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살 인터뷰

2017년 < 쇼미더머니 6 >에서 ‘팔지 않아’ 속 ‘우린 우리 자신일 때 더욱 빛나’를 외친 넉살은 그 해 정말 화려하게 빛났다. 2014년 비스메이저 컴퍼니 합류 이후 꾸준히 이름을 알려가던 루키가 2016년 < 작은 것들의 신 >으로 호평받고, 힙합 커뮤니티 힙합플레이야의 라디오 프로그램 ‘황치와 넉치’를 진행하며 인지도를 쌓은 후 최고의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N분의 1’, ‘부르는 게 값이야’, ‘필라멘트’ 등 연타석 안타를 기록하며 힙합 신과 예능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 후로 우리는 라디오 방송의 목소리로, 유튜브 콘텐츠 등장인물로, TV 예능 프로그램 패널로 어디에서나 넉살을 만날 수 있었다. 딱 하나 드물었던 곳이 음악이었다. 무려 4년 7개월 간의 공백기 동안 새 앨범은 소문만 무성할 뿐 기약이 없었다. 팬들과 리스너들도 애가 탔지만 정말 넉살 본인 역시 혼란스러운 시기 갈피를 잡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긴 시간을 거쳐 신보 < 1Q87 >로 돌아온 넉살을 VMC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여러 고민을 털어낸 듯 밝은 표정으로 우리를 맞은 그는 안정되어 보였다. ‘나 같은 포지션은 없다’는 멀티플레이어의 모습 속에는 시간으로 담금질한, 단단한 자아가 있었다.

4년 7개월 만의 신보다.
공백 기간이 길었지만 준비 기간은 작년 중순부터였으니 작업 기간은 1년 정도다. 그전까지는 ‘해야지…’하고 생각만 하다가 영감이 떠오를 때 작업하자 싶어 기다리고 있었다. 한 3년은 놀았다. 그러다 프로듀서 버기(Buggy)의 비트를 듣고 아이디어를 얻어 ‘Akira’, ‘Bad trip’을 만들었고 앨범의 뼈대를 잡았다. 

맨 처음으로 만든 트랙이 ‘Akira’라고 들었다.
일본 버블 경제 시절 애니메이션은 거의 다 좋아한다. 지브리 초창기 시절 작품도 그렇고. 보통이라면 하이라이트 장면에만 사용될 프레임 구조를 애니메이션 전반에 화려하게 쏟아 넣어 애니메이션이라 믿기 어려운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인다. 그런 요소들 중 < 아키라 >가 으뜸에 있었고, 어느 날 영화처럼 ‘피폐한 미래를 그린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영화가 그리는 미래 세계가 2019년인데 당시 작업할 때도 2019년이었으니 묘하게 시기도 맞았다. 아, < 블레이드 러너 >도 앨범에 영향을 줬다. 

앨범 흐름을 놓고 보면 첫 트랙 ‘Bad trip’을 통해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는 느낌인데, 실제 제작기는 ‘Akira’라는 황폐한 미래의 모습으로부터 출발한 셈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 아키라 >도 1988년에 나온 작품이니까…(웃음). 앨범 시간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현재 내가 느끼는 것 순서로 진행된다. 전염병이 유행하고 인종차별 등 인권 문제가 다양하게 대두되는 우리 사회, 그 속 광기에 휩싸인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목격했다. 그래서 < 아키라 >로부터 출발하게 된 것 같다. 

사회적 시선으로 출발한 작품인 셈인데, 여러 매체나 평단에서는 이 앨범이 넉살의 자전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언급이 많더라. 개인적으로 나는 ‘Akira’처럼 사회적인 메시지가 먼저 들어왔는데.
실제로 그런 사회적인 메시지를 많이 녹여내려 했다. 물론 재미있기로는 개인의 서사가 앞선다. 내 기준에서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이 더욱 공감해주는 부분도 있다. ‘나도 저렇게 느낄 때가 있었는데’ 하면서. 그런데 또 너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는 싫었다. 여러 요소들을 흥미롭게 넣어보고 싶었다. 이를테면 내 어린 시절 유행 ‘싸이월드’나 < 리썰 웨폰 > 같은 옛날 영화 제목을 랩에 넣는 방법이 있겠다. 내가 자주 접하던 것들을 언급하며 이 앨범은 과거의 나로부터 출발한다는 인상을 주고, 사회적인 이야기를 크게 담고 있지는 않아도 내 또래 많은 분들이 함께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앨범을 의도했다. 

넉살이라는 한 개인의 서사를 통해서 시간의 흐름을 관통하는 듯한 서사라고 볼 수 있을까.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가 살아가는 현시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지금 사회는 뭐랄까… ‘광기’가 있다. ‘Akira’의 도입부에도 원작의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이미지와 이야기를 많이 차용했다. 그런 요소들을 사회와 연결하여 가사를 썼고.

그렇게 세상에 나온 작품이 < 1Q87 >이다. 첫째로 1987년도에 태어난 넉살, 둘째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마지막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떠올랐다.
말씀해주신 작품들에서 제목을 가져온 것은 맞지만 < 작은 것들의 신 > 때와 마찬가지로 큰 맥락을 따라서 차용했다. 사실 이번 앨범 제목은 책에서 따오고 싶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저번 앨범도 그랬으니까. 주변에서는 막 ‘소설충’이라고 그러기도 하고. (웃음) 원래 제목은 < 1987 >이었다. 그런데 1987이라고 하면 6월 민주 항쟁이 있었던 해고 이를 소재로 한 영화도 있으니 그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딥플로우 형, 회사 사람들과 조금 더 고민해보고 있던 터였는데, 어느 날 문득 샤워를 하다 ‘1Q84’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 1Q87 >의 Q 역시 물음표, 퀘스천 마크의 Q인가.
맞다. 아직 세상을 하나도 모르겠구나 싶은 메인 테마를 꾸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1987년도에 태어난,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의 뜻을 담고 싶었다. 물론 앞서 언급한 대로 책에서 제목을 따오는 걸 피하려고 했으나, 쉽게 쉽게 가려고 해도 장치나 메타포를 계속 넣는 습관 때문인지… 그래도 자연스러워서 이렇게 제목을 지었다.

(트위터 질문) 무라카미 하루키 외 앨범을 작업하며 기억에 남았던 작품이 있나. 
딱 하나가 떠오른다. 넷플릭스에서 < 미드나잇 가스펠 >을 정말 감명 깊게 봤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력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굉장히 철학적이면서도 복잡한 내용인데, 이번 앨범 준비하는 동안 열심히 보면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한계가 없다는 걸 느꼈다. 비주얼적인 면, 거기서 인터뷰의 형식을 빌린 여러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내용 이런 것들이 다 섞이니까 정말 죽여줬다. 다들 봤으면 하는데 안 본다. 추천을 해 줘도 안 봐. (웃음) 사실 진입장벽이 조금 높기는 하다. 

자연히 앨범은 ‘1Q84’와의 공통점을 가져간다. 소설 속 양가적인 삶을 사는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넉살 역시 지난 4년 7개월 동안 방송 출연과 랩 활동을 병행하며 예능인과 래퍼를 바삐 오갔다. “두 개의 달이 뜬 세계로 빨려 들어가며 이야기가 시작되잖아요. 소설처럼 앨범도 제 삶의 양면성을 잘 담아낸 것 같아요. 우울함과 즐거움. 예능에서는 밝은 모습이고, 음악에서는 어두운 모습이죠.”. < 1Q87 >을 소개하는 넉살의 이야기가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양가적인 삶의 모습을 털어내는 작품이다. 
이 앨범으로 그런 걸 한 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걸 하기 어렵겠다 싶었다. 원래는 오랜만에 내는 작품이니 조금 가볍게 가자 생각이 많았는데,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결국에는 어두운 앨범이 되었다. 딥플로우 형이 해준 조언으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앨범을 내고 나면 네가 조금 개운해지고, 음악을 할 때 부담감이 줄어들 테니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런 이야기를 할 때도 됐다.”는 말들이었다. 그래서 < 작은 것들의 신 >과는 무조건 달라야 한다는 모토가 있었다. 사운드 부분에서 뉘앙스가 겹치지 않게 하려고 곡 선정 시 프로덕션 부분에서 전작과 유사한 부분은 피하고자 했다. ‘신박한 걸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두 축이 된 트랙부터 살펴보자. ’Akira’는 또 독특한 게 드럼은 굉장히 아프로 비트나 펑크(Funk) 느낌이 강하다.
맞다. 펑키(Funky)하다고 볼 수 있다. 처음 받은 비트와 다르게 리얼 드럼과 베이스로 녹음을 했다. 까데호(Cadejo)의 김다빈이 후반부 다이내믹한 드럼 연주로 리얼한 맛을 살려줬다. 베이스 역시 까데호의 김재호가 맡았다. 초안과 조금 다른, 앨범의 전체적인 느낌에서는 확실히 튀는 인상의 트랙이다.

반대편 ‘Bad trip’ 역시 실험적인 비트가 인상적인데.
그 곡은 초안과 거의 똑같다. 버기(BUGGY)가 처음 들려줬을 때랑 거의 비슷하고, 앨범 후반부에 편곡만 조금 하고 손본 정도다. 그 트랙을 듣고 버기는 역시 천재다 싶었다. 10년에 한 번 꼴로 좋은 비트를 뽑는다 (웃음). 농담이고. 아무튼 그렇게 ‘Bad trip’을 듣고 이건 너무 좋다, 무조건 1번 트랙 감이다 싶어서 가져왔다.

이 곡에서 넉살은 초반 잔잔한 전개와 달리 후반 소리를 지르는 듯, 끓어오르는 듯한 랩을 양면성 있게 풀어낸다. 
‘잔잔하게 했다가 크게 소리 질러야겠다’ 그런 걸 의도한 건 아니다. 그냥 벌스를 쓰고 나니 후렴에는 더 자극적인 게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또 ‘Bad trip’이 1번 트랙이니까 < 작은 것들의 신 >과는 랩의 톤도 조금 다르게 하고, 새로운 후렴구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앨범 첫 트랙 치고 실험적인 이유다. 

실제로 앨범 전반부의 ‘Am I a slave’, ‘Bad trip’, ‘Won’에서는 실험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 ‘Akira’나 ‘Bad trip’을 제치고 선공개된 ‘Am I a slave’도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4년 7개월 만에 앨범을 내는데 ‘넉살은 과연 어떤 노래를 가져왔을까?’ 하며 궁금해할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고 싶었다. ‘Akira’를 선공개하면 앨범이 대충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을 테고, 거미가 피처링한 ‘너와 나’, 드비타와 함께한 ‘추락’을 먼저 풀면 ‘넉살 또 돈 벌려고 하네. 변했네’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랑 ‘Am I a slave’를 먼저 공개하자는 가닥이 잡혔다. ‘넉살이 이런 걸 해? 이상한 거 하네?’하는, 반전을 주고 싶었다. 

시작부터 < 쇼미더머니 >로 출발하는 ‘Am I a slave’의 메시지가 강렬하다. 
돈을 번다고 문제가 다 사라지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정말 돈을 벌고 유명해지고 싶었고, 그걸 얻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또 예전의 내 삶,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지 않았던 자유로운 삶은 사라졌다.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 쇼미더머니 >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후 힘든 점은 없었나. 
사람들이 그렇게 알아본 건 사실 < 쇼미더머니 > 한 철이었다. 그때는 지나다니기만 해도 사람들이 몰릴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점이 불편하다기보다는 개인적인 시간이 너무도 부족해져서 고민이었다. 일 많은 건 당연히 너무 감사하고 좋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놀기도 좋아하고 게으른 사람인데, 스케줄이 늘어나니 나 자신을 돌보고 생각하는 걸 짬 내서 할 겨를도 없었고 방법도 없었다. 지금은 밸런스가 어느 정도 잡혔지만 당시엔 균형을 잡지 못해 힘들었다. ‘난 술도 먹고 놀기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도 가져야 하는데 방송도 해야 하네?’ 같은 고민들.

그래서 ‘나’ 같은 트랙이 나왔을 테다.
한 2~3년 전쯤 공황 장애에 시달릴 때가 있었다. 맨 정신에 가위눌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못 움직이겠고, 시야가 엄청 좁아지고. 갑자기 막 강도가 들 것 같고, 전쟁이 날 것 같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공포가 생기며 패닉 상태에 빠진다. 그런 내 모습을 돌아보며 진솔한 나의 이야기, 나를 괴롭혔던 부정적인 에너지에 대해 풀어낸 곡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나는 복잡한 사람 / 가끔 미쳐버려 내게 술을 주지 마’였다. 이 한 문장이 지난 공백기 동안 넉살이 품어왔던 고민을 대변하는 듯하다.
나랑 같이 술을 먹었던 많은 멤버들은 이해를 할 거다. ‘쟤 술 주지 마, 쟤 술 주면 이상한 얘기 계속해’ 항상 그런다. 그 부분이 딱 정확히 나인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방송에서 비치는 모습은 되게 밝고 유머러스하고, 진중하면서도 가벼운 매력이 있는 털털한… 그런 이미지 아닌가. 그런데 사실 저는 굉장히 복잡한 사람이다. 당연히 어두운 면이 있기에 방송에서의 밝은 면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단편적으로만 나를 해석하는 사람들에게 일단 처음부터 짜증이 나는 거다. 나는 복잡한 사람이니까. 

‘상처’보다는 ‘짜증’에 가까운 감정인가. 
그렇다. 예를 들면 기분 안 좋은데 주변에서 막 ‘넉살아 너 재미있잖아 웃기잖아’ 그러면 좀 열 받지 않나. “나라고 맨날 웃냐. 힘드니까 말 좀 시키지 마.” 그런 진절머리 나는 감정이 곡에 담겨있다.

그 감정이 전체적으로 앨범의 조소하는 듯한, 냉소적이면서도 관조적인 느낌으로 연결된다.
‘좀 짜증 나게 하지 마라 이 똥파리 같은 놈들아!’ 이런 느낌이다. 이 감정이 < 작은 것들의 신 >과 < 1Q87 >을 다른 작품으로 만든 핵심이다. < 작은 것들의 신 >은 회사 입사 등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던 것들이 하나씩 실마리가 풀려나가던 시절의 이야기라 밝고 희망적인 메시지가 있다. 비록 애매한 부분도 있고 냉소하는 부분도 있지만 결국 열심히 하면 우리의 기도가 다 이뤄질 거라는 긍정으로 끝이 난다. 그런데 < 1Q87 >은 애당초 그런 희망적인 메시지가 없고, 아예 추락으로부터 출발한다. 작업에 임하는 태도나 감정부터가 많이 달랐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나도 내가 조소하는 그 사회 속 일원이라는 걸 인정한다는 거다. ‘개인 시간을 가지려면 일을 안 하면 되지 않나.’, ‘일하는 것도 내가 선택한 건데 왜 그렇게 질질 짜니’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나. 나도 그런 사회의 일원으로서 ‘짜증 나면 다 벗어던지고 가면 되지’라는 얘기를 하고 싶진 않았다. 결국 나도 세상이라는 톱니바퀴 속 하나의 톱니고, 돈을 벌기 위해 움직이는 똑같은 인간이니까… 그런 부분에서 ‘나’는 참 복잡한 트랙이다. 

(인스타그램 질문) 그 ‘나’의 복잡함이 지금은 풀린 상태인가? 
풀리지 않았다. 곡도 그렇고 앨범 자체가 다 두루뭉술하다. ‘너와 나’조차도 사랑이 최고라 말하지만 여전히 사랑을 갈구하는 양가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나 확실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곡은 ‘추락’이다. 정말 우울하지 않고서야 추락보다는 비행이라 느끼고 싶고, 떨어지기보다는 날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감정을 담고 싶었다.

(인스타그램 질문) ’ 너와 나’에 대해 궁금하다. 첫 시작부터 나를 위한 노래를 쓴 건지, 아니면 사랑 노래를 쓰다 나에 대한 사랑 노래를 쓰게 되신 건지.
복잡한데, 두 개 다 맞는 것 같다. 처음에 ‘내 셀피 속에 너와 나’라는 가사가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라는 가사로 넘어간다. 이후부터는 3인칭의 나를 바라보는 너, 그리고 너를 바라보는 1인칭의 나 등 복잡하게 전개가 된다. 대신 듣는 분들에게는 사랑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게끔 하고 싶었다. 주제는 사랑이지만 남녀의 사랑으로 출발해 나 자신에 대한 사랑, 인류애적인 메시지까지 폭넓게 다뤄보고 싶었다. 마냥 사랑 노래로 들리지 않는 것도 여러 장치를 많이 넣어서일 것이다.

반면 앨범의 후반부는 소위 말하는 예전 붐뱁, 올드 스쿨 비트들로 채워져 있다. ‘연희동 Badass’ 같은.
사실 그런 걸 절대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제 또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웃음) 결국 정신을 차려보니 그 비트에 랩을 쓰고 있었다. 그게 일루이드 할러(ILLUID HALLER)가 보낸 트랙 중 고르다가 ‘이거는 하면 안 된다’ 싶어서 치워뒀었는데, 다른 곡을 작업하다 우연히 비트를 들으니 바로 후렴이 나오더라. 

실제로 ‘브라더’와 더불어 이 곡은 넉살의 ‘짜증’을 중화하는 해방구처럼 느껴지는 트랙이다.
맞다. ‘연희동 Badass’는 랩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의 자신감, 그리고 성공한 후 금의환향한 내 모습을 최대한 담으려 했다. ‘브라더’도 마찬가지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우울한 일도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축하할 일이 더 많았다고 생각하는데, 앨범 열두 트랙 중 몇 트랙만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해방구’ 같은 느낌의 곡이 됐다. 

실제로도 나고 자란 연희동 친구들, 비스메이저 동료들로부터 많은 힘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
나의 성장 과정, 성공기를 모두 곁에서 지켜본 친구들이 연희동 친구들이다. 그 친구들과는 자주 만나서 같이 게임도 하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신다. 그리고 회사 동료들의 영향도 크다. 딥플로우 형 만나서 회사 소속으로 활동한 지도 꽤 됐고, 던밀스와 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재미있는 콘텐츠도 많이 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넉살은 환한 웃음으로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그의 이야기는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예능과 음악 투 트랙의 커리어를 유지해온 넉살에겐 현실적 고민과 아티스트로의 이상 사이의 조율이 강제되었다. “재작년 가을쯤엔 정말 큰일 났다 싶었어요. 다 그만두고 어디 숨어야 하나, 왜 이렇게 힘들까. 방송에도 적응이 돼서 긴장이 풀리고, 피처링을 해도 하나도 마음에 안 들고, 술 마셔도 다운되고… 그런 시기였죠.”.

방황하는 와중 그의 길이 되어준 것은 시간, 그리고 음악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회복을 하다 보니 웃긴 게, 감정이라는 게 내가 회복하고 싶어서 회복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익숙해지”고, 내가 나 자신을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되는 거였어요.”. 힐링을 ‘음악으로 했다’라는 이야기도 강조했다. “결국 음악 하는 사람은 음악으로 자신감을 찾게 되더라고요.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많이 갖고, 기분도 좋아졌어요.”라 말하는 넉살의 이야기가 진실하게 다가왔다. 

올해는 유독 과거를 돌아보는, 현재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힙합 앨범이 많이 나왔다. 
듣고 보니 그렇네. 레디의 < 500000 >도 그렇고 JJK의 < 지옥의 아침은 천사가 깨운다 >도 그랬고… 이제 그런 자전적인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 쇼미더머니 > 시기를 거친 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어떤 전체적인 비슷한 무드가 느껴진다. 코로나 때문에 공연이 없었던 것도 관련 있어 보인다. 공연, 페스티벌이 많은 시기였다면 보다 신나는 분위기의 음악이 많지 나오지 않았을까.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기인 것 같다.

넉살도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정말 많은 것이 변했을 텐데.
사실 나는 힙합을 처음 할 때 망할 줄 알았다. (웃음) 외부에서 보기에 힙합 신에 있는 사람들은 다 갱스터, 깡패, 마약하고 진짜 싸우고 때리고… 그런 곳인 줄 알았다. 물론 오해였지. 그냥 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구나. 내가 알던 미국에서 총질하고 그런 게 아니구나… (웃음) 그때는 돈 벌 생각을 아예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 쇼미더머니 >가 나오며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올라가고, 자본도 유입되면서 나도 혜택을 봤다. 내가 방송을 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현재 한국 힙합 신에서 넉살은 어떤 포지션을 점하고 있다고 보나.
나 같은 포지션은 없는 것 같다. 작년 코드 쿤스트와 허클베리 피가 ‘마이크 스웨거’에서 축구 게임 ‘위닝 일레븐’ 대회를 했을 때 내가 특별 캐스터로 나가서 한준희 해설위원과 중계를 한 적이 있었다. 거의 축구 해설하듯이 신나게 중계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상구 형이 “너 같은 애는 처음 봤다”는 거다. 라디오를 진행하다가 방송도 하고, 유튜브 콘텐츠도 찍고 랩도 하는데 이제 축구 해설까지 잘하는, 그런 애는 처음 본다고… 그러면서 “네가 가는 길이 항상 처음이니까 자신감을 가지고 해라. 그리고 그만두고 싶을 때는 그만둬라.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니니.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는 조언을 해줬다. 

멀티플레이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나도 나를 정의하기 쉽지 않다. 방송을 하는 래퍼, 래퍼 겸 방송인. 그런 건 제가 하고 있는 거니까 당연한 거고. 애매하다면 애매하고 독보적이라면 독보적인, 그런 멀티플레이어로 나를 정의하고 싶다. 계보는 있는 것 같다. 염따 형도 한번 그쪽에 발을 담궜고, 데프콘 형도 계시고, 슬리피 형도 그렇게 활동을 하고 있고. 그런데 그중에서 < 1Q87 >처럼 이상하고 어두운 앨범을 내면서 방송에서는 밝은, 그런 이중인격자 같은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웃음) 나는 둘 다 재밌다.  

딥플로우와의 IZM 인터뷰에서도 ‘변절’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일부의 그런 이야기가 신경 쓰이진 않은지.
당연히 신경은 쓰인다. 그런데 뭐 대수롭지 않게 업신여기고 넘긴다. ‘변절자다’, ‘예능이나 해라’ 이런 이야기에 대해 앨범을 내면서 밸런스를 맞춰 놓은 것 같다. 그리고 의외의 소득도 있다. 유튜브 ‘딩고’에서 진행한 ‘딩고 킬링 벌스’ 영상 조회수가 예상보다 엄청나게 많이 나와서 놀랐는데, 댓글 란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 놀라운 토요일 >에서 넉살님 팬이라 우연히 영상을 봤는데, 이런 분이셨군요?”.

그런 게 재미있으면서도 좋다. ‘방송에서의 생명력도 랩과 연결이 되는구나’는 생각이 들었고, 두 개를 동시에 다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듣는 분들께서 판단해주시기 바란다. 예능에서 웃기면 변절자, 랩 할 때는 예능 하는 래퍼… 이런 목소리는 파도 파도 끝이 없다. 어떻게 생각하든 좋으니, 변절자든 뭐든 우선 앨범을 들어주시고 얘기를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1Q84’ 소설의 주인공들은 1984년에 살지만 1Q84년이라는 평행세계를 오간다. < 1Q87 >도 그런 느낌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1987년에 태어난 인간 이준영과 1Q87년에서 랩을 하고 있는 넉살이라는 캐릭터가 있는. 앨범에서 두 개의 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여 들으면 좋을까. 
나의 닉네임과 가면은 넉살인데 이야기는 이준영의 것이니 재미있다. ‘거울’ 같은 트랙이 딱 그런 것 같다. 이준영으로 넉살에게 하는 말 같은 느낌이다. ‘우리 다시는 슬프지 말자’ 같은 메시지는 넉살이 이준영에게 해주는 것 같고. 그러니까 한없이 밝은 쪽은 넉살, 한없이 어두운 쪽은 이준영이 아닐까. 앨범은 정확히 이준영과 넉살 중 반반이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전개보다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알 수 없는 감정의 소리를 가사에 담은 경우가 많다. 이중적인 자아를 뜯어 해석하기보단, 그냥 이렇게 나온 결과물 자체를 즐겨주시면 좋겠다. 비빔밥 같은 거다. 다 섞어서 입 안에 넣으면 또 새로운 맛이 날 테니까. 

(트위터 질문) 2집이 나온 지금 거울을 보면 어떤 느낌을 받나. 
늙었구나. 얼굴이 많이 썩었네. (웃음) 요즘에는 거울을 보면 시간이 보인다. 나이 들어간다는 건 신기하다. 과거 콘텐츠 속 내 모습을 보다 거울을 보면 내가 시간 위를 걸어가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다. 그렇다고 ‘막 어떡해’ 이런 감정은 아니다. 그냥 신기하다. 20대 때 공연하던 사진들을 봐도 마찬가지다. 분명 다 똑같은 것 같은데 시간은 흘렀구나, 이런 생각이다.

인터뷰 : 김도헌, 이홍현
사진 : 김도헌
정리 : 김도헌

게시자: 김도헌

IZM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