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스위프트의 ‘The man’이 들여온 메시지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지난 2월 27일 공개된 미국의 팝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싱글 ‘The man’ 뮤직비디오가 화제다. 맨(man)이라는 단어에서 드러나듯 이 곡과 영상은 남자를 주제로 삼는다. ‘내가 남자였다면 / 영웅이 될 수 있을 테니까 / 난 영웅이 될 꺼야’라 노래하는 와중 가사보다 더 다층적 메시지를 품은 뮤직비디오가 눈에 띈다.

지하철에서 다리를 쩍 벌리고 않은 남성, 아무데서나 방뇨하는 남성, 폭력을 리더십으로 활용하는 남성 등 이 작품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그간 여성에게 제한적이고 남성에게 관대했던 여러 프레임의 전복을 시도한다. 

이외에도 재작년 소속사 이전 과정에서 불거진 스쿠터 브라운(한 때 테일러 스위프트를 희롱한 문제로 여러 차례 설전을 벌였다. 현재 테일러 스위프트의 초창기 저작권 상당수가 스쿠터 브라운 소유다)과의 마찰도 뮤직비디오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이처럼 오늘 날의 그는 여성으로서 개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소리 내기에 주저함이 없다.

taylor swift fearless 이미지 검색결과

2006년 16살의 나이로 데뷔한 그는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자국의 전통성을 가진 ‘컨트리’를 주무기로 삼았고 수려한 외모를 지녔으며 무엇보다 적당히 조명주기 좋은 싱어송라이터였기 때문이다. 또한 어디에도 반항은 없었다. 초기 커리어의 인기곡 ‘White horse’, ‘Love story’, ‘Fearless’ 같은 곡이 그 증명이다. 건조한 컨트리를 질료 삼아 적재적소에 가미한 록, 팝적 요소가 음악의 접근성을 높였고 풋풋한 사랑을 담은 가사가 컨트리에 거리를 둔 십대의 취향까지 사로잡았다. 

2008년 2번째 정규 음반 < Fearless >로 그래미 어워드의 본상 중 하나인 ‘올해의 음반’을 수상한다. 그의 나이 18살의 일이다. 승승장구하던 행보는 2009년 래퍼 카니예 웨스트에 의해 타격을 입었다. MTV 뮤직 어워드 ‘올해의 여성’ 부문 수상자로 무대로 오른 테일러 스위프트의 소감이 카니예 웨스트의 “이 상은 비욘세가 받아야 했다”는 망언으로 얼룩졌기 때문. 그의 등장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얼굴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악재는 계속 됐다. 2012년에는 임신설에 휘말렸고 2013년에는 라디오 진행자 데이비드 뮐러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taylor swift 1989 이미지 검색결과

고난은 깨달음이 됐다. 테일러의 앞장서기는 2014년 즈음 서서히 기지개를 편다. 변화의 시작은 정규 5집 < 1989 >(2014)의 수록곡 ‘Welcome to New York’에서 드러난다. 컨트리의 색채를 완전히 지우고 ‘팝’으로 노선 변경을 시도한 음반의 첫 곡으로 흥겨운 신시사이저 멜로디에 맞춰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뉴욕에 온 걸 환영해 / 너는 네가 원하는 누구든지 될 수 있어 / 남자든 여자든’. 그의 두 번째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곡인 ‘Shake it off’ 역시 마찬가지다. 상황이 어떻든 ‘흔들자’ 말하는 이 노래는 막힌 청춘의 고민을 뚫어주는 시원한 ‘치얼 업 송’이자 더 이상 웅크리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었다.

실제로 그는 거침없이 위기 상황을 뚫고 나갔다. 앞서 언급한 라디오 DJ 뮐러는 2013년 테일러 스위프트를 자신의 부당한 해고에 일조했다는 명목으로 3백만 달러에 가까운 손해배상금을 요구하며 고소한다. 이에 테일러 스위프트 역시 2015년 그를 맞고소하는데 요구한 배상금은 단 1달러뿐이었다. 돈이 아닌 여성 인권의 가치를 주목시키려는 의도였다. 결과적으로 뮐러는 패소했고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를 기념하며 한 자선단체에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큰돈을 기부한다. 

그는 점점 더 강해졌다. 2017년 ‘올드 테일러는 죽었어’ 선포하며 돌아온 정규 6집 < Reputation >에서는 일렉트로니카를 적극 가미해 이미지 변신을 하는가 하면 타이틀 ‘Look what you make me do’에선 그간 자신을 괴롭혔던 인물들과 정면 대결을 신청한다.

사전 동의가 있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또 한 차례 ‘Famous’란 곡으로 그를 성적 대상화한 카니예 웨스트가 그 목록에 올랐으며 네티즌 역시 그의 화살을 빗겨가지 못했다. 노래의 뮤직비디오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SNS상에서 뱀의 이미지로 폄하되던 자신의 아이콘을 역으로 끌어와 스스로 뱀이 되어 타올랐다. 도를 넘은 비난이 도리어 성장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그렇게 2019년 발매한 정규 7집 < Lover >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현재이자 데뷔 초와는 상상할 수도 없게 진화한 당당한 여성의 자화상이다. 밀어두었던 컨트리를 다시 가져와 성숙한 사랑을 노래하고 LGBTQ, 여성, 인권 그리고 무엇보다 평등함의 중요성에 대해 소리 높인다. 2018년에는 데뷔 이래 처음으로 정치색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공개된 ‘The man’의 뮤직비디오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세상에 날린 묵직한 ‘한 방’이다. 착한 여성은 없다. 날선 비유로 성 고정관념을 개조하는 그의 행보가 여기, 바로 이 자리에 생생한 경종을 울렸다.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의 목소리. 테일러 스위프트의 귀환이 반갑다.

I Am Wo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