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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IZM X 부평구문화재단] #7 이정선 X 윤병주

정선이 형은 항상 음악을 “재밌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정확한 수식인지 모르지만 ‘언더그라운드 포크의 대부’로 음악인구에 회자되는 이정선 그리고 블루스 하면 떠오르는 뮤지션 윤병주를 함께 만났다. 근래 윤병주가 이끄는 프로젝트 밴드 ‘윤병주와 지인들’은 막 ‘항구의 밤’이라는 곡을 원곡의 주인공 이정선과 함께 녹음했다. 10월에 발표할 음원을 미리 들어봤더니 끈적끈적한 느낌이 귀를 잡아끈다.

이정선이 오래전 내놓은 곡을 부평구문화재단이 진행하는 기획 앨범을 위해 새로이 편곡해 레코딩한 것이다. 이 기획은 대중음악의 발상지라고 할 부평의 미군기지 애스컴의 역사성을 복원하는 동시에 인천 부평 지역 뮤지션들을 찾아 음원제작으로 연결하는 ‘글로컬’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밴드 ‘지인들’의 멤버 중 한 명도 이곳 인천 출신이다.

이들의 조우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윤병주와 지인들은 전에도 이정선의 곡 ‘거리’와 ‘우연히’를 리메이크해 싱글로 낸 바 있다. 얼핏 음악적 관련성이 떨어져 보이는 둘의 연(緣)이 어떻게 맺어진 건지 궁금했다. 서울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재미있게’ 음악을 하려는, 어쩌면 음악가의 기본을 강조하며 음악 녹음의 즐거움을 확인해주고 있었다.  

이정선의 곡인 ‘항구의 밤’을 녹음했다. 전과 달리 이번에는 이정선이 직접 노래까지 했는데… 그 많은 곡들 가운데 왜 하필 ‘항구의 밤’을 고른 건가?
윤병주: 사실 애초 (이)정선 형의 곡들 중에서 딱 그 곡을 원했던 건 아니다. ‘바닷가의 선들’도 있고 기존에 내가 해오던 블루스, 록적인 색채를 잘 살릴 수 있는 형 노래들도 많았다. 이번에는 나름대로 색다른 도전이었다고 할까. 안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것도 직접 해보면 결국 우리 음악의 맛이 묻어나올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 결과물도 그렇게 나왔다고 본다. 부평구문화재단 기획대로 인천이 항구라는 점도 생각했고…

‘항구의 밤’이 어떤 곡인지 알려 달라.
이정선 : 이 곡은 1990년에 나온 앨범 < 雨 >에 수록되어 있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단출하게 어쿠스틱 기타 하나 가지고 만든 노래였다. 이번에는 밴드 ‘윤병주와 지인들’과 함께 하는 만큼 더 리얼하게 항구의 분위기를 살리고 싶었다. 시끄러운 선술집에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리고, 복작복작한 느낌?…

원곡이 슬픈 감정을 중심으로 흘렀다면 이번 음원의 보컬은 상대적으로 밝게 느껴진다.
이정선 : 군중 속의 고독이란 게 있다. 그리고 원래 즐거울 때가 더 슬픈 거 모르나? (웃음) 원래 ‘항구의 밤’이 그렇게 슬픈 노래는 아니다. 슬픔이 다 지나간 다음을 담고 있다.

윤병주 : 오랫동안 이정선 음악을 들어 왔다. 어릴 때 들은 정선이 형의 목소리가 있다. 그런데 근래 공연에서 받은 느낌은 또 다르더라. ‘항구의 밤’에서의 보컬은 뭐랄까… 또, 또 다른 제3의 보이스컬러였다. 확실히 정선이 형 연배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깊이가 존재한다. 젊을 때는 예민하고 날카로운 감성이 있었다면 나이가 쌓인 지금 옛 노래를 부르니 맛이 또 다를 수밖에…

‘항구의 밤’에 블루스의 터치가 강하게 느껴져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얼핏 윤병주와 이정선 간에 음악적 거리가 있을 것 같은데 실상은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 한국에서 블루스를 밴드 명으로 내세우며 블루스 음악을 제대로 표방한 게 바로 엄인호와 정선이 주축이 되어 만든 ‘신촌 블루스’ 아닌가?
이정선 : 1970년대 초에 음악을 시작했다. 음악을 하는 것은 너무 재미있다. 시작은 그렇게  재미였는데 한 10년 쯤 음악계에 있다 보니 바로 그 재미가 사라졌다. 다 돈과 연결되니까 즐거움을 좇으며 활동하는데 제약이 있었다. (엄)인호를 만나서 그냥 이런 얘기를 주고받았고 ‘그래 그럼 우리 같이 재밌게 음악 한번 해보자’ 하면서 음악 동호회 느낌으로 ‘신촌 블루스’를 만든 것이다.

그래도 당시 블루스를 내걸었다는 게 놀라웠다.
이정선 : 공연을 하려고 모인 게 아니니까 카페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서 주로 놀았다. 그러다 보니 각자 관심 있는 장르도 다르고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좁히고 좁히다 보니 블루스만 남더라. 그래서 블루스를 했다. (웃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내게 블루스는 늘 편한 음악이다. 어렵게 만들고 싶으면 어렵게 만들고 쉽게 만들 수 있으면 쉽게 만드는. 어떻게 해도 내 음악적 뿌리는 늘 블루스에 닿아있다. 많은 분들이 나를 포크로 연관 짓지만 실은 블루스다.

윤병주는 이름만 들어도 즉각적으로 블루스가 연상되는 사람이다.
윤병주 : 블루스는 어렸을 때부터 듣던 음악이다. 브리티시 인베이젼 시기, 그러니까 1960년대와 1970년대 음악이 대부분 그렇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 블루스에 영향받은 록을 정말 많이 들었다. 일부러 그렇게 안 하려고 해도 연주를 하면 블루스적인 게 늘 풍겨 나온다. 그만큼 내 몸에 블루스가 배어 있다.

‘노이즈가든’을 거쳐 ‘로다운 30’ 그리고 새 프로젝트인 ‘윤병주와 지인들’ 역시 블루스를 베이스로 하고 있다.
윤병주 : 물론 멤버 변동이 있긴 했지만 ‘로다운 30’은 함께 모여 작업을 시작한 게 2000년이다. 반면 ‘지인들’은 멤버들 각자 밴드들인 ‘소울트레인’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큼 관계가 조금 더 느슨하다. 그룹의 모태는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다. 1960년대 활동한 미국 밴든데 그 사람들을 보면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자유롭게 한다. 블루스도 하고 잼도 계속한다. 요즘 미국 쪽을 보면 결국 다 잼과 루츠(Roots)록 쪽 음악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우리도 비슷하다. 다 내려놓고 실컷 연주나 해보자 싶었다. 정선이 형 곡 하나로 무대에서 십 분씩 연주하고 그랬다.

‘지인들’을 통해 꼭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윤병주 : ‘로다운 30’은 당연 창작 곡이라면 ‘지인들’은 커버(Cover). 즉 기성곡을 우리식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원래 커버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커버를 녹음해서 발표한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안 해본 거라는 것에 끌렸다고 할까. ‘항구의 밤’(10월에 발매 예정)도 그렇고 올해 초 제작한 ‘거리’, ‘우연히’가 모두 이정선 선생님의 곡이다.

윤병주가 리메이크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어땠나?
이정선 : 뭐 좋았다. (웃음) 근데 ‘거리’ 이 노래를 어떻게 알았나 싶긴 했다. 이게 내 정규 1집 < 이정선 1집 >(1974)에 수록된 곡인데 그 음반이 나오자마자 딱 금지가 됐다. 11곡 중에서 9곡인가가 금지됐었다.

결과가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한데…
이정선 : 병주가 참 맛있게 기타를 친다. (웃음) 개인적으로는 노이즈가든 때의 윤병주가 회상될 만큼 ‘윤병주스러운’ 기타 톤이 느껴졌다. (예전부터 노이즈가든을 알았느냐 물으니) 실제로 얼굴을 맞댄 적이 없어서 그렇지 그때부터 음악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윤병주 : ‘거리’를 녹음할 때 정선이 형이 피처링에 참여해주지 않으실 걸 대비해 다른 버전의 연주까지 다 맞춰 뒀었다. 이 곡을 커버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형이 함께해주길 바랐는데 다행히 흔쾌하게 승낙해주셔서 고마웠다. 늘 외국 팝을 듣던 내게 국내 블루스 음악의 강렬함을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이니까 여러모로 뜻깊기도 했고.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때는?
윤병주 : 2011년 즈음, 한 레이블의 축하 연주를 ‘로다운 30’하고 정선이 형이 같이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때 만나서 ‘건널 수 없는 강’, ‘우리네 인생’, ‘우연히’, ‘오늘 같은 밤’을 포함해서 네 다섯 곡 정도를 함께 했다.

함께 작업하는데 음악적 트러블은 없었는지?
이정선 : 합을 많이 맞추려고 하면 더 틀려진다. (웃음) 요즘 시대는 어지간한 비트가지고서는 세다고 느끼지 않지 않나. 그래서 나는 윤병주와 지인들이 기타나 리듬을 더 강하게 치고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엔지니어들이 말랑말랑하게 만들었다. 안 싸우려고 그냥 뒀다. (일동 웃음)

윤병주는 이정선과의 작업이 주는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다.
윤병주 : 내가 처음 팝을 들은 게 초등학교 때였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 롤링스톤 >같은 외국 록 잡지를 보셨고 그 영향으로 나도 < 월간 팝송 >을 끼고 살았다. 그랬으니 우리나라 밴드 음악에서 내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겠나. 그러다 우연히 정선이 형의 최신 음반을 사서 듣게 됐는데 형이 자주 하는 말처럼 한국적인 ‘뽕’스러움이 너무 멋지게 다가왔다. 지미 페이지 연주에서나 나오는 신비스럽고 강렬한 블루스가 솟아 나왔다. 그 이후로 정선이 형 공연도 보러 다니고 그랬다.

편곡 과정은 수월했나?
병주 : ‘항구의 밤’은 형이 무대에서 종종 연주하기도 하는 곡이다. 특히 < EBS 스페이스 공감 >이나 < 온스테이지 > 영상이 좋다. 그 질감을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녹음도 빨리 끝난 편이다.

이번 음원제작은 부평구문화재단 기획의 일환이다. 많은 지자체나 문화재단들이 공공재원으로 음악계를 지원하는 사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언할 건 없는지 말해 달라.
이정선 : 좋은 기획이고 재밌는 프로젝트다. 나는 공공 재원으로 음악 신을 지원하는 사업을 좋게 보고 있다. 다만 음악에 대한 간섭을 안 한다는 조건 하에서다. 음악 하는 사람들은 밖에서 볼 때는 어떨지 몰라도 늘 최선을 다한다. 외부에서 간섭하면 색을 잃는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는 간섭이 전혀 없어서 좋았다. (웃음)

함께 작업하면서 선배에게 배운 것이 있었을 텐데…
윤병주 : 정선이 형은 항상 음악을 “재밌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곁에 있으면 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는다. 오래 음악을 하려면, 또 하고 싶다면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내 음악이 지금 이 시대에 사랑받지 못한다고 해서 안절부절 하거나 피해의식을 갖는 게 아니라 늘 지금에 행복할 수 있는 마음. 20, 30년 후에 정선이 형의 (음악에 대한) 태도를 갖고 싶을 만큼 많은 걸 배웠고 또 영향을 받았다.

인터뷰 : 임진모, 박수진, 임선희
사진 : 임선희
정리 : 임진모
기획 : 부평구문화재단 문화도시추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