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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한국 대중음악의 재발견] ‘Haenim’ & ‘The man who must leave’

신중현의 깊은 뿌리가 있어 K팝의 고전은 이제 새롭게 피어나 그 향기 멀리 간다.

『우리 노래 가운데 고전이라 할 곡들이 얼마나 있을까? 영미권 classic rock들처럼 우리에게도 당대의 의미와 현재적 재해석의 가치를 지닌 노래들이 상당하다. 이번 소개할 두 곡 만큼은 그 리스트에 당연 포함될 곡들, 특별히 영문 제목을 통해 새롭게 알려졌다. 』

첫 번째 곡은 ‘Haenim’, 우리말 ‘해님’을 소리 그대로 옮겼다. 두 번째 곡은 ‘떠나야 할 그 사람’을 뜻 그대로 번역한 ‘The man who must leave’다. 음악 좋아하는 영미권 마니아들에게 알려졌고 유튜브 댓글들은 그 가치를 방증한다. 이 두 곡 모두 신중현의 작품이다.

우선 ‘Haenim’은 그의 뮤즈 중 한 사람인 김정미가 부른 노래로, 전설의 명반 < Now > 첫 번째 수록곡이다. 동요처럼 꾸밈없는 가사와 단순한 기타 반주로 한편의 풍경화를 그려내기 시작한다. 소리를 제거하고 활자화된 첫 소절 가사는 이렇다.

“하얀 물결 위에, 빨갛게 솟는 해.
해님의 나라로 우린 가고 있네”

익숙한 묘사임에도 신중현의 음율을 통하면 초현실적 ‘해님’의 나라가 된다. 햇살에 멍때리다가 포크와 사이키델릭, 클래식까지 어우러진 광대한 정한(情恨)을 만나게 된다. 이 노래 당시는 레드 제플린이 < House Of The Holy >를, 핑크 플로이드가 < Dark Side Of The Moon >을 발표한 1973년, 우리에게도 음악의 거대한 뿌리가 뻗고 있었다.

영원한 이곳에 그대와 손잡고
해님을 보면서 다정히 살리라”

▶2011년 리이슈 by Lion Production/미국

시련이 찾아오고 있음을 직감한 것일까? 곡의 마지막 구절은 1972년 ‘아름다운 강산’의 확장으로, 이어 1974년 ‘미인’과의 만남으로 연결된다. 독재정권에 대한 찬가를 거부한 그였기에 어쩌면 예술가로서의 내적 지향점은 더 뚜렷했으리라.

천재들이 익히 가장 쉽고 순수한 표현을 통해 자신을 말하려 했듯 그도 그랬다. 말년의 추사 김정희의 필획은 동자체를, 50살 이후의 피카소는 어린이 그림들을 영감으로 창작했다. 신중현의 음악적 생명이 멈춘 것은 두 해 지난 1975년의 일, ‘해님’은 그 예술가의 처연한 내면에서 탄생된 걸작이다.

이 곡이 수록된 앨범 < Now >는 신비롭고 평화로운 자켓 사진에도 눈길이 간다. 그 또한 감각인지, 코스모스 여인 너머 푸른 하늘을 넓게 담은 사진 또한 신중현의 시각작품이다. 불행히도 대마초 파동에 휩싸인 뒤 ‘해님’이 수록된 이 앨범은 대부분이 강제 폐기되었다. 하여 초판은 그 숫자도 희귀하고 수집가들에겐 수백, 수천만 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2011년, 마니아들의 요청으로 한국이 아닌 미국 Reissue 음반사인 Lion Production을 통해 LP가 재발매 되었다.

신중현의 또 다른 곡은 ‘The man who must leave’다, 우리말 제목으로는 ‘떠나야 할 그 사람’

‘떠나야 할 그 사람’? 익숙한 그 노래다, 1968년 ‘펄 시스터즈’에 의해 이미 히트한 그 곡이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버전은 1969년 ‘김선’이라는 가수가 부른 ‘떠나야할 그 사람’이다. 헌데, 우리말 제목이 있음에도 김선이 부른 곡에는 ‘The man who must leave’라는 영문 제목이 붙었다. 2009년 < Psych Funk 101, World Psychedelic Funk Classics >이라는 컴필레이션 음반에 수록되면서 부터다.

이 곡은 국내 발표에서부터 나름 사연이 있다. 김선의 이 노래가 최초 세상에 나온 것은 김추자 데뷔 앨범에 수록되면서다. 1969년, 그 유명한 김추자의 데뷔앨범은 사실 신중현 작·편곡집이었으며 A면은 김추자의 데뷔곡들로, B면은 다른 남자가수들의 목소리로 채워졌는데 B면 두 번째가 바로 이 곡이다.

펄시스터즈 버전은 대중적 편곡에 길이는 3분 반 정도. 이미 히트한 이 곡을 신중현은 다시 김선을 통해 8분에 가까운 편곡으로 재탄생시킨다. 상업적 성공을 거뒀음에도 새롭게 시도한 신중현의 실험, 감상을 해보니 수긍이 된다. 파격적 하몬드 오르간 소리에 실연의 내면을 표현하는 듯 퍼지(fuzzy)한 기타, 텐션 풀려버린 듯한 스네어, 여기에 김선의 목소리 또한 놀랍다. 고혹적 가성과 비애와 자조의 감정까지 진하게 전해진다. 퍼지한 기타 톤만으로는 지미 헨드릭스의 ‘Purple haze’만큼 진하다.

‘해님’과 이 곡에는 공통적 아쉬움도 있다. 김정미, 김선 두 걸출한 보컬리스트가 모두 미국으로 떠난 것이다, 현재까지도 그 근황을 알기 힘들다. 예술은 다만 그런 삶보다 길다 했던가? 음악적 성취는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잉키라는 가수가 2016년 드라마 ‘시그널’의 OST에서 이 곡에 새로운 소리를 입혔다. 아주 좋다.

▶모델 박수주의 음악 프로젝트, 에테르(Ether)의 ‘햇님’

‘해님’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샤넬 컬렉션 발표 자리에서 ‘수주’라는 모델 겸 가수가 ‘해님’을 새롭게 불렀다. 코로나로 뜸해졌지만 뉴욕에서 활동하는 음악 연주그룹 Apartment Session 또한 ‘해님’을 멋지게 커버했다.

신중현의 깊은 뿌리가 있어 K팝의 고전은 이제 새롭게 피어나 그 향기 멀리 간다. 필자 또한 해님을 검색하다 Reddit이라는 미국의 커뮤니티에서 우연히 김선의 노래를 찾을 수 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BTS 이후 우리 노래가 세상 도처에서 흥하다. 발굴과 재발견은 계속되어야 한다.

■ 프로필
JTV 전주방송 프로듀서 송의성. TV로는 < 개그를 다큐로 받느냐? >의 그 다큐를, 라디오로는 < 테마뮤직 오디세이 >라는 1인 프로그램을 제작해왔다. 록스타를 꿈꾸던 청춘의 시간은 가고, 요즘은 크로매틱과 방구석 잼으로 여생(?)을 즐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