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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20 이선아 PD

이즘이 2021년 개설 20주년을 맞아 지난해부터 특집 기획으로 연재해온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 내 인생의 음악 10곡 > 이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마친다니 참 아쉽습니다. 15년 이상 이력의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한 신선한 선곡과 해설이 모처럼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면서 호평이 이어졌습니다. 원고 작성에 애쓰셨을 PD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 스무 번째는 SBS 이선아 프로듀서가 장식해주셨습니다.

‘그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필요했던 유일한 증거는 음악이었다’. 오래전 커트 보니것의 에세이를 읽다가 마주친 문구였는데, 여태껏 이보다 음악의 신비로운 힘을 근사하게 표현한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뀌어도 변함없이 라디오PD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듣는 귀가 뛰어나지도 않고, 내세울 만한 음악적 식견 따위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부심’이 있다. 음악 안에서 일하는 나는 보통 직장인보다 훨씬 더 자주, 더 즐겁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신의 존재’를 느끼며 살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 사운드 오브 뮤직 > ‘Do re mi’
정신분석 상담을 시작할 때  ‘생애 최초의 기억이 뭔가요?’ 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기억의 퇴적층을 주의 깊게 살펴보게 하는 준비운동 같은 질문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음악에 대해 자문해봤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Do re mi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마들렌 같은 곡이다. TV에서 처음 ‘사운드 오브 뮤직’을 봤는데, 유치원에서 배운 동요가 알아들을 수 없는 꼬부랑 언어로 흘러나와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마리아 수녀와 일곱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은 처음 들어보는 종류의 아름다움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어머니에게 도레미송이 다시 듣고 싶다고 떼를 쓰자, 어머니는 방송국에서 영화를 틀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타이르셨다.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OST를 선물 받고 나서야 이 노래를 질릴 때까지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이란 쉽게 얻을 수 없는 귀한 대상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최초의 경험이었다. 음악이 흔해 빠진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이 노래를 방송에 틀 때마다 그 첫 마음이 떠올라 기분이 풍선처럼 날아오른다.

Nirvana ‘Come as you are’
또 너바나야? 하시겠지만, 너바나를 빼고 간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너바나의 명반 < Nevermind >에 수록돼 있는 ‘Come as you are’는 내 기억 속에 ‘불가항력’이라는 단어로 저장돼 있다. 아무리 뿌리치려 해도 더 깊숙이 빠져드는 개미지옥 같은. 10대 시절, 주말이면 MTV Asia 케이블 채널을 틀어놓고 각종 뮤직비디오를 섭렵하는 데 몰두했다. 그러다 너바나의 언플러그드 공연을 보게 됐다. ‘Come as you are~’ 떡 진 머리의 커트 코베인이 쇳소리로 내뱉는 첫 소절을 듣는 순간, 너바나의 음악으로부터 영영 도망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후렴구 ‘I don’t have a gun~’을 따라 부르면서 보냈는지 모른다. 이 노래는 침대에 대자로 누워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불러야 제맛이었다. 니체가 ‘근육으로 음악을 듣는다’고 했는데, 이 음악이 딱 그랬다. 음악이 몸을 통과할 때, 감정은 물론 표정, 자세, 생각, 태도까지 바꿀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패닉 ‘기다리다’
불온하고 어두운 앨범 재킷 디자인에 끌려 패닉 2집을 사서 들은 이후, 패닉의 음악에 빠져들었다. 1집 앨범은 뒤늦게 샀는데, 1집에 비해 2집의 완성도와 실험정신이 업그레이드된 걸 확인하고선 팬으로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1,2집을 통틀어 가장 많이 들었고, 기회가 날 때마다 선곡하는 노래는 1집의 ‘기다리다’이다. 단순한 기타 반주에 이적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차분하게 톤 다운 되어 ‘익숙해진 손짓과 앙금 같은 미소만 희미하게 남은’ 기다림을 읊조린다. 이 노래는 언제 들어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를 그리워하게 되는 묘한 경험을 안겨준다.

이 세상엔 매력적인 뮤지션이 넘쳐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믿고 듣는 뮤지션’이 된다는 건 결코 평범한 관계가 아니다. 이적은 내게 그 평범치 않은 곁을 내준 아티스트다. 얼마 전 이적의 새 앨범 <흔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면서, 그와 동세대인으로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어 참 고맙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새 앨범에 수록된 ‘준비’라는 곡을 듣고선 내 속을 들켜버린 느낌이었는데, 푸른 마음으로 들었던 ‘기다리다’에 대한 세월의 화답 같기도 해서 혼자 서글퍼졌더랬다.  

어떤날 ‘하늘’
신입 PD 시절, 한 선배가 어떤날을 좋아하냐 물었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답했더니 선배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훌륭한 음악이니 꼭 한번 찾아 들어보라 했다. 나는 음반실에서 CD를 찾아 방송에 트는 마지막 세대였고, 음반실은 참새 방앗간 같은 공간이었다.

그날도 음반실에서 퇴근길에 빌려 갈 앨범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는데, 어떤날 1집 < 1960ㆍ1965 >가 눈에 들어왔다. 선배의 추천이 생각나 얼른 대출을 신청했고, 지금은 사라진 30번 좌석버스 안에서 이어폰을 끼고 1번 트랙 ‘하늘’을 들었다. 마지막 트랙인 ‘오후만 있던 일요일’까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조동익과 이병우가 들려준 세계는 맑고 섬세했다. 완전히 새로운 감수성의 발견!

누구에게나 원형의 음악이 있다. 특정 감성에 눈뜨게 하고, 취향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음악 말이다. 2001년 어느 겨울날 ‘하늘’이 활짝 열어젖힌 감수성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장필순, 토이, 재주소년, 루시드폴, 옥수사진관, 언니네이발관, 브로콜리너마저, 팻 매스니(팻 매스니가 어떤날 멤버들에게 영향을 준 것이겠지만, 내겐 순서가 뒤바뀌어 있다) 등 수많은 아티스트와 연결을 가능케 해주었다.    

U2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U2의 정규 5집 < The Joshua Tree >는, 내게 U2의 세계를 알려준 동시에 록음악을 본격적으로 찾아듣게 한 기념비적인 음반이다. (이 음반이 발매된 지 10년 후인 1997년에서야 처음 듣게 되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U2가 드디어 2019년 첫 내한공연을 했다. 그것도 < The Joshua Tree > 음반 발매 30주년을 기념하는 콘셉트로 말이다.

앨범에 수록된 순서와 똑같이 공연에서도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에 이어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전주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를 라이브로 듣다니, 온몸에 전율이 일어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완벽한 몰입의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공연을 보다가 흥분에 휩싸인 현기증을 느꼈던 게 언제였던가. 공연 관람은 업무의 연장선이 될 때가 많았다. 프로그램 게스트를 응원하기 위해, 대중음악계 트렌드 파악을 위해, 이번에 못 보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온갖 이유가 덧대어졌다. 아무 이유 없이 무조건 좋은 느낌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날 선 똑똑함보다 따뜻한 친절함에 끌리고, 다른 곳을 꿈꾸기보다 내 자리를 성실하게 지키는 것의 미덕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만큼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욕망으로 허기졌던 스무 살의 나로 돌아갈 수 있어 반갑고, 애잔하다.  

David Bowie ‘Space oddity’
우주에 가면 상하, 종횡, 고저의 개념이 통하질 않는다고 한다. 우주에서 유효한 방향은 오직 안쪽과 바깥쪽이다. 나와 나 아닌 세계가 있을 뿐이다. 외부와 연결되고 싶은 갈망과 완벽한 고독의 추구가 길항하는 텅 빈 공간. 데이비드 보위는, 인간이 달에 착륙하기 며칠 전에 ‘Space oddity’를 발표했다.

그가 이미 우주에 다녀온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주의 적막과 우주인의 고립감을 기가 막히게 표현했다. ‘Space oddity’는 가상의 캐릭터 우주비행사 톰 소령과 지구 관제소 간의 교신 내용을 담고 있다. 텅 빈 공간을 떠도는 톰 소령은 ‘지구는 푸르고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진다.

이 노래가 각별한 이유는, 내 일의 아름다운 면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꼭 우주에 가야만 톰 소령을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에겐 바깥세상과 소통하고 싶으면서도 자신만의 세계에서 달팽이처럼 웅크리고 싶은 톰 소령의 이중성이 있다. 라디오방송은 뭐랄까. 특정할 순 없지만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분명한 톰 소령들에게 교신을 시도하고, 그들의 외로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아닐까 싶다. 물론,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하는 게 포인트다.

장기하와 얼굴들 ‘그때 그 노래’
2012년 봄, <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 >라는 심야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DJ 장기하와 함께 동틀 때까지 술도 많이 마시고, 공개방송과 요상한 특집도 참 많이 했다. CP가 적당히 눈감아 준 덕분에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쉰, 조이 디비전, 토킹 헤즈, 도어즈, 세인트 빈센트 류의 ‘비대중적인’ 음악을 마구 틀어댔다. 열정과 체력이 콸콸 넘치던 때였다.

장기하와 얼굴들 2집 ‘그때 그 노래’는 장기하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해서 방송에 정말 많이 튼 노래다. 산울림의 ‘너의 의미’를 듣다가 단숨에 써 내려간 곡이라는데, 장기하 특유의 힘을 뺀 창법이 관조적인 응시와 어우러져 여백의 미를 극대화한다. 무방비 상태로 들었다간 ‘그 많고 많은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  잠 못 이룰지도 모른다.

내가 겪은 장기하는, 황량한 사막에서도 자신만의 북극성을 올려다보며 길을 찾아갈 흔치 않은 고집의 뮤지션이다. 가장 나답게 살기 위해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사람. 무언가를 더하기보다 무언가를 빼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잘 이해하고, 삶과 음악에 적용하는 고수. 그와 함께한 시간은 어느덧 이 노래와 함께 내 인생의 ‘화양연화’가 되었다.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Wake up’
음악은 다양한 정서를 일으킨다. 어떤 마음의 상태로 들어가고 싶을 때 음악을 적극 활용하는 편이다. 실력보다 의욕이 앞서던 십수 년 전, 새 프로그램을 준비하다가 실패를 겪고 자존감과 자존심이 동반 추락해 우울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때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준 노래가 바로 아케이드 파이어의 ‘Wake up이다.

지금까지도 관성에 젖어 나태해질 때, 일을 하다가 조직의 쓴맛을 볼 때, 심기일전하고 전투태세를 갖춰야 할 때 이 노래를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도입부의 ‘아~ 아’  부분만 들어도 온몸의 세포가 바짝 긴장하는 듯하다. 음악의 주술적인 힘이 이런 건가 싶다. 이 노래가 실려 있는 < Funeral > 앨범은 버릴 곡이 하나도 없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밴드 멤버들의 이별의 경험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데, 슬픔, 애도, 그리움, 희망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들이 듣는 이의 마음에 스며들어 묘한 고양감을 자아낸다.

글렌 굴드 ‘골드베르크 변주곡 아리아’
‘클알못’이지만 자주 손이 가는 클래식 음반이 몇 장 있다. 그중에서도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앨범(1981년)을 가장 아낀다. 글렌 굴드는 생전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두 장 냈다. 그를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반열에 올려준 첫 앨범도 골드베르크이고,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마지막으로 녹음한 앨범도 골드베르크이다. 1981년 버전은 1955년의 것보다 느리게 연주되었다. 생기는 덜하지만 좀 더 명상적이고 묵직한 통일성이 느껴진다.

주체할 수 없다는 듯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글렌 굴드의 허밍은 비를 부르는 먹구름 같기도 하고, 밤하늘을 긋는 유성우 같기도 하다. ‘아리아’부터 ‘아리아 다 카포’까지 한 바퀴 듣고 나면, 종교적인 체험을 한 것 같은 기분이라 영원과 소멸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윤상 소년’
두 살 터울의 언니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구별짓기를 시도하기 위해 방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방에 몰래 침입해 책상을 기웃거리고 나서야 그녀가 윤상의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언니가 하는 건 다 좋아 보이던 시절이었기에, 나도 윤상의 음악에 입문했다. 윤상의 사운드와 박창학의 노랫말의 조합은, 알듯 모를 듯해서 더욱 매혹적인 어른의 세계를 엿보게 해주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돌이켜 보며, 일찌감치 탁월한 뮤지션을 알아본 언니의 선구안에 감탄하곤 한다.

윤상 2집에 수록된 ‘소년’은 E.O.S 보컬로 활동 중이던 김형중이 불렀다. 기교는 불완전하나 무구함이 느껴지는 김형중의 목소리가 어른의 세계를 탐하던 내 마음과 공명을 일으켰다. 흠… 그러고 보니 이 노래는 삶은 거대한 농담이란 내 오래된 믿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프로필
SBS 이선아PD (porfavor@sbs.co.kr)
2001년 라디오PD로 SBS 입사 <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 > < 정지영의 스위트뮤직박스 > < 이숙영의 파워FM > < 박선영의 씨네타운 > < 최화정의 파워타임 > 등 다수 연출. 2021년 2월부터 < 박소현의 러브게임 >을 10년 만에 다시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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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김진성의 영화음악 – #1 오즈의 마법사(Wizard of Oz, 1939)

이즘은 개설 20주년을 맞아 특집 가운데 하나로 < 김진성의 영화음악(Historical Cinema Music) >을 연재합니다. 영화 역사를 수놓은 작품들 중에서 영화 자체는 물론 특히 영화음악으로 역사와 대중의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30개의 작품을 골라 음악을 집중 분석합니다. 독자들의 반응을 기대합니다. 첫 편은 < 오즈의 마법사 >입니다.

월트 디즈니(Walt Disney)의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가 놀라운 상업적 성공을 거둠에 따라 MGM 스튜디오 임원인 루이스 메이어(Louis Mayer)는 그에 필적하는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즉시 엘. 프랭크 바움(L. Frank Baum)의 소설<오즈의 위대한 마법사>(The Wonderful Wizard of Oz, 1900)에 대한 판권을 사들였다. 노엘 랭리, 플로렌스 라이어슨(Noel Langley, Florence Ryerson)과 에드가 앨런 울프(Edgar Allan Woolf)가 각본을 쓰고, 베테랑 감독 빅터 플레밍(Victor Fleming)이 연출을 맡았다.

이제 전설이 된 출연배우에는 도로시(Dorothy) 역에 주디 갈란드(Judy Garland)를 비롯해, 마블 교수 마블/오즈의 마법사 역에 프랭크 모건(Frank Morgan), 허수아비 역에 레이 볼거(Ray Bolger), 양철 나무꾼(Hickory/Tin Man) 역에 잭 헤일리(Jack Haley), 겁쟁이 사자(Zeke/Cowardly Lion) 역에 버트 라(Bert Lahr), 북쪽의 착한 마녀 글린다(Glinda) 역에 빌리 버크(Billie Burke)와 서쪽의 사악한 마녀 알미라 걸치 역에 마가렛 해밀턴(Margaret Hamilton)이 캐스팅되었다.

배역을 정한 영화는 그런데 원작 소설에서 바움이 실제 장소로 구상한 오즈를 꿈의 풍경으로 변모시켰다는 점에서 상호 거리감이 있었다. 각색된 꿈의 세계를 무대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토네이도를 타고 캔자스 집에서 놀라운 오즈 왕국으로 이송된 어린 소녀와 강아지의 마법적이고 환상적인 모험극으로 그려진다. 시골의 현실에서 오즈라는 판타지의 세계로 장소를 옮긴 소녀 도로시는 북부의 착한 마녀 글린다의 도움을 받아 위대한 여정을 시작한다. 충견 토토와 함께 에메랄드 도시에 사는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 집으로 되돌아가게 해달라는 소원을 말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두뇌를 찾는 허수아비, 마음을 찾는 양철 나무꾼, 용기를 찾는 비겁한 사자를 만나 친구가 된다. 서쪽의 사악한 마녀 걸치가 도로시의 소원성취를 방해하지만, 도로시와 친구들은 뜨거운 우정과 눈부신 협력으로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간다. 절박한 공존의 필요성 속에서 믿음과 진심으로 각자의 콤플렉스를 극복해내는 주인공들. 여러 모험을 겪은 끝에 마침내 도로시는 신고 있던 루비 구두를 이용해 가족이 있는 캔자스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행복한 결말을 맞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는 개봉당시보다 이후 TV를 통해 방영되면서 최다 상영과 최다관객동원이라는 기념비적 기록을 세웠고, 영화 예술의 걸작으로 칭송받으며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대중의 반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작품상을 포함해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지명된 영화는 무엇보다 최우수 음악(Best Music)상 2개 부문 트로피를 모두 석권했다는데 의미가 깊다. “스코어(Original Score)”와 “원곡/주제가(Original Song)”, 두 부분을 공히 수상함으로써 명실공이 뮤지컬영화 최고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특히 ‘Over the rainbow’의 주제가상 수상은 이 영화에 상징적 가치를 더할 뿐만 아니라, 후대에 길이 빛날 시대의 명화가 될 신호탄임을 확증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뮤지컬이 될 것이라는 것이 결정되었다. 그래서 많은 노래를 작곡하기 위해 작곡가 해롤드 알렌(Harold Arlen)과 작사가 입 하부르크(Yip Harburg)로 구성된 신뢰할 수 있는 팀이 고용되었다. 작곡가 허버트 스토다트(Herbert Stothart)는 자신이 쓴 스코어의 패턴 내에서 노래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임무를 맡았다. 전체적으로 영화의 등장인물들과 무대가 되는 배경에 맞춰 다양한 라이트모티프(leitmotif)의 연주곡을 단편적으로 사용해 극의 장면전개를 보강하는 한편, 작곡가 스토다트는 유명한 고전음악을 발췌해 넣기도 하고, 알려진 대중음악도 사용했다.

슈만(Schumann)의 ‘The Happy Farmer'(행복한 농부)에서 발췌한 부분을 영화의 초반 몇몇 장면에 사용했는데, 도로시와 토토가 걸치 여사를 만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오프닝 장면과 토토가 그녀에게서 탈출 할 때, 그리고 집이 토네이도를 타고 날아갈 때 삽입되었고, 토토가 마녀의 성에서 탈출했을 때는 멘델스존(Mendelssohn)의 ‘Opus 16, #2’에서 발췌한 곡의 일부가 들어갔다. 또한 도로시,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비겁한 사자가 마녀의 성에서 탈출하려 할 때는 무소르그스키(Mussorgsky)의 ‘Night on bald mountain'(민둥산의 밤)에서 발췌한 주요 악절을 지시악곡에 결합해내기도 했다.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의 ‘Waltz of flowers'(꽃의 왈츠)가 도로시, 양철 나무꾼, 허수아비, 비겁한 사자 토토가 양귀비 밭에서 잠들 때 사용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 도로시와 허수아비가 의인화 된 사과나무를 발견할 때 ‘In the shade of the old apple tree'(오래된 사과나무의 그늘에서), 마법사가 도로시와 친구들에게 상을 수여할 때 학생찬가로 유명한 ‘Gaudeamus Igitur'(가우데아무스 이기투어), 캔자스에 있는 도로시의 집에서 폐막하는 장면의 일부에 ‘즐거운 나의 집’으로 매우 친숙한 ‘Home! Sweet Home!’이 기성고전가요로 차용되었다.

알다시피 뮤지컬로 제작된 영화는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 그 주제에 얽힌 노래가 풍부하다. 북방의 선한 마녀로서 천상의 특성으로 그녀의 페르소나를 강조하는 글린다(Glinda)의 테마를 위시해 서쪽의 사악한 마녀 걸치(Gulch)의 테마, 장난꾸러기 강아지 ‘토토의 테마’, ‘마블 교수(Professor Marvel)의 테마’, 그리고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 등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 각자에게 특징 있는 주제적 악상을 주고, 그 주제곡들을 변주해 영화 전반에 골고루 배치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메인테마 ‘Over The Rainbow‘는 갈란드(Garland)가 1막에서 부른 노래에서 파생되어 나온다. 영화의 스코어 역사상 가장 숭고한 가사와 멜로디의 조화라고 할 수 있는 이 곡은 도로시의 테마 역할을 하고, 작곡가 스토다트는 “꿈은 실현된다.”는 이야기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오케스트라로 반주된다.

이 주제곡은 영화의 개막을 알리는 ‘메인타이틀'(Main Title)에서도 연달아 이어지는 여러 테마들과의 조화 속에서 최고의 순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주디 갈란드(Judy Garland)의 가창과 더불어 관객들은 목가적인 것에 대한 그녀의 열망을 듣고, 영화 내러티브의 정서적 핵심을 포착할 수 있다. 도로시 역의 갈란드가 하늘을 향해 노래할 때 그녀의 뛰어난 보컬은 완벽한 영화의 순간을 만든다.

「무지개 너머 높은 곳 어딘가에
자장가에서 한 번 들었던 땅이 있습니다.
무지개 너머 어딘가 하늘은 파랗고
감히 꾸는 꿈들이
정말로 이루어집니다.

언젠가 별을 향해 소원을 빌 겁니다.
그리고 저 너머 구름에서 깰 거예요.
걱정이 레몬 방울처럼 녹아버리고
굴뚝 꼭대기 저 위에
당신이 나를 찾을 수 있는 곳이죠.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파랑새가 날고,
새들이 무지개 너머로 날아갑니다.
왜 그때, 오, 나는 날아가지 못하는 걸까요?
행복한 작은 파랑새가 무지개 너머로
날아가는데, 왜, 오, 왜 난 못하는 거죠?」
 -“Over the rainbow”노랫말 중-

입 하부르크(Yip Harburg)의 가사와 해롤드 알렌(Harold Arlen)의 작곡이 탄생시킨 주제가 ‘Over the Rainbow’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지금까지 대중들의 기억에 각인되었을지는 미지수다. 그만큼 영화에서 주제가가 주는 파장은 실로 대단하다. 영화가 전하고자하는 함의를 오롯이 내포한 이 노래는 ‘AFI(American Film Institute)’의 100년… 100곡과 미국 음반 산업 협회의 “세기의 365곡”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17년 3월, 주디 갈란드가 부른 ‘Over the Rainbow’는 “문화적, 역사적 또는 예술적으로 중요한” 음악으로 선정돼 국회도서관의 “내셔널 레코딩 레지스트리(National Recording Registry)”에 등재되었다.

–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노래 곡명 –
1. ‘Over the Rainbow'(무지개 너머) – 주디 갈란드(Judy Garland), 도로시 게일(Dorothy Gale)
2. ‘Come Out…'(나와…) – 빌리 버크(Billie Burke), 길린다(Glinda)와 먼치킨스(the Munchkins)
3. ‘It Really Was No Miracle'(정말 기적이 아니었어) – 주디 갈란드(Judy Garland), 빌리 블레처(Billy Bletcher) 그리고 먼치킨스(the Munchkins)
4. ‘We Thank You Very Sweetly'(매우 감사합니다) – 프랭크 쿡시(Frank Cucksey)와 요셉 코지엘(Joseph Koziel)
5. ‘Ding-Dong! The Witch Is Dead'(딩-동! 마녀는 죽었다) – 빌리 버크(Billie Burke)와 먼치킨스(the Munchkins)
6. ‘As Mayor of the Munchkin City'(먼치킨 시의 시장으로서)
7. ‘As Coroner, I Must Aver'(검시관으로서 나는 주장해야한다)
8. ‘Ding-Dong! The Witch Is Dead'(Reprise) – 먼치킨스(The Munchkins)
9. ‘The Lullaby League'(자장가 리그)
10. ‘The Lollipop Guild'(롤리팝 길드)
11. ‘We Welcome You to Munchkinland'(먼치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먼치킨스(The Munchkins)
12. ‘Follow the Yellow Brick Road/You’re Off to See the Wizard'(노란 벽돌 길을 따라서/마법사를 만나러 간다) – 주디 갈란드(Judy Garland)와 먼치킨스(the Munchkins)
13. ‘If I Only Had a Brain'(내가 뇌가 있다면) – 허수아비 레이 볼거(Ray Bolger)와 도로시 주디 갈란드(Judy Garland)
14. ‘We’re Off to See the Wizard'(마법사를 만나러 간다) – 주디 갈란드와 레이 볼거
15. ‘If I Only Had a Heart'(내게 심장만 있다면) – 양철 나무꾼(the Tin Man) 잭 헤일리(Jack Haley)
16. ‘We’re Off to See the Wizard'(Reprise 1) – 주디 갈란드, 레이 볼거, 원래 양철 나무꾼 버디 엡슨(Buddy Ebsen)
17. ‘If I Only Had the Nerve'(내가 신경만 가졌다면) – 겁쟁이 사자 버트 라(Bert Lahr), 양철 나무꾼 잭 헤일리, 허수아비 레이 볼거, 그리고 주디 갈란드
18. ‘We’re Off to See the Wizard'(Reprise 2) – 주디 갈란드, 레이 볼거, 버디 엡슨, 버트 라.
19. ‘Optimistic Voices'(낙관적 음성) – 엠지엠 스튜디오 합창단(MGM Studio Chorus)
20. ‘The Merry Old Land of Oz'(오즈의 즐거운 옛 땅) – 마차 기사 프랭크 모건(Frank Morgan), 주디 갈란드, 레이 볼거, 잭 헤일리, 버트 라, 그리고 에메랄드 도시 주민들(the Emerald City townspeople
)
21. ‘If I Were King of the Forest'(내가 숲의 왕이었다면) – 버트 라, 주디 갈란드, 레이 볼거, 잭 헤일리
22. ‘The Jitterbug'(지르박) –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삭제된 노래지만, 일부 확장판 편집 CD에 수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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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9 한지윤 PD

2021년 올해 개설 20주년을 맞아 이즘은 지난해부터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 내 인생의 음악 10곡 > 편을 연재 중입니다. 라디오는 음악과 동의어라는 편집진의 판단에 따라 기획한 시리즈로 모처럼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해주는 신선한 미학적 시선에 독자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 PD의 ‘인생 곡 톱10’입니다. 열아홉 번째 순서는 BBS 불교방송의 한지윤 프로듀서입니다.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음악가와 음악 ‘가’. 나는 후자에 속했다. 음치라고 불리만큼 노래를 잘 부르지도 또 외우지도 못했다. 음계는 물론이고 콩나물만 봐도 머리가 아팠다. 음악점수는 항상 ‘수우미양가’ 중에 ‘가’를 찍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까지 라디오 PD라는 직업을 갖고 음악프로그램을 연출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고등학교 시절, 누구나 그랬겠지만 나 역시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주제로 심각하게 고민했다. 친구와의 우정, 사랑, 공부, 진로 그리고 부모님과의 갈등. 누구나 겪는 혼란했던 그 시절, 레코드가게 앞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란 노래를 들었다. 무언가 귀에 쏙 들어오는 내레이션 가사와 음률. 바로 가게에 들어가서 조용필의 8집 앨범 테이프를 샀다. 아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돈을 주고 산 앨범이 아닌가 싶다.

집에 있던 커다란 라디오 데크에 테이프를 넣고 노래를 들었다. 심지어 이 노래만 계속 이어 듣고 싶어서 공테이프를 사서 복사(불법복제?)한 뒤 계속 틀고, 듣고, 외우고, 따라 불렀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에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사를 다 외운 노래, 심지어 반주 없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되었다. 혼자 감정이입을 하며 노래를 따라 부를 때 머리에 떠오르는 모습은 고민했던 대상들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KBS ‘동물의 왕국’ 영상만이 떠올랐다. 내 인생에서 음악‘가’에서 음악‘양’으로 한 단계 성숙시켰던 노래,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 ‘Pale blue eyes’ 영화 < 접속 > OST
한석규와 전도연 주연의 영화 ‘접속’, 1997년 늦은 여름에 개봉했다. 주말 한 낮, 나는 종로 서울극장 맞은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멀리 창문 밖 극장 간판에 그려진 주연 배우들의 얼굴들을 보며 여자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멜로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였지만, 유명하다니까, 여자친구가 원하니까 그냥 보러 온 것이다.

영화 속 장면, 심야 라디오프로그램을 진행하던 한석규PD가 LP로 틀어 준 노래 벨벳(Velvet Underground)의 ‘Pale blue eyes’. 감미로운 음악을 듣는 순간 ‘나도 저런 PD하고 싶다’라는 생각은 우연의 일치일까?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이런 결심을 했다. ‘나도 멋있는 음악 PD가 되고 싶다, 한석규처럼.’

매년 봄, 가을 개편을 앞두고 데스크에서는 관례처럼 일대일 면담을 통해 “어떤 프로그램을 맡고 싶니?”라고 묻는다. 물론 형식적인 질문이고 절대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포교프로그램 분야를 담당하던 나 역시 형식적인 답변을 한다. “음악프로그램 하고 싶어요” 그리고 5년 뒤 마침내 포교제작팀에서 교양제작팀으로 발령을 받아 처음 음악프로그램을 맡게 된다. 희망 사항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나도 한석규처럼 될 수 있겠구나.’

당시 음악 PD로의 꿈을 갖게 해 준 노래, 1960년대 지적이고 감성적인 노래를 불렀던 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 ‘Pale blue eyes’. 내 인생의 전환점을 갖게 해준 노래다.

당타이손(Dang Thai Son)의 피아노 연주  < 쇼팽의 녹턴 Op.9-1 >
처음으로 교양제작팀으로 발령을 받고 맡게 된 음악프로그램 < 차 한 잔의 선율 >. ‘아차! 클래식 프로그램이네. 그것도 역사와 전통이 깊은 프로그램. 내가 망치겠구나’ 먼저 겁부터 났다. 항상 음악점수 ‘가’인 내가 ‘클래식이라니’. 먼저 다가온 단어는 ‘절망’이었다.

선배의 조언을 따라 교보문고로 직행해서 클래식 관련 서적을 잔뜩 사왔다. 그리고 보았다. 그리고 몰랐다. 아무리 봐도 무슨 뜻인지 몰랐다. 음반실에 들어가서 구박을 받으면서 클래식 관련 CD를 분류된 종류별로 잔뜩 가져왔다. 그리고 책상 위 CD 플레이어에 집어넣고 하나씩 들었다. 그냥 무조건 들었다.

문제가 발생했다. 독어는 고등학교 때 했던 것이라서 읽을 수는 있는데 그 외는 한 마디로 무식했다.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큐시트에 어떻게 적고 음악적으로 어떻게 소개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면 인터넷으로 금방 검색해서 알 수 있겠지만 당시만 해도 원고 타이핑용으로 공용으로 쓰는 286컴퓨터 2대가 전부였던 시대였다.

다른 선배들에게 묻기에는 자존심이 상했고, 무능해 보일까 봐 겁이 났다. 음악의 흐름과 진행자, 원고, 분위기에 따른 선곡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냥 큐시트 작성하기에 급급했다. 9시에 출근해서 밤 12시까지 무조건 클래식들을 들었다. 어떻게 발음하고 어떻게 소개해야 하는지는 먼저 사전을 찾다가 도저히 안 되면, 예전 진행을 했던 아나운서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한 달이 흘러갔다. 이제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급급했던 선곡이 이제 나름대로 연출이 가능해졌다. 음반실에 빼곡하게 꽂혀 있는 클래식 CD장들 사이를 이제는 눈감고 다닐 수 있게 됐다. 더욱 신기했던 일은 관현악이나 협주곡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각각의 악기 소리가 분리되어서 귀에 들렸다. 성악곡 역시 노래 부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우연히 손이 간 베트남의 피아니스트 당타이손(Dang Thai Son)의 피아노 연주곡 < 쇼팽의 녹턴 Op.9-1 >.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피아노곡이 내 마음에 큰 울림이 됐던 것이 이 연주곡이 처음이었다. 녹턴을 다른 사람의 피아노 연주로 들어봤다. 같은 곡이지만 달랐다. ‘아, 연주하는 사람의 마음과 감정, 영혼에 따라 곡이 다르게 들리는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선곡과 선곡의 흐름에 더욱 집중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베트남의 피아니스트 당타이손의 피아노 연주. 나에게 처음 음감의 세계를 열어준 큰 선물이었다.

김광석 ‘일어나’
1999년 가을. 개편으로 새롭게 맡은 프로그램은 < 살며 생각하며 >다. 청소년 대상으로 상담을 하던 프로그램이지만 기획 의도가 달라졌다. IMF 시대, 힘들고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함께 공감하는 프로그램이다. 밤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생방송으로 진행된 심야프로그램. 컴퓨터가 없던 시대, 문자도 없던 시대. 유일하게 열려 있는 소통 창구는 전화였다.

4개의 전화번호를 열고 시인 김사인씨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7080음악을 중심으로 전화 상담을 받는 프로그램. 참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프로그램이었다. 사업에 실패해서 가족과 헤어져서 도망 중인 사람들, 큰 병으로 시한부 생명을 이어가며 유일한 낙이 라디오라는 청취자. 수 없이 많이 분들이 사연을 전달해 주고, 또 격려의 전화를 주고, 또 노래를 통해 아픔을 치유하고 공감하는 시간이다.

신혼 초 젊었던 시기였던 나에게는 남의 얘기 같았지만, 그분들의 마음이 전파를 타고 전국 곳곳에 전달되어 아픔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역할을 내가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힘든 심야 생방송이었지만 큰 사명감을 가졌다.

방송국도 IMF를 넘기기 어려웠다. 제작비 축소로 1년 동안 진행된 <살며 생각하며>의 마지막 방송을 5일 앞두고 아쉬움에 모든 코너를 없애고 시작부터 전화 연결을 받았다. 프로그램이 폐지된다는 말에 전국에서 전화로 상담 신청이 폭주했다. 4개의 전화번호는 폭주했다. 연결된 청취자 분들마다 한 결 같이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격려를 해주셨다.

이 프로그램 때문에 ‘자살 결심을 포기 한 분’, ‘부모님과 화해한 분’, ‘경찰에 자수한 분’, ‘자식을 위해 이혼을 포기한 분’, ‘새롭게 막노동부터 다시 시작한 분’. 셀 수 없는 사연들을 담은 전화벨소리가 하루에 200여 통이나 울렸다.

드디어 금요일, 마지막 방송이었다. 마지막으로 전화 연결된 청취자가 < 살며 생각하며 >를 통해 ‘포기’보다는 새로운 삶의 ‘희망’을 얻었고 새 출발 다짐했다는 사연을 전달하며 신청한 노래다. 바로 김광석의 ‘일어나’        

영화 < 인생은 아름다워 > OST  ‘Life is beautiful / La vita è bella’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 주연의 영화 < 인생은 아름다워 >. 1997년 개봉된 이 영화를 한 참 지난 뒤 주말 TV를 통해 보게 되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웃음을 잃지 않는 주인공.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죽음의 길로 들어서며 웃음을 지었던 그 모습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개편을 통해 새로 맡게 된 프로그램이 < 영화음악실 >이었다. 영화의 전문가도, 또 영화음악에 무지했던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당시 개편 직전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다. 담당 부장에게 출장을 신청했다. 회사의 어려운 사정상 안 될 것 같았는데 쉽게 허락을 받았다.

“PD는 책상에만 있는 직업이 아니야, 자주 콧바람을 쐐야지. 다녀와” 당시 그 선배의 말 한마디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 후 내가 부장이 되어서도 항상 후배들 교육할 때 강조했던 대목이다. 세상을 보는 관점,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 사물을 관찰하는 안목. 열심히 돌아다닐 때 생기는 것이고 그래야 창의력이 생긴다. 그래야 PD가 되는 거지.

처음 가보는 영화인들의 축제, 부산국제영화제. 곧 영화음악실 담당 PD가 된다는 명분하에 그 속에 끼어든 나. 꿔다놓은 보릿자루 느낌이 들었지만 굳굳하게 행사들을 쫒아 다니며 영화를 관람했다. 각 나라의 감독들이 그들의 처지와 상황과 이념, 관점들을 영화로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라디오에서 영화음악과 진행자의 줄거리 소개 외에 영상을 표현할 방법이 없을까?’ 작가하고 상의 끝에 새로운 코너 구성을 마쳤다. 비디오가게에서 영화를 빌려서 중요 장면들을 플레이했다. 라인을 연결해서 그 영상들의 대화나 효과음, 배경 음악들을 오디오로 저장했다. 그리고 영화의 한 장면을 소개하며 비록 무음 때문에 방송사고에 가깝게 느껴진다고 해도 스토리를 전달했다. 비록 볼 수는 없지만 라디오를 통해 상상의 나래를 더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롭게 시그널 음악을 골랐다. 무언가 기존과 다른 < 영화음악실 >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떠오른 생각. 청취자들께 전달하고 싶었다, ‘인생은 아름답다’고. 기존의 시그널 음악을 바꾸는 모험을 시도했다. 그때 선택한 < 영화음악실 > 시그널 음악, 바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OST ‘Life is beautiful’이다.

윤태규 ‘My way’
< 활력충전 2시 4시 >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했다. 침체 된 방송국 프로그램들을 대표하고 청취자들의 문자를 통해 많은 참여를 유도하게 만드는 목표를 가진 전략 프로그램이었다. 과정은 큰 성공이었다. 하루 100개에 불과했던 문자참여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1일 2시 생방송 동안 6,400여 개의 청취자 문자참여’를 기록했다. 사장님이 고급 양주 한 병을 스텝들에게 내주면서 회식 때 쓰라고 칭찬도 했다.

양(陽)이 있으면 음(陰)이 있는 법. 새로 취임한 사장의 인사로 인해 보직을 잃은 선배와 술 한 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둘이 2차로 노래방을 갔을 때 그 선배가 윤태규의 ‘My way’를 처절하게 불렀다. 평소 나도 좋아서 그냥 틀었던 노래. 하지만 선배의 노래는 비장했다.

그리고 난 뒤 5년이 지나 어느 날,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이 노래를 들었다. 평소 내가 자주 틀었던 노래였지만 이날은 왠지 특별하게 다가왔다. 가사 하나하나가 귀에 박혔다. 그리고 예전 그 선배의 노래가 왜 비장했는지 비로써 이해가 됐다. 나 역시 그 선배와 비슷한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가사를 읊조렸다.

‘누구나 한 번쯤은 넘어질 수 있어, 이제 와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

내가 가야 하는 이 길에, 지쳐 쓰러지는 날까지, 일어나 한 번 더 부딪혀 보는 거야’

킹 크림슨  ‘Epitaph’
1969년도에서 1970년대 초까지 세계각처에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뇌하는 젊은이들의 아픔을 담은 노래 ‘묘비명’. 1969년에 태어난 나에게 이 노래는 그냥 귀에 익은 올드 팝송에 불과했다. 그냥 지나가다가 레코드가게에서, 혹은 카페에서, 라디오에서, 제목도 모르고 누가 불렀는지도 모르던 팝송이다. 단지 느낌이 비장하고 웅장하다는 느낌이었다.

< 음악의 마을 >을 담당하게 되었다. 팝송으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청취자들의 신청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시간 신청곡이 올라오는 모니터를 보면서 검색하고, 선곡하고, 흐름을 타는 생방송 프로그램이다.

어느 날 바쁘게 생방송을 진행하던 그 순간 킹 크림슨(King Crimson)의 ‘Epitaph’이 신청곡으로 올라왔다. 무려 9분에 가까운 노래 길이. 선곡 전 모니터링을 하는 순간 망설여졌다. 귀에 익어서 아는 팝송이고 가사 내용도 이미 알던 내용이지만 시간이 문제였다. 51분40초가 리얼타임인 < 음악의 마을 >. 이 노래를 틀면 마지막 코너는 할 수도 없었고, 후 CM이 나가고 나면 끝 곡은 물론 클로징 멘트도 아슬아슬했다.

이 노래를 신청곡으로 보낸 청취자의 문자 내용은 참 좋았다. 하지만 진행자나 작가나 모두 반대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선택의 순간, 나는 “진행 1 스타트”라고 외쳤다. 그리고 흐르는 노래, ‘Epitaph’. 모든 스텝이 ‘뜨악’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 노래는 너무 길어서 잘 안트는데요.” 진행자의 푸념 어린 목소리도 들렸다. “노래 끝나고 후CM 나간 뒤 시그널 음악으로 ‘쫑’멘트 부탁드려요”라고 말하며 노래를 감상했다.

창밖의 풍경이 들어왔다. 그리곤 이 노래와 어울리는 날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 선택하기 잘했네’. 후회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의문도 들었다. ‘우리는 왜 항상 프로그램의 끝을 노래로 마무리 하려고 할까?’

김범룡 ‘왜 날’
살다 보면 좋은 시기도 있고, 힘든 시기도 있다. 인생의 굴곡은 라디오 방송을 듣는 사람이나, 라디오 방송을 만드는 사람이나, 누구나 상관없이 항상 찾아온다. 과연 그 순간을 어떻게 현명하게 이겨내고 견뎌내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질 뿐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 그 단어를 누가 만들었을까?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는 금과옥조와 같은 말이 아닐까 싶다.

라디오 PD가 방송을 할 수 없는 순간도 살다 보면 찾아오게 된다. 평생을 몸담고 살아온 곳. 평생을 청취율과 씨름하며, 기획하고, 구성하고, 연출하던 순간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과연 그때 어떤 기분이 들까?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 따뜻한 봄날, 잔잔히 들려오는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진행자의 멘트와 귀에 익은 음악들. 만약 내가 이 프로그램의 PD라면 이 노래 다음에 이 노래를 붙일텐데. 하지만 나는 그 방송국의 PD도 아니고, 또 내가 다니던 방송국에서 더 이상 PD가 아니었다.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강화도로 떠났다. 바람을 쐬기 위해서였다.

블루투스로 연결된 오디오를 통해 저장된 음악들이 흘렀다. 어느 순간 내가 선곡을 했다. 이 노래 다음에 이 노래, 그리고 이 노래 다음에는 이 노래. 직업병처럼 선곡을 하는 나를 친구가 안쓰럽게 쳐다보곤 운전에 집중한다.

나 자신의 이런 모습을 깨달았을 때 선곡하며 들었던 노래가 평소 좋아했던 김범룡의 ‘왜 날’이었다. 예전 스튜디오 출연했던 범룡이 형의 라이브를 듣고 흠뻑 빠졌던 노래다. 라디오 PD가 라디오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선곡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진심으로 알게 되었다. 아무리 힘든 시간이 다가와도, 이 또한 지나간다.

애니메이션 < 스노우맨 > OST  ‘Walking in the air’ (피아노 솔로)
영국의 명작 애니메이션 < 스노우맨(The Snowman, 1982년) >. 어린이를 위한 최고의 명작이라는 찬사와 함께 부드러운 그림체와 함께 흐르는 피아노곡은 따뜻한 감성과 자극하며 저절로 눈물이 나온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던 나는 우연히 DVD로 < 이웃집 토토로 >를 함께 봤다. 그리곤 큰 감동을 받았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그를 연구하다 보니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만화영화 < 미래소년 코난 > 역시 그의 작품이었다. 그 후 진정한 마니아는 아니지만 마니아인 척하며 DVD를 모으고 열렬히 시청했다.

방송 일로 바빠서 아이들과 시간을 갖지 못했던 나는 애니메이션 DVD를 통해 아빠의 역할을 조금은 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좋아서 봤던 측면도 강했다. 그 폭이 늘어나면서 접하게 된 애니메이션 스노우맨. 마침 12월 말 눈이 오던 때였다. 나도 모르게 눈이 충혈 되었고 아이들도 엉엉 울고 있었다.

그렇다. 거친 세상을 살다가 잊고 있었던 내면 깊은 곳에 담겨져 있는 순수함의 단지. 그 단지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살짝 열린 것이다. 단지의 뚜껑을 열어준 피아노 연주곡 ‘Walking in the air’. 항상 눈이 오는 날 선곡하는 18번 음악이 되었다.

나라 ‘고고씽씽’
현재 담당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 이효주의 싱싱라디오 >다. 매일 낮 12시15분부터 2시까지 진행되는 생방송 프로그램이다. 처음에는 말을 줄이고 단순하게 소통하는 BGM으로 만들려고 했다. 진행자인 아나운서와 작가와 함께 첫 스텝 회의를 갖던 날, 난 두 사람한테 구박을 받았다.

제작비도 없었고 복잡한 것보다 선곡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지만 두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무언가 만들어보려고 의기가 충만해 있었다. 새로운 구성, 새로운 코너, 그리고 두 사람의 빛나는 눈동자 4개. 난 민망했다. 그리고 나 역시 숟가락을 얹어서 그 대열에 합류했다. 2020년 5월 4일 개편 첫날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라디오PD로 살아온 25년의 세월 속에서 이렇게 열정을 갖고 제작 연출해보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특히 매주 수요일에 진행되는 코너 < 우리 동네 사장님 >은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을 하는 분들을 응원하기 위해 만든 시간이다. 사장님 본인이나 종업원, 지인, 부모님들을 전화로 연결해서 가게를 홍보하고 어려움을 나누는 시간이다. 그리고 연결된 분들의 음성편지를 들으면서 그분들은 물론 진행자, 작가, 엔지니어, 그리고 나까지 대부분 함께 눈물을 글썽인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시기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보다 오히려 다른 소상공인들 걱정하고 자기를 걱정하는 부모님을 더 걱정한다. 라디오가 가진 공감의 능력과 소통의 힘이 가장 빛나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음악들을, 그리고 다양한 효과음과 소리들을 들려주면서 청취자와 함께 호흡한다. < 이효주의 싱싱라디오 > 홍보 스팟을 제작하기 위해 우연히 음악을 검색하다가 가수 나라의 ‘고고씽씽’이라는 노래를 접하게 됐다. 2009년에 나온 노래, 그리고 금방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진 노래. 하지만 무엇보다 코로나 19로 힘들어하는 모든 분들께  “힘내세요”라고 들려드리고 싶은 노래다.  

고고씽씽 노래를 불러요 고고씽씽 흥겨운 멜로디
고고씽씽 근심걱정 날려버리고
고고씽씽 하하하하하 고고씽씽 힘들땐 웃어요
고고씽씽 다함께 떠나요

*프로필
한지윤PD (BBS 불교방송)
現 < 이효주의 싱싱라디오 > 담당PD, < 활력충전 2시4시 >, < 트로트 전성시대 >, < 108가요 >, < 뮤직펀치 >, < 다시 듣고 싶은 노래 >, < 음악의 마을 >, < 영화음악실 >, < 살며 생각하며 >, < 차 한 잔의 선율 >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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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8 조정선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연재 중입니다. 라디오는 음악과 동의어라는 편집진의 판단에 따라 기획한 시리즈로 모처럼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해주는 신선한 미학적 시선에 독자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 PD의 ‘인생 곡 톱10’입니다. 열여덟 번째 순서는 MBC 조정선 프로듀서입니다.

성재희 ‘보슬비 오는 거리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인 1965년 무렵이다. 친척들이 집에 모이면, 아이들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유행가를 한 번 불러 보라고 시키거나, 아니면 당시에 유행하던 트위스트를 좀 춰보라고 해서, 흥을 유발시키던 문화 빈곤의 시절이었다. 당시에 즐겨 불렀던 노래가 바로 ‘성재희’의 ‘보슬비 오는 거리’였으니, 내게는 첫 번째 유행가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 노래를 할 때마다, 환호의 강도가 꽤 커서, 나조차 어느 순간, 마치 지존인 양 착각하게 됐던 모양이다. 요즘 말하면 미스터트롯의 정동원 어린이가 된 것처럼 말이다. 명절이 끝나고 친척들에게 받은 돈이 꽤 두둑했던 어느 날, 동네에 노래자랑이 열린다는 소식이 내 귀에도 들어왔다. 1등상은 바로 ‘금반지!’ 장소는 지금의 중랑구 신내동 어딘가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부터 가족과의 실랑이가 시작됐다. 금반지를 타 오겠다는 나를, “다 사기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라며 다들 말렸다. 그것도 실실 웃어가면서. 아마 그 웃음 속에 ‘어리석은 놈’이란 뉘앙스가 들어있어서, 내가 더 떼를 썼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힘으로, 논리로, 당장 주머니에 없던 참가비 문제로(친척에서 받은 돈은 일단 몰수인 시절이었으니), 결국 노래자랑에 나갈 수 없게 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마냥 목 놓아 우는 일 뿐이었다. 그 이후에 얼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게는 ‘금반지 사건’이 제일 듣기 싫은 과거가 됐다. 금반지의 ‘금’자만 나와도 내빼기 바빴다.

이 노래는 라디오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고, 가끔 가요무대에서나 나오는데, 당시의 가슴 아픈 추억(?)을 소환한다. KBS라디오악단을 이끌던 김인배 단장이 관악기 주자라서 그런지, 서주와 간주를 장식한 트렘펫 솔로가 멋들어지다.

이미자 ‘섬마을 선생님’
나는 베이비붐 세대의 한 가운데인 1960년에 태어났다. 전쟁 이후에 한 가정에는 최소한 아이가 네댓 명은 있었고, 예닐곱인 경우도 흔했다. 우리 집도 여섯이나 됐으니, 공무원이던 아버지의 벌이로는 아무래도 가족을 건사하는 게 힘들었을 거다. 그에 대한 단기적인 해결책이라면 아이 중 하나쯤은 친가나 외갓집에 맡기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젖먹이나 학교에 입학한 자식을 내려 보낼 수 없었을 터이니, 자연스럽게 6, 7세의 아이가 제격이었을 것이며, 영광스럽게 내가 선발된 거다.

이렇게 해서 1966년 9월 무렵부터 이듬해 2월까지 나는 경기도 용인의 외갓집에서 지냈다. 당시에도 시골에는 아이가 많지 않아서, 나는 꽤 심심하게 보내야 했는데, 그나마 위로가 됐던 게, 외할머니와 함께 듣는 라디오드라마였다.

그 중에서 ‘섬마을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시작과 끝에 나오는 주제곡이 특히 좋았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선생님.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

지난 11월 친구와 동해안 해파랑길 750km를 함께 걸으며, 해당화를 참 많이 봤다. 늦가을이라 꽃은커녕, 야들야들한 잎사귀마저 말라있거나,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홍자색이기는 하나 꽃빛깔이 연하고, 단풍이 짙게 들지 않으니, 장미과의 열등생이지만, 곁에 두기에 부담 없는 친구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었다. 북한 땅 원산의 명사십리 해수욕장의 해당화가 특히 유명하다고 하는데,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다.

샤를르 트레네(Charles Trenet) ‘라 메르(La Mer)’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프랑스의 샹송, 이탈리아의 칸초네가, 영미의 팝과 황금비율로 라디오음악 프로그램을 장식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중에서 La Mer(라 메르=바다)라는 샹송은 아련한 심정으로 접했던 음악이다. 특히 이 곡을 작곡하고 부른 아티스트 Charles Trenet(샤를르 트레네)의 오리지널 음반이 아주 오래된 것(1946년)이라, 음질은 필터가 걸린 듯 먹먹했으며(심지어는 찌걱찌걱 축음기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 듯하다), 먼 듯 가깝고 가까운 듯 멀게 들릴 만큼 음량 또한 전혀 고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묘하게도 넘실대는 파도를 연상하게 하고, 저 멀리 해안선 밖의 꿈의 장소로 나를 안내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기타 코드나 피아노 코드를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 곡을 연주하면서 화성이 계속 바뀌는 것에 불편해하면서도 큰 재미를 느낄지 모른다. F Dm Gm C7 F Dm Gm C7 F A7 Dm C7 F Dm Bb D7 Gm C7 F Dm G G7 C C7 … 정말 쉴 새 없이 새로운 코드를 잡도록 채근하는 이 곡을, 무려 75년 전에 만들어 불렀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La Mer는 1950년대에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가 Beyond The Sea라는 다른 제목의 영어버전으로 여러 가수의 노래로 히트한 바 있다. 바비 다린(Bobby Darin),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조지 벤슨(George Benson)도 리메이크 했으며, 최근에는 로비 월리엄스(Robbie Williams)의 노래가 히트했다.

항해가 자유롭지 못 했던 시절에 사람들은 해안가에서 바다 저편을 보며 많은 상상을 했을 것이다. “저 바다 건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기다리고 있을 거다. 언젠가 배를 타고 가서 그녀를 만나야지. 그리고 날 거기에 데려다 준 선장에게, 난 더 이상 배를 탈 일이 없으니, 당신만 떠나면 되! 이러고 말 할 거야” 세상에 이렇게 낭만적인 노래가 다 있다니!! 오리지널 샹송가사는 좀 다르겠지만, 나는 샤를르 트레네의 노래를 들으며, 영어가사를 음미하곤 한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버닝 러브(Burning Love)’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72년으로 기억한다. 우리 집에 독수리마크가 선명한 성우전자의 스테레오 전축이 들어왔다. 덩치가 웬만한 장식장 크기는 족히 됐을 전축이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카세트 녹음이 가능한 데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AM와 FM 수신, LP음반을 들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 요즘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조악한 제품이었다.

통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던 큰 형은 음악에 꽤 관심이 있어서, 매일 밤 라디오 다이얼 이곳저곳을 돌리며, 어떤 때는 자못 심각하게 또 다른 때는 낄낄거리며 음악과 진행자의 얘기를 듣곤 했다. 당시에 가장 즐겨 들었던 프로그램은 MBC-FM <박원웅의 밤의 디스크쇼(후에 <박원웅과 함께>로 바뀜)>였다.

어느 날 형이 내게 부탁을 하나 하고 외출을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Burning Love’를 엽서로 신청해 놨으니, 노래가 나올 낌새가 보이면 재빨리 녹음을 해 두라는 얘기였다. 물론 노래보다는 자신의 이름이 불러지기를 원했던 거다. 전축에 동시 녹음기능이 없었던 지라, 마침 집에 있었던 일본제 납작 녹음기를 준비해 놓고, 포인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엘비스가 그 날도 <밤에 디스크쇼>에 출연하여 ‘사랑을 불태웠음’에도 불구하고, 형의 이름은 끝내 나오지 않았고, 나는 동작이 굼뜨다는 이유로 두고두고 억울한 원망을 들어야 했다. 이렇게 한동안 이 FM 음악프로그램은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거의 빼놓아서는 안 될 잠자리의 파트너가 되었다.

하지만 Burning Love를 통해 알게 된 <밤의 디스크쇼>가 결정적인 위력을 발휘해준 것은 바로 MBC입사의 계기를 마련해 준 일이 아닌가 한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까지 나는 그저 어지간한 기업의 무역관련 업무나 사무직의 평범한 직장생활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간지에 실린 MBC 공채시험 공고를 봤고, 라디오PD란 직종에 호기심을 느꼈던 거다.

“MBC-FM을 듣고 자랐습니다. 좋은 음악 프로그램을 하고 싶습니다” 이런 면접시험에서의 당당한 태도가 내게 합격의 영광을 가져줬으니 말이다.  

폴 모리아(Paul Mauriat) ‘Love Is Blue’
지금은 BTS의 열풍이 세계를 휩쓸고 있어서 K팝의 기세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여러 해 전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미국 빌보드차트에서 2위까지 오르며 돌풍을 일으킬 때 문득 프랑스의 악단 지휘자인 폴 모리아를 떠올리게 됐다.

젊은 댄스가수와 이미 세상을 떠난 대중음악 연주자가 어떻게 오버랩이 됐는가 하면, 이 둘은 공통되게 고유의 언어와 표현수법으로 누구도 예측하지 못 한 성공을 미국에서 거두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음악이라는 일본식 표현에 어울릴 만큼,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 계열의 무드음악으로 멸시 받던 폴 모리아가 어떻게 미국에서 차트 1위(Love Is Blue가 1968년 2월 10일, 빌보드 No.1)에 올랐는가 하면, 그것은 거대 미국시장 진출을 노리고 그들이 정서에 맞추려는 작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1970년 무렵부터 라디오에서 폴 모리아의 음악을 접해왔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동양적인 선율에다 탐미적인 연주 표현수법이라고 생각하며 감동했다. 그러니 수많은 라디오 프로그램이 폴 모리아의 음악으로 문을 열었고 문을 닫았을 것이다.

동아방송의 <밤의 플랫폼>에 흘렀던 이사도라(Isadora), 동양방송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에 나왔던 ‘시바 여왕(La Reine De Saba)’, <박원웅과 함께>의 ‘한여름 밤의 세레나데(Serenade To Summertime)’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의 테마송 ‘돌아와요 부산항에’까지 아마 폴 모리아가 없었더라면, 70~80년대 우리나라 라디오 방송은 과연 무엇으로 타이틀 음악을 했을지 의문이다. 물론 그 대표곡이자, 그의 인기에 불을 당긴 것은 Love Is Blue일 거다.

뜬금없이 드는 또 한 가지 생각이 있다. 1970년대 말 무렵에는 웬만한 가정에 전축이 한 대씩 있었다. 당시로 봐서는 획기적인 컬러풀한 색상의 LP전집에서 흘러나오던 폴 모리아의 산뜻한 음악이 실은 거의 해적판이었다는 사실이다. 1975년부터 네 차례나 한국을 다녀갔던 폴 모리아는 자신이 한국에서 인기가 그렇게 높았지만, 음반인세는 제대로 받지 못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나는 알았으리라 본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음악이 동양 저 변방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했을 것 같다. 그러니 천길 마다않고 한국을 다녀가지 않았을까.

이문세 ‘파랑새’
1984년 1월, MBC에 라디오PD로 들어와 수습기간을 거쳐 제일 먼저 맡았던 프로그램이 <이종환의 디스크쇼>였다. 입사한지 8개월 밖에 되지 않는 내게, 당시로 봐서는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떨어졌던 건, 실은 프리랜서 DJ로 있던 이종환 선배와 담당PD의 다툼 때문이었다.

이선희가 ‘J에게’란 노래로 대상을 받았던 1984년 강변가요제 때의 일이다. 결선 전야제로 <디스크쇼>가 공개방송을 가졌는데, 진행방식을 놓고 둘이 크게 다퉜다. 지금 같았으면 둘의 잘잘못을 가려서 한 쪽은 징계, 한 쪽은 속투(續投) 쪽으로 결론이 났으련만, 당시에 FM부장이 내린 결정은 둘은 떼어놓고, 신참PD인 나를 붙이기로 한 거다. 졸지에 입봉을 하게 된 나는, 대선배에게서 일찍 라디오PD로서의 감각을 익히게 됐고, 지금 생각해도 그게 37년 PD생활에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느낀다.

그해 가을에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주말마다<FM스페셜 이종환의 디스크쇼 공개방송>을 만들어 큰 인기를 누렸다. 그 때 자주 나왔던 가수가 이문세였는데, 청중의 반응도 반응이려니와, 마침 그가 옆방(MBC표준FM)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의 별밤지기로 있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섭외가 편해서 자주 출연시켰던 거다.

이종환 선배와 이문세는 티격태격 입씨름으로 화제를 낳았다. “이문세씨가 TV에 못 나오는 이유가 얼굴이 길어 화면에서 위아래로 잘리기 때문이라면서요?” 이러고 시비를 걸면, 이문세는 “이종환 선배는 화면 밖으로 코가 튀어나온다면서요?” 이런 식의 응수다. 당시에는 ‘난 아직 모르잖아요’라는 걸출한 히트곡이 나오기 전이라, 이문세에게 노래를 시키면서 이종환 선배는 또 한 방 먹이곤 했다. “이문세씨가 또 삐리삐리 파랑새를 부릅니다. 이 노래 밖에는 부를 만한 노래가 없습니다” 참 즐겁고 행복한 시절이었다.

디온 워윅(Dionne Warwick) ‘A House Is Not A Home’
우리나라에서 가요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건 1980년대부터가 아닌가 한다. 외국에는 결코 쓰지 않을 ‘발라드’라는 장르가 생기면서 가요가 본격적으로 영미의 팝송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이런 가요들은 멜로디가 아름답고, 연주 실력이 뒷받침 되면서 음악팬들을 모았지만, 거기에 빠뜨려서는 안 될 게 ‘가사’다. 가요의 장점은 팝과 달리, 들으면 가사가 바로 이해가 된다는 점, 한 편의 시로 내놔도 손색없는 가사들 덕택에 가요는 업그레이드 됐다.

나는 라디오PD가 되기 전에 팝송을 들으면서, 거기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음악을 트는 일을 직업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팝송의 가사를 파악하게 됐다. 하기야 뭔 주장을 펼치는 지, 어떤 애틋한 사랑얘기를 담았는지 알아야, 청취자에게 정확히 소개할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몇몇 작사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할 데이비드(Hal David)다. 그가 어딘가에 써놓은 작사 잘 하는 법까지 읽어 봤는데, 나도 한 번 작사가로 나서볼까 슬쩍 유혹도 받아봤다.

가사는 세 가지 요소에 충실하면서 쓰라고 한다. ‘그럴듯함(Believability)’ ‘단순함(Simplicity)’ ‘정서적 충격(Emotional Impact)’가 그것이다. 1964년 Dionne Warwick이 노래한 ‘집은 집이 아니랍니다’(A House Is Not A Home)은 할 데이비드의 작품 중에서 백미가 되는 가사로 내용이 감동적이다.

“의자는 여전히 의자일 뿐이지요. 거기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더라도. 그러나 의자는 집이 아니지요. 그리고 집은 집이 아니랍니다. 그곳에 당신을 안아줄 사람이 없을 때, 그리고 당신이 굿나잇 키스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때. (중략) 그러니 이 집(House)을 집(Home)으로 바꾸어주세요. 제가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면, 제발 거기 있어주세요. 당신이 아직 나를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조이(Joy) ‘Touch By Touch’ 그리고 비틀스(Beatles)의 ‘Yesterday’
1986년 가을 무렵, MBC라디오가 정동에서 여의도로 이사를 오고 얼마 안 있어 있었던 일이다. 당시에 회사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이란 여론조사를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아마 MBC-FM 개국 15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FM 음악방송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기획했을 것이다.

실은 어느 앙케이트든 대강의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바로 ‘너’)라는 게 있지 않은가 말이다. 팝송 프로그램에서 청취자에게 받는 올타임 리퀘스트 순위가 바로 조사결과일 것이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Beatles의 Yesterday나 Let It Be, Simon And Garfunkel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나 Sound Of Silence, Queen의 Bohemian Rhapsody, Deep Purple의 Soldier Of Fortune, 그리고 비교적 신곡이라면 마이클 잭슨의 노래들 따위 말이다.

이를 기획한 PD들 모두가 회심의 미소를 띠며 앙케이트지를 수거했는데 다들 크게 놀라고 말았다. 누구도 예상 못 하게 Joy의 Touch By Touch가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부른 다른 노래들이 상위를 싹 점한 거다. 다시 한 번 확인하건대 당시의 행사 타이틀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이었다. 한국인이 ‘최근에 좋아하게 된’이랄지, ‘좋아하는 팝송 신곡’이 아니었단 말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부서 PD들 모두 크게 당황해서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 결과, 궁여지책으로 이렇게 결론을 봤다. 애초에 우리가 기획한 건, ‘한국인의 올타임 리퀘스트곡 베스트’였지만, 이렇게 신곡들이 상위를 차지했으니, 부문을 둘로 나눌 수밖에 없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올드팝> <한국인이 좋아하는 최신팝>으로 분리하자. 이렇게 하고 보니 애초의 의도와는 달랐지만 단숨에 해결은 됐다. 결국 Joy는 Touch By Touch와 Beatles의 Yesterday가 나란히 1위에 올랐다. 이 사건이 내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 하나 더 남긴 셈이다.

폴 사이먼(Paul Simon) ‘Duncan’
내가 대학에 다니던 때는 ‘기타를 못 치는 사람을 간첩’으로 여기던 무서운 시절(?)이었다. 최소한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랄지 버블껌의 ‘연가’, 윤형주의 ‘우리들의 이야기’ 같은 포크송 몇 개는 꿰고 있어야 사람취급(?)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남녀가 유별한 시절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내내 겪어온지라, 이성을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도 적었으니, 여학생과 소통하는 기쁨을 누리기에는 통기타만 한 매개거리도 없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기타를 치기 시작했으니 좀 이른 편이었지만, 형이 치다 팽겨 쳐둔 걸 제대로 된 교본 없이 독학했으니 실력이 그다지 늘지 않았다. 다만 음감이 좋아졌다고 할까? 대중가요의 화성이 별로 복잡한 게 없으니, 어느 곡이라도 악보가 없이 코드만큼은 대충 잡아 칠 수준은 됐다.

그 실력은 대학의 MT에 가서 큰 빛을 발했고, 나는 자주 주목을 받았다. 통기타 잘 치는 아티스트로 내가 꼽는 사람이 바로 폴 사이먼이다. Simon And Garfunkel 시절부터 많은 곡들의 기타 반주를 보노라면, 다양하고 멋진 코드를 접하게 된다. 아름답고 신기한 하이코드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의 노래 중에서 쓰리핑거링(Three Fingering) 주법의 대표곡이 바로 Duncan이다. 팝 차트에 높은 순위에 오르지는 못 했지만, 그가 공연을 통해서 자주 선보였으며, 나도 한 소절 빠지지 않고 다 외우며 기타를 치며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곡이다.

* MBC라디오 조정선PD
1984년 1월 MBC라디오PD로 입사
<이종환의 디스크쇼> <한경애의 영화음악> <배철수의 음악캠프>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두시의 데이트> 등을 연출했으며 <조PD의 새벽다방> <조PD의 비틀즈라디오> <조PD의 레트로팝스>의 DJ 겸 PD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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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IZM 연말 결산 특집 Feature

2020 에디터스 초이스(Editors’ Choice)

이렇게도 조용한 크리스마스 연휴가 있었던가. 연말의 공연 열기로 뜨거워야 할 지금 길거리는 한산하기만 하다. 코로나 19, 팬데믹 시기 속에도 이즘은 열의를 다해 2020년의 음악을 기록했다. 대망의 마지막 조각을 공개한다. 이즘 에디터의 취향이 담긴 에디터스 초이스. 주관적이지만, 그렇기에 솔직한 멤버들의 개성 있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나보자.

김도헌’s Choice

에비뉴 비트(Avenue Beat)
‘F2020 Remix’ (Feat. Jessie Reyez) 
바이럴, 틱톡, 스포티파이, 그리고 코로나. Lowkey Fuck 2020.

저드(Jerd) ‘문제아’
정제되지 않은 불온함. 더 많은 문제아들의 등장을 바라며.

코나(KONA) ‘눈치가 없다 (Snail) (Feat. Youra)’
좌우를 굼뜨게 살피는 달팽이 한 마리. 신속히 상하로 요동하는 분노. 자주 보게 될 이름. 

이브 튜머(Yves Tumor)
< Heaven to a Tortured Mind >
얼터너티브 블랙 뮤직. 모타운, 소울, 펑크(Funk), 재즈에 익스페리멘탈 버무린 ‘새 시대를 위한 가스펠(Gospel For A New Century)’.

수(Sault) < Untitled (Black Is) >
2020 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정중앙을 관통하는 한 편의 뮤직 다큐멘터리. 블랙의 정체성을 묻고 블랙을 고양하며 블랙을 어루만지는 현대의 성스러운 부족 의식.

박수진’s Choice

김제형 < 사치 >
내 가치관과 닮은 음반. 유쾌하고 진지하고 쉽고도 확실하다. 포크, 재즈, 뉴잭스윙 등을 신나게 오가는 앨범으로 어떤 곡을 들어도 다 제맛이 살아있다. 올해의 발견, 올해의 수확. 김제형을 찾아라 프로젝트의 선봉장에 서봅니다.

앨리샤 키스(Alicia Keys) ‘Underdog’
청량한 멜로디에 진한 위로가 담긴 가사. 넌 할 수 있다는 힘찬 메시지가 마음을 톡톡 건드린다. 기대고 싶은 노래 기대고 싶은 목소리.

키디비 ‘오히려’
멋지다. 강하다. 키디비! 고난의 끝에서 이 갈지 않고 힘 빼며 풀어낸 자기 고백의 서사. 곡해 없이 알맹이만 봐도 전해지는 마음. 높고 자유롭게 날아올라라 키디비!

김일두 < 꿈 속 꿈 >
20살, 홍대의 한 라이브 클럽에서 흰색 반팔 차림으로 담배를 뻑뻑 피우며 노래하던 그를 기억한다. 그땐 다가갈 수 없는 무섭기만 한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무뚝뚝한 김일두의 목소리에는 관조가 아닌 우직함이 있다. 인생이 묻어 있어 자꾸 찾게 되는 거친 맛. ‘뜨거운 불’ 추천합니다.

선셋 롤러코스터(Sunset Rollercoaster)
< Soft Storm >
나른함과 여유. 재촉하지 않는 선율. 은근히 서려 있는 멜랑꼴리함까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외로움. 밀어낼 수 없는 고독함이랄까. 아 취한다. 천천히 그리고 깊게 음미하게 되는 선셋 롤러코스터만의 무드. 다가와 다가와 줘 베이비.

신현태’s Choice

로라 말링(Laura Marling)
< Song For Our Daughter >
단출한 구성과 멜로디, 노래를 부를 때 특유의 딕션과 호흡. 목소리 톤은 다르지만, 로라 말링은 우리가 사랑하는 ‘캘리포니아의 여왕’ 조니 미첼(Joni Mitchell)과 많이 닮아있다. ‘뉴 조니 미첼’이라는 수사가 아깝지 않은 작품.  

레몬 트윅스(The Lemon Twigs)
< Songs For The General Public > 
슈퍼트램프(Supertramp), 윙스(Wings)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다다리오 형제는 근사한 팝을 써낼 줄 아는 듀오다. 앨범의 수록곡인 ‘Live in favor of tomorrow’는 개인적으로 뽑는 올해 최고의 싱글이다. 과거만(?)을 좇는 대디록 마니아들에게 몰표를 받을만하며, 평단의 찬사를 이끌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을 아는 사람이 없다. 

테임 임팔라(Tame Impala) < The Slow Rush > 
견고함과 치밀함을 놓친 적이 없다. 등장과 현재까지 이토록 다양한 장르를 접목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다시금 출현했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하지만 이 시대 록 패밀리 최후의 보루라는 생각마저 들어 마음이 짠해진다. 

두아 리파(Dua Lipa)
< Club Future Nostaligia >  
나는 평생 록에 수절해온 해드뱅어다. 하지만 두아 리파는 상상속의 댄스 플로어에 올라가 디스코를 추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 Future Nostalgia >와 < Club Future Nostalgia >라는 이 연타로 록에 대한 지조를 지킬 수가 없게 한 것이다. 록 음악은 망했다.

데프톤스(Deftones) < Ohms >  
세기말 함께 트랜드를 함께 이끌던 동료 밴드들은 다들 어디로 갔나. 다 망해서 이젠 없다. 어렵사리 목숨 부지하고 있더라도 대부분 산송장과도 같은 신세다. 모두가 데프톤스 같았다면 어땠을까. 꾸준하게 잘하는 것을 오래도록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숭고한 과업인지 보여주는 베테랑.  

임동엽’s Choice

브루스 혼스비(Bruce Hornsby)
< Non-Secure Connection >
몽환적이고 두터운 본 이베어식 터치와 브루스 혼스비의 간결한 사운드에 2020년을 구원받았다.

머쉬베놈 ‘보자보자’
시작은 밈(Meme)이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오방신과 ‘허송세월말어라’
앨범 커버부터 악기들의 톤, 보컬까지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지만 이 맛깔나는 개성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청하 ‘Dream of you (With R3HAB)’
듣는 순간 벗어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인트로부터 각 절을 지나 후렴에 다다를 때까지 매력으로 똘똘 뭉쳤다.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 Ordinary Man >
록은 죽었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임선희’s Choice

5 세컨즈 오브 썸머(5 Seconds of Summer)
< Calm >
‘Youngblood’에 차분함 한 스푼 추가. 틴 에이지 감성에서 벗어나 살짝 내보이던 노련함이 마침내 자리를 잡았다. 올 한 해 내 플레이리스트를 점령한 앨범.

뉴 호프 클럽(New Hope Club) < New Hope Club >
하루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산뜻한 멜로디와 발칙한 가사.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Willow’
두툼한 카디건의 온기가 버드나무 잎을 타고 잔잔하게 흐른다. 바람에 따라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 기둥 안에는 ‘But I come back stronger than a ‘90s trend(난 어떤 유행보다 더 강렬하게 돌아왔지)’와 같은 포부가 단단하게 서려 있다.

엔시티 드림(NCT Dream)
‘무대로 (Déjà Vu; 舞代路)’
반짝이는 에너지 가득한 청춘! 그리고 7드림이면 말 다 한 거 아닌가요.

최유리 < 동그라미 >
‘모질고 거친’ 사람의 마음을 매끈하게 다듬어 줄 노래. 때로는 건조한 위로가 더 마음을 일렁이게 하니까.

장준환’s Choice

이권형 < 터무니없는 스텝 >
여러 현의 물감으로 자욱하게 풀어낸 초현실의 세계.

그림자 공동체 < 동요 / 할시온의 관 >
서정성의 풀을 얇게 펴 바른 찬연하고도 덧없는 숨결.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Oneohtrix Point Never)
< Magic Oneohtrix Point Never >
라디오 속 뿌연 주파수 너머, 시간의 패러독스를 포착하다.

댄 디콘(Dan Deacon) < Mystic Familiar >
13년 전, LCD 사운드시스템에게서 받은 감동의 재림! 총명한 빛을 내며 밀려오는 전자음의 파도.

100 겍스(100 gecs)
‘hand crushed by a mallet (Remix) (Feat. Fall Out Boy & Craig Owens & Nicole Dollanganger)’
온갖 기행과 우스갯소리로 뒤범벅된 기성 팝에 대한 종말 선언.

황선업’s Choice

옥상달빛 ‘어른처럼 생겼네’
유난히 힘들었던 2020년. 꾹꾹 담아뒀던 내 속마음을 대신 이야기해주는 노래.

에이비티비(ABTB) ‘nightmare’
연주, 노래, 구성 등 어느 하나 나무데 것 없는 7분 49초의 완벽한 하드록 대서사시. ‘이런 곡을 만들어 낸 삶은 그래도 나름 성공한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드비타(DeVita) < CRÈME >
과거의 것도 지금의 것도 이 둘을 섞은 것도 전부 잘한다. 단연 올해의 신인. 근데 왜 아무도 언급을 안하는거야.

스트록스(The Strokes)
‘Brooklyn Bridge to Chorus’
이토록 섹시한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나. 키보드 위에 기타가 얹혀지는 순간 소름이 쫙.

미레이(milet) < eyes >
일본 대중음악사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작품. 일본음악 얕보지 마라 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