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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식스(Day6) ‘Sunrise'(2017)

평가: 4/5

‘아이돌 밴드’를 재정의하다.

아이돌 신에 록을 들고 나온 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콘셉트 그 이상의 느낌을 준 팀은 많지 않았다. 곡의 보조를 자처하는 무난함 일색의 연주, 라이브가 배제된 음방 및 행사 중심의 프로모션. 악기는 콘셉트를 치장하기 위한 액세서리에 머무르는 것이 현실이었다. < I Will >(2015) 이후의 에프티 아일랜드 정도가 의미있는 행보를 걷고 있으나, 이전까지의 아이돌 밴드는 산업의 특성과 맞물려 주체성을 상실한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그들의 첫 정규작은, 아이돌 사 속 밴드의 의미를 재고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아이돌로서의 스타성을 유지하면서도 밴드로서의 정체성도 꽉 쥐고 있는, 산업과 음악의 균형이라는 과제를 적확히 구현해내고 있기에 그렇다. 특별해 보이고 싶어서가 아닌, 자신들의 음악으로 록을 택했다는 느낌이 러닝타임 전반에 흐르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개 프론트맨과 가창에 집중되기 쉬운 경향과 달리, 각 멤버 모두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연주와 노래가 대등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결과물들은 더 언급할 필요도 없이 록 그 자체다. 물론 여기엔 장르특화에 강점을 보이는 JYP의 프로듀싱도 한 몫 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연주의 존재감과 더불어 주목할 만한 것은 멤버 모두가 노래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원 보컬 + 연주 멤버’와의 패턴과는 다른, 함께 연주하고 함께 노래하기에 가능한 수많은 가짓수의 스펙트럼이 앨범 전반에 걸쳐 있다. 곡의 무드에 따라 리드보컬을 다르게 가져가는 전략은 곡의 몰입도를 배가시키기에 안성맞춤.

여기에 멤버들의 송라이팅 역량도 수준급이다. 기획사의 주축 작곡가 홍지상과 이우민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전 곡에 걸쳐 캐치한 선율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대중가요”로서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일터. 매월 두 곡씩 6개월간 쌓아온 곡들을 모아서 낸 만큼, 하나하나의 만듦새가 훌륭해 처음부터 끝까지 텐션을 잃지 않는 좋은 흐름을 보여준다.

슬로우와 업템포의 이분법이 무색한 다채로운 구성은 14곡이라는 큰 볼륨을 지탱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다. ‘어떻게 말해’에서는 상승하는 리프와 코러스를 겹쳐 드라이브감을 극대화하는가 하면, 신시사이저와 팜뮤트피킹으로 서두의 긴장감을 자아낸 후 코러스에 이은 기타의 디스토션으로 애절함을 배가하는 ‘놓아 놓아 놓아’같은 곡도 있다.

서두의 잘개 쪼갠 리듬, 기타의 아르페지오의 조화로 계절감을 적절히 표현하는 ‘겨울이 간다’, 키보드의 다층적인 활용과 로우탐 중심의 드러밍이 두근거리는 마음을 묘사하는 듯한 ‘Say wow’, 안정적인 연주 안에서 호소력 짙은 보컬로 듣는 이들을 단숨에 끌어올만한 매력적인 멜로디가 담긴 발라드 ‘예뻤어’ 등 랜덤으로 재생해도 귀를 사로잡을 노래들이 산재해 있다. 연주나 보컬에 있어 과장이 없다는 점 또한 쉽게 질리지 않게 만드는 요인이다.

올해 접한 모든 작품을 통틀어 본다고 해도, 풀렝스로 이 정도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는 작품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노래와 연주, 송라이팅의 측면에서 느껴지는 멤버들의 노력과 재능, 클럽공연을 위주로 차근차근 성장시켜 온 소속사의 기획력이 적절하게 맞물려 탄생한 수작이다. 크로스오버가 대세인 작금의 록 트렌드와는 조금 거리가 있을 지언즉, 우직하게 자신들의 연주와 노래만으로 밀고나가는 이 정공법은 록으로서의 정체성으로도, 팝으로서의 친숙함으로도 부족한 부분이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록이란게 뭐 대단하고 거창한게 아니라, 연주와 노래에 주체성이 투영된다면 그걸로 오케이다. 다만 ‘기획된 아이돌’이 이 정도까지 그것을 해내고 있다는 점, 그 사실만큼은 분명 놀랍다. 정말 간만에 대중음악 신에서 3대 기획사의 순기능을 목격하는 순간이다. 영국엔 맥플라이, 호주의 5SOS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데이식스라는 보이밴드가 있다고 이야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 수록곡 –
1. 오늘은 내게
2. 반드시 웃는다
3. Man in a movie 
4. 아 왜(I wait)
5. 어떻게 말해 
6. 놓아 놓아 놓아(Rebooted Ver.) 
7. 그럴 텐데
8. 겨울이 간다 
9. 장난 아닌데
10. Say wow 
11. Dance dance
12. My day
13. 예뻤어 
14. Congratulations(Final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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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IU) ‘Palette'(2017)

평가: 3.5/5

“아이유는 참 나랑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해”

‘요즘은 그냥 쉬운 게 좋아’라는 가사처럼, 네 번째 정규작은 전에 비해 소박하다. ‘좋은 날’이나 ‘분홍신’ 같은 블록버스터는 자취를 감추었고, 소리들은 한결 단순해졌다. 재즈와 알앤비, 신스팝 등의 요소를 빌려 오기는 하나, 장르적인 특성을 대놓고 드러내는 구간 또한 없다. 어떠한 음악적 성취보다도 앞서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우선시하고픈 화자의 의지이다. 가사 속 메시지를 보조하는 반주에 맞춰, 확신에 찬 모습으로 마음속 언어들을 펼쳐내고 있는 것이다.

음악은 그 이야기의 기반을 탄탄히 받혀주고 있다. ‘지금의 나를 사랑하자’라고 말하는 앙증맞은 팝 재즈 ‘이 지금’은 초반의 시선을 잡아끄는데 성공하고, 남녀 간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너무나 매혹적인 음색으로 풀어낸 탓에 도리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사랑이 잘’은 오혁과의 콜라보가 예견된 성공이었음을 알려준다. 이외에도 뿌연 신스음이 숨소리로 가득 찬 가성을 만나며 발현되는 의외의 포근함이 인상적인 ‘팔레트’, 보다 차갑고 몽환적인 전자음을 토해 냉소적인 일면을 드러내는 ‘잼잼’은 상반된 매력을 보여주는 신스팝 트랙들이다.

그럼에도 넘치기보다는 약간 모자람을 택한 작품이기에, 전반적으로 심심하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평이다. < Last Fantasy >(2011)나 < Modern Times >(2013)의 다채로움에 비하면, 곡 스타일이나 정서가 한정되어 있다는 인상이 강한 탓이다. 특히 후반부의 연속되는 슬로우 템포들은 단출함을 넘어 조금은 지루하기까지 하다. 기타리스트 이병우와의 만남을 통해 찬란한 비장미를 쏟아낸 ‘그렇게 사랑은’을 고려하더라도 말이다.

다행히도 보컬의 변화무쌍함이 구성의 여백을 효과적으로 메우고 있다. 가성과 진성을 자유롭게 오가며, 곡 전면에 드러날 때도 혹은 반주에 숨을 때도 있다. 넓은 범위를 커버하는 보컬 디렉팅은 마음속 언어들과 완벽히 부합하며 스물다섯의 생각지도를 펼쳐놓는 역할을 한다. – 마치 < Chat-Shire >(2015)에서 했던 것처럼 – 이전과 다른 것은, 판타지와 같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의 랜드마크는 모두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 바로 모두가 한 번씩은 갔다 왔을 법한 그런 곳들 말이다.

< Palette >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다. 언어는 여전히 사적인 영역에 있지만, 동시에 공공재로서의 역할도 겸한다. 일종의 아이러니다. 그가 하는 고민과 생각은 분명 ‘그의 것’이긴 하지만, 2년 전과 달리 더 이상 ‘그만의 것’은 아니다. ‘스물셋’이 누구도 알지 못하는 언어로 자신을 표현했다면, ‘팔레트’에서는 모두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명확해진다. ‘그의 고민’이 ‘대다수의 고민’과 일치되며 생겨나는 보편성과 공감대. 이 앨범을 듣고 ‘아이유는 참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네’라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인터뷰의 한 대목은, 아마도 고민 끝에 얻은 자아에 대한 해답이 누구나와 같은 평범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남들과 다른 것은 발견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엔 ‘뭐 어쩌란 말야!’의 스탠스였다면, 지금은 주도적으로 여러 상황들에 적합히 대처할 수 있게 되었음을 표현한다. ‘팔레트’에서는 제멋대로인 자신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으며, ‘사랑이 잘’에서는 이별해야 할 순간에 정확히 사랑과 단절한다. ‘Black out’에선 센 척 없이 술에 취한 그대로의 모습을 즐기며, ‘이름에게’에선 불가항력적인 일들에 대해서도 꿋꿋이 자기 목소리를 내겠다고 맹세한다. 스물다섯 아이유의 표어는, 이처럼 각성을 거친 수용의 자세로서 오롯이 표출되고 있다.

인위적인 흐름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자신을 표현하고,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골라낼 수 있는 나이. 그것이 대세 뮤지션이 말하고 있는 스물다섯이다. 스물셋의 이지은보다 스물다섯의 이지은에 대한 이해가 한결 쉬워진 것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보다 성숙해져서 일수도 있지만. 그가 그리는 인생의 포물선이 수많은 구간 중 운 좋게 안정기를 통과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앞으로 내놓는 음악들엔 그의 솔직한 언어와 생각이 가득 담겨 있고, 이를 통해 삶에 있어 다시금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것이라는 사실이다. 또 모른다. 언제 또 각기 예쁘게 담겨있는 팔레트의 색깔들이 이리저리 뒤죽박죽 섞여 거무튀튀한 색을 띠게 될지. 그러면 또 기대가 되겠지. 그때이기에 나올 수 있는 아이유의 또 다른 음악과 이야기들이.

-수록곡-
1. 이 지금 
2. 팔레트(Feat. G-Dragon) 
3. 이런 엔딩
4. 사랑이 잘(With 오혁)
5. 잼잼
6. Black out
7. 마침표
8. 밤편지
9. 그렇게 사랑은 
10. 이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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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IU) ‘Chat-Shire'(2015)

평가: 3.5/5

뒤죽박죽이기에 더욱 찬란한 나이, 스물셋


작품의 전권을 아티스트에게 넘겼다는 사실은, 지금은 뭘 해도 되는 시기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음악적 재능에 대한 믿음 또한 굳건해졌음을 반증한다. 그렇게 부여받은 프로듀서의 권한을 그녀는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다. 대규모 스케일로 대변되는 히트곡 공식 대신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비교적 소소하게 꾸민 방 안에 세를 놓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이다. 주로 디렉터가 만든 큰 틀에서 ‘연기’를 해왔던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른 결의 결과물인 탓에, ‘전작보다 좋은가?’와 같은 단순 비교는 사실상 무의미해진다.

노랫말들이 담고 있는 심상은 여느 두꺼운 수필집마냥 풍부하고, 그 또한 순식간에 번져나가길 원하는 강렬한 감정들이다. 방송활동 대신 콘서트 중심의 프로모션을 선택한 것은, 이러한 프라이빗한 속성으로 하여금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듣거나, 자신만의 공간에서 들려주기에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직접 써내려간 이야기들엔, 이십대 초반의 그 자신이 가감 없이 담겨있다. 그 속엔 일관성도 없고, 때론 모순이 드러나기도 한다. 누군가에 대한 원망도 있으며 반대로 다신 만날 수 없는 이에 대한 그리움도 있다. 그렇게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는 트랙들을 하나 둘 따라가다 보면, 종잡을 수 없는 아이유라는 생각지도의 완성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첫번째 주자로서 길잡이 역할을 자처하는 필리 소울 스타일의 ‘새 신발’, 사랑하는 이를 <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의 제제에 비유해 표현한 둔탁한 비트의 ‘Zeze’부터 이것은 자신의 이야기임을 명확히 암시한다. 이어 여러 음색의 다채로운 활용이 돋보이는 타이틀 ‘스물셋’은 인간 아이유와 연예인 아이유 사이에 생겨나는 혼란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전부터 < Modern Times >(2013)의 ‘누구나 비밀은 있다’와 해당 곡에도 참여한 바 있는 가인의 ‘진실 혹은 대담’을 통해 슬쩍 내비쳐왔던 이슈이기도 하다.

‘모두가 아는 그 여자’를 모티브로 한 ‘Red queen’과 ‘안경’에서도 이 기조는 이어진다. 판단하는 자와 판단 당하는 자,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자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자는 레트로 풍의 리드미컬한 사운드, 후자는 보컬이 주는 무심함과 시니컬함의 대비를 통해 주제의 무거움을 상쇄시킨다. 여기에 ‘Rain drop’처럼 비오는 거리가 연상되는 풋풋한 사랑의 노래 ‘푸르던’과 가장 에두름 없이 그리움을 써내려간 ‘무릎’, 그리고 두 개의 보너스 트랙까지. 자신의 무기라고 할 만한 어쿠스틱 트랙들이 더해지며 스물 세 걸음이면 모두 돌아볼 수 있는 마을의 유랑기가 완성된다. 자신의 의지를 담아 야무지게 꾹꾹 걸어낸 한걸음 한걸음이기에, 가창자의 흔적이 여느 때보다도 짙게 남아있다.

사실 음악만으로 보자면, 블록버스터를 지향했던 정규작에 비해 심심한 것이 사실이다. 전체적으로 단출하면서도 담백한 사운드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자작곡이 늘어나며 감지되는 송라이팅 능력의 한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빈 부분을 메우는 것이 바로 가사다. 음악에 있어 노랫말의 비중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그는 적확한 언어로 자아를 작품에 투영해 내며 음악을 듣는 이들의 공감을 획득하는데 성공한다.

그녀의 프로듀싱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그만의 감성을 사람들이 알아들을 있도록 풀어낼 줄 아는 이야기꾼이며, 동시에 그것을 적합한 선율에 태워 퍼뜨리는 능력 또한 탁월함을 이 앨범을 통해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트렌드에 맞춘 소모적 작업이 아닌, 사진을 찍듯 지금의 자아를 새겨둔 작업. 그렇기에 더 긴 생명력을 갖게 될 곡들. 전작의 평가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다른 갈래의 수준급 작품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서 생겨난다.

생각해 보면 스물셋은 자기 자신을 알기엔 턱없이 부족한 나이다. 더군다나 항상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연기해야 하는 이들은 오죽할까. 세간의 비난을 일축하는 ‘어느 쪽이 진짜게’라는 질문은, 즉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과도 같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타인이 판단하는 내 모습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어차피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것이, 아니 한 시간 전 다르고 한 시간 후 다른 것이 지금의 나인데. 이처럼 순간순간 파도처럼 밀려왔다 쓸려가는 수많은 생각들을 꼼꼼히 기록한 이 자기고백은 이전의 디스코그래피와 또 다른 의미 있는 흐름을 개척해 나간다. 아마 시간이 지나 그의 노래가 듣고 싶을 때보다는 그의 이십대 초반은 어땠는지 궁금할 때 다시금 꺼내 들을 앨범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알게 되겠지. 이지은이라는 아이의 스물셋은, 이토록 뒤죽박죽하기에 더욱 찬란했노라고.

– 수록곡 –
1. 새 신발 
2. Zeze
3. 스물셋 
4. 푸르던 
5. Red Queen (Feat. Zion. T)
6. 무릎 
7. 안경
8. 마음 (CD Only)
9. Twenty three (CD 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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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IU) ‘꽃갈피'(2014)

평가: 3.5/5

사실, 이 앨범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뭔가 있어 보이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다가온 탓이리라.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건 그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늘 접하는 감정이기도 했다. 그간 대규모의 물량공세를 통해 ‘아이돌의 뮤지션 성장기’를 겨냥했고, ‘잘해도 본전’이라 할 만큼의 리스크를 감수해왔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 보인다고 할까. 개인의 스타성은 분명 아이돌의 범주에 있는데, 음악적 노선이 자꾸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으려는 한 어린 아이의 그림을 보는 느낌. 그것이 아이유의 2집과 3집을 듣기 전 동일하게 가지고 있던 인상이었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한 번의 플레이만으로 무의미한 것이 되기 일쑤였다. < Last Fantasy >(2011)와 < Modern Times >(2013) 모두 그랬다. 순수한 음악에의 열망이 아닌 일종의 이미지메이킹으로 치부하다가도, 결과물을 접하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성장’을 인정하는 순환고리를 되풀이 하고 있었다. < 꽃갈피 > 역시 마찬가지다. 트랙 리스트를 볼 때만 해도, 까마득한 선배와 자랑하듯 찍은 티저영상을 선보일 때만 해도, 심지어 한 번 슥 러닝타임을 훑고 나서도 ‘음악성’을 광고하듯 알리는 모습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감상이 거듭될 수록 스르르 녹는 자신을 발견한다. 일견 무리해 보이는 콘셉트를 이렇게 또 한 번 납득하게 만든다. 비슷한 장면이 세 번째로 연출되는 사이 찾아오는 것은, 저 편견으로 점철된 무릎 꿇은 악역이 나 자신인가 하는 반복된 죄책감이다.

재해석이랄 것도 없이, 자신만의 감성을 지분으로 한 공동 주주로서 수록곡들을 소화해 냈다. 경량화된 리얼세션을 기반으로, 보통이라면 여러 요소로 분산시켰을 힘을 이번엔 보컬에 상당부분 집중시켰다. 우선 애수 어린 음색으로 어필하는 첫곡 ‘나의 옛날이야기’는 단조롭지만 곱씹을수록 추억을 우러나오게 한다. 댄스음악의 요소를 건반과 화음으로 아날로그화한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는 감정을 배제한 건조한 보컬로 원곡의 정서를 계승하며, 라틴음악의 요소를 차용한 ‘꽃’에서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같은 감수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특히 ‘사랑이 지나가면’과 ‘여름밤의 꿈’은 오리지널의 감수성을 그대로 현재에 안착시키는 뛰어난 호소력을 보여준다. 그의 목소리가 세대를 초월해 누구든 누릴 수 있는 것임을 이번 기회를 통해 확실하게 증명한 셈이다.

마치 강한 적을 만나며 더욱 강해지는 소년만화의 주인공 같다. 첫 번째 상대는 기라성같은 선배 뮤지션들과의 협업이었고, 두 번째 상대는 재즈, 스윙과 같은 루츠 뮤직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들어 그는 일부러 원곡자의 이름이 짙게 새겨져 있는 넘버들을 상대편으로 맞아들였고, 모두 보란 듯 극복해냈다. 가요계라는 전장에서 눈에 띄게 성장하는 그의 발전상을 미루어 보면, 이제 단순한 팬덤을 넘어 조만간 진짜 노래쟁이로서의 자아를 굳히겠구나 싶다. 상승세를 탄 대세가수의 일시적인 성과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강타자들을 상대로 맞이해 세 개의 공만으로 삼진아웃을 잡아내는 이가 또 어디 있겠는가. 똑똑하다 못해 영악스러운 행보가 이제 서서히 그 영향력을 중장년층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아, 다 쓰고 보니 칭찬 일색이다. 딴따라 녹음할때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하, 이지은 너란 여자 참.

– 수록곡 –
1. 나의 옛날 이야기
2. 꽃
3.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4. 사랑이 지나가면 
5. 너의 의미(Feat. 김창완)
6. 여름밤의 꿈
7. 꿍따리 샤바라(Feat. 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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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IU) ‘Last Fantasy'(2011)

평가: 3.5/5

잘해야 본전이라는 것은 이럴 때 하는 말 아닐까. 또래답지 않은 음악성과 ‘좋은 날’의 대히트를 통해 단숨에 ‘대세’로 떠오른 소녀의 십대 시절 마지막 페이지는 초호화 뮤지션들의 참여로 21세기형 블록버스터를 예고한 상태였다. 그로 인해 생겨난 대중들의 기대감은 올해 컴백한 여느 가수들과는 감히 견줄 수 없을 정도의 무게감을 실어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많은 이들은 이 소포모어 작의 결과물이 어중간해서는 안 된다는 날카로운 잣대를 겨눴고, 아주 잘하지 않고서야 좋은 평가를 받기는 힘들지 않을까라는 우려 역시 고개를 들던 시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작곡진의 면모가 공개됨과 동시에 두 가지를 포기해야 했다. 하나는 정규작만이 가지는 일관성 있는 콘셉트적 재미, 또 하나는 그녀 자신이 프로듀싱에 대한 얼마간의 전권을 쥘 것이라는 예상(사실 나조차도 아티스트로서의 성장을 너무 과하게 바란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이었다. 이처럼 결국 전문가들에 의해 무대가 마련되었다면, 결국 흐름에 상관없이 각 트랙에 있어서 작곡가들이 얼마나 아이유의 능력을 잘 이끌어냈느냐, 그리고 아이유 자신은 맡겨진 임무를 잘 이행했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성에 차기엔 약간은 부족한 기운이 감지된다. 크레디트를 보고 입이 쩍 벌어진 이들이 다수 있었겠지만 좋은 스태프가 있다고 명반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무수히 확인해왔다. 기대한 것에서 한 발짝 뒤쳐진 듯한 인상은 무엇보다도 작곡가들의 욕심이 컸음을 반증한다. 아이유와 같은 캐릭터의 가수와 작업한 일이 드문 만큼, 하고 싶은 것을 해보려는 의욕이 과잉이 되어 나타난 탓이다. 많은 이들이 언급하는 ‘어수선함’은 각자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달랐기에 일어난 반작용현상이다.

가장 잘 타협을 본 것은 역시 정석원과 김광진, 라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전형적인 정석원 스타일의 대곡 지향 발라드 ‘비밀’은 김이나가 쓴 섬세한 가사, 적재적소에 파고드는 웅장한 코러스 워크가 ‘소녀의 짝사랑’이라는 테마를 극대화시키며 최고의 첫인상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한다. ‘별을 찾는 아이’에서는 기교를 뺀 자연스러운 보컬에 서정적인 선율이 더해지며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소박한 아름다움을 발한다. 또한 그 내츄럴함을 어쿠스틱 사운드에 얹은 ‘Teacher’는 오히려 작곡가의 색깔이 약했기에 빛을 본 트랙이다. ‘미운 오리’를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뽑았던 만큼 이런 스타일의 곡에서 확실히 강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에 반해 후반부 트랙인 ‘4AM’이나 ‘라망(L’amant)’은 확실히 무리수처럼 보인다. 코린 베일리 래의 감성을 표현하기엔 아직 부족한 탓인지 그저 어른을 흉내 내는 아이의 목소리로 들리는 전자나, 정재형만의 작법을 더욱 무겁게 가져가려다 오히려 주인공의 자리를 지워버린 아전인수격인 후자나 모두 이상적인 협연을 이뤄내지는 못했다. 그 밖에도 6분이라는 시간을 디즈니 식 오케스트라로 덩치만 불린 ‘Last fantasy’, 트렌드를 반영했다고는 하지만 ‘좋은 날’과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 ‘너랑 나’ 등 지적대상 포인트도 상당수 존재한다.

잠깐, 여기까지는 ‘기대했던 만큼 해냈을까’라는 관점이었다. 그렇다면 잠시 힘을 빼고 여러 메인스트림의 결과물들과 나란히 놓고 본다면 어떨까. 재미있게도 ‘좋은 앨범’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앞에서 지적한 곡들도 생각보다 별로라는 것이지 일정 정도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 딱히 모난 부분을 찾기 힘들다. ‘Last fantasy’도 멜로디는 확실히 살아 있고, ‘잠자는 숲 속의 왕자’도 편곡을 조금도 고급스럽게 가져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 원곡에 비해 표현력만큼은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준다. 더욱이 올해 들어 이렇게 곡간의 간격이 없으며,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귀를 자극하는 모음집을 주류의 최전방에서 만나본 적이 있나 싶다. 잘 짜여진 스토리북을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어도 한곡한곡이 들을만한 ‘싱글 콜렉션’을 제작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앞서 언급했듯 실망을 느끼거나 불만을 토로할 법도 한 것이 사실이다. 호화진이 참석했음에도 이렇게 밖에 뽑아내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능력 있는 프로듀서를 기용해 좀 더 짜임새 있게 만드는 것이 낫지 않았겠냐고. 하지만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법이기도 하다. 수많은 리스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아니면 힘들기 때문에 조영철 프로듀서는 단기간 내에 기세를 이어갈 EP를 내는 대신 그 열기가 식더라도 1년을 걸려 유수의 음악가들을 한데 불러 모았다. 이를 단순히 ‘안정을 위한 전략’으로만 볼 수 없는 요인이 여기에 있다.

즉, 아이돌에서 아티스트로 나아가려는 중간점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획이었고, 아이유 자신도 색깔을 잃지 않고 1990년대의 향수를 상당부분 살려 내며 가수로서의 능력도 욕먹지 않을 정도로 발휘해냈다는 것에서 이 소포모어 작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더욱이 다른 아이돌 가수와는 다르게 또래 아이들은 이름도 모르는 생소한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며 자라왔고, 그들을 잊지 않고 한데 불러 모았다는 점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물론 섭외에 공들인 것에 비해 녹음 자체에 기울인 시간이 짧아 보컬에 대한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다. 많은 이들의 지원은 그녀의 잠재력을 확인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고, 쉽게 내려가지 않는 음원 순위와 음반 판매량이 말해주듯 ‘완성도 있는 작품’에 귀착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가수 본인에게 좋은 수업이 되었으리라는 점까지 포함하면 득이면 득이지 잃을 것은 없던 시도였다.

말 많았던 이 한 장의 시디에 붙인 < Last Fantasy >라는 문구를 보고 이보다 더 적합한 타이틀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두 단어가 아이유의 모든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스무 살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그녀가 그려내는 틴에이지 시절의 이야기를 넘어, 그녀의 존재 자체로 이 의미는 이어진다. 아이돌과 같은 스타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친숙함을 지니며, 싱어송라이터인 동시에 가창력도 좋은 가수의 출현, 그것은 유명 뮤지션들조차도 앞 다투어 곡을 써주고 싶은, 한마디로 기다리고 기다려왔던 ‘판타지’같은 존재였다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이 꽤 수준급임에도 불구하고 애써 부정하며 “더 좋았어야해!” 라고 질타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통해 그 생각이 대중들에게까지 미쳐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13곡에 담겨 있는 그녀의 모습을 그 자체로 오롯이 인정해야 할 때다. 아이돌에 안주하지 않고 진짜 음악을 하고자 1990년대의 영웅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는 공로와, 지금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했고 그로 인해 결코 생명력이 짧지 않은 곡들이 탄생했음을 인정함으로서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과대평가와 거품을 걷어낼 시기인 것이다. 이 한 장을 마지막으로 ‘마지막 판타지’라는 짐과 아이돌 스타라는 허물을 벗고, 멀지 않은 미래에 자유롭게 자신의 음악을 하는 20대의 아이유와 다시금 재회하기 위해서.

– 수록곡 –
1. 비밀 
2. 잠자는 숲 속의 왕자 (Feat. 윤상)
3. 별을 찾는 아이(Feat. 김광진) 
4. 너랑 나 
5. 벽지무늬 
6. 삼촌 (Feat. 이적)
7. 사랑니 
8. Everything’s alright (Feat. 김현철)
9. Last fantasy
10. Teacher (Feat. Ra.D) 
11. 길 잃은 강아지 
12. 4AM
13. 라망(L’am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