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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즘] 리스펙트

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열 두 번째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생애를 스크린으로 복각한 < 리스펙트 >다.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의 발자취를 좇는 < 리스펙트 >는 그의 사후 3년인 2021년 개봉한 전기영화다. 극적인 내용을 중점으로 구성하여 관객을 시종일관 긴장하게 만드는 작품은 연기와 음악이라는 정공법으로 힘을 토해낸다. 생전 자신의 배역을 맡을 이로 직접 지목한 제니퍼 허드슨의 강인한 연기력과 폭발적인 가창력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전설적인 가수를 되살린다. 그의 눈빛에 음악을 사랑하고 종교를 부르짖던, 흑인 여성 아레사 프랭클린이 그대로 들어있다.

음악을 사랑했던
천부적인 재능으로 ‘서른 살의 목소리를 가진’ 열 살의 아레사 프랭클린이 잠에서 깨어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인종차별과 정치적 이념 대립이 복잡하게 어우러진 1950년대 미국, ‘My baby likes to Be-Bop (And I like to Be-Bop too)’을 출중하게 소화해내는 노래 실력은 아이에게는 행운이었지만 동시에 괴로움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마자 잠에 들길 강요하는 아버지 클라렌스를 쳐다보는 어린 아이의 눈빛이 생애 내내 이어질 음악과의 복잡한 관계를 서두부터 암시한다. 포레스트 휘태커의 노련함에 지지 않는 아역배우 스카이 다코타 터너의 연기력에 압박감은 초반부터 팽팽해진다.

보는 사람마저 지치게 하는 극적인 플롯을 음악이 해소한다. 테드 화이트와의 연애 장면에서 나오는 ‘Nature boy’는 사랑의 당도를 가득 충전하고, 애틀랜틱 레코드에서의 첫 히트곡 ‘I never love a man (The way I love you)’의 뒤를 잇는 대표작 ‘Respect’의 공연 장면은 정상에 오른 가수의 커리어를 화려하게 선보이며 잠시 숨통을 틔워준다. 제니퍼 허드슨의 뛰어난 목소리가 그 중심을 꽉 지탱한다.

폭력적으로 변한 애인과의 본격적인 갈등 앞에 흘러나오는 ‘Chain of fools’, 그리고 그와의 결별로 해방되는 순간 나오는 ‘Think’ 등 적재적소에 울려 퍼지는 가사 덕분에 작품은 일종의 뮤지컬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후자에서 자유를 부르짖는 순간 어지럼증을 토하나 이내 활력을 되찾는 주인공의 모습은 가장 높은 몰입도를 자랑한다. 전기 영화에서 음악의 역할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를 부르짖은
자유의 땅인 미국에 역설적으로 노예가 되어 끌려온 흑인들이 기댈 곳은 교회였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에서만 허용된 노래는 가스펠을 비롯한 여러 흑인 음악의 뿌리가 되었다. 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아레사 프랭클린 또한 단상 위에서 찬양을 통해 말씀을 전달했다. 신앙의 줄기가 내내 이어진다는 점에서 < 리스펙트 >는 종교영화이기도 하다.

독실한 기독교인에게 잔인한 세상은 끊임없이 비극을 선사했다.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겪은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과 어머니 바바라의 급작스러운 사망, 그리고 이로 인한 실어증이 초반부에 빠르게 등장하며 주인공만이 아니라 관객까지 숨막히게 한다. 애인, 그리고 가족 간의 분쟁이 멈추지 않는 버거운 삶이지만 그는 끝까지 신을 향한 손길을 저버리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은 라이브 실황을 담은 1972년 음반 < Amazing Grace >를 녹음하는 내용이다. 마치 성경 속 ‘돌아온 탕아’처럼, 한때 히트곡을 갈망했던 가수는 레코드사의 만류를 단호하게 내치며 상업성과 거리가 먼 가스펠 음반을 제작한다. 신이 응답이라도 한 것일까, 앨범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커리어 사상 최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 Amazing Grace >는 2018년에야 공개되었다)

흑인 여성이었던
인종차별이 지금보다 더욱 만연했던 시대, 흑인 인권 운동에도 적극적이었던 아레사 프랭클린의 행보 또한 스크린에 그대로 등장한다. 아버지 덕분에 목사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도 가까운 사이였던 그는 백인들에 맞서 급진적인 항쟁에 대한 의지를 보이기도 하고, 인권운동가 안젤라 데이비스의 체포 소식을 듣고 분개하기도 한다. 격렬했던 과거 미국을 보여주는 내용이자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 문제가 대두되었던 2020년대의 사회를 또한 관통한다.

연인 테드 화이트의 폭력성이 드러나는 계기도 인종차별이다. 흑인들이 아직도 목화 농장에서 일하던 1967년 앨라배마, 흑인 가수를 달가워하지 않던 세션 음악가들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내색을 비췄다. 색소폰 연주자가 치근덕대는 모습을 본 테드는 애꿎게도 아레사에게 격렬한 분노를 토하고, 사과하러 온 스튜디오의 주인 릭 홀과 주먹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사회 문제에 대한 아레사 프랭클린의 대답은 간단했다. 음악이다. 편곡을 이끌며 곡의 방향성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으로 불만 가득했던 세션들을 침묵하게 했던 그는 댄스 음악에 영합하지 않은 자신만의 음악으로 백인들에게도 사랑을 얻어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사후 인권 운동에 대한 스트레스가 코러스 싱어로 활동했던 자매들과의 갈등, 그리고 공연 스케쥴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질 정도였다.

이 모든, 아레사 프랭클린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영화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실제 공연 모습을 함께 띄워준다. 감동적인 무대 장면부터 심적 부담으로 인해 알코올에 잔뜩 취해 관객 앞에서 쓰러지는 모습까지, 온갖 산전수전을 자신의 삶인 양 소화해낸 제니퍼 허드슨의 뛰어난 연기가 작품을 아우르나 결국 그 주인공은 아레사 프랭클린인 것이다. 아름다운 음악이 돋보이고, 종교적인 색채 또한 강하며, 시대를 초월한 흑인들의 정신도 함께 담겨있는 영화는 이 모든 것을 제치고 ‘소울의 여왕’에게 바쳐지는 헌사로 자리한다. < 리스펙트 >, 제목처럼 그에게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
1. My baby likes to Be-Bop (And I like to Be-Bop too)
2.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3. I’ll be seeing you
4. We’re marching to Zion
5. Ain’t that just like a woman
6. How far am I from Canaan
7. 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
8. There is a fountain filled with blood
9. Go where my baby lives
10. Lonely teardrops
11. Honey
12. Think
13. Ac-cent-tchu-ate the positive
14. This better earth
15. Groovin’ the Blues
16. Rufus
17. Nature boy
18. Hey Joe
19. Anyway you wannta
20. Respect
21. Do right woman, do right man
22. Dr. Feelgood
23. Sweet sweet baby (Since you’ve been gone)
24.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25. Drinks at the Ritz
26. Chain of fools
27. My one and only love
28. Puffin’ on down the track
29. Take my hand, precious lord
30. Blues to Elvin
31. Spanish Harlem
32. To be you, gifted and black
33. I say a little prayer
34. Amazing grace
35. Precious memories
36. Here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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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무비즘] 아임 낫 데어

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열 아홉 번째는 7개의 서로 다른 자아 및 캐릭터로 밥 딜런의 음악 여정을 그린 < 아임 낫 데어 >다.

시대의 음유시인 밥 딜런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난해한 가사, 쉬이 멜로디를 캐치하기 어려운 노래들, 별다른 설명과 해석을 달지 않는 밥 딜런 본인의 성격까지 그의 음악 앞에 자리한 장벽은 공고하다. 그럼에도 밥 딜런은 활동명(실제 이름은 ‘로버트 짐머만’이다)을 제목으로 내세운 첫 번째 정규 음반 < Bob Dylan >(1962) 이후 2022년 현재까지 끝없이 회자하고, 소환되는 음악가다. 그 이유가 바로 오늘 소개할 영화 < 아임 낫 데어 >에 담겨있다.

그저, 감각(Sense)할 것
1970년대 화려한 글램 록의 시기를 담은 영화 < 벨벳 골드마인 >(1999)을 거쳐 오늘날 영화 < 캐롤 >(2016)로 국내에 많은 골수팬을 거느린 감독 토드 헤인즈가 메가폰을 잡았다. 그는 밥 딜런의 전기를 거칠게 풀어낸다. 6명의 배우, 7명의 캐릭터가 각기 다른 모습의 밥 딜런을 연기한다. 영화 속 각 주인공은 인종과 성향이, 사는 시대가 모두 다르다. 이를테면, ‘우디’라는 이름의 흑인 소년과 은퇴한 총잡이 ‘빌리’, 저항 음악으로 사랑받는 포크 가수 ‘잭’, 시인 ‘아서’가 한 화면 안에 담기는 식이다.

불친절하다. 하나의 줄기를 가지고 천천히 이야기를 쌓고 끝내 이를 터트리며 어떤 주제를 전하는 ‘기승전결’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로 보아도 무방할 만큼 진득하게 말에 주목하고, 규칙 없이 각 캐릭터를 오고 간다. 시인 ‘아서’가 소심하고 불안정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동시에 은퇴한 총잡이 ‘빌리’는 한 발짝 뒤에서 사회를 따뜻하게 포용한다. 날뛰고, 널 뛰는 시선과 분위기의 교차 속에서 밥 딜런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혹자는 당황을 넘어 당혹스러운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그저, 감각(Sense)할 것을 권한다. 이해하지 말고 느낄 것. 토드 헤인즈가 포착한 7개의 가면 아래 선 밥 딜런을 그저 감각하다 보면 실체가 선명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모두가 밥 딜런의 자아 : 케이트 블란쳇의 ‘쥬드’, 히스 레저의 ‘로비’
1966년 오토바이 사고 이후 긴 시간의 잠적, 마약, 1970년대 말 갑작스런 기독교인으로서의 선언 등 밥 딜런의 음악 여정에는 다양한 사건이 동행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그가 겪은(혹은 행한) 이러한 실제 사건을 중심으로 약간의 상상력을 덧대 창조됐다. 그중 눈여겨볼 캐릭터는 케이트 블란쳇이 열연한 ‘쥬드’와 히스 레저가 분한 ‘로비’다.

‘쥬드’의 등장은 1965년 뉴포트포크페스티벌(작품에서는 ‘뉴 잉글랜드 JAZZ & FOLK FESTIVAL’로 지칭된다)에서 시작된다. 무대에 오른 쥬드는 ‘일렉트릭 기타’를 메고 진한 블루스의 ‘Maggie’s farm’을 연주한다. 같은 날 연주한 ‘Like a rollingstone’이 빌보드 싱글차트 2위까지 오르며 ‘포크 록’의 선구자, 밥 딜런을 대표하지만 영화는 되레 조금은 덜 익숙한 ‘Maggie’s farm’을 소환해 포크와 시대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지탄을 받던 시절의 그를 묘사한다. 명곡 ‘Ballad of a thin man’에 맞춰 언론을 향한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은 ‘쥬드’의 정수이니 눈여겨봐도 좋겠다.

히스 레저가 맡은 ‘로비’는 밥 딜런의 실제 연인이었던 수즈 로틀로와 아내 사라 로운즈를 뒤섞은 듯한 인물 ‘클레어’를 통해 완성된다. 클레어와 사랑이 시작될 땐 사라 로운즈와의 웨딩 앨범으로 이해되곤 하는 < Blonde on Blonde >(1966)의 수록곡 ‘I want you’가 흘러나오고, 이별의 징조가 진해질 땐 실제 사랑의 끝을 달리고 있던 시기 발매한 < Blood on the Tracks >(1975)의 ‘Simple twist of fate’가 스피커를 채운다. 완전한 헤어짐 이후 절절한 비(悲)음으로 부르는 ‘Idiot wind’ 또한 밥 딜런의 인생을 이해하기에 적절한 트랙이다.

I’m not there, 나는 거기에 없다.
영화의 제목인 ‘I’m not there’은 밥 딜런의 곡에서 가져왔다. 오토바이 사고 이후 칩거할 당시 만든 노래이며 1975년 발매된 < The Basement Tapes >에 실릴 예정이었지만 실제 발표되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해적판으로 떠돌다가 < The Genuine Basement Tapes, Vol2 >(1992)에 실렸고 이 작품의 사운드트랙으로 다시 한번 정식 발매됐다. 투박한 노이즈를 잘 살린 후배 그룹 소닉 유스의 재해석으로 밥 딜런의 생애를 음악으로 ‘정조준’한다.

‘나는 거기에 없다.’ 밥 딜런을 해석하기에 이보다 완벽한 문장이 있을까? 결국 영화가 ‘밥 딜런’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누군가의 시선을 묘사하며 비전형적으로 나아가듯, ‘I’m not there’라는 문장은 해석하기를 거부하며 그저 부르고 쓰는 것을 반복한 밥 딜런과 닮아있다. 나는 거기에 없다. 늘 사회와 시대 속에서 노래했지만 결코 대표하기를 원치 않았던 밥 딜런. 그를 이해하는 7개의 캐릭터 사이 실체 없는 밥 딜런이 짙고 연하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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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싱어송라이터 16인/16곡

격세지감. “21세기 대중 음악 신은 여성이 호령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성 뮤지션들의 위세가 대단하다. 테일러 스위프트와 비욘세, 빌리 아일리시와 올리비아 로드리고 같은 대형 스타들의 군웅할거는 남성 뮤지션의 이름이 빼곡했던 1960~70년대 빌보드 차트를 전복했다. 그간 억눌러왔던 재능을 터트리듯 대중음악계의 우먼파워는 사기충천한다.

리스트에 오른 20세기 여성 싱어송라이터 16인은 남성 지배적인 대중음악계에서 직접 곡과 가사를 쓰고 노래까지 부르며 음악적 주도권을 확립했고 ‘자아를 음률(音律)로 표현한다’라는 아티스트의 본질을 이뤄냈다. 후배 여성 뮤지션들은 이들을 보며 음악의 꿈을 키웠고, 용기 낼 수 있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선각자와 계승자의 명곡 중 자작곡 혹은 공동 작곡에 해당하는 열여섯 작품을 골랐다.

조니 미첼 ‘Both sides now’ (1969)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디제이 배철수는 조니 미첼을 가장 위대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꼽았다. 60여 년에 걸친 포크와 록, 재즈를 아우르는 음악적 변화와 사상과 감정을 고스란히 반영한 노랫말은 싱어송라이터의 기준을 정립했다. 포크 록 걸작 < Clouds >와 그녀를 대표하기에 이른 < Blue >, 본격적으로 재즈 퓨전을 시도했던 1970년대 중반의 < Hejira >와 더불어 실험적인 신스팝 앨범 < Dog Eat Dog >까지 미첼은 정체(停滯)를 거부했다.

‘Send in the clowns’로 유명한 여성 싱어송라이터 주디 콜린스가 1967년 미첼의 자작곡 ‘Both sides now’를 취입해 빌보드 핫100 8위까지 오르며 선전했고 미첼은 본인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 Clouds >의 마지막 트랙으로 이 곡을 택했다. 소설가 솔 벨로의 < Henderson And The Rain King >에서 영감을 얻은 이 곡의 키워드는 구름이며 앨범 제목과도 연결된다. 고통 속에 아름다움이 깃든 삶의 양면성을 노래하는 이 곡은 시적 언어의 정수다. 최근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 코다 >의 중심 테마로 젊은 팬들에 가닿았고 미첼은 최근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후배 브랜디 칼라일과 이 노래를 불러 감동을 안겼다.

캐롤 킹 ‘It’s too late’ (1971)
최고의 여성 작곡가를 단언하기 어렵지만 캐롤 킹은 후보로 첫손에 꼽힐만하다. 전 남편 제리 고핀과 콤비로 더 셔를스(The Shirelles)의 ‘Will you love me tomorrow’ 리틀 에바(Little Eva)의 ‘The loco-motion’ 같은 명곡을 쏟아냈던 그녀는 1971년 명반 < Tapestry >로 작곡가에서 싱어송라이터로 영역을 확장했다. ‘I feel the earth move’ 제임스 테일러와 입을 맞춘 ‘You’ve got a friend’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같은 완벽한 팝송들로 채워진 이 앨범은 1972년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 수상으로 방점을 찍었다.

여자가 내리는 이별 선고는 시대를 고려하면 급진적이다. 작사가 토니 스턴(Toni Stern)은 ‘Fire and rain’의 제임스 테일러와 킹의 짧은 로맨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킹이 직접 연주한 피아노와 커티스 에이미(Curtis Amy)의 색소폰이 재즈를 덧칠하고 빈틈없는 선율이 대중성과 영속성을 움켜쥐었다. 당당한 여성상을 높이 산 롤링 스톤은 이 곡을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곡 중 하나로 선정했다.

칼리 사이먼 ‘You’re so vain’ (1972)
커다란 입과 두툼한 입술이 인상적인 가수 칼리 사이먼의 가사지엔 진솔한 감정 표현이 가득하다. 1970년대에 걸쳐 꾸준히 히트곡을 발표해온 그녀는 전남편 제임스 테일러와 듀엣으로 부른 ‘Mockingbird’, 블루 아이드 소울 뮤지션 마이클 맥도널드와 함께한 ‘You belong to me’ 등 남성 뮤지션들과 좋은 합을 보여줬다. 빌보드 핫100 2위를 기록한 <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의 주제가 ‘Nobody does it better’도 대표곡이다.

“당신은 허영심 넘쳐요, 당신도 이 노래가 자신을 말하는 걸 알죠? 정녕 모르시나요?”라는 구절이 남자들의 가슴을 쿡쿡 찔렀고 사이먼은 할리우드 스타 워렌 비티를 세 명의 당사자 중 하나로 지목했다. 도입부의 꿈틀대는 베이스 연주는 비틀스의 멤버들과 협연했던 독일 출신 클라우스 부어만(Klaus Voorman)의 솜씨고 피아노는 사이먼이 직접 연주했다. 크레디트에 명시되진 않았지만 숨길 수 없는 음색 덕에 대부분 팬이 믹 재거의 백업 보컬을 알아챘다. 사이먼의 유일한 빌보드 핫100 1위 곡인 ‘You’re so vain’은 2021년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500대 명곡에서 495위를 차지하며 역사적 의미를 더했다.

돌리 파튼 ‘Jolene’ (1974)
자선 단체 뮤지케어스(MusiCares)의 2021년 콘서트는 돌리 파튼 트리뷰트로 꾸며졌다. 마일리 사이러스, 크리스 스테이플턴 등 스타 뮤지션이 대거 참여해 존경을 표했고 객석의 뮤지션들도 노래를 따라부르며 위대한 가수를 칭송했다. 1946년생, 여든의 나이를 바라보는 파튼은 컨트리 음악을 넘어 미국 대중 음악의 전설이다. 25곡의 빌보트 컨트리 차트 1위 곡으로 또 다른 컨트리 음악의 전설 레바 매킨타이어와 함께 꼭대기에 위치하고 그래미도 50번의 노미네이션, 11번 수상해 대중과 평단에 두루 사랑받았다.

그녀는 무려 3,000여 곡을 쓴 정상급 작곡가다. 많은 이들이 휘트니 휴스턴의 원곡으로 오인하는 ‘I will always love you’와 빌보드 넘버원을 차지한 ‘9 to 5’도 그녀의 작품이다. 경쾌한 곡조의 ’9 to 5’와 달리 ‘Jolene’은 ‘졸린, 제발 제 남편을 빼앗지 마세요’라고 애원하고 파튼은 실화 기반의 곡을 부르기 꺼렸다. 개러지 록의 부활을 이끌었던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절규를 담은 커버와 파튼이 직접 목소리를 얹기도 한 아카펠라 그룹 펜타토닉스의 버전이 유명하다.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올리비아 뉴튼 존도 7번째 정규 앨범 < Come On Over >의 마지막 싱글로 이 곡을 택했다.

존 바에즈 ‘Diamonds & rust’ (1975)
1960년대 미국 반문화의 상징 존 바에즈는 사회상에 끊임없이 문제 제기한 포크 뮤지션 겸 인권운동가다. ‘밥 딜런의 동지’ 정도로 그치기엔 1950년대 말엔 마틴 루터 킹과의 교류, 1960년대 말 베트남전 반대 성명, 이후의 성 소수자 존중과 사형제 폐지 등 딜런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통기타 반주에 목소리를 더한 간결한 음악을 구사했던 바에즈가 풍성한 편곡을 시도했던 열여섯 번째 정규 앨범 < Diamonds & Rust >는 래리 칼튼(기타), 윌튼 펠더(베이스), 토토의 건반 연주자 데이비드 페이치같은 정상급 연주자들로 포크와 재즈를 섞은 세련된 사운드를 세공했다. 한때 연인이었던 딜런과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Diamonds & rust’는 사랑의 양면성을 다이아몬드와 녹으로 은유했고 바에즈가 내면적인 노래에도 강점이 있음을 증명했다.

재니스 이안 ‘At seventeen’ (1975)
만 16살에 데뷔 앨범을 발표할 정도로 천재성을 보인 재니스 이안은 1967년 ‘Society’s child ‘ 이후 빌보드 핫100에서 뚜렷한 성공을 못 거뒀지만 1975년에 발표한 < Between The Buttons >로 단숨에 전세를 역전했다. ‘At seventeen’ 이외에도 ‘From me to you’, ‘In the winter’ 등 흡인력 있는 곡들이 포진한 소프트 록의 명반이자 경력의 정점이다.

무도회의 퀸카들을 보며 ‘나는 왜 저렇게 안 될까?’ 좌절하는 십 대 소녀 이야기다. 파티 경험이 없는 이안은 사실적인 가사를 쓰기 위해 몇 달을 고민했고 여러 차례 퇴고 끝에 완성한 노랫말은 소녀들의 공감대를 끌어냈다. 열일곱을 노래한 스물셋의 이안은 보사노바 리듬에 실린 어쿠스틱 기타와 트롬본으로 격조를 높인 이 곡으로 1976년 제18회 그래미에서 최우수 여자 팝 보컬 상을 받았다.

패티 스미스 그룹 ‘Because the night’ (1978)
데뷔 앨범 < Horses > 속 흑백 사진은 패티 스미스의 쿨함을 상징한다. 상업적 성과는 미미했으나 밴 모리슨의 원곡에 살을 붙인 ‘Gloria’과 자유로운 사랑을 함의한 ‘Redondo beach’로 여성 펑크(Punk) 로커의 시금석이 되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한 축 존 케일이 제작을 맡아 아트 펑크적 성향이 짙은 이 앨범은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와 비트 제너레이션의 대표 작가 앨런 긴즈버그의 영향으로 문학적이다.

패티 스미스 그룹의 명의로 3년 후에 발표한 정규 3집 < Easter >는 빌보드200 20위를 수확했고 뉴웨이브를 접목한 편안한 사운드는 친밀감을 더했다. 빌보드 핫100 13위까지 오른‘Because the night’의 뿌리엔 ‘더 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있고 그가 < Darkness On The Edge Of Town > 제작을 위해 밑 작업만 해놓았던 곡은 당찬 펑크 록으로 환생했다. “당신의 명령 아래 내 기분은(The way I feel under your command)”이란 가사가 걸리지만 전반적으로 주도적이고 당당한 태도로 사랑을 갈구한다. 어떤 노래든 ‘패티 스미스 화’하는 능력을 ‘Gloria’에 이어 다시금 발휘했다.

마돈나 ‘Lucky star’ (1983)
마돈나는 명실상부 대중 음악을 대표하는 슈퍼스타다. 40년 가까이 차트를 호령해온 꾸준함은 비견할 데 없고 역경을 극복하고 정상에 오른 신화적 인물이기도 하다. 함께 ‘58년 개띠 클럽’을 구축했던 마이클 잭슨, 프린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를 받아왔으나 < Like A Virgin >, < Like A Prayer > 등의 명반을 배출하고 < Ray Of Light >, < American Life >로 음악적 다변화도 꾀했다.

싱어송라이터의 이미지가 약할 뿐 마돈나는 꽤 많은 곡을 스스로 써냈다. ‘Live to tell’, ‘La isla bonita’, ‘Frozen’, ‘Hung up’ 같은 대표곡들이 모두 그녀의 손길에서 나왔고 2집 < Like A Virgin >의 초대박 히트에 묻혔을 뿐 결코 경시할 수 없는 데뷔작 < Madonna >의 수록곡 ‘Lucky star’도 자작곡이다. 앨범의 유일한 탑5 히트곡이자 빌보드 댄스 차트 1위에 오른 이 곡은 펑키(Funky)한 기타와 신시사이저 리프에 꼼꼼한 사운드 프로덕션으로 5분이 넘는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다. 남성의 육신을 빛나는 별에 은유했다는 평이 일반적이지만 뮤직비디오 속 마돈나의 자애적(自愛的)인 모습은 진짜 럭키 스타가 누군지 암시한다.

신디 로퍼 ‘Time after time’ (1983)
요란한 외모에 독특한 목소리로 캐릭터를 구축한 신디 로퍼는 많은 히트곡을 작곡한 특급 싱어송라이터기도 하다. 한때 마돈나의 라이벌로 거론될 정도로 특급 인기를 구가했던 그녀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발표한 1983년 데뷔작 < She’s So Unusual >로 일약 슈퍼스타가 되었다. 짧은 전성기로 라이벌리는 무색해졌으나 정통 재즈 < At Last >와 블루스 록 < Memphis Blues >를 발표하고 뮤지컬 < 킹키 부츠 >의 음악을 맡는 등 다재다능을 드러냈다.

1986년 정상을 차지한‘True colours’와 더불어 신디 로퍼의 유이한 빌보드 1위 곡 ‘Time after time’은 신나는 팝 록으로 채워진 < She’s So Unusual >에서 사뭇 이질적이다. 앨범의 마지막 퍼즐을 채우기 위해 록밴드 후터스의 보컬 겸 키보디스트 롭 하이만과 조우했고 실연의 아픔을 대화하듯 가사지에 써 내려갔다. 신시사이저와 간결한 퍼커션 연주가 구현한 애상적인 사운드 앞에서 팝계의 말괄량이조차 진중해졌다.

케이트 부시‘Running up that hill (deal with god)’ (1985)
에밀리 브론테의 동명 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신묘한 곡 ‘Wuthering heights’로 데뷔한 케이트 부시는 독보적인 음악성과 카리스마를 갖췄다. 일찌감치 재능을 알아본 핑크 플로이드의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길모어는 부시의 데뷔작 < The Kick Inside >에 참여했고 그로부터 음악 감독의 주체성을 흡수한 부시는 < The Dreaming >(1982), < The Sensual World >(1989) 같은 명반을 스스로 제작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 기묘한 이야기 >에 수록된 ‘Running up that hill (deal with god)’은 역주행 신화를 쌓으며 ‘2022년의 재발견’ 도장을 찍었다. 원제는 ‘Deal with god’이었고 대중음악계의 한 여성으로 느끼는 유리천장을 부술 수 있다면 신과 거래라도 하겠다는 울부짖음을 담았다. 가녀린 고음 보컬은 육중한 리듬 트랙 위를 활보하고 뉴웨이브 신스팝과 프로그레시브 록을 혼합한 사운드는 고유의 소리 문법을 정립했다. 1985년 작 < Hounds Of Love >는 이 곡 이외에도 ‘Hounds of love’,‘Cloudbursting’같은 개성적인 넘버들로 채워졌다.

브렌다 러셀 ‘Piano in the dark’ (1988)
악기 연주와 가창, 작곡에 능한 팔방미인 브렌다 러셀은 상기한 뮤지션들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지나 알앤비와 소울, 재즈를 아우르는 실력파 뮤지션이다. 1970년대부터 남편 브라이언 러셀과 함께 펑크(Funk) 밴드 루퍼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닐 세다카와 협업하며 숙련도를 높였고 1979년에 데뷔 앨범 < Brenda Russell >로 솔로 경력을 시작했다. 빌보드 알앤비 차트 20위까지 이 오른 앨범의 전곡을 써내며 성숙한 음악성을 드러냈다.

1988년 발표한 < Get Here >는 빌보드200 46위에 올라 상업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했다. 장기인 건반 연주를 더 크루세이더스의 조 샘플, 옐로우자켓의 러셀 페런트(Russell Ferrante)에 맡겼고 마이클 잭슨의 < Thriller >에서 기타를 연주한 폴 잭슨 주니어와 베이스의 네이던 이스트 등 정상급 연주자가 소리 밀도를 책임졌다. 빌보드 팝, 알앤비, 어덜트 컨템포러리 세 카테고리에서 모두 10위권 안에 든 ‘Piano in the dark’는 유려한 가창과 편곡을 겸비했고 아레사 프랭클린, 패티 라벨에게 곡을 제공했던 조 에스포지토와의 파트너십도 훌륭하다. 알토 색소폰 연주자 데이비드 샌본과 함께한 ‘Le restaurant’도 앨범의 세련된 분위기에 일조했다.

트레이시 채프먼‘Fast car’(1988)
흑인이 부르는 포크 록은 이색적이었다. 가상의 주인공을 설정해 가난의 악순환을 이야기하는 방식과 어쿠스틱 기타 위로 흐르는 담담한 음성은 신인의 어설픔과 거리가 멀었다. 조숙한 데뷔작 < Tracy Chapman >과 빌보드 핫100 6위까지 ‘Fast car’에 힘입어 채프먼은 1989년 제31회 그래미에서 신인상을 비롯한 3관왕을 차지했다. 록 색채가 강한 4집 < New Beginning >(1995) 이후 하강 곡선을 그렸고 2008년도 앨범 < Our Bright Future >가 최근작이다.

채프먼의 진면목은 사회비판적 포크 음악의 부활에 있다. 제목부터 혁명을 담은 ‘Talkin about a revolution’ 물질문명을 비판한 ‘Mountains o things’ 등 사회적인 노래를 다수 발표했고, 백인우월주의에 근거한 인종차별을 일컫는 아파르트헤이트 피해자를 위한 모금 행사 등 인권 관련 행사에 참여해 급진적 성향을 드러냈다. 흑인, 여성의 제약을 딛고 포크의 저항 정신을 다시금 일깨웠다.

셰릴 크로우 ‘All I wanna do’ (1993)
컨트리를 기반으로 한 팝 록 앨범 < Tuesday Night Music Club >은 미국에서만 약 45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긴 무명 생활을 한 방에 날렸다. 윈 쿠퍼(Wyn Cooper)의 시 < Fun >을 참고한 ‘All I wanna do’는 뻔한 삶에서 벗어나길 갈망했고,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 수상과 빌보드 핫100 2위로 그 소망을 이뤘다. 앨범의 프로듀서 빌 보트렐(Bill Botrell)이 연주한 스틸 기타가 미래를 향한 낙관주의를 담았다.

크로우의 강점은 꾸준함이다. ‘If it makes you happy, ‘Soak up the sun’ 같은 히트곡을 공동 작곡한 음악적 동반자 제프 트로트(Jeff Trott)와 함께 거의 매년 자작곡을 내놓고 있다. 데뷔작의 신선함이 바란 자리에 연륜이 들어섰고 포크, 컨트리, 멤피스 소울 등 미국의 음악 유산을 탐색하고 있다. 2019년에는 스티비 닉스, 세인트 빈센트, 자니 캐쉬가 참여한 < Threads >로 경력을 압축했다.

앨라니스 모리셋 ‘You oughta know’ (1995)
1995년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서의 무대는 광포했다. 제인스 어딕션의 베이시스트 크리스 채니(Chris Chaney)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푸 파이터스의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와 함께한 격정적 퍼포먼스가 곡에 담긴 분노를 표출했다. 1995년 발표된 < Jagged Little Pill >은 약 3300만 장의 판매고와 ‘올해의 앨범상’을 비롯한 그래미 다섯 개 부문을 휩쓸었고 모리셋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록커로 우뚝 섰다.

그녀를 상징하는 명곡 ‘Ironic’(4위) 과 ‘ You learn’(6위)이 쾌활한 분위기를 지닌 데 비해 ‘You ought know’는 하드록의 정통성을 따랐고 그래미 ‘최우수 록 송’, ‘최우수 여성 록 보컬 퍼포먼스’의 영예를 안았다. 차버린 남자를 향한 날선 노랫말은 당당하고 억센 여인의 이미지를 부각했고, 당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소속이었던 기타리스트 데이브 나바로와 베이시스트 플리가 거친 록 사운드를 제공했다. 청량한 댄스 팝을 부르던 십 대 소녀가 여전사로 변신한 순간이다.

뷰욕 ‘Hyperballad’(1995)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출신의 뷰욕은 대중음악계의 원 오브 어 카인드다.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힘든 이 뮤지션은 재능의 끝을 가늠하기도,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전위성을 바탕으로 한 음악 스타일이 그녀의 인장이고 음악을 시각화하는 뮤직비디오에도 최전선에 위치한다. 감독 라스 폰 트리에와 잡음이 있었지만, 영화로 어둠 속의 댄서 >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전방위적 재능을 입증했다.

1995년에 나온 2집 앨범 < Post >는 데뷔작 < Debut >에 비해 한층 성숙한 음악성을 확립했다. 1집을 함께 했던 넬리 후퍼 이외에도 매시브 어택의 트리키와 하우스 음악에 일가견 있는 그레이엄 메시를 프로듀서로 초빙해 다변화를 꾀했다. 강성 트립합‘Army of me’과 뮤지컬 스타일 ‘It’s so quiet’ 등 이채로운 곡 중에서 ‘Hyperballad’는 앨범의 백미다. 브라질의 재즈 뮤지션 유미르 데오다토의 현악 세션과 하우스 에이펙스 트윈 풍의 비트가 층위를 이루고 뷰욕은 몽환적 음성으로 남녀의 신비로운 역학 관계를 이야기한다. 미로 같은 소리 갈래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는 특유의 음악성을 집약했다.

사라 맥라클란‘Angel’(1997)
십여 년간 시행착오를 겪던 캐나다 출신 싱어송라이터 사라 맥라클란은 네 번째 정규앨범 < Surfacing >에서 응축했던 내공을 터트렸다. 돌파구가 된 이 앨범 이후로 2010년 작까지Shine On >까지 미국과 캐나다 앨범차트 탑10 안에 들며 안정적 커리어를 구축했다. 1997년에는 여성 솔로 뮤지션과 여성이 이끄는 밴드가 출연한 릴리스 페어(Lilith Fair)를 열어 3년간 약 1천만 달러의 자선금을 확보했다.

‘Angel’은 얼터너티브 록 밴드 스매싱 펌킨스의 키보디스트 조나단 멜보인의 사망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천사의 품에서 편안하게 쉬세요’라는 추모와 함께 약물 이외의 탈출구가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이 곡은 19주간 탑10안에 머문 대표곡이다. 청아한 목소리와 피아노 연주가 천사의 부름처럼 들리는 이 곡은 ‘Building the mystery’ ‘Aida’ 같은 록풍의 수록곡과 다른 차분한 매력을 지녔다. 편안하고도 꿈꾸는듯한 분위기의 힐링 송이다.

이미지 작업: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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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요정 올리비아 뉴튼 존, 날개를 달다

영원히 소녀일 줄 알았던 올리비아 뉴튼 존이 2022년 8월 8일, 73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그의 영면은 한 시대의 마감이자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추억으로 만드는 모멘텀이다.

1954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유대계 독일인 과학자 맥스 보른의 외손녀가 올리비아 뉴튼 존이라는 사실은 그에겐 좋은 배경이다. 외국도 우리나라처럼 학벌이 좋거나 훌륭한 집안 출신의 가수를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 간 올리비아 뉴튼 존은 그곳에서 가수의 꿈을 키웠고 197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컨트리와 포크 스타일의 노래들로 입지를 다졌다. 밥 딜런의 원곡을 커버한 그의 첫 번째 히트곡 ‘If not for you’를 비롯해 ‘If you love me (Let me know)’, 조영남이 ‘내 고향 충청도’로 번안한 미국 민요 ‘Banks of the Ohio’, ‘Let me be there’, ‘Blue eyes crying in the rain’, ‘I honestly love you’, ‘Have never been mellow’, ‘Please Mr. Please’ 등이 당시에 발표한 곡들. 올리비아 뉴튼 존을 순수하고 맑은 이미지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입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다.

이렇게 성공했지만 음악적인 변화는 쉽지 않았다. 자신을 응원해준 미국 백인들이 좋아하는 보수적인 음악 컨트리를 버리기엔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영화 출연이었다. 그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영화 < 그리스 >에서 주인공 샌디 역을 맡아 자연스럽게 음악 변신을 완수했다. 사운드트랙이라는 보호막 안에서 ‘You’re the one that I want’, ‘Summer nights’ 같은 초기 로큰롤 스타일의 신나는 음악으로 음악적인 면과 상업적인 면 그리고 변신에 성공하자 자신감을 얻은 그는 1980년대에 E.L.O.와 함께 작업한 뮤지컬 영화 < 재너두 >의 주제가 ‘Xanadu’와 ‘Magic’ 그리고 ‘Make a move on me’, ‘Heart attack’, ‘Physical’까지 컨트리와 포크의 채취를 없앤 댄스 팝 노래들로 차트를 맹폭했다. 특히 10주 동안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지킨 ‘Physical’은 뮤직비디오 덕분에 MTV에서 환영 받았고 1980년대 초반에 에어로빅 열풍을 주도했다.

그는 이 곡들로 글로벌한 인기를 누렸지만 음악 관계자들로부터 버림받았다. 그래미가 사랑했던 올리비아 뉴튼 존은 이 시점부터 후보 군에서 배제됐고 1983년에 존 트래볼타와 다시 출연한 영화 < Two Of A Kind >는 처참한 흥행 실패를 기록했다. 이 OST 수록곡인 신스팝 넘버 ‘Twist of fate’는 올리비아 뉴튼 존의 마지막 빌보드 탑 텐 싱글이 됐다.

1989년에는 UN의 환경운동 민간대사를 맡아 자연보호에 앞장섰고 1990년대 초반에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지만 완치판정을 받아 인간승리의 주연이 됐다. 2000년 8월에 열린 시드니 올림픽 성화 주자로 참여했으며 2000년과 2016년에 두 차례 내한공연을 가져 오랫동안 기다린 국내 팬들과 만나 추억을 공유했다.

살아생전 5곡의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과 10곡의 빌보드 싱글차트 탑 텐, 4번의 그래미 수상 등 대중가수가 거둘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린 올리비아 뉴튼 존은 컨트리 가수에서 팝 가수로 변신해 성공을 거둔 유일한 여가수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에서 그는 다시 한 번 변했다. 인간에서 천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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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무비즘] 더 로즈

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의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열 한 번째는 재니스 조플린을 기억하며 너무 일찍 시들어버린 장미를 애도하는 영화 < 더 로즈  >다.

짧은 시간 강렬하게 불꽃을 태우고 세상을 떠난 27클럽에는 1960년대를 호령한 ‘3J’가 있다.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와 도어즈의 프론트맨 짐 모리슨 그리고 < The Rose >의 실제 모델 재니스 조플린이다. 화려한 불빛 아래에서 노래하는 아티스트의 삶에도 어두운 면은 존재한다. 대중문화의 역사는 약물이나 마약으로 그 짙은 음영을 지우려 했던 아티스트들을 수없이 떠나보냈고 재니스 조플린 역시 그중 한 명이다. 가상의 슈퍼스타 ‘로즈’의 삶을 담은 < The Rose >는 조플린의 삶을 온전하게 그리고 있지는 않지만 블루스와 록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그의 인생 말미를 미약하게나마 조명한다.

슈퍼스타 ‘로즈’의 이야기

허스키한 목소리와 과감한 몸동작으로 무대 위를 누빈다. 시대상에 구애받지 않았던 자유로운 영혼은 노래하는 것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계약이라는 족쇄가 그를 구속한다. 살인적인 스케줄은 기량 저하를 동반했고 어느새 처음 마이크를 잡았을 때의 순수한 즐거움마저 잃어버린다. 로즈는 1년의 휴식기를 원했으나 다음 일정이 그를 기다린다.

언론과 미디어에게 슈퍼스타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눈물을 흘려도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과 여기저기서 터지는 플래시 세례 앞에서는 가면을 써야 한다. 어느 것이 진짜 자신의 모습인지 모를 지경. 끊임없이 감정 기복을 겪으며 다시 무대 위에 오른 로즈는 오직 조명 속에서 노래 부를 때만이 온전한 자신이 된 기분이다.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피폐해진 심신을 달래야 한다. 여러 차례 이용했던 술과 마약도 일시적인 쾌락뿐이기에 그만두고 만다.   

팬들에게 사랑받는 가수가 되었지만 그의 솔직하고 방탕한 성격이 늘 환영받는 것은 아니었다. 극중 인물인 작곡가 빌리 레이와의 갈등은 로즈를 방황하게 만들었고 불안정한 감정은 자연스럽게 애정결핍으로 이어졌다. 사랑을 찾아 떠났고 고향으로 돌아가 보기도 했지만 예민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편히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결국 끊었던 약물에 손을 대며 심연으로 도피한다. 무대에 갈증을 느끼고 다시 사람들 앞에 섰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은 약을 복용한 뒤였다. 모든 것을 불태운 로즈는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노래를 부르다 생을 마감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 

< The Rose >의 결말과 달리 재니스 조플린은 할리우드의 한 호텔에서 헤로인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간을 거슬러 그의 삶을 살펴보면 영화 속에서 그리고 있는 마지막 며칠보다 더 극적인 천재의 일생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텍사스의 보수적인 지역색과 다르게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과감히 드러냈던 조플린은 따돌림을 당했다. 특히 외모로 인해 놀림을 받는 일이 많았는데 다행히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블루스의 어머니라 불리는 마 레이니(Ma Rainey)를 비롯한 베시 스미스(Bessie Smith), 리드 벨리(Lead Belly) 등의 블루스 음반을 소개해 줬다. 자연스럽게 슬픔을 표현한 음악과 친해진 그는 상처를 달래기 위해 노래했고 1962년 대학 동료의 집에서 첫 레코딩 ‘What good can drinkin’ do’를 녹음한다.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싱글이 본격적인 음악 생활을 열어주었다. 재니스 조플린은 고향인 텍사스에서 벗어나 당시 히피문화가 팽배했던 도시이자 사랑의 여름의 요람이기도 한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그곳에서 사이키델릭 밴드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퍼니를 만나게 되고 재능은 만개하기 시작한다. 1967년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강렬한 모습을 보인 그와 밴드는 이듬해 ‘Summertime’과 ‘Piece of my heart’, ‘Ball on chain’ 등을 수록한 < Cheap Thrills >를 발매하며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한다. 놀림을 당하던 소녀가 정상을 찍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 

진주 속에 잠든 천재의 목소리

솔로 활동을 위해 새로운 백 밴드 코즈믹 블루스 밴드(Kozmic Blues Band)를 결성하고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간다. 1969년 발매한 < I Got Dem Ol’ Kozmic Blues Again Mama! >는 사이키델릭 록이 주류였던 전작보다 더 블루스의 전형에 가까운 앨범이었다. 그 해 히피 문화의 절정을 달린 우드스탁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재니스 조플린은 다시 한번 록스타로써의 입지를 다지며 성공 가도를 이어간다.

계속해서 꽃길만을 걸을 것 같던 그는 1970년 새 앨범의 녹음을 위해 방문한 캘리포니아 할리우드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도어즈의 < The Doors >를 포함한 초기 다섯 개의 앨범을 프로듀싱했던 폴 앨런 로스차일드(Paul Allen Rothchild)와의 작업 중에 발생한 일이었다. 다행히 상당수 트랙의 녹음을 마친 덕에 음반은 1971년 1월 그의 죽음 석 달 후 < Pearl >로 세상에 공개된다. ‘Me and bobby Mcgee’와 ‘Cry baby’ 등을 수록한 앨범은 차트 1위와 더불어 4백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그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여전히 숨 쉬는 푸른색 장미

독특한 개성과 겉모습으로 받은 따돌림이 어린 소녀에게 새파란 멍을 새겼다. 음악으로 치유하며 상처가 간신히 아무는 듯했지만 그사이 중독되어버린 약과 방탕한 생활로 몸은 무너져 갔고 더 이상 유약한 신체는 대중의 무거운 시선과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 원제 < Pearl >로 각본이 제작되었던 < The Rose >는 유가족의 거부로 인해 각색된 스토리와 새로운 제목으로 스크린에 담겼다. 27년간의 소설 같은 삶이 온전히 담겨 있지는 않지만 주인공 로즈를 통해 재니스 조플린의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마지막을 미력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다.

영화와 음악계 그리고 뮤지컬 신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베트 미들러가 주연으로 열연했다. 새롭게 작사 작곡한 OST는 < Pearl >의 프로듀서 폴 앨런 로스차일드가 맡았다. 작품은 그 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음향상을 포함한 4개의 부문에 후보로 오르며 재니스 조플린을 기리기 위한 영화로서의 가치를 입증했다. 성공적인 송덕문이었지만 그의 음악과 인생 스토리는 영화보다 더 강렬한 힘을 지닌 채 역사에 남았다. 그가 열창한 블루스와 록은 시대를 불문하여 사람들의 가슴을 올렸고 급작스럽게 시들어버린 푸른색의 장미는 여전히 우리의 플레이리스트 안에 살아 숨 쉰다.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1. Whose side are you on
2. Midnight in Memphis
3. Concert monologue
4. When a man loves a woman
5. Sold my soul to rock ‘n’ roll
6. Keep on rockin’
7. Love me with a feeling
8. Camellia
9. Homecoming monologue
10. Stay with me
11. Let me call you sweetheart
12. The r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