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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IZM 연말 결산 특집 Feature

2020 에디터스 초이스(Editors’ Choice)

이렇게도 조용한 크리스마스 연휴가 있었던가. 연말의 공연 열기로 뜨거워야 할 지금 길거리는 한산하기만 하다. 코로나 19, 팬데믹 시기 속에도 이즘은 열의를 다해 2020년의 음악을 기록했다. 대망의 마지막 조각을 공개한다. 이즘 에디터의 취향이 담긴 에디터스 초이스. 주관적이지만, 그렇기에 솔직한 멤버들의 개성 있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나보자.

김도헌’s Choice

에비뉴 비트(Avenue Beat)
‘F2020 Remix’ (Feat. Jessie Reyez) 
바이럴, 틱톡, 스포티파이, 그리고 코로나. Lowkey Fuck 2020.

저드(Jerd) ‘문제아’
정제되지 않은 불온함. 더 많은 문제아들의 등장을 바라며.

코나(KONA) ‘눈치가 없다 (Snail) (Feat. Youra)’
좌우를 굼뜨게 살피는 달팽이 한 마리. 신속히 상하로 요동하는 분노. 자주 보게 될 이름. 

이브 튜머(Yves Tumor)
< Heaven to a Tortured Mind >
얼터너티브 블랙 뮤직. 모타운, 소울, 펑크(Funk), 재즈에 익스페리멘탈 버무린 ‘새 시대를 위한 가스펠(Gospel For A New Century)’.

수(Sault) < Untitled (Black Is) >
2020 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정중앙을 관통하는 한 편의 뮤직 다큐멘터리. 블랙의 정체성을 묻고 블랙을 고양하며 블랙을 어루만지는 현대의 성스러운 부족 의식.

박수진’s Choice

김제형 < 사치 >
내 가치관과 닮은 음반. 유쾌하고 진지하고 쉽고도 확실하다. 포크, 재즈, 뉴잭스윙 등을 신나게 오가는 앨범으로 어떤 곡을 들어도 다 제맛이 살아있다. 올해의 발견, 올해의 수확. 김제형을 찾아라 프로젝트의 선봉장에 서봅니다.

앨리샤 키스(Alicia Keys) ‘Underdog’
청량한 멜로디에 진한 위로가 담긴 가사. 넌 할 수 있다는 힘찬 메시지가 마음을 톡톡 건드린다. 기대고 싶은 노래 기대고 싶은 목소리.

키디비 ‘오히려’
멋지다. 강하다. 키디비! 고난의 끝에서 이 갈지 않고 힘 빼며 풀어낸 자기 고백의 서사. 곡해 없이 알맹이만 봐도 전해지는 마음. 높고 자유롭게 날아올라라 키디비!

김일두 < 꿈 속 꿈 >
20살, 홍대의 한 라이브 클럽에서 흰색 반팔 차림으로 담배를 뻑뻑 피우며 노래하던 그를 기억한다. 그땐 다가갈 수 없는 무섭기만 한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무뚝뚝한 김일두의 목소리에는 관조가 아닌 우직함이 있다. 인생이 묻어 있어 자꾸 찾게 되는 거친 맛. ‘뜨거운 불’ 추천합니다.

선셋 롤러코스터(Sunset Rollercoaster)
< Soft Storm >
나른함과 여유. 재촉하지 않는 선율. 은근히 서려 있는 멜랑꼴리함까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외로움. 밀어낼 수 없는 고독함이랄까. 아 취한다. 천천히 그리고 깊게 음미하게 되는 선셋 롤러코스터만의 무드. 다가와 다가와 줘 베이비.

신현태’s Choice

로라 말링(Laura Marling)
< Song For Our Daughter >
단출한 구성과 멜로디, 노래를 부를 때 특유의 딕션과 호흡. 목소리 톤은 다르지만, 로라 말링은 우리가 사랑하는 ‘캘리포니아의 여왕’ 조니 미첼(Joni Mitchell)과 많이 닮아있다. ‘뉴 조니 미첼’이라는 수사가 아깝지 않은 작품.  

레몬 트윅스(The Lemon Twigs)
< Songs For The General Public > 
슈퍼트램프(Supertramp), 윙스(Wings)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다다리오 형제는 근사한 팝을 써낼 줄 아는 듀오다. 앨범의 수록곡인 ‘Live in favor of tomorrow’는 개인적으로 뽑는 올해 최고의 싱글이다. 과거만(?)을 좇는 대디록 마니아들에게 몰표를 받을만하며, 평단의 찬사를 이끌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을 아는 사람이 없다. 

테임 임팔라(Tame Impala) < The Slow Rush > 
견고함과 치밀함을 놓친 적이 없다. 등장과 현재까지 이토록 다양한 장르를 접목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다시금 출현했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하지만 이 시대 록 패밀리 최후의 보루라는 생각마저 들어 마음이 짠해진다. 

두아 리파(Dua Lipa)
< Club Future Nostaligia >  
나는 평생 록에 수절해온 해드뱅어다. 하지만 두아 리파는 상상속의 댄스 플로어에 올라가 디스코를 추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 Future Nostalgia >와 < Club Future Nostalgia >라는 이 연타로 록에 대한 지조를 지킬 수가 없게 한 것이다. 록 음악은 망했다.

데프톤스(Deftones) < Ohms >  
세기말 함께 트랜드를 함께 이끌던 동료 밴드들은 다들 어디로 갔나. 다 망해서 이젠 없다. 어렵사리 목숨 부지하고 있더라도 대부분 산송장과도 같은 신세다. 모두가 데프톤스 같았다면 어땠을까. 꾸준하게 잘하는 것을 오래도록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숭고한 과업인지 보여주는 베테랑.  

임동엽’s Choice

브루스 혼스비(Bruce Hornsby)
< Non-Secure Connection >
몽환적이고 두터운 본 이베어식 터치와 브루스 혼스비의 간결한 사운드에 2020년을 구원받았다.

머쉬베놈 ‘보자보자’
시작은 밈(Meme)이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오방신과 ‘허송세월말어라’
앨범 커버부터 악기들의 톤, 보컬까지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지만 이 맛깔나는 개성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청하 ‘Dream of you (With R3HAB)’
듣는 순간 벗어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인트로부터 각 절을 지나 후렴에 다다를 때까지 매력으로 똘똘 뭉쳤다.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 Ordinary Man >
록은 죽었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임선희’s Choice

5 세컨즈 오브 썸머(5 Seconds of Summer)
< Calm >
‘Youngblood’에 차분함 한 스푼 추가. 틴 에이지 감성에서 벗어나 살짝 내보이던 노련함이 마침내 자리를 잡았다. 올 한 해 내 플레이리스트를 점령한 앨범.

뉴 호프 클럽(New Hope Club) < New Hope Club >
하루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산뜻한 멜로디와 발칙한 가사.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Willow’
두툼한 카디건의 온기가 버드나무 잎을 타고 잔잔하게 흐른다. 바람에 따라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 기둥 안에는 ‘But I come back stronger than a ‘90s trend(난 어떤 유행보다 더 강렬하게 돌아왔지)’와 같은 포부가 단단하게 서려 있다.

엔시티 드림(NCT Dream)
‘무대로 (Déjà Vu; 舞代路)’
반짝이는 에너지 가득한 청춘! 그리고 7드림이면 말 다 한 거 아닌가요.

최유리 < 동그라미 >
‘모질고 거친’ 사람의 마음을 매끈하게 다듬어 줄 노래. 때로는 건조한 위로가 더 마음을 일렁이게 하니까.

장준환’s Choice

이권형 < 터무니없는 스텝 >
여러 현의 물감으로 자욱하게 풀어낸 초현실의 세계.

그림자 공동체 < 동요 / 할시온의 관 >
서정성의 풀을 얇게 펴 바른 찬연하고도 덧없는 숨결.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Oneohtrix Point Never)
< Magic Oneohtrix Point Never >
라디오 속 뿌연 주파수 너머, 시간의 패러독스를 포착하다.

댄 디콘(Dan Deacon) < Mystic Familiar >
13년 전, LCD 사운드시스템에게서 받은 감동의 재림! 총명한 빛을 내며 밀려오는 전자음의 파도.

100 겍스(100 gecs)
‘hand crushed by a mallet (Remix) (Feat. Fall Out Boy & Craig Owens & Nicole Dollanganger)’
온갖 기행과 우스갯소리로 뒤범벅된 기성 팝에 대한 종말 선언.

황선업’s Choice

옥상달빛 ‘어른처럼 생겼네’
유난히 힘들었던 2020년. 꾹꾹 담아뒀던 내 속마음을 대신 이야기해주는 노래.

에이비티비(ABTB) ‘nightmare’
연주, 노래, 구성 등 어느 하나 나무데 것 없는 7분 49초의 완벽한 하드록 대서사시. ‘이런 곡을 만들어 낸 삶은 그래도 나름 성공한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드비타(DeVita) < CRÈME >
과거의 것도 지금의 것도 이 둘을 섞은 것도 전부 잘한다. 단연 올해의 신인. 근데 왜 아무도 언급을 안하는거야.

스트록스(The Strokes)
‘Brooklyn Bridge to Chorus’
이토록 섹시한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나. 키보드 위에 기타가 얹혀지는 순간 소름이 쫙.

미레이(milet) < eyes >
일본 대중음악사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작품. 일본음악 얕보지 마라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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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IZM 연말 결산 특집 Feature

2020 올해의 팝 앨범

누구도 벗어날 수 없었던 ‘쿼런틴’ 시대의 기록을 단 열 장으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음악 산업은 호황을 달리며 전에 겪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전시했으나 그 와중 창작가들에게는 더없이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짜야 하는 시기, 그 중에도 한 해를 장식할 작품은 있었다. IZM 선정 2020년을 대표할 팝 앨범 10장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위켄드(The Weeknd) < After Hours >

상처 입은 아티스트의 자기혐오가 만들어낸 이토록 아름다운 공간. 반복된 이별과 결합의 과정 후 광기에 빠진 슈퍼스타는 처절했다. 자기 자신을 비난하며 행한 채찍질은 스스로를 난도질했고 세월을 거쳐 깊게 팬 내면을 마주한 위켄드는 외면하고 있던 고독을 숨기지 않고 세상에 드러내길 마음먹는다. 80년대를 지나 현대, 그리고 장르가 나아갈 방향까지. 시간 제약 없이 음악으로만 귀결되는 열네 개의 수록곡은 개인적 서사의 점을 이어가며 거대한 별자리를 만들어낸다. 성좌의 이름은 < After Hours >, 길에 남을 이야기의 시작이다.

대중과 평단을 모두 잡았다. 유독 디스코의 재현이 돋보이는 한 해였다. 위켄드는 그 중심에 설 뿐만 아니라 신스팝, PB R&B 등 과거 문법부터 트렌디했던 자신의 음악을 모두 집대성하며 흐름을 집중시켰다. ‘Heartless’, ‘Blinding lights’로 이어지는 싱글의 성공과 빌보드 앨범 차트 4주 연속 1위 등의 성과와 함께 각종 음악 매체에 호평을 이끈 < After Hours >는 예술과 상업성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대중예술의 근간을 명확하게 실현해냈다. 분명한 건 올해의 앨범에 거론되기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는 것, 그 근거가 무수히 많은 청자의 지지에 기반을 둔다는 점이다. (손기호)


두아 리파(Dua Lipa)
< Future Nostalgia >

“I wanna change the game(난 이 판을 뒤바꾸고 싶어).” 이보다 더 간결하게 올해의 두아 리파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Future Nostalgia’의 한 줄은 암울한 2020년을 디스코 댄스 플로어로 건설한 도화선이며, 바람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선언으로 다시금 명명됐다. ‘Future(미래)’와 ‘Nostalgia(향수)’라는 이질적인 단어의 조합을 엔진 삼아 레트로-펑크 리듬으로 속도를 올리는 가운데, 운전대를 잡은 그의 모습은 여유롭기만 하다.

전초전과 같은 ‘Don’t start now’와 복고를 노골적으로 표방한 ‘Physical’, ‘Break my heart’ 그리고 여성 무브먼트를 담은 ‘Boys will be boys’까지. 침체된 일상을 환기하는 사운드에 자신의 스탠스를 가미한 앨범이 트로피를 거머쥐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마돈나의 디스코 클럽, 올리비아 뉴튼 존의 신스웨이브가 익숙한 세대와 이제 막 뉴트로를 접한 세대 간의 대통합을 이뤄내지 않았는가. (임선희)


맥 밀러(Mac Miller) < Circles >

“At least it don’t gotta be no more
(그러니까 지금은 잠시만 쉴게)

‘Good news’의 마지막 소절과 달리 그의 삶은 영원한 안식을 찾아 떠났다. 시작점과 끝점이 같아 한 바퀴를 돌면 만날 수밖에 없는 원의 굴레는 삶에 대해 고뇌하고 번민하며 이를 음악에 녹여낸 맥 밀러의 삶과 꼭 닮았다. 사랑 속에 피어나는 절망, 마약에 갇혔다는 비관 속에서도 끝끝내 자신이 살아남길 바랐던 인간의 모순된 감정은 그가 죽고 나서야 더 깊게 아로새겨진다. 약물 중독이라는 영광스럽지 못한 죽음 앞에서도 우리가 그를 따뜻하게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Swimming >의 2부작으로 예정되어 있던 < Circles >는 사후 앨범임에도 그 완성도가 훌륭해 그의 음악을 다시는 들을 수 없다는 비통함을 남긴다. 동시에 갑자기 막을 내린 짧은 생이 결코 미완성이 아님을, 찬란한 유작임을 증명한다. 잔잔한 기타와 낮게 읊조리는 베이스 연주의 ‘Circles’, 편안한 멜로디와 사운드를 가진 ‘Good news’로 삶의 날카로움을 매만진다. 부드러운 타원의 곡선을 따라 때로는 미끄러지고, 때로는 자유로이 유영했던 맥 밀러. 죽음은 그를 데려갔지만, 우리에게는 < Circles >가 남았다. (조지현)


피오나 애플 (Fiona Apple)
< Fetch The Bolt Cutters >

재즈의 즉흥성을 표방하는 듯한 온갖 변칙적인 박자와 과감한 타법, 그리고 부드럽고 탁한 질료가 한데 어우러지며 또 한 번의 새로운 파형을 만들어낸다. 홈레코딩이라는 작업 환경 가운데 집안 가구와 일상의 소음은 악기의 일부가 되곤 한다. 이는 시대가 상정해온 관념으로 단단히 틀어막힌 철문을 딸 ‘볼트 커터’를 가져오라 요청하는, < Fetch The Bolt Cutters >의 단상이다. 피오나 애플은 묶이지 않는 리듬 아래 요란하게 춤을 추고, 기억의 파편과 꾸밈없는 어투로 발화(發話)한다.

확실히 쉬운 음악은 아니다. 앨범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흡수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과 준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다만 < Fetch The Bolt Cutters >는 평단이 이 작품에 보낸 찬사와 박수갈채가 무색하지 않게, 당신에게 틀을 깨부수는 해방감, 그리고 전투적인 행진에 동참하고 있다는 고양감을 선사할 것이다. 자, 이제 문을 열고 본연의 소리를 통해 당당히 차별에 맞서 대항한 이 개척자의 기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장준환)


하임(HAIM)
< Women In Music Pt. III >

플리트우드 맥이 소셜 미디어의 꿈결(‘Dreams’)을 타고 주류 차트에 돌아온 2020년. 과거 위대한 선배들의 유산과 경쟁해야 하는 현 음악계는 하임과 같은 온고지신(溫故知新) 장인들의 활약을 통해 레트로의 무차별 침공을 버텨낼 수 있었다. 이 캘리포니아 출신 가족 밴드는 레트로의 간섭을 숨기지 않음과 동시에 이를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우리의 삶에 적용할 줄 아는데 그것이 아주 탁월하다.  

직관적이고 선명한 팝 록 넘버로 가득한 < Women In Music Pt. III >는 이들이 우리 시대의 플리트우드 맥으로 굳건히 서 있음을 알린다. 그 바탕에는 프로듀서 로스탐의 도움과 세 자매의 탁월한 연주 및 송라이팅이 있고, 주된 문법은 현대 여성의 주체적인 메시지와 고민, 사랑과 자매애로 대체된다. 크리스틴 맥비, 스티비 닉스가 열렬히 환영할 하임은 이 한 장으로 2020년대를 이끌 밴드 대열에 확실히 합류했다. (김도헌) 


찰리 XCX (Charli XCX)
< how i’m feeling now >

찰리 XCX가 ‘쿼런틴 앨범’(quarantine album)으로 공고히 한 음악적 정체성은 올해 다른 뮤지션들이 보여준 모습과는 지향점이 확연하게 다르다. 디스코와 레트로가 지배한 2020년의 음악계에서 그는 팝의 작법으로 미래의 사운드를 주조했다. < how i’m feeling now >는 ‘하이퍼팝’(hyperpop) 장르의 마일스톤이다.

아이코나 팝(Icona Pop), 셀레나 고메즈, 숀 멘데스(Shawn Mendes)등 영미권 팝스타는 물론이고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트와이스 등 케이팝 그룹에게도 곡을 제공하며 증명한 팝 작곡 능력이 빛을 발한다. 고장 난 기계 소리를 닮은 글리치(glitch)의 요소가 연출하는 공포감은 찰리 XCX의 탁월한 대중적 감각을 만나 고혹스럽게 탈바꿈한다. 앨범을 채우는 찢어질 듯한 신시사이저 소리에는 디지털 시대 하위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사이버펑크 특유의 쇠 비린내가 진하다. 찰리 XCX는 그런 소수의 문화를 다수가 향유할 수 있는 형태로 다듬어 끌어올렸다. 2020년에 바라본 팝의 미래가 이 앨범에 담겨있다. (황인호)


피비 브리저스 (Phoebe Bridgers)
< Punisher >

1994년생 미국 싱어송라이터 피비 브리저스(Phoebe Bridgers)는 소중한 경험들을 광활한 내면의 바다로 던져 넣는다. 엘리엇 스미스의 음악, 기르던 강아지를 떠나보낸 순간, 혹은 즐겨 듣던 코미디 팟캐스트와 시끌벅적한 할로윈의 기억까지. 3년간 숨가쁘게 거쳐온 여러 프로젝트 그룹과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 또한 예외는 없다. 넘실거리는 감정의 바다로 떨어진 영감들은 심연으로 가라앉고, 이내 바다의 일부가 되어 파고의 세밀한 주름 속으로 녹아들기 시작한다. 

균일한 수평선 아래 여러 단면이 생생히 살아숨쉰다. 애수를 머금은 기타 선율에서 기성의 먼지 쌓인 문체가, 진솔한 노랫말에서는 아이의 순수한 시선이 떠오른다. 피비는 본인을 ‘열성팬’, 혹은 ‘카피캣’ 같은 아마추어스러운 별명으로 소개하지만, 완급에 따라 섬세하게 배치된 세션과 일관된 가공으로 프로의 역량을 여실히 증명하기도 한다. < Punisher >는 한 명의 생애를 다룬 깊고 따뜻한 수필이자, 포크의 세대 교차가 이뤄지는 광경이 된다. 명실상부한 올해 인디 포크계의 신성. (장준환)


배드 버니 (Bad Bunny)
< YHLQMDLG >

2020년 스포티파이 기준 올 한 해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된 아티스트는 배드 버니다. 전 세계에서 83억 회 이상 그의 음악이 재생됐다. 그럼 올해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된 앨범은? 역시 배드 버니다. 33억 번이나 청취된 < YHLQMDLG >는 ‘Despacito’ 열풍으로 폭발한 레게톤 열풍이 팝 시장에 꾸준히 균열을 내며 새로운 뉴 노멀로 자리 잡았음을 선언했다. 케이팝 열풍과도 일맥상통하는 얼터너티브의 흐름이다. 하지만 단순히 인기가 많다고 올해의 한 자리를 내줄 수는 없다. 

앨범은 제목 그대로 ‘하고 싶은 대로(Yo hago lo que me da la gana)’ 모든 것을 다 쏟아낸 작품이다. 긁어내는 보컬부터 유연한 랩까지 팔방미인의 퍼포먼스를 오색찬연 레게톤, 알앤비, 어두운 트랩과 밝은 신스 터치로 그려낸다. ‘The girl from ipanema’를 가져온 ‘Si veo a tu mama’는 천연덕스럽고 ‘Safaera’의 변화무쌍함은 레게톤의 교향곡과 같다. 황홀한 신세계로의 급행열차 같은 이 작품으로 배드 버니는 2020년대 ‘라티노 인베이전’의 역사에 영원히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김도헌)


팝 스모크 (Pop Smoke)
< Shoot For The Stars, Aim For The Moon >

시카고의 트랩 신이 거칠고 어두워지며 나온 드릴 뮤직이 영국에 이어 브루클린에 자리 잡았다. 이 장르의 새 얼굴로 뉴욕을 접수한 팝 스모크는 팝스타의 영광을 앞에 두고 2020년 2월 20살의 나이에 하늘의 별로 떠났다. 그렇게 첫 정규 앨범 < Shoot For The Stars, Aim For The Moon >은 유일한 정규 작품으로 남았고 그의 깊은 영감은 드릴 신을 넘어 세계로 향했다. 팝 스모크의 안타까운 죽음은 그의 노래를 더욱 특별한 이미지로 만들었지만, 마지막 발자국이 무의미함 속에 잊히지 않고 추억할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돈 자랑과 허세 짙은 가사가 음악을 지배하는 것과 달리 그는 세상에 선한 에너지를 남겼다. 거리를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건전한 삶을 위해 동기를 부여했고, 사후에는 팝 스모크의 뜻을 기리며 ‘Shoot for the stars’ 재단을 설립했다. 음악적인 관련이 없음에도 그의 ’Dior’이 BLM의 저항 송가 중 하나로 불렸다는 사실 또한 생전에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말해준다. 시작은 반이고, 남은 반은 우리가 그의 음성을 들으며 채워갈 것이다. (임동엽)


퍼퓸 지니어스 (Perfume Genius)
<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 >

이 음반은 아름다움의 기준을 어쩌면 벗어난다. 잘 보이고 잘 만질 수 있는 것을 통해 ‘미(美)’를 발견한다고 했을 때 작품은 분명 어긋난다. 선율을 잡아내는 것이 어렵다. 또 때로는 기이하게 늘어지고 때로는 힘을 움켜쥐고 부르는 보컬에 숨이 막히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결국 아름다움에 닿는다. 그리스계 미국인으로서 겪은 소수자의 피로함과 커밍아웃을 통해 받은 세상의 멸시가 배경이 됐다. 거친 디스토션을 쓸망정 결코 날카롭게 사운드를 밀어붙이지 않는 그의 작법 속에서 빛나는 섬세함이 느껴진다. 쉬이 그려내기 어려운 아픔을 그림 그리듯 음결을 채색하며 만들어냈다. 한없이 기괴하고 한없이 아름다운 음반.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게 하는 근사한 파운드 푸티지와 다름없다. (박수진) 


2020 올해의 가요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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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올해의 가요 앨범

사회적 거리두기로 공연이 사라지자 예술가들은 창작에 몰두했고 그 결과로 우리는 여느 해보다 많은 앨범 단위 결과물을 접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듯 쏟아지는 작품 속에는 치열한 젊음의 고민과 베테랑의 조용한 귀환, 글로벌 단위의 논의가 돋보인다. IZM 선정 2020년을 대표할 가요 앨범 10장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더 블랭크 숍(The Blank Shop) < Tailor >

미디어의 도움 없이 음악 자체로 자생하기 힘든 시기에 만능 뮤지션 윤석철은 좋은 대중가요를 고민했다. 화려한 뮤직비디오 없이도, 굵직한 퍼포먼스 없이도, 예능 프로그램의 도움 없이도 그 자체로 오래 들을 수 있는 이지 리스닝의 팝을 지향했다. 그는 이 작업을 위해 더 블랭크 숍이라는 새 페르소나를 만들어 좋은 가요 프로듀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고급 맞춤 정장처럼 참여 가수들에게 딱 들어맞는 < Tailor >는 만능의 작품이다. 일렉트로닉, 재즈, 힙합, 블루스, 록, 인디 등 다양한 장르가 치밀한 재봉술을 거쳐 금방 흥얼거리고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뽑혀 나온다. 일상 속 단편을 흥미롭게 관찰하여 한 편의 완성된 이야기로 풀어내는 그의 음악에는 기타 수식어가 필요 없다. 산업과 기술의 시선 이전에 음악은 그 자체로 좋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 우리는 엔터테이너보다 이런 외골수에 더 집중해야 한다. (김도헌)


추다혜차지스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

신에게 소원을 빌기도 하고 신의 꾸지람을 듣기도 하며, 산 자의 건강과 행운을 빌면서도 망자의 영혼이 평안하기를 비는 무속음악 무가(巫樂). 굿판에서 벌어지는 음악이다. 삶에 대한 인간의 소망이 담겼음에도 참으로 기괴하고 소름 돋는다. 적어도 추다혜차지스의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를 듣기 전까지는. 굿판을 벌이는 장소이자 마을의 수호신이기도 한 ‘당산나무’ 아래서 무가는 위로의 언어로 재탄생한다. 놀랍게도 재료는 펑크(Funk)다.

우리가 나고 자란 한국의 토속적인 정서가 오히려 반(反)대중적이라 느껴질 만큼 국악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앨범은 가히 2020년 음악계의 충격적인 사건이라 불릴 만 한다. 국악, 그것도 무속음악을 들으면서 ‘얼씨구‘와 같은 몸짓이 아닌 힙합에서 나올 법한 그루브를 탈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럼에도 감상의 끝에 남는 건 애절한 꺾기의 향연, 그 숭고하고도 처절한 한국의 정서다. 지극히 대중적이고 서양적이며, 동시에 철저히 한국적이다. 앨범 전반을 매끄럽게 주도하는 파격적인 장르의 혼합, 무가의 재해석. 국악의 새 시대를 열었다. (조지현)


진보(Jinbo) < Don’t Think Too Much >

말 그대로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로킹한 기타와 현란한 드럼, 그리고 뒤뚱거리는 신시사이저가 그루비한 작법 아래 감당하기 힘들 만큼 쏟아진다. 풍부한 성분과 영양을 갖춘 사운드 위로는 화려한 피처링진이 각자의 감칠맛을 발휘하며 곡에 녹아든다. 이때 필요한 준비물은 활짝 열린 귀 뿐, 이후로는 그저 트랙에 몸을 맡기면 된다.

탄력적인 프로듀싱의 < Afterwork >와 자기만의 색채로 히트곡을 버무린 선집 < KRNB >, 그리고 몽롱한 사랑의 언어 < Fantasy >의 걸출한 커리어를 거쳐, 진보(Jinbo)는 또 한 번 아이디어의 창고 아래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더욱 직관적인 형태로 발전한 < Don’t Think Too Much >는 모두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일종의 자유이용권이다. 이를 어떻게 비유하면 좋을까. 고막 위 펼쳐지는 힙합 퍼레이드. 음악계 풍운아가 만든 감각의 제국. 매끄럽게 오르내리는 롤러코스터. 수식어가 부족할 정도다. (장준환)


방탄소년단(BTS) < MAP OF THE SOUL : 7 >

케이팝 보이 밴드가 아닌, 팝 뮤지션이자 BTS 그 자체가 되기 위한 고군분투가 담겼다. 일곱 명의 7년이 담긴 < MAP OF THE SOUL : 7 >은 멤버 개개인의 자아를 녹여내면서도 그룹의 역사를 유기적으로 엮으며, 더 높은 곳으로 날기 위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강산이 변하기도 전에 그들은 국내 대중음악의 틀을 바꾸고, 세계 팝 시장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Intro : Persona’ ‘Interlude : Shadow’ ‘Outro : Ego’로 이어지는 서사적 앨범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oy with luv) (Feat. Halsey)’의 밝음과 ‘Black swan’의 어둠이 상반된 힘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Respect’처럼 힙합을 보여주다가도 ‘Filter’처럼 라틴을 내비친다. 자신들에게 한계가 없음을 증명하며 다양함으로 거대해지는 사운드가 BTS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단결한다. 음악부터 비즈니스까지 이젠 그들이 기준이고, 케이팝이다. (임동엽)


NCT < NCT Resonance Pt.1 >

< NCT Resonance Pt. 1 >은 새 시대를 여는 SM의 야심이다. 개방과 확장이라는 두 모토 아래 유기적으로 회전해온 NCT는 두 새 멤버가 더해진 23인의 NCT 2020으로 더 높은 단계의 비상을 감행했다. 기존 그룹이 가지고 있던 색깔과 면모를 한데 모으되 그것을 더욱 성장한 음악으로 재편한 음반은 팀의 색채를 짙게 하는 랩 트랙과 광폭한 전자음의 댄스, 서정적이고 잔잔한 느린 곡과 다국적의 특색을 살린 언어 혼용까지 가공할만한 완성도로 담아냈다. 단연 올해 가장 빛나는 아이돌 앨범이었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팀이기에 선보일 수 있는 영화로 치면 블록버스터 같은 이 스케일에서 SM이 제시한 신개념 플랫폼의 긍정성을 봤다. 문법 선택이 자유롭기에 지루할 틈이 없고, 이는 이들이 묵묵히 자신의 음악 역사를 쌓아왔음을 보여준다. 회사의 기획에 발맞추어 하나의 콘셉트를 수행하는 가수의 활약, 특히 랩 멤버의 강한 에너지로 팀의 실력에 대한 의구심을 날려버린 것은 덤이다. 그들이 꿈꿔온 이상에 비로소 한 발 더 다가서는 걸음이었다. (이홍현)


정밀아 < 청파소나타 >

포크 씬의 활약이 돋보인 한 해였다. 팬데믹으로 세상이 시끄러워서일까? 잔잔한 일상, 곁을 풀어낸 음반들이 유난히 좋은 흐름을 보였다. 정밀아의 < 청파소나타 >는 그중에서도 우뚝 선다. ‘그럼으로 / 나는 오늘의 나를 살 것이다’(‘서시’) 나긋하게 선언하는가 하면 ‘서울역에서 출발’에는 위트 있게 현재와 과거를 돌아본다.

잘 닦은 10개의 돌멩이가 반짝이듯, 매끈한 수록곡들을 지녔다. 도시에서의 삶을 겪으며 느낀 텁텁함과 답답함부터 언젠가 그리워질 시절을 아름다운 단어로 그린 음반은 지독히 개인적이며 동시에 대중적이다. 일상의 언어로 품은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위로와 공감을 건넨다. 작은 기타 반주를 넘어서 울리는 또렷한 오늘의 목소리. 웃고 우는 희로애락이 여기에 담겨있다. (박수진)


딥플로우(Deepflow) < FOUNDER >

한 래퍼의 커리어가 파노라마로 흐른다. 딥플로우는 < FOUNDER >에서 힙합에 빠지고 본격적으로 랩을 시작한 순간부터 레이블 대표로서 고군분투하던 모습, 음악성을 인정받으며 인지도가 올라간 때 등을 차곡차곡 기록한다. 각 상황과 당시 느꼈던 감정을 생생하게 나타낸 가사로 노래들은 한껏 사실감을 뽐낸다. 딥플로우가 설립한 레이블에 속한 래퍼들의 찬조도 앨범이 현실성을 또렷하게 발하는 데 힘을 싣는다.

볼품없었지만 이제는 잘나가는 래퍼로 성장한 모습을 알차게 담은 사항 때문에 앨범은 한 편의 전기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여기에 1970년대에 나왔을 법한 투박한 솔뮤직, 펑크 반주는 딥플로우의 역정을 한층 묵직하게 가공해 준다. 또한 일련의 음악적 보조를 통해 < FOUNDER >는 음반 커버로 암시하듯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향을 진하게 풍긴다. 내용과 음악이 잘 어우러져 상승효과를 이룬 근사한 작품이다. (한동윤)


쿤디판다(Khundi Panda) < 가로사옥 >

밑그림을 펼쳐 놓은 < 쾌락설계도 >와 뼈대를 조립하는 과정의 < 재건축 > 속 자재가 이뤄낸 것은 < 가로사옥 >이다. 완공의 결과는 꼭대기를 향해 쌓아 올린 건물이 아닌 일련의 직선 형태로, 깊숙한 공간 안에 나열된 화자의 스토리텔링이다. 그 안에 침투한 질투(‘자벌레’), 자격지심(‘네버코마니’)과 회피(‘겟어웨어’)같이 진솔함을 넘어 독살스럽기까지한 감정의 파편들은 꽤 빽빽하고 날카롭다.

그럼에도 개인의 서사에 몰입하고 점차 파고 들게 만드는 것은 종횡무진 달리는 래핑이다.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휘두르는 듯 더 치밀하고 더 악독하게 랩 퍼포먼스를 채워 넣었고, 피로감을 덜어낸 사운드로 친절함을 살짝 내비치곤 한다. 마침내 끝에 다다르면 < 가로사옥 >이 방대한 결말이 아닌 ‘그저 그의 여정 안의 조각’임을 알 수 있다. 쿤디판다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임선희)


김석준 < 20세기 소년 >

수려한 디자인과 포장, 마케팅, 시대 감수성, 상품 가치, 언론의 선동적 개입 그리고 글로벌 K팝이라는 말에 어른거리는 윽박지름과 현재적 ‘힙’이 요구하는 초조함이 없다. 압박도 느끼지 않지만 어떤 것에 대한 타협도 없다. 타협한 게 있다면 그의 취향이 머물고 있는 20세기 음악뿐이다. 1993년 유재하가요제의 금상 수상 경력, 하지만 이후 우리에게 선사한 음원이 거의 없어 무명에 가까운 음악가 김석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제’ 정리에 고민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앨범을 내는 지각 행위는 필시 과거에 얽매일 소지가 높다는 선입견에 웃으며 맞서려면 반드시 현재적 감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

자기가 직접 노래한 다섯 곡 수록 앨범 < 나의 이름은 >에 이어 곧바로 내놓은 < 20세기 소년 >은 게스트 보컬과 밴드의 협조하에 작곡자로서의 세계를 전달하고 있다. 귀 기울이게 하는 건 과거와 현재를 버무리고 고저, 장단, 강약을 넘나드는 반(反) 고집의 실천이다. ‘나는 나일 뿐’, ‘버퍼링’, ‘함경도 혜숙이’는 이 판에서 ‘특히 근래’ 듣기 어려운 무적, 무소속 음악이다. 메시지가 있다면 결국 휴머니즘이다. 소박, 순결, 진심이 주는 공감이 따로 없다. 20세기 소년은 이런 사소 하나 숭고한 가치를 가슴에 담아 21세를 포옹한다. ‘난 달라질 거야/ 이제부터 내 자신을 찾아야지..’ 김석준은 기본의 우대가 뉴 노멀(음악)이 되기를 소망한다. (임진모)


스월비(Swervy) < Undercover Angel >

익지 않은 슬픔을 저며낸 젊은 아티스트의 자화상. 대중이 보내는 관심의 뒷면엔 가혹한 잣대와 시선이 숨어 있었고 날카롭게 가공된 언어의 칼날이 되어 그를 해체했다. 태양에 다가간 대가로 추락하게 된 스월비는 온갖 상처를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다. 어쩌면 감추고 싶던 일면이 흐트러진 바닥 위. 그곳에서 그는 자신에게 향하는 희미한 사랑을 발견했고, 보답이란 투박한 이유로 붉게 물든 날개를 감싸 안고 지상에 머물길 선택한다.

자기 고백이란 주제 아래 늘어놓은 일지(日誌)가 어둡고 차갑다. 낮게 깔린 비트를 기반으로 읊조리는 랩은 마주한 상황을 기록하는 데 목적을 두기에 감정선은 높낮이를 그리지 않고 일정하다. 철저한 사실주의. 낡은 VHS 위로 덮어진 다양한 형태의 스월비가 혼란스럽지만, 그 속에서 뚜렷하게 빛나는 아티스트의 성장기에 대중은 분명한 감응을 느꼈다. 이제 첫 정규 앨범. 결국 자유를 찾아 희망으로 귀결된 < Undercover Angel >의 서사처럼 모든 걸 딛고 일어선 스월비의 자리가 이곳에 굳게 새겨졌다. (손기호)


2020 올해의 팝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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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IZM 연말 결산 특집 Feature

Splash of the Year 2020

올해를 돌아보면 온갖 날카로운 단어들이 떠오른다. 전염병, 자연재해, 거리두기. 격변의 한 해였다. 새로운 10년을 여는 2020년은 코로나 19의 창궐로 전 세계를 움츠러들게 했고, 우리 삶에 여러 변화를 안겼다. 대중음악계에도 피할 수 없는 지각 변동의 순간이 있었다. 혼란의 시기에도 계속해서 구르며 기억할만한 이슈를 남긴 2020년의 가요계를 돌아본다.

세계 정상 방탄소년단,
보통명사가 된 케이팝.

더 오를 곳이 없다. 적어도 차트 성적에서는 그렇다. 방탄소년단이 세계 정상을 정복했다. ‘Dynamite’ 이전 네 개의 노래를 빌보드 싱글 차트 톱 10에 진입시키고 네 장의 음반을 앨범 차트 1위에 올려놓은 데에 이어 빌보드의 왕관이라 할 수 있는 싱글 차트 고지에 깃발을 꽂았다. 영어 가사가 가진 범용성의 이점과 코로나 19 팬데믹에 지친 사람들이 쉽게 위로받을 수 있는 밝고 경쾌한 디스코 리듬을 주무기로 ‘Dynamite’는 2주 연속 왕좌를 굳건히 지켰다. 그 이후에도 조시 685(Jawsh 685), 제이슨 데룰로(Jason Derulo)와 꾸민 ‘Savage love’ 리믹스와 한국어 가사의 ‘Life goes on’를 같은 성적에 안착시키며 멈출 줄 모르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케이팝의 세계화를 이끈 그룹은 방탄소년단뿐만이 아니다. YG의 블랙핑크는 올해 정규 음반으로 미국 시장에 확실한 출사표를 내던지고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와 함께한 ‘Ice cream’으로 싱글 차트 13위에 이름을 새겼으며, SM의 슈퍼엠과 엔시티 127 역시 각각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와 5위에 올랐다. 더욱 많은 뮤지션이 세계에서 입지를 다지며 케이팝은 도약에 도약을 거듭, 글로벌 시장에서 확실한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올해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케이팝이 발휘하는 영향력의 확장이다. 2020년 해외 케이팝 팬들은 미국 사회에 관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Black Lives Matter’ 캠페인과 관련한 조직적인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방탄소년단과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해당 캠페인에 대한 지지 의사로 100만 달러(한화 약 12억원)를 기부했는데, 그것을 본 팀의 팬덤 아미(A.R.M.Y)가 그들과 똑같은 금액을 모금, 쾌척하며 흑인 인권 운동을 지원했다. 또한 BLM을 비꼬기 위해 탄생한 백인 우월주의 집단의 ‘White Lives Matter’ 인스타그램 해시 태그를 좋아하는 케이팝 뮤지션의 사진으로 도배해 범람시키는 등 인종 갈등이 심화한 미국에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냈다.

케이팝 팬들이 국제 사회적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큼 활동 범위가 넓어졌음을 시사한다. 이와 관련해 < 뉴욕 타임스 >는 이들이 감행하는 이러한 정치적 움직임을 ‘팬덤 문화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일종의 노력’이라 진단했다. 진보적이고 비교적 소수의 인종이 모여 있으며, 해외 문화에 개방적인 이들이 기존 아이돌 문화가 가지고 있던 ‘성숙하지 못한 어린 아이들의 문화’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시대에 의미 있는 바람을 불러일으키려는 행동이라는 분석이다. 케이팝의 도약은 음악 자체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에서 살펴봤을 때 더욱더 유의미하다.

완벽한 과거 시제,
가뭄 속의 실험.

올해도 대중음악은 끊임없이 과거를 탐색했다. 팝 시장의 주축이었던 디스코 음악에 위켄드(The Weeknd)와 두아 리파(Dua Lipa), 방탄소년단 등이 발맞췄고, 최근 새로 개정한 < 롤링스톤 500대 명반 >은 마빈 게이와 스티비 원더 등 지금의 대중음악에 중심으로 녹아들어 있는 흑인 음악을 대거 재조명했다. 계속되는 레트로 유행에 이제는 옛 것이 옛날만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가요계도 완벽한 과거 시제를 지향했다. 작년이 시티팝의 해였다면 올해를 정의하는 키워드는 단연 트로트. TV 조선의 < 미스터트롯 >이 임영웅, 영탁 등의 스타를 낳으며 지난 해 < 미스트롯 >으로 ‘트롯 바람’이 난 대중에게 성인가요의 인기를 더욱 불어넣었다. 마찬가지로 텔레비전 전파를 타며 부캐 열풍을 일으킨 < 놀면 뭐하니? >의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의 ‘다시 여기 바닷가’, 쿨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 슬기로운 의사생활 > OST 조정석의 ‘아로하’ 역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댄스, 발라드를 재현한 복고의 영역이다.

트로트와 댄스, 발라드는 비교적 대중에게 친숙한 소재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 신에서는 더욱 화끈한 복고 바람이 불었는데, 국악이 그 주인공이다. 소위 ‘굿 음악’이라 불리는 무가(巫樂)를 재즈, 펑크(Funk), 레게의 요소로 재탄생시킨 추다혜차지스와 ‘국악계 이단아’로 불리며 전통 음악의 정격을 깨부순 오방신과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 돋보였다.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 수궁가 >를 현대적 댄스 리듬으로 재해석한 이날치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올해의 인물. 이들의 음악은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한국 홍보 공익 광고 시리즈 ‘필 더 리듬 오브 더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로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다. 세계 네티즌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켜 현재 도합 2억 3천만 회가 넘는 유튜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원하는 대중이 가장 쉽게 그 갈증을 해소하는 방법이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다. 그동안 홀대했던 옛것 중 좋은 것을 발굴해 새 흐름으로 재창조하는 것은 독창적인 창작에 목마른 현 음악계에 가뭄 속의 실험과도 같다.

코로나 여파,
멈춰버린 인디 공연.

거리가 텅 비었다. 번화가의 화려한 불빛도, 클럽가를 메운 북적이는 음악 소리도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차가운 말 앞에 공연이 줄줄이 무산됐고 음악가들은 팬들과 한 발자국 떨어져 다음 만날 날을 기약했다. 코로나 19가 가져온 2020년 대중음악계 모습이다.

사태의 장기화는 누구보다 인디 뮤지션과 공연 관계자에게 직격탄이 됐다. 인디 뮤지션들에게 공연은 단순 수익의 매개체를 넘어 자신이 새로 쓴 노래와 준비한 기획을 선보이는 거의 유일한 창구다. 온라인 공연 등을 열면 언제든 홍보를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대형기획사와 달리 작은 레이블 아티스트나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음악인에게는 그럴 방법이 한정적이다. 유흥업소를 제한한 정부의 지침에 비해 이들을 향한 실질적인 지원은 병행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5월 이태원발(發) 코로나는 결정적이었다. 이태원 클럽을 시작으로 확산한 2차 대유행은 이태원 클럽을 향한 인식 악화를 낳았고, 그 화살은 고스란히 그 일대를 무대 삼아 활동하던 디제이들과 관계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를 극복하고자 이태원 공동체는 서로 뭉쳐 연대했다. 6월 소프가 이끈 ‘서포트 이태원(Support Itaewon)’ 프로젝트와 클럽 케이크샵이 주도한 ‘리플라이 이태원(Reply, Itaewon)’ 커뮤니티 기획은 혼돈의 시기에도 이들이 끈끈한 연결고리를 지탱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홍대와 이태원 등 개성 강한 뮤지션과 여러 장르가 집결하는 소규모 커뮤니티는 가요계의 다양화를 선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역동적인 활기로 가득하던 그들의 모습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언택트 시대의 대안,
온라인 콘서트.

한숨이 깊어지는 공연 업계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온라인 콘서트였다. ‘방방콘 더 라이브’로 무산된 월드투어를 대체한 방탄소년단, SM 엔터테인먼트가 네이버와 손잡고 진행한 ‘비욘드 라이브’ 시리즈. 그리고 지난 8월에는 JYP와 SM이 ‘비욘드 라이브'(Beyond LIVE)를 위한 전문 회사 ‘비욘드 라이브 코퍼레이션'(Beyond LIVE Corporation·BLC)을 설립하며 양 소속사가 이례적인 협업을 펼치기도 했다. 그 밖에도 CJ ENM이 기획한 한류 축제 ‘케이콘택트 2020 서머’ 등도 성공리에 막을 올리며 사태와 장기간 공생해야 하는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인 만큼 대형 기획사들이 앞으로의 공연 문화를 앞장서 주도했다.

케이팝 온라인 공연은 다양한 IT 기술을 동반한다.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3인칭의 화려한 시각 연출을 자아내고, 다중 화상 연결 시스템으로 팬들과 서로 얼굴을 맞대고 그들의 댓글을 읽으며 실시간으로 소통한다. 단순 오프라인 공연 실황 비디오와는 구분되는, 비대면 공연만의 대안적인 차별화를 더한 ‘새 시대의 쇼’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도 많다. 온라인 콘서트는 관객과 떨어져 진행되는 만큼 생생한 열기를 실현하기 어렵다. 또한 조명과 연출 등에 많은 돈이 드는 데에 비해 티켓 가격은 오프라인보다 훨씬 낮게 책정되기 때문에 수익성이 저조한 것 역시 풀어야 할 과제다. 수용 인원에 제한이 없어 언뜻 무한한 수익을 올릴 수 있어 보이지만, 모두가 방탄소년단의 ‘방방콘’처럼 75.6만 명의 관객을 모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비교적 팬덤 규모가 작은 아이돌이나 아티스트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고, 오히려 적자가 날 수 있는 장사다.

코로나 19가 끝나도 온라인 공연이 우리 생활 속에 녹아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새 시대의 공연 문화로 부상한 만큼 그에 걸맞은 적합한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 산업에 대한 대중음악계 전체의 면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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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IZM 연말 결산 특집 Feature

2020 올해의 팝 싱글

코로나 19 범유행은 온 세상을 마비시켰다. 이 혼돈의 와중에도 음악은 충실히 현실을 투영했다. 충격적인 눈 앞을 피해 대대적인 과거 정서로의 이주 릴레이가 벌어졌고, 현재 진행형의 차별과 편 가르기에 맞서 목소리를 높였다. 오랜 시간 공고히 자리하던 팝 시장의 지형을 뒤흔드는 일대 사건도 있었다. IZM 선정 올해의 팝 싱글 10곡을 소개한다. 글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위켄드(The Weeknd) ‘Blinding lights’ 

올해 많은 노래가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이보다 큰 지지를 얻은 싱글은 없었다. 2020년 최고의 히트 넘버, ‘Blinding lights’!. 히트도 그냥 히트가 아니다. 28주간 빌보드 싱글 차트 5위 내 진입, 40주간 10위 내 랭크 등 신기록을 경신하며 새로운 역사를 쓰는 중이다. 이 노래를 모든 부문의 후보에서 제외한 그래미 어워드를 국내외 대중과 각종 매체가 냉담한 반응으로 받아치며 그들의 공신력을 비아냥대는 꼴이 연출되고 있다. (심지어 위켄드 본인도 그들을 ’디스’했다.)

곡 전반에 깔린 패드 악기가 공간감을 형성하고 1980년대 신스팝을 재현한 신시사이저 리드가 탄성을 절로 터뜨린다. 히트 작곡가 맥스 마틴(Max Martin)이 제대로 일을 냈다. 그 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퇴폐적인 사랑을 위켄드는 어느 때보다 강렬한 퍼포먼스로 내비치는데, 흡사 영화 < 조커 >가 겹쳐가는 뮤직비디오 속 라스베이거스와 로스앤젤레스의 도심을 피 묻은 분장으로 떠도는 그의 모습이 위태로우면서도 아름답다. 작금의 복고 유행을 가속화함과 동시에 그것을 멋지게 자기화(自己化)한 싱글. 그가 현세대 가장 걸출한 뮤지션 중 하나라는 것을 무리 없이 입증했다. (이홍현)


도자 캣(Doja Cat) ‘Say so’ 

디스코 열풍과 SNS를 통한 챌린지. 올 한해 팝 신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한꺼번에 설명할 때 가장 적확한 곡이 아닐까. 찰랑찰랑 거리는 펑키한 기타 리프를 타고 유려하게 흘러가는 도자 캣의 몽환적인 음색에 보다 감각적인 터치를 더하는 니키 미나즈의 섬세한 래핑.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넘나들며 빚어내는 두 아티스트의 시너지가 여성 래퍼가 득세하고 있는 지금의 현상을 주도했다 해도 과언은 아닐 터. 

이 노래를 통해 니키 미나즈는 그토록 염원하던 빌보드 No.1의 커리어를 거머쥐었으며, 첫 여성 콜라보레이션 HOT 100 1위라는 쾌거까지 그들의 것이 되었다. 밈으로 군림하는 데에 있어 단단한 음악적 내실이 필수적임을 알려준, 올 한 해 팝 트렌드 일등 단타강사. (황선업)


앤더슨 팩(Anderson .Paak) ‘Lockdown’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어.
제재 조치(Lockdown)라더니,
우리에게 총알을 날리더군.”

2년 전 차일디시 감비노의 ‘This is america’를 소개하며 “2018년의 미국은 누군가에겐 지옥이었다”라 운을 띄운 바 있다. 2020년의 미국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1,340만 명을 감염시키고 26.7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백인 경찰관이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질식사시켰다. 거리에서 흑인들이 총을 맞아 살해당하고 비밀 경찰이 잠입해 사람들을 어디론가 끌고 갔다. 전염병과 공권력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된 약자들이 생존을 위해 ‘흑인의 삶도 소중하다(BLM)’를 외치며 거리로 나서자 대통령은 ‘법과 질서’를 강조했다. 

앤더슨 팩은 이 모든 상황을 담담히 관찰하여 정제된 분노의 언어로 ‘Lockdown’을 꾹꾹 눌러 담았다. 전쟁 같은 일상 속 지쳐버린 가장의 목소리로 “흑인 생명을 휴지쪼가리 취급하는”, “우리가 죽어갈 땐 침묵하다 나중에서야 소리를 내는” 사회에 울분을 토한다. 뮤직비디오 속 제이 록(Jay Rock)이 조목조목 매일 마주하는 공포를 설명해주지만 세상은 도통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얼굴을 가리고 살기 위해 투쟁해야 했던 2020년의 미국, ‘블랙 프라이드(Black Pride)’ 이상은 멀리 있었고 분노와 응축된 한은 이 노래처럼 가까이 있었다. (김도헌)


다베이비(Dababy) ‘Rockstar’

아마도 훗날 2020년 BLM(Black Lives Matter) 운동 시점을 대표하는 노래로 이 곡을 고를 것 같다. 노래 자체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총을 쏴 괴한을 죽인 실제 사건을 묘사해 ‘강한 흑인’을 부각한 데다 바로 터진 조지 플로이드 사태와 BLM 무브먼트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발 빠르게 몇 구절을 추가한 리믹스 버전, 관련 뮤직비디오를 냈다. 하지만 빅 히트는 이러한 사회성보다는 곡의 우수 청취 품질에 기인한다. 

어쿠스틱 기타의 애절하고 잔잔한 선율부터 ‘일단 듣게 만들고’ 프리스타일을 머금은 특유의 중저음 래핑과 기품 있는 플로로 ‘라디오프렌들리’를 주조한다. 무지 멜로딕하다. 3년 전 차트를 장악한 포스트 말론의 곡목도 같은 록스타다. 이미 록스타들을 압도한 랩스타들이 기울어가는 록을 향해 건네는 측은지심인가. 아니면 록을 먹어 치우고 난 후의 악어눈물 레퀴엠? 그러니까 더 록은 슬프다. 정반대 표제어로 거역할 수 없는 힙합 시대를 천명한 2020년 힙합 히트 영순위 넘버. (임진모)


로디 리치(Roddy Ricch) ‘The box’

트랩은 강고하다. 막강한 권세는 탄생지인 미국 남부를 넘어 갱스터 랩의 고장인 서부에도 전해졌다. 단지 확장만 한 것이 아니라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라는 높은 성적까지 이루게 했다. 캘리포니아주 콤프턴 출신 래퍼 로디 리치의 ‘The box’는 트랩이 여전히 대중음악의 핵심 장르임을 시사한다.

로디 리치는 갱스터 삶에 대한 찬양으로 ‘The box’를 채운다. 비싼 차를 타고 다니면서 약을 팔고, 예쁜 여자를 곁에 둔 걸 자랑하며, 경찰도 두렵지 않다면서 내내 범죄, 향락, 폭력이 버무려진 허세를 부린다. 시종 배경에 깔리는 “이얼” 애드리브와 훅 일부 문장의 마지막 음절을 끄는 보컬, 이 부분에 추가되는 화음은 듣는 이로 하여금 불건전한 내용을 순하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식지 않는 트랩의 인기, 청각적 재미를 제공하는 요소에 힘입어 갱스터 랩이 힘차게 날아오르는 순간을 ‘The box’가 기록했다. (한동윤)


카디 비(Cardi B)
‘WAP (Feat. Megan Thee Stallion)’

자극적이고 강렬한 것들은 언제나 이목을 집중시킨다. 특히 ‘성’에 관한 것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카디비는 올해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아랫도리(Wet Ass Pussy)’를 노래하고, 노골적으로 성행위를 묘사하며 춤을 춘다. 선정성의 정도는 논할 필요도 없다. ‘카디비 WAP 부모님 반응’ 등의 리액션 비디오가 세계적으로 유행처럼 번져갔으니, 단연 2020년의 뜨거운 감자였다.

흑인과 백인, 차별과 인정, 비난과 비판 사이. 카디비는 잠식된 평등 앞에서 ‘WAP’을 외친다. 노래를 장악하는 키워드 ‘섹스’가 세간에서 화두였지만 결국 진짜 메시지는 차별에 대한 대항이다. 흑인이자 여성인 카디비는 성행위를 비롯한 모든 행위의 키를 자신이 쥐고 있음을 선포한다. 이렇듯 대중을 매혹시킨 건 결코 자극적이기만 한 ‘섹스’가 아니라, 세상이 요구하는 여성성을 가감 없이 격파한 ‘카디 비’ 그 자체다. (조지현)


퓨처(Future)
‘Life is good (Feat. Drake)’

퓨처가 랩 게임에 남긴 족적은 분명하다. 트랩을 기반으로 한 지금의 싱잉, 멈블 등 다양한 랩 스타일의 초석을 다지며 주류로 이끌어 온 그는 왕성한 활동을 통해 꾸준하게 차트에 이름을 새겼고, 2010년대 랩 문법을 빛내는 가장 선명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이 됐다. 드레이크와 함께한 ‘Life is good’은 그가 쌓은 커리어를 다시 한번 증명해내며, 새롭게 이어질 미래의 밝기를 더한다.

각기 다른 비트의 구성 속 유려한 드레이크의 래핑을 지나 등장하는 퓨처의 실력이 핵심이다. 타이트하게 배치한 가사의 끝에 일정하게 등장하는 ‘우’를 고유한 플로우로 만들어내는 곡 구성 능력은 그가 아직 시장에서 주목받는 이유를 보여주는 대목. 결국 빌보드 핫 100 2위에서 8주간 머무르며 1위는 하지 못했지만,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끝없이 상승하며 업로드한 지 10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현재 13억 회를 넘어섰다. 많은 도전자가 있었지만, 힙합 트렌드의 시작부터 나아갈 방향까지. 그 중심엔 여전히 퓨처가 있다. (손기호)


베니(BENEE)
‘Supalonely (Feat. Gus Dapperton)’

올해도 틱톡(TikTok)의 영향으로 많은 곡들이 재조명을 받았다. 뉴질랜드 출신 싱어송라이터 베니(BENEE)의 히트 싱글 ’Supalonely’도 그 대표적인 예다. 작년 11월 발매한 후 몇 달이 지난 올해 봄, 명료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노래의 후렴구가 틱톡에서 15초 영상 댄스 챌린지로 인기를 끌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39위까지 오르며 그와 피쳐링에 참여한 거스 대퍼튼(Gus Dapperton)에게 첫 미국 시장 성공을 안겨주었다. 막 EP를 내놓은 신예가 단숨에 세계의 주목을 받는 스타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얼터너티브 팝(Alternative Pop)의 경쾌한 분위기와 달리 속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슬픈 정서가 감지된다. 작년 연인과 헤어지고 실연의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Supalonely’는 “내가 망친 거 알아 / 난 그냥 루저일 뿐이야”라며 아티스트의 쓸쓸한 감정을 투덜댄다. 뮤직비디오의 컬러풀한 배경 속 홀로 춤을 추는 그는 꼭 코로나 봉쇄령에 ‘집콕’ 생활에 익숙해진 우리의 모습 같기도. 감각적인 음악성이 돋보이는, 과연 엘튼 존의 극찬대로 ‘차기 글로벌 스타’의 탄생이다. (이홍현)


방탄소년단(BTS) ‘Dynamite’ 

모든 목표를 이루었다.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과 미국 라디오의 에어플레이 접수, 그래미 후보, 해외의 여러 음악상 수상 그리고 팬더믹 상황으로 무기력해진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고 싶다는 인류애적 목적도 달성했다. 전 세계 30여 개 나라에서 1위를 차지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이어 대한민국 노래로는 두 번째로 세계를 정복한 노래 ‘Dynamite’는 그동안 우리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웠다. 

브루노 마스와 마크 론슨의 ‘Uptown funk’처럼 변박이 거의 없는 정박의 뚜렷한 비트, 명징하게 들리는 마룬 파이브 스타일의 16비트 리듬 기타와 리듬감을 배가시키는 단단한 베이스, 중반부터 등장하는 어스 윈드 & 파이어 풍의 혼섹션까지 ‘Dynamite’는 도전과 패기, 실험이 허용된 방탄소년단 음악의 틀에서 벗어나 1970년대의 소울/펑크(Funk) 음악으로 다양한 연령대와 모든 인종이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음악의 진폭을 확대했다. 훗날 2020년을 상징하는 노래를 꼽을 때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할 진정한 대중음악이다. (소승근)


레이디 가가(Lady Gaga)
‘Rain On Me (Feat. Ariana Grande)’ 

레이디 가가는 지난 몇 년간 댄스 플로어에 일체 발을 들이지 않았다. < ARTPOP >의 대중적, 음악적 실패에 이어 거듭된 불행한 개인사로 무너진 그는 스탠더드 재즈와 컨트리 팝을 탐미하며 스테파니 조앤 저마노타를 정의하기에 급급했다. 본체를 잃어버린 페르소나는 존재할 수 없기에 누군가는 변절이라고 부를, 편안한 도피처를 찾아야만 했던 레이디 가가. 그토록 자신을 배척한 기성세대의 찬사를 받으면서까지 그가 원했던 건 살아갈 힘,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몇 해를 굽이돌아 무대에 선 그가 이렇게 외친다. “어디 한 번 해봐. 차라리 말라 비틀어지겠어. 적어도 난 살아있으니까”. 그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음악은 발가벗겨진 언플러그드 사운드가 아닌 한껏 왜곡된 전자 기타와 건반, 드럼 루핑으로 포장된 하우스다. 레이디 가가가 삶의 주도권을 되찾고 가장 먼저 밟은 곳, 바로 이 댄스 플로어에서 그는 그럼에도 살아가겠노라 다짐한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 같이 맞서줄 동료와 함께. ‘Rain on me’는 그의 삶의 의지의 표명이자 관철이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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