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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근의 하나씩 하나씩 Feature

미드의 주제곡 속으로 (Into The Theme From American Drama Series)

최근에는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글로벌 시장을 장악해오고 있는 드라마는 우리가 ‘미드’라고 부르는 미국 드라마(혹은 시리즈)였습니다. 기성세대의 기억에 선명한 < 초원의 집 >, < 600만 불의 사나이 >, < 소머즈 >, < 원더우먼 >, < 미녀 삼총사 >, < 전격 Z작전 >, < 에어울프 >, < A 특공대 >, < 두 얼굴의 사나이 >, < 맥가이버 > 같은 미드는 1970~1980년대 우리나라 텔레비전을 석권했었죠. 이중에는 영화로 제작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들도 많아서 젊은 분들도 이 제목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미드들이 대중으로부터 사랑받은 이유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와 유머, 액션 그리고 멋진 배우들이었지만 그 못지않게 큰 몫을 담당했던 건 주제음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 하나씩 하나씩 >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었던 미국 드라마의 주제곡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이 주제를 저에게 선뜻 양보해준 이즘의 ‘귀염둥이’ 필자 염동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1. 엉터리 슈퍼맨 (The Greatest American Hero)

1978년과 1981년에 영화 < 슈퍼맨 >과 < 슈퍼맨 2 >가 성공을 거두자 여기서 힌트를 얻은 텔레비전 시리즈가 바로 이 드라마입니다. 1980년대 초반에 방송된 이 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 < 엉터리 슈퍼맨 >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됐는데요. 그런데 왜 ‘엉터리’일까요? 우주인은 주인공에게 하늘을 날 수 있는 옷과 그 옷의 매뉴얼을 건네줬지만 실수로 그 설명서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주인공은 제대로 날지도 못했고 착지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착륙할 때마다 땅에 곤두박질쳐서 ‘엉터리 슈퍼맨’이 됐죠.

브라이언 드 파머의 공포영화 < 캐리 >에 출연한 윌리엄 캐트가 주연을 맡은 < 엉터리 슈퍼맨 >은 주제곡이 유명한데요. 컨트리 팝 가수 조이 스카배리가 부른 ‘Believe it or not’은 1981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2위까지 올랐고 우리나라에서 방송할 땐 전영록이 번안해 불렀습니다. 텔레비전 드라마 음악의 제왕 마이크 포스트가 작곡한 이 노래는 1980년대에 열심히 팝송을 들으셨던 분들이라면 이 따뜻한 멜로디가 생각나실 겁니다.

2. 머나먼 정글 (Tour Of Duty)

< 머나먼 정글 >도 < 엉터리 수퍼맨 >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습니다. 1986년에 개봉한 영화 < 플래툰 >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제작한 드라마가 < 머나먼 정글 >이죠. 이 미드는 1980년대 후반 국내에서 방송됐는데요. 유명한 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월등한 액션 장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유는 오프닝에 나오는 주제곡 덕분입니다.

1966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한 롤링 스톤스의 ‘Paint it black’이 우리나라에 처음 알려진 건 < 머나먼 정글 >의 주제음악으로 사용됐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금지곡이었거든요. 모든 것을 검게 칠하라는 제목이 허무를 조장한다는 허무한 이유로 가로막혔던 이 노래는 1980년대 후반 민주화 물결에 힘입어 해금됐고 대한민국에서는 ‘Satisfaction’과 함께 롤링 스톤스를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3. 맥가이버 (Macgyver)

아마 많은 분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미드 주제음악일 겁니다. 싱글 히트곡도 아니고 음원으로 발표한 적도 없지만 순전히 < 맥가이버 >의 인기로 그 인지도를 획득했죠. 신시사이저 팝으로 제작된 이 주제음악을 들으면 평소엔 관심도 없는 화학공식이 떠오르고 그렇게 증오하던 물리학 법칙과 수학 개념이 제 머릿속을 돌아다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직장인과 학생들이 싫어하는 일요일 저녁시간을 기다리게 만든 < 맥가이버 >에서 주인공이 자주 사용하는 스위스 군용 칼의 인기도 덩달아 상승했죠. 당시에는 이 칼만 있으면 텔레비전과 라디오도 다 고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리차드 딘 앤더슨이라는 무명 배우를 세계적인 스타로 끌어올린 < 맥가이버 >는 과학적 호기심을 조금이라도 높여 민족중흥의 역사를 일구는데 이바지했습니다.

4. CSI 과학수사대 (CSI)

2000년에 시작한 < CSI 과학수사대 >는 범죄수사극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탐문수사와 형사의 감으로 범인을 잡는 기존의 수사극과 달리 과학적인 방법으로 범인을 색출하는 과정이 흥미로웠거든요. 라스베이거스, 마이애미, 뉴욕의 3편으로 제작된 이 미드의 주제곡은 모두 더 후의 노래였습니다. 라스베이거스 편은 1978년에 발표한 ‘Who are you’, 마이애미 편은 ‘Wont’get fooled again’, 뉴욕 편은 제 인생의 노래 중 하나인 ‘Baba O’Riley’였죠.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테마곡으로 쓰인 뉴욕 편은 상대적으로 재미가 덜했습니다.

< CSI 과학수사대 >의 주제곡으로 더 후의 노래를 사용한 것은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가 더 후의 광팬이기 때문입니다. < 플래시댄스 >, < 비벌리힐스 컵 >, < 탑건 >, < 배드 보이스 >, < 아마게돈 >, < 블랙호크 다운 >, < 캐리비언의 해적 > 등을 제작하며 헐리웃의 실세가 된 제리 브룩하이머는 < CSI 과학수사대 >를 통해 더 후를 향한 사심을 드러낸 거죠.

5. 케빈은 12살 (Wonder Years)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건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케빈은 12살 >을 제작한 닐 말렌스와 캐롤 클랙이 자신들의 10대 시절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미드가 < 케빈은 12살 >이거든요. 1988년에 처음 방송된 < 케빈은 12살 >은 베트남 전쟁과 흑인인권운동으로 혼란스런 1960년대 후반을 유쾌하고 정감 있게 담아냈습니다. 평범한 집안, 웬수 같은 형, 짝사랑하는 여자 아이, 재미없는 학교생활까지 전 세계 12살 남자아이가 공통으로 겪는 경험을 유머 있게 그려낸 < 케빈은 12살 >은 오프닝부터 팝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영국의 블루 아이드 소울 가수 조 카커가 비틀즈의 원곡을 걸죽하게 리메이크한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였거든요.

케빈 역을 맡은 프레드 새비지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던 < 케빈은 12살 >은 미국인들에겐 추억을 반추하는 드라마였는데요. 드라마에서 케빈이 좋아했던 여학생 위니도 사랑받았고 케빈의 친구 폴이 나중에 마릴린 맨슨이 된다는 휘발성 소문조차 화제가 될 정도로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미드였습니다.

6. 블루문특급 (Moonlighting)

1985년부터 4년 동안 방송된 < 블루문특급 >은 미국 드라마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로맨스, 코미디, 스릴러, 액션, 드라마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잘 버무려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 블루문특급 >은 < 택시 드라이버 >로 유명한 시빌 셰퍼드와 당시 신인이었던 브루스 윌리스를 정상급 엔터테이너로 만들었는데요. 사설탐정 회사에서 만난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아슬아슬한 러브라인 위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줄거리가 인기요인이었고 사무실 직원 아그네스와 허버트의 어벙하지만 사랑스런 캐릭터도 < 블루문특급 >의 매력 포인트였습니다.

2017년에 세상을 떠난 위대한 재즈 보컬리스트 알 자루가 부른 주제곡도 작품만큼 유명한데요. 도시의 야경과 와인이 떠오르는 세련된 재즈팝 ‘Moonlighting’은 텔레비전 드라마 음악을 많이 맡았던 리 호드리지와 알 자루가 함께 작곡했고 디스코 그룹 쉭의 리더였던 나일 로저스가 프로듀싱을 맡았습니다.

7. 경찰특공대 (S.W.A.T.)

경찰특수기동대를 뜻하는 S.W.A.T.는 Special Weapons And Tactics의 이니셜입니다. 이 특수부대를 소재로 한 < 경찰특공대 >는 1975년에 방송된 액션수사물인데요. 우리나라에서도 MBC를 통해 방송돼서 꽤 인기를 얻었습니다. 긴박감 넘치고 역동적인 주제음악을 연주한 리듬 해리티지는 흑인과 백인으로 구성된 펑크(Funk) 밴드인데요. 1976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른 ‘Theme from S.W.A.T.’는 고든 파크스가 감독한 영화 < 샤프트 >의 주제음악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스릴 넘치는 스트링 연주와 관악기, 와와페달을 사용해 긴장감을 극대화한 기타 연주는 1970년대 액션 수사물의 주제음악 패턴으로 자리했죠. 2003년에는 사무엘 L. 잭슨과 콜린 파웰이 주연한 영화로도 리메이크됐습니다.

8. 보난자 (Bonanza)

기성세대가 아직도 기억하는 < 보난자 >는 1959년부터 1973년까지 제작됐고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에 방송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미국 서부시대에 대한 인식이 좋았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죠. ‘번영’, ‘대박’, ‘광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 ‘보난자’를 제목으로 정한 것만 봐도 이 드라마가 미국의 골드러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보난자 >에서 아버지 역할을 맡았던 론 그린은 이 작품으로 인기배우 반열에 올라섰고 아들 역을 소화한 마이클 랜든은 나중에 < 초원의 집 >에서 아빠 역할로 더 유명해집니다.

이 주제음악은 세계적으로 히트했고 나중에는 주연을 맡았던 배우 론 그린이 걸죽한 바리톤 음색으로 불렀는데요. 1962년에는 컨트리 가수 저니 캐시가 리메이크하기도 했습니다. 주제음악 ‘Bonanza’를 만든 제이 리빙스턴과 레이 에반스는 캐롤의 고전 ‘Silver bells’와 냇 킹 콜의 노래로 유명한 ‘Mona Lisa’, 데비 레이놀즈가 부른 ‘Tammy’, 도리스 데이의 ‘Que sera sera’를 만든 유명한 작곡 콤비입니다.

9. 5전선 (Mission Impossible)

1966년에 탄생한 < 제5전선 >이 원제 < 미션 임파서블 >이란 이름으로, 주연을 맡은 피터 그레이브스보다는 탐 크루즈가 더 친근해진 이유는 1996년에 제작된 영화 덕분입니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주제음악입니다. 아무리 음악을 안 듣고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랄로 시프린이 만든 이 테마곡을 들으면 다 알 정도로 유명하죠. 탐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사운드트랙에서는 유투의 베이시스트 아담 클래이튼과 드러머 래리 뮬렌이 리메이크해서 빌보드 싱글차트 텝 텐에 올랐습니다.

1966년부터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된 < 제5전선 >은 1960년대 중반 당시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서냉전의 시대를 반영한 작품이었습니다. 양쪽 진영의 스파이 활동은 전 세계를 극단적인 감시 사회로 만들었고 그에 따른 큰 희생을 감수해야 했죠. 하지만 소련이 무너진 후에 개봉한 영화 < 미션 임파서블 > 시리즈에서는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 가상의 적이 등장해 시대상을 반영했습니다.

10. 하와이 오공수사대 (Hawaii 5-0)

이 주제음악도 < 제5전선 >만큼 유명합니다. 요즘의 10대와 20대 젊은이들에게 들려줘도 어디선가 들어본 음악이라고 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곡인데요. 지금도 텔레비전 예능을 비롯해서 수많은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쓰여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Walk don’t run’, ‘Pipeline’, ‘Apache’로 시대를 풍미한 벤처스가 리메이크해서 1968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4위까지 올랐습니다.

1968년부터 1980년까지 12년 동안 롱런한 < 하와이 오공수사대 >는 하와이를 배경음 한 범죄수사물인데요. 경제발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방송되어 하와이를 선망하는 여행지로 만든 일등공신입니다.

11. 프렌즈 (Friends)

종영한지 18년이 된 < 프렌즈 >가 최근에 다시 회자되는 이유는 방탄소년단의 김남준 덕분입니다. 해외생활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김남준이 미국인처럼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 프렌즈 >를 보면서 영어를 배웠다고 밝혔기 때문이죠. 1990년대를 살아가는 20대 청춘의 이야기를 시트콤으로 재미있게 풀어간 < 프렌즈 >는 북미 지역에선 하나의 ‘현상’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방송되지 않아 그 입소문과 주제곡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밝고 경쾌한 주제곡 ‘I’ll be there for you’는 10년 이상 활동해온 미국의 모던 록 듀오 램브란츠에게 첫 번째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게 만들었고 그 후광으로 그들의 앨범이 우리나라에서 라이센스로 발매됐습니다.

< 프렌즈 >로 인기를 얻은 재니퍼 애니스톤은 브래드 피트와 커플이 됐고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1984년도 히트곡 ‘Dancing in the dark’의 뮤직비디오로 데뷔한 배우 커트니 콕스는 스타로 등극해 영화 < 스크림 >에도 출연했죠. 우리나라에서는 < 프렌즈 >에서 영향을 받은 국내 시트콤 < 세 남자 세 여자 >가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12. 마이애미의 두 형사 (Miami Vice)

이 미드는 우리나라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퇴폐적인 분위기, 마약 거래, 프리섹스, 거리의 총격전까지, 억압과 통제가 자행되던 5공화국 현실과는 어느 것 하나 맞지 않았거든요. 그래서였는지 MBC에서 방송됐지만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곧바로 폐지됐죠.

1984년부터 1990년까지 방송된 수사 드라마 < 마이애미의 두 형사 >는 배우 멜라니 그리피스의 남편이었던 돈 존슨을 당시 최고의 섹시스타로 등극시켰는데요. 사실 이 미드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유는 주제음악과 사운드트랙 덕분입니다. 체코 출신의 건반주자 얀 해머의 테마곡은 1985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이글스 출신의 글렌 프라이가 부른 ‘You belong to the city’는 2위에 올랐죠. 여기에 극 분위기에 어울리는 필 콜린스의 ‘In the air tonight’과 티나 터너의 ‘Better be good to me’가 수록되어 있어서 OST의 가치를 높였습니다.

요즘에는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이 많이 줄었죠. TV 말고도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여러 플랫폼으로 원하는 시간에 보고 싶은 영상을 볼 수 있으니까 애써 공중파 방송을 고집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그 시간에 맞춰서 텔레비전 앞에 가야 했고 좋든 싫든 가족들이 다 모여서 하나의 채널을 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되돌아보니까 그때 가족들과 함께 봤던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습니다. 누구와 무슨 대화를 하면서, 뭘 먹으면서, 어떤 자세로 봤는지도 떠오르네요.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생각나는 걸 보니까 저도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이 그립나 봅니다.

여러분도 지금 자주 챙겨 보는 프로그램이나 영상 있죠? 주위에서 영상을 너무 많이 본다고 잔소리를 해도 무시하고 많이 보세요. 시간이 흐르면 그 프로그램은 여러분의 ‘화영연화’를 만들어주는 추억의 조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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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근의 하나씩 하나씩 Feature

돌이킬 수 없는 꼰대 필자가 좋아하는 2010년대 케이팝 노래들

우리나라 가수들의 노래와 앨범이 빌보드 싱글차트와 앨범차트를 제 집 드나들 듯 진입하는 현재의 상황은 1980년대 초반부터 팝송을 들어오고 빌보드 차트를 신주단지 모시듯 절대적으로 생각해온 저에겐 정말 감격적인 일입니다.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프린스, 휘트니 휴스턴 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휩쓸던 그 인기차트를 대한민국 가수가 접수하다니. 2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김범수의 ‘하루’가 빌보드 서브차트에 오른 것과 2009년에 원더걸스의 ‘Nobody’가 빌보드 싱글차트 76위에 올랐을 때만 해도 ‘와! 이런 날도 오는구나’했는데 지금은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갓세븐, NCT, 트와이스, 몬스타 엑스, 세븐틴 등 많은 가수들이 빌보드를 < 가요 탑 텐 >으로 만들고 있네요.

사실 대부분의 팝 마니아는 가요를 무시하고 잘 듣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가요가 외국 팝을 받아들여 토착화된 노래고 늘 해외의 음악의 트렌드를 쫒아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팝송을 들어야 뭔가 앞서가고 세련된 것처럼 보일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세계 사람들이 케이팝을 들어야 그런 대리만족을 느끼는 가 봅니다. 또 여기에 우리만의 것과 다른 나라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독창적인 방식을 접목시켜 대중음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하고 있죠. 이중에는 저 같은 팝 마니아 꼰대도 반하게 만든 케이팝 노래들이 있는데요. 그래서 이번 < 하나씩 하나씩 >에서는 저에게 케이팝의 매력을 알려준 소중한 노래들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비스트 ‘Fiction’

저는 텔레비전 예능에 자주 출연했던 이기광과 양요섭 밖에 몰랐습니다. 심지어 용준형을 ‘용준이 형’으로 알 정도로 비스트에 대해 무지했죠. 그룹 이름 때문에 멤버들이 우락부락하고 건장한 짐승돌인 줄 알았지만 실제로 본 그들은 앳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팀 명을 잘못 지었다고 생각했으나 이들의 무대를 보고 깨달았죠. 그룹 비스트는 짐승이 아니라 야수라는 걸. 제가 비스트의 노래 중에서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곡은 2011년에 발표한 ‘Fiction’인데요. 물론 ‘아름다운 밤이야’도 좋아했지만 그래도 손을 주머니에 넣고 춤을 추는 안무는 인상적이었고 높은 고음도 안정적으로 소화하는 보컬 능력도 나쁘지 않은 ‘Fiction’을 더 사랑했습니다. 아이돌 그룹은 가창력이 좋지 않다는 제 선입견에 금이 가게 만들어준 노래죠.

에프엑스 ‘피노키오’

기성세대는 샹송 가수 다니엘 비달의 ‘Pinocchio’를 기억하겠지만 저는 에프엑스의 ‘피노키오’입니다. 이 노래를 듣자마자 마치 팝송처럼 느꼈는데요. 알렉스 캔트렐, 제프 호프너, 드와이트 왓슨 그리고 우리나라의 프로듀서 히치하이커가 공동으로 이 노래를 만들었으니 제 생각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죠. 그래서 팝송을 많이 듣는 제 귀에도 어필했던 것 같습니다. 레이디 가가가 부른 ‘Bad romance’의 안무를 참고한 ‘피노키오’의 앙증맞은 춤은 귀여웠구요. ‘피노키오’는 연서화 된 인더스트리얼과 상큼한 뉴웨이브 신스팝이 케이팝과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내는지를 증명한 고급스럽고 실험적인 곡입니다. 슬픔과 불안을 감추고 억지로 밝은 미소를 만들어서 노래 부르던 설리를 추모합니다.  

루나 ‘Free somebody’

루나는 에프엑스에서 다른 멤버에 비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높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2016년에 솔로활동을 시작하자 저는 루나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야 말았죠. 딥하우스를 기반으로 한 솔로 데뷔곡 ‘Free somebody’에서 루나는 연체동물처럼 유연한 댄스와 폭포 같은 가창력을 과시했는데요. 아쉽게도 그 이후의 후속곡이 없어서 지금까지는 단발의 성공으로 끝났지만 ‘Free somebody’는 2016년에 발표된 곡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노래였습니다.

방탄소년단 ‘봄날’

이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입니다. 전주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죠. 가사는 물론이고 뮤직비디오, 소리의 조율, 보컬의 어레인지, 녹음 그리고 후반부의 코러스까지 거의 모든 것이 벅찬 감정을 절정으로 끌어올립니다. 개인적으로 레너드 스키너드의 ‘Simple man’이나 피터 가브리엘의 ‘Solsbury hill’처럼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마음의 노래죠. 방탄소년단을 그저 잘 생긴 멤버들이 춤만 추는 보이밴드로만 생각했던 저에게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 준 이 숭고하고, 아름답고, 슬픈 ‘봄날’은 대한민국의 대중가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명곡 중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브레이브걸스의 ‘옛 생각’, ‘운전만 해’

2017년에 발표한 미니앨범 < Rollin’ >이 뜨지 못한 건 남사스런 음반표지도, 그 시기성도 아닙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방송국 사람들과 저처럼 음악 평론가랍시고 잘난 체하며 대중적인 댄스음악을 얕잡아 보는 집단의 무시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당시 무명에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중소기획사 소속인 브레이브걸스는 방송국과 음악 관계자 집단에 의한 직무유기의 희생양입니다. < Rollin’ > 앨범에는 모두 4곡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역주행 후 다시 주목을 받은 ‘하이힐’과 1980년대의 어반 알앤비 발라드 ‘서두르지 마’ 그리고 1980년대 프리스타일 풍의 ‘옛 생각’ 같은 양질의 노래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직무유기 평론가’ 중 한 명인 저도 뒤늦게 브레이브걸스의 노래를 다 들어봤는데요. 그 중에서도 ‘운전만 해’와 ‘옛 생각’이 제일 좋았습니다. 확실히 용감한 형제는 1980, 1990년대 팝송을 21세기 케이팝에 맞게 이식하는데 탁월한 수완을 보여주네요.

악동뮤지션의 ‘Dinosaur’

예전에 악동뮤지션에 대해 검색을 하다가 이수현의 보컬에 대한 글이 있는 블로그를 보게 됐습니다. 그 블로거는 이수현의 가창력을 극찬하면서 링크를 건 영상이 바로 ‘Dinosaur’였고 그때 이 노래를 처음 들었죠. 듣자마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캘빈 해리스와 리아나가 함께 한 ’This is what you came for‘랑 비슷하네?’였지만 녹음 기술과 사운드 엔지니어링은 절대 밀리지 않았습니다. 2010년대 후반 전 세계적으로 붐을 이룬 딥하우스 스타일을 성공적으로 이식한 ‘Dinosaur’는 제가 느낀 첫 인상처럼 팝적인 곡이기 때문에 제가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동생 이수현의 투명한 고음에 밀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찬혁의 목소리도 이 곡에서만큼은 신선했답니다.  

마마무의 ‘넌 is 뭔들’

2016년에 이런 복고적이고 구닥다리 스타일로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댄스팝의 바탕 위에 1970년대 미국의 소울과 디스코를 가미해 듣기 좋고 부담스럽지 않은 대중음악이 탄생했는데요. 마치 미국의 소울 보컬 그룹 라벨의 1975년도 빌보드 넘버원 ‘Lady marmalade’처럼 마마무는 이 곡을 자신만만하고 당차게 불렀습니다. 연약하고 예쁘게만 보이려는 기존 걸 그룹들과 달리 씩씩하고 당당한 마마무가 등장한 겁니다. ‘넌 is 뭔들’은 흑인의 자부심을 표현한 소울을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게 비교적 잘 이식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노래의 제목이 뭔 뜻인지 몰랐다가 후배한테 그 뜻을 듣고는 저도 ‘넌 is 뭔들’ 같은 남자가 되고 싶었지만….

티아라의 ‘러비 더비’

여타 걸 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뽕끼’ 많은 곡들을 자주 부른 티아라의 다른 노래들과 달리 ‘러비 더비’는 전형적인 미국의 댄스팝 스타일입니다. 신사동 호랭이의 대중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걸 다시 한 번 증명한 노래라고 할 수 있는데요. 잘게 쪼갠 비트와 그 위의 멜로디 라인은 자유롭게 어울리고 그에 맞는 안무 역시 인상적이었죠. 당시 유행하던 셔플 댄스를 바탕으로 한 춤은 9년이 지난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네요.  

위너의 ‘Really really’

트로피컬 사운드를 사용한 우리나라 노래 중에 단연 최고 중 하나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흑백으로 처리한 뮤직비디오 영상도 멋졌고 네 멤버들의 스타일링도 뛰어났죠. 코드가 바뀌면서 ‘널 좋아해 Really x 4, 내 맘을 믿어줘 Really x 4’부터 쉴 새 없이 두들기며 비트를 좁쌀처럼 쪼개는 하이해트 소리는 곡의 숨은 매력 중 일부입니다. ‘보통 사람이 향유하는 음악이자 넓은 호소력을 갖는 음악’이라는 대중음악의 정의에 잘 어울리는 노래이자 강승윤도 춤을 잘 춘다는 걸 증명한 2010년대의 명곡 중 하나입니다.

오마이걸의 ‘돌핀’

“상큼하고 시원한 노래 같아.” ‘돌핀’에 대한 초등학생의 이 말은 정확한 것 같습니다. 신시사이저를 줄이고 리듬 기타를 중심으로 비트를 최대한 살려 미니멀리즘을 실행한 이 곡은 바다 위를 뛰어오르는 돌고래처럼 투명하고 가벼우며 시원했죠. 기존의 케이팝 곡들과 차별화에 성공한 오마이컬은 이 지점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합니다. 기존의 여리고 귀여운 이미지에서 조금 더 성숙해졌고 음악도 10대와 20대 초반뿐만 아니라 30대까지도 커버할 수 있는 그룹이 됐으니까요. 그리고 2021년에 발표한 디스코 풍의 ‘Dun dun dance’로 기성세대의 입맛까지 확보했으니 그들의 성장 스토리는 현재까지도 진행 중에 있죠. ‘돌핀’은 이 돌이킬 수 없는 꼰대 필자를 살짝 설레게 했습니다.

아이유의 ‘Eight’

솔직히 말씀드리면 ‘잔소리’와 ‘좋은 날’이 인기를 얻으면서 아이유가 국민 여동생으로 등극했을 때도 저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후에도 아이유의 활발한 활동은 저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죠. 그러다가 제가 일하는 프로그램 앞에 하는 가요 프로그램에서 이 곡을 처음 듣고 작가분한테 가수와 제목을 물어봤습니다. 왜냐하면 전혀 아이유의 노래답지 않았다고 생각했거든요. 선율과 리듬은 볼빨간 사춘기를, 노래를 둘러싼 전반적인 사운드는 1980년대의 뉴웨이브와 펑크를 다시 화제의 중심으로 올려놓은 미국 밴드 에코스미스를 참고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에잇’의 매력 포인트는 가사와 음악의 조화입니다. 수필 보듯 그냥 읽으면 낯설고 생경하지만 선율과 리듬 위에서 노랫말은 잘 어울리면서 세련되고 그루브한 느낌을 유지합니다. 음악의 승리죠. 천하의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가 랩 피처링으로 참여했지만 ‘에잇’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아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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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근의 하나씩 하나씩 Feature

헤비메탈로 춤을 추게 만든 밴 헤일런

현지 시각 2020년 10월 6일 밴드 밴 헤일런(Van Halen)의 기타리스트 에디 밴 헤일런이 향년 6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IZM은 기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고인을 추모하며 과거 업로드 되었던 특집을 모바일 페이지로 공개하고자 합니다. 두번째 글은 2013년 1월 IZM 소승근 대표가 기고한 ‘헤비메탈로 춤을 추게 만든 밴 헤일런입니다.

“뭐? 헤비메탈에 춤을 춰?”

열혈 메탈 팬들은 이 제목이 매우 거북할 겁니다. 하지만 1980년대에는 정말로 젊은이들이 팝 메탈에 맞춰 열정을 불태웠고 그와 함께 발을 비벼대던 신발에는 구멍이 뚫렸죠. 그 이전인 1970년대에는 고고장에서 딥 퍼플의 ‘Highway star’와 ‘Smoke on the water’에 몸을 맡긴 적도 있었거든요.

1980년대에 폭발한 팝 메탈의 씨를 뿌린 밴드가 밴 헤일런입니다. 이들의 명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태핑이라는 기타 주법으로만 수렴되는 경향이 있지만 밴 헤일런은 육중했던 헤비메탈의 무게를 가볍게 줄여 대중성을 취득한 일등공신이죠. 물론 당시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밴 헤일런은 대중음악 그룹입니다. 미국에서만 5,600만장, 전 세계적으로 8,600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하고 빌보드 록 차트에서 가장 많은 넘버원을 배출한 밴 헤일런은 2007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죠.

이번 하나씩 하나씩에서는 미국 록 밴드 중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밴 헤일런의 핵심적인 노래들을 소개해 드릴까합니다.

You really got me

영국 밴드 킹크스가 1964년에 발표한 이 원곡을 자신들의 데뷔 싱글로 선택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많은 음악 관계자들이 최초의 헤비 기타 리프로 꼽는 ‘You really got me’를 내세워 자신들의 음악적인 뿌리를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기 위해서죠. 이 곡을 만든 킹크스의 레이 데이비스는 밴 헤일런의 버전을 더 좋아했다고 밝혀서 화제가 됐습니다.

Eruption

1분 40초짜리 이 연주곡은 지미 헨드릭스 이후, 기타 연주의 틀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이 음악은 태핑 주법으로 유명한데요. 사실 이 태핑은 원래 바이올린에서 시작된 연주법이죠. 이것을 기타로 도입한 것은 1960년대 후반 재즈 기타리스트들과 아트록 밴드 제네시스의 기타리스트 스티브 하켓이었는데 에드워드 밴 헤일런은 이 태핑을 양손으로 연주해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라이트 핸드 주법이라고도 하죠.

드러머 카마인 어피스가 이끌었던 록 밴드 캑터스가 1970년에 발표한 ‘Let me swim’의 도입부를 차용한 ‘Eruption’은 에드워드 밴 헤일런이 공연 전, 리허설 할 때 손가락을 풀기 위해서 연습하던 곡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녹음하고 싶지 않았지만 프로듀서 테드 템플만의 주장으로 음반에 수록됐죠. 미국의 기타 전문지 < 기타 월드 >에서 집계한 ‘위대한 기타 솔로곡 100’에서 2위를 차지했고, < 롤링 스톤 >지에서 선정한 ‘위대한 기타 트랙 100’에선 6위를 차지했습니다.

Running with the devil

1978년에 공개한 데뷔앨범의 1번 트랙입니다. 밴 헤일런을 발굴하고 도움을 준 하드 록 밴드 키스의 보컬리스트 진 시몬스의 아이디어로 자동차 경적 소리를 인트로에 삽입한 이 곡의 제목은 ‘Love rollercoaster’로 인기를 얻은 흑인 펑크(funk) 밴드 오하이오 플레이어스의 ‘Running from the devil’에서 착안했습니다. 빌보드 싱글차트에선 84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데이비드 리 로스의 사포처럼 거친 보컬과 정중동을 지키는 마이클 앤소니의 탄탄한 베이스와 알렉스 밴 헤일런의 드럼 그리고 날카로움을 갖춘 에디 밴 헤일런의 칼날 같은 기타는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Dance the night away

제목처럼 이 노래는 댄스곡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흥겨운 리듬감을 놓치지 않습니다. 대단히 팝적이어서 그랬는지 에디 밴 헤일런은 이 곡을 만들어 놓고도 음반에 싣고 싶지 않았지만 상업적인 결과물을 기다린 음반사의 요구로 2집에 수록했죠. 플리트우드 맥의 ‘Go your own way’에서 영감을 받은 이 노래의 원래 제목은 ‘Dance, lolita, dance’였다고 합니다.

Jump

삶을 비관한 남자가 빌딩 옥상에 서 있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그를 설득하지 않고 “Jump, go ahead jump!”라고 말한다면 자살방조죄죠? 밴 헤일런의 ‘Jump’는 바로 이런 노래입니다. 긍정적인 의미의 점프가 절대 아니죠. 1980년대 팝 메탈의 시작을 알린 이 곡에서 그 유명한 건반 연주는 에디 밴 헤일런이 직접 했는데요.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사실 밴 헤일런은 그 이전 노래들에서도 신시사이저를 도입했지만 ‘Jump’가 건반 연주를 강조했기 때문에 당시 많은 팬들이 실망했는데요. 에디 밴 헤일런이 홀 & 오츠의 대릴 홀에게 전화를 걸어서 ‘Kiss on my list’의 건반 연주를 사용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해 허락을 받고 탄생한 노래입니다.

Why can’t this be love

1985년에 보컬리스트 데이비드 리 로스가 솔로활동을 위해 밴드를 탈퇴하자 밴 헤일런은 1970년대부터 활동한 싱어송라이터 새미 해거를 영입합니다. 기타리스트이자 작곡에도 실력을 갖추고 있는 그의 가세로 밴 헤일런의 음악은 한층 더 뚜렷한 멜로디와 힘이 넘치는 보컬을 장착했는데요. 1986년에 빌보드 3위에 오른 ‘Why can’t this be love’는 바로 이 두 가지를 증명하는 시작점에 있는 노래죠.

When it’s love

1988년에 공개한 8번째 앨범에 대해 사람들은 ‘도대체 이건 또 무슨 뜻이야?’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Oh, you ate one too!”를 발음되는 대로 적은 이 문장의 뜻은 ‘오! 너도 한 방 먹었네’ 정도 되겠죠. 음반의 첫 싱글로 전미 차트 5위에 랭크된 ‘When it’s love’는 에디와 알렉스 형제가 건반과 드럼으로 먼저 곡 구조를 만든 다음에 새미 해거가 그 위에 멜로디와 가사를 붙여 탄생하게 된 곡입니다.

Right now

밴 헤일런은 1991년에도 말장난을 이어갑니다. 9집은 < For Unlawful Carnal Knowledge >라는 타이틀로 발표했는데요. 이걸 해석하려고 문법 지식을 동원할 필요는 없습니다. 각 단어의 이니셜을 따면 모든 지구인들이 다 아는 하나의 낱말이 되거든요. 이 음반에서 세 번째로 커트한 싱글은 ‘Right now’인데요.

사실 밴 헤일런은 파티, 술, 담배, 여자, 자동차 같은 남자들의 로망을 대변하는 노래들을 많이 불렀죠. 그런데 새미 해거는 ‘Right now’를 공개하면서 “우리는 싸구려 섹스 노래에 질렸다. 에디와 나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곡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혔습니다. 긍정의 힘을 설파한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내용에 맞게 대단히 공익광고스러운 스타일로 제작됐는데요. 그해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건스 앤 로지스의 ‘November rain’을 제치고 올해의 뮤직비디오를 수상합니다.

Can’t stop lovin’ you

샴쌍둥이를 표지로 내건 1995년도 앨범 < Balance >는 밴 헤일런의 전성기에 마침표를 찍은 음반입니다. 여기선 빌보드 30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국내에선 유독 사랑받은 ‘Can’t stop lovin’ you’가 수록돼 있죠. 이 곡은 에디 밴 헤일런이 ‘I can’t stop loving you’를 부른 레이 찰스를 존경해서 그에게 바치는 의미로 제목을 비슷하게 정했는데요.

이 ‘I can’t stop loving you’는 원래 돈 깁슨이라는 컨트리 가수가 1958년에 발표한 오리지널을 레이 찰스가 리메이크한 겁니다. ‘Can’t stop lovin’ you’는 멤버들 간의 사랑과 우정에 대한 노래라고 밝혔습니다. 에디와 알렉스 밴 헤일런, 안소니 마이클은 얼마 후에 새미 해거를 해고하고 그룹 익스트림의 보컬리스트였던 개리 셰론을 3대 보컬리스트로 맞이해서 1998년에 < Van Halen Ⅲ >를 발표했죠.

[유병열의 기타리스트 열전]
Van Halen의 에디 밴 헤일런(Eddie Van Ha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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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근의 하나씩 하나씩 Feature

우리나라에서는 자주 들을 수 없는 1970, 80년대 펑크(Funk)의 명곡들



  • 다프트 펑크의 ‘Get lucky’, 로빈 씩의 ‘Blurred lines’, 마크 론스과 브루노 마스의 ‘Uptown funk’, 브루노 마스의 ’24K magic’과 ‘Treasure’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죠? 모두 펑크(Funk) 음악이라는 거죠. 이 노래들은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래미도 수상해 상업성과 음악성 모두 공인 받은 대중의 음악입니다.

    1960년대 소울 음악에서 파생한 펑크(Funk)는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흑인의 자긍심을 드러내고 자신들의 뿌리를 찾으려는 일종의 문화적 현상이었죠. 1990년대에 흑인음악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펑크(Funk)는 찬밥신세였습니다. 실용음악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이 실기시험을 볼 때 대부분 16비트의 펑크(Funk) 음악을 연주하는 이유는 연주자의 입장에서는 재밌고 자신의 능력을 자랑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흑인음악이 예전과 달리 대중화되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위대한 펑크(Funk) 뮤지션들의 노래 중에서 국내에선 흥겨운 노래보다는 ‘After the love has gone’이나 ‘Three times a lady’, ‘Easy’, ‘Cherish’처럼 발라드 곡들이 한정된 인기를 얻었죠. 그래서 신나는 노래를 좋아하는 저는 국내 라디오 프로그램에 늘 불만이었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어서 펑키(Funky)한 곡들을 자주 들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직접 찾아서 듣지 않는 한 들려지지 않는 펑크(Funk)의 명곡들은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그동안 어두운 지하실에서 연명하고 있는 펑크(Funk)의 명곡들을 밖으로 꺼내 빛을 비추어주고자 합니다. 리스펙!


    Sly & The Family Stone의 ‘Thank you’
    제임스 브라운과 함께 펑크(Funk) 음악의 1세대 뮤지션으로 평가받는 밴드입니다. 공식적으론 1966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지만 이들의 전성기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로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이 기간에 ‘Everyday people’, ‘Stand’, ‘Dance to the music’, ‘Family affair’, ‘Hot fun in the summertime’, 그리고 인순이가 ‘Higher’로 번안했던 ‘I want take you higher’까지 고속 질주했던 슬라이 & 더 패밀리 스톤이지만 우리나라에서 1970년 빌보드 넘버원 ‘Thank you’는 자주 들을 수 없습니다. 제목 ‘Thank you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영국 가수 다이오의 노래를 떠올릴 정도죠. 자넷 잭슨의 1989년도 히트곡 ‘Rhythm nation’에서는 ‘Thank you’의 리듬을 샘플링해 이들을 헌정했습니다.


  • Commodores의 ‘Machine gun’
    라이오넬 리치가 리더로 있었던 코모도스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펑크(Funk) 밴드지만 그 노래들은 ‘Three times a lady’나 ‘Easy’, ”Still’, ‘Sail on’, ‘Night shift’ 같은 발라드 노래들입니다. 그루브가 넘치는 ‘Brick house’나 ‘Lady’, ‘Machine gun’은 명함도 못 내밀죠. 이들의 데뷔곡 ‘Machine gun’은 1974년에 발표해서 빌보드 싱글차트 22위까지 오른 코모도스의 첫 번째 히트곡인데요. 무그신시사이저를 앞세운 연주곡입니다. 마크 월버그가 주연한 1997년도 영화 < 부기 나이트 >에 삽입돼서 뒤늦게 그 빛을 발하게 됩니다.


    Earth Wind & Fire의 ‘Sing a song’
    ‘지풍화’는 우리나라에 펑크(Funk)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69년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결성된 이들의 대표곡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September’, ‘Boogie wonderland’, ‘Let’s groove’의 3부작이 있고 또 데이비드 포스터와 함께 한 불세출의 발라드 ‘After the love has gone’이 있지만 이들의 유일한 빌보드 넘버원 ‘Shining star’와 1976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5위를 차지한 ‘Sing a song’을 언급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혼섹션이 멋진 ‘Sing a song’은 필 콜린스의 넘버원 싱글 ‘Sussudio’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곡이죠.


    Kool & The Gang의 ‘Get down on it’
    쿨 & 더 갱도 우리나라에서는 어스 윈드 & 파이어나 코모도스와 처지가 비슷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들의 애청곡은 ‘Cherish’라는 업템포 발라드거든요. 물론 ‘Celebration’과 ‘Fresh’가 라디오에서 간혹 들려오긴 하지만 이 두 노래만큼 훌륭한 1982년에 빌보드 탑 텐 싱글 ‘Get down on it’은 좀처럼 들을 수 없습니다. 절제된 비트 위에서 펼쳐지는 제임스 J.T. 테일러의 리듬감 넘치는 매끄러운 보컬이 이 노래의 정수입니다.


    Heatwave의 ‘Boogie nights’
    1975년 영국에서 결성된 히트웨이브는 1970년대 후반에 ‘Boogie nights’, ‘Groove line’, 그리고 발라드 ‘Always and forever’로 인기를 얻은 밴드인데요. 이 히트곡들을 만든 팀의 건반주자이자 리더인 로드 템퍼튼은 나중에 마이클 잭슨의 ‘Rock with you’, ‘Off the wall’, ‘Thriller’, 조지 벤슨의 ‘Give me the night’, 제임스 인그램과 패티 오스틴의 ‘Baby come to me’ 같은 노래들을 작곡하게 됩니다. 그리고 코모도스의 ‘Machine gun’에서 언급한 영화 < 부기 나이트 >의 제목은 바로 이 노래에서 따온 겁니다.


    Ohio Players의 ‘Love rollercoaster’
    1959년 오하이오에서 결성된 오하이오 플레이어스는 오랜 무명 시간을 보내고 1970년대 중반이 돼서야 빛을 본 대기만성 형 밴드입니다. ‘Funky worm’, ‘Fire’, ‘Skin tight’, ‘Sweet sticky thing’ 같은 히트 싱글이 있지만 이들을 대표하는 노래는 1976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에 오른 ‘Love rollercoaster’입니다.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는 애정관계를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에 비유한 이 노래는 1997년에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리메이크해서 우리나라에 알려졌습니다.


    Funkadelic의 ‘One nation under a groove’
    펑카델릭의 리더 조지 클린턴은 미친 사람입니다. 정상이 아니죠. 그룹 하나를 건사하기도 힘든데 조지 클린턴은 동시에 두 개의 밴드를 운영했거든요. 바로 펑카델릭과 팔러먼트입니다. 팔러먼트의 대표곡 ‘Give up the funk’도 우리 라디오에선 찬밥신세지만 이 글에서는 제가 개인적으로 훨씬 더 좋아하는 ‘One nation under a groove’를 선정했습니다. 1978년에 발표되어 빌보드 싱글차트 28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한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점은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음악은 절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둘째는 최근에 인기를 얻고 있는 펑크(Funk) 음악은 ‘One nation under a groove’를 따라했다는 것입니다.


    Marvin Gaye의 ‘Got to give it up’
    1977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노래는 긴 암흑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예전 국내 라디오 피디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펑키(Funky)한 디스코 넘버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했기 때문이거든요. 확실히 당시 전 세계를 주름 잡았던 디스코 노래들인 비지스나 케이시 & 더 선샤인 밴드의 곡들보다는 훨씬 더 펑키(Funky)합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표절한 로빈 씨크의 2013년도 히트곡 ‘Blurred line’가 대한민국에서 높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시대와 세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반증이겠죠. 절제됐지만 세련된 리듬은 마빈 게이의 비극적인 죽음과 선명하게 대비되어 더 슬프게 들리는 노래입니다.


    S.O.S. Band의 ‘Take your time (Do it right)’
    1977년 조지아 주에서 결성된 펑크(Funk) 밴드 에스오에스 밴드는 이 노래 하나만 각인시키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홀연히 사라진 의연한 그룹입니다. 이 노래를 제외하곤 빌보드 탑 40에 오른 곡이 단 하나도 없는 완벽한 원히트원더 뮤지션이죠. 하지만 ‘Take your time’이라는 명곡을 남기고 사라졌으니 억울하진 않을 겁니다. 1980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3위까지 오른 이 노래는 신시사이저와 슬랩 베이스 연주가 압권이죠.


    Gap Band의 ‘Big fun’
    1974년 오클라호마에서 결성된 갭 밴드는 빌보드 싱글차트 탑 텐 히트곡이 하나도 없습니다. 히트 싱글의 기준인 탑 40에 오른 노래가 두 곡밖에 없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펑크(Funk) 밴드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대표곡 ‘Early in the morning’과 ‘You dropped the bomb on me’, ‘Party train’은 국내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고 이 푸대접을 생활화한 실천지향형 그룹이죠. 하지만 1986년에 빌보드 싱글차트에 오르지 못했지만 영국차트 4위를 차지한 ‘Big fun’은 갭 밴드의 최고의 노래입니다. 경박하지 않고 먹이를 향해 다가가는 호랑이처럼 육즁한 리듬은 차원이 다른 흥분을 선사하죠. 1986년에 AFKN 라디오를 통해 이 곡을 우연히 듣게 된 건 인생의 행운이었습니다.


    Brothers Johnson의 ‘Stomp’
    기타리스트 조지 존슨과 베이시스트 루이스 존슨 형제로 구성된 브라더스 존슨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는데요. 그들의 노래뿐만 아니라 마이클 잭슨이나 샤카 칸 같은 훌륭한 가수들의 음반에 연주자로 참여하면서 그 실력을 인정받은 아티스트입니다. 1989년에 퀸시 존스가 리메이크한 ‘I’ll be good to you와 1977년에 빌보드 탑 텐에 오른 ‘Strawberry letter 23’도 멋지지만 1980년에 발표해서 빌보드 7위를 기록한 ‘Stomp’야 말로 브라더스 존스 음악의 정점이죠.


    Cameo의 ‘Word up’
    1970년대 중반 뉴욕에서 결성된 카메오는 1986년에 발표해서 빌보드 싱글차트 6위를 차지한 ‘Word up’이 대표곡입니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영화 <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의 휘파람을 앞부분과 중간에 삽입해 비장미를 연출한 ‘Word up’은 흑인음악임에도 대단히 록적인 느낌입니다. 신시사이저와 베이스 기타의 두터운 슬랩 베이스, 드럼을 강조해 비트와 리듬을 끌어올려 당시에도 시끄러운 펑크(Funk) 곡으로 들렸으니까요. 하드록 밴드 건이나 랩메탈 밴드 콘이 리메이크한 건 당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였던 멜라니 C와 댄스 팝 그룹 리틀 믹스, 심지어는 독일 출신의 컨트리 그룹 보스호스 등 수많은 후배들이 커버하며 위대하면서 시대를 앞서간 곡임을 확증해주었습니다.


    Brick의 ‘Dazz’
    1972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결성된 브릭 역시 히트곡이 많지 않은 펑크(Funk) 밴드입니다만 1976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3위를 기록한 ‘Dazz’는 단언컨대 명곡입니다. 촌스럽지 않은 그루브 위에 재즈의 터치, 심지어는 플루트 같은 클래식 악기를 도입해 펑크(Funk) 음악의 지평을 확대했죠. 제목 ‘Dazz’가 댄스와 재즈의 합성어라는 것만 봐도 이들이 지향했던 음악 스타일을 알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