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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스윔래빗 인터뷰

새하얀 언어로 써내려 간 자기소개는 유연하면서도 견고했다.

2017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스윔래빗(swimrabbit)은 이제 첫 EP < POND >를 발표한 신예 프로듀서다. 그러나 그가 지향하는 세계와 서사, 사운드에선 풋내가 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일렉트로닉과 하우스를 기반으로 하나 이번 앨범에선 차분한 앰비언트(Ambient), IDM(Intelligent Dance Music)을 지향하며 작은 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하여 큰 그림을 그려나갔다. 언뜻 어려울 수 있는 장르지만 대중적 감각을 놓치지 않아 거부감도 최소화한다. 

오래도록 꿈꿔온 자신의 작은 유토피아를 숲 속 자그마한 ‘연못’으로 내놓은 스윔래빗과의 인터뷰 내내 푸른 숲 속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순수, 평화, 자연, 기도 등 새하얀 언어로 써내려 간 자기소개는 유연하면서도 견고했다. 

IZM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한다. 

안녕하세요, 레이블 크래프트앤준(CRAFT AND JUN)의 스윔래빗입니다.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2019년 인터뷰한 제이클레프(Jclef), 프로듀서 콕재즈(CokeJazz)와 함께 크래프트앤준에 합류했다. 

김백준 대표님과 미팅을 거쳐 들어왔는데, 딱딱하고 사업적인 회사 이야기 대신 음악 이야기를 많이 해서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신통방통하다’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장르에 대해 소통하게 되었다. 어려운 고민 없이 합류하게 됐다.

키드 밀리, 김아일 등 힙합 아티스트와도 협업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전자 음악을 추구하고 이번 앨범은 흔치 않은 앰비언트, IDM 스타일을 담았다.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린 시절 음악을 많이 접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스스로 입문하게 된 케이스였다. 처음에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카니예 웨스트 등 힙합 음악을 많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고3 때다. 다 똑같이 ‘수능특강’ 펴고 공부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이후 대학에 입학하면서 닌자 튠(Ninja Tune), 브레인피더(Brainfeeder) 등 다소 서브컬쳐 스타일 레이블의 음악을 많이 접하게 됐다. “이거다!” 싶었다. ’보컬이 없는데 멜로디 만으로도 이렇게 좋을 수 있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전자 음악에 입문하게 되면서 지금 내 스타일로 굳어진 것 같다.

크래프트앤준은 죠지, 제이클레프 등의 아티스트들로 알려져 있는데, 스윔래빗은 소속사의 첫 일렉트로닉 아티스트다. 부담은 없었나.

스스로 긴장하긴 했다. 걱정도 있었고. 상업적인 성과를 완전히 무시할 순 없으니 말이다. 회사의 많은 분들께서 ‘멋지다’고 격려를 많이 해줬고 스스로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되 팝적인 요소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첫 EP < POND >를 발표했다. 앨범을 ‘불안정과 환상 사이의 짧은 순간’이라 소개했는데.

음악을 만들 때 찰나의 순간을 좋아한다. 특히 어떤 시기를 담아내는 것, 21살부터 22살까지, 어떤 해부터 몇 년 동안, 이런 식으로. < POND >는 작년 초부터 앨범을 작업하며 굉장히 불안정했던 시기, 그럼에도 안정을 갈망했던 순간의 기록이다. 그때의 내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평온하고 싶다, 평화롭고 싶다’였는데, 어느 날 친한 친구 한 명이 그 얘기를 듣곤 ‘평화가 뭔데?’하며 되묻더라. “네가 평화롭다 해도 바로 옆에 고통받는 친구가 있다면, 그 상황도 평화로운 걸까?”.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평화’라는 큰 담론, ‘환상’을 이야기하기엔 아직 미성숙하단 걸 느꼈다. 그래서 앨범의 시선을 ‘불안정’으로 좁혔다. 그렇게 ‘불안정과 환상 사이’라는 설명을 붙이게 됐다. 

설명을 듣고 나니 7곡, 27분의 앨범이 작게 느껴진다. 처음 작품을 설계할 때의 스케일은 더 크고 깊었을 것 같다.

맞다. 플로팅 포인츠(Floating Points), 포 텟(Four Tet) 같은 스타일의 음악을 염두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첫 시도다 보니 기술적인 한계도 있었고, 정규 앨범은 스스로 아직 이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규모를 줄이고, 캐주얼한 느낌을 더했다. 

플로팅 포인츠, 포 텟의 느낌도 있고 보컬이 더해진 곡은 마운트 킴비(Mount Kimbie), 앰비언트 스타일은 니콜라스 자(Nicholas Jaar)가 연상된다. 말이 나온 김에 평소 즐겨 듣는 음악을 소개해줄 수 있나. 

앨범을 만들 때 많이 들었던 아티스트는 플로팅 포인트, 마운트 킴비, 제이미 XX(Jamie XX),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 시리우스모(Siriusmo) 등이 떠오른다. 그런데 평소 편하게 듣는 음악은 또 다르다. 브로큰 벨스, 테임 임팔라, 비치 하우스 등의 밴드 음악부터 홈쉐이크(Homeshake) 같은 베드룸 팝까지를 많이 듣는다. 지향하는 아티스트로는 플룸(Flume), 디스클로저(Disclosure) 등 대중적인 감각의 뮤지션을 좋아한다.. 

IZM에서 연재 중인 ‘내 인생의 10곡’ 시리즈처럼 ‘인생 아티스트’가 있다면. 

비요크(Bjork). < Debut >은 거의 매일 듣는 작품이다. 

30분 내외의 작품이지만 < POND >에는 명확한 서사가 있다. 앨범을 듣는 독자들에게 순서대로 소개해줄 수 있나.

육하원칙에 맞춰 설명하는 게 좋겠다. 1번 트랙 ‘sync, signal, peace, strong and pure’가 나를 소개하는 인트로 격 트랙이다. 제목 순서대로 ‘자아 일치, 음악을 통해 보내는 신호, 평화, 영향력, 순수한 마음’을 상징한다. 그다음 ‘natural bath’는 ‘어디서’다. 숲 속에 덩그러니 있는 새하얀 욕조에 앉아 푸른 자연을 돌아본다고 상상하며 만들었다. 독특한 사운드로 주변 풍경을 그려봤다. 이어지는 3번 ‘shy creatures’가 ‘누가’인데, 나를 포함해서 그 숲에 살고 있는 아름다운 생명체들을 표현하고자 말랑말랑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많이 사용했다. 

흥미로운 배경이다. 나머지 요소들을 마저 소개해달라.

‘length’는 ‘언제’가 되겠다. 사전에서 이 단어를 검색했을 때 ‘시간의 길이’라는 뜻도 있다고 해서 흥미로웠다. 불안, 감정 기복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던 과거의 내 모습을 담고자 했는데, 피아노 연주를 반복하며 여러 악기 소리가 들어왔다 빠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사라졌다 생겼다 하는 감정을 표현한 거다. 나머지 ‘무엇을, 어떻게, 왜’를 집약한 트랙이 ‘hiss’다. 원래는 ‘작은 소리’라는 뜻인데, 내가 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내는 작은 소리를 담을 수 있는 단어라 생각했다. 앞서 소개한 친구의 말처럼 누군가에겐 내 기도가 불편할 수 있기에, 홀로 작고 조용히 염원하고 싶었다.

‘묵상’의 단계에서 육하원칙이 마무리된다면, 이후 트랙에선 무엇을 이야기 하나. 

‘hiss’까지가 < POND >라는 유토피아 안의 감정이고 ‘half awake’부터는 현실로 돌아온 상태다. 소리도 따라서 어둡고 거칠어진다. 이후 ‘redeem me’로 마무리를 하는데, 아무 고민과 걱정 없던 어린 시절의 내가 커가면서 그 순수함을 조금씩 잃어간다는 슬픔, 때문에 그 순수함을 돌려달라는 ‘구원’의 의미를 소리로 담으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설명을 듣다 보니 앨범은 가사가 아닌 ’ 소리’로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보컬이 있는 곡의 경우 모두 영어 노랫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한글을 쓰지 않은 이유가 있나. 

무겁지 않으려 한다. 경배, 기도, 평화, 신호, 순수… 사운드 자체도 누군가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스타일인데, 메시지도 가볍지 않으면 부담스럽게 들릴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한글이 멋지지 않아서 쓰지 않는다’는 아니다. 내가 뭉클한 감정을 느낀 노랫말은 모두 한국어 가사였다. 이번 앨범에서만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다. 

< POND >를 통해 스윔래빗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셈이다. 앞으로 해나가고 싶은 음악, 혹은 포부가 있다면.

흔히 전자음악 하면 EDM을 생각하지만, 다운템포, 칠 아웃 등의 음악도 분명히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르라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음악이 어떻게 보면 비대중적, 언더그라운드라 묶일 수도 있지만 대중적으로도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플룸이 퓨처를 가져와 성공했고 디스클로저가 개러지와 하우스로 인기를 모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인기를 얻다 보면 ‘케이팝’이라 불리는 음악, 팝의 영역을 더 넓힐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 POND >를 듣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편의 영화 같은 작품으로 들어주셨으면 한다. ‘음악 인생의 첫 챕터’, ‘서문’ 정도로. 이 앨범이 스윔래빗을 소개하는 작품이긴 하지만 이 스타일에 머무르고 싶지는 않다. 정말 다양한 걸 많이 하고 싶다. 2020년의 스윔래빗이 어떤 감성을 갖고 있었고, 어떤 걸 하고 싶어 했는지를 담은 EP로 남았으면 한다. < POND >는 나의 자기소개서이자 청사진이다.

인터뷰 : 김도헌, 임동엽, 이홍현
정리 : 김도헌
사진 : 임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