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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신승훈 ‘이 또한 지나가리라'(2020)

평가: 3.5/5

억지 없는 자연스런 멜로디와 고풍스런 편곡은 여전하나 동굴효과를 제거한 보컬은 그 톤과 결이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한층 현실적이다. 브릿팝에서 영향을 받은 피아노와 드럼은 변화를 주도하고 든든하게 받쳐주는 현악기는 기존의 스타일을 지탱해주면서 절묘하고 웅대한 융합을 완성했다. 노련한 가수가 부른 세련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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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근의 하나씩 하나씩 Feature

우리나라에서는 자주 들을 수 없는 1970, 80년대 펑크(Funk)의 명곡들



  • 다프트 펑크의 ‘Get lucky’, 로빈 씩의 ‘Blurred lines’, 마크 론스과 브루노 마스의 ‘Uptown funk’, 브루노 마스의 ’24K magic’과 ‘Treasure’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죠? 모두 펑크(Funk) 음악이라는 거죠. 이 노래들은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래미도 수상해 상업성과 음악성 모두 공인 받은 대중의 음악입니다.

    1960년대 소울 음악에서 파생한 펑크(Funk)는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흑인의 자긍심을 드러내고 자신들의 뿌리를 찾으려는 일종의 문화적 현상이었죠. 1990년대에 흑인음악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펑크(Funk)는 찬밥신세였습니다. 실용음악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이 실기시험을 볼 때 대부분 16비트의 펑크(Funk) 음악을 연주하는 이유는 연주자의 입장에서는 재밌고 자신의 능력을 자랑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흑인음악이 예전과 달리 대중화되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위대한 펑크(Funk) 뮤지션들의 노래 중에서 국내에선 흥겨운 노래보다는 ‘After the love has gone’이나 ‘Three times a lady’, ‘Easy’, ‘Cherish’처럼 발라드 곡들이 한정된 인기를 얻었죠. 그래서 신나는 노래를 좋아하는 저는 국내 라디오 프로그램에 늘 불만이었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어서 펑키(Funky)한 곡들을 자주 들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직접 찾아서 듣지 않는 한 들려지지 않는 펑크(Funk)의 명곡들은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그동안 어두운 지하실에서 연명하고 있는 펑크(Funk)의 명곡들을 밖으로 꺼내 빛을 비추어주고자 합니다. 리스펙!


    Sly & The Family Stone의 ‘Thank you’
    제임스 브라운과 함께 펑크(Funk) 음악의 1세대 뮤지션으로 평가받는 밴드입니다. 공식적으론 1966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지만 이들의 전성기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로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이 기간에 ‘Everyday people’, ‘Stand’, ‘Dance to the music’, ‘Family affair’, ‘Hot fun in the summertime’, 그리고 인순이가 ‘Higher’로 번안했던 ‘I want take you higher’까지 고속 질주했던 슬라이 & 더 패밀리 스톤이지만 우리나라에서 1970년 빌보드 넘버원 ‘Thank you’는 자주 들을 수 없습니다. 제목 ‘Thank you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영국 가수 다이오의 노래를 떠올릴 정도죠. 자넷 잭슨의 1989년도 히트곡 ‘Rhythm nation’에서는 ‘Thank you’의 리듬을 샘플링해 이들을 헌정했습니다.


  • Commodores의 ‘Machine gun’
    라이오넬 리치가 리더로 있었던 코모도스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펑크(Funk) 밴드지만 그 노래들은 ‘Three times a lady’나 ‘Easy’, ”Still’, ‘Sail on’, ‘Night shift’ 같은 발라드 노래들입니다. 그루브가 넘치는 ‘Brick house’나 ‘Lady’, ‘Machine gun’은 명함도 못 내밀죠. 이들의 데뷔곡 ‘Machine gun’은 1974년에 발표해서 빌보드 싱글차트 22위까지 오른 코모도스의 첫 번째 히트곡인데요. 무그신시사이저를 앞세운 연주곡입니다. 마크 월버그가 주연한 1997년도 영화 < 부기 나이트 >에 삽입돼서 뒤늦게 그 빛을 발하게 됩니다.


    Earth Wind & Fire의 ‘Sing a song’
    ‘지풍화’는 우리나라에 펑크(Funk)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69년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결성된 이들의 대표곡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September’, ‘Boogie wonderland’, ‘Let’s groove’의 3부작이 있고 또 데이비드 포스터와 함께 한 불세출의 발라드 ‘After the love has gone’이 있지만 이들의 유일한 빌보드 넘버원 ‘Shining star’와 1976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5위를 차지한 ‘Sing a song’을 언급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혼섹션이 멋진 ‘Sing a song’은 필 콜린스의 넘버원 싱글 ‘Sussudio’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곡이죠.


    Kool & The Gang의 ‘Get down on it’
    쿨 & 더 갱도 우리나라에서는 어스 윈드 & 파이어나 코모도스와 처지가 비슷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들의 애청곡은 ‘Cherish’라는 업템포 발라드거든요. 물론 ‘Celebration’과 ‘Fresh’가 라디오에서 간혹 들려오긴 하지만 이 두 노래만큼 훌륭한 1982년에 빌보드 탑 텐 싱글 ‘Get down on it’은 좀처럼 들을 수 없습니다. 절제된 비트 위에서 펼쳐지는 제임스 J.T. 테일러의 리듬감 넘치는 매끄러운 보컬이 이 노래의 정수입니다.


    Heatwave의 ‘Boogie nights’
    1975년 영국에서 결성된 히트웨이브는 1970년대 후반에 ‘Boogie nights’, ‘Groove line’, 그리고 발라드 ‘Always and forever’로 인기를 얻은 밴드인데요. 이 히트곡들을 만든 팀의 건반주자이자 리더인 로드 템퍼튼은 나중에 마이클 잭슨의 ‘Rock with you’, ‘Off the wall’, ‘Thriller’, 조지 벤슨의 ‘Give me the night’, 제임스 인그램과 패티 오스틴의 ‘Baby come to me’ 같은 노래들을 작곡하게 됩니다. 그리고 코모도스의 ‘Machine gun’에서 언급한 영화 < 부기 나이트 >의 제목은 바로 이 노래에서 따온 겁니다.


    Ohio Players의 ‘Love rollercoaster’
    1959년 오하이오에서 결성된 오하이오 플레이어스는 오랜 무명 시간을 보내고 1970년대 중반이 돼서야 빛을 본 대기만성 형 밴드입니다. ‘Funky worm’, ‘Fire’, ‘Skin tight’, ‘Sweet sticky thing’ 같은 히트 싱글이 있지만 이들을 대표하는 노래는 1976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에 오른 ‘Love rollercoaster’입니다.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는 애정관계를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에 비유한 이 노래는 1997년에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리메이크해서 우리나라에 알려졌습니다.


    Funkadelic의 ‘One nation under a groove’
    펑카델릭의 리더 조지 클린턴은 미친 사람입니다. 정상이 아니죠. 그룹 하나를 건사하기도 힘든데 조지 클린턴은 동시에 두 개의 밴드를 운영했거든요. 바로 펑카델릭과 팔러먼트입니다. 팔러먼트의 대표곡 ‘Give up the funk’도 우리 라디오에선 찬밥신세지만 이 글에서는 제가 개인적으로 훨씬 더 좋아하는 ‘One nation under a groove’를 선정했습니다. 1978년에 발표되어 빌보드 싱글차트 28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한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점은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음악은 절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둘째는 최근에 인기를 얻고 있는 펑크(Funk) 음악은 ‘One nation under a groove’를 따라했다는 것입니다.


    Marvin Gaye의 ‘Got to give it up’
    1977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노래는 긴 암흑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예전 국내 라디오 피디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펑키(Funky)한 디스코 넘버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했기 때문이거든요. 확실히 당시 전 세계를 주름 잡았던 디스코 노래들인 비지스나 케이시 & 더 선샤인 밴드의 곡들보다는 훨씬 더 펑키(Funky)합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표절한 로빈 씨크의 2013년도 히트곡 ‘Blurred line’가 대한민국에서 높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시대와 세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반증이겠죠. 절제됐지만 세련된 리듬은 마빈 게이의 비극적인 죽음과 선명하게 대비되어 더 슬프게 들리는 노래입니다.


    S.O.S. Band의 ‘Take your time (Do it right)’
    1977년 조지아 주에서 결성된 펑크(Funk) 밴드 에스오에스 밴드는 이 노래 하나만 각인시키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홀연히 사라진 의연한 그룹입니다. 이 노래를 제외하곤 빌보드 탑 40에 오른 곡이 단 하나도 없는 완벽한 원히트원더 뮤지션이죠. 하지만 ‘Take your time’이라는 명곡을 남기고 사라졌으니 억울하진 않을 겁니다. 1980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3위까지 오른 이 노래는 신시사이저와 슬랩 베이스 연주가 압권이죠.


    Gap Band의 ‘Big fun’
    1974년 오클라호마에서 결성된 갭 밴드는 빌보드 싱글차트 탑 텐 히트곡이 하나도 없습니다. 히트 싱글의 기준인 탑 40에 오른 노래가 두 곡밖에 없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펑크(Funk) 밴드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대표곡 ‘Early in the morning’과 ‘You dropped the bomb on me’, ‘Party train’은 국내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고 이 푸대접을 생활화한 실천지향형 그룹이죠. 하지만 1986년에 빌보드 싱글차트에 오르지 못했지만 영국차트 4위를 차지한 ‘Big fun’은 갭 밴드의 최고의 노래입니다. 경박하지 않고 먹이를 향해 다가가는 호랑이처럼 육즁한 리듬은 차원이 다른 흥분을 선사하죠. 1986년에 AFKN 라디오를 통해 이 곡을 우연히 듣게 된 건 인생의 행운이었습니다.


    Brothers Johnson의 ‘Stomp’
    기타리스트 조지 존슨과 베이시스트 루이스 존슨 형제로 구성된 브라더스 존슨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는데요. 그들의 노래뿐만 아니라 마이클 잭슨이나 샤카 칸 같은 훌륭한 가수들의 음반에 연주자로 참여하면서 그 실력을 인정받은 아티스트입니다. 1989년에 퀸시 존스가 리메이크한 ‘I’ll be good to you와 1977년에 빌보드 탑 텐에 오른 ‘Strawberry letter 23’도 멋지지만 1980년에 발표해서 빌보드 7위를 기록한 ‘Stomp’야 말로 브라더스 존스 음악의 정점이죠.


    Cameo의 ‘Word up’
    1970년대 중반 뉴욕에서 결성된 카메오는 1986년에 발표해서 빌보드 싱글차트 6위를 차지한 ‘Word up’이 대표곡입니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영화 <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의 휘파람을 앞부분과 중간에 삽입해 비장미를 연출한 ‘Word up’은 흑인음악임에도 대단히 록적인 느낌입니다. 신시사이저와 베이스 기타의 두터운 슬랩 베이스, 드럼을 강조해 비트와 리듬을 끌어올려 당시에도 시끄러운 펑크(Funk) 곡으로 들렸으니까요. 하드록 밴드 건이나 랩메탈 밴드 콘이 리메이크한 건 당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였던 멜라니 C와 댄스 팝 그룹 리틀 믹스, 심지어는 독일 출신의 컨트리 그룹 보스호스 등 수많은 후배들이 커버하며 위대하면서 시대를 앞서간 곡임을 확증해주었습니다.


    Brick의 ‘Dazz’
    1972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결성된 브릭 역시 히트곡이 많지 않은 펑크(Funk) 밴드입니다만 1976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3위를 기록한 ‘Dazz’는 단언컨대 명곡입니다. 촌스럽지 않은 그루브 위에 재즈의 터치, 심지어는 플루트 같은 클래식 악기를 도입해 펑크(Funk) 음악의 지평을 확대했죠. 제목 ‘Dazz’가 댄스와 재즈의 합성어라는 것만 봐도 이들이 지향했던 음악 스타일을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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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Feature

IZM 필자들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음악 10곡’ – 소승근

2010년대를 보내고 2020년대를 맞이하며 IZM이 새해 특집을 준비했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채우기 위해, IZM 필자들이 ‘내 인생의 음악 10곡’을 선정해 소개했다. 한 사람의 삶을 정의하는 데 10곡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취향과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총 8회에 걸쳐 진행될 ‘내 인생의 음악 10곡’의 첫 스타트는 소승근 IZM 대표가 끊는다.

쿼터플래시(Quarterflash) ‘Harden my heart’
초등학교 5학년 때 우연히 들은 이 노래를 다시 듣기 위해 거실에 있던 카세트라디오를 방으로 들여왔을 때, 내 미래는 결정됐다. 가수도 모르고 노래 제목은 더더욱 몰랐던 초등학생은 이 곡을 듣기 위해 하염없이 라디오를 켜놨고 그 덕분에 이런 노래, 저런 노래를 들으면서 팝송에 빠졌다. 아직도 이 노래의 색소폰 연주만 들으면 심장이 벌렁벌렁해진다.

알 스튜어트(Al Stewart) ‘Year of the cat’
1990년 봄,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처음 들었다. 초면임에도 사랑에 빠진 나는 알 스튜어트의 LP를 사서 90분짜리 테이프에 ‘Year of the cat’만 녹음해서 들을 정도였다. ‘고양이의 해’라는 웃기지도 않은 제목과 얍삽한 알 스튜어트의 가느다란 음색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피아노로 시작해 신시사이저로 끝나는 6분 30초의 러닝타임 동안 넋을 놓고 들을 수밖에 없는 악기 운용과 편곡이 오감을 마비시켰다. 만약 음악을 고급과 저급으로 나눌 수 있다면 ‘Year of the cat’은 고급의 최상층에 위치할 것이다.

마돈나(Madonna) ‘Holiday’
나에겐 ‘마여사’보다 ‘마누님’이라는 표현이 더 살갑다. 10대 소년은 1983년 겨울, 라디오에서 이 곡을 듣자마자 평생의 팬이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사실 그 약속은 오래가진 못했다. 20대가 되면서 감성이 변했는지 마음속 언약은 변절됐지만 아직도 ‘마누님’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은 가지고 있다. 나에게 펑키(Funky)한 음악을 눈뜨게 만들어준 고마운 노래.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 ‘In your eyes’
이 노래는 가을이고, 쓸쓸함이고, 외로움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 음악을 듣는다’고 자랑하고 허세부리기 좋은 곡이고 그런 잘난 체에 어울리는 가수지만 나는 정말, 단연코, 진심으로 ‘In your eyes’를 좋아했고 지금도 변함없다. 내 말이 거짓말이나 허풍처럼 들린다면 10월의 어느 가을날, 혼자서 이 노래를 들으며 낙엽이 쌓인 가을 길을 걸어보시라.

케이트 부시(Kate Bush) ‘Wuthering heights’
마돈나가 ‘누님’이라면 케이트 부시는 ‘선생’이다. 그의 노래는 어려웠고, 어떤 노래는 비정상적으로 들렸으니까. ‘Running up that hill’을 통해 그를 알게 됐지만 그에게 빠진 건 이 노래다. 춥고 을씨년스런 피아노, 예민한 목소리, 예상을 빗나가는 드럼 연주 등 모든 게 신세계였다. 심연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그의 음악세계에 몰두했고 결국엔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 폭풍의 언덕 >까지 읽었지만 재미는 없었다. 동글동글한 얼굴형에 볼살 있는 여성을 이상형이라고 말하게 만들었던 인물은 케이트 부시다.

델리 스파이스 ‘챠우챠우’
나는 동요와 만화 주제가에서 곧바로 팝송으로 건너뛰었기 때문에 가요 감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 노래 중에서도 조용필의 ‘미지의 세계’, 윤수일의 ‘아름다워’, 최헌의 ‘도시의 밤’, 도시의 그림자의 ‘이 어둠의 이 슬픔’처럼 팝송 같은 노래들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에 듣게 된 ‘챠우챠우’는 가요에 대한 내 선입견을 바꿨다. 김민규가 음악평론가들을 저주(?)하며 만든 이 노래는 음악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고 나도 그 중 한 명이 됐다.

보니 레이트(Bonnie Raitt) ‘Nick of time’
1989년도 앨범 < Nick Of Time >이 여러 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야 보니 레이트의 음반이 우리나라에 처음 라이센스로 발매됐다. 지금은 그래미에 애정이 없지만 그 당시엔 그래미는 영광의 훈장처럼 느껴져서 그래미 트로피를 탄 가수와 음반은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착각했다. 내가 처음 구입한 블루스 앨범 < Nick Of Time >에서는 ‘Love letter’, ‘Have a heart’, ‘Thing called love’가 유명하지만 나는 음반 타이틀 ‘Nick of time’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어느 하나 과욕 없이 시냇물 졸졸 흐르듯 자연스런 곡 진행과 과시하지 않는 보니 레이크의 보컬은 잔잔한 충격이자 소박한 감동이었다. 헤비메탈처럼 화려한 연주가 없어도, 머라이어 캐리나 마이클 볼튼처럼 열창을 하지 않아도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Nick of time’을 통해 깨달았다.

더 후(The Who) ‘Baba O’Riley’
브리티시 인베이젼의 3인방 중에서 누굴 가장 좋아하냐고 질문을 받으면 주저하지 않고 더 후라고 대답하게 만든 곡이다. 중학교 때 AFKN 라디오를 통해 알게 된 ‘Baba O’Riley’의 무그신시사이저 연주는 독보적이었고 장작을 패듯 두들기는 키스 문의 드럼 연주는 통쾌했으며 로저 달트리의 보컬은 호쾌했다. 진지한 척하면서 매가리 없는 1990년대 브릿팝에 흥미를 잃게 만든 영국 밴드의 노래.

버브 파이프(Verve Pipe) ‘Freshmen’
90분짜리 테이프에 녹음해서 주구장창 들었던 두 번째 노래. 대학교 때 실수로 아이를 낙태시킨 버브 파이프의 보컬리스트 브라이언 밴더 아크의 쓰라린 경험을 속죄하는 내용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1996년에 처음 들었을 때는 음악 자체만으로도 내 마음을 후벼 팠다. 뭔가 슬프다고 생각했으니까. 가사를 몰라도 선율과 분위기로 감동을 주는 것이야말로 음악이 존재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다.

러시(Rush) ‘Spirit of radio’
밴드에서 드러머는 늘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지만 이상하게 캐나다의 록 밴드 러시의 드러머 닐 피어트는 보컬리스트 게디 리와 기타리스트 알렉스 라이프슨을 압도한다. 러시의 모든 가사를 쓴다고 하지만 해석할 수 없는 심오한 가사는 내겐 그저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일 뿐이다. 그러다가 러시의 공연실황에서 ‘Spirit of radio’를 연주하는 닐 피어트를 보고 반했고 노래 중간에 등장하는 ‘Freedom of music’이라는 가사가 내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드럼 연주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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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에이트(8eight) ‘또 사랑에 속다'(2020)

평가: 3/5

피아노와 드럼이 중심을 잡고 있는 이 곡은 록을 바탕으로 한 신파 가요다. 감정을 과용한 이현과 주희의 목소리는 선을 넘고, 가사와 랩은 격정에 찬 듯 울분을 토하며 1970년대 한국영화의 구태의연하고 구구절절한 내용을 담는다. 레트로라 하기엔 촌스럽고 구식이라 하기엔 세련된 곡 구성과 편곡의 ‘또 사랑에 속다’는 이 불균형이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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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Everything I wanted'(2019)

평가: 4/5

내가 자살했는데 아무도 슬퍼하지 않고 심지어 사람들이 그 사실조차 몰랐다면? 빌리 아일리시가 꾼 꿈을 바탕으로 만든 ‘Everything I wanted’는 노래의 이 내용처럼 음침하고 우울하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 빌리 아일리시가 원하는 것은 타인으로부터 침범 받지 않는 자신과 오빠만의 세계. 정신적으로 불안하다는 동변상련은 빌리 아일리시와 그의 오빠 피니어스 오코넬을 서로 의지하게 만들었고 빌리 아일리시의 많은 노래들은 이 남매의 머리와 마음에서 나왔다.

나른하고 무기력한 빌리 아일리시의 보컬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낮게 읊조리고 오빠 피어니스 오코넬이 연주한 악기들의 음파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있다. 무엇 하나 선명하고 뚜렷하지 않지만 이 흐릿한 점들이 모여서 선이 되고, 그 선이 뭉쳐서 면이 되듯 두 사람이 만들어낸 틈새는 신비로운 리듬 음악으로 환생했다. ‘ocean eyes’, ‘bury a friend’, ‘bad guy’를 이어갈 빌리 아일리시의 대표곡 리스트에 ‘Everything I wanted’는 누락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