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는 코로나 19 여파로 인한 음악 산업계 피해 규모가 약 877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중소 레이블 및 유통사의 발매 연기 및 취소, 인디 뮤지션들의 소규모 공연부터 대규모 페스티벌까지 사라져 버린 공연 시장의 실태를 반영한 통계다.
그러나 이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이어나가는 음악인들의 목소리가 있다. IZM은 코로나 19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모든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
첫 번째로 IZM이 찾아간 곳은 이태원이다. 2016년 문을 연 서울커뮤니티라디오(Seoul Community Radio)의 기획자 이슬기를 만나 서울커뮤니티라디오가 걸어온 길, 이태원의 오늘,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들을 수 있었다.

IZM 독자들에게 SCR이 어떤 커뮤니티인지 설명해달라.
SCR(Seoul Community Radio)은 한국 언더그라운드 씬의 전자음악을 해외에 알리고, 동시에 해외 뮤지션을 한국에 알리는 교환 형태의 플랫폼이다. 이런 인터넷 방송국이 해외에는 흔해도 한국에는 생소하다. 표면적으로는 라디오 포맷을 따르고 있지만 오디오만 있으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비디오를 달아 보이는 라디오처럼 시작했다.
SCR을 보면 문득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방송국 보일러 룸(Boiler Room)이 생각나기도 한다.
보일러 룸보다는 마찬가지로 영국에 기반을 두고 있는 NTS 라디오(NTS Radio) 모델에 좀 더 모토를 뒀다. 물론 중요한 건 우리만의 차별성이다.
차별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
사람들의 반응을 봐야 하는 클럽과 달리 우리는 라디오 스테이션을 지향한다. 클럽에서 못 트는 노래도 이곳에서는 틀 수 있다. 앰비언트, 재즈, 옛날 한국 가요들, 새로 디깅한 튠 등을 모두 가져와 음감회처럼 설명할 수 있는 곳. 따로 믹스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곳 말이다. 아무래도 클럽 셋리스트의 경우 테크닉도 있어야 하고 트렌디해야하지 않나. 그런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라이브 방송을 보다보면 배경에 ‘아기공룡 둘리’같은 옛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흘러나오는 게 재미있다. 더불어 해외 아티스트들보다는 로컬 아티스트 중심으로 섭외하는 것 같고.
처음 SCR을 만들 때 목적이 바로 로컬 아티스트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어느날 런던에서 온 외국인 친구가 “한국 디제이 음악은 어디서 들어야 하냐?”는 질문을 하더라. 나도 의문이었다. 해외는 라디오 스테이션이 많아 디제이와의 접근이 쉬운데, 한국은 사운드클라우드 정도로만 소통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한남동에 있던 스튜디오를 지난 5월 이태원 초등학교 부근으로 옮겼다.
계약 기간이 끝나기도 했고, 오프라인과의 접점을 더 만들고 싶었다. 지난 스튜디오는 공간이 좁아서 많은 분들이 방문하시기에는 제약이 있었다. 이곳 월세가 3배 정도 더 비싸다. 도박이라면 도박이었다. (웃음)
확실히 공간이 넓어졌다. 가볍게 들르기도 좋은 오픈 스페이스다.
지나가시는 분들이 여기 뭐 하는 곳이냐고 자주 물어보신다. (웃음) 너무 복잡하게 설명할 수는 없고… “음악 스튜디오인데, 맥주도 팔고 디제이도 오는 곳이에요”라 이야기한다.
그리고 오픈 파티를 연 다음날 바로 ‘이태원 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사건이 터졌고.
그 이후로 2주 정도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었다. 가장 붐빌 토요일 밤에도 이태원역에 내려가 보면 한두 명도 마주치기 힘들 정도였다. 코로나 감염이 심각해지자 여러 베뉴들이 오프라인 장사 대신 온라인 시장에 집중할 때 반대로 우리는 이사 준비하느라 바빠 라이브 스트리밍을 잠시 쉬고 있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지 (웃음) .
코로나 사태로 지금 이태원이 여러모로 힘든 상황을 겪고 있다. SCR도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텐데.
타격이 크다. 예전 스튜디오는 수입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구조여서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같은 외부로부터 수익을 얻고는 했는데, 이번 코로나가 터지면서 90% 정도 수익이 끊겼다. 브랜드도 1년 마케팅 비용을 회수해갔다. 클럽도 문을 닫고 페스티벌도 취소된 터라 관련 이벤트도 현저히 줄었다. 디제잉을 본업으로 삼고 계시던 분들 모두 생활이 힘들다고 말씀하신다.
그럼에도 SCR은 꾸준히 활동을 지속해왔다.
다행히도 반스와의 협업으로 2주마다 강남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로컬 아티스트 서포터 개념으로 라이브를 진행하고 있다. 작년 압구정 매장에서 테스트해 본 아이디어인데 본사 반응이 좋아서 계속하게 됐다. 최근에는 케이크샵(Cakeshop)과의 팝업 숍을 열었다. 원래는 5월 말 즈음 실행할 예정이었는데 집합 금지 명령 기간 동안 중간중간 콘셉트가 조금씩 바뀌어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6월 15일 서울커뮤니티라디오에서는 클럽 버트(Vurt), 파우스트(Faust), 볼노스트(Volnost) 관계자들이 모여 런던 / 베를린을 기반으로 한 인버티드 오디오(Inverted Audio)와 이태원 커뮤니티의 현실을 인터뷰했다. 파우스트(@faustseoul)의 설명을 가져와 그 내용을 요약한다.
“대부분의 클럽들이 이미 3월초부터 휴업을 해왔지만, 현재까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과 대책은 전무하다. 서울시는 지난 5 월초 사실상 클럽을 무기한 폐쇄시키는 집합금지 (2 인이상 집합을 금지함)명령을 내렸지만, 이것이 ‘영업금지’ 명령은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책임져야 할 근거가 없다는 애매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커뮤니티에서의 인터뷰를 인상깊게 읽었다.
코로나 이전에도 클럽은 늘 힘들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상황이 정말 심각해졌다. 영업은 무기한으로 제한하면서 이에 대한 지원은 하나도 없었다. 정부에서도 표면적으로 음악인이나 문화, 예술업계에 지원금을 준다는 정책을 마련했지만, 우리같은 언더그라운드 베뉴와 아티스트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거의 없다.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지만 이런 사태가 터졌을 때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분야가 음악이고, 음악 중에서도 언더그라운드가 타격이 가장 크다 말하곤 한다.
클럽 발 감염이 불거지며 이태원과 클럽에 대한 인식도 매우 나빠졌다.
거의 혐오 대상 아니었나. 하지만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다음날 베뉴 소속 오너들과 디제이들 모두가 용산구청에 가서 코로나 테스트를 받았는데 단 한 명도 양성이 나오지 않았다.

코로나 이후 음악계 전반이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고, 언더그라운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상황이 급변하기도 하고 워낙 예측하기도 힘드니까 그렇게 먼 미래까지 계획하고 있지는 않고, 당분간은 눈앞에 놓인 팝업 위주로 할 예정이다. 최근 커뮤니티 서비스(Community Service)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어려운 시기를 같이 보내는 이태원 상인들과 도움을 주고받는 프로그램이다. 지금은 로컬 레스토랑 세 군데와 협업 중이다. 저희는 음악과 술을 드리고 레스토랑 분들은 음식을 제공한다.
디제이분들 중에는 레슨을 시작하신 분이나 다른 직장을 찾으시는 분들도 계시고, 이 틈을 타 개인 곡 작업을 하시는 분도 계신다. 그래서인지 올해 발매되는 트랙이나 앨범들이 많은데, SCR은 그런 분들께 공연과 쇼케이스 장소가 될 수 있다.
최근에는 런던 기반의 방송국 린스FM(RINSE FM)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원래는 투어를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외국을 나갈 수는 없지 않나. 코로나 사태 이후로 온라인 콘텐츠로 아예 노선을 바꿨다. 나중에 세상이 좀 안정되면 다시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웃음)
마무리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직 이태원이 위험한 공간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오해가 풀렸으면 한다. 그리고 디제이들도 아티스트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인터뷰 : 김도헌, 임동엽, 장준환
사진 : 임동엽
정리 : 장준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