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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퓨전 재즈 입문곡 10선

“아이고… 재즈는 어려워요” 음악 좋아하는 친구들도 혀를 내두르곤 한다. 3~4분 내외의 규격화된 팝송에 익숙한 이들에게 작곡과 연주가 즉흥적인 이 장르가 당혹스럽다. 하지만 재즈만큼 해방감을 주는 음악이 있을까? 무궁무진한 음악적 아이디어가 담쟁이덩굴처럼 뻗어 나간다. 재즈의 다른 이름은 자유다.

퓨전 재즈는 1960년대 말 재즈가 소울과 펑크(Funk), 록과 손잡아 탄생한 음악 장르다. 1980년대에 들어 점점 정통 재즈와 거리가 먼 아리송한 음악이 되어 순혈주의자들의 지탄을 받았으나 대중 친화성으로 진입 장벽을 낮추는 순기능도 수행했다.

초기 스타일부터 시간순으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한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갈래를 펼치는 등 재즈 입문의 경로는 다양하지만 처음부터 난해한 비밥이나 프리재즈를 들으면 좌절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기 재즈의 향취를 드리우면서도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다가오는 퓨전 재즈가 있다. 당신을 위해 엄선한 퓨전 재즈 열 곡을 들으며 재즈의 대양에 발을 담가 보는 건 어떨까?

제프 벡(Jeff Beck) ‘You know what I mean’ (1975)

퓨전 재즈 입문의 기억을 더듬어봤다. 동네 백화점 꼭대기 층에서 구매했던 제프 벡의 1975년 작 < Blow By Blow > 시작이 아닐까 싶다. 순위 매기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와 함께 그를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에 올려놓았고 세 명의 기타 영웅 중에서도 벡의 경력은 특히 변화무쌍하다. 블루스 록과 퓨전 재즈를 거쳐서 테크노까지 시도하는 다변적 음악색의 정점에 < Blow By Blow >가 있다. 스티비 원더가 벡에게 주려고 했던 ‘Superstition’을 불가피하게 먼저 발표해 그 부채감으로 선물한 ‘Cause we’ve ended as lovers’는 신성함을 품고, 초절정 기교가 빛나는 ‘Scatterbrain’이 면도날 연주를 들려준다.

앨범의 문을 여는 ‘You know what I mean’은 제프 벡 펑키(Funky) 기타의 진수를 보여준다. 두 대의 기타가 각각 선율과 리듬을 연주하며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고 그 밑을 맥스 미들턴의 간결한 건반 연주가 받쳐 주었다. 놀랍도록 정교한 프로덕션은 비틀스의 영광을 공유했던 조지 마틴의 솜씨. 국내에서는 <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 >의 오프닝 BGM으로 사용된 바 있다.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Black satin’ (1972)

재즈의 개척자 마일즈 데이비스는 < Birth Of The Cool >로 쿨재즈의 시작을 알렸고 < Kind Of Blue >로 모달 재즈의 이정표를 세웠다. 누구보다도 시대에 민감하게 감응했던 그는 1960년대 말부터 퓨전 재즈를 시도했고 < Bitches Brew >란 금자탑으로 넘보기 힘든 아성을 구축했다.

어느 장르가 그렇듯 퓨전 재즈도 아티스트별로 색채가 다르나 마일즈 데이비스의 곡들은 특히 전위성이 강해서 포플레이류의 편안한 음악을 예상한 이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준다. 다만 마일즈도 마커스 밀러와 손을 잡은 1980년대부터 힘을 뺀 대중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펑크(Funk)와 아방가르드를 섞은 1972년 작 < On The Corner >의 수록곡 ‘Black satin’은 마일즈의 고유색을 칠하되 상대적으로 곡 길이가 짧고 멜로디가 명확해 잊지 못할 잔상을 남겼다.

리턴 투 포에버(Return To Forever) ‘Sorceress’ (1976)

2021년 2월 세상을 떠난 칙 코리아는 방대한 경력으로 현대 재즈를 대표하던 피아니스트다. 196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연주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72년 ‘영원으로의 회귀’라는 멋들어진 이름의 밴드를 조직해 총 8장의 정규 앨범을 남겼다. 그 기간 정통 재즈 스타일의 앨범들도 발표했으나 리턴 투 포에버의 인상이 강렬했던지 퓨전 재즈를 대표하는 건반 연주자로 인식되고 있다. 후에 스티비 원더와 알 재로가 커버한 인스트루멘탈 명곡 ‘Spain’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리턴 투 포에버의 경력 중후반기에 발표된 1976년 작 < Romantic Warrior >는 갑옷 기사의 앨범 커버와 수록곡 ‘Medieval overture’처럼 중세의 숨결을 담고 있다. ‘여자 마법사’라는 뜻의 ‘Sorceress’는 기승전결의 전형적 구조를 탈피한 채 하나의 테마에 조금씩 변주를 주며 긴장감을 쌓아가고 이러한 곡 구성은 칙 코리아(키보드)-알 디 메올라(기타)-스탠리 클락(베이스)-레니 화이트(드럼)로 이뤄진 황금 라인업의 연주력으로 가능했다.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 ‘Birdland’ (1977)

193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조 자비눌은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미국에 당도한다. 알토 색소폰 연주자 캐논볼 애덜리의 음반에 참여하며 1960년대를 보낸 그에게 전기를 마련해준 건 마일즈 데이비스의 걸작 < In A Silent Way >와 < Bitches Brew >. 퓨전 재즈의 청사진을 제시한 두 장의 앨범에서 칙 코리아와 함께 건반 연주를 맡은 자비눌은 추진력을 얻어 1970년 불세출의 퓨전 재즈 밴드 웨더 리포트를 조직하게 된다.

체코 출신 베이시스트 미로슬라브 비투오스가 떠난 이후로 웨더 리포트의 음악은 더욱 펑키(Funky)해지고 대중적으로 변모했다. 빌보드 재즈 앨범 차트의 정상을 차지하며 가장 큰 상업적 성과를 기록한 1977년 작 < Heavy Weather >는 그 두 가지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하며 아이디어 고갈에 시달리던 퓨전 재즈 장르를 되살렸다. 동명의 뉴욕 재즈 클럽에 헌사를 바치는 ‘Birdland’는 웨인 쇼터의 상쾌한 테너 색소폰과 일렉트릭 베이스의 혁명아 자코 파스토리우스의 프렛리스 베이스 사운드가 빛난다. 후에 보컬 그룹 맨하탄 트랜스퍼와 거장 퀸시 존스가 색다른 커버 버전을 들려주기도 했다.

허비 행콕(Herbie Hancock) ‘Chameleon’ (1973)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의 음악 여정은 저 위대한 마일즈 데이비스만큼이나 복잡하고 장대하다. 연미복을 빼입고 모달재즈를 연주하던 청년은 약 20여 년 후 브레이크 댄서들과 좌우로 몸을 흔드는 ‘Rockit’ 의 퍼포먼스로 마이클 잭슨의 박수갈채를 끌어냈다. 정(靜)에서 동(動)으로, 그의 음악은 늘 꿈틀댔다. 1970년대를 오롯이 퓨전 재즈에 바친 행콕이 1973년에 발표한 < Head Hunters >는 빌보드 앨범 차트 13위를 기록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함께 인정 받았다.

15분에 달하는 오프닝 트랙 ‘Chameleon’에서 행콕은 펜더 로즈, 클라비넷 등 다양한 건반 악기를 활용하여 펑키(Funky) 사운드의 극대치를 기록한다. 베니 모핀의 테너 색소폰 솔로는 행콕 못지않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현란한 선율을 보좌하는 폴 잭슨과 하비 메이슨의 리듬 섹션도 탄탄하다. 근래의 많은 하우스 디제이들이 이 곡의 감각적인 소리샘을 추출해 퍼포먼스에 활용하고 있다.

스파이로 자이라(Spyro Gyra) ‘Morning dance’ (1979)

대중음악사에 한 줄이라도 언급될만한 위의 팀들에 비해 스파이로 자이라의 존재감은 미약하다. 하나 ‘깊이가 덜한 음악’이란 마니아들의 평가를 감내한 이들은 1974년 조직된 이래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활동하며 퓨전 재즈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그 중심엔 밴드의 창립자이자 건반 주자인 제이 베켄스타인이 있고 ‘녹조류의 일종’인 Spirogyra에서 따온 독특한 밴드명도 그의 작품이다.

싱그러운 마림바 연주와 베켄스타인의 아늑한 알토 색소폰 등 각 악기의 매력을 충실히 뽐내는  ‘Morning dance’는 빌보더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 1위, 싱글 차트 24위에 오른 밴드의 명실상부 최고 히트곡. 남아메리카 국가 트리니다드토바고가 고안한 타악기 스틸팬이 이국적 향취를 드러내기도 한다. 왠지 미용실 그림처럼 키치적인 느낌이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편하게 다가오는 퓨전 재즈 곡이다. 이목을 끄는 도입부 덕에 국내의 다양한 광고가 이 곡을 지목했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라디오 방송에서 애청되고 있다.  

리 릿나워(Lee Ritenour) ‘Rio funk’ (1979)

1980년대를 대표하는 퓨전 재즈 기타리스트 리 릿나워는 귀공자같이 곱상한 외모와 그에 상응하는 뛰어난 연주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솔로 활동 이외에도 퓨전 재즈의 올스타 밴드 포플레이의 초대 기타리스트로 석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조지 벤슨의 명곡 ‘Give me the night’와 패티 오스틴의 ‘Through the test of the time’에서 기타 연주를 들려줬다.

그가 1979년에 발표한 7번째 정규 앨범 < Rio >는 막강한 지원사격을 자랑한다. 퓨전 재즈 전문 레이블 GRP를 대표하는 데이브, 돈 그루신 형제가 건반 선율을 제공했고 < Heavy Weather >의 드러머 알렉스 아쿠나가 6, 7번 트랙에서 드럼 스틱을 쥐었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이름은 마커스 밀러. 오프닝 트랙 ‘Rio funk’에서 훗날 퓨전 재즈의 대표 베이시스트가 되는 밀러와 릿나워가 합을 주고받으며 주도권 다툼을 벌인다. MBC 라디오 프로그램 < 배철수의 음악캠프 >의 일요일 코너 < Sunday Special >의 시그널이기도 하다.

척 맨지오니(Chuck Mangione) ‘Give it all you got’ (1979)

트럼펫 사촌 동생 격인 금관악기 플루겔호른. 이름도 어려운 이 금관악기를 대중에게 알린 공은 이탈리아계 미국 음악가 척 맨지오니에게 있다. 1960년대부터 아트 블래키 앤 더 재즈 메신저스와 더 내셔널 갤러리 같은 밴드에서 활약했지만, 전성기는 명실상부 1970년대 후반. 국내 라디오 프로에서 숱하게 나온 1977년 작 ‘Feel so good’로 시대에 회자할 선율을 남겼고, 다음 해에 발표한 앨범 < Children Of Sanchez >가 1979년 제21회 그래미 시상식의 < Best Pop Instrumental Performance >를 수상하며 정점을 찍었다.

‘네 전부를 걸어봐’라는 제목처럼 도전적인 분위기의 이 곡은 6분이 넘어가는 러닝타임에도 지루할 새 없다. 곡의 주인공은 맨지오니지만 쉴 새 없이 여백을 채우는 찰스 믹스의 베이스 연주와 그랜트 가이스만의 감칠맛 나는 리듬 기타도 잊지 말아야 한다. 1980년 미국 레이크 플래시드 동계 올림픽의 공식 주제곡으로 특유의 역동성을 맘껏 뽐냈던 이 곡은 1980년대를 주름잡던 KBS 2FM 라디오 프로그램 < 황인용의 영팝스 >의 시그널로 사용되어 국내 청취자들에게 추억의 멜로디로 남아있다.

카시오페아(Casiopea) ‘Fight man’ (1991)

어쿠스틱 기타에 푹 빠진 학생들이 일본의 기타리스트 코타로 오시오의 ‘Fight’, ‘Wind song’에 도전하는 것처럼 ‘연주 꽤나 한다는’ 실용음악과 학생들은 ‘Fight man’으로 합주 실력을 검증하곤 한다. 3분 약간 넘는 짧은 곡이지만 쫀득한 베이스라인과 기타 키보드의 더블링 등 속이 알차다. 곡의 중반부 복싱 경기처럼 라운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베이스와 펑키(Funky) 기타가 용호상박의 자웅을 겨룬다.

티스퀘어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퓨전 재즈 밴드 카시오페아는 1979년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을 발표한 이래 장장 40년 넘게 현역으로 활약 중이다. 밴드의 주축은 기타리스트이자 메인 작곡가 노로 잇세이. 3기로 나뉘는 밴드의 타임라인에서 유일하게 밴드를 떠나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카시오페아 2기에 나온 1991년 작 < Full Colors >의 오프닝 트랙인 ‘Fight man’ 속 화려한 기타 솔로로 일본 최고의 퓨전 재즈 기타리스트 지위를 공고히 했다.

빛과 소금 ‘오래된 친구’ (1994)

MBC 예능 프로그램 < 나는 가수다 > 의 진행자로 활약했던 장기호와 김현식의 명곡 ‘비처럼 음악처럼’을 작곡한 박성식이 의기투합한 2인조 그룹 빛과 소금은 지난 몇 년간 시티팝 붐이 일면서 김현철, 윤수일과 함께 ‘한국 시티팝의 원류’로 재조명되었다. 이들은 동시대의 봄 여름 가을 겨울보다 인지도는 약했지만 1990년대 가요의 세련미를 책임지며 마니아를 결집했다. 후대에 다양한 후배 뮤지션들이 리메이크한 ‘샴푸의 요정’과 감정에 충실한 발라드 넘버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가 대표곡.

이들의 정규 4집 < 오래된 친구 >의 타이틀곡인 ‘오래된 친구’는 빛과 소금의 곡 중에서도 특출나게 펑키(Funky)하다. 초반부 재치 있는 보코더의 사용은 장기호 특유의 감미로운 음성으로 이어지고, 간결과 화려를 넘나드는 박성식의 건반 연주가 곡의 지지대 역할을 한다. 결혼식 입장곡을 연상하게 하는 오르간 소리와 통통 튀는 베이스 슬랩으로 간주도 빈틈없이 채웠다. 기교를 뽐내면서도 대중적 감각을 포용한 한국 퓨전 재즈의 보석 같은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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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1 에디터스 초이스(Editors’ Choice)

평범한 일상을 빼앗긴지 어언 2년. 맘 편히 얼굴을 맞대지 못했던 만큼 마음의 거리도 쉽게 가까이할 수 없는 한 해였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음악은 멈추지 않았고, 벌어진 틈을 충실히 채웠다. 혼란스러웠던 2021년, 이즘 에디터의 공허함을 달래준 노래는 무엇일까. 개인의 취향을 눌러 담아 엄선한 플레이리스트지만 필자들이 이즘 독자들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이기도 하다. 음악을 벗삼는 모두의 가슴 깊은 곳까지 진심이 전해지길 바란다.

장준환’s Choice

인저리 리저브(Injury Reserve) ‘Knees’
실연과 실험으로 뒤엉킨 성장통, R.I.P. Jordan Groggs.

스프레이, 블라세(Spray, Blase) ‘City (Feat. SUMIN)’
훗날 코로나 종식을 기원하며,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모임 별(Byul.org) < 영화 십개월의 미래 OST >
OST의 탈을 쓴 정교한 플런더포닉스.

턴스타일(Turnstile) < Glow On >
< Sunbather >의 찬란한 메카 위로 흩뿌려진 펑크 클라우드.

리차드 도슨 & 서클(Richard Dawson & Circle) < Henki >
디오라마의 좁은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레퀴엠.

정다열’s Choice

랭페라트리스(L’Imperatrice) < Tako Tsubo >
디스코로 수놓은 영롱한 파리의 밤거리. 감각적인 연주에 몸을 흔들며 다프트 펑크 해체의 아쉬움을 날려보자. (프랑스 밴드지만 한국인 멤버도 속해 있다.)

에스에프나인(SF9) ‘Tear drop’
‘질렀어’에 떨어뜨린 눈물 한 방울. 아련함과 섹시함이 황금비를 이루는 K팝 퍼포먼스의 정점.

맨 아이 트러스트(Men I Trust) < Untourable Album >
코로나라는 폐쇄적 상황이 낳은 발상의 전환. 안개처럼 자욱이 드리운 베이스는 답답할 수 밖에 없었던 2021년의 요약이다.

우주소녀 더 블랙(WJSN THE BLACK) ‘Easy’
절제할 줄 아는 블랙의 시크한 도발. 그래, 팬들이 원하는 유닛 활동은 이런 거지!

슝구조(Shungudzo) < I’m Not A Mother, But I Have Children >
평화적이면서도 격렬한 저항이다. 짐바브웨 출신의 체조 선수가 음악 위를 날아오르는 순간, 차별로 얼룩진 시스템이 희망차게 무너진다.

염동교’s Choice

닉 케이브 & 워런 엘리스(Nick Cave & Warren Ellis) ‘Hand of god’
그토록 섹시했던 목소리가 세월을 머금어 신성함을 드리운다.

음두 목타르(Mdou Moctar) ‘Afrique victime’
서방세계와 아프리카를 대륙 횡단하는 7분간의 기타 서사시.

아이스에이지(Iceage) < Seek Shelter >
과거의 자양분을 담뿍 흡수하고도 결코 고루하지 않다. 강력한 펑크(Punk) 기타와 절규에 빙벽이 쩍하고 갈라진다. 

아루지 아프탑(Arooj Aftab) < Vulture Prince >
포크와 재즈, 파키스탄의 에스닉까지 모두 합쳐 아루지 아프탑! 사막에 홀로 누워 검은 하늘을 바라보자 별이 우수수 떨어졌다.

스파크스(Sparks) < Annette (Cannes Edition – Selections From The Motion Picture Soundtrack) >
스파크스와 레오 카락스, 두 괴짜가 공유한 환상계. 처절하게 아름답다.

손기호’s Choice

마크 호미(Mach-Hommy) < Pray For Haiti >
‘자유의 나무는 다시 살아나 땅속 깊이 수많은 뿌리를 내리다.’ 아이티계 미국인 힙합 아티스트가 다시금 가꾸어낸 붐뱁이란 고목(槁木).

제이호 < Locals Only >
복잡한 일상 속 우연히 발견한 자연으로의 초대장. 호스트 제이호가 차린 느슨한 푸른색 휴식.

윤하 < Younha 6th Album ‘End Theory’ >
여행을 마친 혜성의 조각이 천체 곳곳에 찬란하게 새겨지다. 그동안의 고민이 헛되지 않았기에, 오랜 시간 증명한 아티스트의 우주가 다시금 팽창한다. 

하트코어(HEARTCORE) < Heartcore >
훗날 국내 힙합의 심장 박동이 무뎌졌을 때 필요한 가장 힙한 심폐소생술.

디피알 이안(DPR IAN) < Moodswings In This Order >
타인의 온기를 받아들이자 그제야 드러난 깊은 상처. 세련된 ‘불안’이 이곳에 피어나다.

정수민’s Choice

엔시티 드림(NCT DREAM) ‘고래 (Dive into you)’
유니즌 코러스를 타고 청량함의 바다 속으로 풍덩!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 Fearless (Taylor’s Version) >
10대 시절을 오롯이 소유하기 위한 용기.

그리프(Griff) < One Foot In Front Of The Other >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딛는 정교한 프로덕션.

위클리(Weeekly) < We Play >
그립고도 환상적인 틴에이지 판타지.

트웬티 원 파일럿츠(Twenty One Pilots) < Scaled And Icy >
파스텔 톤으로 덧칠한 팬데믹의 불안과 외로움.

김성욱’s Choice

웨더 스테이션(The Weather Station) < Ignorance >
이별이라는 고요한 숲 속에 흩뿌려진 포크 앙상블. 그곳의 날씨는 흐림.

오마이걸(OH MY GIRL) ‘Dun dun dance’
넥스트 레벨, 에이쎕, 그리고 던 던 댄스. 2021년에도 ‘또 물보라를 일으켜.’

블랙 키스(The Black Keys) < Delta Kream >
‘응답하라 힐 컨트리 블루스.’ 21세기를 대표하는 아메리칸 블루스 듀오의 뿌리를 찾아서.

워 온 드럭스(The War On Drugs) < I Don’t Live Here Anymore >
영혼을 파고드는 사운드스케이프. 사색의 결과로 연결한 하트랜드 록의 찬란한 계보.

불고기디스코(BULGOGIDISCO) < Discovid >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춤이 들어간다! 제발 숨 좀 쉬고 삽시다.

임동엽’s Choice

엘튼 존(Elton John) < The Lockdown Sessions >
엘튼 존 경(卿)을 존경하는 이유.

모네스킨(Måneskin) ‘Beggin”
고전을 들어야하는 이유.

창모(CHANGMO) ‘태지’
‘Meteor’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 위켄드(Swedish House Mafia, The Weeknd) ‘Moth to a flame’
몰입. 음악에 빠져든 경험이 있는가.

존 바티스트(Jon Batiste) ‘I need you’
천재들은 어디서 자꾸 나타나는가.

소승근’s Choice

브레이브걸스 ‘Fever (토요일 밤의 열기)’
‘치맛바람’에 날아간, 날렵하고 섹시한 2021년의 애시드 재즈. 해외 진출은 이 곡으로. 

브레이브걸스 ‘술버릇 (운전만해 그후)’
1980년대 유로 댄스와 프로듀싱 팀 스톡-에이드킨-워터맨 스타일의 댄스팝을 이식한 복고적인 어덜트 컨템포러리. 

얼라이븐 ‘시간을 건너 (Feat. 조하)’
히트곡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몰라도, 유명하지 않아도 듣기 좋은 노래는 늘 있어왔다. 

마시멜로, 조나스 브라더스(Marshmello, Jonas Brothers) ‘Leave before you love me’
위켄드를 많이 참고했어도 이렇게 좋은 노래라면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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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Splash of the Year 2021

Splash of the Year : 한 해를 조각내 음악 신의 주목해 볼 사건을 뽑는 이즘 내 연례행사.

스플래시가 벌써 9회차를 맞이했다. 1년은 과연 그간의 일들을 톺아내기에 충분한 시간일까? 우리의 스플래시에 어떤 경향성을 띤 시선이 자리하지는 않았을까? 돌아보며 올해는 조금 색다른 스플래시를 준비했다. 오랜 시간, ‘더불어올해 역시음악계에 벌어진 사건을 뽑아 그것의 내면을 한 번 더 찔렀다. 사건의 전시와 생각거리를 동시에 제시하려 했달까. 음악. 어떻게 들었고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함께 얘기 나누고자 한다.

1. 오디션 프로그램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라고 했지만 어디에도 패자는 없었다. 올해를 반추할 때 < 스트릿 우먼 파이터 >, 일명 ‘스우파’는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맨 앞에 선다. 2009년 엠넷의 < 슈퍼스타K > 이후 오랜 시간 대중의 곁을 ‘스친’ 오디션 프로그램의 적나라한 수법에 지쳐버린 지금. 기 센 언니들의 “자존심을 건 생존경쟁”은 전례 없이 화끈했다. 거침없는 직언, 거리낌 없는 춤사위, 여기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숨겨졌던) 서사까지. 열광, 열풍을 만들 요소가 넘쳤다.

여성이 전면에서 주도권을 쥐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지만 스우파가 견인한 ‘댄스’ 열풍은 대단했다. 각종 숏폼 플랫폼에는 2차 계급 미션 때 췄던 ‘Hey mama’를 패러디한 영상들이 넘쳤다. 또한 서브컬쳐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왁킹과 보깅.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진 비보잉(브레이킹) 혹은 (걸스) 힙합 등이 수면 위로 떠 오른다. 모두 여성들의 손길을 거쳤다. 특히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 질 스콧의 ‘Womanifesto’를 차용해 섹스(Sex) 아닌 젠더(Gender)를, 성 너머 개인의 가치를 다룬 것은 단연 올해의 베스트 모먼트.

쇼미더머니가 세상을 망치는 중이야

라고 < 쇼미더머니10 >에 출연한 악뮤(AKMU) 찬혁은 노래했다. 몇 마디 앞서 뱉은 “이건 하나의 유행 혹은 TV 쇼”라는 가사 역시 그저 실소에 그칠 비유가 아니다. 2012년 출발한 ‘쇼미’는 이후 < 고등래퍼 >, < 언프리티 랩스타 > 등으로 가지 쳐졌다. 오늘날 은 그리고 힙합은 그야말로 2010년대를 강타한 선 굵은 유행이며 십 대와 이십 대의 감수성을 품고, 푸는 핵심 장르. 날 서고 거친 정서를 대변하고 때론 아픈 상처에 연고를 발라버리며 스웨그(SWAG)까지 챙긴다. 어느덧 10년을 맞이한 ‘쇼미’의 인기로 미뤄볼 때 ‘쇼미더머니가 세상을 (어떤 지점에서) 뭉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트로트와 케이팝

힙합 댄스 락 발라드도 좋지만 슬플 땐 what?”

2019년 TV조선에서 방영한 < 내일은 미스트롯 >에 이어 2020년 < 내일은 미스터트롯 >의 대흥행은 2000년대 초 장윤정, 박현빈 이후 모처럼 트로트의 재림을 이끌었다. 이찬원, 영탁, 정동원 그리고 임영웅 등 ‘트로트계의 아이돌’들이 중장년층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올해 9월 대장정의 막을 내린 < 사랑의 콜센타 >가 이들의 인기를 대변했고 코로나19로 상황이 여유롭지 않았음에도 < 미스터트롯 >발 콘서트가 전국을 누볐다. 12월의 끝 ‘테스형’ 나훈아, 심수봉에 이어 임영웅이 공중파에서 단독 콘서트를 선보인다는 점 역시 트로트의 열기를 가늠케 한다.

“I’m on the next level”

K팝, K팝, K팝! 힘차게 외연을 확장 중인 오늘날의 K팝은 비단 벽에 걸린 그림이 아니다. 오히려 또 다른 가능성을 잇는 창문. 올해에도 방탄소년단은 한국 너머 전 세계를 순항했다. 수많은 효자곡이 있었지만 가장 큰 성과를 안긴 건 ‘Butter’. 자그마치 빌보드 싱글차트 10주간 1위를 거머쥐며 역사를 썼다. 뒤이어 ‘Permission to dance’, 콜드플레이와 함께한 ‘My universe’가 정상에 올랐고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인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의 ‘올해의 아티스트’ 부문 수상 역시 BTS의 것이었다.

선배 그룹의 성장에 힘입어 4세대 아이돌로 칭해지는 ‘뉴’ 세대의 성장도 돋보였다. 그중 ‘가상의 아바타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독보적인 콘셉트로 활동한 에스파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블랙맘바(Blackmamba)를 찾으러 광야로 떠난다’는 설정의 싱글 ‘Next level’이 다소 난해한 설정과 별개로 세상을 달궜다. ‘디귿댄스’에 자유로울 사람은 없었다. 뒤이어 발매한 첫 번째 EP < Savage >의 성공은 에스파식 21세기형 혼종성의 확실한 한방.

특히 Savage 즉, 맹렬한 혹은 ‘쎈’의 뜻을 가진 단어는 에스파와 같은 4세대 걸그룹의 핵심이다. 블랙핑크의 ‘Pretty Savage’, 있지(ITZY)의 ‘달라달라’, 이외에도 (여자) 아이들, 전소미 등 여성 아이돌의 방향성은 확연히 과거와 다르다. 그것이 시대상을 반영한 속셈 있는 처세술일 지어도 이 변화는 분명 어렴풋하게나마 ‘넥스트 레벨’로의 도약을 그린다.

3. 역주행

상상에 상상에 상상을 더해서 / 그대여 내게 말해줘 사랑한다고

올해도 꿋꿋이 역주행이 찾아왔다. 4년 만에 빛을 본 브레이브걸스 ‘Rollin’’ 앞에 불순물은 감히 엉겨 붙지 못한다. 군통령. 오랜 무명 기간 동안 쉬지 않고 찾아간 군대 위문공연이 브레이브걸스에게 드디어 형형 빛깔 색을 입혔다. 특별한 홍보는 없었지만 한 유튜버가 올린 ‘롤린 댓글 모음 영상’이 역주행의 불을 지폈다. 기다리고 있었단 듯 롤린롤린롤린, ‘Rollin’’이, ‘운전만 해’가 역주행했고 이후 발매한 ‘치맛바람’이 정주행에 성공, ‘브걸’은 대세 가수가 됐다.

유튜브란 뉴미디어가 만든 역주행도 있었지만 작년과 같이 올드미디어의 대표 격인 TV 방송이 만든 역주행도 있었다. < 놀면 뭐하니? >가 놀지 않고 성실히 만든 ‘부캐’ MSG 워너비 TOP8이 부른 바로 그 노래. 라붐의 ‘상상더하기’가 차트를 뒤집었다. 2016년에서 2021년으로. 발매 5년 만에 음원 순위 상위권 진입이란 상상은 현실이 됐다.

4. 코로나

그리고 코로나. 벌써 횟수로 3년째 전 세계를 굳게 만든 코로나가 올해도 어김없이 음악 신을 옭아맸다.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활용한 ‘온택트(Ontact) 콘서트’가 성행했다. 대면 콘서트에서는 함성 대신 박수로, 혹은 소리 나는 인형 등을 통해 마스크에 갇힌 흥겨움을 토하는 진풍경도 있었다. 11월경 규제가 완화되며 공연계가 활기를 되찾는가 했지만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무대의 열기는 짧게 오르고 빠르게 식었다.

활동이 제한되며 시선은 메타버스, NFT(대체 부가능한 토큰)으로 이동했다. 현실보단 가상이, 온라인상의 저작권이 화두가 됐다. 블랙핑크, 트와이스, 방탄소년단이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통해 팬들과 소통했다. NFT 또한 음악 산업의 자본가들을 움직였다. JYP, 빅히트, YG 등의 거대 기획사가 NFT로 눈을 돌렸고 며칠 전 브레이브걸스의 NFT 상품 400개가 1분이 채 안 돼 완판된다.

그리하여 결론. 숏폼 플랫폼, 유튜브, 뉴미디어, 메타버스, NFT. 음악은 이제 단순히 귀로 듣는 차원을 넘어 숏폼 플랫폼을 통해 자신을 뽐내고, 유튜브, 뉴미디어 등으로 재밌게 즐길 거리로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메타버스, NFT 등의 거대 자본, 새로운 기술은 이 음악들의 산업적 가치를 튼튼하게 지탱, 우리 음악의 세계화에 발판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듣는 음악에 우리의 취향은 얼마나 반영될 수 있는가. 결국은 모두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 ‘들리는 대로 듣게 된 음악’. 혹은 ‘들렸기에 즐기게 된 음악’인 것은 아닐까? 이 사이 힘을 잃는 건 어쩌면 자신의 음악을 독립적으로 쓰고 있는 많은 인디 뮤지션이 될 것이다.

비슷하게 십 대, 이십 대가 열렬히 힙합을 따라부를 때 최신 취향과 멀어진 중장년층이 트로트에 몰두하는 세대 간의 격차, 음악 청취 층의 이분화 속 ‘음악의 다양함’, ‘음악이 주는 여러 가지 감정들’, ‘음악이 묘사하는 여러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대 알고리즘의 시대. 음악으로 표현되고, 표출될 수 있는 문화가 더 자주 그리고 더 쉽게 세상에 흐를 수 있기를 바란다. 내년 스플래시에는 보다 새로운 이야기와 사건들을 더 뾰족하게 담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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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1 올해의 팝 앨범

팝의 태동이 심상치 않다. 진부함과 고립에 질린 저마다의 아티스트가 파격적인 변신을 거듭하고, 곳곳에서 새로운 문화의 흐름이 연달아 터져 나오는 추세다. 바다 건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솔깃한 소식에 귀가 쉴 새 없는 한 해다. IZM이 2021년을 일목요연하게 간추릴 팝 앨범 10장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 < Jubilee >

뜻밖의 변화였다. < Psychopomp >의 곤두선 감정이나, <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 >식 심연의 소음이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예측을 깼다. 그루브 넘치는 ‘Be sweet’이 선공개되는 순간 앨범의 비범함을 감지했다. 어머니와의 사별에서 파생된 비극적인 감수성을 깊게 가라앉은 소리로 토해내던 그가 보다 다채롭고 밝은 색감의 노래들로 펼친 변신은 예상 밖이지만 아름다웠다. 비로소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팔레트의 확장이었다.

사랑과 상실 등 복잡다단한 감정 전개에도 음악에 귀가 번뜩 뜨인다는 점이 변화의 성공을 천명한다. 치열한 내면의 심상을 가다듬으면서도 난해하지 않은 건 한 곡 한 곡 자체의 매력에 충분히 집중한 덕이다. 드라마틱한 멜로디의 정교한 버무림에 홀린 듯 스며들고 주류 음악 신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보컬의 매력은 듣는 이로 하여금 쉽사리 앨범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아물지 않은 트라우마 그 너머 음악으로 되찾은 용기와 자긍심이다. (이홍현)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 Happier Than Ever >

2019년 청소년기의 불안정한 심리를 대변한 소녀는 ‘Bad guy’로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를 점령했고, 곡이 실린 <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로 62회 그래미 어워드 본상을 휩쓸었다. 가수에게 음악으로 주목받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지만 도를 넘어선 관심은 노래가 아닌 외양을 향했다. 어린 시절 정신 질환의 주범이었던 ‘침대 밑의 괴물’이 허상에 불과했다면 실재하는 ‘익명의 누군가’는 유명인이 떠안아야 하는 새로운 트라우마를 선사한다. 그러나 Z세대 팝스타는 물러서지 않는다.

명예에 뒤따른 희생을 들여다보는 단위는 싱글이 아닌 앨범으로 규정한다. ‘Bad guy’나 ‘Bury a friend’ 같은 히트곡으로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낯설 수 있다. 그럼에도 포근한 재즈를 공유하고, 익히 들은 고딕 하모니를 재소환하고, 록 사운드로 희망 섞인 비명을 토해낼 때 예술가의 암울한 현실을 온전히 전한다. 내면 깊은 곳부터 끌어올린 울부짖음에 디지털 시대의 명암이 깜빡이는 순간, 빌리 아일리시는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정다열)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 < Call Me If You Get Lost >

개인적 비극과 사회 문제, 물질적 욕구, 사랑 등 공통점 없는 소재가 공존하기에 어쩌면 일관되지 못한 가치관이 혼란스럽다. 그렇기에 < Call Me If You Get Lost >는 한 창작자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전기(傳記)다. 그를 규정짓는 보편적인 것들로부터 싸워온 타일러의 행보가 널브러진 작품의 문법은 ‘랩’. 래퍼로서의 특정을 거부했던 전작 < Igor >란 족쇄에 묶인 예술가가 2000년대 중반 믹스테입 시대의 형식을 빌려와 또 다른 해방을 갈망한다. 어느 때보다 창작 욕구를 불태웠던 당시의 순수로 회귀하며.

두서없이 펼쳐지는 서사는 프랑스 시인 샤를 보를레르에서 따온 페르소나 ‘타일러 보를레르 경’의 단단한 래핑으로 예술성을 획득한다. 고전적인 힙합 작법을 중심으로 재즈부터 하드코어, 알앤비, 보사노바 등 그동안의 타일러를 응축한 트랙들이 개연성을 무시한 채 각자의 존재를 드러낼 법하지만, 이를 억제하고 유기적으로 이어가는 정제 능력도 단연코 뛰어나다. 미로처럼 얽힌 구성에 지향하는 목표를 쉽게 알 수 없지만 애초에 정해진 출구는 없다. 행하는 방식이 곧 길이 되오니. 이에 타일러 자신을 집대성한 앨범은 오히려 그를 하나의 영역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남기며 대중과 평단에 자유를 선언한다. (손기호)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 < Justice >

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울려 퍼진 팝송 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Peaches’일 것이다.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간결한 비트와 독자적인 감성으로 이상적인 대중성을 발현하는 가창. 처음엔 별 반응 없던 이들이 어느덧 이 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중독성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그는 지난 앨범 < Changes >(2020)의 부진한 성적을 단번에 만회하며 팝스타의 지위를 탈환했다.

그렇다고 앨범에 이 곡만 있는 것은 아니다. ’Peaches’ 외에도 들을 거리가 산적하다. 리드미컬한 가스펠을 의도한 ‘Holy’, 1980년대의 신스팝 스타일을 활용한 ‘Die for you’, 마치 파워 발라드를 듣는 듯한 의외성이 돋보이는 ‘Anyone’ 등 어색하지 않은 한도 내에서 음악적인 변주 또한 충실히 이행했다. 무엇보다, 신앙심에 기반한 자기반성과 각오가 노래에 진정성을 배가시키고 있다는 점이 크다. 감상이 거듭될수록 가랑비에 옷 젖듯 그의 서사에 동화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만큼 음악과 자아의 일체감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겨우내 찾은 내면의 평화가 많은 음악 팬들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그 경이로운 광경. 이 작품을 통해 생생히 체험할 수 있을 터. (황선업)

도자 캣(Doja Cat) < Planet Her >

세련되고 화려하지만 복작거리지는 않는 쇼핑몰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도자 캣의 세 번째 정규 앨범 < Planet Her >는 팝, 알앤비, 힙합을 큰 줄기로 하면서 아프로비트, 레게톤, 멈블 랩, 트랩 등 여러 스타일로 가지를 뻗는다. 꽤 다채롭게 구성했음에도 곡들의 사운드가 매끈해서 조금도 어수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군살 없는 프로듀싱이 앨범을 한층 말쑥하게 만들어 줬다.

도자 캣의 보컬 또한 음반의 세공을 거든 주역이다. 묵직하지 않은 음성 덕분에 앨범은 내내 살랑거리는 모양을 띤다. 느린 템포, 잠잠한 곡에서는 미성이 부드러움과 어둑한 분위기를 증대한다. 이와 더불어 곳곳에서 박력과 탄력 있는 래핑을 펼침으로써 생기, 리드미컬함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도자 캣의 능란한 보컬과 유행의 선두에 위치한 곡들이 만나 바로 체감 가능한 상승효과를 몰고 왔다. (한동윤)

리틀 심즈(Little Simz) < Sometimes I Might Be Introvert >

메간 더 스탈리온, 도자 캣, 카디 비 같이 현재 차트의 소유권을 차지한 대다수의 주류 여성 래퍼만큼이나, 동시에 매년 언더그라운드에서 묵직한 실력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여성 랩 스타가 등장하고 있다. 서정성을 무기 삼으며 상징적인 키워드를 하나씩 점유한 이 아티스트들이 그렇다. ‘익명’ 아래 행해지는 무소불위의 폭력을 노래한 노네임, ‘헌정’을 기반으로 갈등과 차별 앞에 목소리를 내세운 랩소디, 그리고 치장된 껍질에 가려진 진실 어린 ‘내향성’에 초점을 둔 올해의 주인공 리틀 심즈다.

장대한 오프닝 트랙 ‘Introvert’부터 ‘Miss understood’의 개운한 해방까지 이어지는 한 시간의 러닝타임 전부가 하이라이트다. 유연한 움직임 속 꽉 찬 펀치를 뻗는 ‘Woman’, 뮤지컬적인 연출로 몰입감을 획득하는 ‘I love you, I hate you’와 ‘Standing ovation’, < Grey Area >의 날카로움을 계승한 ‘Speed’ 등 수많은 킬링트랙이 고점을 거듭 갱신한다. 웅장한 현악 세션과 정교한 샘플링을 배가한 프로덕션은 감정의 광활한 폭을 따스하게 포용하고, 날렵하고 탄탄한 래핑이 그 이음새를 이어붙인다. 정통성을 극한으로 다듬어 대중과 평단을 모두 포획한 올라운더 < Sometimes I Might Be Introvert >가 쟁취한 것은, 한 아티스트의 입지적 작품이라는 영예만이 아닌 2020년대 명반의 새로운 바이블로 장식되었다는 선포다. (장준환)

알로 파크스(Arlo Parks) < Collapsed In Sunbeams >

데뷔 싱글 ‘Cola’로 영국의 신인 등용문 BBC 사운드 오브 시리즈에 이름을 올린 2000년생 시인 겸 싱어송라이터 알로 파크스는 매체에 구애받지 않는 뛰어난 창작가다. 은유적, 압축적인 시와 달리 음악에서 그의 섬세한 시선은 명징한 언어로 치환된다. 특히 우정, 양성애, 인간관계에 대한 혼란 등 노랫말에 녹아든 일상적인 감정의 편린은 듣는 이의 마음에 가닿으며 빛을 발한다.

카메라 필름의 한 종류인 마지막 트랙의 이름 ‘Portra 400’이 시사하듯 앨범에는 보편적인 노스탤지어도 녹아있다. 소울과 재즈를 적절히 버무린 ‘Hurt’, 트립합 스타일의 비트를 사용한 ‘For violet’ 등 다채로운 재료는 신인 뮤지션의 개성을 집약적으로 표현한다. 알로 파크스의 목소리는 햇살이 쏟아지는 하늘처럼 맑지만 예리한 시선과 고찰은 천진하지 않다. 거리두기로 사람들과 체온을 나누기 어려운 시대에 걸맞은 따뜻하고도 첨예한 앨범이다. (정수민)

블랙 컨트리 뉴 로드(Black Country, New Road) < For The First Time >

2018년 런던에서 결성되어 발매한 그들의 데뷔 작은 현 포스트 록 신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자유로운 타 장르간 이합집산은 록 밴드 기본 구성에 바이올리니스트와 색소폰 편성을 더해 더욱 유기적으로 다가온다. 이들의 전위적인 스타일은 프리 재즈(Free Jazz)에서 감지되는 확장성과 매쓰 록(Math Rock)의 복잡다단한 리듬에서 온다. 이 독창적인 조합의 결과물은 록 신 ‘올해의 발견’이다. (신현태)

레미 울프(Remi Wolf) < Juno >

트렌드를 반영한 뮤지션을 ‘발견’하는 것은 즐겁다. 레미 울프. 아직 이름이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 유명 광고에 그의 노래가 쓰였고 음악 디깅을 좀 한다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반향이 생기고 있다. 특징은 자신을 잘 꾸밀 줄 안다는 것. 다양한 컬러를 조합해 옷을 입고 그 형형색색의 빛깔이 그대로 뮤직비디오를 수놓는다.

음악 역시 외적 차림과 닮았다. 짧은 러닝타임의 수록곡들이 전자음을 중심으로 펑키하고 발랄하게 울려 퍼진다. 그의 음악 안에 팬데믹의 흔적은 없으며 되레 우리의 머리를 끄덕이며 뛰게 할 것들이 가득하다. 올리비아 로드리고, 더 키드 라로이, 릴 나스 엑스 등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출생의 뮤지션들이 음악계를 뒤흔드는 와중 1996년생의 레미 울프가 당차게 출사표를 냈다. 쫀쫀하고 촘촘하게 엮인 유기적인 음반 속 요새 음악의 매력 포인트들이 빽빽하다. (박수진)

애벌랜치스(The Avalanches) < We Will Always Love You >

대중음악사에서 음악 만들기의 문법은 시시각각 변화했다. 한 땀 한 땀 자기 손으로 짓는 정공법부터 기존의 음악을 이어붙인 사운드 콜라주까지. 과거의 시선으로 어쩌면 사파 취급받았을 호주 밴드 애벌랜치스는 외려 과거 소스의 사용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후 고유한 음악성을 더한다. 재활용의 미학. 그렇게 플런더포닉스의 권위자가 된 이들은 전작들에 이어 또 한 번 사이키델릭하고도 우주적인 소리샘을 구현한다.

그들의 금광은 마르지 않는다. 복고풍 전자음악 ‘Born to lose’는 미니멀리즘의 거장 스티브 라이히의 ‘Electric counterpoint: I. fast’ 속 반복성을 낚아챈다. 반면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Eye in the sky’가 진두지휘하는 ‘Interstellar love’나 버트 바카락의 멜로디를 품은 ‘The divine chord’는 대중과의 접점이다. 샘플링 음원의 지지직 바늘 튀는 소리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접속 신호. 음원 속 예술가들의 숨결과 애벌랜치스의 프로덕션, 초호화 피처링 진의 지원사격은 시공간을 무색게 하는 합종연횡이다. (염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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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올해의 가요 앨범

2020년대의 추세가 희망차다. 코로나 급풍이 한차례 휩쓸고 간 황량한 대지 위에도 여전히 수많은 아티스트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 속에서 태어난 앨범들은 장르와 작법, 하물며 가사의 필압조차 세세히 다르지만, 모두 기세에 꺾이지 않고 본인의 역량을 가감 없이 담아낸 단단한 작품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IZM 선정 2021년을 대표할 가요 앨범 10장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엔하이픈(ENHYPEN) < Border : Carnival >

아이랜드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는 하이브의 곡 스타일 분배와 CJ 이엔엠의 시각적 역동성이라는 우월적 합이다. 그걸 지반으로 몇 개월도 안 된 신인은 단숨에 ‘기득권’자로 폭발성장을 기했다. 팬덤 ‘엔진’의 가속 페달을 밟아 숨 가쁘게 올해의 신인, 음원 밀리언 셀링, 미 NBC 켈리 클락슨 쇼 출연 등을 이어가며 글로벌 팬들의 번식을 꾀한 결과. 이 두 번째 ‘미니’앨범이 초고속 하사된 4세대 아이돌 타이틀을 굳혀준 ‘맥시’펀치다.

음악의 승리라고 해야 한다. 인트로와 아웃트로에 떠들썩한 예술적 소란을 장벽으로 쌓고 중간에 ‘Drunk-dazed’, ‘별안간 (Mixed up)’ 등 대중그룹다운 들을만한 싱글 넷을 가지런히 배치해 제대로 곡 승부를 걸고 있다. 이를 위해 동원한 도구는 폭넓은 장르분산, 바로 다양성이다. 시대적 명령인 아이돌스런 음악패턴을 따르되 시도, 도전, 변화로 에워싸는 음악선동이 가상하다. 아이돌 수다, 그 상투적 어법 타파가 남았다. (임진모)

지올 팍(Zior Park) < Syndromize >

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두운 방, 끊임없이 필름을 구동하는 영사기의 소음이 들렸다. 벽에 맺힌 원형의 무대 위로 그림자는 계속해서 모습을 바꾸며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어딜 둘러봐도 환영뿐인 작은 공간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의미하게 섞였고 그렇게 탄생한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장소를 < Syndromez >라고 명명했다. 창조주는 지올 팍. 경쾌하게 삶을 난도질하는 한 예술가의 보금자리였다.

각각의 주제에 맞게 꾸려진 놀이기구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랩을 버렸다는 농담 섞인 인터뷰처럼 특정 장르에 매몰되지 않고 여러 갈래로 뻗어가는 상상력이 중성적 목소리, 음악, 영상 등 한계를 규정하지 않고 ‘지올 팍’이란 아티스트를 양분 삼아 유일한 형태로 조형된다. 그가 화려하게 꾸며낸 세상은 포장지를 뜯어낼수록 깊은 상처를 드러내지만 선홍빛을 띠는 속살마저 찬란하다. 완벽하게 제작된 극의 폐막이 어느 때보다 쓸쓸하기에, 이 포근한 악몽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를. (손기호)

마인드 컴바인드(Mind Combined) < Circle >

힙합, 일렉트로니카처럼 비트 중심의 음악이 득세함에 따라 비트메이커들의 가치는 공고해졌다. 다양한 뮤지션의 리듬을 책임지며 베테랑 프로듀서가 된 피제이는 마인드 컴바인드라는 플랫폼에 올라 조금 더 자유롭게 역량을 펼쳤다. 단짝 진보는 피제이의 비트 위를 유영하며 농익은 기량을 선보였다. 11년 전 발표한 첫 번째 앨범 < The Combination >과 마찬가지로 과정의 즐거움이 양질의 결과물로 이어졌다.

그들의 소리엔 과거와 현재, FX와 리얼 밴드가 교묘하게 교차하며, 장기인 소울과 펑크(Funk)부터 록과 하우스 등 다채로운 스타일이 어우러진다. 변화가 잦은 곡조를 버텨내는 건 정교한 리듬 트랙이지만 섬세한 기타가 돋보이는 ‘Can you understand’와 라틴음악의 즉흥성을 포착한 ‘Purple sky’처럼 힙합 비트 이외의 미덕이 가득하다. 소리와 메시지에 지향점을 고스란히 반영한 ‘Singularity’(특이성)와 ‘Multiverse’(다중우주론)로 마인드 컴바인드의 인장을 단단히 새긴다. (염동교)

이랑 < 늑대가 나타났다 >

한 해를 회고할 때 가장 뾰족하게 튀어나온다. 물길을 거슬러 오르듯 요새 흐름에 영합하지 않았고 투명하게 ‘나’의 이야기를 썼다. 중요한 건 그의 시선이 비단 나에게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를 투영하고, 나를 지나 사회로 가닿는 ‘늑대가 나타났다’, ‘환란의 세대’와 같은 곡은 이 음반이 얼마나 현재를, 현대를, 지금을 찌르고 있는가를 증명한다.

동시에 과감한 터치가 돋보인다. ‘아는 언니들’이란 합창단과 손을 잡고 기이하고 기괴하게 덧붙인 ‘환란의 세대(Choir ver.)’의 코러스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그 누군가의 감정을 대신 토해낸다. ‘대신’. ‘빵을 먹었어’에선 앞장서서 목청을 높이고 ‘의식적으로 잠을 자야겠다’에선 죽음과 삶을 툭툭 말한다. 거침없는 연대와 거리낌 없는 고백으로 올해를 끌어안았다. (박수진)

양진석 < Barn Orchestra >

양진석은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가수가 아니지만 작곡 능력과 편곡 실력은 그 미진한 보컬을 채우고도 남는다. 10년 만에 발표한 여섯 번째 에피소드 < Barn Orchestra >가 이 주관적인 가설을 객관적으로 증명한다. 각 곡에 맞는 보컬리스트의 초빙과 세미클래식부터 팝, 재즈까지 스며든 도회적인 컨템포러리 음악은 멜로디와 리듬, 화음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올린 아름다운 건물처럼 빛난다. 막대한 시간 투자, 소리에 대한 고집, 음악에 대한 그의 자신감은 이 앨범이 정갈하고 세련되게 태어날 수 있는 탄탄한 지반공사였다.

현대사회의 외로움을 여러 형식으로 변조한 수록곡들은 살아있는 생명체이면서 건물 구조물에 사용된 유기적인 원자재다. 양진석은 케이팝과 네오 트로트 열풍에 가려져 한동안 잊고 있었던, 젊은 세대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21세기 한국형 어덜트 컨템포러리 음악을 완공해냈다. (소승근)

최엘비 < 독립음악 >

힙합 오디션 < 쇼미더머니 5 >에서 비와이와 씨잼이 1,2등 자리에 나란히 설 때, 친구인 최엘비는 예선 탈락 후 TV로 결승 무대를 시청했다. 찬란히 빛나는 두 주연에 비해 음지가 익숙했던 조연은 슬퍼하지 않으려 애써 눈물을 감췄다. 그 반짝임에라도 묻어가야 크레디트 어딘가에 이름이 남는 걸 알았기 때문. 하지만 어느덧 20대의 마지막에 다다른 청년은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숨어 살 수 없다. 늘 배경으로 찍히기만 했던 엑스트라는 직접 조명과 카메라를 들여와 시점을 180도 전환시킨다. 주연과 조연의 역전으로 그간 묵혀두었던 응어리를 낱낱이 고백한다.

장면 하나하나가 가슴 깊은 곳을 아리게 찌른다. 스스로를 딸려오는 사은품이나 브랜드 이름을 뗀 무지 티에 비유할 정도로 완전히 내려놨다. 비교와 동정으로 물든 열등감의 서사는 부와 명예를 좇는 작금의 힙합 신과 다름을 인정하고 같아지기를 포기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는 < 독립음악 >의 주인공은 험난한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최엘비이며 그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이기도 하다. 세대와의 교감을 넘어 시대와 공명하는 앨범, 그야말로 올해 최고의 ‘대중음악’이다. (정다열)

파란노을(Parannoul) <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

신원미상의 음악가 파란노을이 일으킨 파급력은 거셌다. 잠룡의 일렁임을 일찍이 포착한 곳은 국내가 아닌 해외다. 순간이었지만 <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은 영미권 슈게이즈 팬들의 큰 지지를 얻어 미국의 음악 커뮤니티 레이트 유어 뮤직에서 올해 발매한 앨범 중 평점 1위를 기록했다. 소규모 음악가들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플랫폼 밴드캠프에서부터 저명한 음악 비평 사이트 피치포크와 스테레오검의 각광을 받기까지 이 드라마틱한 실화는 언어의 장벽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스스로를 낮추며 자신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파란노을의 패배주의 텍스처는 생생하다. 거친 노이즈와 투박한 가상 악기로 연출한 음압은 포스트 록과 이모코어(Emocore)를 난폭하게 품어내고, 열등감으로 뭉그러뜨린 보컬은 타오르는 화자의 내적 분노를 겨우 삼킨다. 우울감과 외로움으로 범벅된 어두운 터널에서도 끝끝내 탈출구를 발견하고자 한 원시적 울부짖음이 격변의 시대를 관통한다. 2021년, ‘흰 천장’만을 바라보던 골방 외톨이가 주도한 ‘청춘 반란’의 실황. 이제는 더 이상 막연한 동경이 아닌 빛나는 ‘꿈의 다음 부분’으로 넘어간 듯하다. (김성욱)

유라(youra) < Gaussian >

유라는 자신이 음악을 하며 지켜온 ‘개똥철학’을 잘라낸 것이 < Gaussian >이라고 했다. 스스로 깎아내리는 듯한 단어로 설명했지만, 그의 세계는 조금씩 덜어내지 못하고 한 번에 잘라내야 할 만큼 견고하다. 데뷔부터 지속해온 내면 탐구는 단단한 결정체로 거듭났고 싱어송라이터는 그것을 자신으로부터 떼어내며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

부드럽고 흐리게 표현하는 효과를 뜻하는 앨범의 이름처럼 가사는 은유적이나 선율은 또렷하고 그가 전하는 감각은 선명하다. 간결하게 배치된 악기들은 범람하지 않고 제 위치에서 역할을 다하며 그 중심의 유라는 전자음을 가미한 듯한 독특한 목소리로 곡을 이끈다. 최소한의 의미만 전달하는 개인적인 음반에서도 헤이즈와 함께한 마지막 넘버 ‘하양’은 대중성을 드러내며 뮤지션의 넓은 가능성을 제시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를 뒤덮은 연대와 위로의 물결 속에서 내면 깊숙이 파고드는 침잠의 미학이 돋보였던 앨범이다. (정수민)

아이유(IU) < Lilac >

‘젊은 날의 기억’이란 꽃말처럼 < Lilac >은 아이유의 20대 마지막 순간을 장식한다.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그를 거쳐 간 모든 것들이 일련의 꽃잎처럼 곡 사이사이로 책갈피처럼 수놓아진다. 그만큼 앨범에는 유독 다양한 맛과 멋이 자유롭게 존재한다. 마치 대중음악가의 소명을 잠시 접어두고 30대를 앞둔 한 명의 인간으로서, 개인적인 염원과 열망을 한데 모아 전부 성취하는 것으로 다음 10년을 위한 에너지를 충전하려는 듯이 말이다.

명확한 선율로 대중성을 고려한 히트 메뉴 ‘라일락’ 사이로, 독특한 영감을 버무린 ‘Coin’이 도발 한 스푼을 첨가한다. 이에 재치 있는 비유를 가미한 ‘Flu’와 ‘어푸’가 각각 가벼운 에피타이저와 디저트를, 차분한 발라드 트랙 ‘봄 안녕 봄’과 ‘빈 컵’이 담백한 뒷맛을 담당한다. 아이유의 과거와 미래를 망라한 앨범이다. 오랜 전성기를 구가해온 아티스트가 여전히 과감함과 노련함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이 놀라울 뿐. ‘Blueming’이 예고한 푸른 개화는 보랏빛 라일락으로 이제 막 피어난 듯하다. (장준환)

언오피셜보이 & 하이프하이프(unofficialboyy & HAIFHAIF) < 그물,덫,발사대기,포획 >

언오피셜보이는 각성한다. < 쇼미더머니 10 >에서 스스로 밝혔듯 ‘예능캐’로 가벼이 소비되던 과거와 선을 긋고, 진중한 태도로 음악가로서의 인정을 원한다. 그간 익살맞은 리액션이나 화끈한 패션, 특유의 거들먹거리는 스웨그로 더 주목받은 그였기에 솔직히 앨범의 빼어남은 의외였다. 프로듀서 하이프하이프(HAIFHAIF)의 철저한 지원이 빛을 발했고, 그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렸으며, 그 결과 많은 장르 애호가를 자신의 편으로 포획했다.

진가는 다양성과 치밀함에서 비롯한다. 2000년대 힙합의 계승 의지로 낳은 ‘돈내’와 ‘누가왔게’, 화끈한 댄스플로어의 ‘Unofficialboyy pt.2′, 최신 팝 문법의 ‘Mmm’ 등을 한데 엮어내는데 그 흐름은 유려하다. 신예답게 신선하고 동시에 높은 장르적 유연성을 보여준 셈이다. 풋내기 티가 나지 않는 탄탄한 플로우와 중독성 강한 훅(Hook)은 흡인력을 극대화했으며, 재치 있는 입담과 인간관계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 가슴 시큰한 메시지는 작가적 성취를 담당했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란 무엇인지 보여준 앨범이다. (이홍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