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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I Am Woman

WAP, 카디 비의 즐거운 역할 바꾸기

카디 비와 메간 더 스탈리온의 과격한 일탈은 천박하지 않다.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노래는 래퍼 카디 비(Cardi B)와 메간 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이 8월 7일 발표한 ‘WAP’다. 발매 첫 주만인 8월 18일, 총 9300만 회 스트리밍을 기록하며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로 데뷔한 44번째 곡이 됐다. 종전 최고 기록인 아리아나 그란데 ‘7 rings’의 첫 주 총 8530만 회 스트리밍 기록을 가뿐히 제쳤다.

하지만 ‘WAP’는 다른 의미에서 훨씬 ‘뜨거운’ 곡이다. 우선 제목부터가 ‘축축이 젖은 아랫도리(Wet-Ass Pussy)’다. 1990년대 DJ 프랭크 스키(Frank Ski)의 노래 일부분을 따온 샘플은 러닝타임 내내 ‘여기 창녀들이 있어(Whores in the house)’를 읊조린다. 제목, 가사, 뮤직비디오까지 파격적인 선정성으로 단단히 무장한 이 노래는 가사 한 줄 해석하기도 곤란할 정도다. 쉽게 말해, 굉장히 야하다.

거리의 스트리퍼로 출발해 ‘Bodak Yellow’로 빌보드 정상에 오르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카디 비, 올해 비욘세와 함께 ‘Savage’를 히트시킨 메간 더 스탈리온의 자신감이 곡 내내 구체적인 판타지와 성행위 묘사로 드러난다. 카디 비가 원기 왕성하고 힘 있는 목소리를 앞세워 선언하면 메간은 기관총처럼 쏘아 붙는 랩으로 에너지를 더한다. 간결한 구성 위 오로지 힘, 권력, 에너지로만 곡 전체를 꽉 채운다. 

때문에 ‘WAP’는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기 전부터 말이 많았다. 노래와 아무 상관없는 슈퍼스타 카일리 제너의 깜짝 출연도 논란이지만 가사를 둘러싼 갑론을박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우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표현에 관대한 미국이라 해도 그 허용의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노랫말과 뮤직비디오는 논란의 대상이다.

James Bradley | WAP | Know Your Meme

‘WAP’ 논란을 부채질한 것은 미국의 보수 측 인사들의 발언이다. 캘리포니아 주 하원의원 공화당 후보 제임스 브래들리(James Bradley)는 트위터를 통해 ‘카디 비와 메간은 하나님 없이 자란, 강한 아버지가 없이 자란 아이들의 전형’이라며 ‘WAP를 듣고 내 귀에 성수를 붓고 싶었다’는 혹평을 퍼부었다.

같은 주의 공화당 정치인으로 최근 공화당 하원 경선에서 탈락한 디애나 로레인(Dianna Lorane) 역시 “역겨운 ‘WAP’가 여성 인권을 100년 정도 후퇴시켰다.”라 불평하며, 카디 비와 유세를 함께한 민주당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와 2020년 민주당 대선 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 지지자들을 ‘쓰레기’라 비난했다.

힙합을 ‘쓰레기 음악’이라 평한 바 있는 유명 우파 논객 벤 샤피로(Ben Shapiro)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바로 페미니스트들이 투쟁한 결과”라며 비꼬는 것으로 시작해 “결국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나 인권에 관심 없는 ‘젖은 엉덩이’에 불과하다. 이런 의견을 비판하면 바로 ‘미소지니(mysogyny : 여성 혐오)’로 찍히기 십상”이라 조롱했다. 과연 이들의 발언처럼 ‘WAP’는 그저 천박하고 음탕하게 색만 밝히는 노래인 걸까? 

카디 비의 ‘19금 발언’은 그리 낯설지 않다. ‘WAP’ 이전에도 그는 꾸준히 SNS를 통해 ‘뜨악’할만한 발언, 혹은 사진을 공개하며 논란 혹은 큰 웃음(?)을 선사해왔다.

하지만 그게 단순한 음담패설만은 아니었다. 힙합 그룹 미고스(Migos) 멤버이자 남편 오프셋(Offset)이 준비한 서프라이즈 파티에 ‘오늘 X 좀 빨리고 싶나 본데?’라 능청스레 감탄하면서도, 신곡 발표 후 여성들에게 그들의 ‘WAP’를 유지하는 방법을 코믹하고 진지하게 설파할 때도 항상 대화 속 성적 주도권은 언제나 카디 비 본인, 즉 여성에게 있었다.

스트리퍼 출신임을 거리낌 없이 강조하는 카디 비는 언제나 과감하게 자신의 욕망과 성적 매력을 표현한다. 빌보드 싱글 차트 첫 1위의 영예를 안긴 ‘Bodak yellow’부터 ‘I like it’까지 그의 서사는 밑바닥부터 시작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직접 남자를 고르며 명품에 둘러싸여 있는 삶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진실하고 거리낌 없는 감정 표현이야말로 카디 비를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성 래퍼로 만든 핵심 요소다. 

All the hot girl looks to copy in Cardi B and Megan Thee ...

’WAP’ 역시 숨김이 없다. 대개 야한 이야기를 하는 여성은 음탕하게 받아들여진다. 남성이 여성을 부와 성공의 상징으로 삼고 성관계를 노래하면 ‘대범하고 멋진’ 것이 되지만, 그렇게 끊임없이 성적 대상화되는 여성의 욕망은 부정되기 일쑤다. 숱한 힙합 노래들이 성공의 상징으로 여성을 그리는 것은 당연히 여겨지는 반면, 두 여성의 성적 판타지를 노래하는 ‘WAP’가 남성을 수단화하지 않음에도 몰매를 맞는 데서 불균형이 도드라진다. 

게다가 이들은 여성이 아니라 ‘흑인 여성’이다. 17세기 노예 신분으로 미 대륙에 끌려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흑인 여성들은 오랫동안 ‘이세벨 스테레오타입(Jezebel Stereotype)’이라 불리는 고정관념에 시달려왔다.

이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치세 하의 도덕적인 ‘집안의 천사’ 여성상과 정반대의 개념으로, 흑인 여들은 성적 능력이 특히 발달한 음탕한 존재라는 차별의식을 기저에 깔고 있다. 긴 시간 동안 블랙-피메일(Black-Female) 들은 숱하게 성적으로 대상화되며 거의 짐승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으나 욕망의 주도권은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Recognizing Racist Stereotypes in U.S. Media | by Suzane Jardim ...

‘WAP’를 둘러싼 선정성 논란에서도 이세벨 스테레오타입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노래만큼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여성 아티스트들의 ‘19금 노래’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럼에도 ‘WAP’만큼 화제와 논란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마일리 사이러스가 2013년 MTV 비디오 어워즈에서 로빈 시크에게 엉덩이를 들이밀며 혀를 내밀 때도, 아리아나 그란데가 격렬한 하룻밤을 보내고 게다리 걸음을 걷는다는 ‘Side to side’를 부를 때도, 두아 리파가 ‘밤새 몸을 섞자’는 ‘Physical’을 노래할 때도 여론의 동요는 전혀 없었다. ‘WAP’를 불편히 여기는 시선에는 고정관념이 투영되어 있고, 이는 성차별은 물론 인종차별의 문제와도 연관이 된다. 

동시에 이들 대중은 ‘WAP’의 욕망에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다른 여성 아티스트들의 발화에는 무관심하다. 카디 비는 이를 꼬집어 “숱한 여성 래퍼들이 사회를 비판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던질 때는 관심도 없더니, ‘WAP’에는 모두가 떠들썩하다”는 의견을 SNS에 피력하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몇 년만 해도 랩소디(Rapsody), 노네임(Noname), 자밀라 우즈(Jamila Woods)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사회 및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나 대대적으로 주목받은 이는 슈퍼스타 비욘세 외 찾아보기 어렵다.

The backlash to Cardi B and Megan Thee Stallion's WAP proves ...

대중음악의 역사 속 블랙 커뮤니티에게 섹스는 중요한 개념으로 다뤄졌다. 로큰롤과 재즈부터가 섹스를 뜻하는 속어로부터 출발했다. 일찍이 ‘소울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이 그 자신을 ‘섹스 머신(Sex machine)’이라 칭한 이래로 수많은 펑크(Funk) 디스코 밴드들이, 프린스(Prince)와 1980년대 댄스 가수들이, 힙합과 알앤비 스타들이 소리 높여 ‘19금’ 노래를 불렀다. 이들에게 섹스는 외설의 대상이 아니라 억압되고 자유롭지 않은 현실에서 그들이 살아있음을 외치는 활력과 생기의 상징이었다. 

‘WAP’ 역시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과 아티스트들의 맥락 위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도미니카 혈통의 카디 비와 아프로 아메리칸 메간 더 스탈리온은 미국 사회에서 낮은 지위에 속한 인물들이다. 이들이 자랑스레 꺼내는 성적인 욕망과 판타지는 외설이 아니라 그들에게 부여된 발화 권력과 힘을 상징한다.

<콤플렉스(Complex)>의 평가를 가져오자면 ‘WAP’는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독립, 지배’를 노래하는 곡이며 ‘여성 임파워링의 상징’과 같은 곡이다. 미국 NBC 저널리스트 수잔 라미레즈가 ‘즐거운 역할 변경’이라 평한 것에도 눈길이 간다. 카디 비와 메간 더 스탈리온의 과격한 일탈은 천박하지 않다. 오히려 이를 음탕하게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서 그 저의의 음란함이 포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