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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의 가치를 돌아보다, the Issue : 시대를 관통하는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Magazine Collection

매거진 시장은 디지털화의 피해를 고스란히 안았다.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 시대 종이 매체의 쇠퇴는 당연한 절차였고 전통을 자랑하던 유명 매거진들의 폐간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반면 요즘은 얘기가 다르다. 무분별한 정보들을 쏟아내는 온라인 미디어에 피로를 느낀 나머지 독자들은 매거진과 같은 에디터의 전문성이 담겨있는 콘텐츠를 원한다. 게다가 최근 트렌드와 맞닿은 종이 매체라는 아날로그 감성과 직접 수집하는 재미까지, 매거진 시장에 다시 한번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대카드는 이와 같은 시대적 흐름을 예견이라도 한 듯 만반의 준비를 기울여 왔다. 201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를 돌며 비용과 노력을 집중한 결과 9,000권에 달하는 11종 매거진의 발행본 전체를 수집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이태원에 위치한 현대카드 스토리지(Storage)에서는 매거진 전권 콜렉션을 주제로 한 전시가 진행 중이다. ‘the Issue: 시대를 관통하는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Magazine Collection 展’은 < 라이프 >, < 플레이보이 >, < 내셔널 지오그래픽 >, < 롤링스톤 >, < 도무스 >를 소재로 대중성과 역사적 가치를 지닌 각 영역 최고 권위의 5개 매거진을 전시에 담았다.

전시장 입구에 자리한 대형 연표에는 5개 매거진 콜렉션의 연대기와 1930년대를 시작점으로 세계사에 기록된 주요 사건들이 펼쳐져 있다. 각 사건과 해당 매거진의 연관 관계를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포토 저널리즘 시대를 이끌었던 < 라이프 > 섹션은 반가움이 앞섰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를 비롯해 리더로 대표되는 인물들의 과거 모습과 제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상징하는 수병과 간호사의 키스 사진같은 익숙한 장면들도 마주했다. 보도사진 분야에서 선구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운동, 흑인 인권, 우주개발, 그리고 ‘이 시국’에 어울리는 바이러스 분야까지 다뤘던 < 라이프 >의 기록들은 붉은 로고의 상징성이 여전히 숨 쉬고 있는 듯했다.

< 플레이보이 >는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비판과 가족주의에 저항한 성 해방을 이끌었다는 대립한 의견들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 플레이보이 >는 단순한 성인 잡지와는 거리가 멀다. 미국의 시대상과 엔터테인먼트, 디자인 분야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선사했던 사실은 상대적으로 간과됐다. ‘Playboy Club’은 매거진으로부터 투사된 판타지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1960년대 유흥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 외에도 ‘일러스트레이션 해방 운동’을 주도했던 도전적인 태도와 데이비드 보위,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예술계 저명인사들을 다룬 인터뷰는 격조 높은 매거진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는 지점이다.

지금은 어패럴과 다큐멘터리 채널로 더 친숙한 < 내셔널 지오그래픽 >의 노란 테두리는 변화를 거듭했다. 본래 학술지의 성격으로 시작했던 < 내셔널 지오그래픽 >이 교양지 이상의 것으로 성장하게 된 흔적은 커버의 변천사를 통해 전시되었다.

입장 전부터 제일 관심을 끈 건 단연 < 롤링 스톤 >이다. < 롤링 스톤 >은 대중음악 매거진으로는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으며 사회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매체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반문화를 표명한 음악적 현상을 생생히 기록했던 콜렉션과 빈번히 커버 샷을 장식했던 존 레논의 추억을 되짚어 본 후 전시장 가운데 마련된 청음 존에서 그 유명한 < 롤링 스톤 > 선정 명반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바이닐 앤 플라스틱처럼 레코드판의 가치와 음악 큐레이션 작업을 끊임없이 시행해온 현대카드의 특색이 드러난 구성이었다.

건축과 디자인 산업에서 국제적 트렌드를 주도하는 월간지< 도무스 >는 마지막 매거진이다. 창간 100주년을 앞두고 도입한 편집 전략 ‘10x10x10’을 통해 매년 세계적인 건축가를 편집장으로 선임하는 등 신선한 도약을 앞두고 있었다.

전시장 계단을 내려가다 보이는 2층 높이의 대형 서가 존에는 매거진들이 빼곡히 진열되어있다. 실로 압도되는 광경이다. 가볍게 한두 개 정도를 소장하는 것과 완전한 수집을 이뤄낸 것은 단순한 개수 차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특히나 희소성과 오랜 역사를 지닌 5개 매거진 전권 콜렉션이라면 더욱 가치는 특별해진다. 낱권이라는 단편의 조각을 차곡히 쌓은 결과 마침내 역사의 흐름은 연결 지어졌다. 문화에 진심이었던 현대카드가 방대한 아카이브와 함께 또 한번 진심이라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김성욱)

사진제공 = 현대카드

  1. 라이프 (Life)

    보도사진의 선구자 < 라이프 > 지는 영화 <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로 대중에게 친숙하다. 1936년 헨리 루스가 이 잡지를 창간하며 “삶을 그리고 세상을 보자. 엄청난 일들의 증인이 되자”라고 선언했던 것에 따라 비틀즈, 아인슈타인, 루즈벨트 대통령, 흑인 인권 운동, 제2차 세계대전 등 인류의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기록했다. 1940~1960년 전성기를 누리던 잡지는 2007년에 완전히 폐간되었지만 이들이 남긴 사진은 여전히 그 순간들을 생생히 증언하고 반추한다.


  2. 플레이보이(Playboy)

    < 플레이보이 > 지라고 하면 바니걸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1953년 휴 헤프너의 창간 이래 양질의 콘텐츠를 선보여온 댄디한 남성을 위한 종합매거진이다. 1975년에는 560만 부를 기록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으나 플랫폼의 확대로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누드 사진을 게재하지 않는 등 다양한 타개책을 모색했다. 하지만 여전히 저조한 판매량으로 인해 2017년에는 계간지로 전환했으며 2018년에는 인쇄판 폐지까지 검토했다. 2020년까지 명맥을 이어온 잡지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콘텐츠 생산과 공급체계가 무너지면서 다시 한번 위기를 맞고 휴식에 들어갔다.


  3. 롤링스톤(Rolling Stone)

    1967년 창간한 음악 전문지 < 롤링스톤 >은 정치, 사회 등 시대상을 함께 담으며 세계적인 잡지로 발돋움했다. 1980년대 들어서 연예 쪽으로 완전히 노선을 틀기도 했으나 1990년대 말 정치 콘텐츠를 되살리면서 독자들의 호응과 판매부수 증가로 다시 호황을 맞았다. 또한 젊은 저널리스트 마이클 해스팅스와 맷 타이비 등의 활동으로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종이 잡지가 사라져가는 2000년대에도 그 위상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최근에는 방탄소년단이 전원 아시아인 그룹 최초로 미국판 커버를 장식했고 한국판 창간으로 우리나라가 < 롤링스톤 >의 12번째 국가가 되었다.


  4. 내셔널 지오그래픽(The Nation Geographic)

    < 내셔널 지오그래픽 > 지는 1888년 전미 지리 협회에 의해 지리학 학술지로서 창간되었다. 2대 협회장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부터 대중적인 과학 교양 잡지로 방향을 전환했고 단순 텍스트 출판물이 아닌 방대한 그림까지 담기 시작했다. 특히 1985년 아프가니스탄 소녀 샤 바트 굴라의 사진은 잡지에서 가장 유명한 표지다. 지금까지 1,536호를 발행한 잡지는 생생한 사진과 기록을 전할 뿐만 아니라 환경 보전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하며 그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5. 도무스 (Domus)

    1928년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지오 폰티가 창간한 < 도무스 > 지는 이탈리아어로 집이라는 뜻을가지고 있다. 이탈리아 예술을 중심으로 시작한 잡지는 일상의 소소한 것부터 문화 전반의 질적 향상까지 주도했다. 잠시 자리를 비우기도 했지만 1979년 사망까지 편집장 자리를 지킨 지오 폰티 이후에는 저명한 디자이너들이 이끌며 포스트 모더니즘, 네오 아방가르드 등의 담론을 펼쳤다. 현재 ‘10x10x10’ 프로젝트로 2028년 다가올 창간 100주년을 기념하며 매년 세계적인 건축가 1명을 편집장으로 선임하고 있다. (정수민)

정리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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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무더위, 케이팝 10곡으로 여름 나기

올 여름에도 여행은 힘들 것 같다. 학생이건 회사원이건 꿀 같은 여름방학과 휴가를 이용해 잠시나마 무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들의 일상에서 여행을 빼앗아갔고 이번 여름도 어김없이 방구석 에어컨에 의지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래도 여름이 왔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해줄 가장 쉬운 방법이 하나 있다. 매년 여름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시원하게 녹여주었던 아이돌의 신나는 여름 노래에 그대로 몸을 맡기는 것. 이들의 청량한 사운드로 우리들의 마음만큼은 시원한 해변으로, 휴양지 야자수 밑으로 단번에 보내줄 수 있다.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꿈같은 여름날의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이번 여름, 우리들의 심적 휴양을 책임져 줄 아이돌 가수들의 대표 여름 노래 10곡을 선정했다.

에프엑스 ‘Hot summer’ (2011)

에프엑스의 여름은 뻔하게 한가로운 휴양지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교실, 사무실, 방구석에서 갇혀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며 뜨거운 여름 그 자체를 노래한다. 수십 번 반복되는 가사 ‘Hot summer’는 듣는 이에게 시원함을 선사해 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이열치열의 에너지로 무더위에 정면으로 맞선다. 보통의 여름 노래는 청량한 사운드의 시원함을 느끼기 위해 듣는다면 ‘Hot summer’는 견디기 힘든 폭염 탓에 정신이 살짝 혼미한 상태에서 듣기 제격이다.

‘Hot summer’의 매력 포인트는 10년이 지나도 그 뜻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가사에 있다. 특히 ‘땀 흘리는 외국인은 길을 알려주자 / 너무 더우면 까만 긴 옷 입자’라는 구절은 당시 가사의 논란이 발생했을 정도로 큰 혼란을 야기했다. 결과적으로는 알쏭달쏭한 가사가 귓가에 자꾸만 맴도는 중독성을 만들며 유일무이한 시즌송을 만드는데 한몫 했다. 십 년이 지났음에도 무더위에 미쳐버린 여름의 순간들을 이보다 화끈하게 표현한 아이돌 여름 노래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씨스타 ‘Loving u’ (2012)

쿨 이후로 등장한 2010년대 여름의 절대강자. 수 년에 걸쳐 한 계절을 점령해 버린 아이돌은 씨스타가 최초였다. 다른 걸그룹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건강미와 섹시함, 그리고 메인보컬 효린의 시원한 가창력으로 탄생한 이들의 여름 노래는 계절을 청각화 하는데 탁월했다. ‘Loving u’로 시작된 씨스타의 썸머송 연대기는 ‘Touch my body’, ‘Shake it’로 정점의 궤도에 올라서며 해체하는 순간까지 여름의 왕좌를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았다.

씨스타와 여름의 상성을 본격적으로 보여준 ‘Loving u’는 사랑에 빠진 풋풋한 감정을 짧지만 낭만적인 여름의 순간으로 표현한다. 직접적으로 여름을 연상시키는 단어 없이 소유의 살랑거리는 목소리와 탄산 음료 같은 효린의 고음, 도입부부터 바다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브라스 사운드의 설렘만으로 완벽하게 만들어진 썸머송! 해체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여름만 되면 여전히 씨스타의 노래를 찾게 될 정도로 이들의 존재감은 강력했다.

샤이니 ‘View’ (2015)

샤이니의 상징색 펄 아쿠아 그린으로 수놓은 여름의 뷰. 뜨겁게 정열적이지도, 특별하게 시원하지도 않은 이들의 여름 노래에는 은은한 청량감이 감돈다. 당시로서는 케이팝에서 생소했던 딥 하우스 장르로 간결함을 추구하며 신나고 경쾌해야 한다는 여름 노래만의 고정관념을 깨부순다.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은 곡의 구성은 자칫 심심함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공감각의 축제를 그린 종현의 언어유희, 감각적인 선율과 공간감을 채우는 멤버들의 보컬로 샤이니만의 개성이 담긴 여름 노래를 완성했다.

‘View’의 뮤직비디오에는 청춘들이 생각하는 낭만적인 여름 향기가 모조리 담겨 있다. 칠(Chill)한 여름의 푸른빛 색감,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스트리트 올드스쿨 패션, 휴양지에서 친구들과 만끽하는 풀 파티까지. 이들의 청춘 로드 무비는 사운드에 몽환적으로 스며들어 물속에서 숨 쉬며 헤엄치듯 환상 속에 들어온 느낌을 준다. 수많은 여름 노래들이 있지만 ‘View’가 가장 세련된 아이돌 여름 노래이자 샤이니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이유.

태연 ‘Why’ (2016)
태연에게는 사계절을 대표하는 곡이 하나씩 있다. 봄의 ‘사계’, 가을의 ’11:11’, 겨울의 ‘This Christmas’, 그리고 여름의 ‘Why’. 통쾌함이 감도는 시원시원한 가창력과 청량한 트로피컬 리듬으로 표현한 ‘Why’의 여름은 불쾌지수 높은 계절의 스트레스를 단숨에 날려준다. 국내에서 트로피컬 장르가 유행하기 이전에 발매된 탓에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후발주자들이 등장함에 따라 완성도 높은 여름 노래로서 평가 측면의 역주행이 예상된다.

‘Why’는 서사를 투영한 여름 노래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단순히 상쾌한 여름날의 휴가를 노래한 곡이 아니다. 도입부의 차분한 어쿠스틱 선율에서 후렴의 청량한 비트로 전환하는 구성은 갑갑한 현실을 벗어나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을 그린다. 이때 ‘Why’라고 끝없이 반문하는 태연의 목소리는 일상 탈출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지금 당장 떠나도 좋다는 용기를 심어준다. 올여름도 어디든 멀리 떠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렘을 부풀게 하는 노래.

여자친구 ‘너 그리고 나’ (2016)

학교를 졸업한 소녀들이 처음으로 맞은 자유분방한 여름. ‘유리구슬’, ‘오늘부터 우리는’, ‘시간을 달려서’로 이어져 온 ‘파워 청순’ 콘셉트의 연장선에 있는 곡이지만 강렬한 록 사운드와 박력 있는 기타 연주로 도로 위를 질주하는 듯한 시원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멤버들의 티 없이 맑고 담백한 음색은 순수한 사랑을 표현한 가사에 청량한 여름의 향기를 한 스푼 더해준다.

뮤직비디오 속 멤버들은 학교를 벗어나 친구들과 함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며 풀 빌라로 여행을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 장면들과 서정성을 갖춘 여름 노래의 만남은 익숙했던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 여름 방학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약간의 긴장 그리고 나비처럼 날아오르고 싶은 설렘이 함께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계절. ‘너 그리고 나’에 깃든 시원한 에너지는 수줍은 소년소녀가 이번 여름에 앞을 향해 힘껏 내달릴 수 있는 동력을 실어준다.

레드벨벳 ‘빨간 맛’ (2017)

2017년 이후 여름 노래의 ‘국룰’은 ‘빨간 맛’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름만 되면 TV 프로그램에서는 ‘빨간 맛’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1020 세대에게는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여름 노래일 정도로 상징성이 짙다. 레드벨벳은 씨스타 이후 계보가 끊겼던 썸머퀸의 바통을 이어 받으며 ‘빨간 맛’을 시작으로 ‘Power up’, ‘음파음파’까지 여름과 떼어놓을 수 없는 그룹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빨간 맛’이 그린 여름의 기승전결은 완벽하다. 야자수 아래 달콤한 과일 주스를 마시며 뛰어노는 한낮부터 금세 노을이 진 해변의 저녁까지. 빠른 후렴구부터 느린 템포로 여운을 주는 엔딩의 구성은 어느 여름날의 하루를 다채로운 맛으로 담는다. 여름의 질감을 가진 통통 튀는 가사로 표현한 시원하고 짜릿한 음악은 그 해 여름을 상큼하게 보내기 위해 꼭 들어야만 하는 당위성을 가진다. 누군가 여름이 어떤 맛이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빨간 맛’이라고 답할 것이다. 제목과 함께 흘러나오는 멜로디만으로 여름이라는 계절을 설명하기 충분한 강력한 썸머송!

위너 ‘Island’ (2017)

여름 노래의 진가는 당장의 뙤약볕 밑에서 들어도 눈앞에 하와이 해변에서 휴양을 만끽하는 장면을 그려줄 때 나타난다. 위너의 청량함을 대표하는 ‘Island’는 시원한 트로피컬 하우스 리듬으로 듣는 이들의 방구석 휴양지 여행을 가능케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진 지금, 이보다 여행을 꿈꾸는 자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곡이 또 있을까.

‘Really really’부터 위너와 떼어놓을 수 없는 조합이 된 트로피컬 장르는 ‘비행기 모드’, ‘무인도’, ‘보물섬’과 같은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가사와 함께 여름 휴가에 대한 욕구를 자극한다. 쉴 새 없이 부딪히는 플럭 사운드는 내적 댄스와 함께 흥을 유도하며 강승윤의 여유로운 보컬과 이승훈의 자유로운 래핑은 트로피컬 분위기에 한껏 취하게 한다. ‘Island’와 함께 도로 위를 드라이브하는 것만으로 휴양지에서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만끽할 수 있다.

트와이스 ‘Dance the night away’ (2018)

트와이스의 상큼함과 청량한 썸머송의 멜로디는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다. 한 여름밤 해변가에서 신나게 댄스 축제를 벌이는 모습으로 담은 트와이스의 여름은 밝은 에너지가 넘친다. 휴양지의 에스닉한 의상, 맨발로 모래사장을 자유롭게 뛰어노는 듯한 역동적인 안무, 멤버들의 맑고 시원한 보컬로 초대하는 여름 파티의 현장!

흥겨운 브라스 사운드가 이끄는 후렴구의 단순한 반복은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어야 한다는 여름 노래의 공식을 따르며 강한 중독성을 유발한다. ‘바다야 우리와 같이 놀아 / 바람아 너도 이쪽으로 와’처럼 자연의 요소를 품은 휘성의 독특한 노랫말도 곡의 흥행 요인으로 작용했다. 2018년 여름을 접수했던 ‘Dance the night away’는 여름마다 차트 역주행으로 소환되며 매년 어김없이 더위가 찾아왔음을 알린다.

세븐틴 ‘어쩌나’ (2018)

2세대 보이그룹을 대표하는 ‘청량돌’이 샤이니라면 3세대에는 세븐틴이 있다. 시원한 여름 분위기의 노래를 소화할 때 가장 자연스러운 이들은 여름에 빼놓을 수 없는 그룹이다. ‘어쩌나’는 데뷔 초 ‘아낀다’, ‘만세’, ‘예쁘다’로 이어져 온 세븐틴의 청량 콘셉트를 이어가며 무더위를 산뜻하게 녹여주었던 썸머송이다. 이전의 곡들은 소년미를 부각하는데 집중했지만 ‘어쩌나’는 여름이라는 계절에 좀 더 초점을 맞추었다.

부드러운 스윙 리듬과 신시사이저로 차분하게 여름의 분위기를 담았음에도 세븐틴의 유쾌한 에너지는 그대로 다. 13명이라는 다인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현란한 안무, 뮤지컬 같은 다채로운 구성의 음악,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풋풋한 감성에는 듣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가사 속 ‘찌더움이 없는 Summer’를 맞이하게 해 줄, 선선한 공기를 품은 파스텔 톤의 노래.

오마이걸 ‘Dolphin’ (2020)

발매 시기는 봄이지만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켠 것은 여름이었다. 앨범 수록곡에 불과했던 ‘Dolphin’은 은은하게 스며드는 가사 ‘da da da da da’의 나른한 음성으로 여름 바다의 물보라와 같은 파동을 일으켰다. 직접적으로 계절을 겨냥한 노래는 아니다. 사계절을 지나 일 년이 넘도록 사랑받고 있는 곡이지만 돌고래가 헤엄치는 모습이 연상되는 시원한 멜로디와 멤버들의 청아한 음색은 무더운 여름에 듣기 최적화된 세트다.

빠른 템포, 꽉 찬 사운드, 시원시원한 가창력으로 대표되는 썸머송의 흥행 공식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하지만 강력한 중독성 한 방으로 여름 노래들의 모든 인기 요인을 압도한다.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안무 또한 너도 나도 ‘Dolphin’의 리듬에 몸을 맡기도록 만든다. 이번 여름에도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의 플레이리스트에서 빠지지 않을 마성의 여름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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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 역주행 특집 VOL 2. 팝 9곡

역주행은 차량이 달리는 방향과 반대로 달리기 때문에 위험하지만 음악에서 역주행은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가수나 노래가 뒤늦게 인기를 얻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음악계의 역주행은 기분 좋고 안전하다. 그런데 이런 은혜로운 상황이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미국에도 꽤 많은 노래들이 다행히 부활해서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번에 소개하는 역주행 리스트의 기준은 처음 발표했을 때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둔 노래이기 때문에 플리트우드 맥의 ‘Dreams’나 라이처스 브라더스의 ‘Unchained melody’, 로이 오비슨의 ‘Oh! pretty woman’처럼 처음 공개했을 때 더 높은 인기를 누렸던 곡들은 과감하게 제외했다.

홀 앤 오츠(Hall And Oates) ‘She’s gone'(1973)
1980년대에 ‘Kiss on my list’, ‘Maneater’, ‘Private eyes’, ‘I can’t got for that’ 같은 명곡을 배출한 대릴 홀과 존 오츠의 첫 번째 히트 싱글이다. 백인임에도 묵직한 소울 발라드를 구사한 이 듀엣은 1973년 말에 ‘She’s gone’을 발표해서 이듬해에 빌보드 싱글차트 60위를 기록했다.

이후 애틀랜틱 레코드에서 RCA로 이적한 홀 & 오츠가 발표한 ‘Sara smile’이 빌보드 싱글차트 4위에 오르자 배가 아팠던 애틀랜틱은 ‘She’s gone’을 다시 싱글로 발표해서 빌보드 싱글차트 7위 곡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재활용의 좋은 예. 이후 ‘Rich girl’로 빌보드 정상을 밟은 홀 & 오츠는 그 여세를 몰아 1980년대에 가장 성공한 듀오로 입지를 다졌다. 이 모든 성공의 출발점은 바로 ‘She’s gone’이다.

에어로스미스(Aerosmith) ‘Dream on'(1973)
1973년에 공개한 데뷔앨범의 첫 싱글로 당시에는 빌보드 싱글차트 59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고향인 보스턴의 지역 라디오는 ‘Dream on’을 줄기차게 틀어댔다. 덕분에 에어로스미스는 고향 보스턴과 매사추세츠 주에서만큼은 ‘떠오르는 스타’가 아니라 이미 ‘떠오른 스타’였다.

2년 후인 1975년에 공개한 3집 < Toys In The Attic >은 모든 걸 바꿨다. 이 앨범에서 ‘Walk this way’와 ‘Sweet emotion’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자 음반사인 컬럼비아 레코드는 재빨리 데뷔곡 ‘Dream on’을 다시 싱글로 발매해 빌보드 싱글차트 6위를 기록했다. 이후 보컬리스트 스티븐 타일러와 기타리스트 조 페리의 불화로 부대낌을 겪은 에어로스미스는 1987년에 발표한 < Permanent Vacation >으로 부활해 현재까지 아메리칸 록을 상징하는 밴드로 생존해 있다. 심지어 에미넴이 ‘Sing for a moment’에서 ‘Dream on’을 샘플링하기도 했으니까.

샬린(Charlene) ‘I’ve never been to me'(1977)
이 곡도 에어로스미스의 ‘Dream on’처럼 라디오의 지원사격을 받아 역주행에 성공했다. 1977년에 빌보드 97위에 간신히 턱걸이하고 곧바로 사라진 ‘I’ve never been to me’를 좋아했던 전직 모타운 직원 출신으로 지역 방송국 디제이였던 스코트 섀넌은 샬린이 모타운과 재계약을 하도록 도움을 줬고 이 곡은 1982년에 재발매 되어 빌보드 싱글차트 3위까지 진격했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서정적인 곡 분위기와 달리 노래 내용은 한때 화려하고 허세에 찌든 삶을 살았던 중년의 여자가 자신의 젊은 시절과 닮은 여인에게 충고해 주는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다.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 ‘Solitary man'(1966)
자기 얼굴을 앨범커버로 대문짝만하게 내건 대표적인 가수는 필 콜린스와 닐 다이아몬드다. 차이점이 있다면 두 사람의 외모. 1970년대 가장 성공한 싱어송라이터 닐 다이아몬드를 상징하는 ‘Solitary man’은 1966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55위를 기록한 그의 첫 번째 차트 진입곡이다.

당시엔 큰 인기를 누리진 못했지만 이후 ‘Cherry cherry’, ‘Girl you’ll be a woman soon’, ‘Holly holy’, ‘Sweet Caroline’이 성공을 거두자 음반사는 1970년에 ‘Solitary man’을 다시 발표해서 빌보드 싱글차트 21위까지 올랐다. 이후 이 노래는 히트곡이 많은 닐 다이아몬드의 시그니처 송으로 영국 박제됐다.

포인터 시스터스(Pointer Sisters) ‘I’m so excited'(1982)
영국 걸그룹 걸스 얼라우드가 리메이크 했던 ‘Jump (For my love)’의 주인공인 친자매 트리오 포인터 시스터스가 1982년에 발표한 이 곡은 빌보드 싱글차트 30위를 찍고 하락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84년에 ‘Jump (For my love)’와 은지원이 커버했던 ‘Automatic’이 연속으로 히트하자 아쉬움이 남았던 ‘I’m so excited’를 살짝 리믹스해서 부활시켰다. 결과는 대성공.

빌보드 싱글차트 9위까지 상승해서 생명 연장의 꿈을 이룬 ‘I’m so excited’는 ‘Jump’, ‘Automatic’과 함께 그해 그래미에서 포인터 시스터스에게 최우수 팝 보컬 그룹 트로피를 수상하는데 힘을 보탰다.

빌리 베라 & 더 비터스(Billy Vera & The Beaters) ‘At this moment'(1981)
1987년 초에 음악 관계자들에게도 낮선 가수의 노래가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그것도 라이브 실황이. 어리둥절했지만 그 의문은 곧바로 해소됐다. 당시 최고 스타였던 마이클 제이 폭스가 출연하던 시트콤 < 패밀리 타이즈 >에 이 노래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10대 후반이었던 1962년부터 음악활동을 시작한 빌리 베라는 1981년에 ‘At this moment’를 발표했지만 빌보드 싱글차트 79위를 정점으로 금방 하락했다. 컨트리 팝과 뉴웨이브가 유행의 흐름을 주도하던 1980년대 초반에 약간은 청승맞은 알앤비와 재즈, 카바레 음악 스타일이 혼용된 ‘At this moment’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비좁았다. 결국 시트콤의 지원사격으로 발표 6년 만에 빌보드 넘버원을 찍었지만 더 이상의 후속곡이 없는 빌리 베라 & 더 비터스는 원히트원더 가수로 남았다.

제임스 인그램 & 패티 오스틴(James Ingram & Patti Austin) ‘Baby come to me'(1981)
알앤비 가수 패티 오스틴이 1981년에 발표한 앨범 < Every Home Should Have One > 수록곡으로 1982년 4월에 싱글로 커트했지만 빌보드 싱글차트 73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그렇게 묻힐 수 있었던 이 곡 역시 텔레비전 드라마 < 제네럴 호스피털 >에 등장하면서 역류를 시작해 1983년 2월에 싱글차트 넘버원에 올랐다.

영국의 펑크(Funk) 밴드 히트웨이브의 리더 출신으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Off the wall’, ‘Rock with you’, 조지 벤슨의 ‘Give me the night’ 같은 명곡을 작곡한 로드 템퍼튼이 만든 ‘Baby come to me’는 세련된 도시적 분위기를 반영한 어반 알앤비를 상징하는 노래 중 하나로 다양한 가수들이 커버해 곡의 완성도를 인정하고 추앙했다. 이 중에는 박진영도 있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What a wonderful world'(1967)
1967년에 녹음한 ‘What a wonderful world’는 영국 차트 정상을 포함해 유럽에서 큰 인기를 누렸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싱글로 발표하지도 않았다. 미국에서 잊혀질 뻔한 이 노래를 살린 인물은 영화감독 배리 레빈슨. 그가 1987년에 만든 영화 < 굿모닝 베트남 >에 ‘What a wonderful world’를 삽입하면서 전세는 역전됐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 방송국에서 일하던 디제이의 눈으로 전쟁의 참상을 그린 이 작품은 주연을 맡은 로빈 윌리엄스를 세계적인 배우로 만들었고 16년 전인 1971년에 세상을 떠난 ‘사치모(루이 암스트롱의 별명)’를 소환했다. 전장의 비극을 묘사한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거장의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찬가는 극명하게 대비되며 짙은 인상을 남겼다. 어찌나 강렬했는지 몇 년 후 우리나라 맥주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됐고 덕분에 대한민국에서는 루이 암스트롱의 대표곡으로 안착했다.

퀸(Queen) ‘Bohemian rhapsody'(1975)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이 많은 노래다. 1975년에 발표돼서 빌보드 싱글차트 8위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금지곡이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금지곡으로 묶였다가 1990년대 초반에 그 족쇄에서 풀렸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Bohemian rhapsody’는 금단(禁斷)의 노래였다.

1991년 11월 24일에 프레디 머큐리가 세상을 떠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추모 분위기가 형성됐고 미국에서는 1992년에 다나 카비와 마이크 마이어스가 주연한 코미디 영화 < 웨인스 월드 >에 ‘Bohemian rhapsody’가 삽입되어 빌보드 싱글차트 2위까지 올랐다. 영화 < 웨인스 월드 >에서 얼간이 5명이 자동차 안에서 헤드뱅잉을 하는 그 유명한 장면은 신드롬을 일으키며 이후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패러디 소재로 활용됐다.

2018년에 개봉한 영화 < 보헤미안 랩소디 >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설득했던 음반사 사장 역을 맡은 배우가 마이크 마이어스가 이런 대사를 읊는다. “차 안에서 ‘Bohemian rhapsody’를 들으면서 머리를 흔드는 사람은 없어!”. 영화 < 보헤미안 랩소디 >의 성공으로 이 노래는 2018년에 세 번째로 빌보드 싱글차트에 올라 33위를 기록했다. ‘Bohemian rhapsody’는 불멸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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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차트 역주행 특집 VOL 1. 가요 10곡

역주행의 역사는 되풀이 된다. 방송, SNS 등 다양한 매체와 더불어 밈(Meme), 추억, 감성 등 그 의미 또한 가지각색인 이 현상에 음원 시장과 유행이 급변한다. 대중의 취향과 기호가 과거만 맴돌며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는 씁쓸한 실정이지만, 기억 속으로 사라질 뮤지션에게 생명을 불어넣거나 몰랐던 노래의 진가를 발견한다는 장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옛 노래가 굽이치는 물결을 타고 지금 우리의 곁으로 몰려온다. < 슈퍼스타 K >, < 나는 가수다 >, < 복면 가왕 >, <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을 찾아서 > 등의 TV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과거의 음악과 추억을 되새김질했지만, ‘역주행’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돌아온 곡은 인터넷을 떠도는 ‘작은 영상 하나’에서 비롯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MZ세대가 만든 디지털 문화가 그 중심에 있음을 뜻한다.

2021년 상반기만 해도 벌써 브레이브 걸스와 SG워너비 두 팀이 어떤 연어보다 힘차게 차트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왔다. 매년 찾아오는 연금과 시즌 송처럼 연례행사에 가까운 이 현상을 이즘에서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차선을 반대로 달리는 노래가 다시 나오기 전에 이즘 필자들이 대표곡 10개를 선정했다.

EXID ‘위아래'(2014)
아이돌 역주행의 역사를 새로 쓴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이 등장하기 이전, 전국을 위아래로 들썩이게 했던 원조 역주행 걸그룹이 있다. 팬 한 명이 촬영한 직캠의 파급력은 놀라웠다. ‘위아래’는 2년의 공백을 가진 무명 걸그룹이 존폐를 논의하던 시점에 사활을 내걸었던 곡이다. 활동 당시의 반응은 미진했으나 발매 3개월이 지난 후 SNS를 통해 멤버 하니의 안무 직캠이 입소문을 타면서 뒤늦게 대중의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들의 역주행 열차는 쾌속으로 질주하며 그해 연말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우연히 영상 하나에서 시작된 이 드라마는 해체 위기의 걸그룹을 완연한 대세로 탈바꿈해 주었다.

포화한 아이돌 시장에서 대중에게 각인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고 일찍이 기회를 잡지 못한 팀들에게 성공의 벽은 높기만 하다. 3년이 꼬박 걸렸던 EXID의 역전은 새로운 성공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이들의 역주행 공식에는 방송 출연도, 유명인의 홍보도 없다. 오로지 팬이 만든 2차 창작물의 힘으로 일어섰다. 이는 아이돌 그룹이 주목받을 수 있는 제 3의 경로가 되었으며 아직 빛을 보지 못한 후배 그룹들에게는 포기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희망을 주었다. 아이돌 최초의 역주행을 이뤄낸 EXID의 발자취는 새로운 역주행 스타들이 탄생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영향력이 닿고 있다. (김성엽)

볼빨간사춘기 ‘우주를 줄게'(2016)
‘하늘만큼 땅만큼’은 사랑의 척도에서 가장 유구한 관용어지만 볼빨간사춘기는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며 우주를 안겨줬다. ‘난 그대 품에 별빛을 쏟아 내리고 / 은하수를 만들어 어디든 날아가게 할 거야’라는 귀여운 고백은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고막 여친’ 안지영의 애교 섞인 목소리와 대학 축제를 비롯한 많은 공연에서 보여준 사랑스러운 모습이 대중을 사로잡았다.

< 유희열의 스케치북 > 출연을 계기로 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1개월 만에 10위권에 진입한 ‘우주를 줄게’ 뿐만 아니라 이 곡이 수록된 < Red Planet >의 전곡이 한 해 동안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특히 사춘기의 우울하고 의기소침한 면에 주목한 ‘나만 안되는 연애’나 ‘X Song’은 폭넓은 감정선을 드러냈다. 볼빨간사춘기는 역주행의 수혜를 받은 원 히트 원더에 머무르지 않고 여전히 ‘썸 탈꺼야’, ‘여행’으로 20대 청춘의 찰나를 포착하고 있다. (정수민)

신현희와김루트 ‘오빠야'(2015)
시작은 인터넷 방송가다. ‘오빠야’를 배경음으로 차용한 한 리액션 영상이 우연히 화제를 끌어 각종 SNS의 파고에 탑승하고, 이후 수많은 패러디를 낳으며 젊은 층을 상대로 급속도로 퍼져 나간 것이 열풍의 시초다. 전파 과정만 본다면 다른 이유가 컸을지 모르지만 영상에 대한 관심은 곧 음악으로 이어지기 마련. 결국 그 기세는 영상의 업로드 일자 기준 16일 만에 차트 정상이라는 가시적인 기록으로 환산되었다.

반등의 기회는 생각보다 많이 찾아오지만 정작 제대로 거머쥐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빠야’의 성공 요인은 단박에 꽂히는 강렬한 인트로다. 한번 들으면 도통 잊기 힘든 신현희의 이 한 마디는 영상 너머 노래에도 관심을 가지게 했고, 뒤이어 등장하는 ‘썸’의 관계를 재치 있는 랩으로 풀어낸 코러스는 남녀노소를 막론한 노래방 애창곡 파트로 부상하며 상승 곡선에 박차를 가했다. ‘오빠야’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까지 걸린 시간, 인트로의 첫 2초였다. (장준환)

마크툽, 구윤회 ‘Marry me'(2014)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는 차 안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는 사랑 노래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바로 옆에서 불러 주는 듯 가공하지 않은 음원, 이게 승부수였다. 이 영상이 페이스북의 인기 페이지 < 일반인들의 소름 돋는 라이브 >에 올라왔고 일명 ‘신호대기남’이 큰 관심을 일으키며 영상 속의 곡도 덩달아 주목받았다.

노래의 인기를 살갗으로 느낄 수 있었던 곳은 결혼식장 안이었다. 음원 순위 상위권을 차지했을 당시 예식장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원곡 가수의 음원보다 말 그대로 ‘일반인들의 소름 돋는 라이브’를 더 많이 들었을 것이다. 축가 타이밍엔 어김없이 ‘Marry me’가 흘러나왔고 한동근의 ‘그대라는 사치’와 함께 결혼식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다. 프러포즈 대표곡으로 안착한 노래는 역주행시점 음원 시장에서 일위를 달성한 베스트셀러였고 결혼 시장에서는 스테디셀러가 되면서 그때나 지금에나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김도연)

김연자 ‘아모르 파티'(2013)
수 없이 겪어낸 고난에도 김연자는 제 운명을 사랑했다. 4년의 시간이 흘러 재조명된 윤일상표 EDM으로 기존의 트로트 작법을 과감히 탈피한 이 ‘인생 찬가’는 실로 위력적이었다. ‘연애는 필수 / 결혼은 선택’이 형성한 공감의 힘은 가벼운 세대 통합을 일궈냈고 대학가 축제에 출연한 최초의 트로트 가수라는 이변을 낳았다. BTS, 엑소, 트와이스 등 최정상 위치의 글로벌 케이팝 스타들이 백댄서를 자처한 2018년 KBS가요대축제 엔딩 무대는 이 곡의 위치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젊은 감성과 화려한 후렴구 멜로디는 역주행의 존재감을 높이는데 빼놓을 수 없는 조연이다. 진가는 시대를 꿰뚫은 노랫말에 담겨있다. ‘작사의 신’ 이건우의 역작으로 가사 한 줄, 한 마디가 우리의 근원적 스트레스에 구원자 역할을 자처한다. ‘자신에게 실망 하지마 / 모든 걸 잘할 순 없어’라며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고 ‘나이는 숫자 / 마음이 진짜 /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는 용기를 북돋으며 스스로 실현한 김연자식 명언에 방점을 찍는다. 찰나의 반짝임으로 끝나지 않을 주옥같은 격언들이 시대를 대변한다. 어쩌면 ‘아모르 파티’의 역주행은 당연한 절차였다.(김성욱)

윤종신 ‘좋니'(2017)
역주행 신화를 쓰기 가장 유리한 장르는 역시 발라드일 것이다.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범대중적인 장르인 데다 노래방에서 부르기도 좋으며, SNS에 올라오는 보컬 실력자들의 커버 영상을 통해서도 인기가 쉽게 번지기 때문이다. 2017년 미스틱엔터테인먼트의 음악 플랫폼 ‘리슨'(LISTEN)을 통해 발매된 ‘좋니’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부를 노래가 없다’는 젊은 세대의 수요를 공략한 아티스트는 유튜브 음악채널 ‘딩고 뮤직’의 ‘세로라이브’로 신세대와 교류를 형성했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한 라이브 영상이 성공을 판가름하며 노래는 가장 많이 들리고, 가장 많이 불리는 곡이 됐다. ‘애청’과 ‘애창’의 동시 포획이었다.

차이는 ‘깊이’였다. 꼭 모은 두 손, 잔뜩 찌푸린 미간으로 열창하는 베테랑 가수의 라이브는 대중의 가슴 한편에 간직하고 있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했고, 이별한 이의 심정을 대변하는 현실적인 노랫말은 결정적이었다. 원곡을 리메이크한 민서의 ‘좋아’로 차트 정상을 다시 꿰차며 발라드계 ‘답가 유행’을 일으키기도 했다. 음악인으로서 그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각인한 제2의 전성기의 서막이었다. (이홍현)

비 ‘깡 (GANG)'(2017)
허세와 거리가 멀다면서도 ‘백 달러 지폐(Hundred dollar bills)’, ’30 sexy 오빠’를 흥얼대며 여전히 9년 전 ‘레이니즘(Rainism)’에 도취되어 있었다. 향수에 젖어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던 2000년대 슈퍼스타는 이후 영화 < 자전차왕 엄복동 >까지 혹평을 받으며 ‘비’급 연예인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미지 타격에 쐐기를 박았던 이 실패작이 컬트적인 역행을 일으킨 ‘나.비 효과’였다.

작품이 별로일 수 있다는 주연의 취중진담과 그를 뒷받침하는 누적 관객 수. 성적은 처참했지만 놀림거리로 이만한 흥행도 없었다. 망작에서 비롯한 각종 패러디는 과거를 들추기에 이르렀고 발매 당시에도 잡음이 많았던 ‘깡’이 그 중심을 차지했다. 비록 조롱이 만들어낸 관심이지만 본인도 밈의 인기를 즐겼고 오히려 광대를 자처하며 열풍에 불을 지폈다. 비주류의 인터넷 유행을 대중의 영역으로 견인한 40대 꾸러기의 깡다구는 급변한 콘텐츠 시장을 대변하는 희귀한 역주행 사례다. (정다열)

블루 ‘Downtown baby'(2017)
음과 음 사이의 작은 낙차로 덤덤하게 흐르다가도 ‘너는 나의 다운타운 베이비야’란 훅을 던지는 모습은 과장보다 쿨함을 견지하는 Z세대의 사랑법과 닮아있다.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하는 감미로운 소리는 연인과의 추억을 환기하고 ‘너의 눈은 밤하늘에 별이야’란 구절은 라라랜드(로스앤젤레스)의 푸른 밤을 형상화하며 낭만성을 확보한다.

린다G(이효리)가 < 놀면 뭐하니? >에서 불러 스트리밍 차트 정상까지 도달한 ‘다운타운 베이비’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래퍼 블루가 2017년 말에 발매한 곡으로 2년 6개월 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이효리의 허스키한 저음은 멜로디의 좁은 폭을 구원하고 기교보다 감각으로 노래하는 가창이 곡에 잘 달라붙는다. “결국 뜰 곡은 뜬다.”는 운명론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실은 대중을 아는 이효리의 감과 공중파 프로그램의 위력이 작용한 결과다. (염동교)

브레이브걸스 ‘롤린 (Rollin’)'(2017)
역주행의 힘을 여실히 증명한 곡. 수익이 거의 없음에도 자식 키우는 심정으로 군부대 공연을 보낸 프로듀서 용감한 형제부터 “음악을 떠나 평범하게 살자고 이야기를 나눴다.”던 유정의 인터뷰처럼 팀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멤버들까지 해체를 앞두고 터진 대박 뒤에는 감동 실화가 숨어있다. 2021년을 뒤집은 이 흥행의 시작은 유튜브 알고리즘이었지만, 실질적 원인은 전심으로 아이돌 그룹을 응원하며 군통령, 군인픽, 밀보드라는 신조어까지 만든 ‘군인들’에게 있었다. 힘든 군 생활 중의 위문에 대한 보답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이들의 성공 형태에서는 특이하게도 영상을 통한 현시대의 홍보 방식과 소자본 인디 뮤지션의 활동 양식이 함께 보인다. 무명의 독립 뮤지션이 길거리와 홍대 클럽을 전전하며 공연하는 모습이 군부대를 도는 브레이브 걸스의 모습과 닮았다. 이는 대형 미디어도, 유명인의 언급도 없이 멤버들 스스로가 일궈낸 노력의 결과임을 증명한다. 이엑스아이디가 팬들에 의한 2차 창작물의 중요성을 알렸다면 브레이브 걸스는 무대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일깨운, 사실상 역주행이 아닌 ‘정주행’인 셈이다. (임동엽)

SG워너비 ‘Timeless'(2004)
역시 < 놀면 뭐하니? >는 강력했다. 프로그램에서 부르기만 했을 뿐인데 또 다수 음원차트의 정상에 올랐다. SG워너비가 출연한 이번 방송은 영향력이 더 셌다. ‘Timeless’, ‘내사람: Partner for life’, ‘라라라’, ‘살다가’ 등 여러 곡이 동시에 차트를 휩쓸었다. 톱스타 아이유, 대세 걸 그룹으로 등극한 브레이브걸스도 MBC 예능 < 놀면 뭐하니? >의 정기를 받은 노래들 앞에서 추풍낙엽이 됐다. 특히 ‘Timeless’는 SBS < 인기가요 > 1위 후보로 오르기까지 했다. < 놀면 뭐하니? >는 십수 년 전 나온 노래에 새 생명을 안겨 줬다.

전적으로 방송에 의해 다시 히트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차트에 들어선 노래들은 모두 발매 당시에 큰 사랑을 받았다. 2000년대를 경험하고, 그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세대로서는 SG워너비와 그들의 노래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보컬 그룹이 요즘 얼마 없는 현실도 SG워너비를 돋보이게끔 했다. 가창력이 뛰어난 멤버들이 서로 눈을 맞춰 가며 하모니를 만드는 모습은 많은 시청자에게 근사하고 살갑게 다가갔다. 인기 미디어, 과거를 향한 대중의 향수, 희소한 체제, 번듯한 가창이 합쳐진 힘이 ‘Timeless’를 비롯한 노래들을 한 번 더 유행의 궤도에 들여놨다. (한동윤)

정리 :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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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마빈 게이 < What's Going On > 50주년 특집


음악을 좀 들었다 싶은 사람들은 누구나 마빈 게이의 < What’s Going On >을 얘기한다. 참 쉽고 편하게 언급한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은 거의 다 누구에게 들어본 말이고, 어디선가 본 글들이다. 자기의 경험과 생각이 없이 학습에 의해서 다른 사람이 했던 얘기를 전달하니 멋지고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모타운 음반사의 사장 베리 고디 주니어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정치, 사회, 역사, 환경 등 온갖 무거운 주제를 담론으로 끄집어낸 < What’s Going On >은 마빈 게이의 아티스트적인 고집과 음악인으로서의 열정이 집약된 음반이다.

이즘 필자들 역시 1971년 5월 21일에 발표된 이 음반을 처음부터 쉽고 편하게 듣지 못했다. < What’s Going On >은 그런 앨범이 아니니까. 50년 동안 축적되고 숙성한 20세기의 유물이 과연 21세기에는 어떻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지는지 살펴본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 독특한 드럼소리..

199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흑인음악은 인기가 없었다. 마이클 잭슨, 휘트니 휴스턴, 라이오넬 리치 등 몇몇 가수들과 소수의 알앤비 노래만 라디오에서 선택받았다. 흑인에 의한, 흑인을 위한 진짜 흑인 음악은 늘 찬밥 신세였고 마이너리그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음악 평론가들과 < 월간팝송 >, < 음악세계 > 같은 잡지에서는 < What’s Going On >을 명반으로, ‘What’s going on’을 명곡으로 언급했다. 라디오에 나오지도 않는 노래를 왜 명곡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허세에 찌든 나는 그 LP를 구입했다.

앨범을 듣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유사하게 들렸던 노래들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과 드럼 소리가 독특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Mercy mercy me’, ‘Inner city blues’, ‘Right on’의 통통 튀고 명징한 드럼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는 왜 이런 드럼 사운드를 못 만들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이 드럼 소리는 특별했고 첫 곡 ‘What’s going on’부터 마지막 노래 ‘Inner city blues’까지 유기체처럼 연결된 앨범 구성도 신기했다.

월남전에서 돌아온 친동생한테 직접 들은 전쟁의 참상, 아버지와의 갈등, 모타운 레코드 사장 배리 고디 주니어의 여동생과 행복하지 않은 정략결혼 등 마빈 게이가 겪었던 개인적인 문제들을 알고 나서야 < What’s Going On >의 진가를 깨달았다. 원석은 보석으로 세공됐지만 솔직히 ‘Flyin’ high’와 ‘Save the children’, 두 곡은 지금도 재미없다. (소승근)

진보적 소울을 알려주는 아프로 사운드

마빈 게이의 < What’s Going On >을 처음 접한 건 중학생 무렵이다. 한창 팝을 듣고 있던 터라 ‘명반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던 그 앨범을 지나치기 어려웠고 얼마 후 당대의 사회 문제를 노래했다는 부가 정보를 얻었다. ‘What’s going on’이나 ‘Mercy mercy me’처럼 즉각적으로 귀에 가닿는 곡도 있지만 익숙지 않은 작·편곡 방식에 조금은 당황했다. 이후 친구 녀석 MP3에 들어가 있던 ‘Sexual healing’과 초기작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 최근에 감상한 1976년 작품 < I Want You >로 그와의 연을 이어갔지만 <What’s Going On>’과의 재회는 실로 오랜만이다.

이번에 앨범을 다시 들으며 꽂힌 ‘Right on’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현악기 세션과 플루트, 빨래판 긁는 소리의 라틴 아메리카 전통 악기 귀로를 얹은 7분 30초짜리 즉흥 합주곡이다. 통일된 리듬 아래 놓인 봉고와 콩가 연주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집단성을 드러내고 플루트는 사랑과 사이키델릭을 드리운 1960~1970년대 히피의 정서를 환기하며 ‘True love can conquer hate every time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미움을 이길 수 있다)’라는 노랫말에 힘을 싣는다.

코모도스와 쿨 앤 더 갱 등 어린 시절 흑인음악 하면 자동반사적으로 떠오르던 흥겨운 펑크(Funk)와는 거리가 있고 커티스 메이필드의 <Superfly> 정도가 ‘Right on’의 알싸함을 공유한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노랫말에 반영했던 게이와 메이필드는 소리 체계에서도 경계를 허무는 여러 시도로 시대를 대표하는 진보적 소울 음악가가 되었다. (염동교)


처연한 커버도 시대대변의 명작

겉옷은 물로 젖어 있는 반면 머리 위엔 무언가 하얗게 서려 있는 걸로 보아 촬영 당시 진눈깨비가 내렸던 모양이다.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는 생각에 잠긴 듯한 눈으로 카메라가 아닌 어딘가를 응시할 뿐이다. 배경지식 하나 없이 바라보더라도 앨범 커버 속 흑인 남성에겐 분명 사연이 있어 보인다. 그 주인공이 소울 음악의 대부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엔 이 처연한 사진 한 장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된다.

약소국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강대국 간의 힘겨루기는 숱한 희생자를 낳았다. 전선에서 목숨을 다한 군인은 물론이고 무자비한 학살을 당한 베트남인과 반전 시위 중 총격을 당한 미국 대학생들처럼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사회적 약자들도 있었다. 전쟁으로 피해를 보았던 많은 이들의 눈물은 냉랭한 전황을 대변하듯 하늘에서 얼어붙어 떨어졌다.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걸친 마빈 게이는 이 슬픔의 조각을 닦아내지도 스며들게 하지도 않았다. 에나멜 원단 위에 그 시절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며 애도를 표했다. (정다열)

그루브만으로 소울 R&B의 뿌리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던 시절로 기억한다. 귓속에 찔러 넣은 이어폰엔 롤링 스톤즈와 비치 보이스의 기타 리프가 흘렀고 비틀스를 추앙하던 20살의 나에게 흑인 음악이라고는 스티비 원더, 로린 힐 정도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소위 ‘명반’이라 칭송받는 앨범들을 탐색하는 일에 심취해 취향과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숙제하듯 음악을 소비하기도 했는데 마빈 게이의 < What’s Going On >이 대표적인 사례다. 가벼운 비평적 정보만 습득한 채 온전한 감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터라 당시 총평으로는 ‘신성한 목소리 톤이 주는 안정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발매 50주년에 재차 들었던 이 흑인 음악 바이블은 억지로 채운 지난날의 잔상과는 사뭇 다르다. 먼저 정연한 구조의 콘셉트 앨범 속 스며든 구성품들에 금세 사로잡혔다. 다양한 악기들을 뚜렷하게 솎아내고 도처마다 코러스를 노련하게 배치하는 정갈한 프로듀싱이 지금에서야 와닿았다. 사회적 메시지를 견지하고 미래 환경 이슈마저 예견하는 화자의 비범한 견해와 같은 것들을 제쳐 두고도 듣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내 몸에 형성된 그루브만으로 < What’s Going On >은 소울 알앤비의 뿌리이자 근원지로서 기능을 완수했다.

< What’s Going On >은 장인의 혼이 깃들어 있는 명품 중의 명품으로 대중음악사에 영원히 간직되었다. 어느덧 반세기의 세월을 거쳤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회자할 것이다. < 롤링스톤 > 선정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의 2020년 개정판 1위를 차지하며 더욱 고평가될 여지가 있을지 의문이지만 머지않아 30줄에 접어들어 다시 꺼내 듣는다면 전과는 또 다른 차원의 진경을 보여줄 작품임은 확실하다. (김성욱)

흑인음악의 바이블…롤링스톤 선정 명반 1위

미국의 음악 잡지 < 롤링스톤 >은 2020년 500개의 명반 순위를 업데이트했다. 이 목록은 2003년 처음 발표되었고 이후 2012년과 2020년 총 두 번의 개정을 거쳐왔다. 가장 최근 발표된 순위에서 눈여겨볼 점은 1위였던 비틀스의 <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 >가 24위로 내려가고 6위였던 마빈 게이의 < What’s Going On >이 1위에 올라간 것. 시간이 흘러 더욱 고평가된 작품이라는 것을 보여줬지만 6위에 위치했던 앨범을 8년 만에 1위에 올려놓은 저의가 궁금하다.

이는 보수적인 느낌이 강했던 잡지가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2012년에는 마빈 게이를 제외하면 백인 뮤지션들이 상위 10위권을 차지했지만 개정된 목록에는 흑인 아티스트인 스티비 원더와 로린 힐이 탑텐에 안착했다. 흑인 또는 여성의 인권과 관련된 사례가 문제화되고 있는 현재의 시대적 흐름을 읽은 것이다.

문화는 돌고 돈다. 고전 록 음반의 순위가 하락하고 최근 유행하는 펑크(Funk), 알앤비, 힙합 등 흑인 음악 앨범이 상위권에 올라왔다. 그중 사회 고발적인 가사, 유려한 멜로디, 부드러운 보컬로 흑인 음악의 바이블이라는 명칭을 얻은 마빈 게이가 자연스레 일위에 오르게 된 것. 이로써 명작은 시간이 지나도 명작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김도연)

50년이 흐른 현시점에도 의미를 갖다

마빈 게이의 이름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즐겨 듣던 찰리 푸스와 메간 트레이너의 듀엣곡 ‘Marvin gaye’를 통해서였다. 이때 마빈 게이라는 가수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그의 노래를 직접 찾아 듣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노래 제목 ‘Marvin gaye’가 아닌 실제 마빈 게이의 노래, 그중에서도 명반 1위로 꼽히는 < What’s Going On >을 들어보았다. 발매한 지 50주년을 맞은 앨범이지만 내게는 첫 경험이다.

70년대 흑인 음악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가사와 메시지에 집중하며 감상하는 편이 곡들을 이해하는데 수월했다. 앨범을 관통하는 사회 고발적 메시지는 월남전, 실업, 인종차별, 빈곤과 같은 고통으로 점철된 당대의 참담한 시대상을 들려주었다. 무거움으로 지배된 가사는 부조리를 향한 치열한 분노로 표출되기보다는 그의 호소력 짙은 보컬로 전하는 평화와 공존에 대한 읍소에 가까웠다.

혼돈과 질서를 중재하고자 했던 음악의 의식은 50년이 지난 현시점에도 일갈을 날린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성별, 정치적 신념, 나이,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향한 공격과 비난이 오가는 첨예한 갈등이 들끓고 있다. 총칼을 들고 물리적인 싸움을 벌이지는 않지만 소통과 화합이 이뤄지지 않는 사회는 일촉즉발의 아노미 상태와 다를 바가 없다. 사랑만 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데, 왜 상대방을 짓밟지 못해 안달일까. 무의미한 싸움에 분노하며 울부짖고 서로를 해치는 이들에게 꼭 < What’s Going On >을 들려주고 싶다. (김성엽)

이해할 수 없어도 사랑할 수 있는 앨범

록과 같은 백인 음악이 취향인 필자에게 알앤비와 소울은 접근하기 어려운 장르다. 특히 기타 사운드를 중심으로 확실하고 뚜렷하면서도 선 굵은 멜로디를 선호하는 입장에서 < What’s Going On >에 대해 남은 기억은 ‘What’s going on’을 여는 가사 ‘Mother, mother’ 뿐이다. 그런데도 이 작품을 듣는 이유는 단순하다. 전설이니까. 특정 스타일로 치우치지 않고 대중음악을 공부하기 위해서 챙겨야 할 필수 불가결한 존재이기에.

1960년대 미국의 흑인 사회, 베트남전, 공해 문제 등을 향한 저항 정신을 지구 반대편의 1990년대 생 ‘록 키드’가 이해하기란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웠다. 장르도 친숙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자주 들어 익숙해지면 좋게 들리는 효과 덕에 첫 곡 ‘What’s going on’부터 영적 기운의 ‘What’s happening brother’, 남미 향의 ‘Right on’까지 그래도 음악만은 무리 없이 들었지만 무엇보다 메시지가 중요했기에 늘 반쪽짜리 감상에서 끝났다.

50주년을 기념하는 그의 앨범은 세상을 바꿨지만 아직까지 한 인간의 세계는 뒤집지 못했다. 가장 아끼는 노래가 변함없이 타미 테렐과 함께 부른 ‘Ain’t no mountain high enough’인 이상 이변은 없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그 의미와 해석이 달라지고, 재평가가 이뤄지는 마당에 음반 몇 번 듣는다고 깊은 해석을 할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60주년이 된다고 해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영원히 사랑할 수는 있다. (임동엽)

명반 그 너머의 의미를 지니다

흑인 음악의 발전과 아티스트 권리 주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마빈 게이의 < What’s Going On >이 오늘날 수많은 아티스트에게 귀감이 된 역사적 명반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처음 접하는 이에게 친절을 배제한 채 그저 학술적 설명만을 귀에 피가 날 정도로 반복하기만 한다면 그 흥미가 반감되는 것도 명백하다. 그렇다면 반세기 역사를 감안하면서도 초심자에게 쉽게 다가갈 방법이 있을까. 아마 그 해답은 후세가 마빈 게이를 소비하는 저마다의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퍼블릭 에너미의 척 디(Chuck D.)는 컨셔스 랩 불후의 명반 <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 >(1988)의 탄생 배경을 두고 ‘힙합의 < What’s Going On > 같은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사회적 문제를 다룬 선배의 의지를 본인의 언어로 계승하겠다는 의미다. 다만 진정 세대를 초월한 명반이라면 진중하기도, 때로는 가볍게 다가오기도 해야 한다. 2014년, 미국의 디제이 아메리고 가자웨이(Amerigo Gazaway)가 기획한 기묘한 조합의 장 < Yasiin Gaye > 시리즈를 보자. 마빈 게이와 래퍼 모스 데프(Mos Def) 음악의 매시업이라는 영감에서 시작된 이 앨범은 ‘Inner city travellin’ man’ 같은 독특한 리믹스곡을 발표하는 방향으로 일종의 현대식 변용을 탄생시킨다. 메시지에 국한되지 않은 발상의 전환을 펼친 셈이다.

< What’s Going On >은 범인종적, 범장르적으로도 접근이 가능하다. 블루지한 기타 리프를 감각적으로 녹여낸 존 메이어의 ‘Inner city blues’와 스트록스, 에디 베더, 조쉬 옴므 등이 참여하여 퍼지 톤 사운드를 가미한 ‘Mercy mercy me’ 펑크 커버가 그렇다. 이들은 단순 연주하는 것이 아닌 신선한 해석으로 곡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또한 마빈 게이는 비교적 젊은 뮤지션의 음악에서 카메오처럼 등장하기도 한다. 찰리 푸스는 그의 이름을 딴 ‘Marvin gaye’라는 곡으로 영국 차트 정상을 거머쥐었고,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곡 ‘Yonkers’는 무려 그의 이름을 이용한 파격적인 펀치라인으로 힙합 신의 큰 화제를 가져오기도 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그의 영향권에 존재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가끔은 곧이곧대로 반복 청취만 거듭하는 관습에서 벗어나 다방면으로 바라보고 체득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장준환)

현실의 부조리를 해부한 직관적 가사

1년 전 처음 접한 마빈 게이의 < What’s Going On >은 스펙터클에 익숙한 귀에 심심한 음악이었다. 명반이라면 시대를 뛰어넘은 어떤 보편성이 있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었다. 익숙지 못한 멜로디 대신 직관적인 가사에서 그 답을 찾았다.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단면을 넓게 펼친 가사는 현대까지 맞닿아 있다. ‘What’s going on’은 폭력에 증오로 맞서는 대신 어머니, 형제를 차례로 부르며 개인과 공동체를 연결하고 사랑의 힘에 무게를 싣는다. ‘What’s happening, brother’의 베트남 전쟁, ‘Inner city blues’가 담고 있는 빈민가 흑인들의 일상, ‘Mercy mercy me’가 말하는 환경오염 모두 현실의 부조리와 은폐를 드러내 균열을 가한다.

마빈 게이가 제기한 문제는 여전히 종식되지 않았다. 그래도 공동체의 동력은 BLM 운동으로 이어지며 현대에도 지속되는 일상적 위협을 타파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나타났다. 한 시대의 공감을 얻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50년 동안 수그러들지 않은 힘을 가진 작품이다. 타인인 내가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 앨범을 명반 1위로 선정한 < 롤링스톤 >지의 의도를 어렴풋이 깨닫는다. (정수민)

1970년에 환경문제를 꼬집다

20살, < What’s Going On >을 처음 접하고 가장 먼저 눈길이 간 건 ‘제목’이었다. 대단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표제였다. ‘What’s going on?’. 흔히 안부나 진행되는 상황을 물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마빈 게이의 < What’s Going On >에는 ‘물음표’가 없었다. 해석하면, ‘무슨 일이야?’가 아닌 ‘일어나고 있는 일’이 됐다. “물음이 아닌 대답이라는 뜻일까?” 강한 호기심을 안고 앨범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작품 감상 후, 여러 비평가의 첨언까지 곁들이고 나서야 이 음반이 당대 미국 사회를 직시한 마빈 게이의 ‘진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소울 음악 역사상 최초의 콘셉트 앨범답게 일률적인 편곡으로 수록곡 간의 경계가 무의미했고, 이는 마빈 게이가 바라본 당대의 암면들을 엮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았다. 전쟁의 참상,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 가난과 마약 등 처참한 실상의 내용 중에서도 유독 강하게 다가온 곡은 ‘Mercy mercy me (The ecology)’였다. 빌보드 싱글 차트 4위에 오른 이 노래는 당시의 ‘환경 문제’를 꼬집고 있었다. “파란 하늘은 어디 갔나요? / 방사선 폐기물이 땅 아래에 퍼지고 바다에는 기름이 버려져요.”. 이번 특집 기획을 위해 다시 듣고는, 서울을 뒤덮은 미세 먼지와 최근 불거진 일본 오염수 방류 관련 논란이 자연스럽게 겹쳐져 놀랐다.

반세기 이전 저술된 기록이 지금도 유효한 메시지로 생동한다는 점이 이 걸작을 특별하게 만든다. 작품에서 마빈 게이가 전하고자 한 교훈은 결국 사랑(‘Love’)이다. 음반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총 서른두 번이나 언급하며 그것을 절실히 강조한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참 자비에 목마르다. (이홍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