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 < 은밀하게 위대하게 >의 장철수 감독이 약 9년 만에 신작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를 발표했다. 주연은 연우진(신무광) 지안(류수련)과 조성하(사단장). 엄격한 사회주의 시스템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중국 소설가 옌롄커가 쓴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장 감독이 직접 각색했다. 성애(性愛), 저항 등 여러 가지 시선으로 볼 수 있으나 그 중심엔 인간주의가 있다. 소재와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파격적인 만큼 사운드트랙은 과하지 않게 영화를 받치고 있다.
<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의 영화 음악은 극의 맥락에 따른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인물 간의 내밀한 관계에 자리를 내준다. 음악이 흐를 때도 리얼 사운드와 공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도적 미니멀리즘이랄까. 무광과 수련의 첫 만남과 같은 중요한 사건조차 두 사람이 내뿜는 기운에 맡긴 채 음악이 들어서지 않는다. 첫 번째 정사 신에 흐르는 목관악기 위주의 기악곡이 예외에 해당한다.

전자 음향보다는 체온이 느껴지는 오케스트레이션을 활용해 고전적이며 피아노와 현악기에 종종 관악기가 합류한다. 무광의 군 생활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오프닝 시퀀스에서 긴장을 조성하고 그를 바라보는 수련의 관음에 신비감을 부여한다. 이 밖에도 사단장과 무광이 스쳐 갈 때 시곗바늘 소리로 심박을 표현한 듯한 대목이나 쩔꺽대는 현악기로 무광과 수련의 악몽을 청각화한 장면이 돋보인다.

무광과 수련이 사택을 몰래 빠져나와 숲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낼 때 음악은 잠시 이완하며 부드러운 피아노와 현악 세션으로 애틋함을 드리운다. 공유한 악몽을 지나 두 사람이 요리 대결을 펼치고 아침 식사할 때 흐르는 업 템포 피아노 연주에도 희망이 어린다. 전체적으로 서늘한 톤 사이의 몇 안 되는 달콤한 순간이다.

영화 속에서 수련이 직접 부르는 선전 가요 이외엔 목소리가 들어간 노래가 없다. 영화가 배경으로 한 1970년대의 가요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점이 의미심장하다. 무광이 수련의 뱃속 아기를 쓰다듬을 때 영화는 비가(悲歌) 대신 연주곡을 택했다. 감정의 전달 매체가 되는 가요 대신 기악 연주로 사실감을 유지했다.

아름다운 선율의 엔딩 곡은 이내 모든 긴장이 풀린 마지막 시퀀스를 응집한다. 고정된 카메라가 무광의 뒷모습을 잡아 영원한 이별을 암시하지만 흩날리는 눈송이 사이로 흐르는 관현악 선율이 어느 때보다 포근하다. 그 순간 억눌린 서사 속 짧은 로맨스는 불멸의 무언가로 멈추어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