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치 인터뷰

범 내려온다. 이날치가 내려온다. 적막한 사회 속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 함께한 < 네이버 온스테이지 > 무대 클립으로 처음 화제를 모았을 때 이들은 ‘힙한 크로스오버’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날치 열풍의 핵심은 흥미 요소보다 진정성에 있다. 2018년 음악극 ‘드라곤 킹’으로부터 밴드를 설계한 장영규의 한 마디가 이를 증명한다. “퓨전 팀 중에 전통의 요소가 살아있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이것이 그들을 일시 유행과 순간 재미로 기억되는 숱한 아티스트들과 구분 짓는다. 리듬 악기만을 배치해 판소리의 기본을 지키며, < 수궁가 > 속 대목을 엄선해 감각적인 얼터너티브 디스코 트랙을 완성한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이날치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마포구 빅퍼즐문화연구소로 이날치 감독 장영규, 소리꾼 안이호와 이나래가 내려오는데…

바쁜 와중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 
장영규 : 지난 몇 달 동안 너무 바빴다. 11월엔 최대한 일정을 줄이자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더라. 
안이호 : 작업도 하고 있다. 

어떤 작업인가.
장영규 : < 수궁가 >에서 손을 안 댔던 대목 중에 두 개 정도를 뽑아서 보너스 싱글로 만들어보려 한다. < 수궁가 >가 나온 게 올해 6월인데 원래는 1년 이상 이 작품만 가지고 활동을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계속 녹화, 방송이 이어지자 주변에서 계속 ‘새로운 건 언제 나와요?’라고 묻더라. (웃음) 결국 신곡을 만들고 있다. CD 발매도 준비 중이다. 처음에는 ‘만들면 팔리겠냐.’라는 생각에 찍지 않았는데, 신곡과 LP에 실리지 못한 세 곡 정도 합쳐 준비 중이다. 

살짝 신곡을 예고해줄 수 있나. 
장영규 : < 수궁가 >에  남은 대목이 별로 없어서 고민이었다. 어떤 대목을 정하느냐에 따라 음악 장르가 달라지는데, 다행히 이번에 한 곡을 만드니 듣기에 너무 쉽고 편안한 음악이 나왔다. 

이나래 : 집에 가니까 자꾸 코러스가 귀에 맴돌더라. (웃음)

상술한 것처럼 2020년은 이날치에게 굉장히 바쁘고 또 중요한 해였다. 사실상 2020년의 현상 중 하나다. 인기를 체감하나. 
장영규 : 뭐라고 얘기하기가(웃음). 사실 밖에서 하는 얘기만 듣고 있지 실감은 크지 않다.
이나래 : 일단 판소리만 가지고 밥을 벌어먹고살 수 있게 된 것이 처음이다. 완전히 100% 판소리만 불러서 먹고 싶은 거 고민 안 하고, 가격표 안 보고. 일단 오늘은 먹을 수 있는 거다.
안이호 : 우리가 다니는 식당엔 고가의 메뉴판이 없던데. (웃음) 맞다. 많이 달라졌다. 공연과 스케줄이 일주일에도 몇 번씩 있는 거구나 싶어서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난다. 전에는 주 1회도 충분히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하루 걸러 촬영도 하고,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이런 게 가능하구나!’ 싶다. 

이날치의 시작은 언제부터인가.
장영규 : 음악을 하다 보니 어느 시점부터 내 주변에 전통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본격적으로 판소리와 민요, 가곡 등 다양한 장르를 고민하게 된 것은 무용수 안은미와 함께 무용극을 꾸며 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분명히 좋은 지점이 있는데 왜 국악이란 이름 아래서 아무도 안 듣고, 버려지게 되는 걸까? 그렇게 작업을 하다 보니 2014년 국립극장에서 < 여우락 프로젝트 >의 일환으로 ‘제비. 여름. 민요 ’를 만들며 ‘우리가 록 페스티벌에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신나는 음악을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처음 가능성을 봤던 때였다. 

본격적으로 이날치가 모습을 갖춘 것은 2018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의 음악극 ‘드라곤 킹’이다. 당시 장영규가 음악 감독을 맡았고 이나래와 안이호 역시 출연진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나래 : 처음 ‘드라곤 킹’을 할 때는 음악적인 부분보다도 게임 공연이 가진 융 ·복합적인 형식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연기나 움직임, 합창과 같은 실험적인 소리를 경험한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작업을 해나가면서 어느 정도 이날치의 기틀이 잡힌 것 같다. ‘드라곤 킹’에서 만든 형식을 밴드 음악으로 편곡한 게 이날치의 음악이라고 보시면 된다. 말하자면 인테리어를 먼저 하고 기초 공사를 한 느낌? (웃음) 

한국관광공사에서 기획한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 시리즈로 이날치는 유튜브 세계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과 이름이 되었다. 한국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 함께 촬영한 이 영상은 총 도합 3억 뷰 이상을 기록하며 국내외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호응을 얻었다. 

이건 국악계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센세이션이다. 
안이호 : 여러 가지 흐름이 잘 맞아떨어졌다. 전에 한 번 장영규 선생님이 ‘이제는 사람들이 국악이든 뭐든 편견 없이 받아들일 세대가 도래한 거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전통적인 이미지에 얽매이지 않고 꾸준히 대중음악과 협업하며 활로를 모색하다 보니 이런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본다. 

그 ‘전통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이날치에서 가장 음악적으로 역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장영규 : 전통, 판소리 혹은 어떤 악기가 나오냐 그런 거에 상관없는 국적 불문을 지향했다. ‘음악을 통해 몸을 움직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가 첫 번째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나.
장영규 : 판소리를 들으며 느낀 점은 ‘판소리는 음악으로 출발하지 않았다.’였다. 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려다 보니 말의 리듬감, 혹은 재미있는 요소들을 넣게 되고 그게 음악적 형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걸 음악으로 어떻게 만들까 고민이 많았는데 오히려 판소리의 그 ‘비음악’ 성향이 대중에게 무국적으로 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형식으로 다듬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씽씽(SsingSsing) 같은 경우 민요를 바탕으로 한 팀인데, 물론 인기가 많았지만 전통을 꺼려하는 이들 입장에서는 민요의 각 요소들이 이질적이기도 했다. 판소리는 그런 요소 없이 담백하다. 밴드 구성에서 기타를 제외하고, 리듬감 있는 비트를 지향한 것이 이런 고민에서부터 출발했다. 

사실 국악이라는 요소는 굉장히 강한 터라 조금만 섞여도 타 장르를 잡아먹는 경우가 많다. 
장영규 : 한 번 동남아시아를 쭉 다닐 일이 있었는데 그쪽에도 각 국 전통음악과 섞인 ‘퓨전’ 장르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은 주로 재즈를 기반으로 하여 쉬운 접근 방법을 택하더라. 하는 사람들은 재미있는데 듣는 나는 재미가 없었다. 이날치를 구상할 때 국악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 하는 나도 재미있지만 우선 듣는 사람들도 재미있는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이호 : 국악이 특별히 강렬해서 무언가 섞였을 때 도드라진다고 보진 않는다. 문제는 그 섞는 과정을 어색하게 진행하는 게 문제다. 재즈도, 클래식도 숱하게 크로스오버를 하는데 조화롭지 않나?  대중 입장에선 들었을 때 완성도가 높지 않고 이질적이니까 ‘도대체 저게 뭐야?’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설명만 들으면 이날치의 음악은 록 혹은 디스코의 느낌이 많이 나는데 막상 음악을 접하면 이건 완전한 국악이다. 특히 ‘좌우나졸’ 같은 곡은 정통이다.
장영규 : 수많은 퓨전 크로스오버를 보며 자랐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팀은 김덕수 사물놀이 & 레드선 그룹이었다. 그 이후 한국에서 재미있는 퓨전 팀이 없었다. 수많은 음악을 들으면서 저게 정말 국악인가 싶었다. 전공자라서 퓨전인가? (웃음) 무대에 인도 옷을 맞춰 입고 나오며 국악이라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게 또 유행을 하더라. 퓨전 팀 중에 전통의 요소가 살아있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안이호 : 이날치는 정통을 잘해야 하는 팀이다. 가장 기본적인 기술과 완성도 차원에서의 접근이 없으면 완성하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멤버들이 각자 영역에서 만듦새를 높였고 최선을 다해 퍼포먼스를 보였다. 그렇게 좋은 합을 보여준 것 같다.
이나래 : 대부분 퓨전 팀들이 각자 모여 100%를 만들려 한다. 우리는 개인이 100%를 다하고 이를 모아 하나의 음악으로 만든다. 이날치 음악에서 소리꾼 한 명, 연주자 한 명이 없다 해도 음악의 완성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리로 말하자면 이날치에는 네 명의 소리꾼이 모여있고 남녀 혼성이며 주고받기가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파트 배분이나 각자 소리꾼의 역할 구분이 필요했을 텐데. 
장영규 : 작업을 하다 보니 다들 다른 목소리에 맞춰 역할이 생겨났다. ‘이런 부분에는 누가 제일 잘 어울린다’ 정도로. 멤버들이 알아서 시작하는 편이다.
이나래 : 예를 들어 센 부분은 내가 맡고, 가벼운 부분은 권송희가 맡는 식이다. 처음에 작업할 때는 자유롭게 정했다. 반주를 틀어놓고 ‘네가 먼저 해봐!’ 하며 뛰어드는 식으로. 
장영규 : < 수궁가 >는 판소리 수궁가의 원래 대목 순서 그대로 가는 앨범이 아니다. 판소리 중 대목을 추출하여 있는 것들을 자르고, 편집하고, 혼자 부르고 나눠 부르고 같이 부르는 등 다양한 구조를 실험하여 풀어낸 음악이다. 그 연습을 통해 지금의 이날치가 자리 잡았다고 본다. 

안이호는 이날치 소리꾼들 중 유일한 남성이다. 
안이호 : 다른 멤버들이 허투루 하는 친구들이 아니라 ‘축이 되어야지’ 이런 생각은 안 한다. 그런 것보다 나의 음색이 확실하게 나와야 하는 파트에서 책임감을 느낀다. 내가 나왔을 때 다른 색깔을 확실히 보여줘야겠다, 그런 생각이다. 

이날치 음악을 하며 어려운 점이 있나?
안이호 : 너무 신기한 게 지금까지 술술 잘 왔다. 소리꾼들은 원래 솔리스트 기질이 강한데, 지금 멤버들은 ‘드라곤 킹’ 시절부터 2년 정도 부대끼고 있는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친하고 관계가 매끄럽다. 이 정도로 길게 안 싸우고 가는 걸 본 적이 없다. 장영규 선생님이 조타수를 맡아 키를 잘 잡아 줬고, 서로서로 신뢰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고 본다. 물론 음악적으로도 만족했고. 음악이 별로면 실망하게 되는데 이날치는 음악 자체로도 너무 좋다. 하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니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거라 본다. 

이나래 : 안이호가 말한 ‘솔리스트’ 기질에 덧붙이자면 소리꾼들은 대개 이중적인 삶을 갖는다. 국악계에서 꾸준히 활동하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퓨전 같은 시도도 더러 하게 된다. 거기에 더해 내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건 또 따로 진행해야 하고. 이날치는 그 현실과 이상의 접점이라 마음에 든다. 억지로 변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소리를 내고, 그 요소들이 무시되거나 국악 아래 편견으로 희석되지 않고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주 좋다. 내 나이 또래가 좋아하는 대중음악과 전통음악을 하는 나 사이에 간극이 이날치를 하면서 많이 좁혀졌다.  ‘한 번 해볼까’ 하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팀 내에 있다. 다양한 음악을 시도해보고 싶다. 

이나래의 대답처럼 이날치의 그 ‘교차로’ 지점이 젊은 세대들에게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 함께하는 무대, 비주얼적인 요소도 빼놓을 수 없다. 노래하는 소리꾼 입장에서 어떤가.
이나래 : 나는 안 그러는 편인데 다른 세명의 소리꾼은 평소 자신의 모습처럼, 놔 버린다.  (웃음) 원래 소리꾼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무대에 오른 모습은 편안해 보이지만 그것도 편해 보이는 소리꾼의 연기다. 그런데 이날치를 하면 소리꾼 누구누구가 아니라 인간 누구누구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온다. 그게 신선하다. 

사전 동선이나 안무 같은 것도 없나.
이나래 : 안무는 없고 동선과 무대 연출은 장영규 선생님이 기획하는 편이다. 우리도 상황에 따라 재미있게 무언가 보여주자는 생각은 하는데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 (웃음) 자기 자신을 놓기에 가능한 퍼포먼스로 봐주셨으면 한다. 

대중음악과 동 떨어진 국악을 포옹하는 것도 이날치의 목표일 수 있는데. 
장영규 : 원래 목표는 아니었지만 우리 음악으로 생기는 영향력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계속 그 모습을 원하고 있었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통이 완전히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상황에서 이렇게라도 편견 없이 듣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계속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소리 측면에서 잘 풀렸던 노래는?
이나래 : 사실  < 수궁가 >가 2017년부터 만들어진 거라 기억이 잘 안 나는데(웃음) 
안이호 : 오히려 ‘범 내려온다’는 소리꾼들에게 어려운 편이다. 작업하면서 매끄러웠던 건 ‘좌우나졸 ‘아닌가?
이나래 : 무슨 소리야. 아이고를 몇 번이나 틀렸는데.
안이호 : 그러네. (웃음)

국민적인 인기인 ‘범 내려온다’를 제외하고 앨범 < 수궁가 >에서 주목해줬으면 하는 곡은?
이나래 :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 여자 소리꾼들이 하이라이트를 표현할 때 솔로의 모습과 정통적인 부분이 살아 있는 곡이라 매력적이다. 알이 꽉 찬 느낌이 있다. (웃음) 상대적으로 느린 곡이라 무대에서 자주 선보이지는 못하지만…

국악 혹은 대중가요를 포함해서 이 사람 소리 좋다고 생각하는 분은?
안이호 : 김광석. 그리고 저의 스승님이셨던 김일구 선생님. 

이날치와 관련돼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안이호 : 이날치가 이 정도 관심을 받는 것도 ‘얼레 재밌네?’로부터 출발한다고 본다. 일단 들었을 때 재밌는 거다. 이렇게 성공하고 나니 거꾸로 ‘우리 전통이 원래 이런 거였어.’라며 돌아가는 느낌인데, 그냥 평범하게 처음 이날치를 접했을 때처럼 편견 없이 우리의 음악을 들어줬으면 좋겠다. 

이날치라는 밴드가 앞으로 어떤 모양이 됐으면 좋겠나?
장영규 : 첫 번째 목표는 자급자족이었다. 오랜 시간 음악을 해온 밴드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너무 많이 지켜보기만 했다. 히트곡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 없지 않나. 그래서 이날치는 우선 인디 시장을 공략해보자는 목적으로부터 출발했다. 거기서 살아남아 2집과 3집을 만들 수 있게 버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는 게 제일의 목표였다. 앞으로도 계속 가져가야 할 목표기도 하고.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손기호, 임동엽
사진 : 임동엽
정리 : 손기호

게시자: 김도헌

IZM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