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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김도헌의 실감, 절감, 공감] 유희열 표절 의혹, 신뢰를 회복하려면

1971년 2월 10일, 세 번째 정규 앨범 < All Things Must Pass >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거머쥐며 비틀즈 해체 후 솔로 아티스트로 입지를 굳히던 조지 해리슨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브라이트 튠스 뮤직 코퍼레이션(Bright Tunes Music Corporation)이 앨범의 빌보드 HOT 100 4주 연속 1위 곡 ‘My sweet lord’에 대해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원고 측은 조지 해리슨이 로니 맥이 작곡하고 걸그룹 더 쉬퐁스(The Chiffons)가 불러 1963년 빌보드 HOT 100 차트 4주 연속 1위를 차지한 ‘He’s so fine’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조지 해리슨은 노래를 듣자마자 도입부 멜로디 유사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표절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재판장에 기타를 들고 입장한 조지 해리슨은 ‘My sweet lord’ 작곡 당시 ‘He’s so fine’을 모르고 있었으며, 저명한 찬송가 ‘Oh happy day’를 목표로 삼고 만든 노래라는 주장으로 결백을 호소했다. 결과는 조지 해리슨의 패배였다. 뉴욕 남부 지방 판사 리처드 오웬은 조지 해리슨이 고의로 ‘He’s so fine’을 베낀 것은 아니지만, 법률상으로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을 했다. 조지 해리슨은 58만 7천 달러 이상의 저작권료를 지급해야 했다. ‘무의식적 표절’의 개념이 등장한 순간이었다.

“긴 시간 가장 영향받고 존경하는 뮤지션이기에 무의식중에 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곡을 쓰게 되었고 발표 당시 저의 순수 창작물로 생각했지만 두 곡의 유사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희열 표절 논란이 가요계를 뒤흔들고 있다. ‘유희열의 생활음악’ 피아노 소품 프로젝트 중 두 번째 곡 ‘아주 사적인 밤’이 사카모토 류이치의 ‘Aqua’를 베꼈다는 주장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하며 논란이 시작됐다. 6월 14일 유희열은 안테나뮤직 의견문을 통해 ‘아주 사적인 밤’ 관련 입장을 표했다. ‘무의식중에 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작곡이 진행되었음을 인정하며 < 생활음악 > LP 발매 연기와 사카모토 류이치와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6월 20일 사카모토 류이치의 의견문이 발표됐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두 곡의 유사성은 있지만 제 작품 ‘Aqua’를 보호하기 위한 어떠한 법적 조치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라며 법적 절차와 저작권 문제를 생략하고 바다 건너 음악 후배에게 넓은 아량을 베풀었다. 하지만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과거 유희열이 발표한 다수의 노래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유희열은 < 생활음악 > LP와 음원 발매를 취소했지만, 그 외 의혹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며, ‘유희열의 스케치북’ 및 방송 출연을 강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원작자가 표절이 아니라고 선언했으니 사태가 일단락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위대한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의 관용은 분명 빛났다. 그러나 사카모토 역시 의견문에서 ‘아주 사적인 밤’과 ‘Aqua’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표절 시비가 불거졌다는 점에서 지난 30년간 한국 대중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활동해온 위상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이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용서가 유희열의 책임과 합의의 필요를 덜어주었을지언정 그 혐의까지 무마해주는 것은 아니다. 조지 해리슨이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전 세계에 남긴 교훈, ‘무의식적 표절’이다.

대중이 유희열에 실망한 이유는 그의 대응 방식에 있다. ‘아주 사적인 밤’의 표절 의혹을 제기한 시인 도희서에 의하면,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안테나뮤직에 연락을 취했으나 회사는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먼저 답변을 보내온 곳은 올해 1월 5일 ‘두 곡의 파트가 유사함에 동의하지만 법적인 대응을 하지 않을 것이’라 밝힌 사카모토 류이치 측이었다. 이후 5개월 반 동안 침묵하던 도희서 씨는 < 생활음악 >의 발매소식을 접한 후 6월 14일, ‘아주 사적인 밤’이 ‘아쿠아’를 표절했음을 공론화했다.

익명의 제보자가 없었다면 유희열의 < 생활음악 > 프로젝트는 계획대로 바이닐 발매되었을 것이고, ‘아주 사적인 밤’, ‘내가 켜지는 시간’의 저작자 이름에는 사카모토 류이치 대신 유희열의 이름이 올랐을 것이다. 거장의 자애롭고 신중한 대답이 없었다면 유희열은 어떤 입장을 내놓았을까.

하물며 유희열은 ‘아주 사적인 밤’ 외에도 해명할 곡이 많다. ‘Please don’t go my girl’, ‘안녕 나의 사랑’, ‘Happy birthday to you’ 등 과거 작품에 대한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유희열은 별다른 반응이 없다. 표절곡이 아니라는 적극적인 해명도,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인정도 들리지 않는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천재라는 수식어와 함께 활동한 뮤지션이라면 ‘최근 불거진 논란을 보면서 여전히 부족하고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아갑니다’는 레토릭으로 사건을 무마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의혹에 대한 정확한 설명, 음악 팬에 대한 사과, 그리고 책임의 자세가 필요하다.

완벽한 창작은 없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말처럼 ‘모든 창작물은 기존의 예술에 영향을 받는다.’. 원작자의 포용으로 ‘아주 사적인 밤’은 표절의 멍에를 벗었다. 그럼에도 유희열은 신뢰를 잃었다. 대중은 긴 시간 정상급 뮤지션으로 군림해온 그의 창작 세계를 의심하고 있다. 유사성을 인정한 상황에서 유희열이 계속 안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이다. 물론 유희열의 음악 세계 전체를 매도하고 인격을 비난하는 일은 곤란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유희열의 창작물을 사랑한 대중이 실망감을 표하고 그의 음악을 예전과 같이 들을 수 없는 사실 또한 당연하다.

설사 ‘아주 사적인 밤’이 표절 판결을 받았더라도 명확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했더라면 지금처럼 반응이 싸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희열은 표절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고, 논란이 불거진 후 사카모토 류이치의 입장에 힘입어 뒤늦게 바이닐 발매를 취소했으며, 여전히 음악가로의 지위로 다수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지금은 의견문 내용처럼 ‘창작 과정에서 더 깊이 있게 고민하고 면밀히 살’펴야 할 시간이다. 향후 활동으로 유희열이 다시금 잃어버린 대중의 지지를 회복할 것인지는 창작가의 양심에 달려있다. 표절은 법의 문제가 아니다. 양심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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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아치의 노래, 정태춘

서정적인 멜로디부터 냉철한 현실 비판의 노랫말까지, 정태춘의 음악은 우리 사회와 함께 오랜 세월 숨 쉬며 맥을 유지해왔다. 전설적 존재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 아치의 노래, 정태춘 >은 주인공 정태춘을 비롯한 주변 인물 및 평론가와의 인터뷰, 콘서트에서의 감동을 생경히 옮긴 공연 실황을 정교히 엮어 만든 음악 다큐멘터리다. 시대별 대표곡들을 찬찬히 되짚으며 따라가 본 그의 발자취 곳곳엔 대한민국 그리고 우리 대중음악의 역사가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한국형 포크의 서막

등장부터 범상치 않았다. 음대 진학을 꿈꾸다 실패하고 입대를 택한 청년 정태춘은 군 복무 당시 몇 안 되는 기타 코드 진행으로 틈틈이 곡을 만들었다. 전역 후에 작곡한 노래 중 하나인 ‘양단 몇 마름’을 공모전에 출품해 입상했고, 이를 눈여겨본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 최경식이 서라벌 레코드사를 연결해주면서 가수 인생의 물꼬가 텄다.

첫 앨범 < 시인의 마을 >(1978)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번안곡 위주의 포크가 주를 이루고 있던 상황에서 한국적인 요소가 배어 있는 ‘시인의 마을’이나 ‘촛불’은 대중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지점을 마련하며 큰 공감을 얻었다. 그 인기를 방증하듯 정태춘은 1979년 MBC 10대 가수상까지 수상하며 가요계에 얼굴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1집 성공 이후 전적으로 앨범 제작을 맡게 된 그는 본인만의 색을 강렬하게 섞어 나갔다. 불교적인 색채를 불어넣은 < 사랑과 인생과 영원의 시 >(1980)와 국악을 토대로 한 < 우네 >(1982)는 분명 음악적으로 유의미한 작업물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록의 시대가 도래하며 포크는 설 자리를 잃었고 그 흐름에 떠밀린 정태춘 역시 연이은 실패를 겪으며 생활고에 시달렸다.

다행히 지구 레코드사로 건너가 아내 박은옥과 함께 노래한 첫 작품 < 떠나가는 배 >(1984)와 뒤이은 < 북한강에서 >(1985)가 히트를 달성하며 꺼져가던 음악인의 불씨를 되살렸다. 그럼에도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업소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노래할 공간은 여전히 부족했다. 돌파구는 전국 순회 공연 < 얘기 노래마당 >이었다.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던 ‘한 밤중의 한 시간’을 들려주는 장면처럼 미발표곡이나 심의에 통과되지 않은 노래를 부르며 독자적으로 언더그라운드 포크 신을 다져갔고, 이는 훗날 소극장 콘서트 형식으로 발전해 김광석과 같은 스타들의 성장 기반을 닦았다.

저릿저릿한 대한민국의 현실

성공적인 데뷔 이후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었지만 다시 한번 대중의 마음속에 안착했다는 역경 극복의 서사. 여기까진 정태춘을 모르는 이들에게 분명 익숙한 전개지만 한 일가족의 비극을 전하는 뉴스 보도 장면이 평화로운 흐름을 단숨에 뒤엎는다.

“오늘 오전 9시쯤 서울 망원동 대건 연립 지하 방에서 불이 나서 권순덕 씨의 딸 5살 혜영 양과 아들 4살 영철 군이 연기에 질식돼서 숨졌습니다.”

맞벌이 부부가 자녀들의 안전을 위해 일을 나가며 밖에서 방문을 잠갔는데 안쪽에서 불이 나 남매는 꼼짝없이 갇혀 생을 마감했다. 소외된 도시 한 구석에서 벌어진 참담한 사건을 접한 정태춘은 ‘우리들의 죽음’이란 곡으로 안타깝게 떠나간 아이들을 추모했다. 실제로 다른 어린이가 녹음했던 원곡의 내레이션 부분은 영화 속에서 박은옥이 눈물을 머금고 읊어 내리며 비통한 감정을 자극한다.

물론 이 곡 역시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지금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시인의 마을’ 같은 곡도 20~30군데 수정 지시를 받아 공개됐을 정도로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 검열 제도는 음악인들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방해했다. 1987년 6월 항쟁을 필두로 민주화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은 더욱 커져갔고 정태춘 역시 거센 저항의 물결에 동참하며 그 의지를 굳게 다졌다.

‘거짓 민주, 자유의 구호가 넘쳐흐르는 이 땅’ (아, 대한민국… 中)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어조로 무장한 < 아, 대한민국… >(1990)은 당대 사회의 어두운 이면 고발이자 억압받던 동료들의 현실에 대한 탄식, 그리고 악법으로 통제하던 국가 집단을 향한 선전포고였다. 비합본 음반으로는 최초로 LP를 찍어냈고, 스스로 위법을 저질렀다고 알리는 기자회견도 가졌고, 나아가 그 불법 음반을 각 방송사 심의실로 집어넣었고 실제로 몇 군데에선 울려 퍼지기도 했다.

고독한 싸움에 지치기도 했지만 수년간의 노력 끝에 그는 자유를 쟁취해냈다. 헌법재판소에서 음반 및 비디오법의 사전 심의 절차가 헌법과 합치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고 기나긴 세월 창작자들을 옭아매던 조항은 1996년 완전 폐지되었다. 후배 뮤지션 강산에가 언급하듯 정태춘의 숭고한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사회 운동가? 약자들의 대변인!

“노래를 들으러 왔지, 당신 이념을 들으러 온 게 아니에요!”

2019년 광주 공연 도중 울려 퍼진 한 청중의 일갈. ‘5.18’ 곡 소개에 불만을 느낀 관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지만 정태춘은 흔들리지 않고 무대를 이어갔다. 1987년 6월 항쟁부터 2006년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 그리고 2016년 민중총궐기까지 크고 작은 집회에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에 운동권 인사라는 시선은 피해 갈 수 없었다.

행보를 통한 편견 이전에 노래 속에 담긴 진정한 의의를 들여다보라. 실향민이 될 위기에 처한 동향인들을 위한 ‘황새울 지킴이의 노래’부터 누군가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위로해주는 박은옥의 공감이 어우러진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까지, 부부는 사회에서 외면 당하고 고립되어 있던 약자들의 이야기를 항상 잊지 않고 다뤄왔다.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는 ’92년 장마, 종로에서’의 노랫말을 오래도록 사유하려는 청소년 인권 활동가 이수경 양, 오로지 ‘5.18’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대회 출전을 결심한 아티스틱 수영의 전설 유나미 선수, 한평생 정태춘의 음악을 가슴 깊이 사랑해 온 루게릭병 환자 김미현 씨. 각기 다른 시대와 환경을 살아왔지만 팬이라는 유대 속에 얽힌 이들의 사연 역시 근 반세기를 살아 숨 쉬고 있는 정태춘 음악의 영속성을 여실히 증명한다.

미래가 아닌 과거로의 이상 회귀

‘아, 환멸의 90년대를 지나간다’ (건너간다 中)
‘동네 할머니 손수레 지나가고/동네 할아버지 리어카 끌고 오고’ (사람들 2019′ 中)

희망으로 가득할 것 같은 새천년을 맞이했지만 이 나라엔 여전히 ‘노인을 거지로 버려두는’ 차별이 만연하다. 노년층만의 얘기가 아니다. 세대, 성별, 지역, 학벌, 재력 등 공감을 막아서는 벽이 많아도 너무 많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대외적인 활동 빈도를 줄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세상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할지 고민하던 정태춘은 끝내 자본주의 체제와의 고별을 선언한다. 그가 노랫말로 그려낸 이상적인 세상은 미래를 뜻하진 않는다.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는 먼 옛날의 수렵 채집 사회, 부에 대한 욕심이 없어 화폐를 만들거나 이자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던 세계를 꿈꾼다. ‘양아치라고 불리기도’ 했던 정태춘은 그렇게 자유인이 되었다.

2시간이 채 안 되는 러닝타임으로 정태춘의 일대기를 요약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 짧은 시간에 흩뿌려진 40년 음악 세월의 조각들은 매 순간마다 그 가치를 입증한다. 때로는 절제된 형식미를 영위하는 시인이 되어, 때로는 격양된 자세로 반(反)하는 흐름을 이끈 투사가 되어 기록한 ‘아치의 노래’, 올곧은 길을 걸어온 뮤지션을 향한 가슴 벅찬 헌사이자 이 시대가 전하는 위대한 전언이다.

–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
1. 이런밤
2. 시인의 마을
3. 양단 몇 마름
4. 촛불
5. 바람
6. 떠나가는 배
7. 북한강에서
8. 한 밤중의 한 시간
9. 고향집 가세
10. 들가운데서
11. 얘기2
12. 송아지 송아지 누렁송아지
13. 일어나라, 열사여
14. 우리들의 죽음
15. 아, 대한민국…
16. 정동진 (1)
17. 건너간다
18. 아치의 노래
19. 황새울 지킴이의 노래
20. 저 들에 불을 놓아
21. 92년 장마, 종로에서
22. 광주천
23. 5.18
24. 봉숭아
25.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26. 사랑하는 이에게
27. 사람들 2019′
28. 정동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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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되찾은 서울의 열기, 제14회 서울 재즈 페스티벌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당연시 여겼던 일상이 갑작스레 자취를 감추고, 그로 인한 공백은 ‘코로나 블루`라는 마음의 병을 낳았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공연 업계가 입은 내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었다. 코로나19는 라이브 음악과 관객을 철저히 멀어지게 했으며, 뮤직 페스티벌은 열두 번의 계절을 보낸 뒤에야 다시 막을 올릴 수 있었다.

일상 복귀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5월의 끝자락, 마침내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 굳게 닫힌 문을 열고 음악 팬들을 맞이했다. 축제의 둘째 날인 28일, 3년 동안 비워뒀던 올림픽공원 88 잔디마당은 오랜 갈증을 풀기 위해 모여든 만여 명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일찍 찾아온 불볕더위에도 저마다 돗자리를 펴 놓고 둘러앉아 오랜만에 해방감을 만끽한 관객들의 얼굴엔 지친 기색보다 웃음기가 가득했다.

느즈막이 도착한 88 잔디마당에선 악뮤의 무대가 진행되고 있었다. 재즈 선율을 느낄 수 있는 ‘200%’, ‘Re-bye’를 비롯해 다양한 히트곡이 울려 퍼졌고 남매를 향한 떼창과 환호성이 끊이질 않았다. ‘오랜만에 페스티벌인데 굉장히 흥분되네요’라고 소감을 밝힌 이들은 공연 내내 노련한 팬 서비스로 공연장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다음 순서는 단연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던 호세 제임스의 무대. 재즈 명가 블루노트의 간판 싱어인 그는 전설 빌 위더스의 명곡들을 커버한 트리뷰트 앨범 < Lean On Me >을 중심으로 셋리스트를 구성했다. ‘Ain’t no sunshine’, ‘Lovely day’, ‘Lean on me’ 등의 위대한 유산이 흘러나오자 객석에선 연이어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연주였다. 재즈의 즉흥성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합주를 선보인 밴드 멤버들은 앵콜곡 ‘Just the two of us’로 무대를 끝맺는 순간까지 관객들의 혼을 빼놓았다.

저녁 8시를 넘은 시각, 어둑해진 밤하늘을 배경으로 헤드라이너 알렉 벤자민의 무대가 펼쳐졌다.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등장한 그는 과거의 소년미를 벗고 한층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청량한 음색과 서정적인 감성의 팝이 선선한 저녁 공기와 어우러져 나른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관객들은 늦은 시간임에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았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일요일, 작열하는 태양보다 뜨거운 열기를 뿜어낸 건 다름 아닌 선우정아의 퍼포먼스였다. 유튜브 내 유행 중인 재즈 여왕 엘라 피츠제럴드의 밈(Meme),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를 재치 있게 패러디한 그는 명품 스캣으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관록을 뽐낸 베테랑 재즈 보컬리스트의 공연이 마무리되고 이어지는 무대는 4년 만에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 재방문한 영국 시티팝 밴드 프렙. 펑크(Funk)와 재즈를 결합한 마성의 멜로디로 국내에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들은 스탠딩 존으로 모여든 팬들에게 ‘오랜만입니다 서울, 감사합니다!’라고 익숙하게 한국어 인사를 건넸다. 푹푹 찌는 더위에도 관객들은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켜며 낭만적인 시티팝 선율에 몸을 맡겼다. 밴드 특유의 여유 넘치는 그루브는 잠시였지만 88 잔디마당에 운집한 관객들을 시원한 바람이 부는 해변으로 옮겨놓았다.

페스티벌의 정체성에 대한 의견은 올해도 엇갈렸다. 주최 측은 다양한 기호를 가진 음악 팬들의 만족도를 고려해 넓은 장르를 포용하며 대중성을 강화했다. 한국 팬들의 취향을 섬세하게 고려한 해외 아티스트 라인업에서도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페스티벌 타이틀에 걸맞은 라인업 구성이냐는 재즈 팬들의 아쉬운 목소리가 여전히 들려왔다.

그럼에도 올림픽 공원에 모인 만여 명의 관객들은 모처럼 열린 뮤직 페스티벌에 꿈같은 3일을 보냈다. 거리두기 지침에 따른 인원 제한, 한 개의 스테이지로 운용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한계 등 여러 악조건 속에 개최된 점을 참작했을 때 이만하면 성공적인 마무리다.

움츠렸던 음악 팬들의 연례행사가 다시금 활력을 찾아가고 있다. 단절과 소통의 과도기에서 만난 2022 서울 재즈 페스티벌은 규제들로부터 완벽히 해방될 내년을 기대하게 만든다. 관객들은 그저 코로나 사태로 누적된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줄 뮤직 페스티벌이 필요했다. 그리고,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 돌아왔다.

사진 제공 : 프라이빗 커브(Private Cur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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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 반겔리스, 소리의 모험가를 떠나보내며

5월 17일, 코로나19가 또 하나의 귀중한 음악적 자산을 앗아갔다. 프로그레시브 록, 재즈, 심지어는 앰비언트까지 섭렵하며 전자음악의 선구자로 불리던 반겔리스가 향년 79세의 나이로 세상과 작별했다는 소식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룹 포밍스(The Forminx)와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hrodite’s Child)를 거치며 1970년대부터 솔로 활동을 벌인 그는 영화 음악을 비롯해 다양한 프로젝트에 폭넓게 참여한 종합 음악인으로, 국내에서는 2002 한일 월드컵의 주제곡인 ‘Anthem’을 선물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커리어와 대표작을 소개한다. 아티스트를 이미 알고 있던 이들에게는 추억할 수 있는, 처음 들어보는 독자들에게는 그의 음악을 새로이 탐구할 수 있는 글이 될 것이다.

본명은 에반겔로스 오딧세이 파파타나시우(Evangelos Odysseas Papathanassiou). 훗날 전세계에서 유명세를 떨치며 우주로도 뻗어 나간 뮤지션의 시작점은 그리스의 작은 항구도시 볼로스였다. 1943년 태어나 어린 나이부터 피아노를 만지며 음악에 관심을 보인 그는 체계적인 교육을 따르는 대신 독창성을 빚어냈고, 1963년에는 5인조 밴드 포밍스를 결성해 일렉트릭 오르간을 맡았다. 전통 음악이 우세하던 당시 그리스에 재즈와 록 등의 서구적인 사운드를 도입한 ‘Jeronimo Yanka'(1964) 등의 싱글로 새 바람을 몰고 왔다.

인기에 힘입어 국제 무대에서의 홍보 방안으로 다큐멘터리 또한 제작되었으나 제작진의 분쟁으로 촬영이 중단되었고, 그 영향으로 밴드 또한 최고 전성기인 1966년 해체를 알리게 된다. 이후 군사정권의 쿠데타를 피해 프랑스로 거처를 옮긴 그가 만든 팀이 바로 아프로디테스 차일드다. 루카스 시데라스와 아이돌스(Idols)라는 그리스 밴드에서 활동했던 데미스 루소스가 합류한 그룹은 요한 파헬벨의 ‘Canon’을 차용한 싱글 ‘Rain and tears'(1968)로 여러 유럽 국가에서 히트를 거두며 명성을 얻었다.

첫 앨범 < End Of The World >(1968)의 뒤를 이어 애절한 선율 덕에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싱글 ‘I want to live'(1969)와 ‘It’s five o’clock'(1969),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1970) 등이 연속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2집 < ‘It’s Five O’Clock’ >(1969) 이후 병역 문제로 활동하지 못한 초기 멤버 실버 쿨루리스가 다시 합류해 4인조가 된 밴드는 상업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레코드사가 발매를 막는 상황에서도 2년에 걸친 작업 기간 끝에 < 666 >(1972)를 완성시켰다. 기존의 팝적인 색채를 대부분 들어내고 사이키델릭/프로그레시브 록의 요소를 대거 투입한 음반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극찬과 더불어 지금까지도 컬트 명반으로 남아있다.

팀이 해체된 후 리드 보컬이었던 데미스 루소스가 ‘We shall dance'(1971), ‘Goodbye, my love, goodbye'(1973) 등으로 차트를 휩쓸며 곧바로 승승장구한 것과 달리 반겔리스는 상업성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1970년대 중반, 런던으로 이주한 그는 본인이 설립한 네모(Nemo) 스튜디오에서 전위적인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선보인 < Heaven And Hell >(1975)을 발매하며 로열 앨버트 홀 공연을 매진시켰고, 프랑스의 다큐멘터리 감독 프레데릭 로시프(Frédéric Rossif)의 작품에 사운드트랙을 제공하면서 영화 제작자들의 주목을 샀다.

1980년대, 마침내 < 불의 전차 > OST가 제3의 부흥기를 몰고 왔다. 오케스트라 위주로 편성하던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 신시사이저를 중추로 하여 만든 사운드트랙은 1981년 빌보드 앨범과 싱글 차트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다.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영화음악 부문도 그의 차지였다. 다양한 영화사에서 러브콜을 보냈고, 리들리 스콧 감독의 < 블레이드 러너 >에 참여하면서 미래 디스토피아 사회를 생생하게 묘사한 음악으로 극찬을 받았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다큐멘터리 < 코스모스 >에 < Heaven And Hell >의 수록곡을 삽입하기도 했다.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Yes)의 보컬 존 앤더슨과 듀오 존 앤 반겔리스(Jon and Vangelis)를 결성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었다.

좌 < 불의 전차 >(1981), 우 < 블레이드 러너 >(1982)

쾌거는 다양한 영역으로도 이어졌다. 1997년 아테네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무대 지휘를 맡았고 2000년 시드니 하계 올림픽 폐막식에서는 감독 자리에 올랐다. 2002년에는 한일 월드컵의 공식 주제가로 한국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우주로도 눈길을 돌린 뮤지션은 나사의 2001 마스 오디세이 탐사선 프로젝트를 위한 < Mythodea >(2001), 유럽 우주국 ESA의 탐사선 로제타의 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 착륙을 기념하며 < Rosetta > (2016)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다”라는 ESA의 추모사처럼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지며 확장과 쇄신을 거듭한 커리어는 많은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되었다. 유명 영화음악 작곡가인 한스 짐머는 반겔리스를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로 꼽았고, 같은 그리스 출신이자 뉴에이지 장르를 대표하는 야니는 스스로 그의 팬을 자처하기도 했다. 국내 아티스트 중에서는 윤상이 그의 음반을 듣고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밝힌 바 있다.

< 불의 전차 >에서 주인공은 난관을 겪지만 소신을 지킨 끝에 결국 값진 승리를 얻어내는 인물이다. 반겔리스의 일대기도 비슷하다. 다른 외부적인 요인에 개의치 않고 좋은 음악을 만들겠다는 일념을 지킨 끝에 많은 이들의 마음에 각인되었으니 말이다. 성실함이 미덕의 자리에서 조금 물러난 시대,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의 숭고함은 끝까지 이어진다. R.I.P. 반겔리스.

“꼭 들어야 할 반겔리스 음악 10곡”
‘Rain and tears’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1968)
‘I want to live’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1969)
‘It’s five o’clock’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1969)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1970)
‘La petite fille de la mer’ (< L’Apocalypse des animaux > 사운드트랙, 1973)
’12 o’clock’ (< Heaven and Hell > 파트 2, 1975)
‘Chariots of fire'(< 불의 전차 > 사운드트랙, 1981)
‘Polonaise’ (존 앤 반겔리스, 1983)
‘End title’ (< Blade Runner > 사운드트랙, 1994)
‘Anthem’ (한일 월드컵 공식 주제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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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차트 역주행 특집 VOL 3. IZM 필자들이 뽑은 ‘역주행 되기를 바라는 곡’

‘역주행’이라는 키워드에 걸맞게 작년 5월 진행했던 차트 역주행 특집이 정확하게 1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조금 가볍게, IZM 필진들의 사심이 가득 담긴 ‘제발 한 번쯤 역주행했으면 하는 곡’을 소개한다. 숨겨진 명곡, 아쉬운 매치업, 앞서간 작법, 혹은 발굴의 의미까지… 필자마다 천차만별인 기준 만큼이나 장르와 시대를 아우르는 독특한 리스트가 탄생했다. 아직은 ‘희망 명단’에 불과하더라도, 언젠가 도약할 그날을 위해 같이 회고하는 것은 물론이요, 독자 역시 자신만의 선정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오마이걸 ‘한 발짝 두 발짝’
설렘의 감정을 스트링 선율로 물들인 멜로디와 완성도 높은 멤버들의 하모니가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소환한다. 소속사 선배 B1A4 진영이 선물해준 이 곡은 발매 당시 큰 파도를 일으키지 못했지만 점차 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일명 ‘갓 발짝 킹 발짝’의 칭호를 획득했다. 진가는 노랫말에 있다. 풋풋한듯 비장하게 건넨 ‘거리두기 완화 고백법’으로 가사의 미학과 시의성마저 겸비한 ‘한 발짝 두 발짝’은 지금 당장 컴백한다 해도 눈감아 줄 수 있을 정도. 2020년 전국에 물보라 주의보가 발령되기 4년 전부터 이미 오마이걸의 핑크빛 바다(Pink Ocean)는 일렁이고 있었다.

블로섬즈(Blossoms) ‘There’s a reason why (I never returned your calls)’
따스한 햇볕처럼 쏟아지는 신시사이저에 벚꽃 필 무렵의 1980년대가 아른거린다. 떠나간 연인을 향한 속앓이와 미련 섞인 투정은 사랑에 서툴렀던 모두의 지난날을 끄집어내 복잡한 감정을 안기다가도, 이 마성의 리프 앞에 곧장 추억으로 미화된다. 데뷔부터 노골적으로 과거 시제를 겨냥해온 블로섬즈의 집념이 끝내 열매를 맺은 것.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멜로디와 선배 그룹 스웨이드를 연상케 하는 톰 오그던의 고풍스러운 음색은 청취를 넘어 회상의 영역까지 안내한다. 향수, 계절성, 공감대, 그리고 뉴트로. 역주행의 모든 조건을 충족한 곡이다.

이박사 ‘몽키 매직-우주몽키(Feat. 윈디시티)’
어느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트로트라고 답하는 젊은이는 흔치 않다. 급격한 사회 변혁을 거치며 젊은 세대와 윗세대 사이에 취향의 장벽이 생긴 탓이다. 하지만 트로트계의 이단아 이박사에게 세대 간의 담은 대수롭지 않다. 그는 특유의 독창적인 매력을 소통의 열쇠로 삼아 록 페스티벌의 관중을 당당하게 호령한다. 빠른 템포의 고속도로 사운드로 일관했던 이박사의 ‘몽키매직’을 사이키델릭한 편곡으로 풀어낸 윈디시티의 역량이 곡에 매력을 더한다. 트로트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도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진 지금 이박사와 윈디시티의 ‘몽키 매직-우주몽키’는 트로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할 수 있는 곡이다.

테빈 켐벨(Tevin Campbell) ‘Can we talk’
힙합과 알앤비가 손을 잡은 이래 서로의 장점을 한 음악에 녹여내는 시도가 많아지는 추세다. 둘 중 어느 장르인지 구분이 모호한 곡도 많다. 귀에 쉽게 들어오는 멜로디와 탄탄한 실력의 보컬, 낭만적인 가사의 1990년대 알앤비가 그리운 이들에게 ‘Can we talk’는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1993년에 이미 히트했던 이 곡은 비트에 약간의 세련미를 더한다면 분위기나 콘셉트에 경도된 음악에 지친 이들에게 충분한 휴식 시간을 제공할 수 있는 노래다. 지금의 경향이 좋아도 가끔은 알앤비는 알앤비대로 듣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기본에 충실한 노래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이상은 ‘더딘 하루’
‘삶은 여행’, ‘언젠가는’ 등 따뜻한 온도의 곡과 동양적 색채를 중심으로 거침없이 장르를 배합하는 < 공무도하가 > 스타일. 이 양단의 끝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것이 뮤지션 이상은의 핵심이자 빼어난 강점이다. 인기의 정점을 누리던 중 돌연 활동 중단 및 유학을 선언한 뒤 1991년 발매한 동명 음반의 타이틀 ‘더딘 하루’는 그런 그의 과도기를 담고 있다. 잔잔하게 시작해 수직적 울부짖음으로 향하는 구성은 ‘담다디’로 인기를 끌어모았던 그 시절, 대중의 기대를 완벽하게 벗어났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만큼 폭발적이고 이만큼 반전의 충격을 안기는 곡은 잘 없다. 보시라, 들어 보시라. 어떤 식으로든 모창하거나 밈(meme)화 하게 될 것이니…

티건 앤 세라(Tegan and sara) ‘Make you mine this season’
경쾌하고 발랄한 분위기의 노래가 시작부터 귓가를 사로잡는다. 뒤이어 울려 퍼지는 한마디, ‘Make you mine’. ‘널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이자 언젠가 아니, 언제고 듣고 싶은 마음 설레는 문장이 짧은 러닝타임 내내 반복된다. 간지럽고 좋다. 곡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 < 크리스마스에는 행복이 >의 수록곡이다. 작품이 담고 있는 유쾌함과 달콤함을 응축해 영화의 맛도 살리고 노래의 맛도 살렸다. 그러나 진가는 영상을 통해 곡을 만났을 때 드러난다. 국내에는 잘 없는 밝은 퀴어 로맨스를 그린 영화에 톡 떨어지는 곡이 참 중독적이다. 듣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고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마성의 노래.

이엑스아이디(EXID) ‘데려다줄래’
이엑스아이디에게 날개를 달아 준 신사동호랭이의 그늘에서 벗어나 팀의 래퍼 엘이가 작사, 작곡하여 마련한 무대이다. ‘위아래’ 이후 역주행 신화를 잇기 위해 도발적인 모습을 앞세운 ‘아예’, ‘덜덜덜’ 등이 자기복제를 벗어나지 못했던 데에 비해 안정된 속도감이 이들의 실력을 조명한다. 과거 언더그라운드 힙합 크루 지기펠라즈에 속해 이미 검증된 바 있는 랩과 보컬트레이너로서의 경력이 있는 솔지의 목소리, 각자의 자리를 알고 움직이는 멤버들의 역량은 관능적인 춤이 하나의 무기에 불과했음을 증명한다. 짙은 색깔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한 음악은 그들을 ‘한 때 돌풍을 일으킨 섹시 심볼’로 보내주기 힘든 이유이다.

88라이징(88rising) ‘Midsummer madness’
아시아계 아티스트만을 영입하며 확고한 방향성을 정립한 88라이징의 목표는 글로벌 시장에 깃발을 꽂는 것이다. 리치 브라이언(Rich Brian), 조지(Joji) 등 이미 검증된 이들을 등에 업고 꾸준히 세계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레이블은 2018년 컴필레이션 앨범 < Head In The Cloud >를 발매하며 다음 단계를 도모했다. 곡의 도입부터 ‘떼창’을 유도하며 여름의 더위를 식혀 줄 명확한 의도를 가진 ‘Midsummer madness’의 중독성은 단연 돋보인다. 짧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반복적인 구성 탓에 금세 감흥이 줄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하나쯤 남아 있는 아련한 오뉴월의 저녁을 떠오르게 만든다. 아카데미와 그래미로 영역을 넓히는 동양 문화의 한 축을 차지할 집단의 한여름 열기는 아직 뜨겁다.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Learn to fly’
움츠러든 시대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서로 멀어지기를 명했던 세계가 집합하기 시작했고 이에 굳어있던 심장이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이제 앞을 보고 뛸 일만 남았다. 너바나의 음울했던 그림자를 벗겨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결국 누구보다 밝은 고유 형체를 갖게 된 푸 파이터스의 ‘Learn to fly’는 그런 점에서 현세대에 필요한 최고의 음악적 격려였다. 빌보드 싱글 차트 19위, 모던록 차트 1위 등 밴드에게 최초로 대중적 영예를 안긴 곡이기도 하지만, 어떤 분노와 슬픈 감정 하나 없이 경쾌한 연주와 보컬로 전달하는 직선적 쾌감이 물들이는 희망은 분명 시제를 관통할 보편성을 지녔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와 함께 그들이 전파한 ‘힘’이 다시금 울려 퍼지길 기대하며 지금이야말로 ‘하늘을 나는 법’을 배워야 할 때라고.

라붐 ‘아로아로’
2021년 브레이브걸스가 ‘롤린’으로 보여준 기적은 팬데믹 시대에 지친 대중을 위로했다. 우연히 마주한 희망에 모두는 자연스레 다음 페이지를 이어갈 타자를 기대했고 따스한 흐름 속 언급된 여러 후보 중 유력한 그룹은 단연코 라붐이었다. 데뷔 해였던 2014년부터 꾸준히 군부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이력도 비슷했지만, 무엇보다 음악이 있었다. 대표곡 ‘상상더하기’가 한차례 반등에 성공한 지금 그들의 세 번째 싱글이었던 ‘아로아로’는 라붐의 재각인을 도울 확실한 촉진제다. 레트로를 기반으로 한 신스팝 장르의 경쾌한 편곡과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 후렴구의 ‘치키차’란 포인트 가사까지. 기분 좋게 갖춰진 중독성은 이미 역전 시나리오의 긍정적 결말을 그리고 있다.

보이즈 라이크 걸즈(Boys Like Girls) ‘The great escape’
단번에 꽂히는 멜로디와 단순한 구성에 탄산음료 한 잔의 청량감이 담겨있다. 팝 펑크 특유의 경쾌함을 살린 ‘The great escape’는 국내에서 각종 게임 대회와 TV광고 배경음악으로 자주 등장해 2010년대 초반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던져 버려, 어제는 잊고. 우리는 위대한 탈출을 감행할 거야!’라며 반항적으로 외치는 노랫말과 톡쏘는 절정은 학업에 지친 학생들의 아드레날린을 분출하며 답답함을 날려버렸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 마주한 그들의 스트레스도 단숨에 해소해줄 만큼 여전히 강렬하고 통쾌하다.

브로콜리 너마저 ‘보편적인 노래’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 씁쓸한 말을 일삼던 시기에 브로콜리너마저는 방황하던 젊은 마음들을 어루만졌다. 단출하고 편안한 기타 선율 위에 보편적인 이야기를 읊조렸을 뿐이지만 흔하디 흔한 위로가 건넨 온기는 아직도 따뜻하게 남아있다. 특히 후미에 등장한 계피의 목소리에는 누구나 갖고 있는 소중한 기억으로 역주행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추억 속 포크 음악이 주는 진솔한 감상을 잠시 음미하기조차 어려워진 오늘날, 각박한 현대사회를 다정하게 물들일 추억 속 책갈피를 펼쳐본다.

데프콘(Defconn) ‘길’
각종 예능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인지도를 쌓은 데프콘은 20세기에 첫 앨범 < Kapital G >를 발표할만큼 경력이 길다. 하드코어 랩 ‘독고다이’나 버벌진트와 함께한 ‘Sex drive pt.2’ 처럼 거친 초기작은 친근한 이미지로 희석되기 아쉽다. 거침과 부드러움을 배합한 2003년 작 정규 1집 < Lesson 4 The People >에서 ‘길’은 후자에 속했다. 초등학생 시절이 끝날무렵 접한 푸근한 멜로디와 쏙쏙 들리는 가사는 지오디의 동명의 히트곡과는 다른 매력이었고, ‘슈퍼스타’란 곡으로 잘 알려진 불독맨션의 이한철이 피처링을 맡아 밴드풍 사운드가 완성되었다. 삶의 기로에 놓인 무명 래퍼의 솔직담백한 곡이다.

팀발랜드(Timbaland) ‘Give it a go (feat: Veronica)’
팀발랜드는 2000년대 중후반 뮤지션과 프로듀서 등 다양한 직함을 내걸고 히트곡을 쏟아냈다. 휴 잭맨 주연의 영화 < 리얼 스틸 >에 수록된 ‘Give it a go’는 주인공 소년과 격투 로봇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에서 흥겨움을 선사했다. 팀발랜드 특유의 전진하는 편곡에 배우 겸 가수 베로니카의 목소리가 힘을 보탰다. 따라부르기 쉬운 후렴구로 히트 공식도 성립하지만 비슷한 제목의 ‘Give it to me (Feat. Justin Timberlake, Nelly Furtado)’가 빌보드 1위까지 오른 것에 비해 싱글 커트 조차 하지 않았다. 안젤리나 졸리의 아버지 존 보이트가 나온 1979년작 < 챔프 >의 21세기 버전 같은 < 리얼 스틸 >의 사운드트랙엔 이 곡을 비롯해 푸 파이터스의 ‘Miss the misery’와 에미넴의 ”Till I collapse (Feat. Nate Dogg) 같은 강력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싸이 ‘비오니까’
우리의 ‘연예인’에서 모두의 ‘연예인’이 된 싸이는 댄스 가수다. ‘챔피언’, ‘연예인’, ‘Right now’, 그리고 ‘강남 스타일’까지 결정적인 대표곡들이 전부 신나는 춤곡인 탓에 바꿀 수 없는, 바꾸지 않을 선입견이 그에게 잡혀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서정적인 음악을 좋아한다. 선정적인, 성적인을 잘못 쓴 것이 아니다. ‘친구놈들아’, ‘아름다운 이별 2’, ‘예술이야’, 그리고 이 특집에 넣은 ‘비오니까’ 같은 작품을 더 자주 듣는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가사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김광석 정도를 빼면 내가 노랫말을 유심히 보는 몇 안 되는 가수 중 한 명이다. ‘비오니까/그러니까/그래서/그랬어요’. 운(韻)이 단순해서 좋다. 싸이를 발라드 가수로 만들자.

지미 잇 월드(Jimmy Eat World) ‘The middle’
약 10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록의 봄이 돌아오기를. 올리비아 로드리고, 머신 건 켈리, 태연, (여자)아이들 등 그 문법을 활용한 뮤지션이 활약하는 요즘 펑크(funk)와 디스코 이후 새 과거 유산을 찾듯 신복고 물결을 타고 고개를 내미는 록이 정말 반갑다. 걸걸한 기타 사운드로 가득한 나의 애청목록에 반해 국내 싱글 차트에서는 정제된 신시사이저만이 울리고 있어 쉬이 눈길이 가지 않아 이를 정화하고자 록 음악을 준비했다. 인간적인 매력이 살아 있는 20세기 노래를 소개하기에는 역주행에 ‘역’자도 꺼내기 전에 실패할 것 같아 2001년 빌보드 HOT100 탑10에서 5위에 올라 딱 중간을 차지했던 팝 펑크의 정석 ‘The middle’을 추천하고 떠난다.

공원소녀 ‘Bazooka!’
좋은 음악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빛을 본다는 운명론을 믿는 편이다. 공원소녀를 두고 ‘아직 발화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았을 뿐,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도약할 팀’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일삼던 것 역시, 그들이 꾸준히 선보인 양질의 결과물에서 리스너의 확신을 도출했기 때문이었다. 현란한 멜로디와 모범적인 드롭 활용으로 트로피컬 하우스 계열의 K팝 사운드를 정립한 ‘밤의 공원’ 시리즈와 더불어 대중성까지 고루 버무린 웰메이드 트랙 ‘Bazooka!’를 그저 과거의 산물로 남겨두기에는 이제 아쉬움보다 죄책감이 앞설 정도다. 역주행 워너비의 영순위로 이 곡을 뽑은 이유는 간단하다. 과장을 조금 보태, 그 누구에게 들려주더라도 단번에 사로잡을 자신이 있으니까.

스카이 페레이라(Sky Ferreira) ‘Everything is embarrassing’
매체와 기기의 거듭된 발전으로 국가 간 장벽은 허물어진지 오래. 이미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두아 리파와 빌리 아일리시는 물론, 이제는 마니아 감성의 찰리 XCX와 FKA 트위그스까지 국내에서 입지를 꽤나 얻은 상태다. 그렇기에 더더욱 짙은 스모키 화장과 공허한 삼백안의 뮤즈, 스카이 페레이라의 언급은 빼놓을 수 없다. 비교적 주목은 덜하더라도 이들 못지않은 만능 플레이어기 때문. 대표곡 ‘Everything is embarrassing’을 보자. 자욱한 몽환경 속 덧없는 애가(哀歌)는 취향의 영역을 가혹하게 요구하지만, 기어코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힘든 모진 매력을 지닌다. 게다가 대중의 호응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인 팝의 기본 질서를 탄탄하게 충족하고 있으니 뭘 더 바라겠는가. 만약 이 글을 읽고 호기심이 생겼다면, 새벽 시간의 퇴폐와 습기를 가득 머금은 그의 앨범 < Night Time, My Time >까지도 필청을 권한다.

소나무 ‘넘나 좋은 것’
행사 공연 ‘직캠’ 하나로 메이저 반열에 올라선 이엑스아이디, 전국 곳곳의 군부대를 누비며 ‘젊은 장병들의 선택’을 받았던 브레이브걸스, 낙수 효과 덕분에 ‘좋은 음악’을 재조명 받을 수 있었던 라붐까지. 이들의 모든 역주행 공식을 따랐지만 걸그룹 소나무만큼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철 지난 속어 제목을 실패 이유로 들기엔 곡 구성과 멜로디가 결점을 완벽히 상쇄한다. 아카펠라로 출발해 신시사이저와 스트링을 비롯한 악기들이 펼치는 협연은 한 편의 뮤지컬 같은 감상을 이입하고, 끊임없는 변주의 끝엔 메인보컬 하이디의 환상적인 5단 고음이 펼쳐진다. 음원엔 이들의 활기찬 에너지가 온전히 담기지 못했다. 언젠가는 다시 무대 위에 올라 늘 푸른 기운을 담은 라이브로 관객을 놀라게 할 2010년대 슈가맨.

탑독 ‘애니’
유독 남자 아이돌에겐 이 짜릿한 역행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는다. 노래가 좋아도 팬덤 위주로 소비하는 경향이 강해 널리 퍼지기 힘든 구조가 한몫한다. 13인조 보이그룹 탑독 역시 초기의 난감한 콘셉트가 꽤나 큰 진입장벽을 세워 활동 반경을 크게 넓히지 못했다. 하지만 데뷔 1주년이란 ‘기념일(Anniversary)’을 맞아 발표한 팬송만큼은 대중적으로 회자될 만한 요소가 다분하다. 1990년을 상징하는 미국의 두 래퍼 MC 해머와 바닐라 아이스를 모티브로 한 뉴 잭 스윙 장르의 댄스곡이라는 점부터 특색 있다. 세련된 기타 리프와 신나는 비트 사이에서 개성 넘치는 랩과 보컬이 쉴 틈 없이 호흡을 주고받고, 후렴구에선 LP를 들고 현란한 안무를 소화하며 보는 재미까지 선사한다.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청취를 막아서는 것은 멤버들을 다닥다닥 정렬해놓은 앨범 커버. 우연히 재소환 당할 기회가 찾아온다면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처럼 사진 교체가 시급하다.

씨아이엑스 (CIX) ‘Cinema’
워너원으로 활동했던 배진영 그룹이라는 별명보단 데뷔 무대가 기억에 남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야외무대에 선 신인 아이돌은 풋풋하고 열정적이었다. 소형 기획사지만 송 캠프 시스템을 도입하여 음악에 큰 비용을 투자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주목했다. 데뷔 초의 무거운 콘셉트와 음악을 씻어내고 산뜻하게 다가온 ‘Cinema’는 팀의 잠재력을 확인한 결정적 순간이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밝지만 선명하진 않다. 사이다처럼 톡 터지는 한 구절 대신 일정한 리듬과 편안한 멜로디로 상투적인 청량 K팝과 거리를 둔다. ‘Ready and action!’이라는 사인 뒤, 맥동하는 기타와 함께 시작하는 도입부와 코러스에서 쭉 뻗어 나가는 승훈의 보컬도 매력적이다. 내 필름 위에 씨아이엑스를 선명히 각인한 테이크다.

코난 그레이 (Conan Gray) ‘Generation why’
‘Maniac’의 전세계적인 히트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코난 그레이의 매력은 순수한 미성으로 부르는 냉소적인 가사다. 아일랜드-일본 혼혈로서 시달린 선입견과 부모님의 이혼으로 12번 이사한 과거가 공허하고 우울한 음악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다. Z세대 팝스타로 떠오르기 이전에 발매한 ‘Generation why’는 더욱 몽환적이고 내밀하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소년은 ‘우린 무기력하고 이기적이고 유별난 데다가 모두 죽고 싶어 하는 밀레니엄 세대니까’라며 비꼬고 수백 번은 들었을 ‘너희 세대는 도대체 왜 그런 거야’라는 잔소리를 떨쳐내려 한다. 그 모습이 세대 갈등을 겪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이 노래가 울려 퍼지면 어른들도 조금은 우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을까.

나인뮤지스 ‘Wild’
달샤벳, 레인보우와 함께 ‘나달렌’으로 묶이며 늘 더 뜨지 못해 안타깝다는 시선을 받았던 걸그룹 나인뮤지스. 그들의 노래 중 가장 아까운 건 역시 2013년에 발표한 ‘Wild’다. 차가운 건반 사운드와 화려한 전자음을 뚫고 나오는 멤버들의 목소리는 단번에 강렬한 흔적을 남기고, 자극적인 콘셉트에 가려진 사랑하는 이에게 외치는 가사 ‘늘 함께 함께 가야만 해’가 퍼뜨리는 울림 또한 폭발적이다. 분열로 가득한 지금 시대에 더욱 각별하게 다가오는 문장이다. 지난해 SBS < 문명특급 > ‘다시 컴백해도 눈감아줄 명곡’ 특집의 무대 곡으로 가장 흥행했던 ‘Dolls’를 선택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지만, 학창시절 방송반 선곡표를 짜며 이 노래를 듣고 감탄에 빠졌던 나는 여전히 ‘Wild’와 함께 가고 있다.

칼리 래 젭슨(Carly Rae Jepsen) ‘Run away with me’
‘Call me maybe’의 돌풍 이후 가볍고 반복적인 훅을 내세운 ‘I really like you’는 복귀작 < Emotion >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앨범은 평단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는 실패를 거뒀다. 두 번째로 발표한 ‘Run away with me’ 또한 빌보드 차트에는 진입조차 못했으나 팬들의 열렬한 지지 덕에 어느덧 그의 상징적인 곡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도입부의 색소폰과 따스함을 머금은 멜로디, 간결하면서도 확실한 메시지 ‘나와 함께 달아나자!’까지 흠잡을 곳 하나 없는 노래가 흥행하지 못한 것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1980년대 풍 레트로 유행을 5년가량 앞섰다는 점에서도 더더욱 그렇다. 칼리 래 젭슨은 바쁜 틴 팝 스타를 벗어나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소탈한 뮤지션이 된 삶에 만족한다지만 적어도 이 노래 만큼은 지금보다 더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정리 : 장준환
이미지 디자인 : 정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