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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락 ‘채플린 영화처럼 (Feat. 정우)’ (2021)

평가: 2.5/5

캡틴락의 음악에는 사람이 있다. 분명 우리가 듣는 것은 가공을 거쳐 하나의 파형으로 결합된 음원일 테지만, 합주 가운데 가볍게 오가는 익살스러운 애드리브나 배후에서 잔잔하게 목소리를 포개는 신예 정우의 피처링에는 여러 명의 향취와 형상, 그리고 농담이 오가는 작업실 현장과 소무대의 복작복작한 광경이 피사체처럼 담긴다. ‘경록절’ 행사 등으로 인디 신의 교류를 지켜온 캡틴락의 행보는 유대를 낳았다. 낭만이라는 명목하에 순수한 호의로 모인 이들은 고독의 키워드를 가진 코로나 시즌에 대적하는 조화의 장을 만든다.

투박한 리듬 패턴의 어쿠스틱 기타가 무성 영화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재치를 부각하되 기승전결의 개요를 따르는 구성은 찰리 채플린의 원테이크 콩트를 연상케 한다. 뮤직비디오는 적확한 시청각 자료다. 1990년대 크라잉넛의 키치한 지점을 고스란히 담은 ‘채플린 영화처럼’은 소소한 추억과 웃음을 빚는다. 다만 ‘C H A P L I N’의 예스런 표현법과 ‘새빨간 장미’ 등의 상투적인 노랫말은 먼 과거의 유행을 복각하고, 후반부까지 거듭 반복하는 동일 프레이즈는 진부함을 유발한다. 과거에 머무른 작법은 곡의 주체성보다는 크라잉넛의 시대를 함께 향유한 이들의 기억에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 독특한 주제에 정확한 재료지만, 캡틴락의 자유로운 개성과 자원에 비해 그 결과물의 매력이 미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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쌔끈보이즈(SGBOYZ) ‘궁금해 (Prod. GRAY)’ (2021)

평가: 2.5/5

딩고 프리스타일이 또 한 번 예능적 요소를 가미한 일회성 프로젝트를 내걸었다. 은어를 내세운 이름과 90년대 컨템포러리 알앤비 그룹의 기믹을 모티프 삼은 의도적인 B급 코드의 4인조 힙합 그룹 ‘쌔끈보이즈’가 그렇다. 이는 ‘아마두’와 ‘트로트랩’의 선례에 이어 어느덧 ‘반전 이미지’ 전략이 힙합 신의 주요 셀링 포인트로 정착했음을 말해준다. 래퍼의 이미지 간극을 깊게 조명하여 무해함과 유머러스함을 강조하는 방식은 어느덧 대중의 호감을 얻을 수 있는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레이의 감각적인 비트 메이킹과 박재범의 그루비한 초반 도입은 우수한 합을 보이며 기획 의도의 태생적인 가벼움을 상당수 능가한다. 해학적이다시피 늘어트린 보컬조차 오히려 부담을 줄여 재미와 질적 성취를 일궈낸 셈. 다만 던밀스를 비롯해 차례로 등장하는 로꼬와 넉살 파트는 의아함이 앞선다. 그간 장점으로 평가받은 선명한 딕션은 작풍과 엇갈리는 탓에 내내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로 둔갑하기 시작한다. 검증된 랩 실력이나 이들의 매체 적응력과는 별개로 구성원 자체의 특색과 조합을 고려하지 않은 이유다. 결국 모임에 의의를 둘 뿐인 휘발적인 곡은 외적 콘텐츠의 성장을 위한 수단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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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록햄튼(Brockhampton) ‘Roadrunner: New Light, New Machine’ (2021)

평가: 2.5/5

스스로 내건 ‘보이 밴드’ 캐치프레이즈는 그룹의 결말을 결정지었다. 브록햄튼은 2부작 ‘로드러너’ 프로젝트를 끝으로 전격적인 해산을 발표하며 엔싱크와 뉴 키즈 온 더 블록이 선행한 노선을 뒤따른다. 타인의 접근 없이 독자적 영역에서의 창작 활동을 굳건히 지향해온 그들의 마지막 길목에는 대니 브라운(Danny Brown), 제이펙마피아(Jpegmafia), 숀 멘데스와 에이셉 사단 등 유명 피처링 진의 발길이 가득하다. 파격적 구성의 비주얼라이징은 캐주얼함을 피력하며 흔들리는 정체성과 소속감을 단단히 결속하려 들지만, 그 결과는 순수한 젊음의 결정체보다는 권태의 산물에 가깝다.

“이 멋진 친구들을 누가 풀어줬지(Who let the dope boys out)”라는 케빈 앱스트랙트(Kevin Abstract)의 호기로운 문구 아래 모습을 드러낸 앨범은 < Saturation III >의 포문을 연 ‘Boogie’의 혼잡한 선포의 기억을 소환하며 초반 기세를 압기한다. 광각 렌즈로 모여든 크루원과 대니 브라운은 정신없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다채로운 색감과 조악한 3D 디자인이 마구 일그러지는 가운데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펼친다. 단연 브록햄튼스러운 도입이다.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을 시청각 면에서 골고루 충족함과 동시에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한 지점이다.

허나 뒤이어 등장하는 ‘Chain on’부터 흐름은 위태롭다. 아이작 헤이즈(Issac Hayes)의 ‘September romance intro’를 샘플링한 재지한 리프는 좋은 첫인상을 자아내지만 이내 무던한 훅과 랩 배치에 막혀 그 이상의 매력으로 거듭나지 못한다. 독특한 캐릭터성으로 변칙성을 담당하던 멀린 우드(Merlyn Wood)와 조바(Joba)가 각 주연을 맡은 트랩 넘버 ‘Bankroll’과 ‘The light’는 특색 없는 단면에 그치며 무난한 징검다리를 자행한다. 그간 이들의 특장점이라 평가받던 멤버 운용과 시너지를 다시 한번 입증하기 위한 ‘Windows’는 맷 챔피언(Matt Champion)과 돔 맥레넌(Dom McLennon)의 재치 있는 비유법만이 뇌리에 남을 뿐, 이들의 히트 넘버 ‘Gummy’나 ‘Sweet’에 견줄 가치는 크게 찾기 어렵다.

물론 순수한 음악적 열의를 증명한 < Technical Difficulties >의 이력만큼 생동감을 발현하는 트랙은 곳곳에 존재한다. ‘Bleach’의 감성적인 면을 연상케 하는 ‘I’ll take you on’은 한 차례 교체 이후 멤버의 안정적인 합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고, 극적인 구성 가운데 특유의 조악한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뒤엉키는 ‘Don’t shoot up the party’는 초기의 낙관적 소신과 패기를 우수하게 복구한다. 혹자는 < Saturation > 시리즈가 규정한 ‘시너지’와 ‘불연속적 아이디어의 콜라주’의 틀에 갇힌 잣대라 주장할 수 있을 테다. 실제로도 향후 발전 가능성보다는 과거 시제에 중점을 둔 판단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전술한 편견을 배제한들 < Roadrunner: New Light, New Machine >이 주장하는 매력은 무언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아버지의 자살이라는 다소 진중한 소재를 다룬 ‘The light pt. II’의 존재가 메시지의 깊이와 스펙트럼의 확장을 상정하더라도, 개별 트랙의 순도 높은 중독성과 획기적인 전개 방식으로 감탄을 자아내던 < Saturation > 연작이나 정갈한 완성도로 새로운 정체성 확립을 고민한 < Ginger >에 비해서도 응당한 타협점을 제대로 찾지 못한 모습이다. 결국 본작은 < Iridescence >의 적외선 투영에서 모티프를 따온 왜곡과 환영의 화려한 미장센만이 앞설 뿐, 콘셉트 선택에 마땅한 정당성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꾸준히 활로를 탐색해 온 실행 정신과 달리 지금의 함의는 도약이 아닌 내려놓기로 보인다.

– 수록곡 –
1. Buzzcut (Feat. Danny Brown) 
2. Chain on (Feat. Jpegmafia)
3. Count on me
4. Bankroll (Feat. A$AP Rocky, A$AP Ferg)
5. The light
6. Windows (Feat. Sogone Soflexy)
7. I’ll take you on (Feat. Charlie Wilson) 
8. Old news (Feat. Baird)
9. What’s the occasion?
10. When I ball
11. Don’t shoot up the party 
12. Dear lord
13. The light pt.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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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린 ‘알아주길 바랬어’ (2021)

평가: 2.5/5

본격적인 홀로서기를 시작한 혜린의 선택은 어쿠스틱 발라드다. 그룹 내 숨겨진 가창력의 소유자로 평가받던 과거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 댄스 위주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보컬 역량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EXID의 타이틀이 아닌 오롯이 본인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은유적인 제목이나 곡 작업에 직접 참여한 사실 역시 본격적인 주체로 거듭나기 위한 의도에 가깝다.

화제성을 고려한 흥행 코드나 화려한 기교보다는 담백함으로 승부수를 내건다.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가 얼핏 떠오르는 구성 아래 편안하고 정직하게 곡을 풀어나간다. 비록 완급을 고려하지 않은 일관된 악기 편성 때문에 4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인트로처럼 들리는 경향이 있지만, 섣부르지 않고 조심스레 첫 걸음을 뗐다는 점. 그 사실만으로도 앞으로의 순항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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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언(eAeon) ‘Fragile’ (2021)

평가: 3.5/5

이이언은 시간의 흐름에 솔직했다. 밴드 못(Mot)의 8년 공백을 깬 복귀작 < 재의 기술 >이 5인 체제의 확장된 편성으로 새로운 단상을 기획했듯, 그리고 < Guilt-Free >와 < Realize >가 각각 차가운 일렉트로닉과 따뜻한 어쿠스틱의 온도차를 가져왔듯 맹목적인 스타일 고수보다는 시대에 적격인 방식으로 여유롭게 형상을 바꿔오곤 했다. 물론 용기(容器)가 다르다고 본질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 < Non-Linear >에서 정교하게 제시한 우울과 공허의 세계관은 앨범과 앨범 사이를 잇는 주축을 수행하며 오늘날까지도 정체성의 기반으로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9년 만의 솔로 앨범인 정규 2집 < Fragile > 역시 이전과 동일하게 ‘죄책감’을 다룬 1집에 이어 비슷한 인간의 고질적 약점인 ‘연약함’을 소환하고 특유의 부연 잔향으로 분절된 악기 사이의 여백을 채운다. 다만 차이 면에서는 긴 공백만큼이나 간극이 드러난다. 우선 주된 어법은 트렌드를 적극 위시한 대중적 터치다. 이러한 선택은 최근 여러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의 세례를 받은 언니네이발관 출신 이능룡과의 2인조 그룹 나이트오프 활동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모던 록이나 트립 합, 일렉트로니카 등 당시 관심사에 따라 여러 작법을 오가던 유동적인 행보를 고려한다면 합리적인 결과물일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RM이 참여한 첫 트랙 ‘그러지 마’는 그 양상을 집약한다. 무한히 늘어지는 전자음과 보컬 아래 격한 몰입을 유도하던 ‘Bulletproof’와는 달리 일반적인 팝의 문법이라 보아도 손색없는 보편적인 멜로디와 느릿하고도 익숙한 트랩 리듬, 그리고 한결 담백해진 창법이 자리를 대체한다. 음산한 피아노 도입부의 ‘Null’과 동화 속 기괴한 판타지아를 호출하는 ‘Mad tea party’는 비주류적 요소를 피력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에서 취하던 섬뜩한 전달법에 비하면 충분히 용인될 수준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성공적인 편입이다. 타 아티스트와 활발한 교류를 거친 이 세 곡은 우수한 합을 수행하는 것 외에도 앞으로의 시장 가능성을 해금한다는 의의를 가져온다.

다만 사운드 샘플 자체의 강도를 낮추고 진입 장벽을 낮추려는 대중성 지향의 일환 가운데 그를 상징하던 자기 침잠의 정서는 그저 나른한 무게감 정도로 순화된다. 여기서 장단점이 극명히 나뉜다. 최면을 거는 듯한 몽롱한 신시사이저 중심의 ‘어쩌면’과 ‘우리 함께 길을 잃어요’는 기존 팬층이 환호하던 모던 록 특유의 키치하고도 암울한 감성을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유약한 보컬과의 탁월한 시너지로 드림 팝의 푹신한 심상을 제공한다. 간단한 스타카토 발성의 ‘그냥’과 ‘세상이 끝나려고해’의 훅을 오마주한 간결한 라임으로 곡을 이끌어 나가는 ‘바이바이 나의 아이’는 독특한 박자감의 ‘5 in 4’나 ’11 over 8’에서 나타나던 실험적 태도와 거리가 멀지만 복잡한 카타르시스보다 쉽고 캐치한 각인을 유도한다.

점층적 멜로디와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변칙성이 낳는 쾌감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 Guilt-Free >에 비해 < Fragile >에 사용된 탐구 정신은 분명 덜하다. 다만 개개 트랙이 지닌 수려한 완성도는 물론, 사운드스케이프와 소재의 안락한 일체감은 비록 정체성 약화라는 명확한 핸디캡을 수반하더라도 팝적 작법을 택한 가치를 증명한다. 결국 앨범은 지금껏 다져온 세계관이 또 한 번 현 시류의 알고리즘과 영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도전이자 대답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이언은 그저 솔직하다는 것이다.

– 수록곡 –
1. 그러지 마(Feat. RM)
2. 그냥 
3. 바이바이 나의 아이
4. Null (Feat. Jclef) 
5. 많은 밤을 지나
6. 어쩌면
7. Btfl mind
8. 왜일까
9. Mad tea party (Feat. Swervy) 
10. 우리 함께 길을 잃어요 

11. 언제까지나 우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