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Interview

[IZM X 부평구문화재단] #9 하헌진 인터뷰

“이 시대, 세대에도 블루스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한국에서 보여주고 싶다.”

웹진 이즘(IZM)이 인천 부평구 문화재단과 함께 하는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홍이삭, 김구라와 아들 그리, 백영규, 박기영, 리듬파워, 쿠마파크 등이 자리해 그들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아홉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은 블루스 뮤지션 하헌진이다.

우직함과 강단. 2009년 데뷔 이후 올해 활동 11년 차에 접어든 하헌진은 장난기 어린 말투 사이 신념 있는 대답을 이어갔다. 블루스에 대한 애정이 유독 각박한 한국에서 그는 블루스, 그중에서도 ‘델타 블루스’를 연주한다. 델타 블루스는 블루스의 탄생지인 미시시피강 인근 델타 지역에서 시작된 장르로 강한 리듬감과 코드 변환을 매끄럽게 이어가는 슬라이드 주법이 특징이다.

“이 시대, 세대에도 블루스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한국에서 보여주고 싶다.” 흔히 ‘서울의 블루스 맨’이란 애칭으로 소환되는 그는 단단한 포부를 지녔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때로는 솔로로 또 때로는 그룹으로 변신하며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다. 2019년에는 현재의 4인 체제를 갖춰 ‘하헌진 밴드’를 출범, 몇 달 전 첫 음반 < 신나게 놀아보자 >(2020)를 발매했다. 이렇듯 그의 행보는 뚜렷하고 꾸준하다. 서서히 불어오는 찬 바람이 가을을 알리던 9월의 어느 날, 이즘 사무실에서 만난 하헌진과의 인터뷰를 공개한다.

음악 활동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자신을 간단히 소개해 달라.
5월 1일에 전역하고 그해 11월쯤 서교 예술 실험 센터에서 첫 공연을 했다. 그게 벌써 2009년의 일이다. 그때부터 줄곧 블루스 뮤지션으로 살고 있다. 어쿠스틱 블루스, 2인조 펑크(punk) 블루스를 비롯해 일렉트로니카와 아날로그 장비들을 이용해 일렉트로닉이 섞인 블루스를 하기도 한다. 지금은 4인조 블루스 밴드를 하고 있다. 2017년에는 <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라는 독립 영화의 음악을 맡았다. 기타 돈 되는 일은 모든 한다고 보면 된다. (웃음)

블루스의 색채가 강하긴 하지만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했다. 특히 2015년 싱글 ‘다시 날 받아주었네’와 2016년 발매한 EP < 나아진게 없네 >에서 들려준 전자음 가득한 사운드도 재밌었다.

< 나아진게 없네 >는 아날로그 드럼머신, 신시사이저, 기타로 만들었다. 여기서 들리는 특수한 소리는 다 아이패드를 통해서 찍어낸 거다. 최근에는 컨트리풍의 음악을 하려고 준비하다가 잠깐 멈춰두고 ‘하헌진 밴드’를 통해 다시 델타 블루스를 다루고 있다. 루츠(Roots)한 델타 블루스 성향의 싱글을 만들고 있다.

하헌진 밴드는 어떻게 결성하게 된 건가?
베이스 치는 김지인이 ‘나잠수와 빅웨이브즈’에서 활동했다. 문래동에서 공연장에서 처음 만났는데 블루스를 좋아한다더라. 그렇게 제일 먼저 함께했고 (김)지인이 대학교 친구였던 하모니카의 우상석을 추천해줬다. 셋이서 3년 정도 공연을 종종 했다. 2019년에 밴드 실리카겔의 김건재가 드럼 합류하며 4인 체제가 됐고.

하모니카를 정규 멤버로 넣은 정통 블루스 밴드를 꾸리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하모니카‘도’ 하는 사람은 있었어도 하모니카‘만’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하모니카가 있는 밴드를 처음 해보기도 하고 실제로 본 적도 없었다. 이걸 어떻게 살려 음악을 해야 하나 고민이 굉장히 많았다.

하모니카 소스가 계속 들리면 그게 패턴의 반복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올해 2월에 발매한 음반 < 신나게 놀아보자 >의 포인트는 전곡에 하모니카가 등장하는 것이다. 전곡에 하모니카가 등장하는 블루스 록 밴드는 없었다. 나도 소니보이 윌리암슨(Sonny Boy Williamson)이나 리틀 월터(Little Walter) 스타일의 음악도 물론 하지만, 시카고 블루스만 봐도 보컬이 나올 땐 하모니카가 빠지고 하지 않나. 지루하지 않게 녹여내는 데 많은 애를 썼다. 결과적으로 더 재밌는 음반이 나왔다.

< 신나게 놀아보자 >를 하헌진 커리어 중 가장 좋은 음반이라 생각될 정도로 좋게 들었다. 기타와 하모니카도 유기적으로 연결돼있었고 악기별 밸런스도 늘어지지 않게 신경 쓴 인상이다.
솔로로 만들었던 일렉트로닉 블루스 성향의 < 나아진게 없네 >를 하헌진 밴드가 리메이크한 앨범이다. 솔로나 밴드로 들려주고 싶었는데 들려주지 못한 것들을 마음껏 담았다. 뮤지션 김토일이 운영하는 스튜디오에서 8시간 만에 원 테이크로 녹음했다. (김)토일의 도움으로 믹싱, 마스터도 직접 했고.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홍보가 잘 안 돼서 제대로 된 인디 음반을 내보려던 애초의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씁쓸하다. (웃음)

홍대 등지의 클럽에서 공연을 많이 하는 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타격이 크지 않나.
‘잔다리 라이브 투어 지원 사업’에 선정돼서 11월에 단독 공연을 하게 됐다. 관객을 많이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무관중 라이브 시스템으로 준비 중이다. 이쯤 되니 (코로나로 인한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그 외에도 재밌는 기획을 많이 했는데 다 취소됐다. 밴드 맨들 몇 명과 모여 오토바이를 타고 독립 영화 극장 순회공연을 굵직하게 계획했었는데 취소. 일본에 공연 다니며 알게 된 블루스 뮤지션들의 내한 공연을 추진했는데 그것 역시도 취소. 9월 10월 활동들이 많이 무산됐다.

그럼에도 부평구문화재단과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잘 마쳤다. 10월에 국내 재즈 1세대로 볼 수 있는 트럼페터 ‘최선배’와 작업한 ‘어두운 골목길’이란 싱글을 발매한다고.
‘어두운 골목길’은 197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 어제 내린 비 >에 수록됐던 곡이다. 편곡을 혼자 다 했는데 음악 자체에 당시 시대적 배경들이 담겨있어 막히던 부분들도 있었다. 원곡의 편곡된 복잡한 구성이었지만, 최대한 심플하고 모던하게 편곡을 하고자 했다. 사람들이 들었을 때 고개를 끄덕이며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되길 바랐다. 주니어 킴브루(Junior Kimbrough)라든가 알엘 번사이드(R.L. Burnside) 풍의 1980년대 주크 조인트 스타일의 델타 블루스가 있다. 단순한 디비트에 베이스도 반복되고, 기타도 반복되고. 한편으로는 한국 대중들에게 이런 블루스가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도 싶었다. 내 음악에서도 구현하고 싶었지만, 이번 기회에 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최선배와의 작업은 어땠나?
선생님 파트는 전적으로 다 맡겼다. 매번 테이크가 다를 정도로 자유로웠다. 처음에 선생님 색대로 그냥 연주해 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약간 당황하셨다. 주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주어진 대로 정확히 연주하는 게 방식이었으니 낯설 법도 하다. 작곡가가 시키는 대로만 연주를 하셨다고 하니 말이다. 막상 솔로 연주에 들어가니 달라지시더라. (웃음) 선생님께서 잘 해주셔서 색이 확 살아났다. 멤버들도 단순해서 오히려 더 힘들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브라스 사이 하모니카를 잘 담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기도 했는데 (하헌진) 밴드 멤버들 덕에 잘 끝냈다.

인천-부평과의 인연이나 기억나는 추억들이 있을까?
2017년 즈음 부평의 ‘씽크빅문고’에서 공연을 했던 적이 있다. 서점이라는 데는 동네의 색채를 많이 반영한다. 예를 들어 보광동에는 잡지나 문제집이 많고 서울대학교 근처에는 사회, 과학 서적이 즐비하다. 특이하게 씽크빅문고는 서점이라기보다는 만남의 광장?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럴 땐 대중들이 잘 아는 커버 곡을 들려줬어야 했는데 나는 내 노래만 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잘 즐겨줘서 색다르고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음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계기는.
중학교 2학년 새벽에 MTV에서 너바나의 < 언플러그드 인 뉴욕(Unplugged In New York) >(1994)을 봤다. 그때 기타를 시작했다. 당시 동네에 ‘이제는 파실래요’라는 매장이 있었다. 모든 물건이 다 천 원이었다. 거기서 아버지가 12현짜리 기타를 사다 줬다. 그중 6줄만 껴서 연습했었다. (웃음) 손가락이 아파서 관둘까 하던 참에 일렉트릭 기타를 샀다. 줄이 되게 얇고 치기도 편하더라. 굉장히 열심히 연주했다.

처음부터 블루스의 길을 걸은 건 아니다.
시작은 당연히 록이었다. 친구들이 듣던 라디오헤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같은 록을 들었다. 어릴 때 한번은 서태지 솔로 2집인 < 울트라맨이야 >(2000)를 택시에 두고 내려서 울면서 뛰어다니고 그랬다. (웃음)

중학교 때 한 음악 동호회 정모에 나갔는데 어떤 형이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을 추천해줬던 기억이 있다. 기타는 페르난데스(Fernandes)가 좋다고 이야기해주기도 했고. (웃음) 그런데 집에 가서 추천받은 레드 제플린, 비틀즈, 크림(Cream)을 듣다가 문득 이 노래들의 기원을 어딜까 생각했다. 당시 자주 읽던 < 올뮤직(Allmusic) >에서 이런 음악들이 어디에서 왔다는 리뷰를 읽게 되었다. 머디 워터스(Muddy Waters)의 음악을 알게 되었고, 롤링 스톤즈는 척 베리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임진모 선생님께서 쓰신 ‘비틀즈 VS 비치 보이즈’라는 글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블루스로 넘어가면서,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통해서 공부했다. 말이 길어졌지만 어떤 뮤지션이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알게 되면서 블루스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이런 부분들을 많이 참고했다.

내가 블루스를 고집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없어서다. 델타 블루스가 좋은데,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던 마음이 가장 크다.

록 음악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록 음악은 자본이 넘치고 넘쳐서 생긴 음악 중 하나다. 배부른 저항이지. 지금까지 아시아에서 그걸 너무 필터링 없이 답습해왔다. 한국은 일본처럼 건전한 청년 문화 등 사회적 논의가 있지도 않았고, 본인들이 좋아하는 록스타들의 외형만 가져오곤 했다. 한국 록 시장은 팬들이 만든 시장이다. 자연히 그 팬들이 나이 들어가며 쇠퇴할 수밖에 없다. 다음 세대에게 음악을 물려줄 만한 동력이 있지도 않고, 마니아 취향에서 벗어나지 않는 점도 있고. 뮤지션들도 음악 시장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했다. 소수의 고급 취향처럼 남아있는 상황이라 본다. 

블루스 음악을 하는 하헌진의 경우는 어떤가.
블루스 음악을 하면 마음이 편하다. 따지고 보면 나는 과거 블루스 아티스트들의 ‘팬질’을 하고 있는 거니까. 아주 넓게 생각하면 에릭 클랩튼도 고전 블루스 아티스트들의 열렬한 팬 아닌가. 그럼에도 프로라면 팬으로 출발했어도 시장과 사회에 미칠 영향력을 고민해야 하는데 대부분 자기만족에서 머물고 만다. 한국에서는 유명해지면 모두 ‘연예인’ 아닌가. 

뮤지션 하헌진으로서 목표가 있다면.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사람과 음악이 일치되기 어렵지 않나. 진부할 수는 있어도 진정성 있고 진솔한 뮤지션으로 남고 싶다. 이 시대, 세대에도 블루스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역시 보여주고 싶다.

또 하나 중요한 목표가 로컬 아티스트로의 기능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공연을 하다 보면 친구들이 그런 말을 한다. “프랑스에서 한국말로 블루스를 하면 너는 돈을 받고 음악을 한다.”라고. 처음에 그런 얘기를 들으면 혹하지. 하지만 차츰 여기서 자리 잡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여기서 정착해야 다른 친구들도 이 나라에서 같이 음악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나 혼자 나가고 끝나면 곤란하다. 가뜩이나 델타 블루스를 하는 사람이 얼마 없는데 내가 중심을 잡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마지막으로 하헌진이 뽑은 ‘내 인생의 음반’을 소개해 줄 수 있나.
존 리 후커의 < The Country Blues of John Lee Hooker >(1959)를 2009년쯤 듣고 블루스 음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두 번째로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 Watertown >(1970)이다. 프랭크 시나트라 커리어 중 유일하게 오케스트라와 따로 녹음한 작품이고 슬픈 시골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콘셉트 앨범인데 고작 3만 장 팔려서 프랭크 시나트라를 은퇴하게 만든 앨범이다. ‘앨범은 이렇게 서사적인 구성이 있어야 한다’는 개념을 배웠다.

세 번째 앨범은 그레이스 존스의 < Slave To The Rhythm >(1985)이다. 이 앨범도 콘셉트 앨범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드럼 머신과 끝없는 잼, 악기 연주 위 디스코와 덥(Dub)이 어지럽게 섞여 든다. < 나아진 게 없네 > EP를 만드는 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허비 행콕의 < Thrust >(1974) 역시 미니멀한 퓨전 재즈의 끝이라 좋아하고. 마지막으로는… 비치 보이스? < Pet Sounds >(1966)는 많이 꼽으니 < All Summer Long >(1964) 하겠다. 

인터뷰 : 신현태, 박수진, 임동엽, 김도헌, 장준환
사진 : 임동엽
정리 : 박수진
기획 : 부평구문화재단 문화도시추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