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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IZM 뮤직 아카데미] Back To The 80’s

강의소개
이즘이 새로운 음악 강좌 [Back To The 80’s]를 시작합니다. 최근 대중음악의 키워드는 복고, 레트로입니다. 그중에서도 1980년대 음악이 그 중심이죠. 이번 강의는 가장 화려했던 1980년대 팝 음악을 조명합니다. 큰 스피커로 함께 모여 제대로 음악을 듣고, 배우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문의 사항이 있다면 언제든 아래의 번호로 연락 주세요.

* 일시: 2023년 2월 23일 ~ 3월 9일 (매주 목요일, 3주 과정) 저녁 6:30 ~ 8:30
* 장소: 빅퍼즐 문화연구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 370-26, 2층)
* 강사: 이즘 대표 겸 라디오 작가 소승근 (한동준의 FM POPS 작가로 활동 중)
* 수강료: 10만원 (개별 강좌 신청 가능 / 강의 1회 당 4만원)
* 수강신청 기간: 2023년 1월 6일 ~

* 문의: 010-2784-9906
신청링크: (클릭 시 새 창으로 연결됩니다)

커리큘럼
1. 1980년대의 역주행
2. 1980년대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3. 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꾼 M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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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2 에디터스 초이스(Editors’ Choice)

조금이나마 서로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던 한 해였다. 그간 억눌려있던 모든 것들이 터져 나왔듯 음악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희로애락으로 가득 찼던 2022년, 이즘 에디터의 일상을 파고든 노래는 무엇일까. 각자 취향을 녹여내 엄선한 플레이리스트지만 필자들이 독자 여러분에게 보내는 소소한 선물이기도 하다. 음악을 사랑하는 모두의 가슴 깊은 곳까지 진심이 전해지길 바란다.

정다열’s Choice

릴 나스 엑스(Lil Nas X) ‘Star walkin”
깜빡일지언정 멈추지 않았던 별들의 서사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250(이오공) ‘춤을 추어요’
세월에 익어 물든 기타 연주와 목소리를 벗 삼아.

언텔(Untell) < Human, The Album >
인간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근본적인 물음에 날을 부딪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향연.

신해경 ‘리얼러브 (Feat. 청하)’
양극단의 아티스트를 이어준 오작교 위의 황홀경.

그웬노(Gwenno) < Tresor >
익숙한 듯 낯선 미지 세계 속 보물. 위로라는 감정에 언어 장벽이 무슨 소용인가.

장준환’s Choice

MJ 렌더맨(MJ Lenderman) < Boat Songs >
마이크(The Microphones)를 든 채 인도(Pavement) 위 나타난 현대판 ‘마티 맥플라이’.

길라 밴드(Gilla Band) ‘Post Ryan’
어느 날 자택으로 배달된 택배. 그리고 이 불길한 난수 암호에 빠져들게 된 당신.

선과영 < 밤과낮 >
실이 바쁘게 오가듯, 미소가 배시시 오가듯. 그 소박함이 넘실넘실.

펜타곤 ‘관람차 (Sparkling Night)’
빠져들기까지 10초, 벗어나기까지 10개월. 키노 감성의 무서운 마력이란.

파더 존 미스티(Father John Misty) < Chloë And The Next 20th Century >
세기를 연결하는 낭만의 무도회장. 미스터 틸먼, 나와 함께 춤을 추겠어?

염동교’s Choice

킹 기저드 앤드 리저드 위저드(King Gizzard & Lizard Wizard) < Ice, Death, Planets, Lungs, Mushrooms And Lava >
1970년대의 잼(Jam)이 그립다면.

톰 제(Tom Zé) < Língua Brasileira >
MPB와 트로피칼리아(Tropicália)의 거목, 건재함을 과시하다.

FKA 트위그스(FKA Twigs) < Caprisongs >
스멀스멀 중독성 있는 앨범. 자꾸 손이 간다.

메가데스(Megadeth) < The Sick, The Dying… And The Dead! >
역시 메탈리카보다는 메가데스! 여전히 날카롭고 신랄하다.

뷰 파르카 투레, 크루앙빈(Vieux Farka Touré, Khruangbin) < Ali >
나른한 아프로 사이키(Psyche). 결은 다르지만 진저 베이커와 펠라 쿠티의 협연이 떠오른다.

김성욱’s Choice

프로미스나인(fromis_9) ‘Dm’
머리 아픈 콘셉트들 사이 투명하게 빛나는 보석. ‘눈을 못 피하게, 말도 못 돌리게’ 만들었다.

리치맨과 그루브나이스 < Memphis Special One Take Live >
멤피스가 주목한 ‘우리들의 블루스’. 2022 올해의 발견.

야드 액트(Yard Act) < The Overload >
갱 오브 포와 카이저 치프스 그사이 어딘가. 신랄하고 유쾌한 브렉시트 시대의 포스트 펑크.

비치 하우스(Beach House) < Once Twice Melody >
비치 하우스의 모든 앨범을 사랑한다. 이 앨범도 그렇다.

씨에이치에스(CHS) ‘Highway’
‘여름’하면 떠오를 노래가 하나 추가됐다. 8월 휴가철, 꽉 막힌 서울양양고속도로 위에서 들어보자.

임동엽’s Choice

텐투포(10 to 4) < 말하기 듣기 쓰기 >
예측할 수 없는 아름다움.

힙노시스 테라피(HYPNOSIS THERAPY) < Hypnosis Therapy >
정말로 최면에 걸린 줄 알았다.

이권형 < 창작자의 방 >
그저 음악을 할 뿐.

Various Artists < Elvis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
위대한 유산.

원슈타인 ‘존재만으로’
막힘없이 편안하다.

김호현’s Choice

해파 < 죽은 척하기 >
불안은 이렇게 사랑을 끌어안고 기어이 잠깐의 휴식을 만들어 낸다.

이수정 & 강재훈 < Stellive Vol.56 | Duology: Live At Stellive >
한국 재즈의 미래를 이끌어 갈 차세대 주자들의 근사한 조합.

제이콥 콜리어(Jacob Collier) ‘Never gonna be alone (Feat. Lizzy McAlpine, John Mayer)’
천재 마케팅을 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로버트 글래스퍼(Robert Glasper) < Black Radio III >
벌써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한 최첨단 흑인음악 실험실.

도미 앤 제이디 백(DOMi & JD BECK) < Not Tight >
재즈 역사를 이끈 거인들의 어깨 위에 새로운 세대가 올라서다.

손민현’s Choice

글렌체크(Glen Check) < Bleach >
아직 어른이 되긴 이르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차오른다.

이찬혁 < Error >
어떤 예술가의 기행은 시대를 여유롭게 스쳐가기도 한다, 파노라마처럼.

9와 숫자들 < 토털리 블루 >
코로나에 무뎌진 현대인들을 위한, 시기적절한 푸른 위로 한 가닥.

에이비티비(ABTB) < ⅲ >
더 거세게, 더 열정적으로, 더 록스럽게! 새 연료를 주입한 ABTB의 질주.

키스 에이프(Keith Ape) < Ape Into Space >
해묵은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주는 ‘Mull’.

한성현’s Choice

자브 이스…(JARV IS…) < This Is Going To Hurt (Original Soundtrack) >
자비스 코커만의 방식으로 보듬는 ‘따끔’한 세상살이.

1975(The 1975) < Being Funny In A Foreign Language >
괜히 머리 싸매지 말고 쉽게 쉽게 삽시다.

미츠키(Mitski) ‘Glide (cover)’
인간과 로봇,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기억. 에테르는 실존할지도 몰라.

트리플에스(tripleS) ‘Generation’
유닛 시스템, Z세대의 시대정신? 다 떠나서 그냥 즐겁게 랄랄라.

유아 ‘Lay low’
유혹 대신 냉소를 품은 세이렌의 노래지만 홀리는 건 마찬가지.

백종권’s Choice

일삼공공(1300) ‘Rocksta’
시드니에서도 한국 힙합. 음악으로 맺은 FTA.

잭슨(Jackson Wang) < Magic Man >
꾸준한 탈피의 결과물. 장난기 넘치던 악동이 제대로 마이크를 쥐었을 때.

엑스지(XG) ‘Tippy toes’
한국식 제조 과정으로 구현한 미국의 맛. – (Made in Japan)

버둥 < 너에게만 보여 >
올 한 해 발버둥이 석연치 않았다 해도. 나, 너, 우리를 위한 ‘응원’ 소곡집.

사커 마미(Soccer Mommy) < Sometimes, Forever >
웰메이드 얼터너티브 록이 선사하는 평온한 꿈의 체험. 옥에 티는 풋볼 마미가 아니라는 점.

소승근’s Choice

우아!(woo!ah!) ‘별 따러 가자’
이 노래는 우아!가 과소평가받고 있다는 가설을 확인시켜준다.

우연, 민서 ‘Make u move’
브레이브걸스의 ‘운전만해’ 이후 최고의 시티팝.

트라이비(TRI.BE) ‘In the air (777)’
말이 필요 없다. 이게 대중음악이다. 최고의 야구 응원가.

뉴진스(NewJeans) ‘Hype boy’
대중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요 멜로디와 쉬운 안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채연 < Hush Rush >
수록곡이 적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다.

정리 및 이미지 편집: 정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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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2 올해의 팝 앨범

국가 사이를 가로막던 장벽이 붕괴하자 다른 나라가 그렇듯 ‘고요한 아침의 나라’ 역시 손님맞이에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해졌다. 매일 새롭게 들려오는 해외 아티스트의 내한 소식은 물론, 공연과 페스티벌로 점철된 SNS 피드를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띠며 일정을 확인하는 경우가 얼마나 잦았던가. 음악 마니아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을 2022년을 다시 되돌아볼 팝 앨범 10장을 정리했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비욘세(Beyoncé) < Renaissance >
여성 뮤지션의 약진을 진두지휘하는 흑인 음악의 대변자는 달라도 확실히 달랐다. 모두가 펑크(Funk), 디스코로 회귀할 때 비욘세는 뒤를 이어 등장한 음지의 전자 음악 ‘하우스’를 들고 돌아왔다. 먼지 쌓인 댄스 플로어를 재정비하기 위한 춤곡 모음집이 코로나 위기의 세상을 하나로 뭉쳐 차별 없는 지하 세계로 끌어들인다.

클럽 안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모여 같은 음악을 즐길 뿐이다. 이것이 음악의 의미이고, 그 의지는 비욘세가 계승한다. 수많은 참여진, 담긴 내용, 여러 장르를 응축하는 힘으로 현세를 응집한다. 2022년이 < Renaissance >의 해라 단언 할 수는 없지만, 비욘세의 ‘부흥기, 전성기, 르네상스’임에는 틀림없다. (임동엽)

로살리아(Rosalía) < Motomami >
리키 마틴과 샤키라가 이끌었던 새천년 전후를 거쳐 ‘Havana’와 ‘Despacito’를 주역으로 한 2010년대 후반 이후, 라틴의 세계 침공은 이제 파티 음악에 그치지 않는다. 배드 버니의 < Un Verano Sin Ti >가 스트리밍 신기록을 세우며 대중적인 위력을 펼쳤다면 그 맞은편에는 로살리아가 있었다. 레게톤과 플라멩코를 접목해 현재와 과거를 잇고, 안팎을 뒤집어 해체와 융합을 시행한 < Motomami >가 그 주인공이다. 헬멧 하나만을 갖춘 괴물이 모든 장벽을 깨부쉈다.

매 순간 쉬지 않고 예상을 뒤흔드는 역동적인 전개와 청아한 목소리가 만나 무질서 속의 아름다움을 피워냈다. 다양한 스타일과 레퍼런스 차용을 동력 삼은 산발적인 공습은 가족과 친구, 내면에서 발굴한 텍스트로 가지런히 모아져 가수 고유의 힘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 출신 가수가 과거 식민지였던 라틴아메리카 문화를 전유한다는 논란은 한편으로 보면 세계화에 따른 라틴 음악의 무국적성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국경과 장르의 틀을 넘어 뻗어나가는 라틴, 좋든 싫든 그 선봉장에 로살리아가 존재한다. (한성현)

제이아이디(J.I.D) < The Forever Story >
애틀랜타 힙합 크루 스필리지 빌리지에서 마이크를 잡던 무명 래퍼에서 2017년 제이 콜이 이끄는 드림빌 레코드에 사인한 슈퍼 루키로 거듭나기까지 착실히 실력을 증명하며 성장해왔다. 실력보다도 개성, 눈길을 끄는 재미가 중요한 힙합 신의 경쟁 홍수 속에서도 좋은 음악과 랩으로 무시할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성실한 노력과 가파른 성장곡선은 < The Forever Story >에서 결실을 맺는다. 여전히 다수 대중에게 낯선 이름이지만 그를 더 이상 단순 루키로 규정짓는 건 무리로 보인다.

근래 이렇게 충만한 감상을 선사하는 앨범이 또 있었나. 더 날카로워지고 물오른 래퍼의 플로우가 대번 청각을 장악하고 옛 재즈와 소울의 향취를 가득 품은 프로덕션은 아름다운 선율의 향연이다. 자신의 역사를 치열하게, 입체적으로 풀어낸 자전적 메시지는 또 어떤가. 언뜻 진부할 수 있는 가족 이야기도 그의 펜 끝에선 한 편의 영화로 재생된다. 탄탄한 랩, 수준 높은 프로덕션, 여운 진한 메시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았다. 제이아이디는 현존 최고의 래퍼 중 하나다. (이홍현)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 Unlimited Love >
명불허전이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올해만 < Unlimited Love >와 < Return of the Dream Canteen > 두 장의 정규 음반을 연달아 발매하며 왕성한 생산력을 뿜어냈다. 오랜 파트너 프로듀서 릭 루빈의 손길과 환갑을 넘어선 노장들의 관록이 깃든 고품격 앙상블에 잠들어있던 록 인구는 열렬한 지지로 화답했고 대중의 환대마저 흡수해 몸집을 키운 < Unlimited Love >는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안착하며 팀의 완숙기를 연장했다. 4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베테랑들의 창작 욕구를 자극한 건 영광의 시절을 함께한 기타 히어로 존 프루시안테의 재합류가 결정적이었다.

돌아온 기타리스트의 존재감은 실로 거대했다. 그는 잠시 전자 음악에 몰두했던 최근 이력이 무색하게 견고한 록 기타 연주로 리듬 파트와 보컬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치밀하게 사운드의 틀을 짜 맞췄고 매끄러운 코러스와 맹렬한 기타 솔로로 자신을 대체할 수 없음을 우회적으로 선포했다. 멤버 재편성으로 발산된 화학 작용은 펑크 록과 그런지, 재즈 등 폭넓은 장르 소화력으로 불씨를 옮겨 서로 즉흥의 재간을 겨루는, 견고한 음악 회합으로 완성됐다. < Stadium Arcadium > 이후 16년, 전설들의 장엄한 재회식이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렸다. (김성욱)

위켄드(The Weeknd) < Dawn Fm >
이즘 필진들은 위켄드가 음반을 낸 해의 연말이 되면 늘 고민한다. ‘올해도 위켄드 음악을 올해의 앨범이나 싱글로 뽑아야 하나?’가 난상토론의 주제지만 결국엔 선정할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음악보다 좋으니까.

< Dawn Fm >의 DNA는 1980년대다. 신시사이저뿐만 아니라 보컬과 드럼에 리버브를 많이 걸어 사운드를 풍성하게 추출하는 방식도 당시의 유행을 따랐다. 이 음악적 유산을 현대적 감각으로 포장하는 것도 능력이며 여기에 맞는 멜로디와 비트를 뽑아내는 것도 실력이다. 칼리드, 이달의 소녀 등 국내외 여러 뮤지션들이 위켄드의 사운드를 괜히 따라 하는 게 아니다. 러닝타임이 50분이 넘는 컨셉트 앨범이라는 것도 반갑다. (소승근)

미츠키(Mitski) < Laurel Hell >
귀를 잡아채는 멜로디와 장르를 넘나드는 작곡 능력도 만개했지만, 미츠키의 핵심은 역시 멜로디와 단어를 조화롭게 꾸며내는 융합력이다. ‘Your best American girl’이나 < Be The Cowboy > 등의 대표작은 자아를 강하게 표출하며 구미(歐美) 사회에 스며든 ‘동양계 여성 싱어송라이터’로서 정체성을 줄곧 단단하게 응집해왔다. 커리어 정점으로 등반 중 돌연 은퇴 선언, 이를 번복한 < Laurel Hell >은 승리의 월계수에서 날카롭게 벗겨 낸 삶의 지옥 같은 단면까지 체화하며 거룩한 귀환을 알린다.

돌아온 미츠키는 스스로 전자음악의 연회를 거행한다. 과거를 계승한 신스팝 ‘The only heartbreaker’, 디스코 넘버 ‘Love me more’의 경쾌한 선율과 ‘누군가를 사랑하니 분명 외로울 것(‘Should’ve been me’)’이라는 처연한 가사가 서로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변화를 위한 과정이었다는 소회처럼 뚜렷한 반전의 미학은 날카롭고, 관계와 사랑의 곁가지조차 손질해내는 도도한 표현 역시 세밀하다. 내면으로 깊게 침투한 가시마저 가다듬어 재개장한 정원에 방문객은 연신 감탄을 보낼 수밖에. (손민현)

데인저 마우스 앤 블랙 소트(Danger Mouse And Black Thought) < Cheat Codes >
흑인 음악의 축을 차지하는 두 장인이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연마한 힙합 앨범엔 각기 다른 색들이 이음새 하나 찾을 수 없이 완벽하게 접합해있다. 다만 그 질감은 절대 부드럽지 않았다. 오랜 명작에서 빌려온 샘플을 기반으로 둔탁한 드럼과 베이스로 제련된 < Cheat Codes >란 금속은 시공간과의 반응을 거칠게 거부하며 세월이 지나도 부식하지 않는 영원성을 획득했다.

마치 축음기처럼. 이 년 전 세상을 떠난 엠에프 둠을 비롯해 과거를 지향하는 한편, 붐뱁의 다음 단계를 제시하는 콘웨이 더 머신을 통해 현재까지 보듬는 복잡한 흐름이 데인저 마우스가 일궈낸 고풍스러운 원반 위로 정렬한다. 음구(音溝)를 통과하는 바늘의 역할은 블랙 소트의 날카로운 래핑. 묵직한 목소리가 진동을 일으키며 세대와 주파수를 맞춘다. 어찌 보면 고루할 수 있는 작법을 끊임없이 담금질하며 다수의 공감을 구할 걸작으로 탄생시켰다. 시대를 소환하지만 잠식되지 않고 고유색채를 발현하는 점에서 이미 클래식이란 칭호의 영예를 부여받기에 모자람이 없다. (손기호)

찰리 XCX(Charli XCX) < Crash >
보통은 이러지 않는다. 앨범 다섯 장 계약의 메이저 레이블과의 종결이라면, 게다가 그 13년간 지속적으로 현저한 제작 자유의 침해를 경험한 경우라면 그 작품은 제목처럼 충돌과 분노의 화염 아니면 키스 앤 텔의 폭로일 소지가 크다. 거기에다 음악가의 본령인 ‘실험’에 충실해 온 주체임을 감안했을 때 막상 결과물이 지극히 레트로적, 타협적, 상업적임은 놀랍다. 뉴 잭 스윙, 디스코, 펑크(Funk), 신스팝, 하우스 팝 등 재래적 요소들을 순차적으로 배열하면서 유사 히트곡 컴필레이션을 꾸려냈다. 굿판은 걷어치웠다.

이러한 역공이 도리어 우호적 시선을 유발한다. 기존 질서로 향하는 ‘타락한 팝의 하수인'(이즘 리뷰 한성현)일지 몰라도 거기엔 음악 세계와의 화해 나아가 자신에 대한 다독거림이 있다. 예술적 아이콘 대신 ‘대중가수적 인격’을 택한 것이다. 세상과의 연결점을 놓치지 않으려는, 다수의 배제를 피하려는 안간힘 발버둥 몸부림은 아름답다. 실은 작은 도발들의 연속이다. ‘Good ones’, ‘Beg for you’, ‘Used to know me’ 등 짧게 끊어치는 곡들이 숨 가쁘게 이어지는 실한 수작 소품집! (임진모)

잭 화이트(Jack White) < Fear Of The Dawn >
지난 11월 10일 예스24 라이브 홀에서 열린 내한 공연은 여러모로 화제였다. 고밀도 사운드와 퍼포먼스가 호평받았고 록 마니아들은 젊은 거장의 연주에 화답했다. 사운드 적으로 양단에 선 두 음반 < Entering Heaven Alive >와 < Fear Of The Dawn >으로 래콘터스(The Raconteurs)와 데드 웨더(Dead Weather)의 지휘자이자 위대한 기타리스트 겸 음악감독에게 2022년은 남달랐다.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의 중핵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마지막 정규 앨범 < Icky Thump >을 낸 지 어언 15년, 잭 화이트는 화이트 스트라입스에 비견할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할퀴는 듯한 음색과 이펙트 잔뜩 걸린 기타 톤의 < Fear Of The Dawn >은 잭 화이트 특유의 날카로운 사운드를 반영했다. 변칙적 곡 구성과 아트 록에 개러지 록을 접붙인 실험적 사운드스케이프는 화이트의 고유 영지며 도입부 기타가 명징한 ‘What’s the trick?’이나 현란한 효과음의 ‘Taking me back’으로 주의를 붙들었다.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를 이끌었던 래퍼 큐 팁(Q-Tip)이 참여한 ‘Hi-de-ho’로 재즈 랩과 록을 혼합하는 실험성에도 대중 음악의 흡인력을 놓치지 않았다. (염동교)

빅 시프(BIg Thief) < Dragon New Warm Mountain I Believe In You >
사후 세계의 입구를 여는 어쿠스틱 종교의식. 공터에 버려진 플라스틱 인형들의 정겨운 캠프파이어. 우연히 주운 로파이 카세트에 녹음되어 있던 동화집 내레이션. 빅 시프의 < Dragon New Warm Mountain I Believe In You >에서 연상되는 수식은 분명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정말이지 그렇다. 이들의 목가적인 합주는 언뜻 가벼워 보여도 이명이 남을 만큼 묵직하고, 곧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은 아드리엔 렌커의 보컬은 쓸쓸하고도 동시에 온정적이다. 수많은 감상이 존재하는 이 공간에서 그들에게 수여된 인디 포크 신의 메시아라는 훈장은 너무나도 마땅해 보인다.

모든 것은 변한다.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과 물처럼, 산들거리며 정처 없이 떠도는 나뭇잎과 나비(‘Change’)처럼. 하물며 우리가 두려워하는 죽음조차도 그들의 초연함 앞에서는 그저 변화의 일부일 뿐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은 남는다. 빅 시프의 선율에는 시간을 머금고 조금씩 바뀌며 전승되어 온 여러 아티스트의 정신과 흔적이 깃든다. 밥 딜런의 낭만과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투쟁, 그리즐리 베어의 거리감, 피오나 애플의 즉흥성, 그리고 카 시트 헤드레스트의 투박한 질감까지. 그야말로 마법 같은 1시간 20분이다. 잘 짜인 한 편의 판타지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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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2 올해의 국내 앨범

서로가 목소리를 높여가며 설왕설래를 펼치는 치열한 연말 결산의 전쟁터. 이날도 어김없이 모두가 준비해온 총탄을 꺼내 드는 대격전이 펼쳐졌지만 올해만큼은 유독 결산이 어려웠던 난전의 해로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실력은 당연, 개성마저 천차만별인 필자별 ‘필청 작품’이 물밀듯 쏟아져 나왔기 때문. 산더미 같은 음반을 파헤쳐 가며, IZM이 올 한 해 꼭 기억해야 할 10장의 국내 앨범을 골랐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태연 < INVU >
정열적인 사랑 혹은 이별의 회한처럼 게으르고 익숙한 시각 대신 복잡다단한 감정을 풀어가며 입체적으로 사랑을 표현한 앨범의 방향은 분명 빛을 발한다. 그에 걸맞은 신화적 내러티브나 오랜만에 내건 댄서블한 사운드로 성공적인 솔로 가수 커리어를 이어가는 타이틀곡 ‘INVU’까지 설계적으로 부족함이 없다.

그보다 괄목할 만한 부분은 가수의 성취다. 단일한 주제를 열세 개의 단편으로 나눈 옴니버스식 구성 역시 음반의 주인공이 태연이기에 가능하다. 싱글 ‘사계’와 솔로 2집 < Purpose >에서 이룩한 냉소적이고 예민한 감각은 ‘Siren’과 ‘어른아이’에서 발화하며, 1집 < My Voice >의 섬세하고 다정한 촉감은 ‘품’과 ‘Ending credit’에서 극대화되어 환희를 안겨준다. 특유의 집요함과 첨예한 해석으로 어떤 음악에서도 주연을 꿰찰 보컬리스트를 목도한다. (정수민)

이오공(250) < 뽕 >
한 서린 구슬픈 탄식인가, 흥에 겨워 터져 나온 감탄사인가. ‘뽕’이라는 한 글자에는 차마 형언할 수 없는 한국인의 양가적인 애환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듯하다. 2017년, 그 고혹스러운 단어에 매료되어 남들과 다른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 인물이 있다. 이는 ‘뽕을 찾아서’라는 슬로건의 주인공 디제이 이오공(250)의 이야기이자, 그의 5년간의 여정을 정직하게 담아낸 탐험 일지 < 뽕 >의 탄생 일화다.

유행이 시시각각 바뀌는 사회와 단절하고 ‘뽕짝’의 선구자들과 직접 조우해 가며 고집스럽게 빚어낸 치밀한 복각 정신은 완성도의 비결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평범한 아카이브 자료나 역사책으로 바라본다면 곤란하다. 광범위한 비트 메이커 이력은 물론, 뉴진스 데뷔 앨범의 전담 프로듀서로 활동할 만큼 빼어난 그의 신세대적 감각이 단순한 재현을 넘어 신구의 새로운 조합과 기존에 없던 21세기 ‘뽕’을 탄생시켰기 때문. 아스라이 가슴에 스며오는 오프너 ‘모든 것이 꿈이었네’부터, 향수를 시큰하게 자극하는 클로징 ‘휘날레’까지 가히 놀랍다. 시대성과 상징성, 작품성을 모두 쟁취한 45분이다. (장준환)

세이수미 < The Last Thing Left >
세이수미의 노래는 상상력으로 가득 찬 추억을 제공한다. 트왕 기타 소리와 서프 사운드, 1960년대 미국 개러지 록과 사이키델릭, 1980년대의 인디 록과 드림 팝이 버무려진 노래는 정작 멤버 자신들도 경험하지 못한 1960년대로 대중을 이끈다. 그 생경함은 신선하고, 밝고, 낭만적인 에너지를 소유한 채 21세기에도 통하는 소구력을 과시한다.

나른하고 몽환적인 ‘Now I say’, ‘Photo of you’, ‘Still here’, ‘The memory of the time’과 대칭을 이루는 나머지 6곡은 양지를 만들면서 음반의 균형을 맞춘다. 진짜배기 레트로를 제공한 < The Last Things Left >는 아마추어 같은 프로페셔널 밴드가 2022년에 발표한 좋은 음반이다. (소승근)

이현준 < 번역 중 손실 >
< 쇼미더머니 >가 돌아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여러 스타가 탄생했지만 대부분의 참가자는 짧은 편집과 함께 스쳐 가는 주변인이 되기 마련이다. 딥플로우가 이끄는 레이블 VMC가 주목받지 못한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보일링 프로젝트’의 수혜로 첫 번째 앨범 < Main Stream >을 발매했던 이현준 역시 그중 한 명이다. 시리즈의 백미인 2차 예선까지 올라갔으나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3초’의 방송분으로 이현준의 한해를 정의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정규 음반 < 번역 중 손실 >을 통해 이뤄낸 결실은 그 ‘3초’ 다음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앨범은 오류 없이 소통하는 데서 겪는 어려움,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와 자기혐오를 하나의 서사로 전달한다. 내러티브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한 가상의 마약 ‘Soma’와 자율주행 자동차 등의 사이버 펑크적 장치들은 전위적인 전자음의 사운드와 맞물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난해한 가사의 내용을 ‘손실’ 없이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있겠으나 해석은 각자의 몫. 쇼 프로그램의 60초 무대에서 담아내지 못했던 44분의 스토리텔링이 국내 익스페리멘탈 힙합을 대표할만한 음반을 완성했다. (백종권)

에이트레인(A.Train) < Private Pink >
어느 때보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보편적 통증이 되어 청자의 숨길을 조여온다. 가느다란 첼로 현에 의지해 위태롭게 삶과 마주한 아티스트의 시선은 내면의 낮은 곳으로 향했고, 이는 명백히 타인을 위로하기 위해 ‘나’를 용서하기로 결심한 용기다. 절벽에 매달린 그를 구출할 수 있는 것 또한 자신이기에. 가혹하지만 낭떠러지 주변에 날카롭게 돋아난 원죄를 밑바닥부터 밟아가며 천천히 꼭대기로 나아간다. 아스라한 반성으로 쌓아 올린 탑의 정상을.

어찌 주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떠한 치장 하나 없는 생생한 치부를 오롯이 드러내는 것을. 고통과 완전히 분리되고 싶어 스스로 둘러맸던 변명의 살갗 속 깊게 파묻은 상처를 굳이 파내는 에이트레인의 자학적인 순례가 숭고하다. < Private Pink >. 아픈 부위일수록 더 처절하게 해체해 결국 절망까지 걷어낸 그의 손끝에 덕지덕지 붙은 분홍색 살점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손기호)

브론즈 < Skyline >
1980년대 일본 경제 호황기의 풍부한 음악 자본이 보사노바와 재즈 퓨전을 흡수해 탄생한 시티팝은 세련된 사운드와 낭만적 분위기로 사랑받고 있다. 마니아들의 디깅으로부터 시작한 이 음악 스타일은 대중음악계 작은 화두가 되었고 빛과 소금, 김현철 등 ‘한국 시티팝’ 원류(源流)의 아카이빙과 유키카와 죠지, 제인팝처럼 경험하지 못한 노스탤지아를 선사하는 21세기의 시티팝 뮤지션들의 조명이 함께 이뤄지고 있다.

알앤비 뮤지션 기린이 세운 레이블 에잇볼타운의 프로듀서 브론즈는 정규 앨범 < East Shore >(2019)와 < Aquarium >(2020)으로 ‘시티팝 장인’의 예명을 얻었고 2022년의 여름을 채색한 < Skyline >이 ‘시티팝 트릴로지’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쫀득한 베이스와 이하이의 감각적 보컬이 빛나는 타이틀 곡 ‘Ondo’가 앨범의 정체성을 압축했고 오키나와 출신 보사노바 뮤지션 히야죠 아츠코(Atsuko Hiyajo)가 참여한 ‘Smooth flight’로 세련미를 구축했다. 보랏빛 도시 풍경의 < Skyline >은 역설적으로 시티팝의 명명 없이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염동교)

이승윤 < 폐허가 된다 해도 >
사람의 마음이 폐허가 될 때 그 속에서도 꽃은 피어날 수 있을까. 실존적 물음을 주제로 한 이승윤의 사고 실험이 퍽 괜찮은 노래가 되어 대중의 마음에 어떤 의지를 심는다. 그는 이상과 날카로운 현실 사이의 부조리를 용기 있게 직시하며 이렇게 드러난 삶의 아이러니를 특유의 해학으로 풀어낸다. 직관의 미학이 패러다임이 된 대중음악 현장에서는 흔치 않은 방식의 서술이지만 진지한 가사의 힘을 믿는 이승윤은 자신의 믿음을 뚝심 있게 고집한다.

마치 시인이 단어를 다루듯 음악이 발하는 감정을 섬세하게 배치한 편곡이 곡에 담긴 메시지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쉬운 선율의 기타 리프가 도드라지는 ‘도킹’으로 앨범의 재생을 시작한 이들의 마음에 편하게 접속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폐허가 된다 해도’에서는 명상과 유사한 음악적 트랜스 상태를 유도하며 자아와 현상학적 타자를 연결한다. 이승윤의 음악에서 가사와 음악은 이처럼 아주 긴밀하다.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이 두 축의 유기적인 협업이 근사하다. (김호현)

한정인 < Spells >
신선하다. 근래 찾아보기 힘든 어린아이와 같은 맑은 창법에 묘하게 어둡고 기이하게 신나는 곡들이 섞여 있는 음반은 단숨에 그의 이름 3글자를 주목하게 했다. 2011년 데뷔 이후 긴 시간 ‘코스모스 슈퍼스타’로 활동하고 올해 본명인 ‘한정인’으로 새 시작을 알린 그의 멋진 복귀 혹은 출발이다.

전자음을 중심으로 불안함, 슬픔 등의 감정을 노래하는가 하면 타이틀 ‘Wallflower’로는 짝사랑의 눅눅한 마음을 댄스 팝으로 녹여낸다. 그러나 종잡을 수는 없다. 기조가 상승하는가 하면 이내 ‘Badluckballad’, ‘차라리’, ‘Borderline’과 같은 곡으로 흐름을 끊어내는 식이다. 이 앨범을 어떻게 읽을 수 있는가. 몽롱한 사운드로 부유하는 첫 곡 ‘Extra’와 웅장하게 터지는 마지막 곡 ‘묵시록’까지 천천히 따라가 보길 권한다. 움트고, 지는 감정 속에서 그가 음반을 왜 주문들(Spells)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냈는지, 그 이유를 알아챘을 때 작품은 놀랍도록 새로운 주술이 되어 줄 것이다. (박수진)

비투비 < Be Together >
작금의 K팝이 화려한 퍼포먼스를 앞세워 몸집을 불렸다지만 마음을 뒤흔드는 건 결국 목소리다.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은 보이그룹 비투비가 험난한 경쟁 구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본질을 항상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자 병역을 마치고 돌아와 선보인 4년 만의 완전체 앨범 < Be Together >는 꾸준히 지켜온 신념을 더욱 늠름하게 다듬는다. 주특기인 발라드가 작품 전반을 잔잔하게 매만지는 중에도 적당한 기교의 알앤비와 파워풀 록 트랙을 섞어 감흥을 돋우고, 전자음을 최대한 덜어낸 악기 운용까지 더해져 무르익은 음색에 편안히 녹아들게 된다.

자연스레 여섯 청년의 이야기에도 귀가 쏠린다. ‘목이 터지도록 널 부를게’라며 덤덤한 고백을 남기는 시작 ‘노래’부터 ‘너의 소리로 나를 불러줘’라고 참았던 그리움을 토해내는 마무리 ‘Encore’까지, 가수와 관객이 하나 되는 순간이 곧 우리이자 노래라는 드라마틱한 스토리에 가슴 벅찬 환희가 터진다. 현대 사회에 ‘함께’의 중요성을 새삼 재고하게 해준 슬로우 블루 멜로디, 두고두고 꺼내 듣게 될 뮤직캡슐이 또 하나 생겼다. (정다열)

빛과 소금 < Here We Go >
디깅문화와 시티팝 순풍에 빛과 소금은 서둘러 돛을 달았다. 과거로부터 불어온 뉴트로가 < Here We Go >의 출정에 박차를 가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세기를 뛰어넘은 두 거장의 귀환은 결코 대세로의 편안한 편승이 아니다. 줄곧 숙성해왔던 ‘좋은 소리를 만들겠다’는 빛과 소금의 철학, 시간을 앞선 그들의 문법이 지금에서야 시대와 선명한 교차점을 그려낸다.

바람을 탄 ‘샴푸의 요정’의 재림과 함께 특유의 산뜻한 향취가 주위에 흩날린다. 1990년대 발라드풍 ‘Lost days’, 아름다운 화음의 ‘필라마네’는 아련한 추억을 우려내고, 찬송가 ‘우리 모두에게’의 유려한 기타 솔로는 크리스천 밴드로서 신앙과 음악성 모두를 쟁취한다. 탐험가의 면모를 잃지 않고 랩을 삽입한 ‘오늘까지만’으로 죽지 않는 실험정신을 과시하기까지. 가보자고! 제목의 외침처럼 두 거장의 활기찬 에너지가 온몸을 감싼다. (손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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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2 올해의 팝 싱글

유난히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 한 해다. 예상치 못 한 고지 점령과 아슬아슬한 추격전, 그리고 통쾌한 정상 탈환까지. 주연과 각본이 쉴 새 없이 바뀌며 반전의 반전을 이룩하던 1년간의 드라마는 어느덧 막을 내렸다. 그 크레딧을 천천히 살펴보며, 차트 내외곽에서 활약을 펼친 그 영광의 10곡을 소개하려 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As it was’

새 출발 이후 곧바로 그룹 시절과의 단절을 완수한 해리 스타일스는 올해 ‘As it was’로 완연한 대세에 올라섰다. 자국인 영국에서는 10주 동안 1위를 차지했고, 미국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의 정상에서는 무려 15주 동안 군림하며 통산 4위의 기록을 세운 것. 심지어 솔로 아티스트로는 최장기간이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앨범 제목 < Harry’s House >처럼 1위 자리를 마치 그의 집처럼 드나든 셈이다.

비결은 ‘무자극’이었다. 1980년대 뉴웨이브부터 요즘 인디 록까지 다양한 재료와 향신료를 한데 넣고 섞어, 따뜻하게 속을 데워주는 깔끔한 수프 같은 곡을 완성했다. 그 중심에 놓인 기름기를 쫙 뺀 해리 스타일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노래를 찾게 만드는 정겨운 맛을 내줬다. 정점을 찍은 인기와 물오른 실력이 엇갈리지 않고 동시에 만난 흔하지 않은 케이스다. 그러니 연기로의 외도보다는 음악에 집중해주시길. (한성현)

스티브 레이시(Steve Lacy) ‘Bad habit’

강단 있는 알앤비 록스타가 승리를 쟁취한 방법은 무엇일까. SNS, 챌린지, 차트 줄 세우기, 밈, 방송 등 노래의 성공적인 대중화를 위해 각종 플랫폼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는 작금의 시대에서 그가 선택한 방식은 당연하게도 ‘음악’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유행만을 좇는 ‘나쁜 습관’에 영원히 지속 가능한 음악으로 일갈을 가한다.

소울 그룹 인터넷의 멤버로 시작해 켄드릭 라마 등 이름난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일찍이 실력을 인정 받아 2022년 정상에 올랐다. 오롯이 음악만을 생각한 뚝심의 결과. 트렌드의 부정을 역설(力說)했지만, 역설(逆說)적이게도 스티브 레이시는 스스로 유행의 최전선에 섰다. 아무리 급변하는 세상이라도 좋은 음악은 살아남는다. (임동엽)

원리퍼블릭(OneRepublic) ‘I ain’t worried’

초기 히트 공식을 반복한 작법에 따라붙은 자기복제 꼬리표, 그에 따른 평가 절하에도 걱정 따위는 없었다. 폭넓은 장르 도입 너머 보편적 송라이팅을 최우선으로 추구했던 원리퍼블릭의 정성이 다시금 결실을 거둔다. 놀라울 만큼 쉽고 선명하다. 부단한 담금질의 산물인 생생한 멜로디를 연료 삼아 ‘I ain’t worried’는 37년 만에 개봉한 속편 < 탑 건 : 매버릭 >에 탑승해 스크린을 넘어 박스 오피스와 음악 차트 상공을 쾌속 비행했다.

원리퍼블릭의 ‘탑 건` 라이언 테더의 탁월한 프로듀싱 역량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중적 흡인력을 갖춘 록 선율과 경쾌한 휘파람 사운드를 끌어온 샘플링 기법, 공간감을 연출한 편곡까지 엘리트 조종사의 날 선 감각이 올해 절정에 달했다. 시리즈를 상징하는 사운드트랙 ‘Take my breath away’와 ‘Danger zone’의 아성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신흥 클래식 넘버. 찬사와 홀대를 양득하며 쌓아온 노하우가 결정적 한 방을 터뜨렸다. (김성욱)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The heart part 5’

켄드릭 라마는 음악의 사회적 기능을 믿는다. 밥 딜런과 보노의 궤를 잇는 흑인 사회운동가는 < Good Kid, M.A.A.D City >(2012)와 < To Pimp A Butterfly >(2015), < Damn >(2017)의 명반 퍼레이드로 평단의 찬사를 독식했고 랩 뮤직의 시초격인 소울 뮤지션 질 스콧 헤론(Gil Scott-Heron)과 퍼블릭 에너미가 주도했던 폴리티컬 힙합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의 파급력을 다시금 공고하게 한 다섯 번째 정규 앨범 < Mr. Morale & The Big Steppers >의 프로모션 싱글 ‘The heart part 5’는 자전적 특성을 담은 ‘The heart’ 시리즈의 5번째 순서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사회의식이 강했던 선배 가수 마빈 게이의 1976년 작 ‘I want you’를 샘플링해 재즈와 펑크(Funk)적 색채가 다분하며 반복적인 리듬 아래 선언문과도 같은 언어를 채웠다. 분노와 일갈을 억누른 랩은 냉소적 시선을 견지해 더욱 날카롭고 성찰적이다. 딥페이크 기술로 화제가 된 뮤직비디오는 로스앤젤레스의 흑인 공동체를 위해 힘썼던 래퍼 닙시 허슬(Nipsey Hussle)과 살인 사건에 휘말렸던 전 미식축구 선수 오제이 심슨(OJ Simpson),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윌 스미스 등 6인의 표상으로 흑인의 삶을 아울렀고 갱 문화를 비롯한 흑인 사회의 그릇된 방향성에 사랑만이 해결법(I want you)임을 제시했다. (염동교)

도자 캣(Doja Cat) ‘Vegas’

도자 캣의 공세는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여러 히트곡을 배출한 2021년 < Planet Her >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아티스트는 영화 < 엘비스 >의 부름을 받아 입지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까지 올라간 ‘Vegas’는 전쟁터 같은 힙합 세계에서 도자 캣이 이제 슈퍼 루키를 넘어 독보적인 주연에 등극했음을 알린다.

전기 영화다 보니 트렌디한 힙합 사운드의 사용은 키워드만 보면 어색할지도 모른다. 작품에서 ‘Hound dog’의 원곡자 빅 마마 손튼(Big Mama Thornton) 역을 맡은 숀카 두쿠레(Shonka Dukureh)의 목소리를 샘플링한 영민한 비트와 후렴이 일말의 괴리감을 메꾼다. 시대와 인종의 장벽을 넘은 무대 위, 매서운 전달력과 흥겨운 싱잉 랩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래퍼의 실력도 역시 굳건하다. 복고 추세로도 모자라 옛 명곡의 적극적인 차용이 주류로 올라선 오늘날의 흐름 가운데 특히 빛나는 곡이다. (한성현)

덴젤 커리(Denzel Curry) ‘Walkin’

덴젤 커리가 2023 그래미 어워드 힙합 부문 후보에 이의를 제기했다. 자신의 음반을 포함해 올 한해 호평을 받았던 앨범들을 명단에서 제외한 데에 불만을 토로한 것. 어리광으로 치부될 수 있는 발언이지만 그에게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 Ta13oo >(2018), < Zuu >(2019) 등의 탄탄한 디스코그래피로 제이 콜, 켄드릭 라마 이후의 컨셔스 래퍼 선두 주자 타이틀을 노리는 그가 이번엔 < Melt My Eyez See Your Future >로 제대로 역량을 터뜨렸다.

그 중 ‘Walkin’은 단연 베스트 트랙이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가사에 담아 역설적으로 불합리한 사회를 고발한다. 정통 붐뱁에서 하이햇과 함께 트랩으로 변주하는 사운드, 그에 맞춰 플로우를 바꾸는 랩은 무거운 주제를 전달하면서 일말의 지루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켄드릭 라마의 ‘The heart part 5’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흑인 커뮤니티에 자극을 주며 어느 때보다 눈에 띄는 도약을 만들어냈다. 덴젤의 ‘Walkin’이 올해를 대표할 자격은 충분하다. (백종권)

푸샤 티(Pusha T) ‘Diet coke’

드레이크는 앨범을 (훨씬) 더 많이 팔았다. 릴 베이비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더 많은 노래를 빌보드 차트에 올렸다. 2022년 현재 힙합 신에서 푸샤 티보다 잘 팔리고 인기 있는 래퍼는 많다. 그러나 ‘Diet coke’에서 그의 랩을 듣는다면, 선정을 납득할 것이다.

일로매진(一路邁進)의 승리다. 노래는 그의 바위처럼 단단한 태도와 모든 음악적 특징을 압축한다. 맹수처럼 사나운 랩, 랩에 집중할 여유를 넉넉히 주는 반복되는 비트, 마약상의 경험에서 비롯된 공격적인 텍스트까지. 프로듀서 에이티에잇 키스(88-keys)가 18년 전 만들어 카니예 웨스트와 새로 손본 비트는 빈티지한 느낌을 물씬 자아내고 여기서 래퍼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자신감과 여유가 넘친다. 축소, 경량화, 단발성이 득세한 힙합 신에서 이런 묵직하고 정직한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있는 래퍼는 많지 않다. 이게 기록이나 수치적 성적을 떠나, 푸샤 티가 항상 승리하는 이유다. (이홍현)

리조(Lizzo) ‘About damn time’

여성을 대표한 뮤지션은 많다. 1980년대 이후 마돈나가 줄곧 여성의 섹스(욕구)를 거침없이 발화 하고 레이디 가가는 ‘태어난 대로 살자’며 ‘Born this way’를 열창, 여성을 넘어 소수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약간 결이 다르긴 하지만 메간 더 스탈리온, 도자 캣, 카디 비 등의 음악가는 자신의 ‘바디’를 음악적 어필 포인트로, 서슴없이 자기 과시를 행하는 중이다.

리조 역시 여성을 대표하고 자신을 과시한다. 하지만 그는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몸’에 주목, ‘몸 긍정주의(Body Positive)’를 이끈다. 그를 이 분야의 대명사로 만든 앨범 < Cuz I Love You >가 그랬듯 이 곡도 몸의 두께와 상관없이 ‘음악은 키우고 조명은 낮추며’ 신나게 즐기자고 말한다. 1980년대 펑크/디스코 사운드를 골자로 트레이드 마크인 플루트 선율을 담은 점 또한 과거와 맥을 맞춘다. 이 연속성이 반복됨에도 올해 팝은 또다시 리조로 집약이다. 왜? 곡이 가진 독보적이고 힘 있는 메시지 덕분. 시대가 변하지 않는 한 그의 바디 찬가는 계속해서 시대를 대표할 것이다. (박수진)

수단 아카이브(Sudan Archives) ‘Selfish soul’

기록은 오직 인간에게만 허락된 신성한 행위다. 이 뜻깊은 작업을 활동명에 새겨 넣은 뮤지션 수단 아카이브는 방대한 음악 자료 수집을 통해 깨우친 가치를 단 2분 22초 안에 압축했다. 둥둥거리는 베이스로 맥이 뛰기 시작한 트랙은 소울 가득한 목소리, 가스펠 풍의 백 보컬, 그리고 박수 소리에 맞춰 그 박동을 빠르게 이어가고 이내 북동 아프리카의 바이올린과 조우하며 경쾌한 대비를 이룬다. 말미에는 짧은 랩까지 가미해 투철한 실험 정신과 장르를 끌어안는 포용성을 두루 발휘한다.

흑인 음악을 집대성한 만큼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 또한 그들의 공동체 의식을 투영한다. 각기 다른 헤어스타일을 소재로 풀어낸 노랫말은 그 형태와 색깔, 질감으로 다양성 존중을 피력하고, 흑인 여성들과 촬영한 뮤직비디오에서 수단 아카이브는 몸소 삭발과 핑크색 가발 쓴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며 주장에 힘을 싣는다. 흥미로운 ‘내용’, 간결하고도 짜임새 있는 ‘구조’, 여기에 사회를 관통하는 ‘맥락’까지. 기록의 3요소를 완벽히 충족한 현대식 민족음악 아래 새로운 무도회의 여왕이 탄생했다. (정다열)

엔칸토(Encanto) ‘We don’t talk about Bruno’

대중, 시장, 평단의 예상 밖 일치된 환대였다. 차차차 리듬을 내건 살사 음악은 친숙해서 신선하지 않고 가볍게 흘러 평가대상에서 밀려날 듯했다. 실제로 영화 OST를 쓴 작곡가 린 마누엘 미란다도 아카데미상 후보로 딴 곡을 제시했을 만큼 이 곡은 주변의 비핵심 트랙으로 간주되었다. 가수들도 영화 캐릭터의 보이스를 맡은 생소한 인물들이어서 대표곡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음이 명백했고 왠지 여럿이 합창하는 곡에 승부를 걸지 않는 디즈니의 규범에도 부합하지 못했다.

반면 대중들은 이 야유적 어투의 쾌활한 아우성에 적극적 갈채를 건네면서 명곡은 범람했어도 디즈니에게 부재했던 빌보드 넘버원 싱글이란 나름의 영예를 안겼다. 무려 5주간 1위였다. (영국은 7주간) 진부할 수 있는 떼창은 오랜만에 접하는 완벽한 앙상블로 해석되어 코로나 시대에 갈구된 가족가치를 일깨우며 선전했다. 유머의 기민성, 가족 모두를 비추는 공평과 다양성, 굿 바이브레이션 사운드 그리고 미스터리 터치가 어우러진 한편의 완벽 크로스오버! 2022년을 사랑스럽게 했다. (임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