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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M이즘x문화도시 부평] #2 홍이삭

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 부평과 함께 하는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관련한 이곳 출신의 여러 뮤지션들이 자리해 그들 자신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두 번째 주인공은 JTBC 오디션 프로그램 < 슈퍼밴드 >를 거쳐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홍이삭이다.

홍이삭은 꾸준히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넘고자 한다. 어쿠스틱 기타 한 대와 함께 무대에 올랐던 신인 시절, 긴 무명의 끝에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자 한 ‘하나님의 세계’, 오디션 프로그램 < 슈퍼밴드 >를 거쳐 영화 음악까지 계속해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것이 갈팡질팡하며 자신의 길을 찾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겉으로 그렇게 볼까봐 나름 걱정이지만 저는 확실히 제 길을 찾아가고 있어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깊이와 폭을 넓혀가고 싶습니다.” 인터뷰 내내 홍이삭은 ‘새로움’과 ‘발전’, 그리고 ‘과정’과 같은 어휘를 반복적으로 동원했다.

“음악 하는 사람으로 자리를 잡은 지금을 어떻게 다져 놓아야 계속해서 더 좋은 음악을 오래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많은 갈등과 다짐이 교차했지만 그의 시선은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인해 모두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홍이삭은 어떤가.

< 슈퍼밴드 > 출연 이후 쉬지 않고 계속 달려왔어요. 영화 < 다시 만난 날들 >(가제) 주연을 맡아 촬영도 했고, 음악 감독을 겸하는지라 작업도 했고요. < 놓치고 싶지 않은 사소한 것들 > 미니 앨범도 발표했죠. 물론 계획했던 많은 것들이 취소되어 슬프기도 하지만, 영화 후반 작업을 하며 재충전 및 돌아보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만난 날들 >의 개봉 스케줄은 어떻게 되나.

영화제를 통해 먼저 공개할 것 같아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개막작 혹은 폐막작, 혹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생각하고 있어요. 다만 코로나19 여파로 영화제 역시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추세라… 걱정이네요.

영화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쓴 심찬양 감독님이 학교 선배에요. 2017년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 어둔 밤 >이라는 작품으로 최고상인 코리안 판타스틱 작품을 수상했죠. 그 후 감독님께서 제 음악을 소재로 해서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는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생겨 제작까지 들어가게 됐어요. 원래는 음악 감독으로 참여하는 거였는데, 촬영하는 도중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서 결국 제게 주연 제의가 왔어요. 연기 경험 없는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 상까지 받은 < 어둔 밤 >을 보고 저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영화의 음악감독을 맡았다사운드트랙을 어떤 음악으로 채웠나.

저의 20대 초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어요. 기타치고 노래하던, 지금보다 훨씬 날 것이던 시절의 음악이죠. 그렇다고 감독님께서 아마추어 느낌을 바라진 않으셨어요. 어떻게 보면 그 때 음악들이 어쿠스틱 기반이긴 해도 꽤 매니악했는데, 그 음악의 선이 영화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음악의 방법이기는 하나 날 것이던 시절을 담아내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을 듯 하다.

그 지점이 힘들었어요. 습작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항상 발전하고 싶고 지금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표현하고 싶어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벗어나고 싶은, 잊고 싶은 모습의 저를 영화 음악에 담아야 했죠. 감독님과 이야기하면서 어린 시절의 저를 데려오는 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홍이삭이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나 현재 새로 추구하는 음악은 어떤 형태인가.

제가 부르기 편한 노래, 잘 부를 수 있고 표현도 잘 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은게 요즘 마음이에요. 대중이 제게 원하는 것과 제가 지향하는 것의 중간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랄까요. 우선은 기타를 내려놓고자 합니다.

기타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의외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깊이와 폭을 넓히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주셨으면 해요. 기본적으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자세를 벗어나고 싶어요. 곡 작업할때도 피아노와 기타 비율을 반반으로 가져가고 있거든요.

기타 작업과 피아노 작업의 차이가 있나.

정서가 다르죠. 편하게 칠 수 있는 건 기타에요. 그러다보니 말을 하면서 곡을 쓰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나의 이야기, 나의 정서가 더 많이 담기는 것 같아요. 피아노로 곡을 만드는 건 일종의 ‘조각’ 같아요. 정서를 만들어두고 그 과정에 닿기 위해 하나하나 소리를 조각하고 합쳐가는 과정이랄까요. 기타는 주관적이고, 피아노는 더 많이 계산해야 해요. 발성도 다르고요.

실제로 홍이삭은 버클리 음대 음악교육과에서 음악을 배웠다대위화성 등을 활용해 더 다양한 장르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지르는 음악, 록 음악보다 R&B, 블랙 뮤직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과거 뮤지션 중에는 레이 찰스(Ray Charles), 현재 뮤지션 중에는 갈란트(Gallant)를 생각하고 있고요. 학교에서 기초적인 지식을 배우기도 했지만 지금도 꾸준히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이제서야 마이크를 잘 쓰는 방법을 알게 된 거 같아요.

그렇다면 슈퍼밴드 >에서의 모습은 일탈에 가까웠던 것 아닌가.

< 슈퍼밴드 >는 가만히 있어도 저를 털어낼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었죠.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 자신의 한계를 좀 깨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래서 ’너와 함께’라는 곡을 가장 좋아해요. 2라운드 3라운드와 달리 4라운드를 준비하는 동안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음악을 들어보며 표현과 방향을 이 쪽으로 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어요. 그렇게 제 자신을 다 < 슈퍼밴드 > 이후 오히려 기타를 더 배제하게 된 것 같아요. 피아노를 더 많이 치고 있죠.

인천 출신이다. 인천에 대한 기억은.

저는 인천에서 태어났고 현재 제물포 쪽에 살고 있어요. 사실 완벽한 인천 사람은 아니죠. 인천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부산에서도 살았고, 포항에서도 살았고, 아버지께서 전근을 가셔서 파푸아뉴기니에도 잠깐 살았으니까요. 그래도 매 년 방학 때마다 항상 인천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어요.

인천에 대한 자부심은.

일단 재난 지원금이 아직 안 나왔고요(웃음). 농담이고. 인천이라는 도시를 속속 찾아다닌 건 굉장히 최근의 일이에요. 동인천의 헌책방거리, 차이나타운, 근대화거리 등을 다녀보면 낮은 건물들, 그리고 예스러운 분위기가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줘요.

솔직히 좋은 데가 많다.

인간미를 느껴요. 정제된 느낌은 아닐 테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이 잘 모르는 좋은 곳들도 많이 있어요. 언젠가는 음악의 소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평소에 서울을 너무 자주 오고가고 인천은 잠깐만 머무는 곳이라 그 점이 조금은 스트레스기도 합니다.

2013년 제24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봄아’로 동상을 수상했지만 홍이삭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것은 2015년 발매한 싱글 ‘하나님의 세계’다. 버클리 음대를 휴학하고 뜻하지 않은 부정교합수술을 앞둔 상황에서 써내려간 곡이다. 이 곡으로 그는 엠넷 예능 프로그램 < 너의 목소리가 보여 >에 출연 제의를 받게 된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홍이삭을 CCM 가수로 인식하지만, 그는 이 시기를 ‘엇나가지 못하는 착한 사람이었던 시절’이라 정의하며 음악에 대한 현재진행형 고민을 털어놓았다.

스트리밍 서비스, 인터넷 검색 시 홍이삭에게는 < 슈퍼밴드 >와 ‘하나님의 세계’, 그리고 최근 발표한 ‘네가 없는 하루’가 제일 먼저 뜬다.

‘하나님의 세계’는 제가 기독교 환경에서 오래 자라서 나온 곡이에요. 부정적인 의미는 전혀 없고요. 제 삶, 삶의 방식, 생각하는 방향, 가치를 두는 부분, 사람을 대하는 태도 모두가 기독교의 환경에 속해 있었던 거죠. 그렇게 살아오다 부정교합 때문에 수술을 하게 됐는데 그 당시 굉장히 힘들었어요. 부모님과 주변인들이 제게 미안해하는 모습도 좋지 않았고, 다시는 노래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죠. 그 때 스물다섯까지 살아온 저의 철학과 삶의 방향, 생각의 과정을 정리하고자 만든 곡이 바로 ‘하나님의 세계’에요.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제 철학과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죠.

기독교적 환경이 음악에도 영향을 주었을 텐데.

물론이죠. 저는 저 자신을 ‘학습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선 부모님께서 초등학교 선생님이세요. 그리고 아주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어요. 성가대도 하면서 교회 생활을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주위 분들이 원하시는 대로 올바르게 잘 자라고 싶었고 잘 배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다보니 지금 사람들이 저를 올바르게 봐주시지만 반대로 저는 엇나가지 못하는 게 답답하기도 해요. 음악을 하게 된 것도 제게는 ‘분출’의 의미가 있었어요. 올바른 이미지, 학습의 과정을 벗어나고 싶어서 다양한 시도를 더 고민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가장 최근 발표한 ‘네가 없는 하루’는 어떤 마음으로 만든 곡인가.

앞서 제가 말씀드린 저의 환경을 벗어나 또 다른 곳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만들었어요. 작곡가 입장에서는 ‘나도 이렇게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노래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노래를 불러야 할까’를 강조하고자 했죠. 이전에는 노래할 때 중심을 항상 제게 뒀어요. 하지만 ‘네가 없는 하루’에서는 듣는 분들을 더 많이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잘 들어주실 수 있을까?’를요. 분기점이 된 곡입니다.

거듭 자신이 속한 세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강조하고 있다아티스트적 고민이 가득 차 보인다.

이런 고민을 제가 20대 후반부터 해왔어요. ‘하나님의 세계’ 이후 많은 CCM 쪽 관계자 분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신앙의 영역으로는 훌륭하나 음악의 방향으로는 저와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과거가 싫은 건 아니에요. 다만 다음을 바라보고 고민하는 과정인거죠. 영화음악도, ‘네가 없는 하루’도요. ‘하나님의 세계’가 진정한 저를 들려주겠다는 마음이었다면, ‘네가 없는 하루’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분들께 닿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 곡이에요. 사람들이 보다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선을 찾고자 했죠.

지난해 12월 홍이삭은 두 번째인 EP < 놓치고 싶지 않은 사소한 것들 >을 발표했다. 2008년부터 작곡해온 곡들을 모은 앨범은 어쿠스틱 위주의 소박한 편성인 돋보인다. 듣는 순간 즉각 자신의 음악세계를 천천히 들려주고자 하는 의도임을 알 수 있다.

홍이삭은 앨범에 대해 “내가 왜 이 곡을 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봤어요. 틀을 깨지 못한 답답함을 토로하면서도 나 자신을 위로했던 과정을 담아 갈무리하는 의미가 있었죠.”라고 설명했다. 셀프 힐링 앨범? 하지만 동시에 ‘과거보다 현실이고 싶은 마음’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홍이삭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

‘하나님의 세계’ 때까지는 저를 담는 일기였고요, 지금은 조각해야 할 대상이라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올 앨범에 대해 이야기해준다면.

아직 정규 앨범에 대한 구상은 하지 못하고 있어요. 앞서 말한 그 조각품이 적어도 서너 개는 나와야 전체적인 틀이 잡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 아이콘혹은 롤 모델이 있나.

보통 저 같은 친구들에게는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가 우상이죠. 저는 나름의 깊이도 있고 쉽게 쓰는 아티스트를 추구하는데 사실 그렇게 다차원적인 분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존 메이어(John Mayer)는 그런 점에서 스펙트럼이 넓은 가수죠. < Contiuum > 앨범을 듣고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웃음).

인스타그램 @pngisac_my 님의 질문이다. 음악을 만드는 원동력이 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노래마다 각기 다른 것 같아요. ‘네가 없는 하루’는 보다 많은 분들께 노래를 들려드리고자 했죠. 반대로 < 놓치고 싶지 않은 사소한 것들 >의 ‘소년’, ‘별 같아서’ 등의 곡은 분명 대중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기는 하만 제 기준에서는 좋은 곡이거든요. 제가 아티스트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저를 표현하고 좋은 음악을 할까’의 원동력과,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잘 살아가고 어울릴까’의 원동력은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사이 모호한 색이 나오는 거죠. 계속해서 음악을 만들게 되는 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도요. 어떻게 하면 가장 나답고 행복할 수 있을지를 고민 중이에요.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임동엽, 조지현, 손기호
정리 : 김도헌
사진 : 임동엽
기획 : 부평구문화재단 신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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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M이즘x문화도시 부평] #1 비와이

인천 부평구 문화재단(대표이사 이영훈)은 대중음악평론 웹진 이즘(IZM)과 한국 대중음악 역사와 함께한 인천·부평 아티스트의 발자취를 기록하는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라는 타이틀의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는 인천·부평을 대표함은 물론,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다양한 시대의 아티스트를 선정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힙합 서바이벌 예능 < 쇼미더머니 >로 이름을 알린 힙합 뮤지션 비와이다.

지난해 비와이는 정규 2집 < The Movie Star >를 통해 독특하고도 과감한 확장된 음악 세계를 선보였다. < The Blind Star >의 자아 성찰을 넘어 한국 힙합 시장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주체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입체적 시각을 영화 사운드트랙처럼 웅장한 소리에 실어냈다. 

신실한 교인,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되묻고 고뇌하는 모습은 본인뿐 아니라 힙합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오는 6월 15일 래퍼 심바자와디와 함께한 새 앨범 < NEO CHRISTIAN >을 공개 예정인 비와이를 만났다.

상대적으로 비와이는 ‘어른들도 아는 래퍼’의 이미지가 있다.

제가 사랑받기 좋은 캐릭터를 갖추고 있는 것 같아요. 힙합 팬 말고 대중 분들께서 ‘비와이는 이래서 좋다’라고 말씀하실 때 주로 나오는 내용이 ‘욕이 없다’, ‘돈 이야기가 없다’, ‘여자 이야기가 없어서 좋다’ 등이거든요. 어른 분들께서는 아무래도 앨범 대신 싱글 단위로 많이 들으시니까, ’Forever’, ‘The time goes on’, ‘Day day’ 등 희망적인 내용의 노래들이 많이 어필했다고 봅니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클린’한 이미지는 아무래도 교회 영향도 있고요.

6월 15일 발표되는 새 앨범의 이름 역시 < Neo Christian Flow >다. 본인이 생각하는 ‘Neo Christian Flow’란 무엇인가.

‘네오 크리스천’이라는 본질적인 개념이 있는 것이지 따로 ‘네오 크리스천 플로우’가 있는 건 아니에요. 저희는 힙합 하는 사람들이지, 찬양에 사용되는 소리나 성경에 나오는 단어를 굳이 가져와 사용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에요. 비와이, 그리고 이번 앨범을 함께한 심바자와디가 ‘네오 크리스천’이라는 주제 아래 힙합으로 이야기하는 앨범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금 더 찬양에 가깝고, < The Movie Star >만큼은 아니지만 무게감 있는 작품이에요.

비와이의 랩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많죠. 카니예 웨스트, 켄드릭 라마, 프로듀서 마이크 딘 등… 한국에서는 버벌진트죠. 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한국 힙합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요?

< The Movie Star >에서도 드러나듯 비와이의 음악 세계는 카니예 웨스트처럼 큰 규모와 실험적인 시도가 두드러진다.

실제로 그 앨범은 그런 결이 있었죠. 클래식의 요소도 가져왔고, 올드 스쿨적인 요소, 테크노, 하우스, 트랩 등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했어요. 그게 힙합의 매력이라 생각해요. 하나에 정체되기보단 여러 가지를 가져와 섞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재창조의 매력이랄까요.

켄드릭 라마를 언급한 데는 본인이 힙합의 주요한 메시지 중 하나, 저항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다는 뜻일까.

물론 고민하고 있죠. 음악적으로도 전통을 깨고 싶고 완전히 새로운 걸 찾죠. 하지만 어떤 부분에선 그런 게 저희 윗 세대가 힙합을 바라보는 일종의 클리셰라 생각되기도 해요. ‘나라가 이런데 래퍼는 뭐하냐!’, 평소 기부 활동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기부 안 하냐’, 나름 사회 이슈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왜 저항 안 하냐’… 이해는 하지만 조금은 구시대적인 개념 같아요.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비와이가 생각하는 비와이의 힙합, 비와이 랩의 핵심을 묻고 싶다.

흠…. 평소에 많이 생각해보진 않았어요. 굳이 한마디를 담자면 ‘저에 대한 연민’? ‘Day day’의 경우 나답게 살지 못했던 어린 시절 콤플렉스를 털어놓는 곡이고, < The Movie Star >의 경우도 무작정 미국 힙합이 멋있다고 생각하며 따라 했던 과거 제 모습을 연민하는 감정이 어느 정도 있죠.

비와이를 대중에게 소개한 계기로 2016년 엠넷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 쇼미더머니 >를 빼놓을 수 없다. 시즌 4에 처음 등장했던 비와이는 이듬해 시즌 5에서 ‘Forever’, ‘Day day’를 통해 자신을 알리며 경연 우승을 거머쥐었다. < 쇼미더머니 >에 나간 계기를 묻자 비와이는 “나의 음악이 너무 좋아서 나만 듣기 아쉬웠다.”라 대답하며, 경연 프로그램 출연이 자신에게 가져다준 것들과 그로 인해 변화를 맞은 삶에 대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 The Time Goes On > 앨범을 발표한 후 < 쇼미더머니 >에 출연했다.

시즌 4 나갔을 때는 어색했어요. 그때는 ‘잘못된 겸손’을 갖고 있어서 제가 봐도 멋이 없었어요.

‘잘못된 겸손’이라는 개념이 궁금하다.

그때의 제게 있어서 겸손함은 사람들 앞에서 고개 숙이고 우러러보는 게 아니라 제가 경외하는 존재에 대한 섬김이었어요. 하나님에 대한 겸손이죠. 때문에 제가 자신감 있는 게 겸손함이었죠. 자신감이 없다는 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니까요. 하나님만 무서워야 했는데 < 쇼미더머니 시즌 4 >에선 사람을 무서워하려니까, 멋이 없었죠. 그런 의미에서 ‘잘못된 겸손’이었어요.

그리고 그다음 해 시즌 5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혔고 실제로 정상에 올랐다. 예감이 들었나.

‘믿는다’와 ‘믿긴다’를 구분해야 한다고 봐요. 제 자신이 ‘이번 시즌 우승을 믿는다’는 생각에 속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에 저는 < 쇼미더머니 시즌 5 > 우승이 너무 ‘믿겨졌’어요. 마치 하나님이 ‘믿기는’ 것처럼요. 물론 이게 제가 우월해서, 제가 대단해서라는 뜻은 아니에요.

당시 2016년 IZM 올해의 싱글로 선정된 ‘Day day’가 화제였다. 현재 빠른 랩 스타일과 비교하면 리드미컬한 느낌이 두드러지는데.

저도 그런 스타일을 하고 싶은데 더 깊이 공부하고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솔직히 지금 하는 랩 스타일의 경우 일단 디자인하고 808 드럼으로 강렬한 비트를 더하면 완성이 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Forever’도 물론 멋진 곡이지만 저는 ‘Day day’에 더 많은 게 들어갔다고 생각해요. 일단 비와이가 있었고, 그 당시 유행하던 트랩 비트가 있었고, 펑크(Funk), 오케스트라적인 요소도 있었을 뿐 아니라 많은 분들께 사랑도 받았으니까요.

쇼미더머니 > 이후 비와이의 결과물을 듣는 팬들은 ‘의도적으로 과거 스타일을 배제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일부러 그런 랩 스타일을 추구하는 건가?라는 오해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아무래도 비와이라는 캐릭터가 빡세고, 웅장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니까요. 그런 스타일을 극대화해서 만든 앨범이 바로 < The Movie Star >죠.

힙합이 세대 음악을 벗어나 전 대중을 아우르는 ‘팝 뮤직’의 영역을 넘보는 지금 비와이와 같은 아티스트들은 경연 프로그램과 크리스천 이미지를 통해 기성세대로의 접근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이에 대해 비와이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전달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며 소통의 영역에 대한 고민을 내비쳤다. 동시에 “래퍼들은 다 이렇다는 일반화를 벗고 들어 보면 현재 힙합 신에도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음악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번거로울 수 있지만, 한 번쯤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라며 힙합 신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 The Movie Star >의 배경이 궁금하다.

우선 영화 보는 걸 좋아해요. 특히 스케일이 큰 영화를 보며 받는 압도적인 느낌을 좋아하는데 이걸 음악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메시지로는 영화에서 주인공, 그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의 삶에 대해 생각한 내용을 담았고요.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나.

영화 < 아이언맨 >을 예로 들어볼게요. 우선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를 연기하는 배우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죠. 지금 그 사람은 대본을 읽고 연기를 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런데 < 아이언맨 >이라는 작품 안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토니 스타크라는 존재로 살고 있어요. ‘주연’이라는 트랙에 이 개념이 더 잘 설명되어 있어요. 주연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인공은 토니 스타크인 거죠.

저는 지금까지 힙합 신에서 ‘주연’의 삶을 살았어요. 해외 래퍼들, 미국 힙합을 들으며 그 문화와 요소 모두를 동경하고 그들처럼 행동하고 말을 뱉어야 진짜 멋진 힙합 스타가 될 줄 알았죠. ‘주연’을 맡아서 그들을 연기한 거예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건 멋없는 행동이었어요. 따라쟁이였던 거죠. 그래서 이제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어요.

인스타그램 독자 @s2s2_y_kiki 님의 질문 : 앨범을 제작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개념이 있다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새로움’입니다. ‘이것은 새로운가?’를 항상 제 자신에게 물어봐요. 새로운 게 없으면 그걸 들을 이유가 있나 싶은 생각입니다. 물론 제가 낸 작품들이 엄청나게 혁신적이고 새로운 작품은 아니지만, 항상 새 것에 대한 고민을 하는 편이에요.

실제로 굉장히 변화무쌍하고 독특하며 과감한 작품이라 본다. 앨범을 셀프 프로듀싱했는데, 이것도 ‘새로움’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이었나.

그렇기도 하지만 우선 셀프 프로듀싱이 제 생각을 구현하는 데 가장 빠른 방법이었어요. < The Movie Star >의 경우 사운드는 괜찮았는데 텍스트, 특히 가사를 정리하는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의 어려움인지?

애매모호한 부분이 걸렸죠. 일부러 모호함을 의도하기도 했지만 명확히 텍스트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믹싱 과정에서도 제가 최대한 내고 싶은 소리를 내려니 쉽지 않았고요.

쇼미더머니 > 출연 이후 방황하다 구원을 받고 앞으로 전진하는 < The blind star>와 공통적으로 < The Movie Star > 역시 본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다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극복의 서사가 중심이다. 흥미로운 공통분모인데.

1집은 말씀하신 대로 의도된 이야기였어요. 어떻게 보면 정말 제 삶의 이야기니까요. < The Movie Star >도 비슷한 결을 가져가려 했고요. ‘꼭 이렇게 해야겠다!’라 생각한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모두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 The Movie Star >의 타이틀 싱글 ‘가라사대’ 역시 2019년 IZM 올해의 가요 싱글로 선정되었다. ‘Day day’와 ‘Forever’의 중간을 의도한 것으로 들린다.

정확한 표현이에요. < The Movie Star >가 ‘Forever’의 확장판이었다면, 다음 앨범은 ‘Day day’의 확장판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비와이가 꼽는 ‘내 인생의 영화’가 있다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 인셉션 >,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 세븐 >을 꼽겠습니다.

인천 출신 힙합 아티스트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대전에서 태어나 인천으로 이사를 온 비와이, 그리고 그의 고등학교 친구 씨잼(C Jamm)은 현재 한국 힙합을 이끄는 젊은 신성이다. 이들이 재학했던 인하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의 동문이 지난해 < 오리엔테이션 > 앨범으로 주목받은 래퍼 최엘비, 그리고 선배가 3인조 힙합 그룹 리듬파워다. 부평구 문화재단의 프로젝트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의 첫 주자로 선발된 비와이에게 인천에 대한 기억을 물었다.

인천이라는 도시에 대한 생각은.

건강하고 멋진 도시가 되었으면 해요. 아무래도 학창 시절엔 어두운 모습을 많이 봤거든요. 인천이 서울 바로 옆에 있어서 규모도 점점 커지고 사람들도 많아지는데 모두 서울로 가지 인천에 모이지는 않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도시, 서울로 가지 않아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도시가 되었으면 합니다.

진행 : 임진모, 김도헌
정리 : 김도헌, 이홍현
사진 : 임동엽
기획 : 부평구문화재단 신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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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1988)

60년대 정신을 계승한 예비 ‘갱스타 랩’의 살벌한 파티

『뉴스위크』는 92년 10월 미국사회의 여론과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 엘리트 100인’을 선정했다. 영화, 레코드, 신문, 방송 등 문화관련 분야의 유력 인사들이 고루 지명되었는데 대중음악관계자로는 마돈나, 윈턴 마샬리스, 워너 뮤직 회장인 로버트 모가도, 랩 프로듀서 러셀 시먼즈 그리고 처크 디(Chuck D)가 포함되었다.

처크 디는 바로 랩 그룹 퍼블릭 에니미(Public Enemy)를 이끄는 인물로 리드싱어이자 노랫말을 대부분 쓰는 그룹의 명실상부한 간판이었다. 그가 랩 가수에 불과하면서 그처럼 문화 엘리트에 꼽힌 이유는 당연했다. 흑인들의 거리음악인 랩에 흑인정신을 실어 많은 흑인들에게 자긍심을 일깨워준, 가수의 위치를 넘어선 흑인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흑인들은 그의 주장에 따라 움직였으며 그의 노랫말에 일말의 후련함을 맛보았다. 이 앨범이 그들의 대표작이자 문제작이었다. 88년에 발표되어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흑인 제시 잭슨 목사가 부상하던 시기에 회오리를 야기했다.

여기에는 흑인 현실에 대한 자각을 기반으로 한 단결과 결집 요구, 투쟁의식 고취, 소요의 정당성, 백인 파워 엘리트에 대한 성전(聖戰) 의식 등 흑인의 항거의식이 총망라되어 있다. ‘최후의 결전을 향한 카운트다운'(Countdown to armageddon) ‘마인드 테러리스트'(Mind terrorist) ‘폭탄보다 요란한'(Louder than bomb) ‘중단없는 저항'(Rebel without a pause) 등 노래 제목을 보라!

권리, 평등! 우린 그것을 쟁취하러 간다. 이 투쟁의 잔치는 66년에 시작되었지. 흑인을 찬양하는 과격성을 섞어서 말야. 그 때 12시에 어떤 힘이 그것을 잘라내면서 지옥으로부터 출현했지. 그것이 바로 너희들의 정부란 거야. 그것 때문에 우리의 파티가 있는 거지. ‘투쟁의 권리를 위한 파티'(Party for your right to fight)

처크 디는 이 앨범을 “리얼리즘을 표출한 마빈 게이의 앨범 < 무슨 일이지 >(What’s going on)를 힙합(hip hop)으로 해석하고자 했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마틴 루터 킹, 말콤 X 등 흑인지도자와 과격한 운동단체 블랙 무슬림(Black muslim)의 리더 루이스 퍼러칸의 이름을 수록곡 곳곳에 등장시키고 있다. 백인에 대한 공격성이 실로 이보다 과격하게 또 무시무시하게 표출된 앨범은 없다.

음악적으로도 퍼블릭 에니미는 랩이 가지는 ‘소음’의 성격을 감추지 않고 헤비 메탈을 랩과 섞는 등 한층 시끄러움을 증폭시키려 했다. 프로듀서 행크 쇼클리는 ‘랩의 소음을 확실히 보여주자. 대신 그것에 무언가를 생각해보도록 할 것을 집어넣자’는 기획에 따라 이 앨범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수록곡 ‘소음을 전달하라'(Bring the noise)가 그 증거다.

이 앨범은 이처럼 흑인 랩의 새로운 패턴을 제시해 다대(多大)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흑인 음악이 어떤 것을 합성하고 덧입히고 하는 작위적 작업방식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그 뒤로 단순히 곡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꾸미는 것이 중요하게 대두되었다. 이 작품이 시대를 가르는 명반 대열에 빠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릭 루빈의 데프 잼 레코드사와 계약하면서 음반을 낸 퍼블릭 에니미는 직설적인 가사로 인해 87년 데뷔 시절부터 ‘랩의 블랙 팬더스’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른바 초강력 갱스타 랩(gangsta rap)의 표본그룹이 되었다. 하지만 닐 영의 지적처럼 60년대 저항음악의 언어를 계승한 랩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구현해 그들의 2집인 이 음반에 이르러서는 일각의 백인들도 예의 주시하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과격 속에 흐르는 진실이 일부 공감을 얻게 된 것이었다.

당시 너무나 오해된 랩의 저항의식과 시대를 앞서간 사운드가 농축된 고(高)부가가치 앨범이다. 여기에선 백인 지배층에 대한 불신을 담은 ‘그 말을 믿지마'(Don’t believe the hype)가 싱글로 나와 히트했다.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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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빈 게이(Marvin Gaye) ‘What’s Going On'(1971)

‘미국병’의 진단을 통해 모타운에 덤벼든 아티스트의 용기

“당신 말야. 오늘 신문 봤어? 켄트주립대학에서 죽은 학생들에 대한 기사 읽었지? 켄트사태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잠도 못자고 계속 울기만 했다니까. 이제 달이라든지 유월 어쩌구하는 3분 짜리 노래를 부르는 건 싫어.”

마빈 게이는 이렇게 목청을 높이면서 모타운 레코드사의 작곡가인 알 클리블랜드와 레날도 벤슨이 ‘무슨 일이지'(What’s going on)를 써 가지고 왔을 때 예전처럼 신변잡기식 노래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때 그의 관심은 월남전에 쏠려있었다. 자신의 친동생 프랭키가 파월장병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반전시위를 하던 켄트주립대학 학생들이 진압군의 M1소총에 맞아 죽은 비극적 사태에 더욱 충격을 받은 마빈 게이는 개과천선으로 급선회, 이제부터는 사회의식을 담은 노래를 하기로 작정했다.

그는 점점 사그러들고 있는 흑인정신을 되살리고 싶었다. 고통을 노래하고 기존에 저항하는 위대한 소울의 정신을 그는 잊지 않았다. 마빈 게이의 걸작이자 팝 역사의 명반으로 떠받들어지는 < 무슨 일이지 >(What’s Going On)는 그렇게 하여 탄생되었다. 그것은 실로 그 시점 미국이 안고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고뇌하는 한 인간의 35분 짜리 명상이었다.

“어머니, 너무 많은 당신들이 울고 있어요. 형제여. 너무 많은 그대들이 죽고 있어요… 전쟁이 해답은 아냐. 사랑만이 증오를 무너뜨릴 수 있지. 여기에 사랑을 건넬 길을 찾아야만 해. ‘무슨 일이지'”

이 노래를 잇는 ‘형제여 무슨 일이야'(What’s happening, brother)는 바로 동생 프랭키가 베트남에서 겪은 체험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 두 곡이 주제의 측면에서 앨범 전체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마빈 게이는 ‘시내의 블루스'(Inner city blues)에서 도시 빈민가 흑인들의 곤궁을 요사했고, ‘내게 자비를'(Mercy mercy me)에서는 파괴되어가는 환경, 즉 공해를 노래했다. ‘어린이를 구하자'(Save the children)는 미래가 없는 세상에 대한 비탄이 담겨 있다. 소재가 광범위하지만 ‘고통’이라는 핵심 테마와는 모두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음반이 ‘흑인 아티스트 최초의 컨셉트 앨범’으로 규정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무거운 성격을 드러내고 있으니 모타운 회사측의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베리 고디 사장은 당시 레코드 구매자들이 사회비평의 음반은 원치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시사적인 컨셉트가 대중들에게 부담을 초래해 ‘상업적인 자살’ 행위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타이틀 곡이 히트하고 있는데도 그는 4개월이나 앨범 출시를 유보했다. “빨리 풀어. 안그러면 다시는 당신들을 위해 음반 안만들테니까. 이건 내 마지막 경고야.” 마빈 게이는 새로운 것에 빗장을 걸고 있는 회사측의 한심한 태도에 광분했다.

하지만 결국 승리자는 마빈 게이였다. 앨범은 출반하자마자 승승장구해 소울 차트는 정상을 밟았고 팝차트에도 10위권에 진입했다. 뿐만 아니라 타이틀곡을 비롯, ‘시내의 블루스’, ‘내게 자비를’ 등 3개의 히트싱글이 터져 나와 모두 차트 톱10에 랭크되었다. 앨범의 판매고는 8백만장에 달해 그 때까지 모타운 사상 가장 잘팔린 음반으로 기록되었다. 그것은 ‘대중의 수준’을 무시한 베리 고디 사장에게 대중이 내린 무서운 응징이었다.

마빈 게이의 승리는 저절로 얻은 것이 아니라 투쟁의 소산이기도 했다. 신념을 갖고 자기 주장을 관철해 모험을 기피했던 모타운 회사의 제작 스탭을 물리치고 자신 스스로 프로듀스한 음반을 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전까지 모타운은 소속 작곡가나 기획자들이 음반제작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마빈 게이와 이 앨범이 갖는 또 하나의 업적은 그 같은 판도를 뒤엎고 회사로부터 ‘아티스트의 자유’를 쟁취했다는 데 있다.

사운드의 측면에서도 이 앨범은 모타운 사운드의 획기적 전환을 초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쿠바의 전통음악인 콩가의 연주가 전체에 깔리면서 스트링(絃)과 함께 유연하게 삽입된 색소폰 연주, 은은하면서 두꺼운 보컬 하모니가 주도하는 제3세계적 음악 그리고 재즈와 가스펠의 분위기는 미들 템포의 리듬과 더불어 전에 없던 스타일이었다. 마빈 게이는 이렇게 하여 모타운의 새로운 70년대 사운드를 개척하는 위업을 쌓았다.

이 작품의 의의는 사회 분위기가 보수적으로 흘러도 위대한 소울 음악이 보여준 사회적 양심은 여전히 꿈틀대고 있음을 알린 것에 있다. 나중 흑인 목사 제시 잭슨은 이 앨범을 듣고 마빈 게이에게 “당신은 누구보다 훌륭한 성직자”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롤링 스톤』지의 묘사처럼 < 무슨 일이지 >는 잭슨 목사뿐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울 음악과 그 가치에 눈을 뜨게 했다.

-수록곡-
1. What’s Going On
2. What’s Happening Brother
3. Flyin’ High (In The Friendly Sky)
4. Save The Children
5. God Is Love
6. Mercy Mercy Me (The Ecology)
7. Right On
8. Wholy Holy
9. Inner City Blues (Make Me Wanna Holler)

20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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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딥플로우 인터뷰

2011년만 해도 딥플로우는 EDM만 흘러나오던 ‘홍대 놀이터 옆 코쿤 사거리’에서 호스트 MC로 일하며 힙합과 함께 생존하고자 외로이 투쟁하던 래퍼였다. 4년 후 그는 이 파토스를 인생 전체로 확장한 <양화>를 발표하며 한국 힙합의 중심에 섰다.

평단과 대중의 찬사, ‘당산대형’이라는 굳건한 페르소나 구축, ‘작두’. 그러나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었다. “Crew에서 Company, 두목에서 사장님”(‘대중문화예술기획업’)의 훈장을 얻은 것은 쾌거였으나 거리를 두던 예능 프로그램 출연 후로는 ‘배신자’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감수해야 했다.

변화 속 자신을 돌아본 <FOUNDER>로 딥플로우는 <양화> 이후 지난 5년의 시간을 술회한다. 사업가, 래퍼, 아들, 레이블 대표의 일대기를 입체적으로 펼치며 그간의 질문에 시간의 무게로 답을 한다. 서교동 비스메이저 컴퍼니(Vismajor Company)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그는 거듭 ‘내 이야기’를 힘주어 언급했다.

<양화> 이후 5년 만의 정규작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양화> 이후 정규 음반을 계속 내야겠다는 의무감이 없었어요. “아이디어가 생기면 내야겠다”하는 막연한 마음만 있었죠. 방송 나가고 ‘다모임’ 활동도 하면서 창작욕이 일부 해소된 것도 있었고요. 그러다 정규작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겼고, 3년 전부터 작업을 시작해 약 2년간 과정을 거쳐 앨범을 발매하게 됐습니다.

발매가 늦어진 데 다른 이유는 없었나? 그 해 <양화>에 쏟아진 엄청난 반응을 의식했다거나.

순전히 제 선택이었습니다. 제가 사장인데요 (웃음). 컨펌받을 사람도 없고 앨범 내라고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20대 초부터 랩을 했으니 거의 20년 가까이 한 셈이라 언제든 제가 만들 수 있을 때 앨범 단위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죠.  

모든 작품은 아티스트가 살아가는 환경, 시대와 충돌하며 빚어진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특히 <FOUNDER>처럼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앨범이라면 더욱 그렇다. <양화> 이후 5년 동안 딥플로우에게도 그런 사회적 화학 작용이 분명 있었을 텐데. 

<양화>는 30대 초반의 제가 20대 초부터 30대 초까지의 삶을 담은 앨범이었죠. 발매 당시엔 “나는 내 할 말을 다 했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분명 화학 작용이 있었죠. 변화에 휩쓸리기도, 뛰어들기도 하면서요. 그렇게 제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앨범 아이디어를 구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노래 제목만 보면 거의 경제학 앨범이다. 그것도 슬픈 경제학. 앞서 언급한 화학 작용의 결과임이 분명해 보인다.

앨범을 만들며 제 이야기, 제 변화에 집중했습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이 작품은 변명이 되겠구나 싶었고, 그래서 ‘이 앨범은 VMC 식구들에게 하는 말, VMC 식구들에게 헌정하는 앨범’ 이라는 점에 집중해서 작업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 힙합은 거리의 메시지가 아니라 ‘나의 메시지’를 담는데 집중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 앨범도 그런 현상을 잘 대변하는 작품으로 들리고.

최근에 젊은 친구들이 가져오는 음악을 들어보면 정말 ‘음악’, ‘즐거움’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더라고요. 가사를 쓸 때도 메시지보다는 테크닉과 소리의 차원에서 단어를 활용하고요. 힙합의 시대정신이 바뀌고 있다는 건 몇 년 전부터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거기에 가치 판단을 하는 건 아니에요. 이런 시대가 됐고, 저도 최근에 즐기고 있습니다. 새로운 친구들은 그런 음악을 하고, 저는 제 음악을 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중이에요.

<FOUNDER>는 <양화> 이전부터 이후의 오랜 시간 경과, 아주 어려웠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담아낸 앨범이다. 사운드도 고전 소울을 가져오며 그 느낌을 의도한 것처럼 들리는데. 

우선 제가 샘플링을 좋아해서 과거 음악을 많이 들었습니다. 누구 노래인지, 무슨 노래인지도 모르고 그냥 많이 들었어요. 소울, 재즈, 펑크(Funk), 블루스 등등 처음에는 샘플을 따기 위해 듣던 음악이 어느 순간 엄청난 라이브러리로 쌓이고, 제 취향으로 굳어지게 됐죠. 어디 가서 분위기를 내기 위한 음악을 틀어달라고 하면 저는 꼭 소울 음악을 틀거든요. 그러던 와중에 ‘그냥 가져오는 것보다, 내가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 영화 ‘파운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듯 영화는 과거 할리우드 갱스터 영화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마틴 스콜세지의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맞아요. 스콜세지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소울 음악을 선택한 것도 영화 느낌의 톤 앤 매너를 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어요. 앨범 커버도 고전 할리우드 영화 포스터 풍으로 그렸고, 그런 영화의 사운드트랙 같은 노래를 만들고자 했죠. 프로듀서에게  <FOUNDER>가 영화처럼 들렸으면 좋겠다고 주문했어요. “영화 같은 걸 해야 해!”, 아예 “OST처럼 들렸으면 좋겠어.”라고도 말했어요.

앨범을 지휘한 프로듀서 반루더(Van Ruther)는 <양화>를 프로듀싱한 티케이(TK)와 동일 인물이다. 전작과 완벽히 다른 장르와 밴드 셋, 트랙을 만들고 랩을 얹는 과정이 모두 새로웠을 텐데 어려움은 없었나.

반루더가 다했죠 (웃음).원래 반루더는 건반으로 작업하는 친구, 피아노맨이에요. 그래서 처음 가져온 곡들은 피아노 기반의 느낌이 강했어요. 저는 마초적인 느낌을 담기 위해 기타를 넣어달라고 강력 주장했죠. 그래서 기타 위주로 테마를 짰어요. 그러면서 록처럼 들리진 않았으면 좋겠고…. 반루더가 이번 앨범의 장르와 사운드 감을 잡기 위해 제 취향의 음악을 듣고 공부하며 백여 곡 정도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미디로 곡의 뼈대를 잡아 비트를 만들고 그 위에 제가 랩을 녹음한 후 세션 작업을 진행했어요. 랩 이후엔 제가 거의 관여를 안 했어요. 제가 어려울 건 없었어요. 반루더가 어려웠죠.

앨범에는 1970년대 스택스 레코드(Stax Records)과 멤피스 소울, 마빈 게이, 필리 소울 등 다양한 스타일이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Blueprint’의 경우 모타운의 느낌도 나는데.

맨 마지막 트랙이라 특별히 모타운 스타일을 강하게 주문했어요. ‘커튼콜’ 같은 인상을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녹음에 들어가니 이미 BPM이 80 중반대로고정되어 있었죠. 랩 녹음을 바꿀 수도 없고, BPM을 바꿀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 의도했던 것처럼 나오진 않았네요(웃음).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힙합에 가까워졌죠. 블루 매직(Blue Magic) 풍의 필리 소울 풍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멋지지만,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의 시카고 사운드 풍 곡이 하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생각도 했는데 예제가 너무 많았어요. 프로듀서가 자기가 구현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선택을 한 거라고 봐요. 

4월 21일 앨범 세션 밴드 프롬올투휴먼과 함께 ‘네이버 NOW’에서 <FOUNDER>의 곡들을 라이브로 선보였다. 인상적인 무대였는데, 어렵지는 않았나.

오케스트라 같은 대형 무대를 꾸린다면 모를까 지금은 크게 어렵진 않아요. 의도적으로 MR로 하는 라이브는 거절하고 있습니다. 

작사에 시간이 걸렸을 줄 알았는데 사운드 차원에서 작업이 오래 걸린 인상이다. 

가사는 6개월 만에 다 썼어요. 제게는 빠른 페이스였죠. 주제가 워낙 명확한 콘셉트 앨범이었고, 트랙리스트를 미리 만든 다음 가사를 썼기에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쉽지 않았던 곡, 혹은 가장 공들인 곡이 있다면. 

‘Low budget’이 녹음하는 데 어려웠던 기억이 나네요. ‘대중문화예술기획업’은 긴 스토리를 압축해서 들려줘야 했기에 단어 고르는 과정이 오래 걸리기도 했고요. 이외엔 제게는 쉬웠던 것 같습니다. 프로듀서가 앨범을 꾸며주는 후반 작업이 어려웠죠. 가사를 다 쓴 건 작년 6, 7월이었는데 발매는 올해 4월이었으니까요.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Big deal’의 랩이 마음에 듭니다. ‘VAT’도 좋고요. 

한때 딥플로우는 ‘쇼미더머니’로 대표되는 미디어와 힙합의 유착 관계에 반감을 숨기지 않은 대표적인 래퍼였다. 많은 래퍼들이 방송에 출연해 유명세를 얻고 인기를 누리는 와중에도 그는 “그게 내가 <양화>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불문율’)”라 일갈하며 “진짜 어울려 딥플로우와 힙합 말이야”(‘잘 어울려’)라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간 우리는 TV에 나온 딥플로우, ‘쇼미더머니’에 나온 딥플로우, ‘언프리티 랩스타’에 나온 딥플로우의 모습을 목격했다. ‘변절자’라는비판, 변화의 흐름에 대해 딥플로우는 “지금은 제가 한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담담히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록과 힙합 모두 마찬가지지만 일종의 ‘저렴한 순수성’이란 게 있다. 미디어 출연, 거대 자본과의 협력은 곧 타락으로 보는 시각이다. 최근 딥플로우는 그 순수성 부분에 있어 가장 논쟁이 되는 래퍼다. 

과거에는 이런 여러 활동을 하면 순수함에 위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아직도 그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그렇다고 해서 예전에도 TV 출연 자체가 무조건 배신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저렴한’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가 거기에 있다. 대중음악은 대중 상대로 설득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 그 설득의 방법 중 하나가 TV 출연이고. 어떻게 보면 본인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미디어에 자신을 노출하는 건데 ‘순수성’을 수호하는 입장에서는 비판의 대상이다. 

‘쇼미더머니’를 예로 들자면 그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 힙합 신에는 분명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았고, 저도 동일한 생각이라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게 ‘쇼미더머니’를 넘어 ‘아예 미디어에 나오면 안 된다’는 식으로 확대 해석되더라고요. 물론 제가 한 말이 달리 해석되고 퍼지는걸 다 주워 담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제 생각은, 우리의 활동이 백 퍼센트 순수 창작예술이라면 저만 듣고 만족하면 되겠지만 결국엔 남에게 들려주는 대중음악이잖아요. 이제는 사실 제 음악을 알리기 위해 계단을 한 발 딛느냐와 열 발 딛느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그런 시각이 딥플로우를 언더그라운드라는 공간에 가둬놓는 것은 아닐까.

‘딥플로우는 붐뱁을 추구한다’, ‘딥플로우는 언더그라운드의 수호신이다’…. 그런데 제가 기자 회견을 하고 성명서를 낼 수도 없잖아요(웃음). 흘러가게 놔두는 편이죠.

‘쇼미더머니’에 대한 생각은. 
결과론적으로는 사람들에게 힙합을 많이 알렸죠. 방송 당시엔 몰랐지만, 대략 10년이 지난 지금 보니 새롭게 랩을 하고 힙합을 하는 아이들이 많아졌을뿐더러 그들에게 ‘쇼미더머니’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 같습니다. 물론 래퍼들에게 독과점화 된 플랫폼 등 부정적인 영향도 있어요. 하지만 시대는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 대거 등장했던 한국 힙합 래퍼들이 현재 3, 40대에 접어들며 과거를 회고하는 듯한 메시지가 두드러지고 있다. “30대 꺾인 래퍼 라인업”으로 출발하는 ’36 dangers’ 역시 의미심장하다. 

타의 반 자의 반으로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게 얼마 되지 않았어요. 다모임 활동을 하면서 묘한 연대감을 느꼈죠. 저도 VMC에서 보일링 프로젝트(Boiling Project)를, 더콰이엇은 랩 하우스(Rap House)를 진행하며 각자 나름의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다가왔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그냥 각개전투였다면, 이제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다음 세대에게 줄 영향을 결정한다’는 생각이죠. 나비효과처럼요. 자아성찰을 많이 하게 돼요.

딥플로우의 랩은 과거부터 20대 초중반에서 흔치 않은 묵직한 플로우와 음색을 갖고 있었다. 30대의 이야기를 하는 <FOUNDER>에선 ‘넉넉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본인의 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제 주위 사람들은 워낙 제 랩에 노출되어있다 보니 익숙해해요. 사실 항상 궁금하거든요. 사람들이 내 랩을 어떻게 생각할지, 내가 랩이 어떻게 들릴지를요. 모니터링 과정에서 워낙 좋아해 주는 친구들도 있지만 힙합을 많이 접하지 않은 분들은 제 스타일이 지루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해요. ‘그게 내 랩의 단점이구나’ 싶을 때도 많아요. 제가 표현하고 싶은 분야는 무척 많은데, 하나의 모드로 굳어져있는 게 아닌가 싶거든요. 그런 점들을 밀도 있게 잘하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웃음).

마지막으로 <FOUNDER> 이후의 딥플로우를 전망한다면.

사업가 딥플로우와 래퍼 딥플로우 모두 연결이 되어있어요. 활동 없이 경영만 하면 제가 회사의 핵심 인물이라 사업이 안 될 거고, 그렇다고 활동 안 하고 경영만 할 수도 없죠. 꾸준히 좋은 작품을 발표하며 VMC의 생명을 유지하는 게 목표입니다.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임동엽, 이홍현
정리 : 김도헌
사진 : 임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