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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힙합에서 살아남기’ 혹은 ‘힙합으로 살아남기’

여느 때와 같이 음악을 듣다간 깜짝 놀랄 가능성이 크다. 카디 비와 함께한 싱글 ‘WAP’으로 한 번, 비욘세가 리믹스로 참여해 힘을 실어준 ‘Savage Remix’로 또 한 번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수놓은 메간 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의 곡 ‘Body’의 이야기다. 무슨 말인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재빨리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재생해보자. 단박에 이유를 알게 될 거다.

여성의 신음이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곡을 가득 채운다. 그야말로 정말 가득 채운다. 잠깐 잠깐의 효과음이 아니라 아예 신음이 사운드 소스가 되고 비트가 됐다. 적나라한 음성에 곡을 멀리하려 해도 이것 참 난감하리만큼 메인 멜로디가 선명하다. ‘하악 하악’하는 교성 위에 ‘Body’를 연음으로 연속해 뱉어 ‘바디야리야리야리’하는 후크 라인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 청산별곡 >의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버금가는 중독성이다.

이게 바로 숨어 듣는 명곡인가 하는 생각을 할 때쯤 짜릿한 해방감이 몰려온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말하기 위해 그 지난했던 정숙한 여성 되기의 정반대 이미지를 끌어오다니. 시원하고 강렬한 전유이자 날카로운 전복이다. 대중문화 속에서 오랜 시간 관습적으로 규정해온 여성의 이분화, 즉 ‘성녀’와 ‘성녀가 아닌 자’의 프레임을 벗어나 당당히 그 위에 섰다. 그것도 힙합을 통해서.

여성은 언제나 잣대 위에 올랐다. 혹은 일종의 소재나 수단으로 자리했다. 남근의 음악이라 일컬어지는 록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아이코닉한 로고로 여전한 생명력을 과시 중인 영국 밴드 롤링 스톤스의 대표곡 ‘(I can’t get no) satisfaction’에서 그들이 느낄 수 없고 만족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로커의 마초성을 증명하기 위해 여성이 소환됐고 때문에 여성 뮤지션들은 남성처럼 노래하거나 오히려 여성성을 감추는 무성(asexual)의 전략을 취했다. 남성을 흉내 내는 전자는 윌슨 자매가 만든 밴드 하트(Heart), 재니스 조플린이 있으며 후자는 트레이시 채프먼, 수잔 베가 등의 포크 뮤지션이 떠오른다.

그중 힙합은 유달리 경직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TLC, 니키 미나즈, 카디 비 등을 경유해 주체적 여성을 손에 쥐고 달린 음악가들의 궤가 있지만 그에 반하는 여성 대상화의 벽은 견고하다. 여전히 많은 래퍼가 ‘퍽(Fuck)’과 ‘비치(Bitch)’를 마침표처럼 사용한다. ‘이것이 힙합의 정신이다’, ‘표현의 자유다’를 넘어서 ‘진짜 나쁜 여자들을 나쁘다고 말하는데 뭐가 문제냐’ 라는 격론이 앞 다퉈 튀어나온다. 힙합은 원래 그렇다는 본질주의적 접근. 설사 그 본질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성 차별적이라면 변해야 한다.

힙합을 즐기려면 검열과 염려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혹시 내가 ‘비치’는 아닌지, 그들이 말하는 ‘퍽’이 혹시나 나를 향하는 것은 아닐지. 노래 하나 듣는데 뭐 이렇게까지 정치적 올바름을 꺼내오는가 싶기도 하겠지만 언제고 대상화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힘주어 철창을 걸어 잠그는 쪽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다. 힙합의 ‘힙(hip)’함을 따라가기에 장애물이 너무 많다.

‘Body’는 그 장애물을 부수고 뒤집는다. 몸은 가장 먼저 사회에 귀속된다. 요새 회자하는 ‘말하는 몸’이라는 문장은 몸 안에 적힌 역사와 몸에 가해지는 이중, 삼중의 잣대를 잘 대변해주는 표현이다. 스탈리온은 몸을 가져와 말한다.

“Body crazy, curvy, wavy, big titties, lil’ waist
미친 몸매, 매끈, 늘씬, 큰 가슴, 호리호리한 허리”

세상이 원하는 틀에 맞춰 몸을 다져도 이를 부각해서는 안 되는 묘한 엄숙 문화를 뒤틀어 당당하게 자기 어필의 포인트로 삼았다. 힙합에서의 여성이 발화하지 않는 혹은 못 하는 존재였다면 노래 속 그는 다르다. 여성 스테레오타입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감을 뽐낸다. 일면 무례하고 그래서 불경한 여성이 될 수 있겠지만 꼿꼿한 기지에서 힘 있는 균열이 뻗어 나온다. 남성성을 모방하거나 여성성을 거부하지 않으며 관습적인 여성성의 덫을 피해 나가는 그의 서사에 호쾌한 자기다움이 묻어난다.

유로 댄스로 유럽과 미국을 이어낸 디스코의 여왕 도나 섬머의 ‘Love to love you baby’에도 신음이 담겨있다. 이는 불세출의 하드록 밴드 건즈 앤 로지스의 ‘Welcome to the jungle’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때의 소리는 보컬 액슬 로즈의 작품이긴 하지만 이 연기의 의도만은 다른 곡과 같다. 심지어 그들의 곡 ‘Rocket queen’은 성관계 중인 여성의 신음을 그대로 녹음해 사운드로 삼았다.

이렇듯 신음이 노래에 포함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신음이 여성의 권력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 경우는 많지 않다. ‘Body’의 함의는 이처럼 다채롭다. 그는 은밀한 것으로 치부되던 여성의 신음을 앞세워 자신을 그린다. ‘힙합에서 살아남기’ 위해 몇 번의 빗장을 걸어왔다면 그의 곡은 여성이 ‘힙합으로 살아남기’에 적합한 새 활로를 개척했다.

‘Body’에는 힘센 여성성의 발화가 있다. 그의 존재 앞에 성적 자유인가 혹은 남성의 대상화가 아닌가 하는 물음이 따라붙을 것이며 나아가 예술이냐 외설이냐 하는 철옹성의 논박이 뒤이어 올 것 역시 확실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Body’를 풀어낼 맥락은 많다. 오랜 시간 괄호 치워지고 억압된 여성의 욕망을 멋들어지고 화려하게 해체했다. 여성이 이렇게도 말할 수도 있고 밝힐 수 있다. 아찔하고 짜릿한, 힙합으로 살아남기. 메간 더 스탈리온의 ‘Body’가 신선하고 가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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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목소리 ‘We, Do It Together’

몇 달 전부터 SNS에 심심찮게 공유되는 포스트가 있었다.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만드는 연대의 목소리가 그 키워드였다. 여성 록 컴필레이션 음반 < We, Do It Together >.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을 통해 앨범 제작을 위한 자금을 모았고 이는 이들이 쏘아 올린 에너지만큼이나 금방 뭉쳐졌다. 진즉에 애초 목표 금액인 4백만 원을 달성했다. 지난 11월 16일, 이들의 프로젝트는 최종적으로 216%인 8백 6십여 만원의 성금을 모았다. 그만큼 많은 지지가 쏟아졌다.

여성 록 컴필레이션 음반이라고 소개하긴 했지만 12팀의 인디 뮤지션들이 만든 12곡은 록에 한정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음악가부터 활동 기간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아티스트들까지 고루 모였다.

인디 씬의 태동부터 선 굵은 이미지를 남긴 ‘황보령’, 국악인 이자람이 주축이 되어 만든 ‘아마도 이자람밴드’를 비롯하여 지난해 첫 정규 음반을 발매한 ‘천미지’, 문소문이란 그룹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카코포니’, 다국적 밴드 ‘티어파크’ 등 다양한 색채의 뮤지션들이 한뜻 아래 손을 잡았다.

GIRLS INDIE] '홍대여신' 거부하는 12팀 록밴드 프로젝트가 온다 > 뉴스 | 라온미디어 - 인디음악 뉴스

시작은 에고펑션에러의 보컬 김민정이 가진 의문 덕이었다. ‘일본에는 여성 록 컴필레이션 음반이 많은데 왜 국내에는 없을까?’ 작은 의문은 이내 행동으로 옮길 수밖에 없는 필연적 사건들을 만난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이후 우후죽순 터진 인디 씬 내의 여러 성 관련 문제들을 마주했다. 그는 “홍대에 탈덕 유발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로 마음먹는다. 여성 인권 신장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고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여성 음악가를 더욱 널리 크게 알리자는 목표 또한 겸했다.

빌리 카터의 보컬 김지원을 동반자로, 일렉트릭 뮤직의 대표 김민규를 조력자로 얻었다. 이름하여 ‘WEWEWE 기획단’이 탄생했다. 2018년에는 여성 퀴어 음악가를 위한 기획 시리즈 공연을 두 차례 펼쳤고 2019년에는 여성 음악가, 창작자, 관객이 연대하는 ‘wewewe networking party’를 주관했다. 그렇게 2020년의 끝, 오랜 예열 끝에 < We, Do It Together >가 발매됐다. 앨범 발매 이후 11월 29일에는 ‘WeWeWe festa2020’을 열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콘서트 현장에는 40여 명의 한정된 인원만 참석했지만 유튜브 생중계로 그 열기를 전했다. 작지만 강한 움직임이 실행됐고 실현된 순간이었다.

멜로디가 부각되는 이모 팝 밴드 아디오스 오디오의 ‘숨’은 ‘너와 나의 숨을 뱉어 / 두려워 하지마’ 노래한다.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오묘하게 차올라 어딘지 시린 감정을 삼키게 하는 다브다의 곡 ‘무궁화’, ‘잘 했습니다 / 수고 많았습니다 / 괜찮았습니다’ 직접적인 위로를 건네는 ‘Good night’의 아마도 이자람 밴드 등 음반에는 즐길 노래들 또한 많다. 모두가 이 앨범을 위해 직접 노래를 썼다. 불협화음을 부딪치며 기이한 쾌감을 선사하는 티어파크를 발견할 수 있는가 하면 ‘술에 취했다는 변명 / 먹통의 부끄러움이 왜 우리의 몫인가’ 일갈하는 에고펑션에러의 외침은 전에 없이 시원한 사이다 같은 한방이다.

이유 있는 목소리가 모여 이유 있는 변화를 썼다. 이들 앞에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붙이는 것이 어쩐지 또 다른 무게를 지어주는 것만 같아 고려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멋지게 새-흐름을 시작했다. < We, Do It Together >. 작지만 강한 조류가 균열을 낸다. 주체성을 필두로 메시지를 전하는 많은 ‘여성’ 음악가들이 있다. 이 음반은 묻게 한다. 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는가. 그리고 이들은 듣게 한다. 이들이 설파하는 분노의 메시지와 품에 안은 연대의 마음을. 따뜻하고도 강렬한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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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P, 카디 비의 즐거운 역할 바꾸기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노래는 래퍼 카디 비(Cardi B)와 메간 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이 8월 7일 발표한 ‘WAP’다. 발매 첫 주만인 8월 18일, 총 9300만 회 스트리밍을 기록하며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로 데뷔한 44번째 곡이 됐다. 종전 최고 기록인 아리아나 그란데 ‘7 rings’의 첫 주 총 8530만 회 스트리밍 기록을 가뿐히 제쳤다.

하지만 ‘WAP’는 다른 의미에서 훨씬 ‘뜨거운’ 곡이다. 우선 제목부터가 ‘축축이 젖은 아랫도리(Wet-Ass Pussy)’다. 1990년대 DJ 프랭크 스키(Frank Ski)의 노래 일부분을 따온 샘플은 러닝타임 내내 ‘여기 창녀들이 있어(Whores in the house)’를 읊조린다. 제목, 가사, 뮤직비디오까지 파격적인 선정성으로 단단히 무장한 이 노래는 가사 한 줄 해석하기도 곤란할 정도다. 쉽게 말해, 굉장히 야하다.

거리의 스트리퍼로 출발해 ‘Bodak Yellow’로 빌보드 정상에 오르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카디 비, 올해 비욘세와 함께 ‘Savage’를 히트시킨 메간 더 스탈리온의 자신감이 곡 내내 구체적인 판타지와 성행위 묘사로 드러난다. 카디 비가 원기 왕성하고 힘 있는 목소리를 앞세워 선언하면 메간은 기관총처럼 쏘아 붙는 랩으로 에너지를 더한다. 간결한 구성 위 오로지 힘, 권력, 에너지로만 곡 전체를 꽉 채운다. 

때문에 ‘WAP’는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기 전부터 말이 많았다. 노래와 아무 상관없는 슈퍼스타 카일리 제너의 깜짝 출연도 논란이지만 가사를 둘러싼 갑론을박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우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표현에 관대한 미국이라 해도 그 허용의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노랫말과 뮤직비디오는 논란의 대상이다.

James Bradley | WAP | Know Your Meme

‘WAP’ 논란을 부채질한 것은 미국의 보수 측 인사들의 발언이다. 캘리포니아 주 하원의원 공화당 후보 제임스 브래들리(James Bradley)는 트위터를 통해 ‘카디 비와 메간은 하나님 없이 자란, 강한 아버지가 없이 자란 아이들의 전형’이라며 ‘WAP를 듣고 내 귀에 성수를 붓고 싶었다’는 혹평을 퍼부었다.

같은 주의 공화당 정치인으로 최근 공화당 하원 경선에서 탈락한 디애나 로레인(Dianna Lorane) 역시 “역겨운 ‘WAP’가 여성 인권을 100년 정도 후퇴시켰다.”라 불평하며, 카디 비와 유세를 함께한 민주당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와 2020년 민주당 대선 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 지지자들을 ‘쓰레기’라 비난했다.

힙합을 ‘쓰레기 음악’이라 평한 바 있는 유명 우파 논객 벤 샤피로(Ben Shapiro)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바로 페미니스트들이 투쟁한 결과”라며 비꼬는 것으로 시작해 “결국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나 인권에 관심 없는 ‘젖은 엉덩이’에 불과하다. 이런 의견을 비판하면 바로 ‘미소지니(mysogyny : 여성 혐오)’로 찍히기 십상”이라 조롱했다. 과연 이들의 발언처럼 ‘WAP’는 그저 천박하고 음탕하게 색만 밝히는 노래인 걸까? 

카디 비의 ‘19금 발언’은 그리 낯설지 않다. ‘WAP’ 이전에도 그는 꾸준히 SNS를 통해 ‘뜨악’할만한 발언, 혹은 사진을 공개하며 논란 혹은 큰 웃음(?)을 선사해왔다.

하지만 그게 단순한 음담패설만은 아니었다. 힙합 그룹 미고스(Migos) 멤버이자 남편 오프셋(Offset)이 준비한 서프라이즈 파티에 ‘오늘 X 좀 빨리고 싶나 본데?’라 능청스레 감탄하면서도, 신곡 발표 후 여성들에게 그들의 ‘WAP’를 유지하는 방법을 코믹하고 진지하게 설파할 때도 항상 대화 속 성적 주도권은 언제나 카디 비 본인, 즉 여성에게 있었다.

스트리퍼 출신임을 거리낌 없이 강조하는 카디 비는 언제나 과감하게 자신의 욕망과 성적 매력을 표현한다. 빌보드 싱글 차트 첫 1위의 영예를 안긴 ‘Bodak yellow’부터 ‘I like it’까지 그의 서사는 밑바닥부터 시작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직접 남자를 고르며 명품에 둘러싸여 있는 삶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진실하고 거리낌 없는 감정 표현이야말로 카디 비를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성 래퍼로 만든 핵심 요소다. 

All the hot girl looks to copy in Cardi B and Megan Thee ...

’WAP’ 역시 숨김이 없다. 대개 야한 이야기를 하는 여성은 음탕하게 받아들여진다. 남성이 여성을 부와 성공의 상징으로 삼고 성관계를 노래하면 ‘대범하고 멋진’ 것이 되지만, 그렇게 끊임없이 성적 대상화되는 여성의 욕망은 부정되기 일쑤다. 숱한 힙합 노래들이 성공의 상징으로 여성을 그리는 것은 당연히 여겨지는 반면, 두 여성의 성적 판타지를 노래하는 ‘WAP’가 남성을 수단화하지 않음에도 몰매를 맞는 데서 불균형이 도드라진다. 

게다가 이들은 여성이 아니라 ‘흑인 여성’이다. 17세기 노예 신분으로 미 대륙에 끌려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흑인 여성들은 오랫동안 ‘이세벨 스테레오타입(Jezebel Stereotype)’이라 불리는 고정관념에 시달려왔다.

이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치세 하의 도덕적인 ‘집안의 천사’ 여성상과 정반대의 개념으로, 흑인 여들은 성적 능력이 특히 발달한 음탕한 존재라는 차별의식을 기저에 깔고 있다. 긴 시간 동안 블랙-피메일(Black-Female) 들은 숱하게 성적으로 대상화되며 거의 짐승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으나 욕망의 주도권은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Recognizing Racist Stereotypes in U.S. Media | by Suzane Jardim ...

‘WAP’를 둘러싼 선정성 논란에서도 이세벨 스테레오타입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노래만큼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여성 아티스트들의 ‘19금 노래’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럼에도 ‘WAP’만큼 화제와 논란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마일리 사이러스가 2013년 MTV 비디오 어워즈에서 로빈 시크에게 엉덩이를 들이밀며 혀를 내밀 때도, 아리아나 그란데가 격렬한 하룻밤을 보내고 게다리 걸음을 걷는다는 ‘Side to side’를 부를 때도, 두아 리파가 ‘밤새 몸을 섞자’는 ‘Physical’을 노래할 때도 여론의 동요는 전혀 없었다. ‘WAP’를 불편히 여기는 시선에는 고정관념이 투영되어 있고, 이는 성차별은 물론 인종차별의 문제와도 연관이 된다. 

동시에 이들 대중은 ‘WAP’의 욕망에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다른 여성 아티스트들의 발화에는 무관심하다. 카디 비는 이를 꼬집어 “숱한 여성 래퍼들이 사회를 비판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던질 때는 관심도 없더니, ‘WAP’에는 모두가 떠들썩하다”는 의견을 SNS에 피력하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몇 년만 해도 랩소디(Rapsody), 노네임(Noname), 자밀라 우즈(Jamila Woods)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사회 및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나 대대적으로 주목받은 이는 슈퍼스타 비욘세 외 찾아보기 어렵다.

대중음악의 역사 속 블랙 커뮤니티에게 섹스는 중요한 개념으로 다뤄졌다. 로큰롤과 재즈부터가 섹스를 뜻하는 속어로부터 출발했다. 일찍이 ‘소울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이 그 자신을 ‘섹스 머신(Sex machine)’이라 칭한 이래로 수많은 펑크(Funk) 디스코 밴드들이, 프린스(Prince)와 1980년대 댄스 가수들이, 힙합과 알앤비 스타들이 소리 높여 ‘19금’ 노래를 불렀다. 이들에게 섹스는 외설의 대상이 아니라 억압되고 자유롭지 않은 현실에서 그들이 살아있음을 외치는 활력과 생기의 상징이었다. 

‘WAP’ 역시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과 아티스트들의 맥락 위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도미니카 혈통의 카디 비와 아프로 아메리칸 메간 더 스탈리온은 미국 사회에서 낮은 지위에 속한 인물들이다. 이들이 자랑스레 꺼내는 성적인 욕망과 판타지는 외설이 아니라 그들에게 부여된 발화 권력과 힘을 상징한다.

<콤플렉스(Complex)>의 평가를 가져오자면 ‘WAP’는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독립, 지배’를 노래하는 곡이며 ‘여성 임파워링의 상징’과 같은 곡이다. 미국 NBC 저널리스트 수잔 라미레즈가 ‘즐거운 역할 변경’이라 평한 것에도 눈길이 간다. 카디 비와 메간 더 스탈리온의 과격한 일탈은 천박하지 않다. 오히려 이를 음탕하게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서 그 저의의 음란함이 포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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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레디의 견고한 메시지, ‘I am strong, I am woman’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영화 ‘섹스 앤 더 시티 2’에서 네 명의 주인공은 각자 여성으로서의 고민을 안고 함께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로 여행을 떠난다. 사만다는 갱년기에 접어들었고, 미란다는 가정을 위해 직업을 포기했으며, 캐리는 남편에게 주기적으로 각자의 시간을 갖자는 요구를 받았다. 샬롯은 고된 육아에 시달려 지칠대로 지쳐있다. 그런 그들은 여행지에서 헬렌 레디(Helen Reddy)의 ‘I am woman’을 열창한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환히 웃으며!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 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듯, ‘허스토리(Herstory)’를 이야기하려면 헬렌 레디를 빼놓을 수 없다. 이즘 ‘I am woman’ 코너명의 탄생 배경이 된 헬렌 레디의 일대기를 그려본다.

“한때 나는 바닥까지 내려갔었어요.
누구도 다시는 나를 바닥에 머물게 할 수는 없어요.”

어릴 적 헬렌 레디의 꿈은 가정주부였다. 영화배우였던 어머니, 배우 겸 감독이자 작곡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무대에 설 기회가 많았고 실력도 출중했으나 가수의 길은 자의가 아닌 부모의 뜻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후 그는 노래 부르기를 거부했다. 비슷한 시기 건강상의 이유로 음악을 그만둘 수밖에 없기도 했다.

헬렌은 스무 살이 되던 해 가정주부의 꿈을 이룬다. 10대 때부터 연애해 온 케네스 위트(Kenneth Weate)와 결혼한 뒤 딸 트레이시(Traci)를 낳았다. 그러나 3년 만에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되고 어린 나이에 싱글맘이 된다. 1966년, 어린 딸과 함께 단돈 200달러를 들고 떠난 미국에서 그의 첫 거주지는 허름한 여관방이었다.

그는 살기 위해 음악을 다시 택했다. 어린 딸의 밥을 책임져야 하는 엄마이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노래해야 하는 무명가수였다. ‘I am woman’의 노랫말 속 “I am strong, I am woman(나는 강해요. 나는 여자입니다)”라고 외쳤지만, 그의 삶은 결코 강인함만으로 이기기에 쉽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I Am Woman” singer Helen Reddy performs in 1970.

역설적이게도 그가 본격적으로 음악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계기 역시 제프 왈드(Jeff Wald)와의 결혼이었다.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로 폰타나 레코드(Fontana Records)에서 첫 싱글 ‘One way ticket’을 발매하게 된 것이다. 미국으로 건너온 지 2년만인 1968년이었다. 그러나 이후 제프와도 이혼하게 되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래봤자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결심을
더 단단하게 하도록 도와줄 뿐이죠.”

데뷔 싱글로 성공하진 못했으나 이름을 알리는 데는 성공한 헬렌은 1971년 ‘I am woman’을 발표하며 페미니즘 제2의 물결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페미니즘 제1의 물결이 선거권 및 법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한 운동이었다면,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지속된 미국의 페미니즘 제2의 물결은 편중된 가사 노동으로 직업을 가지지 못하고 가정 내에 국한되는 여성들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했다.

헬렌 레디 역시 주부들의 고충을 너무도 잘 알았다. ‘I am woman’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이야기와 함께 이를 강하게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를 노래한다.

“제때 딱 맞춰 왔어요. 여성운동에 관여하게 됐고, 약한 사람들, 고분고분한 사람들 그리고 약하고 우아한 모든 것들에 관한 노래도 라디오에 많이 나왔죠. 우리 가족 여자들은 전부 강했어요. 그들은 노동을 했고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직접 겪었죠. 난 결코 내가 고분고분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어요.” – 2013년 시카고 트리뷴 인터뷰 중

이후 헬렌 레디는 주체적인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주창한다. 척 베리(Chuck Berry),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케이씨 앤드 더 선샤인 밴드(KC and the Sunshine Band), 비지스(Bee Gees) 등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출연한 심야 음악 버라이어티 쇼 < The Midnight Special >에서 1972년부터 1975년까지 고정 호스트를 맡았다. 그뿐만 아니라 1973년 < The Helen Reddy Show >와 1979년 < The Helen Reddy Special>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버라이어티 쇼를 진행한다. 여성들이 직업을 갖지 못하고 가사 노동에 집중되어있던 시기였기에 더욱더 유의미했다.

“나는 현명해요. 그 지혜는 아픔에서 온 거죠.
나는 강해요. 나는 여자입니다.”

헬렌 레디가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건 단순히 페미니즘 메시지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투사임과 동시에 재능있는 뮤지션이었다. ‘I am woman’과 동일 앨범에 수록된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이 뮤지컬 < Jesus Christ Superstar > OST 앨범에 수록되며 이름을 알리는 데 일조했고, 풍성한 코러스와 온화하고도 파워풀한 가창력이 돋보이는 ‘Delta dawn’, 마이너한 편곡과 의미심장한 가사가 돋보이는 ‘Angie baby’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에도 출연했다. < 에어포트 75 >, <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에 출연했고, 그중에서도 < 피터의 용 >에서는 주연을 맡으며 OST인 ‘Condle on the water’로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오르는 업적을 남겼다.

싱글맘으로의 삶, 세 번의 결혼을 겪은 헬렌 레디는 세상에 “See me standing toe to toe(정면으로 세상에 맞서는 날 봐).”라 선언했다. 그는 음악의 힘으로 나약한 현실을 강인함으로 승화했다. 시카고 트리뷴 인터뷰에서 ‘I am woman’이 이토록 성공을 거둘 줄은 몰랐다고 고백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 노래를 여성들의 연대를 이끈 결정적인 노래로 기억한다. “나는 현명해요. 그 지혜는 고통에서 온 거죠. 나는 강해요. 나는 여자입니다. “ 페미니즘 이슈가 계속 화두 되는 세상 속 ‘I am woman’의 메시지는 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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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목소리를 가진 강인한 투사, 사라 맥라클란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유대 신화에는 여성 악마 릴리스(Lilith)가 존재했다. 아담이 이브와 결혼하기 전 첫번째 부인이었던 릴리스는 아담과의 성관계에 있어 여성은 따르기만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아담을 떠나 혼자 살며 많은 남자를 유혹하는 악마를 자처한다. 다소 노골적인 이 신화 이야기에는 남성 상위 문화에 반기를 들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자리하고자 하는 페미니즘적 의미가 담겨있다.

분노의 얼터너티브 록이 활개를 치던 1990년대 초반, 음악 신에도 릴리스가 있었다. 캐나다의 포크 가수 ‘사라 맥라클란’이 바로 그 주인공. 신화 속 강렬한 이미지의 릴리스와는 달리 잔잔하고 조용한 음악을 선보이는 그는 긴 무명의 끝에 네 번째 정규 앨범 < Surfacing >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2위를 차지한다. 이 도약은 그가 진짜 ‘릴리스’로서의 활약을 펼치게 될 기원이 된다.

#1. 천사의 목소리를 가진 강인한 투사로, 릴리스 페어(Lilith Fair)

짧은 머리에 수수한 차림, 어깨에 걸쳐 맨 어쿠스틱 기타. 사라 맥라클란은 미소를 띠며 그에게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 상을 안겨준 ‘Building a mystery’로 무대를 연다. 1997년 시작되어 1999년 막을 내린 여성 음악 페스티벌 릴리스 페어(Lilith Fair)의 첫 장면은 이토록 인상 깊다. 1990년대의 음악 시장은 남성 뮤지션들에게만 유독 관대했다. 사라 맥라클란을 비롯해 토리 에이모스, 트레이시 채프먼 등 쟁쟁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넘쳐났지만 무대도, 라디오도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1997년 그의 나이 30살, 주어지지 않으니 창시하기에 이르렀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연과 라디오에 거부당한 사라 맥라클란의 분노는 1,6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는 성공적인 여성 음악 축제를 낳는다. 오롯이 여성만 출연할 수 있으며, 남성 출연자들은 연주를 보조하는 세션으로만 허용되었다. 트레이시 채프먼, 셰릴 크로우, 수잔 베가, 시니어드 오코너, 폴라 콜 등 내로라하는 여성 가수들이 출연해 남성이 주도하고 있는 록 신에 반기를 들며 음악계 안에서의 여권 신장에 연대하고 화합한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그가 직접 언급했듯, 릴리스 페어는 여성의 힘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무대 위 남성 뮤지션들을 무대 아래서 바라봐야 했던 여성 뮤지션들의 자유로운 무대를 갈망했다. 비단 그들이 얻은 건 무대뿐만이 아니다. 흔히 여자들이 모이면 서로를 적대시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출연자들은 서로 사랑과 기쁨을 공유했다. 무대 위에서는 기쁨의 노래를, 무대 아래에서는 속 깊은 대화로 서로의 삶을 나눴다.

릴리스 페어는 여성을 ‘위한’ 페스티벌보다 여성 ‘중심의’ 페스티벌에 가까웠고, 이 이상의 다양한 인권을 인정하는 평등의 장이었다. 흑인 알앤비의 대표적인 여성 뮤지션 인디아 아리(India arie)는 릴리스 페어를 기점으로 모타운과 계약을 체결했고, 영국 밴드 모치바(Morcheeba)의 결정적인 인물 스카이 에드워즈(Skye edwards)는 “나는 흑인임에도 싱어송라이터가 된 게 아니라, 그저 싱어송라이터인데 마침 흑인인 것뿐이다”라며 릴리스 페어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각인시켰다. 당시 무명이었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또한 1999년 릴리스 페어에 설 기회를 얻었다. 무명과 흑인, 그리고 여성. 이유 없이 약자가 되었던 그들도 릴리스 페어에서는 그저 한 명의 뮤지션이었다. 여성의 인권을 넘어서 모두의 인권을 통용한 아름다운 페스티벌로 남았다.

#2.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결국엔 음악

‘Adia I do believe I failed you / Adia I know I’ve let you down (이디아, 내가 널 저버리고 / 실망시켰다는 걸 알고 있어)’ 언뜻 보면 연인에게 바치는 화해의 노래 같지만, 사실은 친구의 전 남자친구와 결혼해 미안한 마음을 담은 ‘Adia’ 속 가사이다. 그렇게 결혼한 남편과의 이혼, 딸의 탄생과 맞물린 어머니의 죽음까지. 녹록지 않은 그의 개인사는 수준 높은 음악으로 승화됐다.

2010년 발매된 7번째 정규앨범 < Laws Of Illusion >에 수록된 ‘Changes’로 이혼의 심정을 토로하고, 다음 작인 < Shine On >의 ‘Song for my father’로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한다. 그의 상처와 허물은 자전적인 음악을 성취해냈다. 릴리스 페어를 창시하고, 음악학교를 설립하는 등 사회적 활동을 더욱 빛나게 해준 건 무엇보다도 탄탄하게 다져진 음악적 능력이었다.

상업적 음악인 틴 팝, 라틴 팝의 유행으로 주어진 곡을 부르는 여성 가수들이 대부분이었던 당시, 직접 곡을 쓰는 그의 행보는 독립적이며 주체적이었다. 그렇게 뽑아낸 양질의 음악은 OST에서의 활약을 이끌었다. 영화 < City Of Angel >의 OST로 알려진 ‘Angel’은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스매싱 펌킨스의 키보디스트 조나단 멜보인으로부터 영감을 얻었고, < 토이스토리2 >에 수록된 ‘When She Loved Me’는 애절한 목소리로 장면의 몰입을 도와 평단의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이외에도 그의 행보는 멈추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밴쿠버 아이들이 무상으로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라 맥라클란 음악학교(Sarah McLachlan School of Music)‘를 설립하고, ‘World on fire’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 위한 15만 달러의 예산 중 제작비 15달러를 제외한 금액을 자선 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단지 그는 의자에 앉아 기타를 치는 모습이 전부이고, 세계 각국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의 모습과 함께 기부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담아낸 뮤직비디오는 좋지 못한 품질에도 마음을 울린다.

2010년, 밴쿠버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그의 ‘Ordinary miracle’이 울려 퍼졌다. ‘삶이란 매일 우리를 위해 포장된 선물 상자이고, 열어보고 베푸는 방법은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는 노랫말처럼 그의 음악사는 언제나 자유로이 날갯짓했다. 여성은 수동적이며, 무언가를 해내지 못할 거라는 시대의 편견을 무참히 무너트렸고, 시대를 이끄는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주지시켰다. 온화한 미소의 그는 사실 착하기만 한 ‘Angel’이 아니라 고요하지만 강인하게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았던 ‘Lilith’였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