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산울림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의 노랫말처럼 노래와 시는 가깝다. 언어의 리듬을 품은 낭독의 문학이란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근래 대중음악이 소리의 중독성에 집중하나, 아름다운 가사와 선율의 조화는 대중가요의 본질적 매력이다. 많은 이들이 김광석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시)와 이동원 박인수의 ‘향수’(정지용 시)처럼 시를 모태로 한 가요 명곡을 사랑했다.
이즘은 2023년 연간 특집으로 ‘시인과 음악’을 기획했다. 한국 문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인들의 작품 세계와 그들이 사랑하는 대중음악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삶과 예술을 향한 세계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은 이즘 독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시인의 음악’ 두 번째 순서는 예술의 본능적 설득력을 믿는 시인 김소연 이다.

1996년 첫 번째 시집 < 극에 달하다 >를 발표한 중견 시인 김소연은 < 눈물이라는 뼈 >(2009)와 < 수학자의 아침 >(2013) 등 5권의 시집과 <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2019) 등 세 편의 수필집으로 견고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시적 언어의 본능적 마력에 천착한 김소연의 시는 가로 폭이 긴 회화처럼 스르륵 펼쳐지며 보는 이를 잡아당긴다. 2018년 동료 문인들과 소규모 출판사 아침달을 설립해 ‘기준과 취향에 부합하면 등단 여부를 가리지 않고 출간!’하는 신선한 시스템을 선보인 김소연은 현재 ‘나와 투쟁하는 나’를 이야기하는 5번째 시집을 준비 중이다.
예상보다 음악 이야기가 길어졌다. 산울림과 어떤날, 비틀스를 좋아하는 시인은 음악 얘기에 어린아이처럼 눈이 밝아졌다. 십 대부터 엘피를 모을 정도로 음악에 흠뻑 빠졌던 김소연은 종종 어깨에 걸쳐 맨 기타로 간단한 곡을 쓰기도 한다. 개성파 싱어송라이터 최고은과의 합작품 < 오늘의 난 미지근하게 축제 >(2022)는 산문 낭독과 음악을 결합한 독특한 형식으로 주목받았다. 김소연과 함께한 2시간엔 세상과 사회를 보는 확고한 시선과 예술을 향한 사랑이 묻어났다.
등단 후 벌써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30년동안 시인으로 살았지만 1~2년 꼴로 시집을 발표할만큼 부지런하지는 않았다.
몇 권의 시집을 발매했는가?
1996년 < 극에 달하다 >, 2006년 <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 2009년 < 눈물이라는 뼈 >, 2013년 < 수학자의 아침 >, 2018년 < i에게 >까지 총 5권 발매했다.
시집을 내지 않는 동안에는 무엇을 했는가?
대학이나 문화센터에서 시 창작과 관련한 강의를 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다. 에세이도 여러 권 썼다.
그러면 직업란을 에세이스트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웃음)
에세이스트는 일종의 ‘부캐’다. 시만 쓰면서 전업으로 살기가 경제적 측면에서 어렵기 때문에 산문을 시작했다. 시는 언어에 대한 극단적인 감각을 갖고 쓰기 때문에 에세이를 쓸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일상의 평범함을 사랑할 줄 알고,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한쪽에 두고, 그런 언어적 개념으로서 산문집을 펴냈다.
시의 언어가 갖고 있는 거리감을 해소하기 위해 에세이를 쓴 건가.
그렇다. 보통 시인들이 에세이도 맛깔나게 쓰기 때문에 출간 요청이 많다. 첫 번째 에세이 < 마음사전 >(2008) 은 벌써 50쇄를 찍었다. 꾸준히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 ‘사람들이 나를 잊지 않았구나’하는 느낌이 든다.
확실히 시보다 산고(産苦)가 덜하겠다.
무척 덜하다.

김소연 시인의 시 세계를 간략하게 묘사한다면?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에서 출발한다. 첫 시집에는 주로 사랑의 국면에서 억압받는 사람, 억압당하는 주체가 화자로 많이 등장했다. 억압은 개인적인 관계뿐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도 발생할 텐데, 사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조금씩 옮겨갔다. 사회적 차원에서 스스로 기성세대라는 것을 완벽하게 인식하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더는 내가 철없이 살 수 없겠다는 것을 느꼈을 때, 내가 억압하는 주체일 수 있겠다는 자각, 반성, 성찰을 담기도 한다.
핵심 키워드는 결국 억압인가.
억압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억압당해도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버틸 수 있는지, 그런 식의 감각들을 갖고 쓰는 게 내 시의 표현 세계다.
보통 돈이나 생체권력, 이런 것들로 억압을 자행하지 않는가. 억압이 키워드가 된 계기가 있다면?
한 끗 차이로 19살 때 몰랐던 것을 20살 때 알게 되었다. 모든 것에 대해서 지나치게 각성하게 되면 각성 그 자체가 나를 조여오기도 한다. 억압을 의식하고 억압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면 이런 각성한 자아가 나를 억압하는 상황이 최종적으로 남고 마지막에 결국 노쇠한 신체가 주는 억압으로 패배한 몸만이 남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부정성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진실하기 때문이다. 실패하더라도 살고 싶어서 달콤한 희망이나 그런 것들로 숨기지 않는다.
피동이 되든 능동이 되든 억압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시 말고 다른 것은 없었나?
극복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체험’이란 말을 쓰고 싶다. 인간의 역사는 실패를 기록하지 않지만 “과연 낙오자들의 삶 속엔 가치가 없나?’ 하는 의문이 든다. 난 그들의 삶에서도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음악이 문학과 다른 것은 음악은 주류에 환희함과 동시에 언더독을 발굴한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패배자 마인드로 살지 않는다. 우리에게 있어서 삶의 가치가 단일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것이 희망이다.
생계에 대한 공포와 같은 압박 같은 것이 있었다면 어떻게 체험하였나?
유년기는 부유하게 지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1984년 망원동 물난리를 직접 경험했다. 수재민이라 등록금을 내지 않았는데, 그 돈으로 통기타를 샀다. 철없고 어린 시절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자 입장에서 본 김소연 시인의 작품은 회화적이다.
어떠한 표현을 하고자 할 때, 어떤 말들은 직접 진술할 필요성을 가지나, 사유를 안 거치고 상대방을 설득할 때도 있다. 감각 대 감각으로. 내 시는 그런 장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별도의 생각 없이 육감적으로 확 안아주는 느낌 말이다. 그런 식의 설득력이 사실 진짜 예술이 아닐까. 음악을 좋아했던 이유도 그런 본능적 직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비틀스는 언제 알게 되었나.
비틀스를 모르면 취급을 안 해줬던 학창 시절에 반 친구들과 함께 들으며 알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사춘기 시절 관심의 척도는 비틀스였고 처음 친구에게 말을 걸 때 비틀스를 아는지 묻곤 했다.
비틀스 곡 중 충격적인 곡이나 앨범을 꼽는다면.
사춘기엔 ‘Yellow submarine’이 강렬하게 와닿았다. 그리고 각각 레드 앨범과 블루 앨범이라고 불리는 컴필레이션 < 1962 – 1966 >과 < 1967 – 1970 >은 엘피와 시디 모두 샀다. 1990년대 연애할 때는 ‘오늘은 블루 앨범 다 들을 때까지 채팅하자’는 추억도 기억에 남는다.

비틀스하면 바로 떠오르는 곡이 있는가?
시기마다 다르다. 낮에 운전할 때는 ‘Here comes the sun’을 듣고, 밤에 술 마실 때는 따라 부르는 재미가 있는 ‘Yellow submarine’을 듣는다. 모르는 사람이 없는 노래 아닌가.
비틀스 관련된 에세이도 출간했다고 들었다.
2019년에 발표한 <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이다. ‘기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비틀스에 한 챕터를 할애했다.
시집 <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2006) 중 ‘불귀’ 시리즈는 음악 관련 키워드가 등장한다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1980년 대중가요 노랫말이 거칠게 느껴지곤 했다. 송시향 선생님의 ‘검은 장갑’이라는 노래는 굉장히 젠틀했다. 학창 시절 현대 시 지도 교수님의 노래방 18번 노래였다.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굿바이 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
여성을 타자화하여 묘사하던 시기에 이런 점잖고 시적인 노래에 반했다.
‘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었다’는 산울림에게서 영향받은 구절인가.
그렇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처럼 내가 이런 장면 속에 있었고 내 삶이 이렇게 흘러왔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좋아하는 한국 뮤지션은 누가 있는가?
산울림 전곡의 가사를 다 외웠을 정도로 좋아했다. 아버지 엘피로 초등학교 때 ‘아니 벌써’를 처음 들었다. 턴테이블에 바늘을 올려서 듣는 첫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시인으로서 산울림 노래를 어떻게 보는가.
2집 <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1978)의 ‘어느날 피었네’ 같은 시를 쓰고 싶었다. 경이로운 자연의 섭리를 잘 묘사했고 사람을 고양하는 방식의 작곡을 했다.
김창완 본인은 12집 < 꿈꾸는 공원 >의 ‘불안한 행복’을 베스트로 뽑았다.
개인적으론 초기작이 좋았다. 첫 시집을 보고 김혜순 시인께서 “록커 같다”는 표현하셨는데, 산울림 정신을 좋아했기 때문에 시에 녹아 있던 것 같다. 너무 성숙해져 버린 지금은 이렇게 못 쓴다. 현재의 연륜이 젊은 시절 야생성보다 우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비틀스와 산울림 이외에 더 영향받거나 좋아했던 뮤지션을 공유해 준다면?
한 아티스트의 경력을 쭉 파고든건 자우림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주류와 본인들의 작가주의 사이에서 잘 줄타기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90년대에 문학과 지성사 출판사 지하에 블루 데빌이라는 클럽이 있었고 김윤아는 그 클럽에서 노래하던 무명 뮤지션이었다. 처음 봤을 때도 김윤아가 눈부시게 성장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가 지닌 자존심과 태도도 마찬가지다. 더 좋은 작품을 향한 치열함과 당당한 태도가 존경스럽다.
조동익, 이병우의 어떤날도 좋아한다. 대학교 1학년쯤인가 이대 정문 앞 레코드 가게 쇼윈도에서 어떤 날 1집을 발견했다. 왼손으로 쓴 듯한 그 글씨의 표지만 봐도 “이 음악을 내가 좋아하겠구나” 확신을 느꼈고 그 직감이 맞았다. 유재하 1집 < 사랑하기 때문에 >(1987)도 즐겨 들었다.
1980년대는 음반 산업이 급성장하던 시기였다. 당대 인기가수였던 조용필, 이선희 등의 음악은 어떻게 들었는지.
친구들이 좋아하고 해서 그분들 음악도 자주 들었다. 애초에 음악 듣고 따라 부르고 하며 모여 놀던 시절이 아닌가.
김소연 시인이 20대였던 시대, 즉 1980~90년대가 대중음악의 중요시기다. 엘피와 마이마이, TV, 라디오 등 모든 기기와 매체를 거쳤다. *마이마이: 삼성전자에서 생산 및 판매한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아마 요즘 친구들이 넷플릭스나 틱톡 얘기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엔 라디오를 통해 처음 음악을 접했다. 디제이가 좋아하는 곡의 곡 제목을 외치는 순간에 녹음하고 그랬으니까. 생각해보니 들국화도 좋아했다. 서울 경기에서 진행한 들국화 콘서트는 거의 다 갔다. 미도파, 크리스탈 백화점에서 밤새도록 했던 콘서트가 기억난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그룹 따로 또 같이의 팬이라 대학로 파랑새 극장 같은 곳에서 한 공연에 따라갔다. 따로 또 같이 콘서트에서 게스트로 나온 모습이 전인권과의 첫만남이었다.

내가 지은 시가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혹시 해보신 적이 있는지. 만약 있다면 어떤 노래를 생각하셨는지?
단순한 욕망이었다. 좋은 시를 쓰면 좋은 노래가 되겠다고 생각하던 시기도 있다. 청매 출판사에서 김창완의 노랫말로 시집 만들 준비를 할 때, 편집자가 아는 선배였다. 김창완 씨와의 자리에서 ‘이런 것을 노래로 만들어 주세요’라는 얘기를 했는데, “노래는 너무 빨라요. 시를 하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시의 여러 뉘앙스를 모두 담아내기엔 대중가요의 형식이 적합하지 않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아티스트를 만나고 나면 애증이 증폭되는 경우가 있다. 혹시 본인의 시 중에서 특히 음악적이라고 생각되는 작품이 있는가?
가수 최고은 씨와 협업한 적이 있다. 팬데믹 때 최고은 씨가 번외 작업을 제안했고, 김소연의 에세이 낭독과 최고은의 노래를 결합한 < 오늘의 난 미지근하게 축제 >(2022)가 나왔다. 세 번째 시집 < 눈물이라는 뼈 >가 나왔을 때 최고은 씨가 게스트로 나오시기도 했다.
최근 뮤지션 중에 주목하는 사람이 있는가?
최고은과 요조가 생각난다. 한 시절 내 마음을 지배한 이아립도 빼놓을 수 없다. 이랑과 신승은의 노랫말을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세계관을 존중한다.
기타를 연주한다고 들었다.
음을 듣고 바로 코드 딸 수 있을 정도로 음감은 좋은 편이나 음정이 불안하다. 가끔 어쿠스틱 기타로 노래를 만들기도 한다. 가수 요조로부터 받은 기타가 있는데, 화답하고자 노래를 만들어서 파일로 보낸 기억도 난다.
김소연 시인께서는 그간의 삶을 잘 살아온 것 같나?
기본적으로 잘 살겠다는 욕망은 없기에 소위 ‘개판’으로 살아왔다. 망가지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시는 도망치기 위한 출구기도 했다. 어떤 가치를 추구한다기보다 본성에 충실한 삶을 오래 살아와서 후회한 적도 많다. 그저 모든 게 피로하고 마음에 안 들 때도 많았고, 뭔가를 도모하다가도 급작스럽게 도망가고 하던 시절도 있었다.
향후 시집 발간 계획이 있다면 키워드를 미리 공개해 주실 수 있나?
가장 가까운 시집 2018년에 낸 < i에게 >다. 올해 ‘나와 싸우는 나’라는 키워드로 새로운 시집이 나올 예정이다.
김소연 시인 시집 목록
극에 달하다(1996)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2006)
눈물이라는 뼈(2009)
수학자의 아침(2013)
i에게(2018)
진행 : 임진모, 염동교, 정다열, 손민현
정리 : 염동교, 손민현
사진 : 정다열
메인 이미지 작업: 신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