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보위의 수많은 순간들로부터 여섯 가지의 키워드를 뽑았다. 아티스트의 이력을 설명할 단어들은 수없이 많지만 개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를 가져왔다.
우주
‘There’s a starman waiting in the sky’
그 무렵 세계는 우주 시대의 절정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1968년에 스탠리 큐브릭은 영화 < 2001: A Space Odyssey >를 통해 지구인 박사들과 인공지능 컴퓨터 ‘HAL’로 구성한 탐사대를 머나먼 우주로 날려 보냈으며 1969년에 세 명의 미국인은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착륙해 위대한 발걸음을 남겼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데이비드 보위는 가상의 우주비행사 톰 소령의 이야기를 담은 곡 ‘Space oddity’를 발표한다.
데이비드 보위의 신화에는 우주라는 테마가 굵직하게 자리한다. 많은 사람들도 데이비드 보위를 얘기할 때면 우주를 먼저 떠올린다. ‘Space oddity’로 영국 싱글 차트 5위의 성적을 기록, 세간의 큰 관심을 처음으로 끌어 모았던 아티스트는 1970년대에는 스스로 지구 밖 화성에서 온 로큰롤 스타로 분해 대성공을 거두더니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는 아예 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우주적인 이미지를 달고 우주적인 아우라를 자아내며 한평생을 살았기 때문일까. 데이비드 보위의 죽음이 실재로 다가오지 않는다. 지기 스타더스트처럼 저 멀리 검은 하늘 어딘가에서 눈빛을 반짝이다 지구 어딘가로 또다시 불시착할 것만 같다.
글램 록
결정적으로 데이비드 보위에게 성공을 가져다 준 것은 글램 록이었다.
1970년대로 진입하며 아티스트는 반짝이는 화장, 복장으로 꾸민 외모에 각양의 퍼포먼스를 결합해 글램 록의 기본 요소들을 구축해나가고 있었다. 당시 해당 장르의 선구 대열에는 마크 볼란의 밴드 티 렉스 또한 존재했다. 이윽고 1972년이 되었을 때 데이비드 보위는 화성에서 온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페르소나를 끌어와 스타일의 화려함을 극대화 시켰고 서사를 담은 콘셉트 앨범 < Ziggy Stardust >로 대성공을 거두며 자신과 글램 록의 전성기를 열어젖혔다.
아티스트의 글램 록 시기는 대개 < The Man Who Sold The World >를 발표한 1970년에서부터 < Diamond Dogs >를 내놓은 1974년까지로 한정되나, 데이비드 보위는 그 이후로도 글램 록의 최소 단위인 외관이라는 인자를 놓치지 않았다. 음악 못지않게 비주얼 콘셉트에서도 그는 완벽을 기했다. 변화무쌍하게 옷을 갈아입은 덕분에 데이비드 보위는 패션계에서도 빠지지 않는 단골 명사가 되었다.
토니 비스콘티와 믹 론슨
둘을 빼놓고는 결코 데이비드 보위의 이력을 논할 수 없다.
데이비드 보위가 한 단계씩 발전할 때마다 토니 비스콘티는 바로 옆에 있었다. 데이비드 보위와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이 프로듀서는 아티스트의 장래성에 자극을 주었고 주요한 음악적 변신에 동참했으며 막바지에까지 예술적으로 교류를 나누었다.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알린 < David Bowie >, 지기 스타더스트의 청사진을 그렸던 < The Man Who Sold The World >, 소울로의 변화를 감행한 < Young Americans >, 크라우트록을 활용했던 베를린 시기의 위대한 3부작과 < Scary Monsters (And Super Creeps) >, 2000년 이후의 모든 정규 음반 등 디스코그래피의 중요한 순간순간에 토니 비스콘티의 터치가 서려있다. 토니 비스콘티만큼이나 길고 깊게 아티스트의 세계관과 감각을 공유했던 동반자는 없다.
믹 론슨의 기타는 데이비드 보위의 또 다른 목소리였다. 둘의 협력은 < The Man Who Sold The World > 즈음에서 시작해 < Pin Ups >로 막을 내리는 약 3년, 결코 길지 않은 기간에 그친다. 그러나 데이비드 보위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이 짧은 시간 안에서 이루어졌다. 지기 스타더스트의 밴드, 스파이더스 프롬 마스의 기타리스트로서 믹 론슨은 록 스타의 훌륭한 조력자가 돼주었다. 지기가 목소리를 낼 때에는 하드 록 기타 배킹으로 탄탄하게 사운드를 받쳐주었으며 지기가 마이크를 내려놓을 때에는 날렵한 솔로잉으로 보컬을 대신해 노래했다. 무대 위에서도 둘은 각양각색의 수많은 퍼포먼스를 보였다. 데이비드 보위는 후일 인터뷰를 통해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 건스 앤 로지스의 액슬 로즈와 슬래쉬 만큼이나 훌륭했던 록 듀오로 지기와 믹을 회상했다.
변신
그 무대에 우리가 아는 데이비드 보위는 없었다.
변신. 이 두 글자만큼이나 정확하고 적확하게 그의 음악 여정을 요약할 수 있는 단어는 없다. 데이비드 보위는 그 자신과 예술에게 한 시의 진부함도 허락하지 않았다. 남들이 하지 않았던 것을 만들어내려 했고 남들이 채 보지 못 한 너머에 시선을 던지려 했고 남들이 가지 못 했던 영역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반복 없는 모습을 반복하기 위해 아티스트는 변신의 문법을 모든 창작활동에 이식시켰다. 아티스트의 이력을 구분하는 주요한 분기점에는 늘 음악적 변화가 놓여있다.
사이키델릭 포크, 하드 록을 덧댄 글램 록, 소울과 펑크(funk), 크라우트록, 디스코, 일렉트로니카와 인더스트리얼, 앰비언트, 아트 록, 재즈. 모두 아티스트가 이력 내내 굵직하게 건드린 장르들이다. 단순하게 이것저것 건드려보는 시험적 차원에서 변이가 이뤄졌다고 해석한다면 곤란하다. 데이비드 보위는 각양의 사운드를 완전히 이해했고 더 나아가 이를 자신의 컬러로 완벽히 재조합해 체득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변이가 짧게는 2,3년 길게는 4,5년 안에서 행해졌다는 점. 변신의 귀재인 그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위업이다.
변신은 음악적인 수준에서만 이뤄지지 않았다. 충격을 선사하기 위해 아티스트는 자기 자신을 지우는 파격까지 행했다. 가장 유명한 페르소나는 역시나 1970년대 초 < Ziggy Stardust >와 함께 탄생한 지기 스타더스트. 우주에서 온 탈을 뒤집어쓴 채 무대 위로 올라간 순간부터는 데이비드 보위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지기 스타더스트가 등장한다. 게다가 믹 론슨을 비롯한 밴드 멤버들에게도 더 스파이더스 프롬 마스라는 가면을 씌워 페르소나의 캐릭터를 완벽에 가깝게 만들었다. 이후 < Diamond Dogs >에서 선보인 외눈의 할로윈 잭과 Station To Station >과 함께 등장한 깔끔한 외모를 한 광기의 신사 씬 화이트 듀크 역시 유명하며, 영화 <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 >에서의 외계인 뉴턴이나 < 라비린스 >에서의 고블린 왕 자레드도 인상적인 데이비드 보위의 가면으로 알려져 있다.
콜래보레이션
넓고 깊은 안목의 증거.
수많은 거물들과 함께 데이비드 보위는 훌륭한 결과물들을 남겼다. 앰비언트 음악의 창시자 브라이언 이노, 아트 록의 대가인 킹 크림슨의 로버트 프립, 창의적인 소리를 구사하는 기타리스트 애드리언 벨루, 펑크(funk)-디스코를 대표하는 쉭의 기타리스트 나일 로저스 등이 아티스트의 이력에 순간순간 등장해 데이비드 보위의 사운드들을 완성하는 데에 힘을 보탰다. 더불어 예스에 참여하기 직전까지 릭 웨이크만은 아티스트의 초창기 작품들에 참여해 경력에 시동을 걸었고, 훌륭한 팝 세션으로 명성을 쌓아가던 젊은 데이비드 샌번도 1975년 < Young Americans >에 참여해 이름을 더욱 알렸으며, 날개를 필 기회를 엿보고 있던 스티비 레이 본도 1983년 < Let’s Dance >의 크레디트에 리드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남기며 성공의 실마리를 잡는다. 명장(名匠)들의 재능과 데이비드 보위의 안목은 늘 시너지 효과를 낳았다.
더 나아가 데이비드 보위는 프로듀싱에도 능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에서의 상업적인 실패로 쓴맛을 본 루 리드를 데이비드 보위와 믹 론슨이 프로듀싱 한 < Transformer >가 일으켜 세웠다. 또한 펑크 록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1977년, 아티스트가 프로듀싱한 < The Idiot >과 < Lust For Life >가 펑크의 대부 이기 팝의 이름을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연이은 참패로 밴드의 생명줄을 놓으려던 모트 더 후플에게 닿은 글램 록 시대의 영광은 데이비드 보위가 만들어 준 것이었다. 모트 더 후플의 전환점이 된 < All The Young Dudes >을 프로듀싱하고 글리터 록의 앤섬 ‘All the yound dudes’을 써주며 아티스트는 밴드에 큰 힘을 보탰다.
존경을 마지않았던 존 레넌과의 ‘Fame’, 퀸과의 ‘Under pressure’, 마사 앤 더 반델라스의 곡을 역동적으로 리메이크한 믹 재거와의 ‘Dacing in the street’도 물론 이 맥락에서 빼놓을 수 없다. 큐어의 로버트 스미스, 픽시스의 블랙 프랜시스, 소닉 유스, 데이브 그롤 등 후배 뮤지션들과 함께 만든 자신의 50주년 생일 콘서트 무대나, 데뷔 앨범 < Funeral >을 대량 구매해 직접 주변에 돌릴 정도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후배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와의 음악적 협업 또한 데이비드 보위의 너르고 깊은 교류의 단편들이다.
다작
놀라운 창작력과 왕성한 활동량이 만났을 때.
긴 시간을 거쳐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가 있는가하면 왕성한 활동량을 토대로 무수한 작품을 연이어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도 있다. 데이비드 보위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데이비드 보위의 디스코그래피를 보면 앨범 간의 시간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 음반 제작의 순환이 대체로 2,3년 안에 이루어졌다.
아티스트의 반짝이는 창작력은 언제나 그 자신을 록계의 선두권에 자리하게끔 했고 동세대 동료들의 음악적 수명이 하나 둘 꺼져갈 때에도 그 자신을 살아남게끔 했다. 심장 수술을 겪고 긴 회복기를 가져야 했던 2004년부터의 약 10년에 가까운 공백기만이 그의 손을 오래 쉬게 했다. 몸을 추스르고 나온 데이비드 보위는 다시 < The Next Day >와 < Blackstar >이라는 2010년대의 두 명작을 연이어 내놓았다.
프론트 맨으로 활동했던 틴 머신에서의 두 앨범까지 합산해 데이비드 보위는 총 스물일곱 장의 정규 음반을 발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