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12월 8일 아일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록밴드 U2의 내한 공연이 실현되었다. U2는 독창적인 사운드와 진솔한 가사로 대중적 성공 뿐 아니라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우리 시대 최고의 밴드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 외국 밴드의 내한 공연에 국내 많은 언론들이 지대한 관심을 갖는 이유는 지난 40년 동안 평화와 인권을 위한 이들의 두드러진 활동과 업적 때문이다. 이로 인해 U2의 리더, 보노(Bono)는 두 차례나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며 뮤지션으로서는 특별한 영향력을 펼쳐 왔다. 이들의 방한이 한반도 평화의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많은 이들이 기대한다.
U2의 음악 여정은 유럽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시작된다. 1976년 당시 14세였던 래리 뮬린 주니어(Larry Mullen Jr.)가 마운트 템플 학교 게시판에 밴드 맴버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내면서 시작되었다. 보노(본명 Paul Hewson), 에지(David Evans), 아담(Adam Clayton)과 래리가 ‘피드백'(Feedback)이란 그룹명을 정하고 방과 후와 주말에 맹연습에 돌입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색깔과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더블린 소년들의 자기 발견과 음악적 소명은 1집 < Boy >(1980)와 2집 < October >(1981)의 수록된 가사에 잘 녹아있다.

U2가 본격적으로 사회 문제에 관심을 쏟은 것은 그들의 세 번째 앨범 < War >(1983)부터이다. 이 앨범은 시종일관 분노 가득한 비판의 어조로 가득하다. 제목이 말해주듯 그 타깃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전쟁’이며, 그 폭력으로 인한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담아냈다. 타이틀곡 ‘Sunday Bloody Sunday’는 1972년 1월 30일 북아일랜드 델리(Delly)에서 평화적 시위를 하던 아일랜드인들 28명이 영국군의 발포로 잔혹하게 희생당한 사건을 이야기한다. 아일랜드인들은 이 사건을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이라고 부른다.
아이들 발밑에 뒹구는 깨진 병들.
막다른 골목에 쓰러진 시체들, 전쟁이 시작 되었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승자는 누구일까?
우리 가슴에 구멍을 파는 아픔
어머니와 아이들과 형제와 자매들을 찢어놓았지.
일요일 피의 일요일
우리는 이제 면역이 생겼나봐.
지금도 이런 희생은 계속되고 있어.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지.
우리가 먹고 마시는 동안 사람들은 죽어가지.
얼마나 오래 우리는 이 노래를 불러야 할까?
– Sunday Bloody Sunday –
그 날을 담아낸 방송엔 총탄이 발사되는 와중에 가톨릭 주교 에드워드 달리(Edward Daly)가 자신의 하얀 손수건을 흔들면서 부상자들을 향해 뛰어가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보노는 그 하얀 손수건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의 눈에 비친 손수건은 항복의 백기라기보다 발포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용기있는 저항의 상징이었다. 어떤 명분과 이념도 생명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U2는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흰 깃발을 휘날리며 청중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노래는 지금까지도 U2의 공연마다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상징적 노래가 되었다.

1980년대 초반 U2의 멤버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전쟁과 분열로 인한 갈등 상황이 도처에 산재하고 있었다. U2는 이 앨범의 수록곡들에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현실을 고발하며 듣는 이들의 양심을 일깨운다. ‘Seconds’에서는 핵무기의 비인격적 파괴성과 국가 이기주의에 의한 핵 확산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New Year’s Day’는 폴란드 정부가 자유노조운동(Solidarno) 지도자 바웬사(Lech Walesa)를 투옥한 것에 반대하며 그의 석방을 요청하는 곡이다. ‘Like a Song’은 둘로 쪼개진 이익집단의 탐욕으로 인한 전쟁에 희생되는 ‘이름 없는’ 젊은 세대의 고통을 대변하고, ‘Refugee’는 정치적 이유로 난민이 된 한 가족의 아픈 이야기를 다룬다.
우린 매일 전쟁과 혁명 속에 살고 있지.
소비에트, 독일, 런던, 뉴욕, 베이징!
배후를 조종하는 앞잡이들이 있어.
‘굿바이’하며 작별하는 데 불과 몇 초면 돼.
플러그를 당기고 버튼을 눌러. 그렇게 굿바이.
– Seconds –
사람들은 지금이 황금시대라 하지만
황금은 바로 전쟁의 이유야.
– New Year’s Day –
매 맞고 찢겨진 이름 없는 세대,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지. 그냥 아무것도 없어.
분노의 말들은 싸움을 막을 수 없지
서로 다투는 두 세력은 절대 옳은 일을 할 수 없어.
– Like a Song –
전쟁, 전쟁이야. 그녀는 난민이 되었지.
그녀의 엄마는 넌 언젠가 미국에서 살게 될거라 말했지.
이른 아침 그녀는 배를 기다리고 있어.
전쟁, 전쟁이야. 그녀의 아버지는 전쟁터로 나갔어.
그녀의 엄마는 아빠가 곧 돌아올거라 말했지
늦은 저녁 그녀는 아빠를 기다리고 있어.
– Refugee –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비극은 곧바로 다른 지역의 고통으로 전이되어 공감을 부른다. “깨진 병들과 쓰러진 시체들”은 이후에도 보스니아와 르완다에서, 쿠웨이트와 이라크에서,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과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앨범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40’는 다음 가사로 마무리된다. “얼마나 오래 우리는 이 노래를 불러야 하나요? 얼마나 오래, 얼마나 오래!” 밥 딜런이 ‘Blowing in the Wind’에서 노래한 것처럼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음을 깨닫게 될까?”
“이 노래는 저항노래(rebel song)가 아닙니다!” 보노가 공연에서 ‘Sunday bloody Sunday’를 부를 때 자주 외치는 말이다. 그는 이 노래가 영국군의 잔혹성을 폭로하고 아일랜드의 정치적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한 무장 조직 IRA에 대해서도 철저히 반대한다. 피의 일요일 사건은 IRA의 강경한 무력 도발의 원인이 되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의 원인이기에 한 편이 그 반복적 복수의 사슬을 끊는 것이 평화의 길임을 강조한다. 그것이 U2가 노래에서 말하는 ‘용기있는 선택’이며 ‘진정한 전쟁'(real battle)이고 “예수께서 이루신 승리”이다.
누가 너의 눈물을 씻어줄 수 있을까?
나도 너의 눈물을 씻어줄게.
이제 진짜 전쟁이 시작되었지.
예수께서 이루신 승리를 성취하자.
일요일 피의 일요일에
– Sunday Bloody Sunday –
이 노래가 말하는 ‘진정한 전쟁’은 비폭력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그 상징물로 그가 공연에서 사용한 것이 ‘백기’였다. 이 노래는 폭력의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과 예수가 화해의 피를 흘린 ‘부활절 일요일'(Easter Sunday)을 대비하며 메시지를 극대화한다. 보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난 인류 역사에서 나온 최고의 사상은 바로 ‘은혜'(grace)이입니다. 이것이 내가 크리스천이 된 이유입니다. ‘응보'(karma)가 궁극적 판단이라면 난 희망이 없습니다. 복음은 응보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U2는 내한공연에서 ‘Sunday bloody Sunday’를 오프닝 곡으로 선택했다. 그들은 피의 일요일이 아일랜드 뿐 아니라 한국인의 상처임을 알기 때문이다. 1950년 6월 25일, 피의 일요일! 그 날 이후 이 아픈 전쟁의 상처는 우리들의 기억과 마음에 여전히 깊게 새겨져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노래를 불러야 할까?”(How long must we sing this song?)”

U2의 음악과 사회 방향은 어느 정치 체제나 경제 이데올로기의 입장에 서지 않는다. 다만 현실정치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인권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또한 1980년대 중반부터 U2는 대규모 자선 공연에 참여하면서 “록의 양심의 대변자”로 불리게 되었다. 봅 겔도프(Bob Geldorf)가 주도한 에티오피아 기아 난민 구호 프로젝트인 ‘Band Aid’와 ‘Live Aid’ 캠페인은 그 시작이었고, 아일랜드 실업자들을 위한 자선 공연 ‘Self Aid,’ 남아공 인종차별법의 폐지를 촉구하는 ‘Sun City’ 공연, 성차별주의를 반대하는 ‘Rock against Sexism’ 공연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1984년부터 U2는 소위 ‘아메리카 3부작’이라 불리는 세 앨범을 연속해서 발표했다. U2의 눈에 비친 미국은 로큰롤 고향이며 발전된 문명을 이룬 곳이지만 물질만능주의와 패권의식으로 구원의 힘을 잃어버린 모순의 땅이었다. 미국에 대한 희망과 절망의 이중적 이미지는 많은 아티스트들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왔다. U2는 < The Unforgettable fire >(1984)와 < Rattle and Hum >(1988)에서 자신이 존경한 미국의 인물들과 대중음악 전통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였다.

한 사람이 사랑의 이름으로 왔다네…
4월 4일 이른 아침 멤피스의 하늘에 총성이 울렸지.
마침내 자유다! 그들은 당신의 목숨은 앗아갔지.
그러나 당신의 자부심은 빼앗지 못했어.
사랑이라는 이름에 대한 자부심.
사랑의 이름 위에 그 무엇이 있으랴.
– Pride(in the name of Love) –
이 노래에 등장하는 ‘한 사람’은 마틴 루터 킹(Martin-Luther King Jr.) 목사이다. U2는 그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졌고, 이 노래와 또 다른 곡 ‘MLK’를 그의 영전에 바쳤다. ‘Pride’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죽음에 대한 울분과 추모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면, ‘MLK’는 킹 목사의 유명한 연설 “I have a Dream”에서 또한 그의 평생 품었던 간절한 평화와 자유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2006년 오바마(Obama)가 흑인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된 역사적 날에 U2는 백악관에 초대되었다. 그들이 부른 노래는 다름 아닌 ‘Pride’였다.
1984년 U2는 본격적인 미국 활동을 시작하며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다니엘 라누아(Daniel Lanois)를 프로듀서로 영입하면서 음악적 변화를 도모하였다. 이노는 신디사이저를 통해 주 선율 이면에 흐르는 배경음을 통해 공간감을 불어넣는 획기적인 방식을 고안해냈다. ‘앰비언트'(Ambient)라고 불리는 이 연주 방식은 영롱한 딜레이 사운드와 스트레이트한 록큰롤을 표방한 U2의 음악에 안정감과 화사한 세련미를 불어 넣었다. 이 만남은 U2의 개성을 강조하면서 그들의 메시지의 경건함을 극대화한 최고의 조합이었다. < The Joshua Tree >의 타이틀곡 ‘Where the street has no name’의 인트로는 절망을 넘어 비춰오는 희망의 여명을 느끼게 해주는 멋진 사운드를 구현하고 있다.

1987년 그렇게 탄생한 앨범이 바로 대중음악 역사에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꼽히는 < The Joshua Tree >이다. 이 앨범의 대 성공으로 U2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밴드로 우뚝 서게 된다. 무려 2,500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고 빌보드 앨범 차트 9주 연속 1위, 두 곡이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다. 그래미상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과 ‘베스트 록 퍼포먼스'(Best Rock Performance) 상을 수상하였고, 록 밴드로는 세 번째로 시사주간지 Times 표지를 장식했다.
이 앨범의 또 다른 타이틀은 ‘The Two Americas’였다. 이 앨범에서 U2는 미국을 ‘사막’으로 비유하며 성경의 메타포를 이용해 풍부한 영감으로 내면화하고 있다. U2에게 미국은 “공간이며 동시에 철학이다.” ‘사막’은 이 앨범을 관통하는 중심 이미지이다. 죠슈아 트리는 황량한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자라는 선인장의 일종으로 희망과 생명 그리고 종교적 구원을 상징한다. 이 앨범에 묘사된 미국은 더 이상 약속의 땅이 아니라 “먼지 구름과 산성비로 가득한, 황폐해져버린”사막이다. U2는 이 앨범에서 11곡의 수록곡을 통해 ‘공간’과 그 안의 인간의 삶의 관계성을 풍성한 영감으로 펼쳐 놓았다. 이 앨범의 수록곡, ‘In God’s Country’에서 U2는 ‘신의 나라’를 꿈꾸던 미국의 이중성을 고발하며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사막의 하늘, 그 사막 하늘 밑의 꿈.
강은 흐르지만 곧 말라 버릴거야.
우리는 새로운 꿈이 필요해
그녀는 자유, 그녀가 곧 나를 구원하러 올 거야
희망, 믿음, 그리고 그녀의 허영.
가장 귀한 선물은 금이겠지.
신의 나라에서, 잠은 마역처럼 찾아오지.
신의 나라에서, 슬픔은 십자가를 짓밟고 있지.
– In God’s Country –
풍요로운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은 이미 그 가치를 잃었으며 황량한 사막에서 이제는 새로운 꿈이 필요하다. 미국은 자유를 외치며 세계를 돕는다고 나서지만 허울 좋은 희망의 가치는 단지 미국의 허영일 뿐이다.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결국 돈이다. 또 다른 곡, ‘Bullet the Blue Sky’에서 U2는 1980년대 북중미 국가에 행사된 미국의 강압적 개입에 분노를 터뜨리며 강하게 비판하였다.
악마의 씨를 뿌리고 화염을 일으킨다.
십자가를 불태우는 것을 보라. 솟구치는 불꽃을…
가시덤불의 장미처럼, 로열 플래시의 모든 색깔처럼
그는 달러 지폐를 낙하시키고 있다…
벽을 통해 우린 이 도시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미국이 밖에 있다. 미국이 밖에 있다.
– Bullet the Blue Sky –
1989년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기록한 저서 < 아메리카 >에서 미국이란 장소 안의 허상을 냉소적으로 비판하며, 그 문화 자체를 ‘사막’에 비유하였다. 그는 뉴욕은 초현실주의적 텍스트와 이미지를 ‘수직적으로’ 구현한 허상이라면, 캘리포니아는 일종의 자기증식 과정 속에 ‘수평적으로’ 확장된 ‘사막’으로 그 안의 거주자들을 “외국인과 좀비와 관광객”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지적하며 “희망 없는 낙원” 미국의 폐부를 저격한다.
이는 같은 프랑스인으로서 1831년 미국을 여행하며 미국식 공화정과 정교분리에 기초한 민주주의에 큰 감동을 받아 미국을 새로운 희망의 땅으로 묘사한 알렉시스 토그빌(Alexis de Tocqueville)의 보고와는 전혀 다른 그림이다. 보드리아르가 이런 희망의 땅이 20세기를 거치며 사막으로 황폐해진 풍경을 U2는 1987년 이 앨범을 통해 먼저 구현해내고 있다.
장 보드리야르가 미국을 진정성과 의미가 사라진 이미지만 남은 허상으로 바라보았다면, U2는 그 사막의 절망 속에 새로운 사유를 시작한다. 그 사막은 현실의 모순과 절망에서 신을 의지하고 구원의 희망을 꿈꾸는 장소이다. 보노는 이 사막 이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막을 그저 황량한 곳이라고만 생각하죠. 물론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사막은 아주 긍정적인 이미지입니다. 사막은 어떤 일이든지 시작할 수 있는 아주 깨끗한 캔버스 같은 것이기도 하니까요.” 이처럼 사막은 아주 상반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으며, U2가 바라본 미국 역시 그런 이중적 애정과 분노가, 절망과 희망의 공존을 음악 속에 표현하였다.

U2에게 미국은 ‘마음의 땅'(Heartland)이기도 하다. 보노는 1987년 「LA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이 특히 중미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악몽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미국은 농부와 인민의 황폐화를 자행하고 있죠. 그러나 난 미국 시민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애정을 가지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 미국은 ‘악몽’이면서 동시에 (희망의) ‘꿈’입니다.” 일부 평론가들은 U2가 현실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도 급진적 체제 변혁이 아닌 온건한 체제 수정을 모색하는 한계를 지적하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 비판을 미국인들은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바로 이 점이 보수적인 그래미상이나 주류 언론이 지속적으로 U2에게 절대적인 지지와 호의를 보여준 이유일 것이다.
“당신과 함께이든, 당신 없이든, 난 못견딜 것 같아요.” U2의 대표곡 ‘With or without you’는 언뜻 남녀 사이의 사랑과 갈등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이 노래는 삶의 실존 속에 지속될 수밖에 없는 회의와 진리 사이의 갈등을 담고 있다. 이 노래는 그 고뇌의 해답이나 해결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처럼 U2의 노래는 인간 실존의 부조리와 믿음과 회의 사이의 고뇌를 미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주제가 가장 잘 드러나는 노래가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이다. 이 노래는 가사와 음악 모두에서 가스펠송을 표방한 U2의 대표곡이며 빌보트 차트 1위에 올랐다.
나는 높은 산을 오르고, 저 들판을 달려 왔습니다.
오직 당신과 함께 하기 위하여.
나는 달리고, 뒹굴며, 이 도시의 담을 해메며 다녔습니다.
오직 당신과 함께 하기 위해서.
그러나 나는 내가 구하는 것들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나는 장차 임할 왕국을 믿습니다.
그 때에 모든 인종들이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래요, 나는 여전히 달려갑니다.
당신은 모든 속박을 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셨죠. 내 부끄러움의 십자가를.
당신은 내 믿음을 아시지요.
그러나 나는 내가 구하는 것들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
이 노래는 상투적인 신앙고백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그 제목이 말해주듯 “갈구하는 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회의를 말하고 있다. 이는 일상 속에 신의 존재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으로 고뇌하는 나약한 인간의 믿음을 말한다. 이 노래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나는 계속 달려갑니다.”(I’m still running)라는 가사에 있다. 실상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I still haven’t found)는 부정적 고백은 그래서 난 포기하고 말았다는 허무와 좌절이 아니라, 나는 포기하지 않고 진리를 향한 여정을 계속 달려가겠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그 희망은 황폐한 사막 너머 서로 간의 구별이 사라진 “이름 없는 거리”를 향하고 있다. 바로 그 곳이 U2가 바라보는 약속의 땅이며 구원의 도시이다.
난 달아나고 싶어, 숨어버릴테야
나를 가두는 이 벽을 무너뜨리고 싶어
난 손을 뻗어 희망의 불꽃을 만지고 싶어
이름 없는 거리에서.
내 얼굴을 비추는 햇빛을 느끼고 싶어
그 곳에서 먼지구름은 흔적 없이 사라지지
나는 산성비를 피할 수 있는 안식처를 원해
이름 없는 거리에서
이 도시는 홍수가 범람하고 우리 사랑은 녹이 슬었지
세찬 바람은 우리를 때리고 먼지 속에 쓰러지고 말았어
내가 이제 보여줄게 이 사막 너머 있는 세상을
이름 없는 거리에서
내가 그 곳에 갈 때 너를 데려갈게
– Where the street has no name –

존 레논(John Lennon)이 우리를 천국과 종교 없는 세상을 ‘상상'(imagine)하게 한다면, U2의 노래는 우리로 하여금 천국으로 세상을 상상하도록 초대한다. 한 인터뷰에서 보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천국이 우리가 죽으면 가는 하늘 위의 어떤 곳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나는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 우리 삶의 아주 작은 부분에서라도 말이죠.”.
폭력과 탐욕으로 대변되는 절망적인 세계에서 이들은 평화의 세상을 꿈꾼다. 그 구원의 희망은 이들에게 응보가 아닌 신의 은총이며 그 상징이 사막에서도 꿋꿋하게 서있는 조슈아 트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