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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IZM X 부평구문화재단] #6 리듬파워

오래 음악을 하려면 2막을 열어서 치고 올라가야한다.

웹진 이즘(IZM)이 인천 부평구 문화재단과 함께 하는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비와이, 홍이삭, 김구라와 아들 그리, 백영규, 박기영 등이 자리해 그들만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여섯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은 자·타칭 ‘인천의 아들’ 리듬파워다.

안주하지 않는 자세와 자신감. 그리고 무엇보다 끈끈한 우애가 돋보였다. ·고등학교 시절에 만나 힙합이란 꿈을 함께 좇은 리듬파워의 시작은 탄탄대로였다. 처음 쓴 자작곡으로 굵직한 오디션을 한 번에 통과하는가 하면 200:1의 경쟁률을 뚫고 다이나믹 듀오가 수장으로 있던 < 아메바 컬쳐 >에 들어갔다. 이후 이들이 세상에 확실한 카운터펀치를 날리기까지 자그마치 7년의 시간이 걸렸다. 특유의 재치 있는 가사와 에너지를 쏟아냈지만 대중의 너른 관심을 받기는 쉽지 않았다. 29. 멤버 보이비의 입대까지 겹치며 리듬파워는 정체기를 마주한다.

3년에 걸쳐 매회 출연한 < 쇼미더머니 >는 멤버 행주의 말에 따르면 애초 퇴로가 없는 ‘유일한 선택’이지만 결국은 회심의 일격이 됐다. “우린 놀러 나간 게 아니었다. 이거 아니면 안 될 만큼 날이 서 있었고 그만큼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어느덧 데뷔 10년 차. 얼마 전 오랜 시간 함께한 < 아메바 컬쳐 >를 나와 < 팀플레이 뮤직 >을 직접 설립한 그들에게 지난날의 소회 그리고 앞으로 밟아가야 할 길을 물었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막 2막을 연 리듬파워와의 인터뷰를 공개한다.

얼마 전 10년간 함께한 소속사 ‘아메바 컬쳐’에서 독립했다.
행주 : 설렘 반, 아쉬움 반이다. 소속사를 나오면서 멤버들끼리 ‘팀플레이 뮤직’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옛날에는 먼 얘기라고만 생각했던 목표가 눈 앞에 펼쳐지니 설레는 마음이 들더라. 반면, 아메바 컬쳐에서 10년, 무려 10년간 있으며 쌓인 어마어마한 정 때문에 아쉬움도 컸다.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마음이 좀 이상했다.

회사 설립은 오래전부터 꿈꿨던 건가?
보이비 :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는 어릴 때부터 친구다. 우리들끼리 뭔가 해보는 것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스텝 중 하나가 회사였다. 장기적인 커리어를 봤을 때 계속해서 형들(아메바 컬쳐의 설립자이기도 한 다이나믹 듀오)과 함께하는 게 좋을까 자립하는 게 좋을까 하는 고민을 계속해왔다. 그러다 작년 이맘때 쯤 의견을 확실히 모았고.

팀플레이 뮤직에서의 활동은 아무래도 과거와는 다를 것 같다.
지구인 : 아메바 컬쳐에 있을 때는 회사의 규모도 크고 색이 뚜렷하다 보니 즉각적인 아이디어 실현에 제약이 있었다. 우리끼리 해보려한 이유들 중 아이디어를 흐름대로 속도 있게 가져가 보자 하는 것도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행주 : 대중들 입장에서는 ‘쟤네가 왜 나왔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럴 때 그냥 우리 곡을 들려주고 싶다. ‘아 이런 음악을 하고 싶어서 나왔구나’ 알 수 있을 거다. (웃음)

음악 스타일의 변화라고 볼 수도 있는 건가?
보이비 : 따지고 보면 예전에도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긴 했다. 그럼에도 어떤 대중적인 노선이 고려됐었다면 이제는 상황이 달려졌지 않나. 우리도 이제 막 시작해서 예측에 머물긴 하지만 곡 단위의 양극화가 심해질 것 같다. 어떤 곡은 엄청 대중적이고 또 어떤 곡은 엄첨 비대중적이고. 중간노선은 잘 안 걸을 것 같다.

행주 : 때마침 오늘 ‘팀플레이 뮤직’의 첫 싱글들이 발매된다. ‘Anycall’과 ‘T3AMPLAY’. 우리의 첫 출사표이자 자영업자의 포부를 담았다. 우선은 이 곡들을 즐겨 달라. (웃음)

싱글에 대한 소개를 조금 더 해준다면?
보이비 : ‘T3AMPLAY’는 회사 이름과 동명이다. 대찬 포부를 선전포고하는 느낌? 이 곡이 미래를 상징한다면 ‘Anycall’은 과거다. 10대 후반부터 20대에 겪은 것들이 한 사람의 취향에 많은 부분 영향 미친다. 그 시절이 우리에게는 넵튠스(The Neptunes)다. 항상 넵튠스의 클럽튠이 가슴 속에 남아있었고 어느 날 문득 아 이 스타일은 아직 아무도 안 했지 싶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사운드에 더 중점을 둬 작업했다.

어느덧 데뷔 10년 차다. 각자가 기억하는 상징적인 장면들이 있을 것 같은데.
지구인 : 처음 공연했던 2008년. 우리끼리 그냥 인천 술집에서 언젠가 공연해보자는 말만 하다가 처음으로 UMF(Underground Microphon Federation) 오디션에 나갔다. 팔로알토, 피타입, 슈프림팀 등이 거쳐 간 나름 큰 공연 브랜드다. 23살쯤이었는데 긴장해서 어떻게 무대를 끝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웃음) 홍대의 수 노래방 쪽을 걸어가다 합격 소식을 들었는데 너무 기뻤다. 돈이나 명예는 지금 훨씬 많이 가졌지만 ‘기쁨’의 크기는 그때가 제일 컸던 것 같다.

행주 : 곡을 만든 것도 처음이었고 셋이 합을 맞춰서 무대에 선 것도 처음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경으로, 젊음의 패기로 무작정 공연했다.

보이비 : 데모 파일명을 그대로 노래 제목으로 썼다. ‘빅바운스’. 내 첫 소절은 ‘Make it rain(돈을 뿌리다)’ 였다. (일동 웃음)

행주 : 난 아메바 컬쳐와 첫 도장 찍었을 때다. 그전까지는 그저 방구석에서 곡 만들고 이유 없는 자신감만 있었다. 그때 회사 오디션 경쟁률이 200:1 정도라고 들었다. 그냥 무작정 부딪혔고 바로 뽑혔다. 솔직히 왠지 모르게 될 것 같은 마음이 들긴 했다. (웃음) 다이나믹 듀오 형들은 힙합 신에서 최고의 우상 같은 존재인데 그 사람들이랑 계약하는 게 정말 꿈만 같았다. 홍대 멀티샵에 가서 각자 티 하나, 모자 하나씩 사고 부모님한테 돈을 보내드렸다. 만화의 한순간이지 않나.

높은 경쟁률을 뚫을 수 있던 이유가 뭘까?
지구인 : 형들이 군대에서 국군 방송 라디오를 진행했다. 당시 우리는 EP 하나를 내고 언더그라운드에서 슬슬 이름이 알려질 때였는데 형들이 우리를 게스트로 초대했다. 목이 터져라 라이브를 했다. 그때 좋은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보이비가 꼽는 변곡점은?
보이비 : 군 입대. 솔직히 기존에 냈던 EP 두 장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는데 음악적인 성과도 미비하지 대학 졸업도 못 했지 나이는 29이지. 팀을 그만두거나 해체할 것도 아닌 상황에서 한 명이 군대를 가야 하는 거니까 여러모로 각성이 많이 됐다.

행주 : 보이비가 군대를 갔을 때 처음으로 < 쇼미더머니 > 출연을 생각했다. 절실함을 넘어서서 다 이길 거라는 자신감이 컸는데 그걸 나도 그렇고 보이비도 그렇고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그 계기 및 발판이 보이비의 입대다.

지구인 : 친구 관계는 계속 가겠지만 어쩌면 리듬파워를 못 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보이비 군대 들어갈 때 셋이서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다. < 쇼미더머니 >로 변화를 좀 만들어보자 했는데 결론적으로 좋은 한방이었다.

< 쇼미더머니 >가 리듬파워 성장에 큰 활력을 줬다.
보이비 : 군 제대 하고 나는 바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뒤도 보지 않고 올라갈 길만 남았다 그렇게 믿고 했다.

행주 : 개개인으로 봐도 팀으로도 봐도 < 쇼미더머니 > 출연은 당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래퍼들이 ‘놀러 나왔다’ 이렇게 인터뷰를 종종 했는데 우리는 아니었다. 그런 거와는 달랐다. 이거 아니면 안 될 만큼 날이 서 있었고 그만큼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구인 : 쿨한 척 하고 싶지 않았고 매 방송에 진지하게 임했다. 방송을 통해서 대외적으로 봤을 때도 래퍼를 내 직업으로 삼을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행사를 가면 불특정한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었다면 이제는 아니다. 어딜 가든 우리를 아는 사람들 앞에 선다. < 쇼미더머니 >가 확실히 우리 성장에 가속도를 붙여줬다.

리듬파워에게 인천은 각별하다. 그들 스스로 몇몇 인터뷰에서 ‘인천의 아들’이라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고 실제로 2년 간 인천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특히나 그들은 한국 힙합에서 그간 지양되어 온 지역 색을 음악에 반영하는 이른바, ‘샤라웃(Shout out)’을 국내에 거의 처음으로 선도했다. 고등학교 시절 자주 가던 떡볶이 집을 회상하는 ‘바보언덕’, 동성로에서의 일탈을 그리는 ‘동성로’, ‘인천 출신은 인천공항으로 가는 중’ 노래하며 래퍼로서의 자부심을 다지는 ‘인천공항’ 등에서 그들의 각별한 고향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행주와 지구인은 중학교, 보이비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걸로 안다. 어렸을 때부터 다 같이 힙합을 들었던 건가?
지구인 : 중학교 때 서태지에 엄청 빠져있었다. 서태지가 랩 메탈을 우리나라에 가져오지 않았나. 그 노래들을 듣고 충격 아닌 충격을 받고 이후 림프 비즈킷, 린킨 파크의 음악을 밤새 팠다. 그러다 고2때 린킨 파크가 내한을 왔는데 힙합을 좋아하던 보이비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 거기에 행주까지 합류하게 됐고.

행주 : 힙합의 매력에 빠지게 된 건 거의 전부 이 친구들의 영향이다. 나는 그냥 음악을 듣고 부르기 좋아하던 학생이었다. 남들이 쭈뼛쭈뼛할 때 제일 먼저 손들고 앞에 나가서 소리 내고 뽐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우리 때는 힙합이 제일 비주류였는데 옆에 힙합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런 상황들이 나서길 좋아하는 나와 자연스레 맞아떨어졌다.

지구인 : 20살이 돼서는 행주가 학교를 빠지고 내가 있던 신촌으로 넘어오면 다 같이 향뮤직에 출근하다시피 갔다. 한두 시간 동안 거기서 음악 듣고 고르고 고른 CD 한두 장 사서 인천에 오고 그랬다. 인천이 방이 되게 싸다. 연습실이 없으니까 한 명이 CDP를 들고 오고 인천에 방 하나 잡아서 랩하고 가사 쓰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평생 이렇게 살면 진짜 좋지 않을까 얘기도 자주 나눴다. (웃음)

가사나 뮤직비디오에 인천이 자주 등장한다.
보이비 : 어린 시절 우리가 듣고 자란 힙합은 늘 자기의 지역색을 반영했다. 자기가 살아온 곳을 샤라웃하는 거다. 래퍼들이 자수성가해서 자기 지역을 대표하는 게 자연스러운 특성이었다면 우리나라는 그런 게 없었다. 그걸 거의 우리가 처음 했을 거다.

행주 : 2010년에 EP < 리듬파워 >를 냈다. 거기 보면 ‘인천상륙 작전’이라는 곡이 있는데 그걸 쓸 때쯤 아 우리나라 래퍼들은 자기 지역 얘기를 잘 안 하네 깨달았다. 힙합하면 홍대로 가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고 자연스레 씬들도 홍대에 집결돼 있었다. 우리가 먼저 아이덴티티를 꺼내야겠다는 본능이 있었다.

리듬파워에게 인천이란?
지구인 : 요즘은 힙합씬에서 자기 출신을 밝히는 게 많아졌다. 창모도 그렇고 제이통도 그렇고. 동료 뮤지션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우리의 샤라웃에 영향 많이 받았다고 말할 때 자부심이 든다. ‘바보언덕’, ‘인천공항’, ‘동성로’ 등 인천에 관한 곡들도 많다. 물론 우리의 정체성이 인천에만 얽매여서는 안 되겠지만 큰 음악적 영감이 된 건 확실하다.

행주 : 사실 한국에서 음악에 지역 색을 나타낼 수 있는 곳으로 부산을 종종 떠올리는데 인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뱃사공이나 슬리피도 다 인천 출신이다. 2017년부터 2년간 리듬파워가 인천 홍보대사를 했다. 이거 한다고 해서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엄청 큰 뿌듯함을 느낀다. 현실적으로 보면 누군가에게 혹은 인천에게 멋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홍보대사를 맡긴 게 아닌가. 10년 뒤에도 인천 홍보대사가 될 수 있도록 우리만의 커리어를 밀고 나가고 싶다.

10년 활동을 되돌아본다면 지금 위치에 만족하는 편인가?
보이비 : 전혀 아니다. 아직도 올라갈 곳이 엄청 많이 남았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쉬고 있지만 불과 재작년만 해도 나쁘지 않았다. 재정적인 여유도 있고 삶에 안정감도 있었다. 그런데 스스로 거기서 나왔다. 조금 더 바깥세상에 발 디딤으로써 시쳇말로 올라가거나 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로 가보자 했다. 전 회사에 계속 남았다면 안정적으로 오래 머물 수 있었겠지만 그 이상으로 올라가진 못했을 거다.

지구인 : 돌이켜보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건 환경의 변화가 컸다. 늘 어떤 공간에 우리를 밀어 넣었다. 큰 성공을 하면서 말년병장의 나태함이나 매너리즘에 빠지기 딱 좋을 시기였는데 이게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오래 음악을 하려면 2막을 열어서 치고 올라가야 한다. 또 보니까 딱딱 계획 세운 대로 따라가지는 않지만 얼추 생각한 대로 흘러갔다. 더 높은 정점을 꿈꾸고 있으니 자신감을 갖고 일단 해보려 한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지구인 : 우리가 떼창을 진짜 잘 뽑아낸다. 그걸 보여줄 수 있게 올림픽 체조경기장을 꽉 채운 단독 콘서트를 열고 싶다. 아님 DJ DOC 형들이나 싸이 형이 한 것처럼 풀 파티도 해보고 싶고.

보이비 : (왜 풀 파티냐고 묻자) 그 시대에서 제일 신나는 음악을 하는 팀이 되고 싶다. 에픽하이, 다이나믹 듀오도 풀 파티를 했었다. 베이스는 힙합이지만 여기 가면 제일 신나게 놀 수 있는 파티 넘버원 콘서트. 우리가 서로 좋아하는 음악 장르는 좀 다르지만 합쳐지면 터지는 어떤 시너지가 있다. 유쾌하고 강한 에너지라고나 할까. 그걸 한껏 보여주고 싶다. (웃음)

각자의 베스트 음반도 궁금하다.
행주 : 팔로알토 형의 언더그라운드 시절 앨범들을 다 좋아한다. 처음으로 돈 주고 산 외국 앨범은 에미넴의 < Curtain Call >. 그의 히트곡만 모아 놓은 음반이다. 래퍼로서 색을 잡게 도움 준 뮤지션은 푸샤 T고 또 요즘은 윤종신 선배님의 행보를 롤 모델 삼고 있다.

보이비 : 2003년에 MBC < 음악캠프 >에서 렉시의 ‘Let me dance’ 무대를 봤다. 그때 테디(Teddy)가 피처링이었는데 그 모습에 홀딱 반했다. 톤이며 랩이며 퍼포먼스며 다 그냥 아주 끝내줬다. 또 꼽자면 대학교 때 힙합 동아리 방에서 나스(Nas) 곡에 피처링으로 등장하는 루다크리스를 우연히 보고 그의 플로우 디자인과 발성을 따라 하다 목이 맨날 쉬기도 했다. (웃음) 인간적 매력이나 가사 쓰는 스타일에는 제이 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구인 :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 떠오르는 대로 말해보자면 린킨 파크 1집 < Hybrid Theory >, 림프 비즈킷 2집 < Significant Other >가 있고. 백스트리트 보이즈, 엔 싱크, 웨스트 라이프도 되게 좋아했다. 맥스 마틴 특유의 그 팝스러운 곡들이 취향에 맞았다. 힙합은 다이나믹 듀오의 < Taxi Driver >, 제이 지의 < The Black Album >, < The Blueprint >…. 여기 까지만 할까요? (일동 웃음)

인터뷰 : 임진모, 박수진, 임동엽, 조지현, 장준환
정리 : 임진모
사진 : 임동엽
기획 : 부평구문화재단 문화도시추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