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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차라리 몰랐더라면,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가사들

판을 구매하거나 라디오를 들어야만 음악을 들을 수 있던 과거에는 해외 곡의 가사를 정확히 알기도 어려웠고 설령 가사를 입수했다 한들 외국어 교육이 보편화되지 않았기에 이를 제대로 해석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팝의 명곡 중 지금까지 잘못된 내용으로 전해져 막연히 소비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뜻을 몰라도 멜로디와 리듬에 몸과 마음을 맡길 수 있다는 사실은 음악의 위대함을 증명하지만, 가사를 확인한 후 차라리 몰랐더라면 하는 감정을 마주하는 게 썩 즐겁지는 않다.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대표적인 노래와 가사를 바로잡아본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Billie jean’
모타운 25주년 공연 당시 공개된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무대 위를 미끄러지듯 유려한 춤선을 뽐내는 그의 발놀림 덕에 노래의 가사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Billie Jean is not my lover’라는 대목 때문인지 ‘Billie Jean’을 사랑 노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사실 이 곡은 클럽에서 하룻밤을 보낸 여성(Billie Jean)이 어느 날 둘 사이에 아들이 있다며 화자 앞에 나타났다는 막장 스토리를 담고 있다.

디스코의 흥취에 더해진 심각한 베이스 라인이 마치 클럽에서 일어난 미제 사건을 그리는 듯하지 않은가. 프로듀서였던 퀸시 존스는 노래 제목이 동명의 테니스 선수를 겨냥하는 것 같다며 제목을 바꿀 것을 권했지만 잭슨이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정연경)

밴 헤일런(Van Halen) ‘Jump’
길을 가다가 고층빌딩 꼭대기에 위태롭게 서 있는 사람을 본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경찰이나 119에 신고하지만 “그래! 어서 뛰어내려!”라고 외치는 미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밑에서 그렇게 외치는 사람은? 그렇다. 자살방조자에 해당한다.

자살하려는 사람에 대한 뉴스를 본 밴 헤일런의 보컬리스트 데이비드 리 로스가 이 내용을 바탕으로 가사를 쓴 ‘Jump’는 밴 헤일런을 상징하는 곡으로 1984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올라 1980년대 팝메탈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노래다.

헤비메탈에 신시사이저 건반 리프의 도입을 유행시킨 ‘Jump’는 이후에 스웨덴의 팝메탈 밴드 유럽의 ‘Final countdown’과 무한궤도의 ‘그대에게’에도 영향력을 과시했다. 그런데 새로운 출발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이 ‘자살방조 곡’을 1월 1일이나 새로 시작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첫 곡으로 튼다면 청취자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소승근)

엘튼 존(Elton John) ‘Daniel’
밴조와 멜로트론으로 잔잔하게 시작하는 발라드에 사람 이름인‘ 다니엘’을 곡 이름으로 쓰고 있어 이 노래가 단순히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오해하기 쉽다. 실제로 엘튼 존의 영원한 작사 짝꿍 버니 토핀은 한 인터뷰에서 이 노래가 본인들이 쓴 곡 중 가장 많이 곡해된 노래라고 말하기도 했다.

1973년 베트남 전쟁의 막바지 총격이 극에 달했을 때 쓰인 곡으로 버니 토핀이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부상당한 군인의 기사를 읽고 노랫말을 적었다. 발매 당시 우울한 서사를 품고 있단 이유로 싱글 커트가 거부되기도 했지만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의 의지로 빛을 보게 됐으며 본국인 영국에서 4위, 미국의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2위란 높은 성과를 거머쥐었다. 가사를 알면 더 애절하고 구슬픈 역사를 담은 발라드다. (박수진)

테리 잭스(Terry Jacks) ‘Seasons in the sun’
자끄 브렐의 샹송 ‘Le moribond’을 영어로 번안한 곡으로 몇 차례의 리메이크에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73년에 캐나다 가수 테리 잭스에 의해 드디어 빛을 발했다. 경쾌한 리듬과 ‘태양’이 들어간 제목은 왠지 모르게 햇볕이 내리쬐는 따스한 날을 연상케 한다. 국내에서는 특히 웨스트라이프의 버전이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가사는 죽음 앞에 있는 남자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형수가 과거를 회고하며 후회하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으나 더 깊이 파고들면 막장 그 자체다. 여기에는 가장 친한 친구와 아내가 바람을 피우면서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려는 남자의 절절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외국에서도 이 노래를 장례식장에서 트는 웃지 못할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임선희)

미카(MIKA) ‘Grace kelly’
명랑한 반주와 ‘Why don’t you like me?’를 되풀이하는 가사 때문에 발랄한 사랑 고백 노래로 오해하기 쉽지만 이 노래는 아주 반항적이다. 데뷔 전 한 음반사에서 ‘사람들이 좋아하게끔 평범하게 음악을 하라’며 퇴짜를 맞고 미카가 화가 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빚은 트랙 ’Grace Kelly’. 자신의 예술적 개성을 침해받는 게 못마땅했던 그는 곡에서 할리우드 스타로서, 모나코의 왕비로서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숱한 잡음과 고독한 궁중 생활에 시달리던 그레이스 켈리에 자신을 빗댄다.

‘그레이스 켈리처럼 되려고 했죠 / 하지만 그녀는 너무 슬퍼 보이더군요’라는 문장처럼 노랫말 곳곳에는 켈리를 향한 동정과 자신의 창작 자유를 향한 갈망이 나타나 있다. 다채로운 매력을 감추지 못하는 그에게 ‘평범하게 음악 해’라니! 결국 신인 미카의 당찬 반항에 대중은 응답했고 노래는 영국 싱글 차트 정상에 올랐다. (이홍현)

톰 존스(Tom Jones) ‘Green, green grass of home’
열차에서 내려 마주한 고향. 푸른 잔디가 펼쳐진 아름다운 고향 위 예전 그대로의 집과 가족이 나를 반기고, 사랑하는 여인 메리가 나를 맞으러 달려온다. 아, 꿈같은 삶이여… 그러나 그것이 정말 꿈이었을 줄이야. 그러나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칙칙한 벽 뿐, 나는 곧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사형수다. 부디 이 고통스런 삶이 끝나면, 고향의 푸른 잔디밭 아래 영원히 눈을 감은 채 잠들 수 있기를…

조영남은 1960년대 인기 절정의 바리톤 보컬 톰 존스(Tom Jones)의 ‘Delilah’와 ‘Green green grass of home’을 취입하며 그에게 없던 중후한 매력을 더하고자 했으나 후자를 옮긴 ‘고향의 푸른 잔디’는 원곡의 비극을 거세하고 목가적인 분위기만 강조하며 지금까지도 한국 팬들에게 많은 오해를 불러왔다. 1965년 컨트리 가수 포터 와고너(Porter Wagoner)가 처음 부른 이 불멸의 히트곡은 엘비스 프레슬리, 조안 바에즈 등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거친 걸작이다. 중후한 목소리로 씁쓸하게 이야기를 읊어나가는 톰 존스의 버전이 그 중 으뜸으로 뮤지션을 대표하는 싱글이 됐다. (김도헌)

나나 무스꾸리(Nana Mouskouri) ‘Plaisir d’amour(사랑의 기쁨)’
자신의 모든 걸 바칠 정도로 사랑했던 사람이 나를 떠나 다른 연인을 찾아가는 상황에 희열을 느꼈다면 모르겠지만, 변해버린 실비를 그리워하며 아파하는 화자를 생각해보면 ‘Plaisir d’amour(사랑의 기쁨)’이란 제목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시인 장 피에르 클라리스(Jean-Pierre Claris de Florian)의 시 구절에 프랑스 작곡가 마르티니(Jean-Paul-Égide Martini)가 음을 붙인 가곡 ‘Plaisir d’amour'(1784)의 이야기다. 국내에선 1971년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가수 나나 무스꾸리가 발매한 앨범 의 수록곡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목소리로 그려낸 ‘사랑의 기쁨’이란 선율은 이름과 함께 한국의 팬을 현혹했고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아름다운 순간에 떠오르는 대표적인 음악으로 기억된다. 2001년 개봉한 <봄날은 간다>의 이영애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영화 속 두 명의 이별 감정을 정제하기도 한 ‘Plaisir d’amour(사랑의 기쁨)’. 비록 희망적인 결말은 아니지만 ‘사랑의 기쁨은 한순간이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다’고 말하는 노랫말처럼 곡의 아련한 감성과 멜로디는 시대를 초월해 마음에 머물렀다. (손기호)

U2 ‘New year’s day’
새해맞이가 마냥 희망차란 법은 없다. 세계가 냉전으로 신음하던 1980년대에 발표된 ‘New year’s day’는 ‘새해가 와도 아무것도 변치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을 표현한다.

보노는 당시 폴란드에서 내려졌던 계엄령과 ‘자유 노조 연대’의 수장 레흐 바웬사를 떠올리며 가사를 썼다고 한다. 비유하자면 이육사의 ‘광야’나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결이 비슷한 정서를 가진 곡이 영국 싱글차트 10위, 빌보드 53위에 오르며 U2의 첫 히트곡이 된 셈이다. 공포와 억압에 대한 내용이 당시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막연히 새해 첫날을 축하하며 듣자니 숙연하지 않은가. (황인호)

배리 매닐로우(Barry Manilow) ‘Copacabana’
음악과 정열의 해변, 코파카바나. 배리 매닐로우의 ‘Copacabana‘는 브라질을 배경으로 한 음악이니만큼 흥겹고 신나는 라틴의 향연이다. 가사에서 등장하는 ‘메렝게’라는 라틴 리듬에 사용되는 탕부르(북의 종류)로 연주가 시작되면, 정신없이 몸을 맡긴 채 춤추고 싶어지는 열정적인 삼바가 시작된다.

낭만적인 분위기로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가사는 코파카바나의 어느 클럽에서 일어난 사랑의 발화와 비극적인 결말을 노래한다. 쇼걸 로라가 총기사건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잃은 것. 노래는 30년이 지난 1978년으로 이동해 늙어버린 로라를 묘사한다. ‘Now it’s a disco, but not for Lola.‘ 세상은 더이상 라틴이 아닌 디스코에 열광하며 로라는 젊음도 잃고 사랑도 잃었다. (조지현)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 ‘West end girls’
노래는 런던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인 웨스트엔드와 극빈층 노동자들이 주로 살던 이스트엔드를 번갈아 언급하고, 여러 대조적인 장면을 엮음으로써 빈부격차 문제를 넌지시 꼬집었다. 하지만 서쪽 끝에 사는 소녀랑 동쪽 끝의 소년을 되풀이하는 가사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이 국제결혼 얘기로 오해하곤 했다.

프로듀서 바비 올랜도와 작업해 1984년에 발표한 오리지널 버전은 히트하지 못했으나 이듬해 레이블을 옮기고 새로운 프로듀서와 만든 두 번째 버전이 큰 인기를 얻어 영국과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랐다. 뉴 스쿨 힙합과 프리스타일의 퓨전에서 잔잔한 신스팝으로 바뀐 것이 펫 샵 보이즈에게 성공을 안겨 줬다. (한동윤)

알버트 해먼드(Albert Hammond) ‘For the peace of all mankind’
추억의 올드 팝으로 아직까지도 꾸준히 회자되는 알버트 해먼드의 ‘For the peace of all mankind’ 또한 가사가 잘못 알려진 팝송 중 하나다. ‘모든 이들의 평화를 위하여’라는 인류애 가득 담긴 제목과 어딘가 호소하는 듯한 절절한 목소리. 많은 이들이 이 곡을 세계 평화 메시지가 담긴 노래로 생각했지만 사실 곡은 하룻밤을 보낸 상대를 잊지 못해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다. 개인의 연정에 ‘인류의 평화’라니. 인연을 떠나보낸 아쉬움에 흔들리는 ‘평정’을 범지구적 크기로 표현한 애원이 혼란을 가중했다. (장준환)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Radio-activity’
‘가이거 계수기(Geigerzähler)’, ‘전파(Ätherwellen)’, ‘트랜지스터(Transistor)’… 1975년 독일의 4인조 혁신가 크라프트베르크를 접한 팬들은 전기 공학 서적같은 < Radio-Activity >에 매료됐다. 그중 으뜸은 역시 ‘Radio-activity’, 방사능이었다. 신비로운 나레이션과 영롱한 전자음, 모스 부호가 산업 시대 대기에 부유하는 방사성 물질(Radioactivity)과 전파(Radio)를 한데 묶었다.

‘Radio-activity’는 역사의 흐름 속 끊임없이 노랫말을 바꿔가며 스스로 의미를 확충해나갔다. 처음에는 단순히 겹치는 단어를 활용한 언어 유희 정도에 그쳤으나, 1981년 싱글 커트된 이후 방사능 사고가 일어난 “체르노빌, 해리스버그, 셀라필드, 히로시마”를 직접 언급하며 반핵(反核) 운동을 상징하는 송가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이후 가사는 “체르노빌, 해리스버그, 셀라필드, 후쿠시마’. 2019년 내한 공연 때 그룹의 일원 랄프 휘터가 “이제 그만 방사능”을 선명히 외치며 곡의 진의를 선명히 전파했다. (김도헌)

폴리스(The Police) ‘Every breath you take’
대다수는 이 노래를 감미로운 사랑노래라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잠깐 가사를 음미해보자.

당신이 숨 쉴 때마다, 당신의 움직임마다, 나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을 거야

살짝 느낌이 싸해지지 않는가? 외국에서 결혼식 축가로도 쓰이는 것과 달리 이 노래는 스토커의 시선으로 쓰인 무시무시한 곡이다. 보컬과 연주가 너무 매혹적이었다는 것이 문제. 이 노래를 샘플링한 퍼프 대디의 ‘I’ll be missing you’의 메가히트도 본 의미가 흐려진 원인이다.

스팅의 이혼 소식이 들려오고 팀 분열까지 본격화되던 시절 발표된 곡으로 1983년 빌보드 싱글차트 8주 1위에 이어 연말결산에서도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을 제치고 최정상에 올랐다. 조금 오해가 있긴 했지만 밴드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넘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황선업)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Born in the U.S.A.’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과 민주당의 월터 먼데일이 격돌한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승리를 거둬 재선에 성공했다. 이때 보수진영인 공화당에서 선거 캠페인 송으로 선택한 노래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Born in the U.S.A.’였다.

‘그들이 내게 총을 주고 낯선 땅으로 보냈지. 황인종을 죽이라고. 도망칠 곳도, 갈 곳도 없어. 난 미국에서 태어났어. 나는 미국의 멋진 아빠야.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이 가사만 봐도 미국 대선에 사용할 곡으로 적절하지 않았지만 공화당은 ‘미국 태생’이라는 제목을 강조해 노래의 내용을 송두리째 무시하고 지워버렸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1984년에 발표한 동명의 앨범에서 3번째 싱글로 커트되어 빌보드 싱글차트 9위까지 오른 ‘Born in the U.S.A.’의 그 억울함은 맥스 와인버그의 통렬한 드럼이 대신 풀어준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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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ential Prince 20

“(세상에는) 많은 왕이 있다. 하지만 왕자는 단 한 명만 존재한다.” 프린스가 헌액된 200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서 앨리샤 키스는 이 말로 헌사의 첫 운을 떼었다. 팝 세계가 허락한 단 한 명의 왕자, 프린스는 수많은 명작으로 많은 이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했다.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남겼던 작품들 가운데서 스무 곡을 뽑았다.

I wanna be your lover (1979, Prince 수록)

프린스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린 노래. 펑크(funk)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이 노래에서 그는 비지스의 영향을 받아 가성으로 곡을 애무하고 위무한다. ‘Forget me knots’로 유명한 흑인 여가수 패트리스 루센을 위해 작곡했지만 거절당한 ‘I wanna be your lover’는 당시 미국의 클럽에서 먼저 인정을 받아 프로펠러를 달고 1979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11위를 기록했고 알앤비 차트에선 정상을 차지했다. 프린스가 광기를 드러내지 않은 비교적 평범한 디스코 펑크(funk) 곡이지만 그의 위대한 역사가 시작된 것임을 알린 명곡이다. (소승근)

I feel for you (1979, Prince 수록)

소울 여가수 샤카 칸이 1984년에 발표해서 빌보드 3위를 차지한 ‘I feel for you’가 그래미에서 최우수 알앤비 노래 부문을 수상했을 때 그 트로피의 주인공은 바로 프린스였다. 그가 1979년에 발표한 원곡을 샤카 칸이 멋들어지게 리메이크했기 때문. 프린스의 오리지널은 디스코와 펑크의 중간 접점에서 중용의 미덕을 발휘한 흙속의 진주였다. 이 노래의 진가를 알아본 많은 가수들, 매리 웰스와 마이클 잭슨의 누나 레비 잭슨 그리고 포인터 시스터스 등 여러 아티스트가 리메이크했지만 래퍼 멜르 멜과 스티비 원더가 하모니카로 조력을 보탠 샤카칸의 버전으로 드디어 빛을 보았다. (소승근)

Dirty mind (1980, Dirty Mind 수록)

1980년도에 발매된 세 번째 정규앨범의 타이틀이다. 펑크(funk)와 알앤비 장르를 바탕으로 그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감없이 표현한 곡으로 빌보드 알앤비 싱글차트에서 65위를 차지했다. 음란한 마음을 뜻하는 ‘Dirty mind’라는 제목과 ‘우리가 어디에 있던 누가 우리 주변에 있던 상관없어,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난 그저 네가 아래에 눕길 바랄 뿐이야’ 라는 가사내용은 본능에 충실한 그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보컬과 사운드의 연합은 그러한 메시지를 한층 강화한다. 리듬을 타며 반복되는 신디사이저의 멜로디,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여성이 부르는 듯한 매혹적인 미성은 외설스러움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중반부를 지나면서 노래는 절정에 이른다. 보컬의 부르짖음과 동시에 커지는 기타리프의 확장은 인간 본연의 쾌감을 자아낸다. (현민형)

When you were mine (1980, Dirty Mind 수록)

< Dirty mind >의 수록곡으로 한때 신디 로퍼가 커버하기도 했던 ‘When you were mine’. 노골적인 첫 번째 트랙 ‘Dirty mind’의 거침없던 프린스는 어디 갔을까. 뒤이어 등장하는 남자는 180도 변했다. 돈이든 옷이든 모든 것을 헌신했던 연인의 외도에 쿨하게 ‘I don’t care’로 받아치다가도 돌연 순애보로 돌변해 고백한다. 요동치는 마음을 표현할 길은 음악뿐 중반부를 넘어 설쯤 두서없이 연주되는 신시사이저는 마치 요란한 감정을 그려낸 듯 자유분방하다. 베이스와 드럼으로 만든 리듬 위에 신스사운드를 맛깔나게 곁들인 곡은 사차원 아니 그 이상의 세계관을 가진 뮤지션의 흔적이 짙게 베었다. 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괴기했지만 그래서 더 특별했던 그는 보라색 빗속으로 사라졌다. (박지현)

Do me, baby (1981, Controversy 수록)

며칠 전만 해도 그는 지구상에 존재한 가장 섹시한 남자였다. 영국의 가디언(The Guardian)지는 ‘프린스는 섹스 그 자체였다’라며 그를 회고했고, 심지어는 유명 포르노 사이트 폰허브(Pornhub)는 ‘하늘이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를 데리고 갔다’라며 Porn의 P를 프린스를 상징하는 보라색 마크로 교체하며 애도를 표했다. 157cm의 왜소한 체구와 우람한 근육 하나 없는 그가 세계적인 섹스 심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는 여성을, 섹스를 다룰 줄 아는 뮤지션이었기 때문이다. < Controversy >에 수록된 ‘Do me, baby’에서 그는 부드럽게 들이미는 신시사이저와 피아노 위에 전혀 야하지 않은 단어와 문장들로 야한 말을 쏟아내는데, 어떻게 하면 이렇게 감미롭고 고급질 수 있을까. ‘프린스는 지구상의 모든 여자를 꼬실 수 있다.’라는 말은 과장 섞인 허풍이 아니다. (이택용)

1999 (1982, 1999 수록)

< Purple Rain >으로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기 전인 1982년에 발표한 앨범 < 1999 >의 타이틀곡이다. ‘California dreamin”으로 유명한 포크 그룹 더 마마스 & 더 파파스의 넘버원 싱글 ‘Monday Monday’의 도입부에서 힌트를 얻은 신시사이저 건반 리프가 유명한 ‘1999‘는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경쟁에 대한 공포를 세기말 분위기에 투영했지만 프린스가 주조한 펑키(funky)한 분위기에 그런 진지함은 희석되었다. 하지만 덕분에 사람들은 ‘1999‘를 좋아했고 필 콜린스 역시 자신의 히트곡 ‘Sussudio’에서 ‘1999‘의 건반 연주를 따라하며 프린스의 팬임을 드러냈다. (소승근)

Little red Corvette (1983, 1999 수록)

팝의 영원한 왕자님이 데뷔 때부터 마냥 잘나갔던 것은 아니다. 1979년 ‘I wanna be your lover’로 처음 성공을 맛본 뒤 프린스는 3년 넘게 차트에서 침묵했다. 짧지 않은 정적은 1983년 ‘Little red Corvette’가 빌보드 싱글 차트 6위에 오름으로써 비로소 깨졌다. 노래는 프린스 최초의 빌보드 톱10 싱글이었으며 이후 프린스가 대중음악계의 슈퍼스타로 성장하는 디딤판이 됐다.

노래의 포인트는 후렴이다. 읊조리듯 낮게 부르는 버스(verse)를 지나 후렴에서 목소리가 커진다. 이 부분의 멜로디는 단번에 인식될 만큼 명쾌하다. 신시사이저도 선명하게 톤을 드러낸다. 간주와 세 번째 후렴에서 선두에 서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곡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한다. 마지막에 자리하는 아득한 스캣 애드리브는 노래에 관능미와 간절한 뉘앙스를 부여했다.

선율과 편곡이 대중의 입맛에 맞았지만 ‘Dirty mind’, ‘Head’ 등 이전에 발표한 노래들보다 표현이 덜 노골적이어서 많은 이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 (한동윤)

When doves cry (1984, Purple Rain 수록)

1999 >로 대중에 성큼 다가간 프린스는 자전적 영화 < Purple Rain >과 동명의 앨범으로 최전성기를 맞았다. 결정타는 영화감독의 요청으로 뒤늦게 만들어진 ‘When doves cry’였다. 명쾌한 구성과 중독적 비트가 댄스 본능을 자극했고, 낭랑한 신시사이저는 시종일관 귀를 간질였다. 특히 평범함을 거부하며 과감히 베이스 라인을 제거한 구조가 혁명적이었다. 베이스 없이 만들어낸 근사한 댄스 리듬에 대중은 환호했다. 차트 폭발력 또한 상당했다. 노래는 프린스의 첫 번째 빌보드 차트 1위 곡이자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 됐고, 이후 많은 매체의 서로 다른 ‘가장 위대한 노래’ 리스트에도 빠짐없이 이름을 올렸다. 타고난 천재성을 마음껏 발휘한 시대의 명곡. (정민재)

The glamorous life (1984, 쉴라 이(Sheila E.) 곡, The Glamorous Life 수록)

프린스는 다른 가수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기부(?)했다. 뱅글스의 ‘Manic Monday’, 시나 이스턴의 ‘Sugar walls’, 마티카의 ‘Love… thy will be done’, 알리샤 키스의 ‘How come you don’t call me’, 쉴라 이(Sheila E.)의 ‘The glamorous life’ 모두 그가 만들어준 곡이다. 여름에도 밍크코트를 입고 다니며 돈 많은 남자를 꼬시려는 여자를 소재로 한 이 노래는 자연스런 멜로디와 리듬을 극대화한 쉴라 이의 퍼커션 연주가 찰떡궁합을 과시한 댄스 명곡이다. 재즈와 라틴 음악도 호흡하는 ‘Glamorous life’는 9분짜리 앨범 버전을 들어야만 프로듀서로서의 진가를 발휘한 프린스의 다재다능함을 확인할 수 있다. 프린스, 그는 존경받아야 한다. (소승근)

Darling Nikki (1984, Purple Rain 수록)

‘난 니키라는 여자를 알았지/ 섹스 프렌드라고 할 수 있어/ 난 그녀를 호텔 로비에서 만났지/ 잡지를 보면서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있었어…’ < Purple Rain > LP의 A면 마지막 곡에는 프린스 하면 떠오르는 ‘외설’의 딱지가 붙었고, 이 노래를 비롯한 몇몇 퇴폐적인 노래들 때문에 티퍼 고어 여사 주도의 대중가요감시단 설립(PMRC) 법안이 통과됐다. 1980년대 대중문화 논쟁에서 거의 생필품처럼 취급된 ‘섹스’와 ‘섹슈얼리티’ 소재와 관련해 빠지지 않던 곡이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비판도 가해지지만 프린스가 이러한 관능적 성을 노골화하고 심지어 행동으로 옮긴 것은 보수적 성적 의식에 대한 도발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지닌다. 이 시기부터 팝 담론을 주도하는 의제는 섹스였다. (임진모)

Let’s go crazy (1984, Purple Rain 수록)

프린스하면 ‘Purple rain’이지만 같은 앨범에 히트곡 ‘Let’s go crazy’도 자리한다. 발랄한 건반과 원초적인 보컬은 듣는 이를 미러볼 조명이 반짝이는 댄스홀로 데려 간다. 무엇보다 곡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준 것은 백밴드 더 레볼루션(The Revolution)과 함께 한 기타다. 기존 소울음악에 일렉 기타를 섞어 특별함을 높였고, 록을 선호하는 백인들까지 그의 보랏빛 음악 안에 끌어들였다.

화려한 에너지와 마지막에 폭발하는 구성은 프린스의 빠른 곡에서 등장하는 특징들이다. 용솟음치는 기타 연주는 후대 일렉트로 펑크(funk)에 영향을 주며 그를 많은 가수들이 존경하는 이로 기억되게 한다. 자극적인 제목과 가사로 국내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프린스의 넘버원 싱글 5곡 중 하나로 꼽힌다. (정유나)

Purple Rain (1984, Purple Rain 수록)

당대에 흑인 뮤지션들 가운데 왜 유독 그에게만 록 팬들의 편애가 잉태했는지를 생생히 말해주는 8분45초짜리의 중후한 록 대작이자 걸작이다. 앞의 싱글 ‘When doves cry’와 ‘Let’s go crazy’이 모두 넘버원에 등극하면서 앨범이 한참 물이 올랐을 때 3번째 싱글로 나와 전미차트 2위에 오르는 예상 밖 기염을 토했다. 이 노래가 록 팬 베이스를 구축하면서 마이클 잭슨과는 달리 록 쪽의 성원이라는 특전이 프린스에게는 주어진 것이다. 칼 같은 프린스의 기타와 입체적인 느낌의 스네어 드럼을 시작으로 시종일관 록의 사나운 공습이 무자비하게 펼쳐진다. 흑인 알앤비와 펑크 뮤지션이 하는 곡으로 보기는 어렵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 잔혹한 반복은 거의 우기기 수준이다. “이렇게 하는데도 안 좋아할 거야?” 프린스의 매력은 이와 같은 대중모독 수준의 생고집이다. (임진모)

I would die 4 u (1984, Purple Rain 수록)

실험적인 사운드와 매력적인 멜로디로 가득한 명작 < Purple Rain >의 트랙 리스트에는 버릴 곡이 하나 없다. ‘I would die 4 u’ 역시 그러한 작품이다. 잘게 쪼개 놓은 심벌 비트, 뉴웨이브/신스팝 식 신시사이저 라인, 프린스는 미니멀한 베이스로 근사한 일렉트로 펑크(funk) 사운드를 구축하고, 사랑이나 신념 혹은 구도의 메시지처럼 보이는 가사에 팝 멜로디를 엮어 훌륭한 노래를 완성했다. 수록곡 라인업의 후반부에 등장해 프린스의 천재성을 확인시키는 ‘I would die 4 u’는 빌보드 싱글 차트 8위에 오르기도 했다. 곡의 사운드를 다음 트랙에 위치한 ‘Baby I’m a star’의 도입부가 이어받는다. (이수호)

Pop life (1985, Around the World In A Day 수록)

‘세기의 예술가 프린스’를 대표하는 상징과도 같았던 명작 < Purple Rain > 이후,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그는 일곱 번째 스튜디오 앨범 < Around the World In A Day >(1985)를 세상에 내놓았다. 음반의 중심부에 위치한 ‘Pop life’는 너무 쉬워서 오히려 어려운 곡이다. 도입부부터 명료한 베이스 라인과 피아노 코드 워크가 규칙적으로 등장하고, 그것이 끝까지 유지되면서 외형으로는 크게 발전되지 않는 듯하다. 제목과 동명의 가사가 후렴구에서 훅(hook)을 만들지만 썩 공격적이지도 않다. 그런데도 곡에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는 못 견디게 할 펑크(funk)의 호르몬이 뿜어져나온다. 기술 아닌 기술, 그만이 할 수 있는 작법일 테다. 귀를 때리는 데시벨과 끝 모르고 상승하는 전자음은 필요치 않다. ‘댄스 천재’ 프린스는 준비 동작 하나 없이, “Dig it” 한 마디로 세계를 ‘팝’하게 만들었다. (홍은솔)

Kiss (1986, Parade 수록)

줬다 뺏은 경우라 할까. 그의 천부적인 창작력은 수많은 다른 뮤지션에게 은총이 되기도 하였지만 ‘Kiss’는 이런 훈훈한 경우와는 다르다. < Around The World In A Day >가 발매되기 직전, 프린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탄생한 펑크(Funk) 밴드 마자라티(Mazarati)는 프린스에게 곡 하나를 부탁했고, 이 자비로운 스승은 그날 바로 어쿠스틱 데모를 만들어주었다. 밴드와 프로듀서 데이비드 리브킨(David Z)은 밤을 새가며 데모 버전을 완전한 악곡으로 개조하였고, 탈바꿈한 곡을 들은 스승은 자신이 만든 곡에 숨겨져 있던 잠재력에 깜짝 놀라며 결국 다시 빼앗아갔다. 이러한 웃지 못 할 탄생 비화가 숨어있는 ‘Kiss’는 후에 < Parade >에 수록되었고, 그의 세 번째 빌보드 넘버원 싱글이 된다. 매끈하게 정제된 앨범의 버전도 물론 좋지만, 거친 맛이 살아있는 7분짜리 Extended Version을 추천한다. (이택용)

Sign ‘o’ the times (1987, Sign ‘O’ The Times 수록)

프린스는 사회참여적인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조금은 블루지한 이 펑크(funk) 넘버에는 에이즈와 약물 중독, 갱, 로켓 발사, 핵 전쟁과 같은 당대의 위험 징후(sign of the times)에 대해 관조적으로 써내린 텍스트가 담겨 있다. 묵직한 베이스, 그루비한 펑크 기타, 신시사이저로 만든 효과음으로 멋진 사운드를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가사까지 함께 만들어낸 셈이다. 프린스의 방대한 디스코그래피 가운데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씨디 두 장짜리 마스터피스, < Sign O The Times >의 포문을 이 뛰어난 싱글이 연다. (이수호)

If I was your girlfriend (1987, Sign ‘O’ The Times 수록)

레드와 블루를 섞은 퍼플처럼. 여성과 남성을 뒤섞은 ‘양성 젠더’는 프린스에게 가장 두드러지는 색깔이다. 줄곧 ‘러브 심볼’이나 파격적인 외모를 선보여왔던 그지만 이 노래는 아예 여성 자체가 되어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옷을 입혀주고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지극히 여성스러운 가사를 고음과 교성으로 노래 한다. 사실 외향의 성(性)을 바꾸는 것 보다 보컬의 색을 바꾸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그는 전자적인 장치로 자신의 성대의 성을 완전히 바꿔버렸고 덕분에 이 노래에서는 독특한 야릇함과 교태가 가득하다. 이 노래를 정말 여자가 불렀으면 어땠을까. 이런 궁금증은 1994년 TLC가 2집 < CrazySexyCool >에서 풀어준다. (김반야)

U got the look (1987, Sign ‘O’ The Times 수록)

롤링 스톤 선정 역대 최고의 앨범 500선 중 93위에 오른 < Sign ‘O’ The Times >의 두 번째 장을 열며 싱글 차트에서 가장 선전한 전형적 미니애폴리스 사운드 곡. 기계적 드럼머신에 대비되는 인간적 퍼커셔니스트 쉴라 이와 함께 곡을 함께 영롱하게 이끌어나가는 보컬리스트 쉬나 이스턴(Sheena Easton) 둘 다 프린스와 한 때 염문설을 뿌린 여성들이다. 음악적 천재성을 내면에 잠식시키지 않고 맑은 하늘에 뜬 무지개처럼 항시 주위에 흩뿌린 그이기에 맑은 날이든 보랏빛 비 내리는 날이든 불쑥 떠오를 것 같다. 편히 쉬시길. (이기찬)

7 (1992, Love Symbol 수록)

이름대로 산다고 했던가. 제목처럼 이 노래는 1993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7위를 기록했다. 1960년대 소울 가수 오티스 레딩과 칼라 토마스의 듀엣곡 ‘Tramp’를 샘플링한 ‘7’은 신곡이었지만 마치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 멜로디로 대중을 포섭했다. 그의 다른 노래들처럼 범상치 않은 코드워크를 가지고 있지만 친숙하게 다가가는 그만의 작곡, 편곡 문법은 ‘7’에서도 고스란히 꿈틀댄다. 프린스의 음악은 살아있는 생명체이며 깨어있는 소울이다. (소승근)

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 (1994, The Gold Experience 수록)

1993년 어느 날 팝의 황제는 뺨에 ‘SLAVE’를 적고 대중 앞에 나타난다. 그는 거대 음반사와 법정공방을 다투며 자신을 노예로 표현했다. “워너 브라더스는 내 이름을 빼앗아 갔다. 그들은 ‘프린스’를 이용해 돈벌기 바빴고, 난 그들의 돈줄이나 다름없었다.” 아티스트의 독립성과 자유를 외치던 그는 자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음할 수 없는 기호’로 이름을 바꾼다. 여성기호와 남성기호를 합친 듯한 이 상징(‘러브 심볼’이라고도 불린다.) 하에 발매된 첫 싱글이 바로 ‘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이며 이 곡은 빌보드 싱글차트 3위의 쾌거를 이뤄낸다.

느린 템포와 서정적 가사, 그리고 듣기 좋은 멜로디는 완벽한 발라드의 공식이 아닐까. 기타와 건반 위를 유려하게 훑는 팔세토 창법은 물론, 곡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저음 보컬은 가사에 진중함을 더하며 매력을 배가한다. 사실 아름다운 상대를 찬양하는 이 노래는 프린스가 사랑한 댄서 메이트 가르시아를 향한 세레나데지만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매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여성들을 뮤직비디오에 등장시키며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외적 아름다움이 아닌, 여성 그 자체를 사랑한 프린스의 희망적인 러브송.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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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10구절로 프린스 이해하기

4월21일 전해진 프린스의 돌연사는 우리에게 데이비드 보위의 사망에 못지않은 충격을 던져주었다. 서구 언론은 2016년을 이미 비극의 해로 규정하고 있다. 프린스(Prince)는 천재와 기인의 평판 아래 1980-90년대 전성기를 누리면서 무수한 명곡과 명반을 남겼다. 그의 삶과 의식을 축약하는 10개의 구절을 통해 그의 위대한 음악발자취를 더듬어보기로 한다.

슈퍼 펑키(Funky) 판타지

그의 음악은 흑인음악의 역사에 걸친 모든 장르의 요소들이 뭉개진 것 같으나 엄연히 개체적 느낌이 살아있다. 미국의 정체성인 ‘샐러드 보울’을 닮았다. 이게 프린스 음악의 핵심이며 크로스오버라는 용어는 어쩌면 그의 음악을 두고 써야할 말이다. 따라서 그의 음악에 대한 통상적인 장르 분류는 의미가 없다. 딱히 뭐라고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살아 숨 쉬는 개체 가운데 펑크(Funk)의 느낌이 가장 먼저 들어온다. 전성기 시절의 ‘1999‘, ‘Dirty mind’, ‘Raspberry beret’, ‘Sign ‘o’ the times’ 등 대부분 곡들이 펑키 사운드가 제공하는 탄력적, 입체적이며 핫한 리듬의 환희다. 프린스 위 계보에 ‘제임스 브라운’과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가 있다는 규정은 그가 크로스오버 속에서도 펑크가 지향한 아프로(Afro) 아이덴티티를 견지했음을 의미한다.

“록 인구도 그를 사랑했다!”

전성기에 결성한 ‘레볼루션’ 그리고 이어서 ‘뉴 파워 제네레이션’이란 밴드는 멜로디와 코드워크 이상으로 펑크 리듬을 밀어대려는 욕구의 산물이다. 그러다 보니 지향이 비슷한 록과 부담 없이 손을 잡게 된다. 프린스 음악은 곧 펑크 록(Funk rock)이다. 하지만 이 록의 터치가 상대적으로 짙은 ‘블랙’ 감성을 가리는 결과를 초래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언젠가 “난 하나의 특정 문화풍토에서 성장하지 않았다. 난 펑크도 아니고, 리듬 앤 블루스 가수도 아니다. 백인이 많은 미네소타 주의 중산층 출신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반드시 흑인감성에만 충절하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본인이 기타리스트였기에 더욱 확연히 드러난 록의 감성으로 인해 1980년대, 그 펄펄 날던 시절에 프린스는 마이클 잭슨보다 훨씬 더 많은 록 인구를 규합했다. 그것을 증명하는 단 하나의 곡이 다름 아닌 ‘Purple rain’이다.

마이클 잭슨의 라이벌, 프린스

상기한대로 록 팬들의 선택은 마이클 잭슨이 아닌 프린스였다. 1980년대를 놓고 봤을 때 마이클 잭슨이 비틀스라면 프린스는 롤링 스톤스였다. 동갑인 둘을 놓고 음악 팬들 사이에도 암암리에 경쟁의식이 작용했다. 빌보드차트는 그 시대를 정리하면서 전체 1위를 마이클 잭슨(총 2080점), 2위를 프린스(2019점)로 집계했다. 별 차이나지 않는다. 프린스 같은 까칠하고 훨씬 덜 대중적인 음악이 등위(等位)를 누렸다는 것은 경이적이다. ‘When doves cry’, ‘Let’s go crazy’, ‘Kiss’, ‘Batdance’, ‘Cream’ 등 무려 다섯 곡이 빌보드 1위. 마이클 잭슨도 프린스의 영향을 받는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불타는 숲 속의 새끼사슴’이라고 묘사했던 연약한 마이클 잭슨은 ‘어두운 동굴의 사자’ 프린스가 크게 어필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악동’ 이미지를 차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게 버클을 주렁주렁 달고 부츠에 체인과 벨트가 잔뜩 달린, 제목 그대로 다소 거친 이미지의 1987년 앨범 < Bad >다.

프린스의 영원한 수식은 천재

음악을 잘한다고 무조건 천재(genius)라는 수식을 들이대지 않는다. 눈과 귀를 본능적으로 잡아끄는 각별함, 독자성, 일반적인 관행이나 보편적 질서를 따르지 않는 비타협성이 작위적이 아닌 자연스럽게 술술 나와야 천부적 능력의 소유자라는 영예를 얻는다. 데이비드 보위가 그렇듯 프린스는 부고 기사가 언론을 도배하는 지금은 물론, 생전에도 언제나 뮤지컬 지니어스(musical genius)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녔다. 그가 아니면 표현하지 못할 그것도 광대한 음악의 땅을 < Dirty Mind >, < 1999 >, < Purple Rain >, < Sign ‘O’ The Times >, < Graffiti Bridge> 등으로 굴착했다. 선배 스티비 원더의 헌사를 듣는다. “프린스는 실로 다양한 문화를 함께 엮어 우리에게 전달했다. 그는 원했다면 클래식을 했을 것이다, 원했다면 재즈도 했을 것이며 원했다면 컨트리도 했을 것이다. 그는 록을 했고 블루스를 했고 팝을 했다. 그는 모든 것을 했다. 그는 진정 위대한 뮤지션이다.”

MTV 스타,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프린스는 1980년대를 견인한 뉴 미디어 MTV의 총아이기도 했다. 그는 음악만이 아니라 외적 개성의 표현에서도 우월했다. 한때 6피트 장신 여성모델 옆에 서게 되자 “장난해? (키 올려주는) 애플 박스 어디 있어?”라고 했다는 에피소드가 말해주듯 단신임에도 결코 카리스마를 놓치지 법이 없었다. 그 특출 난 스타일은 단지 보여주는 수준이 아닌, 음악의 외연 확장과 유기적으로 관계했다. 이러한 이미지와 메시지의 혼재, 사운드와 패션의 결합이 1980년대의 ‘팝 컬처’였고 프린스는 그 글로벌 선두였다. 유명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시리아노의 말. “우리는 진정한 패션 아이콘을 잃었다. 프린스는 과감했고 동시에 패션과 재밌게 놀았던, 머리에서 발끝까지 진정한 ‘아티스트’였다!” 그는 음반을 정복했고, 방송(MTV)과 공연을 제패했고 나아가 < Purple Rain >, < Under The Cherry Moon >, < Sign ‘O’ The Times >, < Graffiti Bridge > 등 스크린도 유린했다. ‘우린 토탈 엔터테이너,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를 잃었다!’

레코드 산업, 그 거대자본과 싸운 혁명아

아티스트는 창작의 자유를 건드리는 음반사가 밉지만 대놓고 그 증오를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프린스는 1993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시상식장에서 난데없이 법정서류를 꺼내 읽었다. “아마도 어느 날 모든 권력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뮤지션의 작품을 그들이 조종하고 제한하기보다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도록 놔둬야 한다는 것을!” 그는 그때까지 17년간 소속되어 있던 음반사 워너레코드사과 자신의 관계일반을 ‘제도화된 노예제’로 규탄했다. 언론은 그것을 ‘혁명 수행 중’이라고 했고 <뮤지션>지는 “프린스는 아티스트와 기업 간의 현상(現狀)에 도전하는 몇 안 되는 혁명아 중 한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프린스는 이의 일환으로 1993년부터 음반녹음을 거부했고 심지어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심볼로 대체했다. 당혹스런 언론은 궁여지책으로 그를 ‘과거에 프린스라 알려진 아티스트’라고 불렀다. 그는 7년이 지난 2000년이 되어서야 다시 프린스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섹스와 섹슈얼리티 코드의 마케팅

1970년대까지 아티스트는 정치사회적 메시지로 기성 질서와 가치에 시비를 걸었다. 극도의 상업성이 지배하던 미국 레이건과 영국 대처의 보수시대에 음악가는 자선 의식을 표출하거나 아니면 유서 깊은 성(性)에 칼을 휘두르는 방식을 택했다. 외설이라는 보수 언론의 딱지에도 불구하고 프린스는 거의 광기로 성을 통한 자유 의식의 설파에 집중했다. 섹스에 대한 억압 이데올로기에 든 반기라고 할까. 마돈나에 적용되었던 혐의처럼 호기심의 자극 혹은 성공 창출을 위한 방법론이 아닐까 하는 일각의 회의적인 시선을 깔아뭉개며 프린스는 여성의 자위, 신음, 근친상간, 오럴 섹스 등 음반사도 앨범을 낼지 말지를 고민할 만큼 표현수위가 높은 소재를 거리낌 없이 음악에 옮겨 놓았다. 의도적으로 섹스를 노골화하고 섹슈얼리티를 충격적으로 부각해 억제된 인간내부의 자유분방함을 꺼내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그가 얻은 닉네임은 ‘악당 전하(His Royal Badness)’. 그는 모든 면에서 왕자 아니면 왕이었다.

고유 컬러를 확립한 미니애폴리스 제국

전성기에 그는 ‘더 타임’, ‘베이너티 6′(올해 2월, 57세의 나이로 사망), ‘아폴로니아’, ‘실라 이’, ‘웬디 앤 리사’ 그리고 ‘더 레볼루션’ 등의 뮤지션들과 함께 언론과 벽을 쌓으며 자신의 고향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 그들만의 음악 성지를 축조했다. 이른바 미니애폴리스제국. 제도적 장치로 파악한 매스컴과의 일정한 간격 유지에 의해 미니애폴리스 음악제국은 더욱 신비화되는 효과를 낳았다. 마이클 잭슨처럼 프린스도 음악적 자유를 ‘폐쇄’책을 통해서 실현하고자 한 셈이다. 미니애폴리스제국은 하지만 외부와의 차단을 통해 음악에 매진하는 작업공간으로서의 개념을 넘어, 바깥세상의 제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치에 의해 통치되는 별개의 소우주로 기능했다. 이것은 그가 스타인 동시에 반(反)스타 기질의 소유자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아메리칸 팝의 주류를 반역적으로 비틀었던 프린스의 선동은 아름다웠다.

최고의 히트 작곡가로서 기염을 토하다!

언론의 접근이 차단된 별도의 미니애폴리스 제국을 통치하면서 프린스는 당대에 활약한 무수한 아티스트의 히트 레퍼토리를 제공하는 작곡가로도 금자탑을 쌓았다. 제국 내의 산물로 < Purple Rain > 당시인 1984년 모리스 데이가 이끈 ‘더 타임’의 ‘Jungle love’와 드러머 실라 이(Sheila E)의 펑키 감성이 물씬한 ‘The glamorous life’가 있지만 이후 리스트는 더욱 화려했다. 그 무렵 샤카 칸의 ‘I feel for you’, 시나 이스턴의 ‘Sugar walls’, 여성밴드 뱅글스의 ‘Manic Monday’ 등 차트를 주름 잡은 곡들이 모두 프린스의 오선지에서 나왔다. 1990년 시네이드 오코너의 깊은 보컬이 빛나는 명곡 ‘Nothing compares 2 U’가 그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팝 팬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는 가수만이 아니라 성공적인 작곡가로 당대를 풍미했다. 음악 관련미디어 영역에 프린스의 이름이 내걸리지 않은 곳은 없다.

2000년 이후만 독집 앨범 16장 발표

2015년에 프린스는 두 장의 앨범 < HITnRUN Phase One >과 < HITnRUN Phase Two>를 잇따라 내놓았다. 여기서 활약한 여성 3인조 백업 밴드 ‘써드아이걸’은 B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앨범은 저 옛날 < Purple Rain >의 사운드를 듣기 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프린스가 뭘 말하고자 하는가를 귀 담아 듣는 팬들을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창의 스피릿은 꺼지지 않을 듯 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앨범이 2014년, 4년 만에 컴백해 거푸 두 장의 신보 < PlectrumElectrum >과 < Art Official Age >를 낸 후에 다시 또 두 장의 새 앨범 발표를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겨우 한해 지나 또 신작으로 롤백 한 그 왕성한 생산력은 후대의 귀감이다. 2000년대 들어서 내놓은 독집이 자그마치 16장이다. 거룩한 다산(多産). 마지막까지 음악의 불꽃을 태운 것이다. 그는 음악으로 산 게 아니라 ‘음악을 살았다!!’

(2016.04.21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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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둘러보기

지난 1월, 록 음악의 발전에 기여한 이들을 기리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은 1983년 아틀랜틱 레코드 설립자 아흐메트 에르테군의 주도로 세워져 1986년부터 전당에 들어갈 레전드들을 매년 선정해오고 있다. 아티스트를 의미하는 공연자, 작곡가나 제작자 등 산업 종사자인 비공연자, 초창기 로큰롤에 영향을 미친 자, 음악적 우수상 4개의 부문에서 매년 헌액 인물을 선정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비공연자 부문에 ‘나는 로큰롤의 미래를 보았다. 그 이름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다.’라는 전설적인 비평문장을 남긴 존 랜도가 이름을 올려 주목을 받았다. 데뷔 후 25년이 지나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 그중에서도 특히 공연자 부문에 헌액된다는 것은 곧 최고 등급의 훈장을 받는 것과 같다. 올해의 수상자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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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페시 모드(Depeche Mode)

신시사이저가 기타를 밀어낸 뉴 웨이브 시대의 밴드는 큰 특징이 있다. 원 히트 원더 혹은 짧은 전성기. 여기에 디페시 모드는 해당하지 않는다. 화려한 신고식 < Speak & Spell >(1981) 이후 빈스 클락의 탈퇴, 앨런 와일더의 합류로 전환점이 된 < Construction Time Again >(1983)은 독자적인 노선의 첫걸음이었다.

‘Everything counts’, ‘People are people’에서 알 수 있듯이 냄비, 파이프 등 일상용품은 이들에게 또 다른 음악이었고 사회를 담은 묵직한 가사는 신스 팝 밴드에 대한 편견을 반증했다. < Violator >(1990), < Songs For Faith And Devotion >(1993)의 번뜩이는 실험성은 디페시 모드가 1990년대에 정점을 찍도록 견인했다. 마릴린 맨슨, 나인 인치 네일스, 그리고 빌리 아일리시까지, 이들의 음악은 후대의 뮤지션의 롤모델과 다름없다!

Just can’t get enough
People are people
Personal jesus
Enjoy the silence
Policy of truth

두비 브라더스(The Doobie Brothers)

doobie brothers 이미지 검색결과

대마초에서 따온 이름과 달리 두비 브라더스의 음악은 맑고 경쾌하다. 197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결성된 이들은 로큰롤, 알앤비, 포크, 재즈 등을 다양하게 융합하여 대중 친화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낙원을 연상시키는 ‘Listen to music’이 싱글 차트 11위를 차지하면서 수면 위로 올랐고 < The Captain and Me >(1973), < What Were Once Vices Are Now Habits >(1974)가 연속 히트했다.

이후 1975년, 밴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스틸리 댄의 전 멤버 마이클 맥도널드, 제프 벡스터가 합세하면서 농밀한 알앤비와 재즈의 손을 들어주게 된 것이다. 대표곡 ‘What a fool believes’가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한 데다 제22회 그래미에서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그룹, 최우수 편곡 총 4개 상을 휩쓸며 상업적, 비평적 성공을 거두었다. 머지않아 밴드는 해체 수순을 밟았지만 1995년 오리지널 멤버가 모두 모이면서 지금까지도 순회공연을 하고 있다. 

Listen to the music
Long train runnin’
Black water
What a fool believes
China grove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whiteney houston 이미지 검색결과

수식어가 무의미한 디바! 로큰롤 명예의 전당은 1996년부터 흑인이 음악 역사에 끼친 영향을 표창하였고 올해의 주인공은 휘트니 휴스턴이다. 거장 프로듀서 클라이브 데이비스의 선택을 받아 출발한 < Whitney Houston >(1985)은 대중음악의 판도를 뒤집은 기폭제다. 록의 잔치였던 당시, 흠잡을 데 없는 고음과 기교를 지닌 그는 이후 여성 솔로 아티스트의 진출을 터놓은 연결고리가 되었다.

1992년 영화 < 보디가드 >의 OST 참여는 신기록의 연속을 낳았다. ‘I will always love you’의 빌보드 싱글 차트 14주 연속과 사운드 트랙 사상 최고의 판매량은 휘트니 휴스턴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을 증명한다. 무대에서는 경탄의 갈채를 받았지만 이와 반대되는 남편의 폭력과 마약 중독 등 불행한 개인사는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2012년 우리는 별을 떠나보냈지만 디바의 노래는 여전히 살아있다.

I wanna dance with somebody
How will I know
I will always love you
One moment in time
I have nothing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nine inch nails 1994 이미지 검색결과

음지에 은둔하여 사회를 부정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인더스트리얼을 주류에 진입시킨 나인 인치 네일스(이하 NIN)도 전당에 입성했다. 트렌트 레즈너의 진두지휘 하에 이루어진 원 맨 밴드는 ‘소음도 음악이 될 수 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기계의 날카로운 소리와 무질서 사이에도 팝 멜로디가 가미된 데뷔 앨범 < Pretty Hate Machine >(1989)이 대중의 눈길을 끌었고 특히 ‘Head like a hole’이 인기를 구가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서 녹음한 < The Downward Spiral >(1994)는 자기 혐오와 섬뜩함에도 불구하고, 앨범 차트 2위를 차지하여 광신도를 모았다. 할머니의 죽음, 절친 마릴린 맨슨과 틀어진 사이는 트렌트의 광기 어린 분노를 잠시 주춤하게 했지만 < The fragile >(1999)의 대중성까지 포용한 스펙트럼은 그들을 최정상에 올려놓았다. 최근에도 < Bad Witch >(2018)을 발매하여 NIN의 번뜩이는 천재성이 죽지 않았음을 보였다. 

Head like a hole
Hurt
Wish
Closer
The hand that feeds

노토리어스 B.I.G.(The Notorious B.I.G.) 

notorious big 이미지 검색결과

힙합에 유독 박한 명예의 전당이 2017년 투팍 이후 3년 만에 노토리어스(이하 비기)를 헌액하였다. 힙합사를 논할 때 뉴욕의 왕, 비기를 빼놓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퍼프 대디가 제작자로 참여한 데뷔 앨범 < Ready To Die >(1994) 속 맹렬하게 내뱉는 래핑과 암울한 메시지는 그를 단숨에 거물로 올려놓았고 ‘Big poppa’, ‘One more chance’는 시그니처 곡이 되었다.

하드코어 랩의 지표가 되었지만 1996년 힙합 동서 진영의 냉전은 극에 달했고 투팍에 연이은 그의 총격 사망은 우리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생존 당시 한 장의 앨범을 두고 떠났지만, 유작 < Life after Death >(1997), < Born Again >(1999) 모두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여 그의 위상을 다시 실감 나게 했다. 짓누르는 듯 묵직한 플로우와 노련하게 풀어가는 스토리텔링의 비기가 전당에 오르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Juicy
Big poppa
Hypnotize
Who shot ya?
Mo money mo problems

티-렉스(T. Rex)

t-rex band 이미지 검색결과

글램 록의 선구자! 진한 메이크업과 번쩍거리는 의상, 중성적인 외모를 트레이드 마크 삼은 티-렉스가 마지막 주자다. 초창기는 사이키델릭 록과 컬트 히어로 컨셉트의 티라노사우러스 렉스(Tyrannosaurus Rex)였다면, 1970년대는 본격 글램 록을 만천하에 알린 창시자의 움직임을 보였다. < T. Rex >(1970)을 시작으로 ‘Ride a white swan’가 영국 싱글 차트 2위를 차지, 명반 < Electric Warrior >(1971)가 발매되며 이들은 흥행가도를 달렸다. 수록곡 ‘Bang a Gong (Get It On)’과 ‘Cosmic Dancer’은 영화, 예능에 삽입되면서 국내에도 주목받은 곡이다.

그러나 밴드의 전성기는 길지 못했다. < The Slider >(1972) 이후 시원찮은 반응에 핵심 멤버 마크 볼란이 ‘글램 록은 죽었다’라며 밴드를 떠난 데다 그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재기 넘치는 스타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자극의 시대’ 70년대를 이끌었던 이들의 음악은 로큰롤 실록의 한 페이지에 남아 전설이 되었다.

Bang a Gong (Get It On)
20th Century Boy
Cosmic Dancer
Metal guru
Jeep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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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미스터트롯 >이 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대중 오디션

작년 상반기 송가인이란 독보적 트로트 스타를 발굴해낸 < 미스트롯 >의 후속작 < 미스터트롯 >의 인기가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첫 회부터 8%의 시청률로 준수한 시작을 알리더니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 기부금 배틀 콘셉트로 진행된 지난 8회에는 자그마치 30.4%란 수치를 획득했다. 종편 프로그램에, 2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중장년층이 주로 즐기는 트로트를 메인으로 내세웠지만 < 미스터트롯 >에게 이는 더 이상 핸디캡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유가 무엇일까? < 미스터트롯 >의 인기 요인을 분석해봤다.

1. ‘대중’ 오디션
< 미스터트롯 >의 포맷은 2000년대 한국형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는 < 슈퍼스타K >(2009)와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란 캐치프레이즈 아래 방송된 < 프로듀스 101 >(2016)의 특징을 아우른다. 전자가 일반인을 중심으로 누구라도 스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면 후자는 그 대상을 아이돌로 한정한다. 거기서 파생된 ‘마이돌 키우기’의 흐름 역시 주목해 봐야 할 요소. 대중교통, 전광판 등을 물들인 ‘원 픽(최애 아이돌)’ 홍보가 전례 없던 진풍경을 만들어냈다. 또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시청자 팬덤이 40, 50대까지 확대된 점은 음악 향유 계층에 새로운 유입을 뜻하기도 한다.

< 미스터트롯 >의 참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싹을 틔운다. 일반인, 아이돌 혹은 아이돌 정도의 끼를 가진 참가자들은 저마다 다양한 서사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더불어 폭넓은 연령층의 참가자 역시 이 프로그램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다. 실제로 정동원(14세), 이찬원(25세)부터 임영웅(30세), 고재근(44세) 등 여러 세대를 고루 아우른 참가자들이 눈에 띄며 이는 < 프로듀스 101 > 등을 통해 한차례 형성됐던 중장년 팬 층에 다시 한번 활력을 제공한다.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댄스, 힙합 등의 장르를 통해 10, 20대의 입맛(만) 잡기 위해 노력했다면 < 미스터트롯 >은 출발부터 그 이상의 범위를 노린다.

2. 경쟁보다 화합
또한 이 프로그램에는 날 선 경쟁이 없다. 과거 음악 전문 채널 Mnet에서 출시한 대다수의 오디션 프로그램 < 슈퍼스타 K >, < 쇼 미 더 머니 >, < 아이돌 학교 >, < 퀸덤 >등이 자극적인 편집점을 활용해 시청자의 관심을 사려 했다면 < 미스터트롯 >은 대결을 최소한의 도구로만 사용. 그 너머의 휴머니즘을 통해 집중도를 올린다. 이는 SBS에서 방영된 < K팝 스타 >와 일정 부분 비슷한 특징을 공유하는 듯 보인다.

차이는 심사위원단에서 드러난다. 10명이 넘는 < 미스터트롯 > 심사위원의 주 역할은 독설 아닌 칭찬이다. 잘 차려진 상찬에 피땀 눈물 더해진 참가자들의 오디션 도전기는 대결의 ‘결과’뿐만이 아니라 ‘과정’에까지 마음 쓰게 만든다. 선정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이었던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차라리 신파를 택한 < 미스터트롯 >이 도달한 최종 종착지는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범-대중적이다. 한 명을 위한 파티가 아닌 다 같이 즐길 축제의 장. 바로 < 미스터트롯 >의 무대다.

3. 트로트는 첨가물일 뿐
다수의 관계자가 밝히고 있듯 < 미스터트롯 >의 최대 강점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트로트를 중심으로 중장년층의 진입장벽을 낮췄고 오디션 포맷을 기초로 삼아 게임과 같은 흥미 요소를 양산. 트로트와 거리가 먼 젊은 층의 관심까지 샀다는 게 그 분석이다. 다만 < 미스터트롯 >은 트로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아이돌 버금가는 칼군무, 심금을 울리는 판소리, 진기명기가 따로 없는 비트박스 등 방송을 수놓는 건 트로트가 첨가된 또 하나의 들을 거리요 또 하나의 볼거리다.

< 미스터트롯 >이 본격적인 막을 올리기 전 가장 큰 화두는 키치함이었다. 젊은 남성들이 웃통을 벗고 나와 트로트를 부르고 느끼한 춤사위를 선사하던 예고편을 두고 누리꾼들은 얕은 조소를 던졌다. 그리고 지금. 그 키치함이 대중의 감정을 두드린다. 웃으며 시작했던 방청이 한바탕 눈물로, 감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요즘. < 미스터트롯 >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친절하고 착한 전체 연령가 방송. 경쟁으로 점철된 여타 방송이 주던 피로감에서 벗어나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보기 좋은 < 미스터트롯 >의 음악 여정이 신년 초 기분 좋은 대서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