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름에서 한국 인디 록의 기대주가 되기까지 불과 1년 남짓. 데뷔곡 ‘입춘’과 이로부터 촉발된 여러 가시적인 성과는 한로로를 당신이 주목해야 할 뮤지션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음악과 언어를 들여다보면 더 깊은 질문을 품게 된다. ‘대체 한로로는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과연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아티스트로서 맞이한 두 번째 봄을 지나 찾아온 무더운 여름, 이즘(IZM)이 직접 한로로를 만나보기로 했다.
수줍게 입을 연 그는 신인 뮤지션으로서의 감회와 음악적 영감의 원천, 그리고 여태까지의 결과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더욱이 운 좋게도 때마침 작업을 마무리한 첫 EP < 이상비행 >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여태까지의 궤적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설렘이 공존하던 그 눈빛이 아직 생생하다. < 이상비행 >의 공개를 기다리는 동안 묵혀두기 정말 힘들었던 한로로와의 대화를 이제서야 공개한다.

데뷔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첫 싱글 ‘입춘’이 주목을 받고 그 여파로 한국대중음악상 두 부문에 후보로 지정되는 등 알찬 성과를 보였는데, 먼저 이에 대한 소회를 듣고 싶다.
회사와 함께 열심히 달려온 성과를 빠르게 이루고 있는 것 같아 신기하고, 당연히 기분도 좋다. 물론 운이 따라준 것도 있으니 지금의 이 행운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고자 한다.
실제 데뷔곡 ‘입춘’은 방탄소년단 멤버 RM의 SNS에 공유되기도 했다.
DM(다이렉트 메시지)에 외국인 사용자가 보낸 영어 메시지가 많이 들어와서 처음에는 해킹이라도 당했나 싶었다. 그런데 찬찬히 보니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곡이 올라왔다”, “노래 잘 듣고 있다” 등의 내용이라 SNS에 공유된 소식을 알게 되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다 보니 힘듦을 토로하는 노래도 “내가 잘해야지” 식의 가사가 많다. 후렴에서 “도와줘요”를 외치는 ‘입춘’이 더 와닿은 이유였다. 노래의 배경을 소개해 줄 수 있나?
제목처럼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쓰인 곡이다. 계절도 그렇지만 현실도 차갑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냉혹함 속에 살아가는 ‘우리’를 생각했다. 청춘이 아프고 시들다가도 다시 꽃을 피우고 싶어 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도와달라”는 가사도 특정한 대상보다는 살아가는 세상에 시원하게 외치고 싶은 마음을 간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넘어지더라도 꽃을 피우고 싶은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달라는 의도를 담았다.
사실 가장 처음 쓴 노래는 ‘비틀비틀 짝짜꿍’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힘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왜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나와 회사의 공통적인 생각에 ‘입춘’을 쓰게 되었다.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었기에 지금까지 낸 노래 중에 가장 아끼는 곡이기도 하다.
현재 국어국문과에 재학 중인 영향인지 가사를 보고 있으면 표현이 참 세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나?
보통 세상을 둘러보다가, 또는 주변 사람들과 평범하게 대화하다가 가사가 시작된다. 거창한 소재보다는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가지는 생각을 꾸밈없이 표현한다. 취업에 대한 청춘의 걱정이나 흉흉한 세상 등 여러 소재를 어떻게 음악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면 ‘따뜻한 세상을 함께 만들고 싶다’는 메시지로 귀결된다. 두 번째 싱글인 ‘거울’도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깨달은 생각을 집에 가져가서 가사로 만든 곡이다.
문학 작품에서 가사의 영감을 받은 적도 있는지.
소설보다는 시를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다루는 주제에 어울리는 문체에 대해 많이 연구하고 있다. 특히 허연 시인의 시집 < 불온한 검은 피 >를 정말 좋아한다. 날카롭고 어두운 문체가 내가 쓰고자 하는 분위기와 맞는다 생각한다.

노래 제작 과정은 어떻게 되나? 작사와 작곡 모두 본인이 다 하는 것으로 아는데.
글을 먼저 쓴 다음 가사를 추출하고, 이후 어울리는 멜로디를 붙인다. 편곡은 얼마 전에 데뷔한 같은 어센틱 레이블 소속 가수 이새(Jesse)가 담당한다.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의 결이 나와 비슷해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다. 내가 레퍼런스를 제시하거나 사운드 측면에서 의견을 내면 찰떡같이 알아듣고 작업해 준다.
결이 비슷하다는 것은 록 장르를 의미하는 것인가?
그렇다. 둘 다 록 사운드와 장르 특유의 기승전결을 좋아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을지도 함께 연구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록이 매니아는 있어도 대중적으로 잘 소비되는 장르는 아니다. 그럼에도 록으로 가닥을 잡은 이유가 궁금하다.
평소에 의견을 직설적으로 표출하는 성격은 아니고, 오히려 남의 의견을 많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그러나 음악을 할 때만큼은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답답하더라도 록을 들으면 해소가 되곤 하는데, 이처럼 내가 받은 영향을 남에게 다시 주는 뮤지션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록에는 외치는 듯한 그런 울림이 있지 않나. 나도 세상에 소리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록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그렇다면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나 음악은 어떻게 되나.
장르는 대체로 다양한데 가사에 울림이 있어 몰입할 수 있는 곡을 좋아한다. 선배 뮤지션으로는 이소라와 자우림을 정말 좋아하고, 해외 가수 중에서는 코난 그레이를 꼽고 싶다. 세상을 따뜻하게 표현하는 가수다.
노래 자체도 좋지만 라이브 무대에서 보여주는 실력도 뛰어나다. 원래 좀 노래를 했는지, 아니면 피나는 연습의 산물인지.
내 경우는 확실히 후자다. (웃음) 아무것도 없이 회사에 연습생으로 들어온 후 지금까지도 꾸준히 레슨을 받고 있다. 연습을 계속하면서 점차 구실을 갖추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느껴서 미래를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회사에 다짜고짜 음악을 배우고 싶다는 메일을 먼저 보낸 후 계약했다고 알고 있다.
원래 음악에 대한 직업적인 생각이 딱히 있지는 않았는데, 어느 순간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무턱대고 연락을 보냈다.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조금 더 노력하면 충분히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으로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그때 치기 어린 내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참 신기하다.
인디 레이블에서의 연습생 시스템은 다소 생소하다. 어떻게 돌아갔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
프론트맨으로서 갖춰야 할 자질을 배우는 시기였다. 앞서 말했듯 보컬 레슨도 받았고 미디(MIDI)도 배웠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한로로’라는 아티스트의 브랜드를 어떻게 구축할지 함께 고민했다. 처음에는 귀여워 보이는 팝 쪽으로 갈까도 했지만 아무래도 내게 맞는 옷이 아니라 판단했고, 차근차근 과정을 거치면서 록으로 방향을 잡았다.
전반적으로 노래가 어둡고 서정적인 느낌이 있다 보니 듣고 있으면 어떤 삶을 살아왔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학창 시절은 사실 생각보다 활발한 편으로, 오히려 친구들을 웃겨주거나 얘기를 나누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다 같이 입시로 힘든 상황에서 터놓고 대화하다 보니 자연스레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고, 친구들을 넘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신인 뮤지션이지만 드라마 < 나의 해방일지 > 사운드트랙 ‘다이아몬드’에 작사가로 참여했다. 신인 가수에게 작사 의뢰가 가는 것이 흔한 경우는 아닐 텐데.
마침 같은 소속사의 가수 최기덕의 곡이었다. 원래 작사 작곡 능력이 뛰어난 분이지만 내 작사 역량을 좋게 보고 기회를 먼저 주셨다. 다행히 드라마 측에서도 좋게 봐주셨다.
반대로 다른 사람이 쓴 곡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악뮤 이찬혁이 진행하는 이찬혁비디오 프로젝트의 < 우산 > 앨범 수록곡 ‘Romantico'(TETE 원곡)도 그렇고, 이외 다른 사운드트랙도 다른 작곡/작사가의 노래에 보컬로 참여했다. 본인의 곡을 직접 만드는 싱어송라이터의 입장에서 이런 경우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는지 궁금하다.
작곡가나 원곡자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보컬을 연습한다. 아무래도 내가 쓴 곡이 아니다 보니 원작자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최대한 화자의 이야기에 몰입해서 녹음하려 한다. ‘Romantico’의 경우도 녹음하면서 이찬혁에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부르면 되는지 솔직하게 질문했다.
< 우산 > 앨범 참여는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
구체적인 것은 나도 잘 모르지만 이찬혁 측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곡을 고르고, 이에 어울리는 보컬을 찾다 나를 발견해서 연락을 줬다고 알고 있다. 내가 가진 무드가 음반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그 후로도 간혹가다 SNS에서 재밌는 영상을 보내거나 하는 그런 식으로 말을 주고받고 있다. (웃음)
폭발적인 전개를 보여준 ‘입춘’과 ‘거울’ 이후 발표한 ‘비틀비틀 짝짜꿍’은 다소 발랄했고, ‘당신의 밤은 나와 같습니까’와 ‘정류장’은 잔잔한 편이었다. 그런데 데뷔 1년을 넘기고 발매한 ‘자처’는 처음 두 곡과 편곡 면에서 느낌이 비슷해서, 이를 듣고 한 바퀴 여정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비틀비틀 짝짜꿍’을 제외하면 나머지 곡은 당시 느끼는 감정을 순차적으로 담아서 바로 발표했다. 따라서 순서에 특별한 의도가 담기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내 생각이 돌고 도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파했다가도 힘을 내며 열심히 살고, 그러다 후회가 들기도 하는 그런 그림. 그런데 이것이 그저 내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오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고민이 아닐까 한다. 앞으로도 그때마다의 감정에 따라서 곡을 쓰고 공개할 것 같다.
가수 전에는 시나리오 작가를 꿈꿨다고 했는데, 이렇게 보니 음악에도 느슨하게 서사가 있는 것 같다. 나중에 콘셉트 앨범을 낼 수도 있지 않나 싶은데.
구체적으로 주제를 정한 것은 아니지만 욕심은 있다. 조금 더 살아봐야 생각이 구체화되지 않을까 싶다.

마침 8월 29일 공개한 신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제목은 < 이상비행 >, 여섯 곡이 담긴 EP로 4월에 발매한 ‘자처’와 라이브 공연에서 부른 ‘해초’를 수록했다. “이상”이라는 단어 자체가 동음이의어잖나. 현실에서 벗어나 꿈과 ‘이상(理想)’을 좇는 이들을 ‘이상(異常)’하게 보는 사람들이 특히 요즘 늘어나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시선에서 벗어나 나의 ‘이상(理想)’을 찾아 비행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사운드 면에서는 발매 시기인 여름에 맞게 조금 더 청량하고 과감해졌다. ‘입춘’보다 밝고, ‘비틀비틀 짝짜꿍’보다는 강하게. 여름에 들을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그전까지는 다 싱글만 발매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틀을 먼저 다지고 싶었다. 음반을 서두르게 내면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완벽하게 풀어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대신 싱글을 하나씩 내면서 입지도 다지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히 알고 싶었다. 이제는 그래도 될 것 같아서 EP를 발매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싱글 단위로 내다보니 이야기가 이어진다 하더라도 뚝 끊어지는 느낌이 있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 이상비행 >이라는 제목 아래에서 한 편의 영화 같은 느낌을 내고 싶었다. 나 또한 메시지에 집중하고 몰입해서 EP를 작업할 수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들거나 열심히 작업한 곡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타이틀곡인 ‘금붕어’다. 음반 제목을 가장 잘 표현한 곡이라 생각해서 타이틀로 결정하게 되었고, 어항 속에 살다가 자유로워지고 싶어 바다로 나간 금붕어의 이야기를 다룬 곡이다. 막상 나가보니 바다는 어둡고 무서운 것으로 가득했고, 다시 생각한 끝에 자신이 원했던 것이 공기가 있는 푸른 지상과 맑은 하늘이라고 깨닫게 된다. 사실 금붕어는 공기에 닿으면 숨을 못 쉬어 죽지 않나. 그렇지만 죽음을 무릅쓰고도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겠다는 당당한 포부를 표현하는 곡이다. ‘입춘’에서 새싹에 우리를 비유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금붕어에 나를 대입해서, 여러 시선을 다 제치고 도전하고 싶다는 용기를 담아봤다.
EP니까 언젠가 정규 앨범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인가.
당연히 그렇다. 일단 지금은 이번 < 이상비행 > EP에 집중하고 있고, 발매하자마자 본격적으로 다음 단계를 밟아가려는 준비를 하고 있다. 쉬면 오히려 불안한 스타일이다.
목표로 삼은 무대가 있나? 코첼라 이런 것도 좋다.
딱히 없지만 그렇다면 코첼라로 하겠다. (웃음) 사실 특정한 목표를 잡고 이를 성취했을 때 노력했던 것이 사라지는 기분이 좀 이상하다. 개인적으로 네이버 온스테이지를 정말 나가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서게 된 것이 기쁘면서도 다음 목표를 어디로 두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그래서 차라리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대신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넓게 보려 한다. 무대에 건강하게 오를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다는 생각의 결과다.
이즘의 공통 질문이다. 한로로를 음악으로 이끌었거나, 또는 계속 음악을 하게 만드는 인생 음악/음반 또는 아티스트는?
바네사 칼튼(Vanessa Carlton)의 ‘A thousand miles’를 정말 꾸준히 들었다. 중학교 시절 우연히 곡을 처음 듣고 이후 앨범 < Be Not Nobody >도 즐겨 들었다. 지금도 기분 전환이 필요하거나 슬플 때, 산책할 때 등 기분 가리지 않고 종종 찾는다. 어떻게 보면 이 노래를 처음 들으면서 음악에 대한 매력을 본격적으로 알게 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로로가 생각하는 한로로의 음악을 설명해달라.
내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과 아픔을 최대한 솔직하게 풀어내려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다시 일어날 용기와 살아갈 의지를 주려 노력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것 아닐까.
진행: 한성현, 장준환, 정다열, 김태훈
정리: 한성현
사진 제공: 어센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