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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노메코(Penomeco) ‘ [ Rorschach ] Part 2’ (2023)

평가: 3.5/5

페노메코가 지닌 음악적 이중인격은 양면의 경력을 쌓아 올렸다. < Garden >과 < Dry flower >에 싱잉 랩이 만개하는 와중에도 이따금 래퍼로서 역량을 의심받을 때마다 광적인 벌스를 선보이며 좌중을 침묵시키기도 했다. 이 우직한 행보가 어느새 10년, 그는 자기 정체성을 확증하기 위해 ‘로르샤흐’ 심리검사를 수행한다. 잉크를 흩뿌린 검은 종이 위 두 번째 자아의 본격적인 각성을 꾀하기 위함이다.

웅장하고 냉철한 비트 위 타겟을 향한 정밀한 사격이 이어진다. 절친한 지코와 함께 ‘Rindaman’과 ‘피융!(Pew!)’을 연사한 1부에 이어 다시금 ‘Ghost’로 노력과 애정없는 래퍼들에게 날카로운 비수를 던진 것이다. 타격감 넘치는 구절 사이 어색하지 않게 혼합된 멜로디컬한 랩과 착 감기는 후렴구의 조합은 페노메코 완성본 그 자체며 절정에 다다르기 위한 예열로써 적합한 인트로다.

주도권을 거머쥔 페르소나는 그가 자주 되뇌듯 전례 없는 걸 내놓는다. 타이틀 ‘X’는 ‘전사의 후예’를 재료 삼아 한국의 올드스쿨 힙합을 세밀히 정제하고 리모델링한 작품. 탄탄한 기본기는 물론이고 과거로부터 공수해 온 투박한 플로우와 분위기를 촌스럽지 않게 꾸민 덕분에 업계와 본인 모두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탄생했다. 자연스레 서태지가 연상되는 도입부와 에이치오티(H.O.T.)를 오마주한 가사를 통해 누군가는 유년기를 회상하고 누군가는 신선한 자극을 받게 될 테다.

다분히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접근이다. 2021년 창모가 < Underground Rockstar >의 ‘태지’로 자신의 독보적인 위치를 서태지와 일치시키며 그 시대를 추억했다면, 페노메코는 1990년대 전체를 현대로 끌어와 세대 간 연결에 집중했다. 시작은 당대의 아이돌을 연구하며 근간을 찾고 현재 본인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확신하는 구도자의 자세로, 그 끝은 힙합의 문을 열어준 X세대를 향해 존경을 표하는 방식이다. 야성적인 표현도, 섬세하게 고심한 태도도 더없이 진중하다.

물론 타이틀의 존재감으로 인해 중후반부의 반향은 그다지 크지 않다. 싱잉 랩의 또 다른 강자 루피와 합을 맞춘 ‘Bangers’는 두 사람에게 기대한 시너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며 적당한 연결부로만 기능한다. ‘나를 넘어서는 게 first’ 등의 가사로 개인적인 경험에 집중한 ‘Yak yak’이나 감성의 손길이 닿은 ‘23 part. 2’는 그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맡는다.

2부로 구성된 [ Rorschach ] 시리즈는 그간 충분한 증명에도 주목도가 높지 않았던 음반 활동의 갈증을 통쾌하게 씻어낸다. 오래도록 조준점을 노려본 페노메코는 본인도 수긍할 만한 명분과 대중 취향 사이 어느 지점을 찾아 정조준했다. 확신에 찬 검지로 묵직한 방아쇠를 당긴 순간,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탄도에 흔들림과 빈틈은 없었다.

– 수록곡 –

1. Ghost (Feat. 개코 & 바이스벌사) 
2. X 
3. Yak yak
4. Quick fast
5. Bangers (Feat. 루피)
6. 23 p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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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미스나인(fromis_9) ‘#Menow’ (2023)

평가: 2.5/5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후광을 진 뭇 그룹이 첫 환희를 넘지 못하고 스러질 때 코발트 빛 한 줄기만은 찬란했다. 쉬운 노래와 단번에 휘감기는 후렴구를 곱한 프로미스나인의 정공법은 효과적이었고, ‘We go’와 ‘DM’부터 8인 체제 전환을 앞두고도 건재함을 과시한 ‘Stay this way’까지 짙은 청량미를 덧칠했다. 독자 영역을 형성해가는 와중에 첫 정규 < Unlock My World >, 그리고 타이틀 ‘#Menow’는 다음 단계를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해야 했다.

어딘가 옅다. 물론 중심을 잡는 묵직한 베이스와 맥시멀한 반주는 밝고 활달한 팀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펑크 리듬 기타가 새로이 지원 사격하는 모습도 신선하다. 다만 적절한 전개 위 채색을 맡은 멜로디가 흐리게 맴돈다. 선명도 낮은 후렴구는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고, 든든한 보컬 투톱 송하영과 박지원이 활약할 구간 역시 부재하다. 스케치는 근사하지만 원색을 잃은 곡에 여름날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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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스 브라더스(Jonas Brothers) ‘The Album’ (2023)

평가: 2.5/5

조나스 브라더스의 전진과 결속에 음악은 늘 든든한 조력자였다. 디즈니 프로그램 < 캠프 록 >에 출연해 하이틴 스타로 자리매김할 때는 청소년 층에 수용성 높은 틴 팝과 팝 펑크가 곁을 보좌했고, 팀의 휴지기를 깨고 재결성에 기여한 공신도 복귀 음반 < Happiness Begins >였다. 2019년 성숙미 물씬한 ‘Sucker’를 차트 1위에 올리며 건재한 힘을 과시한 그들이 또한번 엔진을 가동한다. 숨 가쁘게 변화하는 세상을 마주한 형제들이 음악과 동행하는 모습을 다시금 짚어볼 기회다.

폴리스나 포스트 말론을 오마주했던 전작이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사전 조사 성격이 짙었다면, 신보는 확장의 방향성이 명확하다. 2기를 맞은 조나스 브라더스가 본격 런칭한 콘셉트는 레트로. 들썩거리는 리듬을 얹은 ‘Miracle’과 타이틀 ‘Waffle house’는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로 회귀하고, 화음에 치중한 ‘Montana sky’와 ‘Wings’도 비지스와 두비 브라더스를 복각한다. 오랜 팬들을 결집하는 데서 나아가 실효성이 보증된 복고 전략으로 여러 세대를 겨냥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구성은 삐걱거린다. 프로듀서 존 벨리온의 지휘 아래 꾸려진 쉬운 멜로디들은 가볍고 산뜻하지만, 유행을 넘어 대세로 자리잡은 1970년대와 80년대 질감의 현대적 변용에 있어 세심함이 부족하다. 펑크(funk) 넘버가 조심스레 중심을 잡은 가운데 브라스 세션까지 추가된 ‘Celebrate!’의 난입은 부담스럽고, 뜬금없이 어쿠스틱 여운을 강조한 ‘Walls’처럼 잔잔한 흐름도 허용한 탓이다. 여러 트랙들이 사그라들 때 그나마 ‘Sail away’의 여운만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소리에 어우러지는 글감도 독창성을 외면했다. 청바지와 마리화나, 영화 배우 제임스 딘과 래퍼 제이 지(Jay-Z)를 비례식으로 제시한 ‘Americana’의 노랫말은 다소 작위적이며, 2007년 개봉한 영화와 동명인 ‘Montana sky’도 출중한 선율에 비해 가사는 미국 도시를 어색하게 나열하는데 그친다. 균열은 사적인 이야기를 들출 때 더 벌어진다. 삼 형제의 전성기 시절을 회고한 ‘Waffle house’나 아버지의 심정을 담은 트랙 ‘Little bird’ 등이 수록된 후반부는 주제를 더욱 흐리게 만든다. 사운드와 결을 맞추며 추억 회상을 위한 소재를 골랐으나 짜맞춘 인상이 강하다.

물론 단출한 제목 < The Album >이 암시하듯 진지함이 감상에 필수 요소는 아니다. 의도와 형식은 뻔하지만 작 전반을 감싸는 단란한 분위기는 이 앨범에 여유를 부여하기에 충분하다. 어느새 30대가 된 신대륙의 아이돌은 음악이라는 오랜 친구와 함께 옛이야기를 나누며 누구나 쉬이 접할 수 있는, 미국식 ‘응답하라’ 시리즈 한편을 내놓았다. 어찌 됐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보이밴드의 매력은 이런 유쾌함과 솔직함이 아닌가. 여전히 조나스 브라더스다운, 미국적인 색채가 참 뚜렷한 음반이다. 

– 수록곡 –

1. Miracle
2. Montana sky
3. Wings
4. Sail away 
5. Americana
6. Celebrate!
7. Waffle house
8. Vacation eyes
9. Summer in the Hamptons
10. Summer baby
11. Little bird
12. Walls (Feat. Jon Bel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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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센치(10cm) ‘부동의 첫사랑’ (2023)

평가: 3/5

우리가 왜 십센치의 작은 이야기에 감응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는지 다시금 깨닫는다. 어쿠스틱 선율에 솔직한 경험담을 읊는 청춘 보컬의 합작, ‘부동의 첫사랑’은 공감이라는 팀의 근간에 집중했다. 핵심은 단연 담백한 노랫말로, 가장 소중하고 부끄러웠던 순간을 파고드는 낱말이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는 추억에 호소한 덕분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도 변하지 않는,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중의적 의미에서 부동(不動)도 맞춤형 수식어다.

절절하거나, 새벽 감성으로 침전하거나, 혹은 개성이 과하든가 하는 최근 인디 신 흐름 속 산뜻한 틈새다. 스쿨 밴드의 연습 장면이 자연스레 연상되는 반주도 걸리는 부분 없이 깔끔하고, 권정열의 목소리도 늦깎이 봄을 수놓기 충분하다. 발매일에 맞춰 악기를 든 수많은 군중과 꾸린 합주 플래시몹도 이 공감대를 파고들며 곡 자체가 새롭거나 특징이 없어도 이러한 요소들이 4분이 넘는 러닝타임도 선선하게 채운다. 십센치 톤으로, 최근 자취를 감춘 첫사랑에 대해 영리하게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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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KPOP Album

애쉬 아일랜드(ASH ISLAND) ‘Rose'(2023)

평가: 2.5/5

처절한 고독을 울부짖었던 ‘Paranoid’부터 잔망스러운 리듬으로 풋풋한 청춘을 그려낸 ‘멜로디’까지, 한 꺼풀씩 어린 시절의 아픔과 고독의 그림자를 벗겨온 애쉬 아일랜드는 순차적인 자기 치유를 이뤄냈다. 이에 발맞추어 편집증이나 악몽을 외치던 음울한 힙합은 옅은 무채색의 틀만 남겼고, 사랑과 이별을 읊는 팝으로 영역을 넓혔다. 힘이 강한 멜로디와 일반적인 주제로 꾸며진 < Rose > 역시 이러한 접근성을 더 높여 다가간다.

단짝 프로듀서 토일 대신 지휘봉을 잡은 보이 콜드는 특유의 친화력과 수용성으로 아티스트의 확장을 꾀한다. 팝과 힙합을 넘나드는 중심부는 일견 비슷해 보여도, 선이 굵은 기타 스트로크나 짙은 서정성의 난립은 분명 낯설다. 애쉬 아일랜드는 거친 야성은 감추고 목소리의 강약을 조절하며 이에 대응했다. 밴드 사운드를 비롯해 기존 기조는 유지하되 약간의 세련미를 더한 우회로, 여리여리한 목소리를 강조한 ‘Rose in the heart’와 ‘시간은 왜 앞으로만 가’가 신보의 이러한 변화를 대표적으로 상징한다.

그리하여 그가 도달한 이상향은 팝도, 록도, 힙합도 아니다. 물론 장기인 캐치한 후렴구를 삽입하기에는 적합한 환경으로, 감성적인 선율과 쉬운 글감으로 귀결된 이 종착지에 어느 정도 수긍은 간다. ‘작별인사’와 ‘Wonder’에서 그는 록 밴드의 프론트 맨으로 귀에 쉬이 남을 만한 멜로디를 쏟아내고, ‘Drop top’과 ‘Trapped’에서는 표류하는 이모(Emo)와 트랩의 흔적을 찾으며 충실히 노래한다. 과감한 결단이었다. 래퍼로 업을 시작한 그가 랩은 최대한 요약한 채 보컬만으로 승부를 본 것이다.

이 지점에서 단순히 정체성의 문제만이 아닌 근본적인 논점이 발화한다. 본질은 곡 하나하나가 단일로는 적당한 만족감을 주지만, 꿰어진 상태로는 소구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U know it’ 등 몇몇 수록곡에서는 촘촘한 음계가 눈에 띄나 벌스로 갈수록 그 힘은 떨어지고, 청취 시간을 흥미롭게 채워 넣기에는 대부분의 트랙 분위기가 비슷하다. 칠린 호미의 타이트한 랩이나 루이의 공격적인 피쳐링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사실은 앨범의 단조로운 흐름을 더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럼에도 ‘작별인사’의 기세는 오래도록 뜨거울 테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너른 장르 수용에 기반한 일반화는 그가 지닌 차별점을 뭉툭하게 다듬었고, 동시에 범용성까지 넓혀 왔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일찍이 팝 지향성을 선포했던 < Island >부터 예견된 결과물이다. 그러나 일관된 방향과는 별개로 설득력 있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 Rose >라는 낭만적인 도전장을 팝에 전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애쉬 아일랜드 장르 자체의 정당성에는 의문을 남겼다.

– 수록곡 –

  1. 작별인사
  2. Wonder
  3. Rose in the heart
  4. Trapped (Feat. 칠린 호미)
  5. U know it (Feat. 루이)
  6. Drop top (Feat. 더 콰이엇)
  7. 거짓말이라도
  8. Bad words (Feat. 비오)
  9. 시간은 왜 앞으로만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