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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식스(Day6) ‘ The Book of Us : Entropy’(2019)

평가: 3.5/5

밝은 결의 팝 록을 소구력 있게 풀어낸 < Sunrise >와 < Moonrise > 시리즈로 데이식스는 밴드 체제가 결국 유의미한 선택이었음을 증명했다. 멤버 개개인이 악기를 다룰 줄 안다는 자유도에 기반한 ‘안정적 밴드 사운드’와 세 개의 기타로 얻어낸 ‘명확한 멜로디 라인’. 이는 밴드 아이돌이라는 양면적 입지에서 록의 개성과 팝의 대중성을 모두 끌어낸 영리한 접근법이었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이들이 계속해서 보인, 스스로 정립한 공식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탈노선의 행보다. 앞서 발매된 ‘What can I do(좋은걸 뭐 어떡해)’의 퍼지 톤 도입부나, ‘Shoot me’의 독특한 구성, 그리고 보코더와 신시사이저를 사용한 ‘포장’과 ‘Best part’ 등이 그 흔적인데, 물론 이러한 실험들이 크게 주목되지 않은 데는 ‘중력’처럼 깊게 자리 잡은 밴드의 청춘 이미지가 탈선을 막는 방어 기제로 작용한 이유다.

그렇기에 < The Book of Us : Entropy >의 존재는 더욱 두드러진다. 이름에서부터 직접 일컫는 반항적 성질 ‘엔트로피’. 한 마디로, 이 작품은 본격적인 일탈의 기록이다.

저음의 베이스와 디스토션이 가미된 피킹으로 시작하는 팝 메탈 ‘Deep in love’와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의 ‘Dead!’가 연상되는 네오펑크 ‘Sweet chaos’부터 강렬함을 피력한다. 이들은 신시사이저로 잔뜩 풀을 먹인 ‘Emergency’로 갑작스레 팝 사운드를 배치하기도, ‘Rescue me’로는 다시 묵직한 헤비메탈을 가져오기도 한다. 어지럽게 뒤섞인 무질서적 트랙 배치와 기조 변화는 분명 사랑으로부터 야기된 ‘혼란’의 정서를 대변하는 장치지만, 화려해진 드러밍과 현란해진 리프는 이를 넘어서는 변모의 의지를 내포한다. 

격동의 과정이 끝나고 앨범은 주 장르인 팝 록으로 다시 회귀하지만, 격렬한 전반부에 비해 다소 무난할 수 있는 후반부를 위해 절충안을 삽입하는 방안으로 낙차의 충격을 완화한다. 교두보 역할을 하는 레게풍의 ‘365247’과 ‘아야야’ 등이 그렇다. 데이식스는 이 외에도 작품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친절함을 곳곳에 배치하는데, ‘Not fine(나빠)’나 ‘마치 흘러가는 바람처럼’ 같이 본래 스타일을 정확히 가져온 곡으로 기존 팬들이 즐길 거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데이식스는 콘셉트를 방패로 그간 꾸준히 지속해오던 형식적 문법에서 잠깐 벗어나 창작의 갈증을 해소하고, 환기의 시간을 가진 뒤, 안식처로 돌아옴으로써 짧은 여행을 마친다. 확실한 보험을 두고 펼친 모험이기에 큰 위험 부담도 없을뿐더러, 본인들이 가진 지도를 넓힘으로써 어느 방향으로도 뻗어 나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는다. 아이돌 밴드 그 이상의 영역을 노려온 데이식스, 그렇기에 분명 이 음반은 좋은 양분이 될 것이다.

– 수록곡 –
1. Deep in love 
2. Sweet chaos 

3. Emergency
4. Rescue me
5. 365247 
6. 지금쯤
7. 아야야
8. Not fine(나빠) 
9. 막말
10. Not mine
11. 마치 흘러가는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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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ingle Single

에미넴(Eminem) ‘Godzilla (Feat. Juice WRLD)'(2020)

평가: 3.5/5

6분가량의 긴 러닝타임을 빽빽한 가사로 메운 ‘Rap god’이 완급 조절의 롤러코스터라면, ‘Godzilla’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이 붙는 로켓에 비견할 수 있겠다. 두 곡 모두 속사포 랩이 포인트지만, 체력 배분이 다르기에 붙은 비유다.

여전히 탁월한 라임 배치와 더욱 화려해진 랩 스킬로 229개의 단어를 내뱉는 마지막 30초는 단연 압권. 다만, 여기서 조금 더 멀리 내다보면 가열과도 같은 곡 구성이 눈에 들어온다. 쫀쫀한 딕션의 도입부와 쥬스 월드(Juice WRLD)의 감칠맛 나는 훅으로 간단히 간을 한 뒤, 차근차근 유기적으로 기세를 올려가며 다가올 하이라이트에 몰입을 유도하는 방식이라니. 여러모로 힙합의 유희중 하나인 ‘듣는 맛’을 적확히 구현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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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피에이치원(pH-1) ‘Nerdy love (Feat. 백예린)'(2020)

평가: 3/5

랩 소절이 한차례 지나가면 초빙된 객원 보컬이 훅을 하는, 매드 클라운과 산이가 5년 전쯤 차트 겨냥을 위해 남용하던 이 패턴은 하이톤의 래핑과 보컬의 온도 부조화, 진부한 사랑 이야기, 그리고 단순한 전개 방식의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하이어뮤직 소속의 피에이치원(pH-1)의 ‘Nerdy love’는 이 포맷을 당당히 차용한다. 선배들이 극복하지 못한 부분을 본인의 장점으로 능숙히 해결하는 모습과 함께 말이다.

작정하고 승부처를 내건 곡이 아님에도 차트에 이름을 올린 힙합 노래 중 가장 트렌디하고 대중 친화적이다. 백예린의 훅과 어우러지는 부드러운 싱잉 랩이나 곡 전반에 묻어나는 긍정 분위기, 그리고 < HALO >의 ‘Like me’부터 꾸준히 밀어 온 신선한 ‘너드미’ 콘셉트가 그 이유다. 독자적 입지를 다지면서도 보기 드문 포용력으로 대중성 또한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만드니, 어쩌면 고착화된 힙합 신에 대중이 설 위치를 마련할 적임자가 드디어 등장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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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KPOP Album

소코도모(sokodomo) ‘WWW. III'(2019)

평가: 3.5/5

< 고등래퍼 3 >에 출연한 소코도모(Sokodomo)는 독특한 이미지와 이국적인 래핑으로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눈도장을 남겼지만, 엠넷의 편애적 편집을 기점으로 ‘우승자 밀어주기’의 수혜자로 지목되며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유망주를 바라보던 애정의 눈길이 순식간에 따가운 눈총으로 바뀐 상황, 많은 이들은 그가 추후 음악 활동에 있어 크게 위축되지는 않을까 우려를 표했다.

그가 프로그램을 떠나며 남긴 경연곡 ‘지구멸망’의 단서에서 알 수 있듯, 걱정은 단순 기우에 불과했다. 소코도모는 놀랍게도 커리어 중 가장 생명력이 강하게 약동하는 작품인 < WWW. III >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설움과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찾아 해소하는 힙합의 공식이 아닌, 번뜩이는 영감과 건전한 에너지를 극복의 주체로 삼으며 말이다.

스스로를 지칭하는 ‘외계인’이란 단어가 앨범을 집약한다. 시시각각 격동하는 변칙적 템포와 다른 차원을 연상시키는 생소한 감각. 여러 요소들이 마치 어린 아이의 놀이방처럼 난잡하게 흩뿌려짐에도 불쾌함보다는 이내 신선함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확실히 창의적이다. 내면의 공격성을 표현한 또 다른 자아 ‘LáPamasaka’를 피처링으로 넣어 이중인격의 랩을 구사하는 ‘Go home’부터가 범상치 않다.

무엇보다 특유의 호들갑을 장점으로 둔갑시킨 점이 인상적이다. 유령 소리, 트랩, 신시사이저 등 온갖 효과음을 겹쳐 말 그대로 사운드를 ‘과하게’ 난무한 ‘Too much’가 그 정점이다. 소코도모의 분열적 래핑과 감각적인 보이콜드(Boycold)의 비트, 그리고 백 워드 기법을 연상시키는 김아일(Kim Isle)의 피처링이 독특함에 방점을 찍는다. 본인만의 무기가 생겼다고 무조건 휘두르려 하지도 않는다. 청량함이 주가 되는 ‘Bike (따릉이)’나, ‘Want love?’와 ‘Good life’ 같은 차분한 기조의 곡에서 넘치는 흥을 적당량 조절하며 곡에 스며들기를 선택한다.

신인이라기엔 좀체 믿기지 않는 성장 속도와 능란한 실력, 그리고 또래 래퍼들보다 뛰어난 캐릭터 구축 능력이 돋보인다. 이는 기본적인 노력 너머 타고난 상상력과 끼가 합쳐져야 해금할 수 있는 영역이다. 미처 깔끔하게 정제되지 않은 작풍과 아직은 짧은 호흡의 EP라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신을 이끌 인물이라 단언하기 힘들지만, 근래 가장 퍼텐셜을 머금은 출사표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 수록곡 –
1. Ninja mode
2. Go home (Feat. LáPamasaka)
3. West side cling (W.S.C) (Feat. Ugly Duck)
4. Too much (Feat. 김아일)  
5. Bike (따릉이) (Feat. KIRIN)  

6. Want love? (Feat. SUMIN)
7. Good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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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POP Album

카밀라 카베요(Camila Cabello) ‘Romance'(2019)

평가: 2.5/5

라틴 팝 스타를 향한 카밀라 카베요의 원대한 항해가 위기에 처했다. 최근 십 대 시절 SNS에 남긴 인종차별 발언이 화제가 되고 다베이비(DaBaby)와 부른 ‘My oh my’가 표절 시비에 휘말리며 논란의 도마 위로 올라선 것이다. 이는 성공적인 솔로 데뷔부터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온 그의 이미지와 커리어에 동시다발적으로 받은 큰 타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앞서 말한 몇 가지 논란을 감안하더라도 < Romance >는 충분히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다. ‘Havana’의 메가 히트를 중앙에 두고 다소 평이한 곡으로 주변을 메운 전작 < Camila >에서 훨씬 다채롭게 힘을 실은 변화가 서두에 드러난다. 첫 트랙인 ‘Shameless’는 강렬한 예시로, 간결한 기타 스트링으로 가벼운 긴장을 유도한 뒤 고음으로 점차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이른바 예열의 단계를 완벽히 수행한다.

이어지는 곡들은 몰입에 가속을 붙인다. 아이들이 노는 소리를 도입부에 삽입한 ‘Living proof’로 진부함을 벗어나거나,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의 ‘All night long (All night)’을 레게톤으로 둔갑한 ‘Liar’로 본인의 라틴 캐릭터를 그려내기도 한다. 게다가 앨범 이름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더욱 강화된 사랑 표현과 확신에 찬 당돌한 노랫말은 그가 매튜 허시(Matthew Hussey)와의 이별과 숀 멘데스(Shawn Mendes)와의 만남을 토대로 써 내려간 생생한 ‘로맨스’의 기록을 엿보게 하는 흥미로운 도구다.

다만 ‘Dream of you’의 불안한 고음 처리를 시작으로 작품은 집중력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평범한 어쿠스틱 ‘This love’을 지나 무난의 극치를 달리는 ‘First man’까지.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특기인 카멜레온 같은 음색과 농밀한 라틴의 향취가 전무한, 한 마디로 카밀라 카베요의 정체성과는 무관한 곡들이 쏟아져 나온다. 딱히 존재 이유를 느끼기 힘든 짐 같은 트랙들이다.

< Romance >는 영민한 시작으로 이목을 사로잡으며 기대감을 한껏 올려놓았으나 뒤로 갈수록 다시 평범한 결과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 성숙을 요구한 < Camila > 이후로도 여전히 방향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마무리가 바로 화근이다. 자신에게 성공을 가져다준 ‘Havana’와 ‘Señorita’가 대중이 원하는 라틴 사운드를 충족시켰다는 점을 고려하면 본인이 가진 쿠바의 피를 좀 더 활용하려는 작전이 필요하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논란을 딛고 반성하는 태도. 항해를 재개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건 오만과 욕심을 덜어낸 선체다.

– 수록곡 –
1. Shameless 
2. Living proof 
3. Should’ve said it
4. My Oh My (Feat. DaBaby)
5. Señorita (Feat. Shawn Mendes)
6. Liar
7. Bad kind of butterflies
8. Easy
9. Feel it twice
10. Dream of you
11. Cry for me
12. This love
13. Used to this
14. First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