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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M X 부평구문화재단] #11 차승우 X 차중용 인터뷰

‘그대는 가고’의 녹음을 마친 차승우는 “음악 인생 중 가장 무겁게 마음을 먹고 녹음한 노래”라고 말했다.

웹진 이즘(IZM)이 인천 부평구 문화재단과 함께 하는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관계한 여러 뮤지션들이 자리해 그들 자신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열한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은 밴드 노브레인, 문샤이너스, 모노톤스를 거쳐 새 프로젝트 밴드 ‘조카들’을 이끌고 있는 로큰롤 기타리스트 차승우다.  

차승우의 새 밴드 기획 ‘차승우와 조카들’은 막 저 옛날 1968년에 발표된 노래 ‘그대는 가고’의 녹음을 마쳤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으로 유명한 국내 로큰롤 초기 역사의 레전드인 밴드 ‘키보이스’의 차중락이다. 스물네 살에 요절한 차중락은 차승우의 아버지 차중광의 형으로, 차승우에게는 큰아버지다. 차중락의 노래를 리메이크하니 프로젝트 팀명을 ‘조카들’로 한 이유를 알 만하다.

이런 걸 두고 재탄생이라고 하는 것 아닐까. 비록 오래된 곡이지만 현대적 감성을 녹여낸 편곡 덕에 지금 들어도 깔끔하다. 원래 차승우는 이 고전을 부친 차중광과 함께 다시 만들려고 했다. 아버지는 과거 형 중락과 같이 키보이스로 8군 무대를 누비던 추억을 환기하며 부평구 문화재단의 기획 ‘부평사운드’에 맞춰 곡도 ‘그대는 가고’로 직접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암 투병 중 지난 8월 27일 별세하면서 부자(父子)의 콜라보레이션은 완성되지 못했고 작업은 아들 혼자 떠맡게 되었다. 차승우의 부담과 책임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어린 조카로서, 아들로서 선대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음악 인생 중 가장 무겁게 마음을 먹고 녹음한 노래”라고 했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밤하늘의 연가’, ‘나는 혼자다’ 그리고 ‘사랑의 종말’ 등등 지금도 사랑받는 차중락의 유작이 많다. 그 중에서 하필 ‘그대는 가고’를 리메이크한 이유는?
차승우: 이 ‘부평사운드’ 프로젝트에 참여할 즈음만 해도 아버지(차중광)께서 노래를 하실 수 있다고 하셨고 아버지께서 굳이 형 차중락 곡 가운데 ‘그대는 가고’를 하시길 원하셨어요. 아버님의 선택인 셈이죠. 하지만 작업이 진척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아지셨어요. 전에 워낙 건강하셨기 때문에 더 그러네요.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새로 녹음된 ‘그대는 가고’를 들어 봤는지.
차승우: 들으셨어요. 완성된 음원에 다 만족하시진 않으셨는데 ‘편곡이 재밌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제 기타를 유심히 들으시곤 1960년대 영국 밴드 섀도우즈(Shadows) 같다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실제 그런 느낌을 의도했던 거거든요. 기분도 좋았고 오래 음악을 하신 분이라 역시 보통 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프(surf) 기타를 부여하는 것이 기타편곡의 핵심이었는데 곧바로 알아차리신 거죠.

막상 ‘그대는 가고’ 녹음에 들어갈 때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다.
차승우: 편곡, 녹음할 때 책임감이 느껴졌죠. 차씨의 이름을 물려받은 가장 나이 어린 조카, 아들로서 임하게 된 것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적어도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20대부터 해온 음악 인생 중 가장 무겁게 마음을 먹고 녹음한 음원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아픈 와중에 녹음해서 더 그렇고… 아버지가 건강하셨다면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도 큽니다.

‘그대는 가고’ 재해석은 어디에 중점을 뒀나?
차승우: 오리지널 버전은 스탠더드 팝 요소가 강하고 큰아버지(차중락)께서 워낙 음색이 절제된 상태고 고운 편이시잖아요. 이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서 나의 식대로 해석했습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또 다른 복고적인 서프 기타 풍에 중점을 두었죠. 시간에 제약이 있어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진 못했으나 대체적으로 만족합니다.

인터뷰에는 차중락과 함께 차중광의 친동생인 차중용 님도 자리했다. 가요계의 레전드라고 할 ‘귀빈’의 출현에 모두들 놀랐다. 친형의 노래를 연주한 조카 차승우를 응원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차중용이 누구인가. 키보이스를 뒤잇는 밴드이자 역시 전설인 ‘가이즈 앤 돌즈’에서 보컬을 맡아 활약한 바 있는 인물이다.

과거를 회상하며 그는 차중락의 고전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 어떻게 녹음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알려졌는지를 비롯해서 차중락, 차중광, 키보이스, 가이즈 앤 돌즈의 음악에 대해서 상세히 들려주었다. 이야기보따리는 풀어도, 풀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전직 가수와 얘기하는 게 아니라 매 순간이 마치 ‘역사와의 대화’ 같았다.

차중용 선생님은 ‘그대는 가고’를 들어보셨는지요. 그리고 또 조카가 오래전부터 음악을 했는데 음악가 출신으로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차중용: 병상에서 형님을 뵈어 잠깐 듣고 다음에 듣자 하고 제대로 들을 겨를은 없었어요. 이제 자세히 들어봐야지요. 당연히 조카가 밴드 해오고 있던 것도 알고 노래도 들어봤죠. 그 전에 ‘노브레인’ 할 때는 미친놈들인 줄 알았어요. (웃음)

차승우: (이 말에 파안대소하며) 적절한 표현이십니다!!

차중락에 대한 기억을 환기해보지요. 어렸을 적 TV를 통해 본 차중락 선생님은 체구도 훤칠하시고 인물도 출중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번안(‘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한 것도 있지만 비주얼 때문에도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고 그 별명이 차중광 선생님께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알아요.  
차중용: 맞아요. 우리 집안 형제들이 다 잘생겼어요. 큰형 차준경(37년생), 차중덕(39년생), 차중락(42년생) 차중광(44년생) 그리고 저 차중용(47년생)..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타이틀은 중락이 형, 중광이 형에게 다 붙었죠.

‘그대는 가고’는 정확히 취입, 발표 년도가 어떻게 되나요.
차중용: 1968년일 거예요. 그해 중락이 형이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 취입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몇 달 전일 겁니다. 차중락의 또 다른 히트곡 ‘사랑의 종말’은 이봉조 선생 곡인데 그 전해인 1967년이 맞을 거예요.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은 그 훨씬 전이고..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 훨씬 전이에요? 히트는 돌아가시고 나서인 1968년 이후 아닌가요?
차중용: 아니에요. 물론 사후 추모 분위기에서 대대적인 히트는 맞고 승우 아버지 차중광의 노래로도 널리 알려졌죠. 하지만 그것은 재조명이고 히트는 엄연히 그 전입니다. 근데 중락 형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 어떻게 히트했는지 알아요? 그 당시 키보이스는 차중락(보컬), 윤항기(드럼), 김홍탁(기타), 옥성빈(키보드)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바쁜 가운데도 신세계 레코드사 주선으로 당대 미8군 라이브 쇼 무대의 최고이자 레전드인 남석훈 씨의 음반 취입 때 반주를 해주게 됐어요. 남석훈 씨 노래로 다 채울 수가 없으니까 나머지를 키보이스의 번안곡으로 LP를 채운 겁니다.

거기에 엘비스 프레슬리 노래인 ‘Anything that’s part of you’를 번안한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 들어가게 됐지요. 앨범에 키보이스보다 차중락의 이름이 크게 표기되어서 차중락의 노래가 되어버린 거예요. 키보이스노랜데… 임 선생도 이 곡, 색소폰 버전의 노래로 알고 있지요? 실은 남석훈 씨 음반에 녹음된 이게 오리지널, 일렉트릭 기타 버전이요. 이게 감이 더 좋아요. (그게 언제였나요 묻자 차중용 님은 1964년이라고 답했다)

차중락의 곡이 아니라 원래는 밴드 키보이스의 노래네요. 근데 음반의 주요 곡이 아닌데 어떻게 히트가 됐을까요?
차중용: 그 무렵 부산에서 제일 유명한 초원다방에 한번 LP를 돌렸는데 여기서 반응이 시작됐어요. 그 후 인기가 퍼지면서 부산의 여성분들이 지속적으로 최동욱, 이종환 등 당대 최고의 인기 디제이가 진행하는 서울의 라디오 프로에 전화해서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신청하는 거예요. 당시 전화 요금이 무척 비싼 시절이었거든요. 한마디로 인기가 부산에서 서울로 북상한 경우지. 당시에는 그런 사례가 거의 없었어요. 음반이 수급도 안 된 상황이었는데…

차중용 선생님이 노래하신 밴드 가이즈 앤 돌즈를 소개해주시죠.
차중용: 중락이 형은 밴드 키보이스에 이어 가이즈 앤 돌즈(Guys And Dolls)를 하게 됐는데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의 히트로 바빠지면서 제대로 가이즈 앤 돌즈 활동을 할 수 없어서 내가 오디션을 봐서 대신 들어가게 됐지요. 미8군 클럽 대상의 연예기획사가 급히 만든 셈이죠. 가이즈 앤 돌즈 멤버는 차중락, 조용조(기타), 이수영(세컨드 기타), 차도균(베이스) 그리고 저였습니다.  

부평의 미군기지 에스컴, 정말 컸어요. 거기도 공연을 자주 갔었죠. 키보이스, 가이즈 앤 돌즈 다 여기 무대에 섰지요. 부대마다 클럽이 몇백 개나 되었는데 클럽 이름은 기억나지는 않고 우리 음악이 로큰롤이라 무대는 장교 클럽이 아닌 주로 사병이나 하사관 클럽이었죠.    

그럼 8군 클럽 가이즈 앤 돌즈 공연에서 대표적인 레퍼토리는 뭐였나요?
차중용: 엘비스 프레슬리 노래들도 많이 했지만 롤링 스톤스의 ‘(I can’t get no) satisfaction’, ‘Paint it, black’이 기억나고… 그리고 애니멀스(Animals)의 ‘We gotta get out of this place’를 피날레로 했어요. 관객들 다들 미쳐했지. (웃음)

동생 입장에서 형 차중락 보컬과 음악을 평가하신다면?
차중용: 최근 중광이 형도 세상을 떠나면서 형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밴드의 시작이자 국내 대중음악의 뿌리가 됐다는 점에 자랑스러운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 가만히 생각해보면 화가 나기도 해요. 가수를 하려면 음악 공부를 했어야 하잖아요. 이왕 할 거라면 제대로 해야지 하는 아쉬운 마음이 크죠. 그래서 좀 더 멋있는 노래를 남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작곡가가 가수가 가진 장점에 맞춰 곡을 써야 하는데 작곡가가 만들고 나서 노래를 주었으니 중락 형에게 맞는 노래가 없었지요. 진정한 차중락의 노래가 아니었던 거죠. 쉽게 말하면 양복을 입고 갓을 쓴 것이라고 할까. 음악적 역량이 반영이 전혀 안 됐어요.

그럼에도 승우 씨는 아까 큰아버지 보컬을 미성으로 표현했다. 이번 ‘그대는 가고’를 비롯해 살아 남아 있는 차중락의 곡이 많은데‘그대는 가고’말고 또 탐나는 곡이 있나?
차승우: (1초도 고민 없이 즉각) ‘사랑의 종말’을 해보고 싶어요. 이번에도 이 곡을 고려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못했거든요. 가사가 단도직입적이고 센 편이라 요즘 세대에게도 잘 먹힐 수 있다고 봅니다. 탱고 사운드도 정말 멋있고.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노브레인이나 문샤이너스 활동 때 아버지 생각을 했나?
차승우: 네 그럼요. 문샤이너스 당시에는 < 천변풍경 2009 Unforgettable > 콘서트를 아버지와 함께하기도 했어요. 큰아버지(차중락) 히트곡과 엘비스 프레슬리 커버도 하고 이것저것 하면서 1시간 정도 공연했습니다. 즐거웠어요. 이 생각을 하니 이번 ‘그대는 가고’를 아버님과 못한 안타까움이 더더욱 큽니다.

차승우가 갖고 있는 로큰롤 유전자는 큰아버지나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한국 록 밴드의 시효인데…
차승우: 저는 그렇다고 확언합니다. 음악을 하라고 종용하시진 않았지만 환경적인 혜택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도 제 음악 취향이 고색창연하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을 부인하기 어렵지요.  

부평문화재단에서 기획하고 있는 ‘부평사운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차승우: 감사하고 너무 멋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시기에, 특히나 홍대 중심의 음악 신이 거의 고사 직전인데 밴드 중점이라서 의미도 있고… 좋은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차중용 선생님은 지금 젊은이들의 음악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차중용: 한 마디로, 한 곡 들으면 다 들은 느낌이랄까요. 그 노래가 다 그 노래예요. 앞으로 40대, 50, 60대가 소비중심이 될 시장이 더 커질 텐데 고려를 안 하는 것 같이 보여요. 장르 측면에서도 예전에는 록이 있고 포크, 탱고도 있고 왈츠 트로트, 민요 등 다양하지 않았나요. 지금은 획일화돼버렸어요. (외국도 그렇다고 말씀드렸더니) 거기는 그래도 아델(Adele)이 있잖아요.

요즘 음악도 들으시나 봅니다.
차중용: 요즘도 계속 음악을 듣고 마인드가 프레쉬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젊은 세대와 별 어려움 없이 소통이 됩니다. 음악의 힘이라고 봐요. (차승우는 여기서 “작은아버지는 지금도 라디오헤드(Radiohead)를 들으세요”라고 덧붙였다)

돌이켜보면 음악이 무시 받던 60년대에 모든 가족이 음악을 했습니다.
차중용: 아버지가 큰 사업을 하다 보니 굉장히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부자들이 많이 살던 장충동이 집이었죠. 그러니 우리 집에 가수가 나오리라고 상상도 못했죠. 중락이 형 위인 둘째 중덕이 형은 비즈니스로 미국이나 일본에 갈 때 연회석에서 잠깐 노래 불러도 가수인 줄 알고 사인해 달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만큼 차씨 집안이 노래를 잘했어요.

‘노브레인’ ‘문샤이너스’를 이었던 밴드 모노톤즈는 어떻게 되는 건가.
차승우: 완전히 끝난 게 맞아요. 밴드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나에게 있어 노래 만드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2018년부터 의도적으로 음악적 휴지기를 가지고 있다고 할까요. 야인 생활에 들어간 거죠. 일단 개인적으로 슬럼프가 왔고 밴드 말미에 마무리도 좋지 않았고.. 음악적 아이디어도 없다 보니 뒤죽박죽이 되면서 쉬자는 마인드가 생겼죠.

어떻게 보면 지금 한국의 환경에서 오래 밴드하기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
차승우: 거의 총체적 난국이죠. 제가 처음에 밴드로 시작했을 때는 인디라든지 서브 컬처가 태동하던 시기라 젊은 사람과 잘 맞물렸죠. 하지만 이후 밴드 신에서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고 트렌드가 걷히면서 록과 밴드가 부진한 상태로 들어가게 되었죠. 어렵게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지만 지금은 분산되었다고 봅니다.

세계적으로도 록이 퇴조하는데 우리의 경우도 록과 밴드 그리고 인디 분야에서 좋은 음악이 이어지지 않은 것 같다.
차승우: 일관성도 없었고 작가주의로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고 봐요. 이번 ‘부평사운드’의 작업이 스스로 환기하는 계기가 됐거든요. 저도 분발해야 하구요. 어깨가 참 무겁습니다.

인터뷰 : 임진모, 신현태, 김도헌, 임선희, 임동엽
정리 : 임진모
사진 : 임동엽
기획 : 부평구문화재단 문화도시추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