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15일과 16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HAVE A NICE TRIP 2023 첫째날 헤드라이너로 선 다니엘 시저는 감각적인 알앤비 뮤직으로 국내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18년 내한 공연으로 한국과의 인연을 맺은 시저는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헐(H.E.R.)과 협연한 ‘Best part’로 61회 그래미 최우수 알앤비 퍼포먼스를 수상했고, 2021년 저스틴 비버와 협업한 메가 히트곡 ‘Peaches’로 빌보드 핫100 정상을 밟는 등 대중적 성공과 평단의 지지를 두루 획득했다.
2023 에디터스 초이스 4월에도 선정된 세번째 정규 앨범 < Never Enough >은 “Driver Seat(운전석)에 앉았다”라는 시저 본인의 표현처럼 작사 작곡과 프로듀싱 등 음악 전반의 주도권을 높였다. 푸른 라이트 멜로우로 물든 53분 몽환계엔 록과 소울, 힙합이 녹아있고, 감정의 여러 부면을 세밀하게 어루만졌다. 7월 13일 유니버설뮤직이 주관한 기자간담회에서 시저는 < Never Enough >과 음악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여유롭게 풀어냈다.
신보 < Never Enough >
28세의 젊은 뮤지션에게서 세 번째 정규 앨범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읽었다. 토니 토니 톤 출신 베테랑 라파엘 사딕과 마크 론슨의 쟁쟁한 프로듀서진 사이로 이름을 포함한 시저는 축적된 내공과 노하우를 고스란히 앨범에 투영했다. 알앤비를 토대로 다채로운 음향을 실험하는 작법은 기존과 동일하되 전체적인 구성과 흐름 측면에서 아티스트의 정체성이 더욱 많이 드러난 모양새다.
시저는 < Never Engouth >의 핵심으로 삶에 작용하는 밀고 당기는 힘, 즉 저항력을 들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추구와 그에 대한 해답이 결국 내면에 있으며, 내면에 이르는 과정에서 깊은 감정이 발생한다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앨범아트의 푸른빛과 음반 전체를 관류하는 침잠(沈潛)의 정서는 슬픔과 우울과는 다른 맥락의 멜랑꼴리로 묘사했다.
화음 진행과 편곡 부문에서 작금의 알앤비 음반들보다 난해하게 느껴진다는 평에 대해선 “너무 어렵게 받아들이기보다 음악적 새로움을 발견하는 과정으로 여겨줬으면 좋겠다”라며 도전 의식을 강조했다. 정규 1집 < Freudian >(2017)의 영감으로 네오소울 기수(旗手) 디안젤로의 < Voodoo >를 들며 창조적 알앤비의 욕구를 드러낸 시저는 향후 장르 내에서의 다채로운 변화와 실험을 암시했다.

기타와 베이스, 드럼을 모두 연주한 마지막 트랙 ‘Unstoppable’을 비롯해 < Never Enough > 크레딧의 대부분을 자신의 이름으로 채우고 있다. 직접 악기 연주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마치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로 유명한) 프린스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며 웃음 지은 시저는 그것이 자신에게 자신감과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며, 더 나아가 삶의 긍정적 기운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흔히 다루는 부드럽고 달콤한 사랑 이외의 다양한 감정을 다루고 싶었던 시저는 일견 당황스러울만큼 강렬한 노랫말의 수록곡 ‘Shot my baby’는 최악의 감정 그 극대점을 음악으로 승화했다. 사이키델릭한 분위기의 ‘Vincent Van Gogh’는 생전 부귀영화를 못 부린 고흐와 달리 자신의 음악세계가 널리 인정 받고 있다는 스웨그며 제작 과정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한 이번 앨범 최애곡이라고 말했다.
다니엘 시저의 음악세계
2017년 데뷔 앨범 < Freudian >의 성공 이후 약 6년이 흐른 지금, 소통과 생활 방식 차원에서 많은 것이 변화함에 따라 음악에서 다루는 주제들도 넓어졌다. 사랑을 중점적으로 얘기한 < Feudian >에서 점차 신과 죽음, 부모와의 관계 등 보다 철학적 주제 확장을 이룬 후속작들은 서사의 깊이 측면에서 음악적 성숙을 드러냈다. 신보를 비롯한 근작에선 다시 사랑의 주제에 천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음악을 만들 때 오직 자기 자신만을 들여본다고 하는 그는 솔과 가스펠 등 미국 음악 유산을 두루 흡수했고 ‘Peaches’에서 돋보이는 하모니의 다층성과 기타의 높은 활용 빈도, 독창적인 베이스 리프와 직설적인 노랫말을 특징으로 한다.제이콥 콜리어와 존 메이어가 참여한 정규 2집 < Case Study 1 >는 틀에 박힌 음악과는 거리가 먼 뮤지션임을 알려준다.

시저는 그의 음악을 소량의 노란색이 섞인 파랑으로 표현했다. 전체적으로 멜랑꼴리한 정서에 한 줄기 희망을 투영하는 방식을 색깔에 빗댔다. 시적이며 회화적인 그의 사운드스케이프는 피비알앤비의 대표 뮤지션 프랭크 오션과 카니예 웨스트, 더 도어스의 프론트퍼슨 짐 모리슨 등 다양한 예술가들에게서 영향받았다.
간담회 종종 한국 팬들의 놀라움을 언급했다. 2018년 첫 내한 때 팬들의 보여준 열정과 환호를 잊을 수 없다고 말한 그는 열린 HAVE A NICE TRIP 2023 에서도 < Never Enoguth >의 신곡들과 기존 히트곡을 엮은 셋리스트로 관객들을 만족시켰다. 아티스트로써 “나 자신이 될 것(Be Yourself)”를 강조한 다니엘 시저에겐 예술가의 자유로움과 단단한 중심이 공존했다.
취재: 염동교
사진: 유니버설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