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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추다혜차지스 인터뷰

‘광기의 복원’!

지난해 IZM을 비롯, 다양한 매체와 평단의 연말 결산 선정 과정에 이견이 없었던 단 하나의 작품이 있다. 2017년 NPR 타이니 데스크 라이브(Tiny Desk Live)에 출연한 밴드 씽씽의 일원, 소리꾼 추다혜가 꾸린 밴드 추다혜차지스의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다.

대중음악계, 국악계, 인디 음악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는 담대하게도 무가(巫歌)와 블랙 뮤직을 혼합해 ‘코리안 펑키 샤머니즘 뮤직’이라는 야심 찬 출사표를 내놓았다. 노선택과 소울소스에서 기타를 친 이시문, 까데호의 베이스와 드럼을 맡은 김재호, 김다빈과 함께 사이키델릭, 힙합, 레게, 소울, 펑크(Funk), 재즈가 온통 뒤섞인 오색천을 하늘하늘 내려가며 가락을 탄다. 

만남 전 예상과 달리 추다혜차지스와의 인터뷰는 빈틈없이 즐겁고 해맑았다. 하지만 발랄함 속 본인의 의지를 피력하는 부분에서는 네 멤버 모두 눈이 반짝였다. 오래도록 금기시되어왔으며 교육 과정에도 배제된 무속 신앙과 굿판을, 누구의 투자나 도움 없이 스스로 탐구하고 헤쳐나가는 과정을 즐겁게 풀어내며 소개해갔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은 ‘광기의 복원’! 그것이 추다혜차지스에게 내려온 영험한 기운이다.

과거 세대는 무속 음악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기억한다. 씽씽으로 성공적인 활동을 펼쳤던 추다혜가 무가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추다혜 : 2016년 한불상호교류의 해 행사 일환으로 개최된 ‘제 27회 파리 여름축제’ 한국포커스 <We Are Korean, Honey!> 행사에서 굿을 처음 접했다. 무대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굿, 무당, 무가라 하면 매체를 통해 접한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이미지가 머릿속에 주를 이루고 있었다. 공연을 보니 무섭다기보다는 재미있었다. 이후 무대에 올랐던 무당을 찾아가 그의 법당에서 전통 굿을 재차 관람했다. 상당한 충격이었다. 무의식적으로 각인된 거부, 부정한 것에 대한 인식이 모두 씻겨 내려가고 예술가의 면모가 보이더라. 

굿에는 상업적인 굿도 있고 그렇지 않은 굿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추다혜 : 내가 본 무당은 강신무(降神巫)였다. 신이 내리지 않은 무당은 세습무(世襲巫)라 하여 세습도 가능하고 워크숍 등지를 통해 교육도 가능하다. 반면 강신무는 신이 몸에 직접 실리기에 처음 보면 충격적인 요소들이 많다. 작두를 타거나 하는 굿이 강신무라 보면 된다. 하지만 그걸 보고도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무당이 걸어왔던 험로와 인생역정이 너무도 깊게 와 닿으며 인간적인 감화의 경험을 가졌다. 동시에 그들은 예술의 형태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그 지점에서 내가 무언가를 끌어오고 싶었고, 영적인 존재를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기고 치유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추다혜씨 외 타 멤버들은 어떻게 추다혜차지스에 합류하게 됐나. 

김재호 : 윈디시티 시절부터 이 음악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과거 재즈 그룹 레드선과 함께했던 김덕수와도 함께한 경험이 있었다. 블랙 뮤직을 주로 연주해온 입장에서 무가와 굿 장르와의 공통점도 많이 발견했다. 윈디시티 시절 이 장르에 대한 실험도 해봤기에 자신감이 있었다. 

이시문 : 노선택과 소울소스 활동 시절 김율희 명창과 함께 판소리와 밴드 음악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던 중 씽씽의 무대를 보고 충격을 받아 추다혜와 교류하게 되었다. 추다혜와 함께 제주도를 방문해 굿 한 판을 보고 나니 그간 갖고 있던 부정적 인식이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무당의 지휘에 따라 시작과 끝이 자유로이 맺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김다빈 : 초등학교 때 사물놀이를 잠깐 배운 적은 있었지만 국악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이후 가요 세션, 록 밴드 등 다양한 음악을 해왔지만 국악, 무가의 경우는 내게 아주 새로운 장르였다. 꾸준히 음악을 듣다 보니 흥미가 생겼다.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는 2020년 IZM 선정 올해의 가요 앨범에 올랐다. 이외에도 많은 평단 및 매체들이 앨범에 대해 만장일치 호평을 내리고 있다.

추다혜 :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이런 매체들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이시문이 그 글들을 보여줬을 때 ‘우리 음악이 왜 여기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시문 : 어느 정도 호평을 예상하긴 했다. 처음 믹스를 들은 순간부터 느낌이 왔다 (웃음).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는 생각이었다. 

김재호 : 비슷한 의견이다. 소재도 신선했고, 처음 믹스와 비교했을 때 엔지니어 우치다 나오유키의 최종 믹스 후 작업물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김다빈 : 앨범 발매 후 나도 이 앨범을 많이 들었지만 많이 기대하진 않았다. 예상보다 큰 관심에 감사한다. 

앨범 해외 유통은 동양표준음향사가, 국내 유통은 포크라노스가 맡고 있는데 제작은 추다혜가 도맡은 것으로 알고 있다.

추다혜 : ‘나를 기리는 작품으로 만들자!’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웃음). 제작비 펀딩도 없고, 기획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이 음악을 누가 들을지, 어떤 소비층에게 어필할지는 사실 고려한 지점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 음악은 국악계나 대중음악계 모두 낯선 음악이었다. 걱정은 있었지만 잘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두려움 반, 용기 반이었다.

작업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추다혜와 이시문이 각 무가로부터 멜로디를 가져온 것으로 안다.

이시문 : 기존 가락을 변주한 것은 사실이나 ‘작곡이 아니다’라 보기는 어려울 정도로 공을 들였다. 가사와 코드를 우선 정리한 상태로 작업을 시작했고, 그다음 변주를 더하는 방식으로 곡을 완성해갔다. 

추다혜 : 원하는 무가를 먼저 정한 다음 뼈대를 갖춰놓고 즉흥 연주를 통해 틀을 잡아갔던 것 같다.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가 무가를 재해석하는 데 주로 활용하는 장르는 블랙 뮤직이다. 음악적으로 어떤 형식을 통해 무가를 표현하고자 했나. 

추다혜 : 곰곰이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 펑키(Funky)함이었다. 무가는 신나고 재미있는, 댄서블 한 음악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어 고민이 많았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무가의 ‘공수’다. 공수는 연주 없이 말로만 풀어나가는, 신이 인간을 향해 말을 거는 형식으로, 듣는 이들에게 즉흥적인 느낌이 나도록 재미있게 전달하고 싶었다. ‘비나수+’ 뒤 쪽 ‘오늘은 말이야~’ 부분이 대표적인 예다. 노래가 아닌 공수 부분에 멜로디와 음가를 채우는 작업이 흥미로웠다.

김재호 : 그 지점이 우리에겐 가장 매력적인 요소였다. 틀을 정해서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멤버 한 명 한 명이 공수에 맞춰 유기적으로 멜로디와 리프, 키를 만들어 추다혜의 목소리와 흐름을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블랙 뮤직과 더불어 레게, 사이키델릭, 덥 등 다양한 장르들이 앨범에 녹아있다.

이시문 : 아무래도 우리 팀 멤버들이 레게를 연주하던 사람들이라 그런 곡은 꼭 있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비나수+’, ‘에허리쑹거야’ 같은 트랙이 그렇다. 그 외에는 구성을 했다기보다는 그때 그때 자연스럽게 우리가 하는 음악을 수정해나갔던 것 같다. 매체에서 묘사하는 다양한 장르들이 우리의 기본 요소가 되었을 테고. 우치다 나오유키의 터치가 덥의 요소를 더해줬고. 

상술한 것처럼 앨범은 초반에는 ‘공수’ 등 사이키델릭하고 차분한 흐름을 이어가나 ‘리츄얼댄스’를 기점으로 분위기를 전환한다.

추다혜 : 굿의 형식에 따른 전개다. 일반적으로 굿을 할 땐 굿을 하기 전 이력을 읊고 신을 청한 다음, 정화와 치유의 과정을 거쳐 화합하고 명복을 빌며 신나게 노는 흐름을 갖춘다. ‘공수’로 시작해 ‘축원’으로 마무리되는 스토리텔링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이시문 : 앨범 구성은 추다혜가 잘 준비해왔다. 

형식과 더불어 앨범에는 평안도, 제주도, 황해도 굿 3곡을 순서대로 배치했다. 선정의 이유가 있나.

추다혜 : 유명한 굿으로는 서울 지역 굿과 동해안별신굿이 있다. 접하기도 비교적 쉽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남들이 하지 않는 음악을 먼저 가져오고 싶었다. 아무래도 미친 것 같다! (웃음). 대중성이 많이 없어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컸다. 일단 평안도 및 황해도 굿은 이북 지역의 굿이다. 황해도는 그나마 전수되는 내용이 많은데 평안도는 거의 없다. 없다고 보면 된다. 제주도 굿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미 했던 건 다음에 또 하면 되니까 새로운 것, 흔히 사람들이 들어보지 못했던 것들을 빨리 가져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찌 보면 그 지점이 국악 인사였던 추다혜를 인디 신에 빠르게 적응토록 한 고유의 성격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김재호 : (가리키며) 얘는 국악보다 여기가 맞다 (웃음).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곡을 꼽아본다면.

김재호 : ‘오늘날에야’. 뻔하지 않은 리듬, 신선한 그루브, 좋은 전개와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이시문 : ‘Undo’를 꼽겠다. 앨범을 시작하는 데 적합한 곡이다. 작업 과정에서 2016년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그래미 어워즈 퍼포먼스를 많이 참조했다. 말 나온 김에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이 앨범을 힙합 앨범이라 생각하고 있다. 펑크(Funk)라는 카테고리가 없어 실제로 음원 사이트에서도 이 앨범이 ‘랩/힙합’ 카테고리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김다빈 : ‘에허리쑹거야’가 라이브 하며 가장 재미있는 트랙인 것 같다. 코러스도 많이 넣고. 

추다혜 : 사실 코러스를 시키기 미안했던 곡이다. 사운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멤버들에게 특별히 부탁한 지점이었는데, 이제는 멤버들이 마이크를 안 채워주면 섭섭해한다. 
김재호 : 뭐가 미안해. 엄청 시키더니… 

시문의 ‘힙합 앨범’ 이야기를 들으니 이 앨범을 들으며 크루앙빈(Khruangbin), 수(Sault), 도니 트럼펫 앤 소셜 익스피리먼트(Donnie Trumpet & The Social Experiment) 등 다양한 얼터너티브 소울 밴드들부터 더 루츠(The Roots) 등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시문 : ‘비나수+’ 역시 아웃트로를 따로 빼놓은 부분이 힙합에서 영역을 받은 지점이다. 한 트랙 안에서 스킷과 같은 효과를 내고 싶었다. 

무가를 성공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결국 굿이라 함은 비주얼, 무대, 퍼포먼스가 굉장히 중요한 예술 양식이다. 코로나19로 공연이 많이 멈춘 지금이 아쉽지는 않나.  

추다혜 : 앨범 제목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처럼 정말 당산나무 아래서 꼭 공연을 해보고 싶었다. 무가를 알려준 무당은 ‘너 거기서 노래하지 마라. 신들리면 큰일 난다. 빗자루만 갖고 있어도… ’라 경고했지만… (웃음) 얼마 전 남해 쪽에서 당산나무를 봤는데 정말 그 밑에서 노래를 하고 싶은 거다. 동네잔치처럼 야외무대를 꾸며보고 싶었다. 실제로 지난 8월 광주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에서 당산나무 세트를 지어주겠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코로나 19 확산 여파로 대면 공연이 급하게 취소됐다. 뮤직비디오도 찍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크다. 언젠가는 꼭 당산나무와 함께 무대를 꾸려보고 싶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꾸준히 공연을 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김재호 : 그래서 더 아쉽다. 시국이 이렇지 않았으면 더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추다혜차지스의 올해 성과에 대해 다시 한번 축하의 메시지를 건넨다. 하지만 밴드 멤버들의 이름을 보고 걱정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각자 팀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보니 프로젝트로 그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우려다. 향후 활동 계획은 어떤가. 

추다혜 : 멤버들은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 자신이 이 작업을 놓을까 봐 걱정이 많다. 어느 순간 갑자기 포기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책임감도 갖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도 계속 유지해나가며, 정체성은 유지하되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시문 : 최근에는 처음 모였을 때보다 더 흥미롭게 활동에 임하고 있다. 

김다빈 : 동감한다. 앞으로가 더 많이 기대되는 팀이다. 

김재호 : 밴드를 오래 하려면 무조건 편해야 한다. 곡 만들고 무대에 서고 앨범 작업하는 게 편해야 하는데, 추다혜차지스가 그런 팀이다. 안정감과 더불어 새로움에 있어서도 걱정이 없다. 추다혜에게 계속 새 노래를 가져오라고 보채는 편이다. (웃음) 곡만 가져오면, 우리가 알아서 만들어 줄 테니…

김다빈 : 내년에 후지 록 페스티벌도 가야 할 것 아닌가.

이시문 : 힙합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레이션도 꼭 해보고 싶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의 정체성은 힙합이다 (웃음).

끝으로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를 듣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추다혜 :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건 기분 좋다. 하지만 냉정히 우리 음악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어떤 경로로든 이 앨범을 듣게 된다면, 가볍게 많이 들어주셨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평단에서 좋아하면 대중적인 음악은 아닌 거네?”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구분 짓지 않고, 재미있게 들어주셨으면 한다.

이시문 : 앨범 단위로 들어주셨으면 한다. 전체적인 흐름과 구성에 많은 신경을 썼다. 

김재호 : 무가, 무당, 굿 등 요소도 크게 인식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다. 국악도 아니고, 인디 밴드의 작품도 아니고, 그냥 ‘좋은 음악으로’, 편안하게 소비해주셨으면 좋겠다. 

김다빈 : 코로나 19 확산세가 잦아들면 더 많이 라이브 무대를 갖고 싶다. 함께 ‘에허리쑹거야’를 부르는 날을 기다린다.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임동엽
정리 : 김도헌
사진 : 임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