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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 킴(Sima Kim) ‘Plugged Eyes'(2021)

평가: 3.5/5

10년이라는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우직하게 걸어온 여정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첫 작품이기도 한 < Softness >(2011)의 멜로우함과 부유감은, 신작인 < Plugged Eyes >(2021)에서도 여전히 그 날숨과 들숨을 반복하고 있다. 변한 것이 있다면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서려 있던 불분명함이 뚜렷한 이미지로 각성해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마치 무슨 의미인지 알기 힘들지만 강렬하게 다가오는 어느 한 폭의 그림처럼.

시마 킴(Sima Kim)은 영국, 호주 등 해외를 중심으로 앰비언트 뮤직만을 일관성 있게 쫓아온 아티스트이다. 낯선 이들을 위해 잠시 설명하자면, 앰비언트 뮤직은 한마디로 말해 ‘공간의 음악’이다. 우리가 흔히 음악을 들으며 느끼는 명확한 비트와 멜로디 등의 존재감은 미미하고, 그 공백을 무의미한 음색이 하염없이 떠도는 듯한 느낌. 조금은 막연할 수 있는 미니멀리즘이 지배하는 음악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 듯싶다. 해당 카테고리의 대표 뮤지션이라면 역시 브라이언 이노(Brian Eno)를 들 수 있으며, 대표작인 < Ambient 1: Music For Airports >(1978)은 ‘앰비언트’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작품으로 해당 장르를 이해하는 데에 교과서처럼 언급되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오브(The Orb)나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과 같은 팀들이 대중적인 비트를 접목해 앰비언트 하우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류로 격상시켰지만, 그의 음악은 소위 ‘드론뮤직’이라고 불리는 미니멀리즘을 강조하며 트렌드의 반대편에서 정체성을 구축해왔다. 장르의 본질에 자연의 온화함을 덧댄 < Songs >(2012)가 있었고, 신시사이저를 통해 정적인 사운드 속 역동성을 새겨낸 < Whatever >(2014)도 있었다. 일본의 비트메이커 류에이 코토게와의 합작을 통해 전 세계의 힙스터들의 이목을 모은 < Exchange >(2015)는 어떤가. 아이돌을 제외한 한국의 음악가가 피치포크에 소개된 첫 사례이기도 했던 그의 음악 세계는, 큰 줄기는 유지한 채 과감한 시도를 거듭했던 일종의 실험실과도 같았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통한 인간성 삭제로 음악 자체의 의미를 탐구한 < You Won’t Find My Punchlines Here >(2016)과 적극 개입한 전자음이 잔뜩 날을 세운 < It’s A Dream, Take Control >(2016), 43분여의 장대한 모호함을 통해 듣는 이들에게 음악이라는 존재에 의문을 던지는 ‘Ecology of sound’(2016)로 이어지는 펀치라인 트릴로지 이후 꼭 5년. 갑작스러운 활동 재개로 생존을 알린 그의 신보 < Plugged Eyes >(2021)는 잠시간의 익숙함 후에 파도와 같은 낯섦이 몰려오는 작품이다. 첫 감상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잔존하는 정서는 전과 유사하되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꽤나 큰 변화가 일어난 탓이다.

이전 작품과 비교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차이점은, 소리들이 그려내는 스케이프가 이전의 모호함과 달리 뚜렷한 이미지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반적으로 명확해진 사운드와 맥락을 갖춘 선율의 전개는 마치 어느 시각적 심상을 청각으로 풀어낸 듯한 인상을 가져온다. 인트로의 메인 테마를 중심에 놓고 여러 겹의 사운드레이어가 입체적인 공간감을 부여하는 ‘Temple’은 이를 나타내 상징적 트랙. 미처 조율이 되지 않은 애처로운 피아노 연주가 여러 효과음들에게 공격받는 듯한, 인간성 거세의 삭막함이 느껴지는 ‘Vanished fantasy’까지. 앞선 두 곡만 듣더라도 예전의 그와는 다른 에고가 전개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러한 시각적 심상의 청각화는 그가 공백 기간 동안 전념했던 아트스쿨에서의 경험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디자인과 시각예술을 공부하며 생겨난 또 다른 표현방식이 음악적 자아와 결합해 태어난 또 다른 아이덴티티. ‘음악’을 듣는 것에서 나아가 보이는 것으로도 완성될 수 있음을 시도해보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비교적 잔잔한 물결의 한 가운데에 금방이라도 파고가 일어날 것만 같은 폭풍전야의 세계가 눈앞에 그려지는 ‘Corridor’, ‘Vanished fantasy’의 결을 이어가되 역동적인 비트가 더해져 그 골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앨범 타이틀과 동명의 곡 ‘Plugged eyes’까지. 홈메이드 신시사이저로 구축한 가상의 세계는,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되 가상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중남미 문학의 마술적 리얼리즘과도 맥이 닿아있는 듯한 환상성, 비일상성이 깊숙한 곳에서 까만 얼굴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소개 글에는 인류가 사라지고 자연과 인간의 유물인 기술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관찰한 결과 태어난 작품이라고 적혀 있다. 이처럼 기계화가 가속되어 가는 사회를 향한 시선은 여전히 냉소적이다. 다만 청각과 청각의 일대일 매칭을 이루었던 지난 작품들과 달리, 시각과 촉각 등 공감각적인 영역으로 나아가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보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전보다 선명해진, 손을 뻗으면 잡힐 것만 같은 그런 소리 세계를 통해 그는 여러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그저 수동적인 청취만으로는 그 맥락을 잡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대중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아티스트의 친절함이 미덕인 시대다. 앰비언트라는 생경하고 불친절한 걸어온 그에게, 기계화, 시스템화 되어가는 음악 신에 있는 우리는 과연 어떤 대답을 건넬 수 있을지. 이 작품이 가지는 의미는 수록곡들을 대하는 각자의 태도에 달렸다. 그가 역설적으로 회복을 종용하고 있는 듯한, 스스로 생각하고 사유하는 ‘인간적인’ 애티튜드 말이다.

-수록곡-
1. Temple
2. Vanished fantasy
3. Corridor
4. Plugged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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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IU) ‘LILAC'(2021)

평가: 4/5

스스로 만들어 낸 기적에 대한 이야기

이 ‘소리로 만든 꽃’엔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다. 가수로서의 10년을 담아낸 이 앨범이 나의 10년 또한 되돌아보게 만드는 탓이다. 이번까지 그의 작품을 글로 남기는 것도 벌써 여섯 번째. 선율로 수놓은 언어들에 대한 답장을 꽤나 꾸준히 써내려 온 셈이다. 그리고 한 챕터를 정리하는 소회를 마주하니, 이제서야 그의 노래들이 결코 적지 않은 삶의 실마리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아마 나만이 느끼는 감상은 아닐 것이다. 환호의 데시벨은 달랐더라도, 그의 음악이 새겨져 있는 인생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아티스트 본인이 언급하듯, 신작은 그야말로 ’20대를 닫는’ 앨범이다. 흔히 가장 찬란하다고 여겨지는 연령대를 거치며 느낀 사랑과 삶의 태도, 이에 대한 회고와 앞으로의 다짐을 빼곡히 채워 놓았다. 자신의 메시지나 의도를 강하게 심어 놓는 음악적 지향점도 여전. 감상이 반복될수록 듣는 이의 자아에 개입되며 여러 갈래의 공감 및 해석을 낳게 하는 속성은 이전과 일맥상통하다.

그렇다고 표현방식까지 반복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부 인재 중심의 작업방식에서 탈피, 외부스탭을 대거 영입해 다채로움을 더했다는 점이 포인트. 특히 아이돌 그룹에서 흔히 쓰는 다인 협업 기반의 트렌디한 사운드 이식이 가장 큰 변화라 할 만하다. 이는 선공개곡 ‘Celebrity’를 통해 어느 정도 예고되기도 했던 내용. ‘화려함’을 더하고 싶었다는 말처럼, 보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사운드 메이킹이 우선적으로 캐치되는 부분이다.

부족하다 싶을 정도의 미니멀한 비트와 호흡을 적절히 활용한 보컬 간의 미묘한 줄다리기가 이색적인 ‘Flu’, 두아 리파의 ‘Don’t start now’가 떠오르는 밴드 편성의 그루브한 디스코 넘버 ‘Coin’ 등은 그런 절치부심이 꼼꼼하게 구현된 트랙들. 더불어 발음이나 억양에 강조점을 둔 보컬 운용 또한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케이팝 프로덕션의 스탠다드를 자신에게 맞는 옷으로 재단하기 위해, 가창의 주안점을 가사 전달보다는 곡 무드와의 조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 초면에는 굳이 아이유까지 이러한 작업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끝끝내 인정할 만한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역량을 재확인하게 만든다.

두번째 챕터는 바로 동료 뮤지션과의 협업. 이번에 호흡을 맞춘 파트너들의 면면을 보자면, 확실히 블랙뮤직에 포커싱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빈티지한 키보드 루프로 현실감 있는 연출의 연인관계를 투사하는 ‘돌림노래’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얼의 취향이 전면에 드러나는 ‘봄 안녕 봄’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고전적인 악기 구성과 중저음 위주의 단단한 목소리로 완성한 레트로 소울 발라드가 큰 여운을 남기는 덕분이다. 인트로를 듣자면 휘트니 휴스턴의 여느 넘버가 생각날 법도. 이처럼 리듬이 부각되는 결과물의 비중을 높여 생생하고 역동적인 음악상을 그려내고자 했으며, 듣는 입장에서는 전작 < Love Poem >과의 구분점으로도 인식이 된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역시나 그가 남기는 메시지들이다. 특히 전하고자 하는 심상과 이를 보조하는 음악과의 호흡은 놀라울 만큼 정교히 들어맞는다. ‘LILAC’은 펑키한 곡조로 빚어낸 화사한 분위기 아래 열렬히 사랑했던 20대와 작별하는 ‘환희’를, ‘어푸’는 오마이걸이 부른 ‘Dolphin’의 답가 마냥 음절 반복을 통한 프레이즈로 현 시점에서의 ‘의연함’을 이야기한다. 모두 과거의 경험으로 성장한 지금의 자신이 반영된 자화상 같은 노래들.

그 서사의 절정을 상징하는 ‘아이와 나의 바다’의 드라마틱함은 가장 큰 소구력을 갖춘 지점이기도 하다. 장엄한 스케일 속 망망대해로 뻗어 나가는 울림이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게 된 지난 10년의 여정과 맞물려 큰 감동을 선사한다. 여기에 함께 해 온 이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는, 아날로그 감성 물씬 풍기는 ‘에필로그’라는 이름의 엔딩 크레딧까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듣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하는 대중적 감각을 어김없이 발휘하고 있다.

다양한 것들을 큰 계산 없이 수록한 느낌이라 다소 어수선하게 다가올 수 있는 구성이기도 하다. 이를 극복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커리어 기반의 스토리텔링이 부여하는 통일성과 몰입감이다. 많은 것을 이뤄온 10년. 누군가는 지금의 성과가 있었기에 ‘미련없이 다음으로 갈 수 있는’ 자신감을 부여해주는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쉬는 시간 없이 부딪힌 자기주도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꾸준히 쌓아 올려 구축한 ‘리얼리티’야 말로 이 작품의 핵심임을 강조하고 싶다.

흔들리더라도 결국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뚜렷한 자기주관. 안정을 피해 반보 정도 앞서 듣는 이들을 이끄는 파격. 이 두 축이 일궈낸 20대의 마지막. 일견 화려하게만 보이는 작품의 이면에는, 과거의 혼란을 딛고 기어이 스스로 자신을 증명해 낸,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피어난, 그리고 지금의 커리어를 다시금 갱신해 낼 인간 이지은의 실루엣이 투영되어 있다. 지난 10년 동안 일어났던 기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노력으로 일궈낸 필연이었다는 것처럼.

– 수록곡 –
1. 라일락
2. Flu 
3. Coin
4. 봄 안녕 봄
5. Celebrity
6. 돌림노래 (Feat. DEAN)
7. 빈 컵(Empty Cup)
8. 아이와 나와 바다
9. 어푸(Ah puh)
10.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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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보이 ‘시공간’ (2021)

평가: 3.5/5

일상적인 감성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그의 특기가 전면에 드러나 있는 트랙이다. 어찌 보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남녀관계를 태양계를 비롯한 여러 소재에 빗대어 흥미롭게 표현했고, 랩-싱잉 기반의 풍부한 선율감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그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을 명확히 캐치하고 있다. 곡 전반을 감싸는 신시사이저의 멜로우함, 여기에 미니멀하게 얹히는 딱 필요한 만큼의 비트가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그것이 일정한 장르를 넘어 ‘보편적인 음악’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이 곡의 장점. 꾸준함도 모자라 갈수록 상향 평준화되는 그의 노래들, 그야말로 ‘믿고 듣는 기리보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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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치, 영케이(Young K) ‘What a wonderful word’ (2021)

평가: 3/5

박문치라는 이름만 보고 과거에 빚진 레트로 댄스 트랙을 우선적으로 떠올리면 곤란하다. 이 노래는 ‘프로듀서’로서의 존재감을 강조하는 감미로운 알앤비 트랙이기 때문. 리드미컬한 비트 위를 교차하는 기타와 키보드의 섬세한 터치를 중심으로, 사랑의 설렘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영케이의 보컬이 지휘자의 의도를 넘치게 소화하고 있는 느낌. 다소 무난한 느낌이긴 하나, 좋은 멜로디와 탄탄한 편곡으로 이루어진 그 뼈대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낭만을 선사한다. 가창자에게는 그룹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감성을, 프로듀서에게는 어떠한 틀에 머물지 않는 역량을 함께 전달하는, 꽤 괜찮은 사랑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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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밴딧(Clean Bandit) ‘Higher (Feat. iann dior)’ (2021)

평가: 2.5/5

‘Tick tock’ 이후 반년만의 싱글로, 선율이 명확한 EDM 사운드를 들려주는 팀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트랙이다. 이번에 파트너로 선택된 이는 24k골든(24kGoldn)의 ‘Mood’에 목소리를 보태며 생애 첫 빌보드 핫 100 정상을 밟기도 했던 신예 래퍼 이안 디오르. 대중적인 포인트를 워낙에 잘 잡아내는 팀인 만큼, 전반적으로 크게 모나지 않은 보편적인 넘버를 만드는 데 주력한 느낌이다.

초반에 정적으로 흐르는 키보드와 비트, 여기에 하나씩 슬며시 발을 담그는 여러 가지 신시사이저의 소리들이 다층적인 레이어를 구성. 이어 잠시 완급을 조절하는 듯 여백을 두었다 다시금 소리들을 불러들이며 드롭으로 나아가는 구성은, 일견 전형적이지만 귀에 착 붙는 중독성 덕에 밉지가 않다. 마치 휴양지에 온 듯한 무드와 이에 잘 부합하는 유려한 이안 디오르의 음색이 크게 호불호 없을 댄스뮤직을 만들어 낸 인상이나, 너무 뻔하게 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드는 작품. 누가 틀어주면 듣긴 듣는데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기엔 조금 매력이 덜한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