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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IZM이즘x문화도시 부평] #8 쿠마파크

“쿠마파크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장르가 아닌 이미지나 그림으로 그려졌으면 좋겠다”

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 부평과 함께 하는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비와이, 홍이삭, 김구라와 아들 그리, 백영규, 박기영, 리듬파워 등이 자리해 그들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여덟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은 실험적인 재즈 힙합 밴드 쿠마파크다.

이들을 장르라는 단어로 국한할 수 있을까. 재즈와 힙합을 오가는 쿠마파크(Kumapark)는 색소포니스트 한승민(LAZYKUMA)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6인조 밴드로, 2013년 셀프 타이틀 정규 앨범과 2017년 < NEW TYPE > EP 등 흥미로운 작업물을 발표하며 재즈를 기반으로 구축한 단단하고도 오묘한 크로스오버를 선보였다. 여러 악기를 이용해 힙합, 소울, 디스코와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요소를 가미한 그들의 복합적인 음악은 타 아티스트들 가운데서도 단연 독보적인 색채를 갖고 있었다.

쿠마파크는 본인의 음악을 떠올릴 때 하나의 장르보다는 하나의 이미지로 그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어느 한 곳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이 한국에서 보기 힘든 색다른 ‘멋’과 화려한 라인업에서 우러나오는 듣는 ‘맛’을 낳은 셈이다. 러브존스 레코드의 수장이자 재즈 힙합의 개척자, 쿠마파크를 만나 그의 음악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에 10월 공개 예정인 김트리오의 ‘연안부두’ 녹음에 참여했다. 작업 과정에서 중점에 둔 부분이 있다면.
아무래도 우리가 재즈와 힙합, 일렉트로닉을 하는 밴드다 보니 사운드가 어쿠스틱한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흔히 말하는 트로트의 ‘뽕끼’를 좀 덜어내고 멜로디에서 진하게 느껴지는 한국적인 정서를 어떻게 하면 우리 음악에 녹여낼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 밴드의 색을 칠하는 과정에서 이질감이 생길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

색소폰뿐만 아니라 전자음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특히 신시사이저 피아노가 인상적이다.
색소폰이 멜로디 한 부분을 연주하면 다음 파트를 건반이 받는 식으로, 멜로디를 주고받도록 만들었다. 색소폰이 연주를 혼자 다 하게 되면 경음악 느낌이 강해질 것 같으니 이를 벗어나기 위해 최대한 장치를 심어 놓았다.

원곡에 비애나 그리움의 무드가 있다면, 쿠마파크 버전의 ‘연안부두’는 낭만적인 밤바다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유명한 노래다 보니 작업에 있어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그래서 더더욱 틀어서 가기로 한 것 같다. 원곡이 안 떠오를 정도로 최대한 다르게 가고 싶었다. 작업하면서 이렇게까지 마음대로 바꿔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다행히 부평 측에서 온전히 저희에게 일임한 덕에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인천-부평에 대해서 남는 기억이나 추억들이 있다면.
작년 10월 부평에서 열린 ‘뮤직게더링 2019’에 참가한 적이 있다. 솔직히 섭외가 들어오고 무대 직전까지도 인천이나 부평이 문화적인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는 사실을 그저 막연하게만 느끼고 있었는데, 막상 올라가고 보니 그 거대한 규모에 그때 부평이 뭔가 풀어나가려 하고 있구나 하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처음 작업 제안을 받으셨을 때 프로젝트에 대한 인상이 어땠는지.
엄청 좋았다, 참신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공공 단체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문화에 대한 투자가 아닌가. 우리나라의 문화 투자는 국악이나 클래식이나 다르게 특히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에게는 잘 이뤄지지 않는 편인데, 이런 좋은 기회를 제안해준 것 자체가 언더그라운드와 상생하려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되게 재밌는 경험이었다. 급하게 연락이 온 것만 빼면. (웃음)

지자체나 문화재단 등에서 음악계를 지원하는 사업들이 많다. 이런 움직임들에 대해서 의견이 혹시 있다면.
이게 소문이 잘 퍼져서 기존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도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은데 조금 편향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일을 관장하시는 분들이 직접적인 관계자를 고용해야 이 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실 텐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다소 엉뚱하게 흘러가는 경우가 좀 있는 것 같다. 아티스트와 지자체를 중간에서 연결하는 역할이 있다면 좀 더 많은 뮤지션에게 기회가 가지 않을까.

2013년 정규 앨범과 2017년 EP 이후로 공백 기간이 꽤 길다.
일단 멤버들이 이 밴드만 하는게 아니고, 다들 바쁘게 세션맨으로 활동하다 보니 한번 만나기도 힘들다. 작업은 거의 저랑 키보드 치는 친구가 곡을 같이 만들고 파일을 보내면 각자 집에서 받는 방식인데, 이게 빨리 될 수도 있는 방식이지만 오래 걸릴 수도 있는 방식이다. 기간이 길어지게 되면 곡이 지겨워져서 버리기도 하고, 중간중간 지향점이 조금씩 변경되기도 하고. 물론 시간이 좀 걸려도 작업은 계속 해오고 있다.

오래 기다린 팬들에게 요즘 근황을 간략하게 말해주신다면.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모든 게 올스톱 됐다. 원래 클럽에서 연주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모든 게 멈춘 데다 떨어져 있어야 하는 상태다.

그 말에 동감이다.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취소된 프로젝트가 많았을 텐데.
최근 코로나가 좀 잠잠해졌을 때 광진구 문화센터 쪽에서 ‘퇴근하는 직장인들을 위한 라이브 셋’이라는 야외 공연의 제안이 왔다. 선우정아를 포함한 몇 팀이 공연하기로 했는데, 이 것도 지금은 바로 취소가 됐다. 페스티벌도 마찬가지다.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의 경우 코로나 사태를 대비해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혹시 온라인 공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하게 말해서 재미없다. 합주실에서 우리끼리 연습하는 거랑 다를 게 없지 않나. 원래 라이브는 좀 틀리고 부정확하더라도 분위기나 무드에 맞춰가며 와일드 하게 연주하는 맛이 있는데, 아무래도 관중의 반응이 없으니 좀처럼 흥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연습하듯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쿠마파크의 음악은 미국 힙합 프로듀서에 대한 존경이 작품에 반영되는 것 같다. 힙합 마니아들에게는 힙합 쪽으로, 또 재즈 팬들에게는 또 재즈 쪽으로 각인되는 것 같다.
우리가 참 애매한 위치에 있는 것이, 재즈 페스티벌에서는 힙합으로 보기도 하고 반대로 힙합 페스티벌에서는 재즈 밴드로 보는 경우가 있다. 첫 작품은 따로 정의한 건 없었는데 로버트 글래스퍼(Robert Glasper) 스타일의 재즈가 많이 들어간 힙합 음악을 연주하고 싶었고, 두 번째 EP는 재즈 요소를 많이 뺀 인스트루멘탈 힙합 음악을 해보고 싶었다. 게다가 이번 부평문화단체 LP에서 수록되는 음원은 좀 더 일렉트로닉한 느낌이다. 요즘에는 일렉트로닉한 성향의 신시사이저를 많이 활용한 음악을 듣고 있는데, 아무래도 제가 리더다 보니 최근 듣는 음악에 따라 스타일이 오가는 편이다.

그렇다면 최근 즐겨 듣는 아티스트는.
플로팅 포인츠(Floating Points)와 톰 요크(Thom Yorke) 솔로 앨범. 약간 미니멀한 쪽의 신시사이저가 들어간 그런 일렉트로니카를 자주 듣는다. 다음 차기작에 접목해볼까도 생각 중인데, 아무래도 밴드 성향이 흑인음악 쪽이다 보니 어떻게 ‘조합’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본인은 밴드가 재즈와 힙합 사이에 애매한 위치에 있다고 표현했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하이브리드의 개념이 아닐까.
그랬다면 정말 좋겠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인스트루멘탈 힙합 밴드에 대해 낯설어 하는 감이 있다. MC가 없고 비트만 있는 힙합은 인기가 조금 없지 않나 싶다.

러브존스 레코드(Luv Jones Records)라는 레이블을 독립적으로 설립해 활동 중이다.
어릴 때는 음악을 좋아하는 팬 입장에서 레이블이나 크루 같이 음악을 직접 하지 않아도 음악 관련 일을 하면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점차 그 쪽 관련 지인도 만나게 되면서 하기로 마음을 먹고, 에반스 사장님과 함께 만든 것이 러브존스 레코드의 시작이었다. 도중에 사장님이 다른 일로 옮기게 되면서 우리끼리 남아 해보겠다 말씀드렸다.

레퍼런스로 둔 곳이 있다면.
레이블보다는 오케이 플레이어(Okayplayer) 같은 단체를 만들고 싶었다. 흑인음악을 기반으로 한 밴드나 네오 소울 같이, 요즘 유행하는 힙합보다는 우리가 좋아하는 시대의 힙합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큰 움직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2010년대 말, 힙합 신에서 커뮤니티의 개념이 많이 나오기도 했는데 확실히 선조격인 느낌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쿠마파크는 게스트 협업을 굉장히 많이 한 케이스기도 하다. 기억에 남는 협업이나 아티스트가 있는지.
누구 하나 기억에 안 남는 사람은 없는데, 처음 같이 작업하기도 했고 제일 접점도 많았던 팔로알토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다른 분들은 발매 공연까지만 같이 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팔로알토는 저희 첫 앨범부터 EP까지 같이 한데다 케미도 잘 맞는 편이라 그 친구 곡을 저희가 연주하기도 하고, 하이라이트 공연에는 아예 저희가 게스트 밴드로도 참여도 했었다.

팔로알토 뿐만 아니라 김아일, 가리온, 소울다이브, 지투, 저스디스 등과 함께 작업했고, 크러시와는 ‘밥맛이야’에서 호흡을 맞췄다. 확실히 힙합으로 단정짓기 어려울 정도로 스펙트럼이 넓다.
앨범 내에도 보컬과 연주 트랙이 나뉘어질 만큼 어느 하나에 주력하기보다 개개인에게 분산되는 팀이라 협업에 있어 수월한 면이 있지 않나 싶다.

작년까지의 활발한 활동에 비해 올해는 레이블 단위 활동은 줄어든 모습이다.
원래 소속 아티스트가 많이 있었는데 수민처럼 다른 곳으로 가거나, 군대나 시집을 가는 식으로 전부 흩어지는 바람에 지금 레이블에 있는 실질적인 아티스트는 쿠마파크 뿐이다. 앨범을 내고 그 후에 다시 레이블을 움직일 생각이다. 코로나 때문에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밴드는 서로 의견이 엇갈리거나 여러 이유에서 깨지는 경우가 많은데, 쿠마파크는 2017년 활동 멤버 그대로 팀이 유지가 잘 되는 편이다. 팀워크에 따로 비결이 있는지.
오히려 맨날 붙어 있으면 싸우게 되는데, 오랜만에 한 번씩 보고 하니까 팀이 안 깨진다. (웃음) 사실 말도 안되는 밴드인게 보컬(김혜미)은 지금 재즈만 하고 있고, 베이스(구본암)는 세션맨이지만 자기 음악을 따로 하는 친구다. 건반(황득경)은 싱어송라이팅을 하는 데다, 드럼(김영진)은 지금 ‘윤석철 트리오’에서 활동 중인데, 재즈 신의 제일 바쁜 드러머임에도 불구하고 여기 와서는 힙합을 하고 있다.

물론 밴드를 만들 당시 재즈를 좀 할 줄 아는 사람들이 힙합음악을 연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일부러 이런 식으로 만든 거지만, 아무래도 그런 면에서 다른 팀들하고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고 또 거기서 오는 시너지가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너무 내 욕심으로 끌고 가는 게 아닌지 고민도 했지만, 근데 또 다들 흑인음악에 대한 애정이 전반에 깔려 있기에 유지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쿠마파크는 팀이기도 하지만 브랜드이기도 한데, 어떤 음악을 하는지 간략하게 설명해준다면.
우리는 일단 재즈 밴드다. 힙합도 하지만 재즈를 기반으로 한 다른 장르를 그때 그때 가지고 와서 변용을 한다. 물론 흑인 음악에 베이스를 두고 있지만, 여러 재밌는 시도를 많이 하려고 하는 편이다. 얼마 전에는 국악인들과 함께 협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다. 그 때 생황이라는 악기를 처음 봤는데, 소리가 너무 좋아서 이 악기로 작업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궁극적으로 쿠마파크를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했으면 하나.
쿠마파크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장르가 아닌 이미지나 그림으로 그려졌으면 좋겠다. 잘 모르겠는데 얘네 음악은 이런 ‘느낌’이더라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음악에는 어떻게 빠지게 됐는지 궁금하다.
원래 음악을 하기 전에 힙합 리스너였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라디오에서 주말에는 빌보드 차트 1위부터 10위까지 곡을 틀어주는 날이 있었는데, 그 때 맨 위에 차트들이 힙합이었던 적이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구하기 힘든 음반이었기에 미국에 사시는 어머니 친구분께 부탁드려 닥터 드레와 투팍, 스눕독 같은 유명한 아티스트의 앨범을 소포로 받아 듣곤 했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음악을 찾아 듣게 된 계기가 되었다.

재즈를 좋아하게 된 계기도 그렇다. 서울대입구 쪽 제가 자주 다니던 사계 레코드라고 아트록을 전문으로 다루는 곳 이였는데, 가게에 들어가면 청바지 쫙 달라붙고 느끼하게 머리를 기른 형이 음악을 추천해주곤 했다. 중3 이었나, 거기서 계속 힙합, 소울, 알앤비만 듣고 있으니까 주인 아저씨께서 그럴거면 재즈도 들어야 된다면서 한 음반을 알려줬다. 그 앨범이 마일즈 데이비스의 < Kind of Blue >였는데, 집에 사 들고 오게 되면서 재즈에 빠지게 됐다.

재즈하면 색소폰이지만, 많고 많은 악기 중 색소폰을 하게 된 경위가 있는지.
색소폰은 정말 우연히 시작하게 됐다. 원래 미대를 가려고 미술을 하던 도중 갑자기 실용음악과가 가고 싶은 거다. 그 때 꿈이 힙합음악을 하는 토이였다. 힙합 프로듀싱을 내가 직접 해서 래퍼와 보컬을 초빙해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물론 엄마한테 미술 다 때려 치고 음악하겠다 했을 때는 엄청 혼났다. 갑자기 무슨 음악이냐고.

그렇게 작곡 공부와 레슨을 받으면서 실용음악과를 준비하고 있을 때 서울에서 시험을 보려고 했다. 근데 서울은 작곡가 시험을 보려면 악기가 필요하다는 거다. 당시 나는 할 줄 아는 악기가 하나도 없었고, 컴퓨터 미디나 조금 할 줄 아는 수준이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작곡을 가르쳐 주던 선생님이 “야, 색소폰 하는 사람이 없어. 기타는 쌔고 쌔서 잘 쳐야 되는데 색소폰은 좀만 불면 합격이야.”라 말해주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다. (웃음)

마지막 질문, 지금의 나를 만든 베스트 앨범을 뽑는다면.
재즈 중에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 ‘Round About Midnight >, 그리고 힙합에서 가장 좋아했던 앨범은 피트 락과 씨엘 스무스(Pete Rock & CL Smooth)의 < The Main Ingredient >다. 웨스트 코스트의 지훵크(G-Funk)나 이스트 코스트의 붐뱁만 듣다가 처음으로 재지한 샘플이 들어간 힙합 음악을 접하게 된 순간이다.

인터뷰 : 김도헌, 임동엽, 장준환
정리 : 장준환
사진 : 임동엽
기획 : 부평구문화재단 문화도시추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