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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올리비아 로드리고와 새드 걸 팝, 팝은 어떻게 슬퍼졌는가

가라앉은 사회, 그 속에서 길을 찾다.

2021년 < Sour >의 기록적인 데뷔로 음악계를 거세게 강타한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소포모어 앨범 < Guts >와 함께 복귀에 시동을 걸고 있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선공개곡 ‘Vampire’는 어렵지 않게 빌보드 정상에 올랐고, 이어 발표된 ‘Bad idea right?’ 역시 다수의 차트 상위권을 장식했다. 이 정도 기세라면 이번 앨범 역시도 전작만큼의 성과를 이룰 공산이 무척 높아 보인다.

거대한 상업적 성공이 못지않게, 올리비아의 음악은 비평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이어갔다. 등장과 함께 그래미 시상식 3관왕을 차지함은 물론, 데뷔 앨범 < Sour >는 유수의 매체에서 당해 최고작 중 하나로 거론되는 등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차기작 < Guts >의 선공개 싱글들은 그 피치포크마저도 연이어 베스트 뉴 트랙(Best New Track)에 선정할 만큼 음악적으로 더욱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스트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별칭과 점점 거리를 좁히는 모양새다.

영민하고 매력적인 음악 자체도 수많은 호평을 받았지만 다수의 평론가 및 대중은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이 성공을 Z세대의 세대 의식과 연관 지었다. ‘Drivers license’, ‘Deja vu’ 등 그의 음악에서 강하게 표현되는 비련의 정서가 젊은 세대의 감성에 적중했다는 식의 평가였다.

▶ (좌) 빌리 아일리시 / (우) 로드

비단 올리비아 로드리고뿐만이 아니다. 최근 팝 음악 전반에는 이전보다 어둡고, 우울한 정서가 자욱하게 자리 잡고 있다. 당장 < Sour > 이전 <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2019)의 빌리 아일리시와 < Pure Heroine >(2013), < Melodrama >(2017)의 로드(Lorde)가 유사한 평가를 받기도 했고, 이에 영향을 받은 듯 최근 대부분의 팝 신성들은 당연하다는 듯 이별과 우울의 주제를 동반하고 있다. 오죽하면 그래미 어워드를 주관하는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를 비롯, 몇몇 이들이 나서 ‘새드 걸 팝(Sad Girl Pop)’이라는 용어와 함께 해당 흐름을 구획화하려는 시도까지 보이는 상황이다. 케이티 페리를 필두로 한 희망차고 화려한 팝이 위세를 떨치던 10여 년 전 팝 시장에 비하면 결코 적지 않은 변화다.

왜 지금의 젊은 대중은 우울한 정서에 열광하는가

원인은 꽤나 복합적이다. 대부분의 변화가 그러했듯 음악 내부뿐 아니라 여러 사회, 문화의 흐름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러한 맥락의 배경을 음악 내부에서 찾아볼 때, 가장 먼저 지목돼야 할 이름은 역시 ‘팝의 여왕’ 테일러 스위프트다. < Speak Now >(2010) 이후 컨트리에서 팝으로 노선을 점차 전환한 테일러의 음악적 스타일은 그 진솔한 표현 방식과 함께 당시 젊은 리스너에게 팝의 지향점, 교과서적 존재로 간주되며 이후 음악 전반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올리비아 로드리고를 비롯 로드, 클레어오, 트로이 시반 등 팝의 수많은 주요 인물들이 테일러식 팝의 뒤를 따르며 지금의 감상주의적 시류가 만들어진 것이다. 단어 그대로 테일러 이전과 이후의 팝이 완전히 다른 영역에 있다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다.

▶ (좌) 테일러 스위프트 / (우) 라나 델 레이

지금의 ‘포스트 테일러 스위프트 팝’에 테일러 다음으로 큰 영향을 준 인물인 라나 델 레이의 이력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새드코어(Sadcore)’라 표현할 만큼 우울한 심상 묘사에 집중한 라나의 방법론은 팝이 더욱 적극적으로 정서 표현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며, 빌리 아일리시, 로드 등 이후 음악에 큰 파란을 일으킨 아티스트들에게도 분명한 견인이 됐다.

이들의 공적은 ‘새드 걸 팝’ 도래의 또 다른 배경인 인디 신과 메인스트림의 결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영원한 인디 앨범이라는 별칭의 < Folklore >(2020)와 < Evermore >(2020)로 피비 브리저스, 본 이베어, 줄리엔 베이커로 대표되는 인디 포크, 챔버 팝의 질감과 인상을 대중화시키며 그 화학적 결합의 촉매 역할을 하였고, 한때 ‘힙스터의 여신’이라 불렸던 라나 델 레이는 메인스트림으로 자진 침투로 스스로 물리적 매개체 역할을 했다. 전자는 정상의 자리에서, 후자는 정상에 올라서며 장르의 경계를 허물어 낸 것이다.

이와 같은 개인의 노력도 분명한 영향을 끼쳤지만 인디 신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주요 요인은 단연 스트리밍 서비스의 대중화 및 고도화라는 시장의 흐름이다. 유저 성향에 맞춰 개인화된 알고리즘을 매개로 하는 지금의 스트리밍 구조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다양하고 심도 높은 청취 경험을 제공하며 디깅 문화의 보편화와 함께 비주류 음악의 접근성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인디 신은 이전보다 많은 소비층을 확보하며 더욱 넓고 두터워졌으며, 메인스트림과의 교류도 활발해져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공유하는 선순환도 이어졌다. 그렇게 주류 팝은 인디의 감성을 장착했고, 인디 신은 메인스트림의 활기를 나눠 받게 됐다.

가라앉은 사회와 함께 침잠한 음악

상술한 주요 아티스트들, 인디 신의 영향도 물론 적지 않으나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것은 결국 사회 분위기의 변화다. 경제적 저성장과 1인 가구의 증대, 그리고 SNS의 보급 및 대중화 등은 전반적인 사회의 분위기를 침체시켰고 이는 자연스레 슬픈 음악에 대한 수요로 이어졌다.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버는 세대’가 혼자 사는 것도 모자라, SNS를 통한 상대적 박탈감에도 손쉽게 노출되며 우울이 서식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심지어 이에 더불어 코로나19라는 강력한 전염병까지 덮치며 사회적 교류마저 통제되자 그렇지 않아도 거대하던 우울은 곰팡이처럼 빠르게 사회 전반으로 번져 나갔다.

수많은 작품의 발매와 공연이 취소되고 연기되는 등 심각한 타격이 있기도 했으나 음악계는 변화한 기류를 기반으로 새로운 해답을 향해 나아갔다. 클레어오, 그레이시 에이브럼스, 리지 맥알파인(Lizzy McAlpine) 등 젊은 베드룸 팝, 포크 아티스트들이 우후죽순 등장했고, 테이트 맥레이, 걸 인 레드, 스티브 레이시, 코난 그레이 등 인디와 메인스트림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슬픈 정서를 주무기로 리스너들의 이목을 끌어당겼다. < How I’m Feeling Now >(2020)의 찰리 XCX나 < Big Time >(2022)의 엔젤 올슨(Angel Olsen) 등 기존 아티스트들 역시도 그들만의 새로운 방법론을 통해 우울함에 생명력을 주입하며 시대에 발을 맞추는 모습을 보였다.

비단 팝뿐만이 아니다. 타 장르를 포함한 다양한 방면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은 분명히 이어졌다. 우울이 크게 작용하는 인디 록, 포크는 유례없는 원동력을 얻었고 감정의 극단을 달리는 슈게이즈 장르가 인디 신을 중심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마초적인 장르로 통하는 힙합마저도 이모(Emo)의 감성을 끌어오며 이모 랩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돌입할 만큼 음악계는 우울을 새로운 변화의 계기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새로운 시대, 음악이 나아갈 길

청년들의 음악 청취에 대해 분석한 국내 연구(최희진, 2021)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조사 대상자들의 75%가량은 증가한 개인 시간을 통해 음악 플랫폼에 더 많이 접속하고,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며 능동적으로 찾아 듣고 있었다. 또한 이들은 음악를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치유하고 성찰하며 감정을 공유하며 서로 소통하고 공동체의 의미까지 재발견하고 있었다. 음악계의 멱살을 잡고 흔든 위기 속에서 음악이라는 예술, 산업이 그 유연성을 발휘하며 스스로의 구조를 개편하여 새로운 경로를 설정하고 있던 것이다.

기쁨을 배로 나누던 팝은 이제 슬픔을 반으로 나눈다. 우울을 스스로 표현하고 공유할 때, 또 이를 받아들일 때의 카타르시스는 젊은 세대의 의식과 강하게 공명하며 이제 새로운 하나의 클리셰로 거듭났다. 늘 그랬듯, 음악이 새로운 답을 찾아낸 것이다. 우울의 차가운 빗줄기 이후, 팝의 땅을 단단히 굳힐 올리비아 로드리고와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이들이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