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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핑크(Apink) ‘Horn’ (2022)

평가: 3.5/5

많은 것이 변했다. K팝 아이돌의 징크스라는 마의 7년을 넘기고, 자축해야 할 10주년 기념 음반은 1년 연기 됐다. 발매 약 2달 후에는 손나은이 탈퇴해 인원 구성에도 변동이 생겼다. 활동 전후로 위험은 도사리고 있었지만 음악은 안정과 변화를 동시에 취한다. 3연속으로 대표곡을 맡았던 블랙아이드필승이 ‘덤더럼’, ‘%%(응응)’에 이어 다시 간판을 맡았으며 외국 작가진이 늘었고 트렌디한 힙합 뮤지션(비오, 박재범)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활동 초 ‘Nonono’, ‘Luv’처럼 옅은 뉴 잭 스윙 리듬 위 맑고 청순한 심상을 주무기로 삼았던 이들은 반복 지적되던 1세대 여자 아이돌과의 비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자 음악의 다양한 모습을 입혀왔다. 타이틀곡 ‘Dilemma’ 역시 금관악기 음색의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한 댄스 팝이다. 노래 자체는 축하와 어울리지 않지만 조금은 무겁고 농도 짙은 분위기는 성공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한다.

유닛(보미, 나은, 하영) 곡 ‘Red carpet’의 끌어당기는 후렴, ‘Holy moly’의 오묘한 다중성부, ‘Trip’의 매끄러운 보컬 라인 등 매력은 곳곳에 숨어 있지만, 중반부에 강한 리듬이 몰려 있는 탓에 전체적인 흐름은 뒤로 갈수록 힘을 잃는다. 이런 앨범의 리듬은 핵심인 팬송 ‘작은 별’과 ‘고마워’에서 나온다. 에이핑크의 밝은 이미지가 담긴 전반부와 10주년 팬을 위해 목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한 후반부로 나뉜 개연성을 발휘한다.

위기는 있어도 흔들림은 없다. 풍성한 음악 속에 강한 진심까지 담았으니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다. 11주년에 걸맞게 11곡으로 구성한 < Horn >은 개별 활동에도 열중인 이들을 팀 에이핑크로 결속한다. 앨범은 팬들을 향하지만, 그룹을 하나로 묶는 매듭이자, 새로운 장수돌을 알리는 팡파르로 그 의미를 확장한다. 에이핑크에게 결과적으로 변한 것은 없다.


-수록곡-
1. Dilemma (추천)
2. Holy moly
3. My oh my
4. Nothing
5. Red carpet (추천)
6. Single rider
7. Free & love
8. 그날의 봄 (Just like this)
9. Trip (추천)
10. 작은 별 (Dream)
11. 고마워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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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시티 드림 ‘Glitch Mode’ (2022)

평가: 3/5

사춘기를 겪듯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구성원 무한 확장과 로테이션 체제에서도 고정그룹으로서 안정성을 확보한 타 엔시티 유닛과 달리 성인이 되면 졸업하는 청소년 연합팀은 끊임없는 변화를 거쳤다. 존속을 보장받기까지 격동의 5년 동안 멤버들과 팬덤은 끈끈한 관계를 형성했고 작년 발매한 정규 1집 < 맛 (Hot Sauce) >으로 화려한 새 출발을 선포했다.

이번에는 정체성을 강화하는 단계다. 오랫동안 이들의 중심 서사였던 성장을 이어 가기 위해 아케이드 게임장으로 대표되는 키덜트 문화를 가져왔다. 앨범의 테마를 형성하는 타이틀곡 ‘버퍼링’은 게임에 접속한 듯 내레이션으로 도입부를 이끌고 808 베이스와 반복적인 구호로 좋아하는 상대를 마주해 얼어버린 플레이어의 모습을 담는다.

결점은 ‘맛’의 중독성에 미치지 못하는 훅과 ‘Hello future’로 강화했던 팀 특유의 희망찬 메시지 부재다. 엔시티 드림의 새 방향을 제시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 외에도 넘치는 자신감을 노래하는 ‘Arcade’나 칩튠 사운드로 토요일 밤의 열정을 표현한 ‘Saturday drip’ 등 다른 유닛의 개성과 구분 짓기 어려운 트랙이 포진한 전반부는 앨범의 흡인력을 떨어뜨린다.

게임에서 빠져나와 어린 날을 추억하는 후반부가 그동안 그려온 감수성에 가까이 맞닿아 있다. 펑키(Funky)한 리듬과 레트로 무드의 신시사이저가 넘실거리는 ‘Better than gold’와 어쿠스틱한 ‘미니카’는 지난 추억을 집결한다. 인위적인 장치 대신 자연스러운 회상으로 불러일으킨 향수는 음반이 의도한 키덜트 문화의 핵심을 짚는다.

‘버퍼링’ 상태에 빠졌다. 칠(Chill)한 열정과 풋풋한 감성이 넘치던 < 맛 (Hot Sauce) >의 조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원인은 새로움에 대한 강박이다. 엔시티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 ‘네오(Neo)’가 이들의 정체성까지 집어삼키면서 하위 그룹 간의 음악적 경계가 무너졌다. 7 드림의 구심점은 참신함이 아닌 그 아래 숨어 있는 동심과 희망에 있다.

-수록곡-
1. Fire alarm
2. 버퍼링 (Glitch mode)
3. Arcade
4. 너를 위한 단어 (It’s yours)
5. 잘 자 (Teddy bear)
6. Replay (내일 봐)
7. Saturday drip
8. Better than gold (지금) (추천)
9. 미니카 (Drive) (추천)
10. 북극성 (Never goodbye)
11. Rewind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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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Here We Go’ (2022)

평가: 4.5/5

26년 만에 돌아온 ‘다른 감수성’

K팝 타이틀 아래 눈부신 성공과 신기원 쾌척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우리 대중음악에 여전히 심리적 괴리감을 호소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들은 다른, 새로운 스타일을 고대하지만 ‘천만과 억’의 매몰자본이 기본인 투우장에서 ‘대세’를 무시하기란 어렵다. 대세는 늘 폭압적이다. 이런 개성완박의 소나기를 피해 자신만의 색깔을 도모하는, 이른바 ‘디깅’의 흐름이 수년 전부터 이어진 ‘시티 팝’ 유행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적지 않은 그 소수들은 “이런 음악도 있는데…”는 말을 늘 입에 붙인다.

그들 덕에 오랫동안 수면 아래 있었던 ‘빛과 소금’이 굴착되고 발굴되고 융기되었다. ‘바이닐’ 열풍과 맞물린 그 트렌드는 빛과 소금의 LP가 출시되기만 하면 어김없이 완판의 결과로 이어졌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에게 저 옛날 이렇게 잘 매만진 사운드가 있었나?”하는 경이가 결집해 끝내 빛과 소금을 은둔의 장에서 끌어내 활동의 장으로 불러냈다는 사실이다. 1996년 5집으로 끝난 것 같았던 그들이 다시 신보를 들고 26년 만에 돌아왔다. 반갑다.

장기호의 ‘Blue sky’와 박성식의 ‘오늘까지만’은 그들의 컴백이 결코 이름값이 아님을 실증한다. 선법 작곡에 따른 전자와 모처럼 박성식 본인이 노래한 후자는 과거와 현재 시제의 교배는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 질의에 대한 의욕적 응답이다. 세월의 이끼가 배인 그들만의 아지트 속에서도 지금의 감수성을 응시하고 있음을 축약하는 두 곡 모두 후반부의 연주 하모니는 독자적 미학의 극치를 선사한다. 누가 이런 노래를 만들고 내놓겠는가.

이게 진정 ‘뉴트로’ 아닐까. 실로 시티 팝에 대한 다소 수다스런 관심이 증강해 주조해낸 거대한 성과물이 아닐 수 없다. 본인들도 시티 팝에 신세를 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 붐에 일게 된 재조명 분위기를 인식하고 30주년 기념 신곡을 염두에 두었으니까. 처음에는 서로 한 곡씩 두 곡만을 생각했으나 내친김에 앨범 제작으로 확장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발매가 지체되었지만 이제라도 접하게 되었으니 천만다행이요, 무한희열이다.

핵심은 ‘대세’와 ‘현실’이란 논리에 기초한 외부의 불편한 추궁을 즐겁게 묵살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처음처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쾌한 ‘필라마네’든, 잔잔한 CCM 트랙인 ‘우리 모두에게'(크리스천인 둘은 앨범에 단 한 번도 가스펠 곡 수록을 뺀 적이 없다)든, 컨트리 냄새가 물씬한 ‘사랑의 묘약’이든, 연주곡 ‘비 오는 숲’이든 언제나 그랬듯 지극히 ‘빛과 소금적’이다. 곡마다 치밀한 사고가 꿈틀거리고 정돈된 울림과 세련된 공기가 넘나든다.

그렇다손 쳐도 일각에서는 대중성 부재에 대한 걱정스런 지적을 들이밀 테지만 두 사람의 오랜 지향에 대한 겸손한 고집은 견고하다. 균질적이고 획일화된 것에 대한 불굴의 거부! 앨범에 대한 “기존의 성향 그대로 유지하려 했고 빛과 소금의 음악을 알고 있는 분들에게 오랜만에 바치는 선물이라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장기호의 소감이나 “’음, 역시 빛과 소금이야!’라며 미소 보내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라는 박성식의 말에 그게 깔려있다.

두 사람은 트렌드가 아닌 빛과 소금에 봉사했다. 솔직히 그들이 우리에게 건넨 ‘퓨전재즈’도 애초 비인기종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샴푸의 요정’ ‘아침’ ‘그대 떠난 뒤’로 음악계에 새로운 파도를 불렀다. 음압만 강조하는 듯한 아이돌 팝 댄스, 힙합, 일렉트로니카로 대별되는 지금의 판 속에서 이번 음악도 ‘뉴 웨이브’의 기능을 시범한다. 하지만 ‘희소성’이란 낱말사용은 자제하자. 그것으로 앨범의 의미와 가치를 규정한다면 그건 우리 대중음악이 한두 가지 스타일에 쏠려있는, 병약한 상황인가를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니까.

단지 쉬는데 깔리는 위로의 사운드트랙이 아니다. 단지 쉼표가 필요할 때가 아니라 취향 고양에 따른 음악 섭취의 별채를 원할 때 비로소 앨범의 유용성이 확립된다. 빛과 소금은 음악을 ‘듣는 것’보다 ‘찾아 듣는 것’을 원한다. 실로 어떤 이에게는 ‘경이’일 것이고 누군가에는 ‘경외’일 작품이다. 올해의 앨범이 벌써 정해졌다. 흥행의 압박을 넘어 음악 다양성의 영토구축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두 레전드의 노고를 칭송하는 것에 조금도 주저하고 싶지 않다.

– 수록곡 –
1. Blue sky (English ver.)
2. 오늘까지만 (Feat. 서출구, 최현우)
3. 필라마네(Hey! children!)
4. 우리 모두에게

5. 비오는 숲
6. 사랑의 묘약 (Feat. 장재환)
7. Lost days
8. 우리 모두에게 with fans
9. Blue sky (Korean ver.)
10. Reminisc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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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벨벳(Red Velvet) ‘The ReVe Festival 2022 – Feel My Rhythm'(2022)

평가: 2.5/5

2019년 말 < ‘The ReVe Festival’ Finale >의 성공 이후 자체 이슈로 홍역을 치른 레드벨벳은 지난 해 < Queendom >으로 정면 돌파를 감행한다. 허나 재도약의 발판으로 꺼내든 카드는 팀의 존속 여부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는 데 그칠 뿐 왕관 탈환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독특한 콘셉트와 실험적인 사운드가 결핍된 평범한 왕국은 다채롭게 쌓아 올린 디스코그래피 속 미미한 존재감만을 남겼다.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한번 페스티벌을 개최한 이들은 풍부한 상상력을 안고 과거의 영광을 꿈꾼다. 먼지 쌓인 전원 스위치를 올리자 관객을 반기는 건 EDM 트랩 비트 위로 흐르는 클래식 선율. ‘G 선상의 아리아’를 차용한 ‘Feel my rhythm’은 수백 년 전 명화들을 오마주한 뮤직비디오까지 선보이며 시공간을 넘나든다.

바흐의 원곡 구절을 그대로 가져와 타이틀 곡 전면에 내세운 시도는 상반된 시각을 낳는다. 우선 무난한 작법의 틀 안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분투했음은 분명하다. 동시에 나머지 요소들을 전부 빨아들이는 블랙홀로도 작용한다. 곡을 관통하는 파격 샘플링 앞에 촘촘히 쌓아 올린 하모니는 잠시 이목을 끌다가도 다시금 주도권을 내주고 만다.

축제의 실상은 뜨거운 오뉴월의 정열보다 푸르른 봄의 피크닉에 가깝다. 색소폰 터치가 돋보이는 댄스 팝 넘버 ‘Rainbow halo’는 신록의 계절을, AOR(Adult-oriented rock)풍의 ‘Bamboleo’는 광활한 평원을 그려낸다. 다소 건조하게 다가오는 알앤비 넘버 ‘Beg for me’와 ‘Good, bad, ugly’ 역시 동일한 계절감을 벗어나지 않고 일관성을 갖춘다.

‘In my dreams’는 페스티벌의 대미를 수려하게 장식한다. 음역대의 높낮이를 부드럽게 매만진 목소리의 조화가 공간감을 형성하고 꿈결처럼 포근한 여운을 남긴다. 새롭게 제시한 낯선 세계의 대한 거리감은 고유한 보컬 시너지로 일부 상쇄된다.

레드벨벳은 야심 차게 승부수를 띄웠다. 3년 전 끝맺었던 놀이공원 테마를 다시 끌어오되 서양 고전의 풍경을 바탕 삼아 설계도를 그려 새 방법론과 지속가능성 사이 절충안을 내밀었다. 그럼에도 양날의 검이 되어 개성을 도려낸 접붙이기는 내실보다도 단지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할 근사한 간판에 목적이 있는지 의문점을 남긴다. 카니발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멤버들의 자체 콘텐츠가 주최 측의 부푼 홍보 전략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수록곡-
1. Feel my rhythm
2. Rainbow halo 
3. Beg for me
4. Bamboleo
5. Good, bad, ugly
6. In my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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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세라핌 ‘Fearless'(2022)

평가: 2/5

부유하는 메시지 : 소녀들은 왜 인어공주가 되었나

방탄소년단을 품은 거대 기획사 하이브와 산하 레이블 쏘스뮤직이 함께 만든 걸그룹 르세라핌의 화력이 식지 않고 타오른다. 5월 2일 데뷔 이후 활동 근 한 달 차에 접어든 지금까지 (여러 의미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데뷔 첫날 17만 장의 음반을 팔아 치우며 역대 걸그룹 최대 판매량을 기록하는가 하면 벌써 여러 개의 음악 프로그램 1위를 거머쥐었다.

르세라핌. 즉, 나는 두렵지 않아(IM FEARRLESS)란 글자의 순서를 바꿔 만든 이름만큼 두려운 것 없는 행보다. 거창한 콘셉트와 음반 서사의 확장성을 부여하는 뮤직비디오까지 이들의 앞을 막아설 것이 없는 듯하다. 반면 곡은 의외로 가볍다. 화려하게 사운드를 섞지 않아 단조롭고 정적이다. 타이틀 ‘Fearless’는 자신들을 ‘겁 없는 새로운 b**ch’라 명명하지만 소리를 터트리지 않고 숨을 참는 쪽을 택한다.

‘Blue flame’이나 ‘The great mermaid’도 마찬가지다. 음악적 욕심을 빨간색보다 더 뜨거운 파란 불꽃에 비유한 ‘Blue flame’은 타이틀과 같은 기조를 유지, 앨범에 매끄럽게 녹아든다. ‘하날 위해선 하날 포기하’지 않고 모든 걸 다 갖겠다고 말하는 ‘The great mermaid’도 그렇다. 앞선 B**ch(나쁜 여자)에서 인어공주로 비유 대상만 바꾸었을 뿐 전체의 톤과 메시지는 같다. 다국어로 비장하게 시작하는 첫 곡 ‘The world is my oyster’부터 일관된 논조로 ‘주체성’에서 시작된 ‘차별점’을 내세운다. 하지만,

‘예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 애들과 난 달라 달라 달라’라고 말하는 있지(ITZY).
‘또 이 어려운 걸 해내지 / 우린 예쁘장한 savage’라고 외치는 블랙핑크.

등의 연장선상에 선 르세라핌이 꺼낸 ‘두렵지 않다’는 주체성 전략은 그다지 차별적이지 않다. 오히려 이제 유행을 넘어 장르가 된 ‘걸 크러시’를 마케팅 전략으로 선택한 것이 또렷이 보인다. 이들의 ‘피어리스’엔 빈틈이 크다. 카메라를 노려보다가도 끝 곡 ‘Sour grapes’에선 ‘눈물 나게 시큼한 게 사랑이면 맛보고 싶지 않다’ 말하는 ‘소녀’로 변모한다. 그룹의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손 쳐도 이러한 콘셉트는 여전히 석연찮다.

새로운 차원에 들어오듯 SF적인 첫 곡이 지닌 탈시대성, 과도한 콘셉트가 만든 이미지의 과잉, 이를 통해 실제 주체인 소녀들의 주변화까지. 걸 크러쉬에서 비롯된 주체성이라는 가면을 씀으로써 직접 성애의 대상이 되고, 현실과 동떨어진 콘셉트의 비현실성을 끌어와 실제와 선을 긋는 것마저 전형적이다. 소녀인 듯, 소녀 아닌, 소녀 같은 그룹이 됨으로써 이들이 은근하게 드러낸 살색은(혹은 이를 바라보는 것은) 정당성을 부여 받는다.

테니스복에 하이힐을 신은 의상과 엎드려 몸을 흔드는 뮤직비디오 속 장면 등 그룹의 지금엔 문제가 많다. 한 끗 차이로 색을 달리하는 숭배와 혐오 사이 대상을 주체로 인식하지 않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르세라핌이다. 두려울 게 없다고 드높이는 이들이 완벽한 곡 소화력을 선보일지라도 그 핵심은 지나치게 흐리다. 껍데기만 남은 메시지. 인어공주 등의 비유로 어벌쩡 시도한 대상화하기가 커다란 구멍을 낸다. 자꾸만 그룹 너머 ‘기획’사가 호도한 의도를 생각하게 된다.

-수록곡 –
1.The world is my oyster’
2.Fearless
3.Blue flame
4.The great mermaid
5.Sour grap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