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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올해의 팝 싱글

유난히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 한 해다. 예상치 못 한 고지 점령과 아슬아슬한 추격전, 그리고 통쾌한 정상 탈환까지. 주연과 각본이 쉴 새 없이 바뀌며 반전의 반전을 이룩하던 1년간의 드라마는 어느덧 막을 내렸다. 그 크레딧을 천천히 살펴보며, 차트 내외곽에서 활약을 펼친 그 영광의 10곡을 소개하려 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As it was’

새 출발 이후 곧바로 그룹 시절과의 단절을 완수한 해리 스타일스는 올해 ‘As it was’로 완연한 대세에 올라섰다. 자국인 영국에서는 10주 동안 1위를 차지했고, 미국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의 정상에서는 무려 15주 동안 군림하며 통산 4위의 기록을 세운 것. 심지어 솔로 아티스트로는 최장기간이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앨범 제목 < Harry’s House >처럼 1위 자리를 마치 그의 집처럼 드나든 셈이다.

비결은 ‘무자극’이었다. 1980년대 뉴웨이브부터 요즘 인디 록까지 다양한 재료와 향신료를 한데 넣고 섞어, 따뜻하게 속을 데워주는 깔끔한 수프 같은 곡을 완성했다. 그 중심에 놓인 기름기를 쫙 뺀 해리 스타일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노래를 찾게 만드는 정겨운 맛을 내줬다. 정점을 찍은 인기와 물오른 실력이 엇갈리지 않고 동시에 만난 흔하지 않은 케이스다. 그러니 연기로의 외도보다는 음악에 집중해주시길. (한성현)

스티브 레이시(Steve Lacy) ‘Bad habit’

강단 있는 알앤비 록스타가 승리를 쟁취한 방법은 무엇일까. SNS, 챌린지, 차트 줄 세우기, 밈, 방송 등 노래의 성공적인 대중화를 위해 각종 플랫폼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는 작금의 시대에서 그가 선택한 방식은 당연하게도 ‘음악’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유행만을 좇는 ‘나쁜 습관’에 영원히 지속 가능한 음악으로 일갈을 가한다.

소울 그룹 인터넷의 멤버로 시작해 켄드릭 라마 등 이름난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일찍이 실력을 인정 받아 2022년 정상에 올랐다. 오롯이 음악만을 생각한 뚝심의 결과. 트렌드의 부정을 역설(力說)했지만, 역설(逆說)적이게도 스티브 레이시는 스스로 유행의 최전선에 섰다. 아무리 급변하는 세상이라도 좋은 음악은 살아남는다. (임동엽)

원리퍼블릭(OneRepublic) ‘I ain’t worried’

초기 히트 공식을 반복한 작법에 따라붙은 자기복제 꼬리표, 그에 따른 평가 절하에도 걱정 따위는 없었다. 폭넓은 장르 도입 너머 보편적 송라이팅을 최우선으로 추구했던 원리퍼블릭의 정성이 다시금 결실을 거둔다. 놀라울 만큼 쉽고 선명하다. 부단한 담금질의 산물인 생생한 멜로디를 연료 삼아 ‘I ain’t worried’는 37년 만에 개봉한 속편 < 탑 건 : 매버릭 >에 탑승해 스크린을 넘어 박스 오피스와 음악 차트 상공을 쾌속 비행했다.

원리퍼블릭의 ‘탑 건` 라이언 테더의 탁월한 프로듀싱 역량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중적 흡인력을 갖춘 록 선율과 경쾌한 휘파람 사운드를 끌어온 샘플링 기법, 공간감을 연출한 편곡까지 엘리트 조종사의 날 선 감각이 올해 절정에 달했다. 시리즈를 상징하는 사운드트랙 ‘Take my breath away’와 ‘Danger zone’의 아성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신흥 클래식 넘버. 찬사와 홀대를 양득하며 쌓아온 노하우가 결정적 한 방을 터뜨렸다. (김성욱)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The heart part 5’

켄드릭 라마는 음악의 사회적 기능을 믿는다. 밥 딜런과 보노의 궤를 잇는 흑인 사회운동가는 < Good Kid, M.A.A.D City >(2012)와 < To Pimp A Butterfly >(2015), < Damn >(2017)의 명반 퍼레이드로 평단의 찬사를 독식했고 랩 뮤직의 시초격인 소울 뮤지션 질 스콧 헤론(Gil Scott-Heron)과 퍼블릭 에너미가 주도했던 폴리티컬 힙합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의 파급력을 다시금 공고하게 한 다섯 번째 정규 앨범 < Mr. Morale & The Big Steppers >의 프로모션 싱글 ‘The heart part 5’는 자전적 특성을 담은 ‘The heart’ 시리즈의 5번째 순서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사회의식이 강했던 선배 가수 마빈 게이의 1976년 작 ‘I want you’를 샘플링해 재즈와 펑크(Funk)적 색채가 다분하며 반복적인 리듬 아래 선언문과도 같은 언어를 채웠다. 분노와 일갈을 억누른 랩은 냉소적 시선을 견지해 더욱 날카롭고 성찰적이다. 딥페이크 기술로 화제가 된 뮤직비디오는 로스앤젤레스의 흑인 공동체를 위해 힘썼던 래퍼 닙시 허슬(Nipsey Hussle)과 살인 사건에 휘말렸던 전 미식축구 선수 오제이 심슨(OJ Simpson),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윌 스미스 등 6인의 표상으로 흑인의 삶을 아울렀고 갱 문화를 비롯한 흑인 사회의 그릇된 방향성에 사랑만이 해결법(I want you)임을 제시했다. (염동교)

도자 캣(Doja Cat) ‘Vegas’

도자 캣의 공세는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여러 히트곡을 배출한 2021년 < Planet Her >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아티스트는 영화 < 엘비스 >의 부름을 받아 입지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까지 올라간 ‘Vegas’는 전쟁터 같은 힙합 세계에서 도자 캣이 이제 슈퍼 루키를 넘어 독보적인 주연에 등극했음을 알린다.

전기 영화다 보니 트렌디한 힙합 사운드의 사용은 키워드만 보면 어색할지도 모른다. 작품에서 ‘Hound dog’의 원곡자 빅 마마 손튼(Big Mama Thornton) 역을 맡은 숀카 두쿠레(Shonka Dukureh)의 목소리를 샘플링한 영민한 비트와 후렴이 일말의 괴리감을 메꾼다. 시대와 인종의 장벽을 넘은 무대 위, 매서운 전달력과 흥겨운 싱잉 랩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래퍼의 실력도 역시 굳건하다. 복고 추세로도 모자라 옛 명곡의 적극적인 차용이 주류로 올라선 오늘날의 흐름 가운데 특히 빛나는 곡이다. (한성현)

덴젤 커리(Denzel Curry) ‘Walkin’

덴젤 커리가 2023 그래미 어워드 힙합 부문 후보에 이의를 제기했다. 자신의 음반을 포함해 올 한해 호평을 받았던 앨범들을 명단에서 제외한 데에 불만을 토로한 것. 어리광으로 치부될 수 있는 발언이지만 그에게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 Ta13oo >(2018), < Zuu >(2019) 등의 탄탄한 디스코그래피로 제이 콜, 켄드릭 라마 이후의 컨셔스 래퍼 선두 주자 타이틀을 노리는 그가 이번엔 < Melt My Eyez See Your Future >로 제대로 역량을 터뜨렸다.

그 중 ‘Walkin’은 단연 베스트 트랙이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가사에 담아 역설적으로 불합리한 사회를 고발한다. 정통 붐뱁에서 하이햇과 함께 트랩으로 변주하는 사운드, 그에 맞춰 플로우를 바꾸는 랩은 무거운 주제를 전달하면서 일말의 지루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켄드릭 라마의 ‘The heart part 5’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흑인 커뮤니티에 자극을 주며 어느 때보다 눈에 띄는 도약을 만들어냈다. 덴젤의 ‘Walkin’이 올해를 대표할 자격은 충분하다. (백종권)

푸샤 티(Pusha T) ‘Diet coke’

드레이크는 앨범을 (훨씬) 더 많이 팔았다. 릴 베이비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더 많은 노래를 빌보드 차트에 올렸다. 2022년 현재 힙합 신에서 푸샤 티보다 잘 팔리고 인기 있는 래퍼는 많다. 그러나 ‘Diet coke’에서 그의 랩을 듣는다면, 선정을 납득할 것이다.

일로매진(一路邁進)의 승리다. 노래는 그의 바위처럼 단단한 태도와 모든 음악적 특징을 압축한다. 맹수처럼 사나운 랩, 랩에 집중할 여유를 넉넉히 주는 반복되는 비트, 마약상의 경험에서 비롯된 공격적인 텍스트까지. 프로듀서 에이티에잇 키스(88-keys)가 18년 전 만들어 카니예 웨스트와 새로 손본 비트는 빈티지한 느낌을 물씬 자아내고 여기서 래퍼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자신감과 여유가 넘친다. 축소, 경량화, 단발성이 득세한 힙합 신에서 이런 묵직하고 정직한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있는 래퍼는 많지 않다. 이게 기록이나 수치적 성적을 떠나, 푸샤 티가 항상 승리하는 이유다. (이홍현)

리조(Lizzo) ‘About damn time’

여성을 대표한 뮤지션은 많다. 1980년대 이후 마돈나가 줄곧 여성의 섹스(욕구)를 거침없이 발화 하고 레이디 가가는 ‘태어난 대로 살자’며 ‘Born this way’를 열창, 여성을 넘어 소수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약간 결이 다르긴 하지만 메간 더 스탈리온, 도자 캣, 카디 비 등의 음악가는 자신의 ‘바디’를 음악적 어필 포인트로, 서슴없이 자기 과시를 행하는 중이다.

리조 역시 여성을 대표하고 자신을 과시한다. 하지만 그는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몸’에 주목, ‘몸 긍정주의(Body Positive)’를 이끈다. 그를 이 분야의 대명사로 만든 앨범 < Cuz I Love You >가 그랬듯 이 곡도 몸의 두께와 상관없이 ‘음악은 키우고 조명은 낮추며’ 신나게 즐기자고 말한다. 1980년대 펑크/디스코 사운드를 골자로 트레이드 마크인 플루트 선율을 담은 점 또한 과거와 맥을 맞춘다. 이 연속성이 반복됨에도 올해 팝은 또다시 리조로 집약이다. 왜? 곡이 가진 독보적이고 힘 있는 메시지 덕분. 시대가 변하지 않는 한 그의 바디 찬가는 계속해서 시대를 대표할 것이다. (박수진)

수단 아카이브(Sudan Archives) ‘Selfish soul’

기록은 오직 인간에게만 허락된 신성한 행위다. 이 뜻깊은 작업을 활동명에 새겨 넣은 뮤지션 수단 아카이브는 방대한 음악 자료 수집을 통해 깨우친 가치를 단 2분 22초 안에 압축했다. 둥둥거리는 베이스로 맥이 뛰기 시작한 트랙은 소울 가득한 목소리, 가스펠 풍의 백 보컬, 그리고 박수 소리에 맞춰 그 박동을 빠르게 이어가고 이내 북동 아프리카의 바이올린과 조우하며 경쾌한 대비를 이룬다. 말미에는 짧은 랩까지 가미해 투철한 실험 정신과 장르를 끌어안는 포용성을 두루 발휘한다.

흑인 음악을 집대성한 만큼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 또한 그들의 공동체 의식을 투영한다. 각기 다른 헤어스타일을 소재로 풀어낸 노랫말은 그 형태와 색깔, 질감으로 다양성 존중을 피력하고, 흑인 여성들과 촬영한 뮤직비디오에서 수단 아카이브는 몸소 삭발과 핑크색 가발 쓴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며 주장에 힘을 싣는다. 흥미로운 ‘내용’, 간결하고도 짜임새 있는 ‘구조’, 여기에 사회를 관통하는 ‘맥락’까지. 기록의 3요소를 완벽히 충족한 현대식 민족음악 아래 새로운 무도회의 여왕이 탄생했다. (정다열)

엔칸토(Encanto) ‘We don’t talk about Bruno’

대중, 시장, 평단의 예상 밖 일치된 환대였다. 차차차 리듬을 내건 살사 음악은 친숙해서 신선하지 않고 가볍게 흘러 평가대상에서 밀려날 듯했다. 실제로 영화 OST를 쓴 작곡가 린 마누엘 미란다도 아카데미상 후보로 딴 곡을 제시했을 만큼 이 곡은 주변의 비핵심 트랙으로 간주되었다. 가수들도 영화 캐릭터의 보이스를 맡은 생소한 인물들이어서 대표곡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음이 명백했고 왠지 여럿이 합창하는 곡에 승부를 걸지 않는 디즈니의 규범에도 부합하지 못했다.

반면 대중들은 이 야유적 어투의 쾌활한 아우성에 적극적 갈채를 건네면서 명곡은 범람했어도 디즈니에게 부재했던 빌보드 넘버원 싱글이란 나름의 영예를 안겼다. 무려 5주간 1위였다. (영국은 7주간) 진부할 수 있는 떼창은 오랜만에 접하는 완벽한 앙상블로 해석되어 코로나 시대에 갈구된 가족가치를 일깨우며 선전했다. 유머의 기민성, 가족 모두를 비추는 공평과 다양성, 굿 바이브레이션 사운드 그리고 미스터리 터치가 어우러진 한편의 완벽 크로스오버! 2022년을 사랑스럽게 했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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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올해의 가요 싱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2022년의 한국을 관통하는 슬로건이다.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던 코로나도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 지금, 그간 꺾이지 않고 재도약을 위해 숨죽이고 있던 음악계는 그 여느 때보다 강한 자생 의지를 드러내며 움츠린 어깨를 펴고 있다. 숨겨둔 화력을 마음껏 뿜어내며 유독 따스함이 감돈 올해, 그 뜨거운 열기를 일조한 가요 10곡을 선정했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아이브 ‘Love dive’

남자 아이돌이 일대 부진의 늪에 빠진, 걸그룹 천하에서 아이브는 경쟁자들의 선풍적 인기몰이나 사회적 트렌드 세팅은 아니었어도 선례가 없을 독자적 표현프레임을 구축하며 웅비했다. 토대는 대중가요에서 거부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곡’ 흡수력의 부각. 가사를 빼도 이야기가 잡힐 정도의 ‘사운드 스토리텔링’을 구현해낸, 변화무쌍하고 벅찬 기승전결 구성이 그 시작이었다. 순식간에 인식의 단계가 인정의 단계로 점프하면서 한해 내내 음반과 음원의 폭발적 호응이 둘러쌌다.

부단한 가사 전달의 노고, 고저가 교차하는 보컬의 분발, 동시대 곡 어디에도 부재한 어두움(다크 팝?)은 비장함마저 피워 올렸고 열다섯-스물의 풋풋한 하이틴들임에도 30대들마저 끌어들이는 윗세대 소구력도 뿜어댔다. 그 어떤 포장과 퍼포먼스보다는 우선 곡이 양질이어야 한다는 음악 예술의 보편이성과 오랜 성공도식을 환기시켰다. ‘괴물’ 신인에 의한 ‘정상’가동이라는 비대칭의 지혜를 일깨우며 ‘올해의 신인’을 단박에 ‘올해의 아티스트’로까지 밀어 올린 ‘올해의 노래’!! (임진모)

크러쉬 ‘Rush hour’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올 한해 크러쉬의 ‘Rush hour’ 챌린지에 동참한 연예인을 줄 세운다면 운동장 한 바퀴는 거뜬할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유튜브를 통해 이름을 알린 인플루언서까지 더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다. 제이홉이라는 슈퍼스타의 지원 사격, 제대 후 첫 복귀라는 화제성 등 그 파급의 진원을 다양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본질적인 승리의 근거는 완성도 있는 음악이다.

이토록 강렬한 크러쉬의 펑크(Funk)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마지막 정규 음반이 고요한 새벽에 내면을 들여다봤던 < From Midnight To Sunrise >이고 입대 직전에 발매했던 EP가 아련한 사랑 테마의 < With Her >임을 생각하면 더욱 놀라운 방향 전환이다. 꾸준히 업템포의 리듬으로 고취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안무를 추는 크러쉬라니. 단순 바이럴을 위한 곡이 아닌 기악 요소의 적절한 배치와 매끄러운 변주, 이미 여러 번 검증을 마친 보컬의 유려한 콜라주이다. 컴백과 동시에 한 해를 대표할만한 노래를 완성했다. (백종권)

뉴진스 ‘Attention’

뉴진스(New Jeans)의 ‘New’라는 단어에 K팝에 반향을 일으키겠다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전복의 대상은 구세대부터 동세대까지 아우르되 모순은 직관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뉴트로, 하이틴 등 최신의 키워드를 거침없이 전면에 내세우며 입체적인 방식으로 차별성을 피력한다. 이미지적으로는 Y2K 감성의 피처폰, 고전 포털 사이트 등 2000년대 대표 청소년 문화가 현대의 생활양식에 자연스럽게 섞였고, 음악적으로는 1990년대 뉴 잭 스윙과 하우스 리듬을 현대적으로 믹싱한 비트에 다시 1990년대 알앤비의 향취를 얹었다.

그럼에도 미니멀하다. 다섯 명의 보컬이 하나의 음을 투과하여 화음을 이루는 코러스 외에는 멜로디를 최소화하고 10대 멤버들은 2030세대의 청소년기 문화를 위화감 없이 즐기며 청춘의 아름다움을 여과 없이 전달한다. 노스탤지어와 선구안의 결합은 관성적인 새로움으론 꿰뚫을 수 없는 대중의 잠재된 갈망을 자극했다. ‘민희진 걸그룹’이라는 기대와 부담을 환호로 맞바꿀 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접근으로 현재 K팝 기획의 고착화된 패러다임을 뒤흔들었다. (정수민)

보수동쿨러, 해서웨이 ‘월드투어’

오늘날 인디의 근거지는 홍대가 아니다. 세이수미의 범지구적 활약을 거쳐 인디의 메카로 떠오른 부산은 검은잎들, 소음발광 등의 괴물 신인과 각양각색의 작업물을 내놓으며 독자적인 로컬 신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중에서도 한 작은 클럽에서의 지연(知緣)으로 시작해 서로의 대표작과 지역색을 합한 지연(地緣) 앨범으로 돌아온 두 밴드, 보수동쿨러와 해서웨이는 부산 밴드 명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제의 아티스트다.

그 합작의 서막을 여는 ‘월드투어’는 올해의 발견이다. 딸깍거리고 자글거리며 각자의 톤을 자랑하는 기타는 광활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낭만의 로드 트립을 펼치고, 혼성 보컬을 자연스레 포갠 합창은 대가족의 ‘혈연’까지도 넘보는 듯하다. 8년 전,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캐러밴’이 밟은 서툰 글래스톤베리행 초행길이 떠오른다. 그때와 달리 홍대와 부산, 더 나아가 세계로까지 뻗어가며 발전을 거듭한 한국의 인디. 이제는 거짓이 아니게 된 ‘세계진출’과 그 소박한 염원과 설렘, 그리고 ‘우리는 어디에 있어도 / 다정한 친구가 되는 거야’라는 따뜻한 코멘트에는 오랜 인디 팬들이 경유할 수 있는 감동과 헌사가 담긴다. (장준환)

(여자)아이들 ‘Tomboy’

멤버 수진이 탈퇴하고 흔들리는 상황에서 발표한 ‘Tomboy’는 이전 노래들과는 달랐지만 (여자)아이들을 걸그룹 최상위 포식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위기에서 공개한 ‘Tomboy’가 국민 히트곡이 된 아이러니는 우여곡절이 많은 우리 인생과 닮았다.

다른 그룹들이 뭄바톤 비트를 바탕으로 한 제3세계 리듬과 드롭, 트랩 스타일을 탐닉할 때 (여자)아이들은 20여 년 전에 유행한 팝 펑크로 자신들의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어렵지 않은 안무와 쉬운 주요 멜로디가 히트 공식의 기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Tomboy’는 2022년 최고의 히트곡이다. 반대의견은 있을 수 없다. (소승근)

비오 ‘Love me’

‘Counting stars / 밤하늘에 펄’, 2021년 힙합계에 새로운 별이 떴다. < 슈퍼스타K >를 넘어 국내 대표 음악 경연으로 자리 잡은 < 쇼미더머니 >의 10번째 시리즈를 통해 화려하게 비상한 주역, 그가 바로 비오다. 단숨에 블루칩으로 떠올라 레드벨벳의 슬기, 소유 등 대중 음악 곳곳에 소리를 남기며 노래하듯 랩 하는 싱잉랩(Melodic rap)의 유행 속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다지고 있다.

저스틴 비버와 더 키드 라로이의 ‘Stay’를 닮은 비트 위에서 부드러운 톤으로 매끄러운 랩을 펼치며 자신의 매력을 온전히 발휘한다. ‘Counting stars’에 이어 에픽하이를 연상케 하는 멜로디 감각도 확실하게 돋보인다. 이런 젊고 유능한 뮤지션이 끊임없이 나오는 곳이 여기 대한민국 K-힙합 신(Scene)이다. 쇼미(< 쇼미더머니 >) 10년이 강산은 못 바꿔도 음악이 흐르는 물길은 바꿔버렸다. (임동엽)

빅 나티 ‘정이라고 하자 (Feat. 십센치)’

그리움을 완결된 추억으로 만들기 위해선 스스로 납득할 만한 단어로 그 마음을 정확하게 포착해야 한다. 빅 나티와 십센치는 그들의 식어버린 기억을 ‘정이라고 하자’고 말하며 감정을 똑바로 직시했을 때 생기는 어떤 미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사무치는 이별을 주제로 한 가사는 차트에 이미 가득하기에 관계의 세심한 극복을 다룬 이 곡이 크게 사랑받은 건 반가운 일이다.

적은 수의 코드와 귀에 쉽게 들어오는 멜로디라는 타율 높은 상업적 전략에 터 잡아 유행의 최전선을 달린 스타일의 흑인 음악 터치를 더했다. 대중의 마음을 선명하게 볼 줄 아는 가수들의 조합이라 곡의 내부 요소 간 앙상블도 적절하다. 빅 나티의 선율감이 도드라지는 보컬, 십센치의 언제나 풋풋한 감성, 그리고 따뜻한 어쿠스틱 편곡이 조화를 이룬다. 이보다 듣기 편한 곡을 상상하기 힘들다. (김호현)

윤하 ‘사건의 지평선’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던 어린 혜성은 방향을 잃고 궤도를 이탈했다. 그럼에도 윤하는 고독히 ‘우리’를 중심으로 공전했다. 간결하게 귀를 사로잡는 최근 트렌드와 정반대로 5분이란 시간 동안 숨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록 사운드의 ‘사건의 지평선’은 절대 흔들리지 않고 간직한 그의 음악 세계로 쌓아 올린 견고한 우주였다. 사건의 지평선 내부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일도 외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표류했던 과거로부터 보낸 구조 신호가 마침내 두꺼운 경계를 뚫고 몇 광년을 거쳐 지금 도달했다.

굴곡진 인생을 말미암아 굵게 새긴 서사는 재개된 축제의 열기를 타고 울려 퍼져 거대한 필연처럼 대중의 마음과 감응한다. 희망은 언제나 곁에 머문다. 주변을 잠식한 절망은 분명 두텁지만, 그보다 밝은 빛이 존재하기에. 산전수전을 겪고도 포기하지 않았던 아티스트의 긍정적인 목소리가 명확한 지침서가 되어 모두를 내일로 이끌기 시작한다. 이에 윤하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손기호)

한로로 ‘입춘’

눈이 녹아 비가 되기 직전의 찰나, 새 출발을 알리는 봄이 본디 그러하듯 모든 시작엔 추위와 온기가 동시에 서려 있다. 갓 첫걸음을 내디딘 아리따운 스물셋 소녀 한로로 역시 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마주한다. ‘아슬히 고개 내민 내게 첫 봄인사를 건네줘요’, 자신의 발화(發花)를 기록하기 위한 곡이라 밝힌 데뷔 싱글 ‘입춘’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한 설렘과 불안을 노래한다.

복잡한 속사정은 여리다가도 폭발하는 호흡 끝에 담겨 있다. 마음 녹여줄 누군가를 기다리던 목소리는 따스한 기타에 포개지며 피어날 준비를 마쳤고, 드럼이 꽃봉오리를 두드리는 순간 목청을 높여 작은 바람이 간절한 열망으로 피어오르게 한다. 간주를 장식한 일렉트릭 기타 솔로는 감정선을 더욱 극적으로 이끌어내고 직후의 가창에선 성대와 음을 살짝 비틀며 가슴을 냉랭히 찢어발긴다. 꽃놀이의 화사함으로 기억하던 계절의 현실은 차디찼지만 굳건한 뿌리의 민들레는 시들지 않았다. 오늘을 넘어 다가올 내일에 용기의 홀씨를 흩뿌린 올해 최고의 청춘 송가. (정다열)

조용필 ‘찰나’

한국대중음악사와 함께 걸어온 발걸음의 무게와 다르게 청춘처럼 산뜻한 ‘가왕’의 복귀다. < Hello > 이후 9년 만에 돌아온 조용필은 자신을 사랑한 이들이 빠져든, 그리고 빠져들 ‘찰나’를 조각하여 모두가 함께할 추억을 현재에 새겨 넣었다. 물론 2022년을 대표하는 자리에 거장의 이름을 올려둔 것은 역사적 가치나 명망에 따른 전관예우의 혜택은 아니다. 기대감을 늘 확신으로 뒤바꿔온 도전정신, 몇 번이고 격변한 시대와의 호흡 등 완숙해질수록 더 치열해지는 그 오랜 노력에 보내는 찬사다.

영원한 열정을 쏟아부었을 ‘찰나’ 역시 칭호에 걸맞게 절륜하면서도,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도하다. 도시의 밤공기를 머금은 듯 활기찬 록 선율과 옅게 흩뿌리는 코러스가 각자의 자리에서 화려하게 반짝이고, 그 가운데 환희에 찬 보컬이 유려하게 완급을 조절하며 관록을 뿜어낸다. 갈고닦은 재료들이 단방향의 선율로 매끄럽게 조합되어 모든 세대의 귀를 만족시킬만한 트랙이 탄생했다. 정규 20집으로 향하는 왕도, 그 첫걸음에 울려 퍼진 행진곡은 역시 단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다. (손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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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즘] 리스펙트

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열 두 번째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생애를 스크린으로 복각한 < 리스펙트 >다.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의 발자취를 좇는 < 리스펙트 >는 그의 사후 3년인 2021년 개봉한 전기영화다. 극적인 내용을 중점으로 구성하여 관객을 시종일관 긴장하게 만드는 작품은 연기와 음악이라는 정공법으로 힘을 토해낸다. 생전 자신의 배역을 맡을 이로 직접 지목한 제니퍼 허드슨의 강인한 연기력과 폭발적인 가창력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전설적인 가수를 되살린다. 그의 눈빛에 음악을 사랑하고 종교를 부르짖던, 흑인 여성 아레사 프랭클린이 그대로 들어있다.

음악을 사랑했던
천부적인 재능으로 ‘서른 살의 목소리를 가진’ 열 살의 아레사 프랭클린이 잠에서 깨어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인종차별과 정치적 이념 대립이 복잡하게 어우러진 1950년대 미국, ‘My baby likes to Be-Bop (And I like to Be-Bop too)’을 출중하게 소화해내는 노래 실력은 아이에게는 행운이었지만 동시에 괴로움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마자 잠에 들길 강요하는 아버지 클라렌스를 쳐다보는 어린 아이의 눈빛이 생애 내내 이어질 음악과의 복잡한 관계를 서두부터 암시한다. 포레스트 휘태커의 노련함에 지지 않는 아역배우 스카이 다코타 터너의 연기력에 압박감은 초반부터 팽팽해진다.

보는 사람마저 지치게 하는 극적인 플롯을 음악이 해소한다. 테드 화이트와의 연애 장면에서 나오는 ‘Nature boy’는 사랑의 당도를 가득 충전하고, 애틀랜틱 레코드에서의 첫 히트곡 ‘I never love a man (The way I love you)’의 뒤를 잇는 대표작 ‘Respect’의 공연 장면은 정상에 오른 가수의 커리어를 화려하게 선보이며 잠시 숨통을 틔워준다. 제니퍼 허드슨의 뛰어난 목소리가 그 중심을 꽉 지탱한다.

폭력적으로 변한 애인과의 본격적인 갈등 앞에 흘러나오는 ‘Chain of fools’, 그리고 그와의 결별로 해방되는 순간 나오는 ‘Think’ 등 적재적소에 울려 퍼지는 가사 덕분에 작품은 일종의 뮤지컬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후자에서 자유를 부르짖는 순간 어지럼증을 토하나 이내 활력을 되찾는 주인공의 모습은 가장 높은 몰입도를 자랑한다. 전기 영화에서 음악의 역할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를 부르짖은
자유의 땅인 미국에 역설적으로 노예가 되어 끌려온 흑인들이 기댈 곳은 교회였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에서만 허용된 노래는 가스펠을 비롯한 여러 흑인 음악의 뿌리가 되었다. 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아레사 프랭클린 또한 단상 위에서 찬양을 통해 말씀을 전달했다. 신앙의 줄기가 내내 이어진다는 점에서 < 리스펙트 >는 종교영화이기도 하다.

독실한 기독교인에게 잔인한 세상은 끊임없이 비극을 선사했다.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겪은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과 어머니 바바라의 급작스러운 사망, 그리고 이로 인한 실어증이 초반부에 빠르게 등장하며 주인공만이 아니라 관객까지 숨막히게 한다. 애인, 그리고 가족 간의 분쟁이 멈추지 않는 버거운 삶이지만 그는 끝까지 신을 향한 손길을 저버리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은 라이브 실황을 담은 1972년 음반 < Amazing Grace >를 녹음하는 내용이다. 마치 성경 속 ‘돌아온 탕아’처럼, 한때 히트곡을 갈망했던 가수는 레코드사의 만류를 단호하게 내치며 상업성과 거리가 먼 가스펠 음반을 제작한다. 신이 응답이라도 한 것일까, 앨범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커리어 사상 최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 Amazing Grace >는 2018년에야 공개되었다)

흑인 여성이었던
인종차별이 지금보다 더욱 만연했던 시대, 흑인 인권 운동에도 적극적이었던 아레사 프랭클린의 행보 또한 스크린에 그대로 등장한다. 아버지 덕분에 목사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도 가까운 사이였던 그는 백인들에 맞서 급진적인 항쟁에 대한 의지를 보이기도 하고, 인권운동가 안젤라 데이비스의 체포 소식을 듣고 분개하기도 한다. 격렬했던 과거 미국을 보여주는 내용이자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 문제가 대두되었던 2020년대의 사회를 또한 관통한다.

연인 테드 화이트의 폭력성이 드러나는 계기도 인종차별이다. 흑인들이 아직도 목화 농장에서 일하던 1967년 앨라배마, 흑인 가수를 달가워하지 않던 세션 음악가들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내색을 비췄다. 색소폰 연주자가 치근덕대는 모습을 본 테드는 애꿎게도 아레사에게 격렬한 분노를 토하고, 사과하러 온 스튜디오의 주인 릭 홀과 주먹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사회 문제에 대한 아레사 프랭클린의 대답은 간단했다. 음악이다. 편곡을 이끌며 곡의 방향성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으로 불만 가득했던 세션들을 침묵하게 했던 그는 댄스 음악에 영합하지 않은 자신만의 음악으로 백인들에게도 사랑을 얻어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사후 인권 운동에 대한 스트레스가 코러스 싱어로 활동했던 자매들과의 갈등, 그리고 공연 스케쥴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질 정도였다.

이 모든, 아레사 프랭클린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영화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실제 공연 모습을 함께 띄워준다. 감동적인 무대 장면부터 심적 부담으로 인해 알코올에 잔뜩 취해 관객 앞에서 쓰러지는 모습까지, 온갖 산전수전을 자신의 삶인 양 소화해낸 제니퍼 허드슨의 뛰어난 연기가 작품을 아우르나 결국 그 주인공은 아레사 프랭클린인 것이다. 아름다운 음악이 돋보이고, 종교적인 색채 또한 강하며, 시대를 초월한 흑인들의 정신도 함께 담겨있는 영화는 이 모든 것을 제치고 ‘소울의 여왕’에게 바쳐지는 헌사로 자리한다. < 리스펙트 >, 제목처럼 그에게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
1. My baby likes to Be-Bop (And I like to Be-Bop too)
2.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3. I’ll be seeing you
4. We’re marching to Zion
5. Ain’t that just like a woman
6. How far am I from Canaan
7. 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
8. There is a fountain filled with blood
9. Go where my baby lives
10. Lonely teardrops
11. Honey
12. Think
13. Ac-cent-tchu-ate the positive
14. This better earth
15. Groovin’ the Blues
16. Rufus
17. Nature boy
18. Hey Joe
19. Anyway you wannta
20. Respect
21. Do right woman, do right man
22. Dr. Feelgood
23. Sweet sweet baby (Since you’ve been gone)
24.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25. Drinks at the Ritz
26. Chain of fools
27. My one and only love
28. Puffin’ on down the track
29. Take my hand, precious lord
30. Blues to Elvin
31. Spanish Harlem
32. To be you, gifted and black
33. I say a little prayer
34. Amazing grace
35. Precious memories
36. Here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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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무비즘] 아임 낫 데어

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열 아홉 번째는 7개의 서로 다른 자아 및 캐릭터로 밥 딜런의 음악 여정을 그린 < 아임 낫 데어 >다.

시대의 음유시인 밥 딜런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난해한 가사, 쉬이 멜로디를 캐치하기 어려운 노래들, 별다른 설명과 해석을 달지 않는 밥 딜런 본인의 성격까지 그의 음악 앞에 자리한 장벽은 공고하다. 그럼에도 밥 딜런은 활동명(실제 이름은 ‘로버트 짐머만’이다)을 제목으로 내세운 첫 번째 정규 음반 < Bob Dylan >(1962) 이후 2022년 현재까지 끝없이 회자하고, 소환되는 음악가다. 그 이유가 바로 오늘 소개할 영화 < 아임 낫 데어 >에 담겨있다.

그저, 감각(Sense)할 것
1970년대 화려한 글램 록의 시기를 담은 영화 < 벨벳 골드마인 >(1999)을 거쳐 오늘날 영화 < 캐롤 >(2016)로 국내에 많은 골수팬을 거느린 감독 토드 헤인즈가 메가폰을 잡았다. 그는 밥 딜런의 전기를 거칠게 풀어낸다. 6명의 배우, 7명의 캐릭터가 각기 다른 모습의 밥 딜런을 연기한다. 영화 속 각 주인공은 인종과 성향이, 사는 시대가 모두 다르다. 이를테면, ‘우디’라는 이름의 흑인 소년과 은퇴한 총잡이 ‘빌리’, 저항 음악으로 사랑받는 포크 가수 ‘잭’, 시인 ‘아서’가 한 화면 안에 담기는 식이다.

불친절하다. 하나의 줄기를 가지고 천천히 이야기를 쌓고 끝내 이를 터트리며 어떤 주제를 전하는 ‘기승전결’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로 보아도 무방할 만큼 진득하게 말에 주목하고, 규칙 없이 각 캐릭터를 오고 간다. 시인 ‘아서’가 소심하고 불안정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동시에 은퇴한 총잡이 ‘빌리’는 한 발짝 뒤에서 사회를 따뜻하게 포용한다. 날뛰고, 널 뛰는 시선과 분위기의 교차 속에서 밥 딜런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혹자는 당황을 넘어 당혹스러운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그저, 감각(Sense)할 것을 권한다. 이해하지 말고 느낄 것. 토드 헤인즈가 포착한 7개의 가면 아래 선 밥 딜런을 그저 감각하다 보면 실체가 선명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모두가 밥 딜런의 자아 : 케이트 블란쳇의 ‘쥬드’, 히스 레저의 ‘로비’
1966년 오토바이 사고 이후 긴 시간의 잠적, 마약, 1970년대 말 갑작스런 기독교인으로서의 선언 등 밥 딜런의 음악 여정에는 다양한 사건이 동행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그가 겪은(혹은 행한) 이러한 실제 사건을 중심으로 약간의 상상력을 덧대 창조됐다. 그중 눈여겨볼 캐릭터는 케이트 블란쳇이 열연한 ‘쥬드’와 히스 레저가 분한 ‘로비’다.

‘쥬드’의 등장은 1965년 뉴포트포크페스티벌(작품에서는 ‘뉴 잉글랜드 JAZZ & FOLK FESTIVAL’로 지칭된다)에서 시작된다. 무대에 오른 쥬드는 ‘일렉트릭 기타’를 메고 진한 블루스의 ‘Maggie’s farm’을 연주한다. 같은 날 연주한 ‘Like a rollingstone’이 빌보드 싱글차트 2위까지 오르며 ‘포크 록’의 선구자, 밥 딜런을 대표하지만 영화는 되레 조금은 덜 익숙한 ‘Maggie’s farm’을 소환해 포크와 시대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지탄을 받던 시절의 그를 묘사한다. 명곡 ‘Ballad of a thin man’에 맞춰 언론을 향한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은 ‘쥬드’의 정수이니 눈여겨봐도 좋겠다.

히스 레저가 맡은 ‘로비’는 밥 딜런의 실제 연인이었던 수즈 로틀로와 아내 사라 로운즈를 뒤섞은 듯한 인물 ‘클레어’를 통해 완성된다. 클레어와 사랑이 시작될 땐 사라 로운즈와의 웨딩 앨범으로 이해되곤 하는 < Blonde on Blonde >(1966)의 수록곡 ‘I want you’가 흘러나오고, 이별의 징조가 진해질 땐 실제 사랑의 끝을 달리고 있던 시기 발매한 < Blood on the Tracks >(1975)의 ‘Simple twist of fate’가 스피커를 채운다. 완전한 헤어짐 이후 절절한 비(悲)음으로 부르는 ‘Idiot wind’ 또한 밥 딜런의 인생을 이해하기에 적절한 트랙이다.

I’m not there, 나는 거기에 없다.
영화의 제목인 ‘I’m not there’은 밥 딜런의 곡에서 가져왔다. 오토바이 사고 이후 칩거할 당시 만든 노래이며 1975년 발매된 < The Basement Tapes >에 실릴 예정이었지만 실제 발표되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해적판으로 떠돌다가 < The Genuine Basement Tapes, Vol2 >(1992)에 실렸고 이 작품의 사운드트랙으로 다시 한번 정식 발매됐다. 투박한 노이즈를 잘 살린 후배 그룹 소닉 유스의 재해석으로 밥 딜런의 생애를 음악으로 ‘정조준’한다.

‘나는 거기에 없다.’ 밥 딜런을 해석하기에 이보다 완벽한 문장이 있을까? 결국 영화가 ‘밥 딜런’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누군가의 시선을 묘사하며 비전형적으로 나아가듯, ‘I’m not there’라는 문장은 해석하기를 거부하며 그저 부르고 쓰는 것을 반복한 밥 딜런과 닮아있다. 나는 거기에 없다. 늘 사회와 시대 속에서 노래했지만 결코 대표하기를 원치 않았던 밥 딜런. 그를 이해하는 7개의 캐릭터 사이 실체 없는 밥 딜런이 짙고 연하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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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즘] 노웨어 보이

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열 여덟 번째는 불멸의 밴드 비틀스가 아직 세상에 태어나기 전 존 레논의 어린 시절을 그린 < 노웨어 보이 >다.

비틀스가 대중음악사에 펼쳐 놓은 가지들은 저마다의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헤비메탈의 원류격인 블랙 사바스부터 슈게이징의 개척자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그리고 오아시스와 퀸, 라디오헤드, 너바나까지. 비틀스의 음악은 무수한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해체한 지 50년이 넘은 지금까지 수많은 아티스트에게 양분을 공급하고 있다. 영화 < 노웨어 보이 >는 그 위대한 밴드의 대들보였던 존 레논의 유년 시절을 그린다.

문제아 존 레논
살아생전 존 레논의 인터뷰나 행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그는 거침없는 개성의 소유자였다. 특히 비틀즈가 예수보다 유명하다는 발언으로 전 세계적 논란을 샀던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당돌하고 때론 오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성격은 비단 스타가 되고 난 이후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는 학창 시절 부족한 성적은 둘째치고 흡연과 음주는 물론 문란한 행동으로 말썽을 일삼던 문제아였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로 시작하는 영화는 존의 이모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며 분기점을 맞는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이모의 가정에서 자란 존은 아버지의 역할을 해주었던 이와 갑작스럽게 이별을 하게 되자 공허함에 사무친다. 동시에 오래전 자신을 떠나 어렴풋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어머니를 찾아 나선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는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이었지만 계속 함께 했던 것처럼 애틋했다. 긴 시간 묵혀왔던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특히 당시 거주지이자 비틀스의 요람이기도 한 영국 리버풀 랭커셔주의 해변 마을 블랙풀을 오갔던 것이 존의 인생을 크게 흔들었다. 어머니와 함께 그곳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를 비롯한 로큰롤 음악을 접했고 그는 슈퍼스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사랑 
음악에 빠지면서 학교생활에는 더 소홀해졌다. 자신이 동경하던 아티스트들처럼 헤어스타일을 바꿨고 마초스러운 모습을 과시하며 길거리를 배회했다. 자연스럽게 성적은 더 곤두박질쳤고 결국 정학이라는 처분을 피하지 못했다. 

존을 교양있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했던 이모 미미 스미스(Mimi Smith)는 그런 그를 구박했다. 자식을 기르는 어미의 마음으로 조카에게 깊은 사랑을 주었지만 비행에 대해선 엄격했다. 이미 비슷한 일로 여러번 다툰 바 있던 둘 사이에 학교에서 내린 징계는 갈등의 도화선이었다. 사랑이 필요했던 사춘기 소년은 어머니 줄리아 레논(Julia Lennon)에게 더욱 의지하기 시작했다.

줄리아는 자식을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단절된 과거에는 주지 못한 사랑을 참회하듯 몇 배로 애정을 담아 그를 대했다. 존은 그런 어머니에게 편안함을 느꼈고 학교를 나가지 않는 기간동안은 어머니의 집에 머물렀다. 

차이콥스키의 음악 같은 클래식을 즐겨들었던 이모와 다르게 줄리아는 로큰롤 음악에 일가견이 있었다. 악기 연주를 할 줄 알았던 그는 아들 존 레논에게 현악기인 밴조를 가르쳐 주었다.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구현해내는 것에 재미를 느낀 존은 온종일 악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밴드 The Quarrymen
징계를 마치고 학교에 돌아온 존은 본격적으로 밴드를 꾸렸다. 음악적인 완성도 보다는 당장의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 같은 학교의 친구들로 빠르게 멤버를 구성했다. 밴드명은 쿼리맨(The Quarrymen). 그들이 다니던 고등학교 ‘Quarry Back High School’의 교명을 따온 이름이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아마추어 공연을 하던 존 레논은 어느 날 교회에서 무대를 하다가 자신의 운명을 바꿀 인물을 만난다. 그날의 공연을 인상 깊게 본 폴 매카트니였다. 폴은 그들에게 자신의 악기 연주를 뽐내며 밴드의 멤버로 받아줄 것을 제안했다. 자존심이 강한 존은 그 자리에서 폴을 거부했으나 그의 뛰어난 실력에 감명받았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존은 직접 폴을 찾아가서 기타를 배웠고 빠르게 유대를 쌓았다. 둘이 쿼리맨을 대표하는 듀오가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Nowhere boy
폴 매카트니와 같은 학교에 다니던 조지 해리슨도 금세 밴드에 승선했다. 비틀스라는 거함이 서서히 완성되고 있었지만 꽃길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위대한 아티스트로서의 재목임을 스스로 증명한 존도 결국 사춘기 소년이었던 것. 부모의 돌봄이 가장 중요했을 시기에 자신을 떠났던 어머니에게 반감을 품기 시작했다. 

마냥 치기 어린 어리광으로 여기기에는 가혹한 존의 유년이었다. 부모는 이별했고 어느 쪽도 그를 원하지 않았기에 이모인 미미가 존을 데려갔다. 자신을 세상에 내놓은 두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과거는 10년이 넘은 일이었지만 그에게 상처를 주기에 충분했다.

Mother
피로 맺은 관계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존은 자신이 꿈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 어머니를 이해하고 용서했다. 덕분에 과거의 일로 연을 끊고 있던 줄리아와 미미 또한 자매로서 다시 함께했다. 자식의 꿈과 음악이 가진 힘이 여기저기에 흠집 나 있던 상처들을 봉합했다. 

운명의 장난처럼 좋은 날은 길지 않았다. 미미의 집에서 나와 동네 주민과 함께 걷던 줄리아 레논은 도로를 건너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존에게는 아버지와 같던 고모부를 떠나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찾아온 비극이었다. 존은 주저앉지 않았다. 노래와 밴드가 있었기에 금세 다시 일어났다. 

Love
영화는 어머니를 향한 존의 애틋한 감정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한다. 비틀스가 유명해지고 1968년 존은 솔로곡 ‘Julia’를 화이트 앨범이라고 불리는 불멸의 명반 < The Beatles >에 실었고 1970년에는 밴드 해체 직후에 발매한 솔로 데뷔 앨범 < Plastic Ono Band >에 ‘Mother’를 수록했다. 그가 얼마나 어머니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꼈는지 알 수 있다.

영화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존은 어린 시절 스트로베리 필드(Strawberry Field)라는 이름의 보육원에서 잠시 지냈다. 아픔을 아름다운 멜로디로 승화해 ‘Strawberry fields forever’라는 명곡을 만들어냈고 오랫동안 품어왔던 고립감은 ‘Isolation’을 낳았다.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곡 중 하나인 ‘Imagine’ 속 평화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곡이 탄생하기까지의 남다른 굴곡의 깊이가 노래에서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 있었던 어머니의 역할 그리고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선 존 레논의 이야기는 단순히 비틀스의 팬이 아니어도 감동을 준다. 음악에 중점을 두기보다 한 편의 드라마로 완성한 영화는 계속해서 숨 쉬고 있는 비틀스의 노래들처럼 가장 보편적이고 소중한 가치인 가족과 사랑의 중요성을 전파한다. 경쟁의 과열과 상업성으로 점철된 이 시대의 음악들이 존 레논에게서 받아야 할 영향력은 단순 사운드와 음악적 가치에만 머물러선 안 됨을 그의 인생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영화에 사용된 음악-
1. Jerry Lee Lewis ‘Wild One’
2. Gracie Fields ‘If i knew you were comin’ i’d’ve baked a cake
3. DIckie Valentine ‘Mr. sandman’
4. Jackie Brenston & His Delta Cats ‘Rocket 88’
5. Elvis Presley ‘Shake Rattle & Roll’
6. Wanda Jackson ‘Hard headed Woman’
7. Screamin’ Jay Hawkins ‘I put a spell on you’
8. Aaron Taylor-Johnson ‘(Let me be your) Teddy bear’
9. Anne-Marie Duff ‘Maggie mae’
10. Aaron Taylor-Johnson ‘That’ll be the day’
11. Eddie Bond & The Stompers ‘Rockin’ Daddy’
12. Wally Whyton ‘Maggie May’
13. Sam Bell & Patrick Murdoch ‘Twenty Flight Rock’
14. Aaron Taylor-Johnson & Thomas Brodie-Sangster ‘Blue Moon’
15. The Nowhere Boys ‘That’s all right’
16. The Nowhere Boys ‘Movin ‘n’ groovin’
17. The Nowhere Boys ‘Raunchy’
18. Big Mama Thornton ‘Hound dog’
19. Sam Bell ‘Love me tender’
20. David Whitfield ‘My son john’
21. Gene Vincent ‘Be-bop-a-lula’
22. Sam bell ‘Hello little girl’
23. The Nowhere Boys ‘In spite of all the danger’
24. John Lennon ‘Mo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