산 쪽에 받게 되었고 서울로 가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여기가 좋은데 뭘..

‘그리’는 인천 기억이 어떠한가.
솔직히 없어요. 태어나자마자 이사를 갔으니까요. (어떤 이미지인지 묻자) 아버지의 실질적인 터전 자체가 인천이고 많은 얘기를 들어서 거의 제2의 고향이라고 할까요. 산 기억은 없지만 아주 친근해요. 그리고 아직 할머니가 인천에 사시니까요. (옆에서 아버지 구라는 “아마 얘는 인천에 대해서 구체적인 이미지는 없을 거예요”라고 말을 붙였다)

서울은 어떻게 생각 되는지.
(구라) 복잡해! 솔직히 약속도 잘 안 잡는다. 일 하는 곳이 다 거기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에서 오후7시에 약속이 있다 그러면 여기서 4시에 출발해야 한다. 일산에서. 짜증이 난다. 강남이 또 사실 문화의 중심인데, 난 별로 동경하지 않는다. 내가 보면 그렇더라. 많은 일산 사람들이 다 서울로 가려고 한다. 그게 상향이동인가 (웃음).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복잡하고 차도 많고 그렇다.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에게 기대를 하는 게 있다. 사람은 피도 환경도 속일 수 없다. 아버지가 록과 팝에 음악에 박식하고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음악을 좋아하니깐 분명 음악유전자가 아들에게 들어와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해도 음악적인 게 언젠가 섞여 도드라지게 마련이다. 남들이 못할 걸 하지 않을까. 잘될 거라고 본다.
감사합니다. 요즘은 브릿팝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라디오헤드(Radiohead)나 그런 거요. 음악을 폭넓게 접하고 있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음악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도 아버지 덕분이기도 하고요. 팝도 많이 듣고요. 제가 힙합이미지가 강한데요, 장르에 제한되고 싶지 않아서 활동이름 MC 그리에서 MC를 아예 빼버렸어요. 래퍼가 아니라 대중가수로 가는 거죠.

요즘 듣는 음악은
그리 : 라우브(Lauv) 그리고 레이니(LANY), 바지(Bazzi)… 노래를 하고 있어서 그런 가수를 많이 듣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싱잉(노래) 수준은 어떻게 보는지
구라 : 아무래도 전문 싱어는 아니니깐. 싱어는 제가 <복면가왕>을 하다 보니까 워낙 노래 잘 하는 사람도 많고. 재능의 측면에서 한번은 탁재훈씨가 제게 그러더라고. ‘솔직히 넌 럭키한 거야. 네가 노래를 잘 하니 춤을 잘 추니?’ 처음에는 좀 기분이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맞는 얘기지. 그런데 희극인이라는 엔터테이너 관점에서 어떻게 보면 뭐랄까 제가 판을 조금 꿰뚫어보는 그런 능력이 있구나 생각이 든다. 그것 때문에 제가 지금까지 온 거 아니겠나.

언젠가 김태원씨도 그랬다. 기타를 잘 안 치길래 ‘기타 연습 요즘 왜 안 해요?’ 하니까 ‘잘 안 해, 기타는 돈이 잘 안 돼’. 농담 식으로 얘기한 건데 결국 자신은 기타리스트보다 음악 전반을 다루는 컴포서(composer, 작곡가)라는 거지. 그렇게 동현이도 노래를 잘하는 것보다 작곡을 하고 자기노래를 표현하는 정도만 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게 어렵긴 하겠지만…

‘그리’는 이제 음악에 분명한 입지를 새겼다. 후회는 없는지.
후회 안 합니다. 슬럼프는 오지만.. (‘언제 슬럼프가 왔어요?’ 물으니) 20살 때쯤이었는데. 음악을 듣고도 느낌이 안 왔어요. 감이 전혀 안 잡혔습니다. 레퍼런스를 잡아야겠다, 이런 풍으로 만들어야겠다. 그런 감이 도대체 오지 않는 거예요. 그때 나온 노래가 2019년 초에 발표한 곡 ‘벨튀’(feat. 서사무엘, 가은)였죠. 레트로였어요. 조금 재미없게 음악을 했다고 할까요.

그럼 슬럼프에서 일어선 때는
그리 : 작년 가을 겨울쯤. 슬럼프가 조금 길었어요. 저 스스로 문제 때문이었죠. 지금은 조금 음악에 재미를 찾았어요. 만나는 사람도 바뀌고. 조금 더 나아졌지요.

음악의 힘은 뭐라고 생각하나
(그리) 음악은 애증인 것 같아요. 잘 나올 때는 너무 기분이 좋고 날아갈 것 같은데, 안 나오고 그러면 스트레스 받고 엄청 밉죠. 사람들이 욕하면 회의감마저 들고요. 그러다가 또 만들 때는 즐겁고.. 그 과정이 재미있어요.

아버지에 대한 헌사를 한다면
얼마 전에 헌정 곡도 낸 걸요. ‘HIM’이라고. 원래 아버지에게 어버이날 선물로 드리려고 준비한 건데 결과적으로 못해드렸어요. 어버이날에 공개를 해야겠다 싶었는데 유출이 되는 바람에 4월에 발표 돼버린 거죠. (아버지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을 절절이 담은 이 노래에는 중간에 ‘사실 난 벌써 미안해져/ 그대가 내게 준만큼은/ 그대에게 평생 못 줄 텐데…’라는 가사가 나온다)

다시 한 번 묻는데 아들이 음악 한 거에 대한 아버지의 진짜 솔직한 심정은.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본의 아니게 나 때문에 방송에 뛰어들었고, 나의 관점에서 보면, 대중문화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들 두루두루 하지 않은가. 그런데 음악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음악이라는 베이스를 깔고 자기 일을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아들이 엔터테이너가 되기를 원하는가, 뮤지션이 되기를 원하는가.
엔터테이너가 낫지 않을까. 완벽한 뮤지션보다는. 요즘에는 음악 하는 사람들도 다 엔터테이너가 되고 있지 않나. 추세가 그렇다. <라디오스타> 함께 했던 윤종신도 그렇고. 너무 뮤지션으로 국한되어있지 않는 게….

한국 예능에서 음악이 가지는 위치는. 전에는 절대적이었던 음악이 요즘에 갖는 위치를 어떻게 판단하나.
구라 : 음악도 생업이지 않나. 아무래도 쉽지 않은 것 같다. 방송도 유튜브, 넷플릭스 시대에 또 코로나 사태로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광고가 안 돼 한 달에 몇 억씩 손해 보는 방송도 많고. 그것처럼 음악도 너무 어렵다. 끊임없이 소비가 될 테지만 옛날처럼 음악 독자적으로 강한 위상을 갖거나 절대적이지는 못할 것으로 본다. 그래서 타(他) 여러 장르들과 융 복합하는 그런 다재다능한 뮤지션이 흥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아들이 엔터테이너가 되기를 원하는 건가.
뮤지션만 하기는 쉽지 않다는 거다. 그 길은 쉽지 않고. 그러니 편견을 가지지 말고 여러 장르에 실력과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게 시너지가 될 수도 있으니.

‘그리’는 ‘브랜뉴 뮤직’에 소속되어 있다. 회사가 그리를 보는 입장은 어떤가. 본인은 회사에서 여기서 어떤 포지션을 원하는지. 좀 전에 대중노선을 취한다고 했는데, 회사와 잘 정돈이 된 건가.
브랜뉴 뮤직은 K팝도 많이 하고 방송에도 신경 쓰고 실제로 많이 해요. 저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음악적으로 제가 하고자 하는 걸 반대하는 그런 것도 없고요. (제가) 방송하는 것도 좋아하고. 호흡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떨 때는 김구라 아들이라는 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솔로 스탠딩은 필수다. ‘그리’는 음악인이든 연예인이든 간에 본인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뭔가. 성공인가 행복인가.
(단칼에) 행복!!! 그냥 지금처럼 하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공에 대한 욕심이 들지 모르죠, 아빠도 영원히 방송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저도 어쨌거나 혼자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열심히 살아야죠. 그게 행복인 것 같습니다.

참 구라씨는 좋은 소식이 있지 않나.
같이 지내는 친구가 있다.

어느 정도 얘기가 오가고 있는지.
식구들끼리 밥 먹으면서 얘기 했다. 물론 방송에서는 아직 손사래를 좀 친다. 왜냐면 나이가 또 오십이 넘었으니깐. 나도 나이를 먹으니 옛날 선배들 말이 와 닿더라. 뻔히 아는데 왜 그렇게 손사래를 치나 했다. 나도 그 나이가 되니깐, 아이도 방송을 같이 하고, 연예인이고, 옛날에 가족 예능도 많이 하고.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이혼한 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이제 와서 막 ‘결혼해서 좋습니다!’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나의 가치관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또 같이 있는 친구가 그런 걸 좋아하면 모르지만 그 친구도 알려지는 거 원치 않고 그렇다. 강수진 김국진 같은 경우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랑 같이 지내는 친구는 그렇지 않으니. 알려지지도 않은 사람이고. 서로 공개를 원치도 않고. 그래서 그런 얘기를 안 하는 거다. 이해를 바란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무엇보다 ‘그리’가 잘 되기를 바라고 이렇게 어려운 시간 내줘 감사하다. 아들은 성공해서 나중에 꼭 이즘과 인터뷰 했으면 좋겠다.
(구라) 그래야지… (그리) 저도 그랬으면 바랍니다.

진행 : 임진모, 김도헌, 이홍현
정리 : 임진모
사진 : 김도헌
기획 : 부평구문화재단 신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