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몰랐더라면,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가사들

판을 구매하거나 라디오를 들어야만 음악을 들을 수 있던 과거에는 해외 곡의 가사를 정확히 알기도 어려웠고 설령 가사를 입수했다 한들 외국어 교육이 보편화되지 않았기에 이를 제대로 해석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팝의 명곡 중 지금까지 잘못된 내용으로 전해져 막연히 소비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뜻을 몰라도 멜로디와 리듬에 몸과 마음을 맡길 수 있다는 사실은 음악의 위대함을 증명하지만, 가사를 확인한 후 차라리 몰랐더라면 하는 감정을 마주하는 게 썩 즐겁지는 않다.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대표적인 노래와 가사를 바로잡아본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Billie jean’
모타운 25주년 공연 당시 공개된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무대 위를 미끄러지듯 유려한 춤선을 뽐내는 그의 발놀림 덕에 노래의 가사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Billie Jean is not my lover’라는 대목 때문인지 ‘Billie Jean’을 사랑 노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사실 이 곡은 클럽에서 하룻밤을 보낸 여성(Billie Jean)이 어느 날 둘 사이에 아들이 있다며 화자 앞에 나타났다는 막장 스토리를 담고 있다.

디스코의 흥취에 더해진 심각한 베이스 라인이 마치 클럽에서 일어난 미제 사건을 그리는 듯하지 않은가. 프로듀서였던 퀸시 존스는 노래 제목이 동명의 테니스 선수를 겨냥하는 것 같다며 제목을 바꿀 것을 권했지만 잭슨이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정연경)

밴 헤일런(Van Halen) ‘Jump’
길을 가다가 고층빌딩 꼭대기에 위태롭게 서 있는 사람을 본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경찰이나 119에 신고하지만 “그래! 어서 뛰어내려!”라고 외치는 미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밑에서 그렇게 외치는 사람은? 그렇다. 자살방조자에 해당한다.

자살하려는 사람에 대한 뉴스를 본 밴 헤일런의 보컬리스트 데이비드 리 로스가 이 내용을 바탕으로 가사를 쓴 ‘Jump’는 밴 헤일런을 상징하는 곡으로 1984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올라 1980년대 팝메탈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노래다.

헤비메탈에 신시사이저 건반 리프의 도입을 유행시킨 ‘Jump’는 이후에 스웨덴의 팝메탈 밴드 유럽의 ‘Final countdown’과 무한궤도의 ‘그대에게’에도 영향력을 과시했다. 그런데 새로운 출발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이 ‘자살방조 곡’을 1월 1일이나 새로 시작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첫 곡으로 튼다면 청취자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소승근)

엘튼 존(Elton John) ‘Daniel’
밴조와 멜로트론으로 잔잔하게 시작하는 발라드에 사람 이름인‘ 다니엘’을 곡 이름으로 쓰고 있어 이 노래가 단순히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오해하기 쉽다. 실제로 엘튼 존의 영원한 작사 짝꿍 버니 토핀은 한 인터뷰에서 이 노래가 본인들이 쓴 곡 중 가장 많이 곡해된 노래라고 말하기도 했다.

1973년 베트남 전쟁의 막바지 총격이 극에 달했을 때 쓰인 곡으로 버니 토핀이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부상당한 군인의 기사를 읽고 노랫말을 적었다. 발매 당시 우울한 서사를 품고 있단 이유로 싱글 커트가 거부되기도 했지만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의 의지로 빛을 보게 됐으며 본국인 영국에서 4위, 미국의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2위란 높은 성과를 거머쥐었다. 가사를 알면 더 애절하고 구슬픈 역사를 담은 발라드다. (박수진)

테리 잭스(Terry Jacks) ‘Seasons in the sun’
자끄 브렐의 샹송 ‘Le moribond’을 영어로 번안한 곡으로 몇 차례의 리메이크에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73년에 캐나다 가수 테리 잭스에 의해 드디어 빛을 발했다. 경쾌한 리듬과 ‘태양’이 들어간 제목은 왠지 모르게 햇볕이 내리쬐는 따스한 날을 연상케 한다. 국내에서는 특히 웨스트라이프의 버전이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가사는 죽음 앞에 있는 남자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형수가 과거를 회고하며 후회하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으나 더 깊이 파고들면 막장 그 자체다. 여기에는 가장 친한 친구와 아내가 바람을 피우면서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려는 남자의 절절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외국에서도 이 노래를 장례식장에서 트는 웃지 못할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임선희)

미카(MIKA) ‘Grace kelly’
명랑한 반주와 ‘Why don’t you like me?’를 되풀이하는 가사 때문에 발랄한 사랑 고백 노래로 오해하기 쉽지만 이 노래는 아주 반항적이다. 데뷔 전 한 음반사에서 ‘사람들이 좋아하게끔 평범하게 음악을 하라’며 퇴짜를 맞고 미카가 화가 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빚은 트랙 ’Grace Kelly’. 자신의 예술적 개성을 침해받는 게 못마땅했던 그는 곡에서 할리우드 스타로서, 모나코의 왕비로서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숱한 잡음과 고독한 궁중 생활에 시달리던 그레이스 켈리에 자신을 빗댄다.

‘그레이스 켈리처럼 되려고 했죠 / 하지만 그녀는 너무 슬퍼 보이더군요’라는 문장처럼 노랫말 곳곳에는 켈리를 향한 동정과 자신의 창작 자유를 향한 갈망이 나타나 있다. 다채로운 매력을 감추지 못하는 그에게 ‘평범하게 음악 해’라니! 결국 신인 미카의 당찬 반항에 대중은 응답했고 노래는 영국 싱글 차트 정상에 올랐다. (이홍현)

톰 존스(Tom Jones) ‘Green, green grass of home’
열차에서 내려 마주한 고향. 푸른 잔디가 펼쳐진 아름다운 고향 위 예전 그대로의 집과 가족이 나를 반기고, 사랑하는 여인 메리가 나를 맞으러 달려온다. 아, 꿈같은 삶이여… 그러나 그것이 정말 꿈이었을 줄이야. 그러나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칙칙한 벽 뿐, 나는 곧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사형수다. 부디 이 고통스런 삶이 끝나면, 고향의 푸른 잔디밭 아래 영원히 눈을 감은 채 잠들 수 있기를…

조영남은 1960년대 인기 절정의 바리톤 보컬 톰 존스(Tom Jones)의 ‘Delilah’와 ‘Green green grass of home’을 취입하며 그에게 없던 중후한 매력을 더하고자 했으나 후자를 옮긴 ‘고향의 푸른 잔디’는 원곡의 비극을 거세하고 목가적인 분위기만 강조하며 지금까지도 한국 팬들에게 많은 오해를 불러왔다. 1965년 컨트리 가수 포터 와고너(Porter Wagoner)가 처음 부른 이 불멸의 히트곡은 엘비스 프레슬리, 조안 바에즈 등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거친 걸작이다. 중후한 목소리로 씁쓸하게 이야기를 읊어나가는 톰 존스의 버전이 그 중 으뜸으로 뮤지션을 대표하는 싱글이 됐다. (김도헌)

나나 무스꾸리(Nana Mouskouri) ‘Plaisir d’amour(사랑의 기쁨)’
자신의 모든 걸 바칠 정도로 사랑했던 사람이 나를 떠나 다른 연인을 찾아가는 상황에 희열을 느꼈다면 모르겠지만, 변해버린 실비를 그리워하며 아파하는 화자를 생각해보면 ‘Plaisir d’amour(사랑의 기쁨)’이란 제목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시인 장 피에르 클라리스(Jean-Pierre Claris de Florian)의 시 구절에 프랑스 작곡가 마르티니(Jean-Paul-Égide Martini)가 음을 붙인 가곡 ‘Plaisir d’amour'(1784)의 이야기다. 국내에선 1971년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가수 나나 무스꾸리가 발매한 앨범 의 수록곡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목소리로 그려낸 ‘사랑의 기쁨’이란 선율은 이름과 함께 한국의 팬을 현혹했고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아름다운 순간에 떠오르는 대표적인 음악으로 기억된다. 2001년 개봉한 <봄날은 간다>의 이영애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영화 속 두 명의 이별 감정을 정제하기도 한 ‘Plaisir d’amour(사랑의 기쁨)’. 비록 희망적인 결말은 아니지만 ‘사랑의 기쁨은 한순간이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다’고 말하는 노랫말처럼 곡의 아련한 감성과 멜로디는 시대를 초월해 마음에 머물렀다. (손기호)

U2 ‘New year’s day’
새해맞이가 마냥 희망차란 법은 없다. 세계가 냉전으로 신음하던 1980년대에 발표된 ‘New year’s day’는 ‘새해가 와도 아무것도 변치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을 표현한다.

보노는 당시 폴란드에서 내려졌던 계엄령과 ‘자유 노조 연대’의 수장 레흐 바웬사를 떠올리며 가사를 썼다고 한다. 비유하자면 이육사의 ‘광야’나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결이 비슷한 정서를 가진 곡이 영국 싱글차트 10위, 빌보드 53위에 오르며 U2의 첫 히트곡이 된 셈이다. 공포와 억압에 대한 내용이 당시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막연히 새해 첫날을 축하하며 듣자니 숙연하지 않은가. (황인호)

배리 매닐로우(Barry Manilow) ‘Copacabana’
음악과 정열의 해변, 코파카바나. 배리 매닐로우의 ‘Copacabana‘는 브라질을 배경으로 한 음악이니만큼 흥겹고 신나는 라틴의 향연이다. 가사에서 등장하는 ‘메렝게’라는 라틴 리듬에 사용되는 탕부르(북의 종류)로 연주가 시작되면, 정신없이 몸을 맡긴 채 춤추고 싶어지는 열정적인 삼바가 시작된다.

낭만적인 분위기로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가사는 코파카바나의 어느 클럽에서 일어난 사랑의 발화와 비극적인 결말을 노래한다. 쇼걸 로라가 총기사건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잃은 것. 노래는 30년이 지난 1978년으로 이동해 늙어버린 로라를 묘사한다. ‘Now it’s a disco, but not for Lola.‘ 세상은 더이상 라틴이 아닌 디스코에 열광하며 로라는 젊음도 잃고 사랑도 잃었다. (조지현)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 ‘West end girls’
노래는 런던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인 웨스트엔드와 극빈층 노동자들이 주로 살던 이스트엔드를 번갈아 언급하고, 여러 대조적인 장면을 엮음으로써 빈부격차 문제를 넌지시 꼬집었다. 하지만 서쪽 끝에 사는 소녀랑 동쪽 끝의 소년을 되풀이하는 가사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이 국제결혼 얘기로 오해하곤 했다.

프로듀서 바비 올랜도와 작업해 1984년에 발표한 오리지널 버전은 히트하지 못했으나 이듬해 레이블을 옮기고 새로운 프로듀서와 만든 두 번째 버전이 큰 인기를 얻어 영국과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랐다. 뉴 스쿨 힙합과 프리스타일의 퓨전에서 잔잔한 신스팝으로 바뀐 것이 펫 샵 보이즈에게 성공을 안겨 줬다. (한동윤)

알버트 해먼드(Albert Hammond) ‘For the peace of all mankind’
추억의 올드 팝으로 아직까지도 꾸준히 회자되는 알버트 해먼드의 ‘For the peace of all mankind’ 또한 가사가 잘못 알려진 팝송 중 하나다. ‘모든 이들의 평화를 위하여’라는 인류애 가득 담긴 제목과 어딘가 호소하는 듯한 절절한 목소리. 많은 이들이 이 곡을 세계 평화 메시지가 담긴 노래로 생각했지만 사실 곡은 하룻밤을 보낸 상대를 잊지 못해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다. 개인의 연정에 ‘인류의 평화’라니. 인연을 떠나보낸 아쉬움에 흔들리는 ‘평정’을 범지구적 크기로 표현한 애원이 혼란을 가중했다. (장준환)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Radio-activity’
‘가이거 계수기(Geigerzähler)’, ‘전파(Ätherwellen)’, ‘트랜지스터(Transistor)’… 1975년 독일의 4인조 혁신가 크라프트베르크를 접한 팬들은 전기 공학 서적같은 < Radio-Activity >에 매료됐다. 그중 으뜸은 역시 ‘Radio-activity’, 방사능이었다. 신비로운 나레이션과 영롱한 전자음, 모스 부호가 산업 시대 대기에 부유하는 방사성 물질(Radioactivity)과 전파(Radio)를 한데 묶었다.

‘Radio-activity’는 역사의 흐름 속 끊임없이 노랫말을 바꿔가며 스스로 의미를 확충해나갔다. 처음에는 단순히 겹치는 단어를 활용한 언어 유희 정도에 그쳤으나, 1981년 싱글 커트된 이후 방사능 사고가 일어난 “체르노빌, 해리스버그, 셀라필드, 히로시마”를 직접 언급하며 반핵(反核) 운동을 상징하는 송가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이후 가사는 “체르노빌, 해리스버그, 셀라필드, 후쿠시마’. 2019년 내한 공연 때 그룹의 일원 랄프 휘터가 “이제 그만 방사능”을 선명히 외치며 곡의 진의를 선명히 전파했다. (김도헌)

폴리스(The Police) ‘Every breath you take’
대다수는 이 노래를 감미로운 사랑노래라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잠깐 가사를 음미해보자.

당신이 숨 쉴 때마다, 당신의 움직임마다, 나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을 거야

살짝 느낌이 싸해지지 않는가? 외국에서 결혼식 축가로도 쓰이는 것과 달리 이 노래는 스토커의 시선으로 쓰인 무시무시한 곡이다. 보컬과 연주가 너무 매혹적이었다는 것이 문제. 이 노래를 샘플링한 퍼프 대디의 ‘I’ll be missing you’의 메가히트도 본 의미가 흐려진 원인이다.

스팅의 이혼 소식이 들려오고 팀 분열까지 본격화되던 시절 발표된 곡으로 1983년 빌보드 싱글차트 8주 1위에 이어 연말결산에서도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을 제치고 최정상에 올랐다. 조금 오해가 있긴 했지만 밴드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넘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황선업)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Born in the U.S.A.’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과 민주당의 월터 먼데일이 격돌한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승리를 거둬 재선에 성공했다. 이때 보수진영인 공화당에서 선거 캠페인 송으로 선택한 노래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Born in the U.S.A.’였다.

‘그들이 내게 총을 주고 낯선 땅으로 보냈지. 황인종을 죽이라고. 도망칠 곳도, 갈 곳도 없어. 난 미국에서 태어났어. 나는 미국의 멋진 아빠야.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이 가사만 봐도 미국 대선에 사용할 곡으로 적절하지 않았지만 공화당은 ‘미국 태생’이라는 제목을 강조해 노래의 내용을 송두리째 무시하고 지워버렸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1984년에 발표한 동명의 앨범에서 3번째 싱글로 커트되어 빌보드 싱글차트 9위까지 오른 ‘Born in the U.S.A.’의 그 억울함은 맥스 와인버그의 통렬한 드럼이 대신 풀어준다. (소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