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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킴 ‘찬란한 계절’ (2021)

평가: 3/5

폴킴이란 가수가 빛을 보기 시작한 건 달콤한 ‘비’가 내린 이후다. 무명 시절에 발매했던 곡 ‘비’가 그의 음악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던 사실을 녹여내듯 이번 신곡에서 화자의 찬란했던 순간을 ‘비가 내리는’ 여름에 비유했다. 지나간 여름, 즉 헤어진 전 연인을 향한 후회와 그리움은 감성적인 가을 날씨에 어울릴만한 사운드를 타고 잔잔하게 전해진다.

쓸쓸하고도 아련한 멜로디를 주조한 건 프로듀서 구름이다. 과거 혼성 듀오 치즈로 활동하다 현재는 백예린과 함께 록 밴드 더 발룬티어스를 결성한 그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이력만큼 아티스트 맞춤형 작곡을 선보인다. 악기는 피아노 연주와 미디로 작업한 비트뿐이지만 주인공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하면서 본인의 음악색을 적절히 덧입혀 상생을 이룬다. 그간의 행보와 큰 차이는 없지만 여전히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아름다운 폴킴의 계절은 영롱한 광채를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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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시티 127(NCT 127) ‘Sticker’ (2021)

평가: 3/5

물음표 섞인 갸우뚱거림이 서서히 리듬을 타는 순간, 다국적 보이그룹 엔시티의 핵심 가치인 ‘네오(Neo)’가 뇌리에 박힌다. 생소한 감각에 대한 정의는 여전히 불명확해 거리감이 느껴지나 지난해 엔시티 127이 < NCT #127 Neo Zone >으로 대중에 한 발짝 다가서며 그 간격을 좁혔다. 기세를 이어 엔시티는 시대를 넘나드는 음악으로 두 번째 단합 대회 < NCT Resonance >를 개최했고 행사에 참석했던 23명의 청년들은 올해 다시 각자의 위치에서 교감을 이어가고 있다.

거대한 반향에 공명하는 엔시티 127의 악기는 피리다. 동양풍 사운드와 탄탄한 베이스의 순환은 타이틀곡 ‘Sticker’에서 이들의 오묘한 정체성을 꾸며내는 최적의 요소로, 맹렬한 외침을 담은 ‘영웅’의 프로듀싱과 결을 같이 하면서도 가창에 대비를 두어 또 하나의 실험 데이터를 쌓는다. 랩의 비중을 대폭 줄이고 들여온 알앤비 보컬은 성대를 긁고 꺾어가며 리드미컬한 멜로디를 주도한다.

단편적인 기교로만 맛을 돋우다 보니 본연의 멋을 상실했다. 단출한 기악 구성에 이렇다 할 변주마저 없는 ‘Sticker’는 태용과 마크의 래핑을 그저 보컬진의 유려함을 견인하는 정도로 활용한다. 단순 파트 배분의 문제를 넘어 엔시티 세계관의 근원인 힙합이 중심에 위치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형국은 앨범 전반으로 뻗어가 피아노가 잔잔히 흐르는 ‘내일의 나에게’ 같은 발라드 트랙의 몰입까지 저해한다. 결과적으로 앨범 커버처럼 멤버 모두가 색을 잃고 만 것이다.

벌어진 이음새를 다시 쫀쫀하게 붙이는 건 냉소를 머금은 메시지다. 데뷔곡 ‘소방차’부터 최근의 ‘Punch’까지 진취적이고 저돌적인 태도로 일관한 이들은 이번 작품에서도 기조를 유지하며 기량을 마음껏 발휘한다. 달콤 쌉싸름한 ‘Lemonade’는 세상의 잡음을 시큼한 레몬에 비유해 쿨하게 들이키면서도, 직진 본능에 충실한 ‘Bring the noize’의 질주는 사회를 향해 역으로 노이즈를 발산하며 선명한 스키드 마크를 찍는다. 특히 위 두 곡에서 보컬리스트 재현이 낮은 톤으로 읊조린 랩 파트는 본작의 주요 퍼포먼스로 자리하며 팀의 운용 반경을 넓힌다.

이제 앨범 제목 앞에 항상 붙어있던 ‘NCT #127’이란 스티커는 필요 없다. 1년 반만의 복귀지만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모두가 알아본다는 자신감의 표출이다. 지난 5년간의 활동을 통해 청년들의 평판은 물론 상업적 성과까지 꾸준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럼에도 새로움을 갈망하는 문화 기술은 흥행이 아닌 유행을 이끌기 위해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다. 개방과 확장으로 영생을 꿈꾸는 그들에게 < Sticker > 역시 먼 미래를 위한 빅데이터에 불과하다.

– 수록곡 –
1. Sticker
2. Lemonade
3. Breakfast
4. 같은 시선 (Focus)
5. 내일의 나에게 (The rainy night)
6. Far
7. Bring the noize
8. Magic carpet ride
9. Road trip
10. Dreamer
11. 다시 만나는 날 (Promis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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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Choice

2021/09 Editor’s Choice

백예린(Yerin Baek) < 선물 >

유리알 같은 여린 감성으로 코팅한 위로의 선물.
추천곡 : ‘Antifreeze’, ‘왜? 날’, ‘돌아가자’

by 김성엽

펠리스 브라더스(The Felice Brothers) < From Dreams To Dust >

어쿠스틱 사운드에 담긴 개인적인 이야기들,  문을 열고 나서면 펼쳐지는 푸른 전원 풍경.
추천곡 : ‘All the way down’, ‘Jazz on the Autobahn’, ‘We shall live again’

by 염동교

양요섭 < Chocolate Box >

오랜 기억과 감정을 숙성해 만든 달콤 쌉싸름한 맛.
추천곡 : ‘Brain’, ‘척’, ‘꽃샘’

by 정수민

박혜진(Park Hye Jin) < Before I Die >

원초적 질료로 빚어낸 다면적인 하우스의 형상, 그리고 마주한 공허감.
추천곡 : ‘Where are you think’, ‘Sunday asap’, ‘Clouds’

by 김성욱

로우(Low) < Hey What >

고립된 폐허에서 잡아낸 희망의 주파수.
추천곡 : ‘White horses’, ‘All night’, ‘Hey’

by 장준환

김사월 < 드라이브 >

사월이 사월한 사월표 음악. 따뜻하고 아름답다.
추천곡 : ‘드라이브’, ‘레슬링’

by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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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임헌일 ‘Fake’ (2021)

평가: 3/5

제목처럼 시작부터 제대로 당했다. 가성과 진성을 혼합한 화음의 담백함에 빠져드는 찰나 음의 높이가 최하층으로 내리닫는다. 모던 록 밴드 메이트를 비롯해 여러 그룹의 중심에 섰던 보컬리스트 임헌일이 이토록 나직한 목소리를 낸 적은 없었다. 평소 말투보다도 낮은 톤의 속삭임은 소셜미디어 속 허상을 주제 삼아 만남이 줄어든 시대의 공허함을 기록한다.

허전한 마음 한구석을 드러내듯 기악 구성 역시 간소화했다. 은은한 어쿠스틱 기타와 브라스로 다져놓은 포크의 기틀에 미디로 힙합 스타일의 드럼 비트를 덧대며 트렌드에 무던히 합류한다. 확실히 본격적인 홀로서기를 선포한 정규 2집 < Breathe >부터 전기 기타가 자취를 감추는 중이다. 팀이 아닌 개인을 정의하기 위한 절제가 꾸준한 도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해 솔로 임헌일의 음악 스펙트럼이 가을 하늘처럼 영롱한 빛깔로 채워지고 있다.

가사에 ‘노래로 부를 만한 게 없다’면서도 올해만 벌써 세 곡의 싱글을 발매한 지금, 투정 섞인 거짓말에 어느 때보다 진실함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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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Nell) ‘Moments In Between’ (2021)

평가: 3.5/5

문명사회와 단절되어 자신만의 언어를 구사하던 영화 < 넬(Nell) >(1995)의 주인공처럼 동명의 밴드 넬 역시 그들만의 음악적 어휘로 세상과 소통했다. 초기에 거칠고 과장된 면이 있었음에도 특유의 우울한 정서에 공감하는 팬들은 물론 묵묵히 함께 해온 멤버들과 다져온 유대를 통해 젊은 시절의 응어리는 세련된 모습으로 정제되었다. 22년이란 긴 세월 동안 팀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을 들여다보면 결국 모두와의 ‘관계’로 귀결된다. 아홉 번째 정규작으로 돌아온 40대의 넬은 관계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 사이의 순간들’을 탐미한다.

보편적인 콘셉트 앨범이긴 하나 과거에 제시했던 방법론과는 상이하다. 메이저 정규 6집 < Newton’s Apple >로 완결 지었던 중력 3부작이 하나의 키워드에서 파생된 영감들을 옴니버스 식으로 흩뿌린데 비해 본작은 기억의 파편들을 차례대로 이어붙여 유기적인 짜임새를 갖춘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요동치는 감정 변화의 서사라는 점에서 각각의 곡에 부여한 의미보다 전체가 전하는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어느 때보다 앨범 단위의 청취를 요구하는 만큼 자연스레 글귀에 시선이 집중된다. 한때 그룹의 정체성을 규정하던 현학적인 노래 제목과 가사는 아니다. 다만 일상의 언어로 써 내려간 노랫말은 그리움이란 파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파랑 주의보’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다 고치겠다며 끝없이 상대를 붙잡는 ‘말해줘요’ 같이 수동적인 입장을 적극 대변한다. 구어체가 전작들의 문체에 비해 평이한 건 사실이나 오히려 그에 뒤따른 빈약함이 쓸쓸함을 배가해 텍스트를 극의 주된 요소로 만든다.

반복과 여백의 미학은 사운드에도 영향을 미친다. 6분 30초 간의 황홀경 ‘위로 危路’가 리얼 세션과 전자음으로 조밀하게 채운 팝 록 ‘유희’와 함께 더블 타이틀로 나선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아름다움을 향한 동경과 불안이 공존하는 ‘위험한 길’의 풍경은 잔잔한 전자기타를 타고 그려지기 시작한다. 간소한 악기 구성으로 미리 비워둔 자리를 채우는 것은 ‘아름답구나 그대/아름다워라’를 되뇌는 김종완의 목소리다. 여린 읊조림 한 번의 반향은 미미하지만 도돌이표를 통해 점층적으로 고조된 파동은 현악기와 조우하며 장엄함을 연출하기 이른다.

‘위로 危路’와 ‘Duet’을 기점으로 전반에 내재되어 있던 불안함을 서서히 실체화하기 시작한다. 작품 구조상 이별은 정해진 결말이었다. 밝은 선율에서 왠지 모를 위태로움이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조 진행으로 변모하며 그 묘한 음울함을 극대화한 곡이 바로 ‘Sober’다. 사랑보다 이별에 능숙한 ‘내’가 아닌 ‘우리’를 기억해달란 외침. 스산한 기타 리프가 서로의 온몸에 새겨지는 순간 화자와 청자가 뒤섞이면서 앞선 아홉 곡에도 재해석을 가미해 입체적인 감상의 여지를 남긴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음악으로 살아온 1980년생 동갑내기 친구들은 매번 ‘넬스러움’이란 고유의 특성 앞에 미사여구를 들여와 도전을 거듭했다. 이번 작품에선 덤덤한 대사와 사운드를 최소화한 청각적 미장센을 중심으로 색다른 단편 영화를 완성하며 새로운 활로를 개척한다. 관계와 감정을 노래한 신보의 이야기엔 결말이 있지만 넬의 연대기는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Sober’의 마지막 바램처럼 < Moments In Between >은 대중에게 기억될 만한 분기점으로 자리하며 그룹의 영속성을 확보한다.

– 수록곡 –
1. Crash
2. 파랑 주의보
3. Don’t say you love me
4. 유희
5. Don’t hurry up
6. 위로 危路
7. Duet
8. 말해줘요
9. 정야
10. So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