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 흔한 수사적 표현이나 그들만이 풍기는 아우라가 있다. 굴곡진 삶에도 예술혼을 잃지 않은 지예는 자유로운 영혼 특유의 감수성을 인터뷰 내내 흩뿌렸다. 대중에겐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과 김종찬의 ‘산다는 것은’, 임병수 ‘아이스크림 사랑’의 작사가로 알려졌지만 여섯 장의 정규 음반을 통해 ‘차라리’와 ‘엄마 말해줘요’ 같은 개성적인 곡을 남겼으며 시인으로도 활동 중이다.
지예의 노랫말은 아가페를 품는다. 얼핏 남녀 간의 사랑으로 국한되어 보이는 이야기는 더욱 넓은 차원의 인류애를 드러냈다. 희로애락을 넘나드는 인간을 향한 애착심 덕에 지금도 그의 가사는 회자되고 있다. 2019년 세 번째 시집인 < 지예의 지루한 수다 >를 발간했고 5년 만의 새 음반 < Girl In Sixty >로 뮤지션 복귀를 알렸다. 시대에 감응할 모던한 언어를 지향하는 그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젊은 세대와 소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근황은 어떠한가?
7번째 정규 음반 < Girl In Sixty >를 발매했다. 현재 앨범을 알리는 홍보 활동에 열심이다.
몇 년 만에 신보인가?
정규 6집 < She And Me >가 2018년에 나왔으니 4년이 더 걸렸다. < She And Me >는 내가 가사를 쓴 노래들을 직접 부른 음반이다.
탤런트로 시작해 작사가와 음악가로 영역을 넓혔다. 지예 인생 세 가지 전환점은
어쩔 수 없이 첫 번째론 미스롯데를 꼽아야 한다. 굴곡이 있을지언정 어쨌든 연예인 지예의 출발점이다. 두 번째는 MBC 공채 탤런트가 된 것이다. 기성 사회와 연예계의 각종 부조리와 불합리에 견딜 수 없음을 깨달았고 결국 MBC 탤런트를 그만두게 되었다. 세 번째는 KBS 신인 가요제 출전을 들겠다. 당대 손꼽히는 작사가인 이건우가 노랫말을 써준 ‘차라리’로 대회에 나갔는데 이건우의 가사가 만족스럽지 않아 직접 고쳐 썼다. 작사가의 아이덴티티를 느낀 순간이다.

음악적인 감수성을 느낀 건 언제인가?
중학교 때부터 음악에 심취했다. 국내 뮤지션으로는 ‘하얀 나비’의 김정호와 신중현, ‘빗물’의 채은옥을 좋아했다. 고등학생 시절엔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를 비롯한 클래식 록에 빠졌다.
작사가 지예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작품 혹은 예술가는?
소월 김정식과 만해 한용운의 시에 감탄했다. < 파우스트 >의 괴테와 < 어린 왕자 >를 쓴 문학가 생텍쥐페리의 철학도 감명 깊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가사와도 비슷한 점이 많은데 < The Wall > 음반의 ‘Stop’ 속 “I wanna go home”을 예로 들자면 그건 그저 집에 가고 싶다라는 의미를 넘어 영혼의 안식처와 자유를 꿈꾸는 내용이다. 폭력적 교육을 비판하는 ‘Another brick in the wall’ 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사를 배운다기보다는 ‘이렇게도 쓰는구나’하고 감탄했다. 기본적으로 벤치마킹을 잘 안 한다.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의 히트를 예상했는가?
곡의 성공 여부는 짐작하기 어렵다. 멜로디를 받으면 몰두해서 가사를 쓸 뿐이다. 물론 히트가 되면 무척 감사할 따름이다.
저작권 측면에서 가장 기여한 곡은 무엇인가?
방금 언급된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과 임병수의 ‘아이스크림 사랑’인 것 같다. 김종찬의 ‘비’라는 곡을 작곡자 하광훈의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작업했고 그 인연으로 ‘홀로 된다는 것’ 또한 하광훈이 군대에 있을 때 서신을 주고받으며 작업했다. 하광훈과 연결해 준 사람은 음반의 프로듀서 김지환이었다.

지예가 꼽는 자신의 가사 베스트 10
1. 변진섭 ‘미워서 미워질 때’ (1990)
2. 김종찬 ‘산다는 것은’ (1993)
3. 변진섭 ‘홀로 된다는 것’ (1988)
4. 수잔 ‘Shadow’ (2000)
5. 수잔 ‘Cherie a’mour’ (2000)
6. 최진영 ‘너를 잊겠다는 생각은’ (1990)
7. 지예 ‘별’ (2022)
8. 조용필 ‘그 후’ (1998)
지예의 가사를 이렇게 평가하고 싶다. 성공과 몰락. 비행과 추락, 행복과 저주 같은 양극단의 주제가 서로 어우러지며 공존하는 세계. 마치 우리 삶처럼 말이다.
공감한다. 내 삶의 세계관과 닮아있다. 지예 가사의 핵심은 지역과 문화에 대한 사랑과 같은 커다란 개념의 인류애, 결국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기성세대와 제도의 압박이 덜해서 표현이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예전의 불합리와 모순이 오히려 표현 욕구를 자극하지 않았나 싶다.
현대 사회의 환경과 사고체계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가끔은 한국보다 좀 더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곳에서 활동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 그런 억눌린 마음을 노랫말로 예술적으로 승화하려고 한다.
지예의 가사는 체험과 상상 중 어디에 가까운가?
방금 언급한 ‘별’처럼 아버지에 대한 가사는 체험에 가까우나 대부분의 글은 경험으로 쓰지 않는다.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더라도 나도 모르게 내 몸 안에 들어와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이 감정과 섞여서 노랫말이 된다.
타인이 쓴 가사 중 인상적인 작품은
조동진의 ‘제비꽃’과 이장희의 ‘불 꺼진 창’. 추후 이런 노래들을 묶어 음반으로 낼 계획도 있다.
작금의 가사는 어떻게 보는가?
회화적 측면이 강하다. 흐름이 예측되는 경우가 다반사고 마음을 강하게 흔들어대는 가사도 많지 않다. 외국의 팝을 그대로 가져다가 한국어로 부르는 듯한 느낌도 개성이 부재하다. 물론 트렌드는 파악해야 한다. 조선 시대 황진이의 시를 그대로 가져오면 젊은이들에게 감동을 주긴 어렵다. 현재의 문체와 시대어를 사용해야 공감한다.
3년 전에 나온 시집을 소개한다면?
2019년에 발간한 세번째 시집 < 지예의 지루하는 수다 >다. “나도 거기에 있었다” 라는 단시 ‘공범’과 “그 많고 많은 시간을 돌아 나는 겨우 선물이 되었다’”라는 ‘겨우’ 같은 시가 수록되어 있다.

자신이 부른 곡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엄마 말해줘요’다. 지금도 마니아를 가진 곡이지만 당시 홍보의 부재로 인기가 짧았다. 엄마를 소재로 한 몇 안 되는 독특한 곡이고 젊은 세대들한테도 와닿을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신보의 가사는 어떠한가?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100점을 줄 수 없겠지만 가사에 최선을 다했다. 수록곡 중 ‘I love 한국’은 애국가의 현대화를 꿈꾸며 만들었고 저작권 회사의 젊은 직원이 타이틀 곡 ‘그리고 11월’을 하루에 100번씩 듣는다는 말에 무척 기뻤다. 개인적으로 젊은 세대들이 이 작품을 많이 접했으면 좋겠다. 지금의 내 음악이 청춘들의 마음에도 가닿으리라고 믿는다.
< Girl In Sixty >의 제작 과정을 알려준다면?
이미 가사를 다 써놓은 상태에서 총괄 프로듀서가 필요했다. 드라마 < SKY 캐슬 >에 삽입된 하진의 ‘We all lie’의 편곡에 매료되어 편곡자 정성민을 섭외했다. 구성적 측면에서 일반적 방법론을 탈피하고 장르적으로도 힙합과 댄스 등 다채롭다.
신보 < Girl In Sixty >는 지예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작의 모든 부문에 있어 통제받지 않는 음반을 만들었다. 여태까지도 그렇게 작업해왔지만, 이번엔 정말 하고 싶은 대로 개성을 펼쳐 놓았다. 눈에 띄지 않았을 뿐 늘 음악과 살아왔음을 증명해주는 음반이다. 이십 대부터 육십 대를 아우르는, 예전의 진득한 감성과 현재의 경향성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나는 ‘물 먹는 하마’ 같은 사람이다. 물 먹는 하마처럼 영감을 집어삼키고, 작사와 작시를 한다. 지금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 미친 사람처럼 글을 쓰곤 한다. 꾸준한 작업을 통해 젊은 세대와의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다. 세대의 중간점을 찾아 모두에게 감흥을 주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진행: 임진모, 장준환, 임동엽,염동교
사진: 임동엽
정리: 염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