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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재즈의 거장 웨인 쇼터(1933-2023)

지난 3월 2일 재즈 색소포니스트 웨인 쇼터가 사망했다.1933년생이니 구십 가까운 노익장이었다. 선배인 찰리 파커나 존 콜트레인에 동년배인 소니 롤린스와 더불어 모던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색소포니스트로 꼽히는 쇼터는 밴드 리더와 조력자를 오가며, 하드 밥과 퓨전 재즈를 아우르며 원대한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웨인 쇼터의 역사는 곧 모던 재즈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경력의 대표작 7곡을 소개한다.

재즈 메신저스 – A night in Tunisia / A Night In Tunisia(1960)
위대한 드러머 아트 블래키를 중심으로 색소포니스트 행크 모블리와 트럼페터 케니 도햄,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 같은 명인들이 거쳐간 음악 집단 재즈 메신저스는 삼십 년 넘게 장르의 전파자 역할을 수행했다. 1961년, 쇼터가 재적할 당시 재즈 메신저스는 당시로선 드물게 일본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디지 길레스피가 작곡한 ‘A night in Tunisia’는 많은 재즈 연주자가 레퍼토리로 연주하는 ‘스탠더드’가 되었고 클리포드 브라운과 덱스터 고든 등 여러 음악가가 각자의 개성을 담아냈다. 재즈 메신저스의 버전은 블래키의 활화산 같은 드러밍에 스타일리스트 리 모건의 트럼펫이 색소폰과 대화하듯 가락을 주고받는다. 재즈 메신저스에서 쌓은 경험은 경력의 밑거름이 되었다.

웨인 쇼터 – Speak no evil / Speak No Evil(1964)
깊고 푸른 빛에 쇼터와 일본 여성 테루코 나카가미를 담은 앨범 재킷이 도회적이다. 포스트 밥, 모달 재즈의 명작으로 인정받는 1964년 앨범 < Speak No Evil >은 재즈 명가 블루노트 레코드에서 1964년 발매되었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두 번째 퀸텟에서 합을 맞춘 피아니스트 허비 핸콕과 콘트라베이시스트 론 카터에 트럼펫 연주자 프레디 허바드와 드러머 엘빈 존스의 드림팀을 구축했다. 코드 대신 모드를 사용하는 모달 재즈 ‘Speak no evil’은 인상적인 도입부를 매개로 하나둘 모드의 탑을 쌓아나간다. 사방팔방 흩어지는 대신 조금씩 공간을 확보하는 방식은 과유불급의 미학. 쇼터는 모던재즈의 핵심을 꿰뚫었다.

마일즈 데이비스 – Frelon brun / Filles De Kilimanjaro(1968 UK, 1969 US)
마일즈 데이비스 퀸텟은 재즈 역사상 가장 화려한 라인업으로 알려져 있다. 마일즈(트럼펫)를 중심으로 존 콜트레인(색소폰), 레드 갈란드(피아노), 폴 체임버스(베이스) 필리 조 존스(드러머)로 구성된 1기는 비밥 시대를 관통했고, 웨인 쇼터(섹소폰), 허비 핸콕(피아노), 론 카터(베이스), 토니 윌리엄스(드럼)의 2기로 포스트 밥과 재즈 록을 탐험했다.

쇼터는 < In A Silent Way >(1969), < Bitches Brew >(1969)와 같은 1960년대 말 재즈 혁명의 지원군이었다. 불어로 ‘킬리만자로의 소녀들’이라는 뜻의 1968년 음반 < Filles De Kilimanjaro >는 포스트 밥과 퓨전 재즈의 중간지대를 절묘하게 낚아챘고 ‘갈색 왕벌’을 의미하는 ‘Frelon brun’은 긴장감 넘치는 토니 윌리엄스의 리듬워크를 마일즈와 쇼터가 양분했다. 트럼펫과 색소폰의 소리 특질과 대조가 돋보인다.

웨인 쇼터 & 밀톤 나시멘토 – Tarde / Native Dancer(1975)
쇼터는 친구 허비 핸콕처럼 장르 탐험에 의욕적이었다. 존 맥러플린의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 칙 코리아의 리턴 투 포에버와 함께 삼대 퓨전 재즈 그룹으로 꼽히는 웨더 리포트로 활동하는 틈틈이 솔로작을 발표했다. 브라질 팝의 걸작 < Clube Da Esquina >(1972)의 밀톤 나시멘토와 합작한 1975년 작 < Native Dancer >는 재즈와 펑크(Funk), 라틴을 아우른 음악성으로 에스페란자 스팔딩과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모리스 화이트에게 영감을 주었다. 포르투갈어로 오후를 뜻하는 수록곡 ‘Tarde’는 포근한 색소폰 음색과 나시멘토의 입체적인 목소리가 조화롭다. 두 거장의 여유로운 산책 같은 곡이다.

웨더 리포트 – Black market / Black Market(1976)
마일즈 데이비스의 재즈 록 걸작 < In A Silent Way >(1969)와 < Bitches Brew >(1969)에서 합을 맞춘 오스트리아 출신 건반 연주자 조 자비눌과 웨인 쇼터는 1971년 웨더 리포트를 결성했다. 여타 퓨전 재즈 밴드처럼 체코 베이시스트 미로슬라브 비투오스와 브라질의 퍼커셔니스트 에알토 모레이라 등 수많은 멤버들이 이합집산했으나 자비눌과 쇼터의 중심은 굳건했다. 재즈 베이스 계의 혁명아 자코 파스토리우스가 처음 참여한 1976년 작 < Black Market >은 빌보드 200 42위와 빌보드 재즈 앨범 차트 2위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동양적 선율을 가미한 ‘Black market’은 중후반부 색소폰으로 응축해 온 긴장감을 터뜨렸다.

스틸리 댄 – Aja / Aja(1977)
세련된 록 음악의 대명사와도 같은 스틸리 댄은 1972년 < Can’t Buy A Thrill >을 시작으로 1970년대 내내 수작을 배출했다. 페이건과 월터 베커 2인조에 다양한 스튜디오 뮤지션들을 초빙한 형태로 제작된 1977년 작 < Aja >는 ‘Peg’과 ‘Deacon blues’, ‘Josie’같은 팝적인 곡들로 빌보드 200 3위를 성취했다. 페이건의 지인이었던 한국인 ‘애자’에서 음반 명을 따온 재밌는 일화도 있다. 8분의 러닝타임에 스티브 개드의 드럼과 래리 칼튼 기타, 조 샘플의 키보드 연주를 담은 ‘Aja’는 쇼터의 테너 색소폰 솔로로 곡의 격조를 높였다. 쇼터가 참여한 앨범의 유일한 곡이기도 하다.

조니 미첼- The dry cleaner from Des Moines / Mingus(1979)
작가주의 포크 음악으로 알려진 조니 미첼의 촉각은 재즈로 향했다. 1972년 작 < For Your Roses >로 시작해 1976년 작 < Hejira >에 이르러 결실을 보았다. 독보적 포크-재즈 음반이었다. < Mingus Ah Um >(1959)을 남긴 재즈 사의 거인 찰스 밍거스와 협업한 1979년 앨범 < Mingus >는 밍거스의 마지막 흔적을 담았다. < Native Dancer > 이후 오랜만에 조우한 쇼터와 허비 핸콕, 자코 파스토리우스와 콩가 연주자 돈 앨리어스가 세션으로 참여했다. 자코의 베이스 연주와 직접 설계한 관악기 편곡이 두드러진 ‘The dry cleaner from Des Moines’는 웨더 리포트에서의 환상 하모니를 재현했다.

이미지 작업: 백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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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청춘 로커, 팬들의 마음에 도킹하다!

음악 예능 < 싱 어게인 – 무명가수전 >의 우승으로 무명 세월을 극복한 이승윤은 도리어 곡 작업에 매진했다. 2021년에 나온 실질적 데뷔 앨범 < 폐허가 된다 해도 >와 2022년 3월 첫 단독콘서트 < DOCKING >의 열띤 행보는 2023년 서울가요대상 ‘올해의 발견상’으로 귀결했다. 올해 1월 정규 2집 < 꿈의 거처 >를 발매한 그는 지난 2월 18일과 19일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에서 < DOCKING > 전국투어의 대장정을 알렸다.

2시간 50분과 27곡. 단독 콘서트로서도 흔치 않은 숫자다. 쪼그려뛰기의 열정적 무대 매너는 후반부의 경기장 질주로 치달았다. 공연 후 마주친 그는 지침과 동시에 행복해 보였다. 공연 중 재차 공식 팬덤 ‘삐뚜루’를 언급했고 ‘달이 참 예쁘다고’의 환호와 합창에 감격했다. 팬과의 소통을 강조한 콘서트였다.

스케일이 큰 편곡 지향점은 여러 대의 악기와 사운드 이펙트를 동원했다. 핸드볼 경기장의 고질적 음향 문제에도 인디 록 밴드 바닐레어 소속 지용희의 파워 드러밍과 싱어송라이터 복다진의 건반 연주가 돋보였다. 이승윤도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기타를 번갈아 사용하며 기타 로커의 이미지를 굳혔다.

정규 앨범 두 장과 더불어 2019년 EP < 새벽이 빌려 준 마음 >과 음악 집단 알라리깡숑 시절의 곡을 총집합했다. < 싱 어게인 > 전후로 축적한 경험치는 노련한 퍼포먼스로 이어졌고, ‘교재를 펼쳐봐’ 와 ‘꿈의 거처’, ‘영웅 수집가’의 강력한 소리망 사이로 문학적이고 섬세한 노랫말이 피어났다.

록의 시대가 지났기에 이승윤의 존재는 더욱 반갑다. 기타 기반의 사운드스케이프에 열광하는 남녀노소를 보며 록의 대중성을 재확인했다. 1990년대 브릿팝을 흡수한 청년 로커는 2020년대 한국 팝 록의 중심에 섰다. ‘야생마’처럼 사상과 자의식을 풀어헤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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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라디오를 켜봐요] Vol. 5 – 이즘 에디터의 라디오 시그널

전성기는 지났다. 스마트폰의 중심으로 무수히 쏟아지는 영상 플랫폼과 OTT 서비스에 더 익숙한 젊은 층에게 ‘라디오’는 세대를 나누는 낡은 매체의 기준처럼 다가올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오늘날에도 라디오는 수많은 팬과 함께 굳건히 존재한다. 매일 꾸준하게 습관처럼 챙겨 듣는 마니아부터 문득 향수에 젖어 다시금 찾아오는 방문객 그리고 그 아날로그적인 특색에 반해 접하기 시작하는 호기심 많은 입문자까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 작디작은 전파 속 흘러나올 음악과 이야기를 기다린다.

9년 전, 이즘에서 진행한 [라디오를 켜봐요] 시리즈의 마무리를 짓는다. 특집을 처음 시작할 때와는 많은 것이 바뀌었고 필자마저 전부 다르지만 저마다 라디오를 들으며 자라왔다는 사실만큼은 모두 같다. 저마다 추억과 애정이 꼬깃꼬깃하게 담긴 사연과 함께 이즘 필자들이 기억하는 ‘시그널 송’을 조심스레 소개한다. 자, 지금 이 주파수를 고정하기 바란다.

KBS 2FM 나얼의 음악세계 / 나얼 ‘Love dawn’
KBS 2FM에서 진행된 < 나얼의 음악세계 >를 들은 사람은 분명 흑인 음악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은 오래전의 알앤비를 묵묵히 틀어주던 나얼의 진행은 흑인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이라면 버티기 힘들 정도로 지루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새벽엔 좋은 음악이 있었다. 나얼 솔로 정규 1집에 수록된 인스트루멘탈 ‘Love dawn’은 침전하는 기분을 음악으로 집중시키는 시그널이다. 이 곡의 차분한 사운드를 듣고 있으면 순수함을 향한 그날의 동경이 떠오른다. (김호현)

KBS 2FM 볼륨을 높여요 / 바버렛츠 ‘Summer love’
학업에 집중하리라 마음을 먹기만 하면 주변의 온갖 것들이 흥미롭게 느껴지고는 한다. 그래서 그랬을까, 저녁 식사를 마치고 펜을 집어들 때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KBS 2FM의 < 볼륨을 높여요 > 속 악동뮤지션 수현의 목소리는 애석하게도 매일같이 나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렇게 들뜨는 마음을 애써 외면하다가도 수현과 바버렛츠의 ‘Summer love’가 방송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면 나는 손에 쥔 펜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넷의 산뜻한 하모니가 나의 결심을 번번이 무너뜨릴 만큼 달콤했으니까. (이승원)

MBC FM4U 태연의 친한 친구 / 텐시러브(Tensi love) ‘Cake house’
학창 시절 조용한 자습실에서 두근대며 문자 사연을 보내던 기억은 꽤나 강렬하다. 라디오를 처음 접했던 중학생은 당시 소녀시대 태연이 진행하던 MBC FM의 < 친한 친구 >에 사연을 보냈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MP3 이어폰으로 전파를 찾았다. 흘러가는 야간 자율 학습 중에 3부 오프닝 곡 텐시러브의 ‘Cake house’가 흘러나왔고 무료한 시간을 버티게 해준 청취 이후에도 기계음으로 가득한 초창기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자주 흥얼거리곤 했다. 비록 사연은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라디오가 주는 동시성과 생동감은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 (손민현)

KBS 클래식FM 세상의 모든 음악 / 마이크 배트(Mike Batt) ‘Tiger in the night’
모 뮤직바 사장님의 단골 질문은 “< 세상의 모든 음악 > 알아요?”다. 마침 질문받을 당시 늘 듣던 종류 밖의, 클래식, 재즈 외 다른 여러 나라의 음악이 궁금하던 차였다. 덕분에 그 이후 오후 6시면 KBS 클래식FM을 찾았다. 시그널 음악은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마이크 배트(Mike Batt)가 작곡하여 로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Tiger in the night’. 하프와 오보에, 클라리넷이 두런두런 모이는 모양은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DJ의 변함없는 인사말과 어울린다. 얼마 전, 사장님은 나와는 오래 보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건네왔다. 새삼스러웠다. 같은 주파수로 접어들 때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여러 수단 중에서도 라디오는 밤의 호랑이처럼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다. (신하영)

KBS 2FM 이기광 가요광장 /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 ‘Winter games’
노래 듣는 것에 권태를 느낄 때는 라디오로 기분을 환기하곤 한다. 운이 좋으면 취향을 저격하는 음악을 발견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근황을 듣거나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한다. < 이기광의 가요광장 >은 점심시간에 편안한 목소리와 트렌디한 선곡으로 라디오로서 역할은 물론 연예계 활동으로 다져온 입담을 통해 재미까지 놓치지 않는다. 하루 중 가장 생기 있는 시간대에 걸맞게 시그널 송은 위대한 작곡가 데이비드 포스터의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주제가 ‘Winter games’를 사용한다. 시카고의 ‘Hard to say I’m sorry’,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 등 그의 수많은 대표곡에 비하면 덜 유명하지만 파워풀한 건반은 태양이 가장 높이 떠 있는 시간에 울려 퍼져 활력을 더한다. (백종권)

SBS 러브FM 정엽의 LP카페 / 정엽 ‘회전목마’
레코드판을 수집하는 입장에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이름이다(DJ와 같은 ‘엽’자를 써서 그런 것도 있지 않을까). 개인 소장 바이닐을 가지고 실제로 공개 방청까지 다녀왔다. 턴테이블을 통해 음악을 틀어준다는 것과 더불어 다양한 라이브 무대가 특징이다. 디제이가 가수인 점을 살려 오프닝 시그널은 정엽의 노래가 SBS 러브FM의 103.5 MHz를 타고 매일 밤 저녁 6시 5분에 흘러나온다. ‘회전목마’라는 제목에 맞춰 놀이공원에서 들릴 법한 도입부 뒤 분위기는 잔잔하게 가라앉으며 진행자의 목소리와 프로그램의 무드에서 일맥상통하는 따스함이 전파를 타고 단번에 퍼진다. 아날로그, 라디오, LP, 음악, 뉴트로, 레트로. 옛것이 현재로 돌아온 지금의 대중문화를 반영해 그 시절의 자글거리는 감성을 간직했다. 오늘도 ‘카페’에 들러 음악 한 모금을 마신다. (임동엽)

KBS 1FM 생생 클래식 / 모차르트(Mozart) ‘The London sketchbook, K.15a’
누군가의 우아함을 사모하다 덩달아 고상해지는 경우가 있다. KBS TV <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의 열혈한 애청자인 나는 유려한 말솜씨를 가진 진행자 윤수영 아나운서를 동경하게 됐고 곧 그가 KBS 1FM < 생생 클래식 >의 오랜 MC라는 걸 알게 됐다. 정오를 알리는 이 라디오는 모차르트가 런던에 머물 동안 쓴 스케치 시리즈로서 제목이 없어 a부터 ss번까지 문자로 대신해 부르는 희유곡의 ‘K.15a’를 시그널로 삼았다. 영국의 지휘자 네빌 마리너의 통솔 아래 관현악기가 수다스럽게 빗발치며 한낮의 태양을 환희한다. 가끔 삶을 축복하고 싶을 때 들을 만한 음악이 추가됐다. 타인의 기품, 다정함, 전문성을 닮고 싶어 맞춰 놓은 주파수가 클래식 문외한에게도 취향이란 걸 심어주었다. (박태임)

MBC FM 임국희의 팝스퍼레이드 / 러브 언리미티드 오케스트라(Love Unlimited Orchestra) ‘Love’s theme’
1980년대 중반, 매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MBC FM에서 방송된 < 임국희의 팝스퍼레이드 >는 나에겐 반 토막 프로그램이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1부는 듣지 못했기 때문에. 아나운서 출신인 임국희 디제이의 약간 냉정한 진행과 선곡되는 노래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시원한 현악기로 시작하는 시그널 음악이 마음에 들었다. 이 곡은 저음으로 유명한 소울 가수 배리 화이트가 이끌었던 러브 언리미티드 오케스트라(Love Unlimited Orchestra)의 초기 디스코 스타일의 ‘Love’s theme’이다. 내가 주말을 기다렸던 이유 중 하나는 정각 오후 4시에 세련된 이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였다. (소승근)

MBC FM4U 세상을 여는 아침 최현정입니다 / 타카피 (T.A.-COPY) ‘케세라세라’
새벽 다섯 시. 하루를 온전히 마무리한 퇴근자의 안도와 이른 출근길의 불안과 설렘이 뒤섞이는 지점에 ‘세상을 여는 아침 최현정입니다’가 있었다. 아나운서 최현정은 특유의 나긋한 목소리로 각자가 지닌 선을 이어주며 청취자를 다독였다. 무엇보다 생각이 깊어질 무렵. 펑크 밴드 타카피가 부른 2부의 여는 곡 ‘케세라세라’는 직선적이고도 흥겨운 리듬으로 고민에 빠진 이들을 ‘될 대로 돼라’며 응원했고 작곡 학원에 다니고자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초짜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생에게 더할 나위 없이 큰 격려가 됐다. 오랜 세월이 지나 잠시 잊고 있었지만 불현듯 떠오른 그때의 온도와 풍경이 여전히 생생하다. (손기호)

CBS FM 한동준의 FM POPS / 어 플록 오브 시걸스(A Flock Of Seagulls) ‘Space age love song’
중학교 시절 처음 접한 CBS 음악FM의 < FM POPS >는 도회적이었다. 디스크자키 김형준의 쿨함은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서늘한 시간과 어울렸고 프로그램이 소개한 레벨 포티투(Level 42)의 ‘Love games’ 덕에 퓨전 재즈와 소피스티-팝에 매혹되었다. 나른한 오후 2시를 유쾌 상쾌로 깨우는 < 한동준의 FM POPS >에 이르기까지 방송의 시작을 알리는 노래는 같았다. 리버풀 출신 뉴웨이브 밴드 어 플록 오브 시걸스의 ‘A space age love song’은 신시사이저와 각종 소리 효과, 펑키(Funky) 기타의 합세로 가슴을 두드렸다. 제목처럼 공상과학적 사운드스케이프였다. 리드 보컬 마이크 스코어의 헤어스타일을 비롯해 멤버들의 패션도 시각적이었다. (염동교)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 / 비엔나 심포닉 오케스트라(Vienna Symphonic Orchestra) ‘(I can’t get no) satisfaction’
나에게 ‘Satisfaction’은 롤링 스톤즈가 아니라 비엔나 심포닉 오케스트라의 곡이다. 당연히 < 배철수의 음악캠프 > 때문이다. 해외 음악을 접하겠다는 일념으로 무턱대고 라디오를 듣게 되면서 ‘Satisfaction’은 내 안에 오프닝 시그널 송으로 먼저 뿌리를 내렸다. 마치 ‘헛, 둘, 셋’처럼 들리는 인트로부터 위트 넘치는 베이스, 현란한 현악 연주가 차례로 날리는 일격에 당하고 나니 나중에 찾아 들은 원곡과는 친해질 수가 없었다. 사실 오케스트라 버전도 2분 30초를 넘어가면 마치 마스크 벗은 맨얼굴을 처음 보는 느낌이다. 배철수 DJ의 “출발합니다!” 없이는 영 어색하다. (한성현)

MBC FM4U 푸른밤 종현입니다 / 샤즈(Shazz) ‘Heaven’
자정이 되기 직전 끝난 야간 자율 학습, 지친 하루가 끝나면 기숙사 룸메이트는 MP3로 라디오를 틀었다. 시그널송 샤즈(Shazz)의 ‘Heaven’으로 시작하는 MBC FM4U < 푸른 밤 종현입니다 >. 피아노 선율이 이끄는 포근한 재즈 사운드는 오늘과 내일 사이의 아늑한 공간으로 초대했다. 매일 도착하는 사연들과 그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목소리는 다정하고 진중했다. 라디오는 늦은 새벽까지 공부할 때면 적막한 틈을 메웠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우리의 또 다른 친구가 되기도 했다. 여전히 ‘Heaven’을 들으면 3년 동안 자정을 지켜줬던 DJ의 사려 깊은 말들이 떠오른다. (정수민)

MBC 표준FM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 / 폴 모리아(Paul Mauriat) ‘Please return to Pusan port’
몇몇 기억은 어렴풋한 흔적으로 시작해 평생을 함께하는 문신이 된다. 어린 시절 차에 타기만 하면 뒷자리로 꾸물꾸물 넘어가 어머니에 기대 누운 채 그 조용한 떨림을 만끽하며 한가로이 졸던 나는 부모님이 즐겨 듣던 라디오 <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 >의 시끌벅적한 만담을 자장가로 삼곤 했다. 1984년 출항을 알린 이 장수 프로그램의 시그널은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폴 모리아가 첫 내한을 앞두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경음악으로 편곡한 버전이다. 아직도 그 도입부만 들으면 강석과 김혜영의 힘찬 오프닝 멘트와 함께 여러 광경이 산발적으로 떠오른다. 반쯤 감긴 시야 너머로 핸들을 잡고 계신 아버지의 커다란 뒷모습, 앞유리창에 부딪혀 사방으로 퍼져 나가던 햇살, 그 사이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가로수까지. 원곡의 쓸쓸함이나 편곡의 경쾌함보다 내게는 기분 좋은 포근함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장준환)

MBC 표준FM 이윤석, 신지의 싱글벙글쇼 / 코요태 ‘순정’
인생 절반 이상을 < 싱글벙글쇼 >로 써 내려간 강석과 김혜영, 30년 넘는 세월의 호흡을 단숨에 이어받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전설을 고스란히 따라갈 수는 없는 법. 진행자를 교체해가며 방향을 잡아간 지 10개월이 지난 2021년 3월 뜻밖의 시그널이 울려 퍼졌다. 우렁찬 말 울음소리와 함께 ‘디스코 타임’을 알리는 코요태의 명곡 ‘순정’, 혼성 콤비의 부활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원곡자인 신지와 개그맨 정준하는 시트콤 < 거침없이 하이킥 >에서 이미 연기로 합을 맞춰본 만큼 재치 넘치는 만담으로 점심시간을 달궜고 20여 년 전 인기곡까지 소환하며 청취자층을 폭넓게 끌어안을 수 있었다. 2022년 9월부터 정준하 대신 동료 이윤석이 신지와 함께하고 있는 ‘최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은 여전히 그 시절 그리고 오늘날의 순정을 담아 유쾌한 전파를 날리고 있다. (정다열)

MBC 표준FM 조PD의 비틀즈 라디오 / 루카 콜롬보(Luca Colombo) ‘Blackbird’
< 조PD의 비틀즈 라디오 >와 함께한 새벽 두 시는 불투명한 미래가 주는 압박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심야 라디오가 지닌 포근함이 심적 안정을 제공했고 우상으로 삼았던 비틀스의 음악에 집중할 수 있어 더없이 아늑했다. 매일 밤 리버풀 청년들의 위대한 유산을 소개해준 조정선 디제이는 최고의 명사였으며 방송의 문을 연 폴 매카트니의 걸작 ‘Blackbird’는 잠 못 드는 새벽 네 명의 비틀과 나를 이어준 징검다리가 되었다. 원곡과 달리 찌르레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프로그램 시그널은 이탈리아 기타 명인 루카 콜롬보의 핑거스타일 커버 곡을 사용했다. (김성욱)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 제프 & 마리아 멀더(Geoff & Maria Muldaur) ‘Brazil’
기타 반주가 한쪽 귀를 어루만지며 시작한다. 휘파람과 함께 모든 세션이 합쳐지면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라는 나긋나긋한 오프닝 멘트가 들린다. 기분 좋은 아침을 만드는 음악과 목소리. 테리 길리엄의 영화 < 브라질 >의 삽입곡인 제프 & 마리아 멀더 부부의 ‘Brazil’은 암담한 회색 도시에 내리쬐는 따스한 한 줄기 햇살이 잘 표현된 곡이다. <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 또한 빌딩 숲에 둘러싸인 채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의 편안한 쉼터다. 수더분한 말씨로 사연을 읽어주는 ‘아침창 아저씨’ 김창완과 부드러운 포크 ‘Brazil’의 오랜 동행은 20년 넘게 이어져 지금까지도 순조롭다. (김태훈)

MBC FM4U 4시엔 윤도현입니다 / 윤도현밴드(YB) ‘오늘은’
윤도현의 목소리는 멋지고 입담도 화려하다. 하지만 < 4시엔 윤도현입니다 >를 처음 들었을 때 무엇보다 내가 반긴 건 시그널 송 ‘오늘은’이었다. 11년 전 중학교 시절 처음 듣고 자유분방한 가사에 반한 ‘오늘은’.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나른한 데가 있는 이 노래를 하교 후 해가 지기를 기다리며 4시에 들었는데 11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시간, 우연히 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 4시엔 윤도현입니다 >에서는 노래가 보컬 없이 반주만 나온다. 그래서 열심히 대본을 준비했을 윤도현 디제이와 작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면 오프닝 멘트는 깡그리 무시하고 왕왕대는 기타 연주에 맞춰 그저 이 노래의 벌스(Verse)를 읊조리곤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YB의 곡도 ‘오늘은’이지만 윤도현도 가장 아끼는 곡이 ‘오늘은’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묘한 유대감이 든다. (이홍현)

정리 : 장준환
이미지 편집 : 백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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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럽이 사랑한 Bag & Shoes 전시회 강연 – 팝 역사의 거목들과 그들의 음악스타일

대중문화는 종종 고급문화와 비교되며 천대받곤 한다. 관련 전시회도 상대적으로 적다. 문화 예술 관련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이랜드 뮤지엄의 < 셀럽이 사랑한 Bag & Shoes >는 마이클 잭슨과 마이클 조던 같은 대중문화 기라성의 소장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임진모 음악평론가의 강연< 팝 역사의 거목들과 그들의 음악스타일 >는 < 셀럽이 사랑한 Bag & Shoes >의 대중음악 부문에 깊이를 더했다.

1980년대 대중문화는 두 MJ가 요약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 평론가의 표현대로 마이클 조던은 흑인을 뛰게 했고, 마이클 잭슨은 흑인을 춤추게 했다. 최고의 농구 실력과 카리스마로 GOAT(Greatest Of All Time)가 된 조던은 이름을 딴 브랜드로 파급력을 지속했다. 마이클 잭슨은 전 연령 다인종 팬덤을 이룩했다. 마빈 게이나 스티비 원더도 이루지 못한 성과였다. 두 MJ는 시대를 통합했다.

21세기 미디어는 20세기 명곡에 주목한다. 케이트 부시의 1986년 작 ‘Running up that hill (A deal with god)’은 미드 < 기묘한 이야기 >에 힘입어 빌보드 핫 100 3위를 역주행했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사운드트랙은 아예 7080 팝 명곡을 긁어모았다. 전시회장에도 영화 < 록키 3 > 수록곡인 서바이버의 ‘Eye of the tiger’가 흘렀다. 젊은 세대들에겐 새롭고 기성세대의 향수를 자극했다.

대중음악 노랫말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과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음악 유산인 가스펠과 블루스를 대중음악에 녹인 레이 찰스. 데뷔 앨범 < Ramones >(1976) 로 펑크(Punk) 록의 상징이 된 라몬즈와 클래식과 재즈를 도입한 프로그레시브 록의 대표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손때 묻은 소장품을 만났다. 대중음악의 계보도가 그려지는 굵직한 이름이다.

대중음악은 시대를 읽는 열쇠다. 마빈 게이는 < What’s Going On >(1971)은 베트남전을 논했고 빌리 홀리데이의 ‘Strange fruit’은 인종 차별을 꿰뚫었다. 2000년대 초 라틴 음악의 인기엔 미국의 경제 호황과 히스패닉의 구매력에 연결된다.

핑크 플로이드의 명반 <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를 좋아한다는 이십 대 청년은 “본 전시회를 통해 대중음악의 폭넓은 이해를 고대한다”라고 했다. 프랭크 시나트라와 아레사 프랭클린부터 올해 그래미 최다수상자에 등극한 비욘세와 21세기의 알파걸 레이디 가가를 아우르는 < 셀럽이 사랑한 Bag & Shoes >는 세대 간 교류를 내포했다.

취재: 염동교, 백종권
사진: 백종권
정리: 염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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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 비비안 웨스트우드(1941-2022)

2022년 12월 29일 영국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사망했다. 브랜드의 옷은 가지고 있지 않아도 한 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웨스트우드의 핵심은 반골 기질.이는 펑크(Punk)와도 직결된다. 평범과 온건을 거부한 행보는 ‘영국 패션의 대모’와 ‘펑크 록의 귀부인’이라는 별명을 안겨줬다.

시각 예술가 겸 디자이너이자 섹스 피스톨즈와 뉴욕 돌스를 제작한 펑크 록의 막후세력 말콤 멕라렌(Malcolm Mclaren)과 웨스트우드는 ‘우리는 반항적인 것, 심장이 고동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흥미가 있다’고 외쳤다. 이들이 세운 패션 부티크 < Sex >와 < Seditionaries >는 영국 펑크 씬의 기폭제였다.

< Never Mind The Bollocks .. Here’s The Sex Pistols >(1977) 단 한 장의 음반으로 펑크 아이콘이 된 섹스 피스톨즈는 말콤 비비안 커플의 프로젝트와 같다. 금기시되는 문양의 티셔츠와 거친 질감의 가죽 재킷, 메탈 소재의 과도한 장신구는 톡 쏘는 펑크 로커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심지어 ‘신이시여 여왕과 파시스트 체제를 구하소서’같은 논쟁적 슬로건을 티셔츠에 프린팅했다. 펑크 록과 비비안의 의상은 반항과 파격 이념을 공유했다.

해적에 낭만적 이미지를 씌운 < Pirates > 시리즈를 통해 거친 펑크에서 탈피했다. 화려한 프릴과 펄럭이는 셔츠, 해적 모자로 대표되는 이 시기 의상은 뉴웨이브 아이콘 아담 앤트가 이끈 아담 앤 더 앤츠와 신스팝에 월드비트를 결합했던 밴드 바우 와우 와우(Bow Wow Wow)의 스타일을 제공했다. 18세기와 19세기의 낭만주의에서 착안한 뉴 로맨틱스(New Romantics)도 웨스트우드의 스타일과 직간접적 연관을 맺으며 새로운 문화를 구축했다. 웨스트우드의 디자인은 이후에도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지속했다.

그의 카리스마는 많은 여성에게 영감을 주었다. 영국 펑크 밴드 더 스리츠(The Slits)의 기타리스트 비브 알버틴(Viv Albertine)은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롤 모델로 꼽았다. 여성 예술가들의 영웅 패티 스미스는 웨스트우드 추모 공연을 열었고 프리텐더스의 크리시 하인드와 영블러드 등 세대를 막론한 음악가들이 추모글을 남겼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패션과 음악, 애티튜드를 아울러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뮤지션의 곡들

섹스 피스톨즈 ‘Anarky in the UK’ (1977)
각종 사건과 기행으로 연일 소식지에 이름을 올렸던 섹스 피스톨즈는 후에 포스트 펑크 밴드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를 결성한 조니 로튼(본명 존 라이든)과 저평가된 기타리스트 스티브 존스와 2018년 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에 참여한 베이스 연주자 글렌 매트록, 드러머 폴 쿡으로 구성되었다. 탈퇴한 매트록 대신 가입한 시드 비셔스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펑크 패션을 잘 구현한 인물이다.’God save the queen’과 더불어 글렌 매트록이 작곡한 앨범의 대표곡 ‘Anarky in the uk’는 과격한 가사와 사운드로 아나키즘을 청각화했다. 후에 메가데스가 날카로운 스래시 메탈로 커버하기도 했다.

시드 비셔스 ‘My way'(1979)
특유의 퇴폐미로 펑크 록의 아이콘이 된 시드 비셔스. 게리 올드만 주연의 < 시드와 낸시 >(1986)란 영화가 나올 만큼 시대에 회자한 그는 21세에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조니 로튼, 스티브 존스와 달리 후속 활동이 미미했으나 한 장의 정규 음반 < Sid Sings >(1979)를 남겼다. 라이브 음반의 활기로 가득 찬 < Sid Sings >는 조니 썬더스(Johnny Thunders)의 ‘Born to lose’와 스투지스의 ‘I wanna be your dog’ 등 선배 펑크 로커를 커버했다. 시드 비셔스 버전의 ‘My way’는 제멋대로 가창과 원초적 기타로 시나트라의 고전미를 뒤틀었다. 실력이 아닌 개성으로 대중의 이목을 붙든 사례. 뮤직비디오의 후반부 총격 장면도 충격적이다.

클래시 ‘London calling'(1979)
펑크 록의 반골 기질에 지적인 비판의식을 더한 클래시는 레게와 포스트 펑크로 사운드도 확장했다. 섹스 피스톨즈처럼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나 보컬리스트 조 스트러머(Joe Strummer)가 디자이너의 팬이었으며 다른 멤버들도 비비안의 옷을 즐겨 입었다. 대중음악사의 대표적 더블 앨범이자 펑크 록 명작의 첫 손으로 꼽히는 < London Calling >(1979)은 레게풍의 ‘Rudy can’t fail’과 직선적 ‘Clampdown’ 등 독특한 곡들로 가득 차 있다. 펑크 록의 단순성과 포스트 펑크의 진보성가 공존하는 앨범의 대표곡은 ‘London calling’으로 믹 존스의 기타 음계가 불길함을 조장했다. 배철수는 영국 어느 축구장의 ‘London calling’의 떼창에 전율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 ‘Death disco'(1979)
섹스 피스톨즈의 마지막 순간 ‘무언가 속은 듯한 기분이 들지 않아?’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조니 로튼은 영국 대중음악의 대표적 독설가다. 본명 존 라이든으로 결성한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는 진일보한 포스트 펑크로 섹스 피스톨즈와는 다른 차원의 영향력을 남겼다. 라이든의 얼굴이 담긴 앨범 커버로 기억되는 < Public Image Ltd >(1978)에 이은 소포모어 작 < Metal Box >(1979)는 독특하게도 12인치 엘피 석 장으로 발매되었고 전위적 록 음악이 60분 러닝타임을 채웠다. < Metal Box > 앨범엔 ‘Swan lake’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Death disco’는 덥(Dub)과 펑크(Funk)를 뒤섞은 구성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선율을 뒤틀었다. 라이든의 시니컬한 음색이 반복적인 베이스와 기타 연주를 파고든다.

재팬 ‘Quiet life’ (1979)
뉴 로맨틱스와의 연관관계를 한사코 부인하지만 재팬이 ‘시각적 밴드’임을 부정하긴 어렵다. 비비크림을 잔뜩 바른 듯한 진한 화장의 데이비드 실비안과 인상파 베이시스트 믹 칸(Mick Karn), 후에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포큐파인 트리에 가입하는 리처드 바비에리(Richard Barbieri)는 실력은 기본, 이미지의 중요성도 인지했다. 이들은 1978년부터 1981년까지 짧은 기간 순도 높은 디스코그래피를 이룩했고 < Gentlemen Take Polaroids >(1980)와 < Tin Drum >(1981)같은 수작을 남겼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연상하게 하는 앨범 재킷의 1979년 작 < Quiet Life >는 지적인 아트 팝 사운드로 로버트 프립, 류이치 사카모토와 협업했던 데이비드 실비안의 음악색을 드러냈다. 영국 싱글차트 19에 그친 ‘Quiet life’는 포스트 펑크에서 신스팝 시대로 넘어가는 변곡점을 포착했다.

비세이지 ‘Fade to grey'(1980)
런던의 뉴웨이브 밴드 비세이지는 불어로 ‘얼굴’이란 팀명처럼 시각적이었다. 이름처럼 기이한 프론트퍼슨 스티브 스트레인지(Steve Strange)의 역할이 컸다. 본래 나이트클럽 주인이었던 그는 컬처 클럽의 보이 조지와 쌍벽을 이루는 과한 분장으로 시선을 끌었다. 시각적 존재감에 비해 상업적 측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정규 1집 < Visage >(1980)에 수록된 ‘Fade to grey’는 도입부에 깔린 불어 낭독과 공상과학적 사운드로 아우라를 남겼다. 밴드의 음악적 중심이자 후에 울트라복스를 이끌었던 밋지 유르(Midge Ure)가 솜씨를 발휘했고, 8위에 오르며 비세이지의 유일한 영국 싱글차트 탑 텐 히트곡이 되었다. 현대미술을 연상하게 하는 전위적인 뮤직비디오는 아트록 밴드 10cc 출신 케빈 고들리와 롤 크렘의 작품이다.

아담 앤 더 앤츠 ‘Dog eat dog'(1980)
독특한 해적 의상과 비음 섞인 가창으로 1980년대를 풍미한 아담 앤트는 솔로 경력 이전에 아담 앤더 앤츠의 프론트퍼슨으로 활약했다. 말콤 멕라렌이 제작한 이 밴드는 아프리카 부족의 리듬을 체현한 부룬디 비트(Burundi Beat)로 차별화 되었다. 두 번째 정규 앨범 < Kings Of The Wild Frontier >(1980)는 ‘Antmusic’과 ‘Los lancheros’, ‘Kings of the wild frontier’ 등 톡톡 튀는 곡들로 가득하다. 1980년 영국 싱글차트 4위까지 오른 ‘Dog eat dog’은 크리스 휴즈(Chris Hughes)와 테리 리 마이얼(Terry Lee Miall) 두 드러머의 부룬디 비트가 압권이다. ‘Dog eat dog eat dog eat’를 반복하는 유쾌한 후렴구엔 밴드 간 경쟁 과열을 풍자한 뼈가 들어있다.

말콤 멕라렌 ‘Buffalo gals'(1982)
섹스 피스톨즈와 뉴욕 돌스, 아담 앤트를 키워낸 말콤 멕라렌은 7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한 뮤지션이기도 했다. 록과 댄스, 리듬 앤 블루스를 중구난방으로 헤집은 음악 스타일은 파격을 앞세웠던 정체성과 닮았다. The World’s Most Famous Team이 제공한 힙합과 월드비트를 섞어 기묘한 1집 < Duck Rock >(1983)아트 오브 노이즈의 건반 연주자 앤 더들리와 트래버 혼, 토마스 돌비 등 특급 뮤지션의 참가로 작품성도 높았다. 영국 싱글차트 9위에 오른 ‘Buffalo gals’는 스크래칭과 드럼머신의 전형적인 1980년대 브레이크 댄스를 담았고 에미넴 ‘Without me’에 단서를 제공했다. 영국 싱글차트 3위까지 오른 히트곡 ‘Double dutch’와 더불어 앨범을 상징하는 곡이다.

바우 와우 와우 ‘Do you wanna hold me'(1983)
말콤 멕라렌이 기획한 또 하나의 밴드 바우 와우 와우(Bow W. 아담 앤 더 앤츠의 드러머였던 데이브 바바로사(Dave Barbarossa)의 탐탐 드럼이 구현한 부룬디 비트와 보컬 안나 르벨의 연극적 톤이 획일적 신스팝을 탈피했다. 르벨의 헤어 스타일과 해적 의상으로 시각적 충격파를 쏘았던 그들은 1981년 에두아르 마네의 < 풀밭 위의 점심식사 >를 오마주한 1집 < See Jungle! See Jungle! Go Join Your Gang Yeah, City All Over! Go Ape Crazy! >를 발표했다. 음악성을 압축한 ‘Go wild in the country’가 영국 싱글차트 7위를 기록했고 빌보드 22위까지 올라 미국 시장을 두드린 ‘I want candy’로 상승세를 이어갔으나 2집 < When The Going Gets Tough, The Tough Get Going >(1983)이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수록곡 ‘Do you wanna hold me?’는 탄력적인 리듬과 르벨 특유의 긍정적 기운으로 밴드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스팬다우 발레 ‘True'(1983)
런던 출신 밴드 스팬다우 발레는 화려한 외모와 의상으로 뉴 로맨틱스의 주축이 되었다. < Journey To Glory >(1981)와 < Diamond >(1982)의 준수한 성적 이후 발표한 정규 3집< True >(1983)는 영국 앨범차트 1위와 빌보드 앨범차트 19위를 수확했다. 기타리스트 겸 메인 송라이터 게리 캠프(Gary Kemp)의 소울과 펑크(Funk)에 대한 관심은 관악기의 비중을 높였고 섬세한 소피스티케이티드 팝 사운드와 블루 아이드 소울을 융합했다. 켐프가 작곡한 ‘True’는 영국 싱글차트 1위와 빌보드 핫100 4위를 거둔 스판다우 발레의 대표곡으로 6분 30초의 긴 러닝타임 내내 세련된 분위기를 공급한다. 보컬리스트 토니 해들리(Tony Hadley)의 비단결 보이스도 그 어느때보다 부드럽다.

보이 조지 ‘Sold'(1987)
‘펑크를 비롯해 문화적으로 우리를 이끌었던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기립니다.’ 보이 조지가 트위터에 올린 추모글이다. 중성적 매력을 가장 잘 구현한 팝계의 아이콘 보이 조지는 소울과 펑크(Funk) 성향의 뉴웨이브 밴드 컬처 클럽의 프론트퍼슨으로 ‘Karma chameleon’과 ‘Miss me blind’ 같은 히트곡을 배출했다. 솔로 경력으로는 닐 조던의 영화 < 크라잉 게임 > 삽입곡 ‘The crying game’과 빌보드 넘버원을 기록한 레게 풍 ‘Everything I own’이 사랑받았다. 솔로 데뷔작 < Sold >(1987)의 타이틀 곡 ‘Sold’는 영국 싱글차트 24위에 그쳤으나 비장한 사운드와 역동적인 곡 전개로 솔로 활동의 출사표를 알렸다.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보이 조지는’ 보이 조지와 컬처 클럽’ 명의로 발매한 2018년 작 < Life >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메인 이미지 작업: 백종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