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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Feature

IZM 필자들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음악 10곡’ – 이택용, 임동엽, 정연경

2010년대를 보내고 2020년대를 맞이하며 IZM이 새해 특집을 준비했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채우기 위해, IZM 필자들이 ‘내 인생의 음악 10곡’을 선정해 소개했다. 한 사람의 삶을 정의하는 데 10곡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취향과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총 8회에 걸쳐 진행될 ‘내 인생의 음악 10곡’의 여덟번째 차례는 이택용, 임동엽, 정연경 에디터다.

부활 ‘Never ending story’
초등학생 때 부모님이 사주신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당시 좋아했던 가수로서 인디언 분장을 한 보아와 전쟁터에 나간 조성모 등 여러 가수들이 떠오르지만 유독 이 노래 생각이 많이 난다. 용돈으로 마트에서 부활의 < 새벽 > 음반을 구매하여 공테이프 하나를 ‘Never ending story’로만 채워서 들었었다. 워크맨과 공테이프 그리고 검은색 소니 이어폰을 통해 나는 음악이라는 네버 엔딩 스토리를 시작했다.

백스트리트 보이즈(Backstreet Boys) ‘As long as you love me’
가요밖에 모르던 날 팝의 세계로 이끈 건 다름 아닌 중학교 같은 반 친구였다. 함께 노래방에 갔던 그날의 현장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바이브와 G. 고릴라 등 발라드만 불렀었던 내 앞에서 당당히 ‘As long as you love me’를 선곡한 친구는 중학생 못지않은 무대매너를 곁들여 노래를 멋들어지게 소화했다. 영어 발음이 어떻든 전혀 상관없었다. 내게 처음으로 팝이란 신세계를 보여준 그때 친구의 모습은 내게 마치 < 원피스 >의 골 D. 로저처럼 다가왔다. ‘잘 찾아봐. 이 세상의 전부를 거기에 두고 왔으니까.’

휘트니 휴스턴 & 머라이어 캐리(Whitney Houston & Mariah Carey) ‘When you believe’
광진구 닉 카터가 휩쓸고 간 내 자존심엔 오직 악바리만 남아있었다. 팝을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팝의 황제를 시작으로 팝의 여왕, 팝의 전설, 팝의 딱정벌레 등 인터넷의 도움을 통해 닥치는 대로 팝을 찾아 들었다. 그중에서도 팝의 3대 디바 중 두 명이 부른 ‘When you believe’를 좋아했었다. 물론 아직까지 < 이집트 왕자 >를 보진 못했으나 당시 내 어린 귀에 흐르던 ‘When you believe’는 모세가 바다를 가르는 광경처럼 웅장하고 신비로운 노래였다.

Oasis ‘Champagne Supernova’
문이과 중 진로를 선택하여야 할 나이가 되었을 때쯤, 오아시스가 내 취향의 진로를 인도하였다. 형제인지 원수인지 모를 갤러거들의 환장 콜라보를 듣기 전 내가 접했었던 팝 음악이 반짝이는 보석 같았다면, 이들의 음악은 더러운 흙이었다. 시끄러움과 불쾌함의 정서는 10대 후반의 나를 락덕후의 길로 이끌었고 결국 나를 ‘너희들은 이런 음악 안 듣지?’라는 우매한 우월주의에 빠뜨렸다. 음악 취향에 있어 다른 이들보다 한 단계 위에 있다고 생각했던 당시의 나는 우습게도, 이 노래의 제목을 ‘침팬지 슈퍼노바’로 읽었었다.

더 콰이엇 ‘한번뿐인 인생’
락의 교조주의에 빠진 고등학생 때의 나는 정말이지, 랩을 무시했었다. 랩을 넘어 힙합이란 문화 자체를 경박하다고 치부했었다. 소울컴퍼니와 무브먼트 등 힙합 레이블들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었을 때였고, 나는 홀로 ‘침팬지 슈퍼노바’에 불타올랐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락존심 때문에 반 친구와 ‘락 vs 힙합’으로 설전을 벌였을 때도 있었다. 설전 끝에 서로 한 곡씩 골라 친구들에게 어떤 곡이 더 좋은지 투표를 받는 것으로 갈무리하기로 하였는데 내가 꺼낸 카드는 당시 혜성처럼 등장했던 아케이드 파이어의 ‘Wake up’이었고 친구의 카드는 더 콰이엇의 ‘한번뿐인 인생’이었다. 자존심 때문에 친구에게 말하진 못했지만, 그때 집에서 몰래 ‘한번뿐인 인생’과 < The Real Me > 앨범을 많이 들었다. 상당히 규제가 심했던 내 음악 취향에 랩과 힙합을 들이기 된 프로메테우스 같은 곡이다.

위저(Weezer) ‘Undone – The sweater song’
위저를 좋아한다. 최근 들어 유치한 멜로디로 만든 돌림 노래만 내는 것 같지만 그래도 위저가 좋다. 그만큼 이들의 초창기 앨범들을 좋아했다. 90년대 락 히어로들인 커트 코베인과 에디 베더, 빌리 코건에게 찾을 수 없었던 지질함과 너절함이 리버스 쿼모에겐 있다. 숙맥의 정서가 깊게 배어 있는 ‘Undone – The sweater song’은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곡 중 하나다.

뉴트럴 밀크 호텔(Neutral Milk Hotel) ‘In the aeroplane over the sea’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음반이라 하면 뉴트럴 밀크 호텔의 < In The Aeroplane Over The Sea >일 것이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모티브로 한 음반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인생의 즐거움과 죽음에 대한 우수가 담겨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소리들이 자아내는 처절한 퍼레이드는 내게 아직도 가장 어려운 단어 중 하나인 ‘인디’가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알게 해주었다. 그중에서도 음반의 제목과 같은 이 노래는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사랑스러운 노래다.

런 더 쥬얼스(Run The Jewels) ‘Close your eyes (And count to f**k)’ (Feat. Zack De La Rocha)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정신없이 쏘아붙이는 비트 위에서 킬러 마이크와 엘피가 랩을 주고받는 걸 들었을 때, 내가 가진 모든 보석들을 내놓아야만 할 것 같았다. 이어지는 잭 드 라 로차의 앙칼진 래핑이 내 귀를 찌르던 순간, 이 곡은 내 인생의 노래가 되었다. 더불어 곡이 수록된 < Run The Jewels 2 >의 리뷰로 이즘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서 더더욱 기억에 남는 노래다.

악동뮤지션 ‘Give Love’
이 남매의 정서와 목소리를 독도만큼이나 지켜주고 싶다. 세상 그 어떤 나쁜 것들을 볼 수 없게 눈을 가려주고 싶을 정도로 이들의 감성은 소중하다. 내 기준대로 대중음악 명반을 뽑자면 들국화와 유재하의 앨범 위에 이들의 데뷔 음반을 올리고 싶을 정도다.

맥 밀러(Mac Miller) ‘Good News’
마지막으로 재작년에 세상을 떠난 맥 밀러의 곡을 뽑았다. 현재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최근에 발매된 사후 앨범 < Circles >를 들으며 그는 어느 래퍼와는 다르게 우리의 몸이 아닌 감정을 움직이는 래퍼였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RIP Malcolm.

김광석 ‘혼자 남은 밤’
팝송 마니아였던 내게도 간직하고 싶은 국내 가요가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가슴 속에 하나쯤은 자리할 김광석의 노래 중 나의 친구는 ‘사랑했지만’,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도 아니었다. 그가 불렀다면 가릴 것 없이 좋아했지만 늦은 밤 나 홀로 우수에 젖을 때면 자연스럽게 꺼내 듣는 인생 감성 BGM은 여전히 ‘혼자 남은 밤’이다.

이글스(Eagles) ‘The sad cafe’
첫 MP3플레이어가 생기고 팝에 빠져 살던 ‘중2병’의 나는 우연히 이글스의 베스트 앨범을 다운받았다. ‘Hotel California’, ‘New kid in town’ 등 명곡 잔치 속에서도 나는 유독 따뜻했던 ‘The sad cafe’를 선택했다. 이글스의 노래를 듣던 내게 ‘네가 이런 노래도 알아?’라며 한 마디 날리신 이모부의 말에 어린 나는 대단한 인정을 받은 것처럼 뿌듯했다. 그렇게 평생 간직할 뮤지션이 생겼다.

밴 모리슨(Van Morrison) ‘Dweller on the threshold’
이즘에서 얻은 보물 1호. 귀에 거슬리던 하이햇을 이해하는 순간, 모든 게 끝났다. 거짓말 같지만 일로 듣는 시간을 빼고는 일주일 내내 이 노래만 들었다. 이즘에서 배워가는 음악이 나날이 늘어가는 와중에 ‘Dweller on the threshold’의 뒤는 탐 페티 1집 < Full Moon Fever >의 수록곡 ‘Free fallin”이 이어받았다. 그렇게 ‘무한재생’을 경험한다.

뮤트매스(Mutemath) ‘Armistice’
유튜브 이전에도 음악은 영상과 함께였다. 학창 시절 신선한 뮤직비디오를 찾아 정보의 망망대해를 표류하던 나는 오케이 고의 돛을 달고 뮤트매스라는 신대륙을 발견했다. 뮤트매스 노래 중에서도 뮤직비디오 기준으로는 ‘Typical’과 ‘Spotlight’가 최고지만 음원만 보자면 일등은 ‘Armistice’다. 금관악기 편곡의 원곡보다 신시사이저를 활용한 라이브 버전을 추천한다.

스콧 맥켄지(Scott McKenzie)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따스함을 묘사한 줄 알았지 히피들의 송가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노래를 들을 당시 음질이 좋지 않았지만 이는 오히려 LP처럼 아날로그다웠고, 쉬우면서 편한 멜로디는 안 들을 이유를 없게 만들었다. 정겨운 기타 리듬에 정이 넘치는 보컬까지 편안하게 듣기 좋은 팝이다. 의미를 나중에 알았다 한들 좋은 건 매한가지다.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 ‘Sweet child o’ mine’
기타를 배우고 선 첫 무대에서 ‘Sweet child o’ mine’을 연주했다. 화려한 솔로도 없는 세컨드 기타였지만 공연을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담배를 물고, 선글라스를 끼고, 여유롭게 기타를 치는 로커의 허세 정신을 이 노래로 배웠지만 긴장한 나머지 인트로의 모든 연주를 반박 늦게 쳤던 나의 실력은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실수 한 탓에 관객들도 몰랐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그나저나 2009년 고등학생들이 이 노래를 얼마나 알았을까.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Monkey wrench’
2011년 일곱 번째 앨범 < Wasting Light >를 기점으로 새 인생 밴드가 생겼다. 지나치게 거칠지 않으면서도 어렵지 않고, 진지함과 재미를 동시에 발휘하는 이들은 나의 기준으로 볼 때 모든 것이 적당했다. 7집의 수록곡은 아니었지만 ‘Monkey wrench’는 그런 의미에서 내 체질에 딱 맞는 곡이었다. 내가 음악을 했다면 롤모델로 삼았을 것이다.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 ‘Don’t worry be happy’
클래식과 국악 중심적인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선생님께서 단비를 내려주셨다. 재즈를 들려주며 아카펠라에 가장 최적화된 목소리로 바비 맥퍼린의 ‘Don’t worry be happy’를 가르쳐주셨다.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신의 목소리’였다. 이후 최고의 보컬리스트를 가릴 때면 나는 항상 바비 맥퍼린을 정상으로 뽑았다.

에미넴(Eminem) ‘Stan (Feat. Dido)’
사촌 형의 핸드폰에 있던 ‘Lose yourself’로 힙합을 배웠다. 웨스트와 이스트, 올드와 뉴 등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에미넴만 들었다. 그중에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주말 오전에 들었던 ‘Stan’은 나의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비 오는 날씨, 연필 소리가 배경으로 깔리며 우울함을 극대화하는 분위기는 생전 들어본 적 없던 신세계였다. 그때는 에미넴이 전부인 줄 알았다.

엘리먼트(LMNT) ‘Juliet’
어릴 적 좋아했던 보이 밴드는 백스트리트 보이스와 웨스트라이프였지만 노래를 뽑으라고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엘리먼트의 다른 곡은 듣지도 않았고, 특별한 접점도 없었으며, 가사는 오글거리는 틴 팝의 사랑 얘기였으나, ‘Juliet’의 중독성에 빠졌다. 그 시절 남들에게 숨겨온 내 감성의 실체였는지도 모른다. 나중에는 너무 자주 들어서 오히려 더 듣지 않았다. 안 들어도 이미 들은 기분이랄까.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 ‘Tomorrow’
내 인생 첫 CD의 일곱 번째 트랙.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무뚝뚝하게 서있는 에이브릴 라빈의 모습이 얼마나 멋있던지. 학교를 마치고, 친구를 만나고,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일은 더 나을 거라고 다짐하며 이 노래를 들었다. 2년 뒤면 어느덧 발매 20주년을 맞게 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질리지 않는 노래.

다이도(Dido) ‘Thank you’
중, 고등학생 시절 인형, 장난감에 뒤늦게 빠져 완구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해당 커뮤니티의 카페 배경음악이 바로 Dido의 ‘Thank you’였다. 주인장이 카페를 얼마나 잘 꾸며놨던지, 예쁜 그림에 매일 좋은 노래들이 새로 흘러나오니 딱히 볼거리가 없어도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러 자주 접속했더랬다. 지금은 폐쇄된 그곳, 주인장은 어떤 사람이었고 지금은 뭘 하고 있으려나.

레이디 가가(Lady Gaga) ‘The edge of glory’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레이디 가가이지만, ‘The edge of glory’는 그가 보여줄 수 있는 능력치를 모두 쏟아낸 노래가 아닐 수 없다. < The Fame Monster >에서 시도한 웅장한 유로 팝 스타일에 재즈 터치를 가미한 색소폰, 가족의 죽음을 예술로 승화하면서도 철저히 대중과의 교감을 잃지 않는 후렴. 음악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완벽한 당신은 대체… 왜 이렇게 주접이냐 하면 제가 레이디 가가 팬이라서요. 하하하.

에이씨디씨(AC/DC) ‘Back in black’
이전까지 하드록을 많이 듣는 편은 아니었다. 꽃미남 형제의 퇴마록을 보기 전까지는… 학창시절 미드 <슈퍼내추럴> 주인공인 딘에 빠졌던 난 그가 듣는 하드록 리스트를 적어두고 여기저기 음악 파일을 구하러 다녔는데, 가장 힘들게 얻은 노래가 ‘Back in black’이다. 아, 물론 지금은 리스트에 있는 밴드들의 정규 앨범을 정식으로 구매한 상태다.

미스터 빅(Mr.Big) ‘Shine’
AC/DC 덕분에 하드록, 메탈만 듣던 시기가 있었다. 이때 메탈 밴드 멤버들의 외모에 눈을 뜨기도 했고. 푸들처럼 긴 머리를 휘날리며 좌중을 압도하는 거친 눈빛을 발사. 하지만 발라드를 부를 때면 ‘나에게만 따뜻한 남자’가 되어주는 스윗함. 문무를 겸비한 프런트맨 중 단연 최고는 미스터 빅의 에릭 마틴이었고, 그렇게 난 미스터 빅(의 에릭)에 빠졌다. 밴드의 히트곡은 모두 좋아하는 편이지만 ‘Shine’으로 < 슈퍼스타 K > 1차에 합격해 이 곡을 뽑았다. 긴장한 나머지 술 먹고 또라이처럼 불렀는데도 말이다.

데이브 그루신(Dave Grusin) ‘Early a.m. attitude’
때는 2006년, 어머니 손에 이끌려 리 릿나워와 데이브 그루신의 공연에 간 적이 있다. 어린 나이에 현대 재즈를 즐기기엔 음악이 무척이나 어려웠고, 즉흥 연주는 복잡하기만 했다. 당연히 두 시간 내내 잘 수밖에. 그러던 어느 날 클래식 라디오 방송에서 듣게 된 ‘Early a.m. Attitude’가 너무나 좋아서 검색하던 중 GRP 사단을 먼저 발견했는데… 그 수장이 데이브 그루신이었다는 걸 알게 됐을 때의 감정을 서술하시오.

파라모어(Paramore) ‘That’s what you get’
팝 음악만 온종일 틀어주는 방송을 찾던 중 주한 미군방송을 발견했다. 대부분 별다른 진행 없이 노래만 나오는 이 방송에서 내 귀에 딱 꽂힌 곡이 나왔으니, 파라모어의 ‘That’s what you get’이다. 당시에 노래를 찾아주는 어플은커녕 스마트폰이 보급화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구글에 가사를 들리는 대로 검색했다가 허탕만 치기 일쑤였다. 그러다 우연히 제목을 알게 됐고 얼마나 감사했던지. 우여곡절 끝에 찾게 되는 노래들은 잊을 수가 없다.

김사랑 ‘괜찮아’
난생처음 들어보는 곡이 곧장 최애곡이 되는 경우가 몇이나 있을까. 인트로를 듣자마자 “이거다!”라며 사랑에 빠진 노래 중 하나가 ‘괜찮아’다. ‘괜찮아’ 역시 라디오에서 주워들었는데, 1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미 내 손은 포털 사이트 검색에 들어가셨다. 김사랑의 목소리, 시적인 가사, 절절한 기타… 최애곡을 넘어 지금은 내 노래방 18번이 된 곡. 이 김사랑이 “나는 만 팔천 원이다”의 18세 김사랑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

애니밴드(Anyband) ‘Promise you’
지금 생각해봐도 애니콜은 마케팅을 참 잘했던 것 같다. ‘Talk Play Love’를 모토로 음악계 아티스트들을 모아 음악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특히 ‘Promise you’는 광고라는 걸 잊을 정도로 좋은 노래였다. 획일성을 비판하는 듯한 뮤직비디오는 희망적이고 교훈적이기까지 해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고. 이때만 해도 래퍼와 아이돌, 가수, 연주자가 함께 꾸미는 음악이 상당히 신선했다. 관련 없어 보이던 여러 아티스트들이 모여 하나의 노래를 부른다는 점에서 노래의 주제를 더 잘 느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두 애즈 인피니티(Do as infinity) ‘Yesterday & today’
두 애즈 인피니티를 알게 된 경로. 누구나 그렇듯이 이누야샤 엔딩을 통해서다. 내용도 너무 많고 따라가지를 못해 중간에 하차했지만 최애 밴드만큼은 얻고 가니 참 고마운 애니메이션이다. 밴드가 해체한다는 소식에 울면서 전집을 구매했건만 중추 없는 재결합이라뇨. 어쨌거나 두 애즈의 많은 명곡 중 ‘Yesterday & Today’, 특히 이 노래의 마지막 1분 30초를 좋아한다. “사랑하는 친구여, 힘들더라도 이 시대를 헤쳐나가자”라며 힘을 주는 가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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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Feature

IZM 필자들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음악 10곡’ – 손기호, 조지현

2010년대를 보내고 2020년대를 맞이하며 IZM이 새해 특집을 준비했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채우기 위해, IZM 필자들이 ‘내 인생의 음악 10곡’을 선정해 소개했다. 한 사람의 삶을 정의하는 데 10곡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취향과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총 8회에 걸쳐 진행될 ‘내 인생의 음악 10곡’의 일곱번째 차례는 손기호, 조지현 에디터다.

에미넴(Eminem) ‘Lose yourself’
비장미 넘치는 도입부에 언제나 가슴이 뛴다. 고등학생 때 처음 접했던 그의 < Curtain Call: The Hits >은 충격이었고, 에미넴이란 ‘랩 스타’의 등장은 어린 힙합 키드에게 꿈을 가지게 했다. 이제 이 곡은 면접, 시험 등 중요한 일을 치르기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 플레이리스트 최상단에 자리 잡아 감정을 고양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일생일대의 선택 혹은 기회 앞에서 작아지지 않게 용기를 주는 노래이다.

아델(Adele) ‘When we were young (Live at The Church Studios)’
어느 때보다 외로웠던 날이었다. 술에 취해 생각 없이 아무 노래나 듣고 흘리고 있을 때 이 영상이 내 마음을 붙잡았다. 수도 없이 반복했던 앨범이었는데 음원과 라이브의 느낌이 완전히 달랐던 이유는 취기 혹은 그때의 감성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 아련하게 남은 그 순간의 감정을 잊지 못해 지금도 잔뜩 취하고 나면 이 영상을 찾는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소리가 나를 위로했다.

아이유 ‘그 애 참 싫다’
이십 대 초반의 사랑은 김풍 작가의 웹툰 제목처럼 ‘찌질의 역사’ 그 자체였다. 비슷한 사연의 가사를 찾아 감정을 설명하며 타인에게 공감을 구하려 한 것도 그때의 어설픈 방식 중 하나였다. ‘그 애 참 싫다’는 나의 마음을 대변했다. 이야기는 조금 다르지만 ‘날 보지 않는 그 사람이 너무 좋아 오히려 싫어졌다.’는 비극적인 소재를 시련의 주인공이 된 내가 놓칠 리가 없었고 몇 날 며칠을 반복해서 들었다. 순수로 포장된 흑역사는 끔찍하지만, 가끔 꺼내 보면 나쁘지 않을 추억이 되었다.

나스(Nas) ‘Represent’
한국형 랩으로 힙합 음악을 접한 뒤 미국 본토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하고자 들었던 나스의 < Illmatic >은 고등학생, 어린 힙합 키드였던 나에겐 고전 문학처럼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 앨범이 클래식으로 칭송받는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천천히 받아들인 만큼 오랜 시간 기억될 명반이 됐다. 특히 이 곡은 ‘우주에서 랩을 누가 제일 잘해?’란 유치한 질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 되었다.

언니네 이발관 ‘아름다운 것’
첫사랑의 기억, 못 이룬 꿈도 모두 이 곡에 담겨있다. 언니네 이발관의 ‘아름다운 것’은 미련이다. 떠나간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억지로 붙잡을 때마다 이 노래를 찾아 들었다.

디쉬왈라(Dishwalla) ‘Home’
앨범을 추천받고 한동안 기억에서 잊었다가 2009년 여행을 갔던 미국 보스턴의 한 레코드 샵에서 Dishwalla의 < Opaline >을 발견한 건 기막힌 운명이었다. 수록된 모든 곡을 사랑하지만 일을 마치고 늦게 귀가하던 어느 밤 차가운 바람과 함께 들었던 ‘Home’은 특별했다. 휘날리는 나무 소리와 곡의 2분 30초부터 시작하는 절정이 어우러져 마치 그곳에 나 혼자만 존재하는 기분을 느꼈다. 집을 소재로 위로를 건네는 노래는 많지만 ‘Home’처럼 황홀한 체험을 주진 못했다.

이승열 ‘비상’
중학교 2학년 처음 들었던 순간부터 이승열의 열렬한 지지자를 자처하며 그의 음악과 함께 했다.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게 해줬다. ‘어둠이 가로막아서도, 나도 모르는 눈물이 흘러도 참을 수 없는 설레임에 알 수 없는 내일을 기다려.’ 이 가사는 내 인생을 지탱하는 희망이 되었다. 무심한 듯 던지는 그의 위로에 언젠가 날아오를 나를 꿈꾼다.

이소라 ‘Track 9’
언제부터인가 내 기분을 잘 모르게 됐다. 뭐가 기쁜지 슬픈지 딱히 우울한 건 아닌데 위로는 받고 싶고 그런데 원인을 모르니 도움을 구할 수도 없다. 이소라의 ‘Track 9’은 그런 나의 투정을 이해하고 받아준다.

대그(DAG) ‘Our Love Would Be Much Better (If I Gave a Damn About You)’
중학생. 부모님을 졸라 아이리버의 MP3를 선물로 받았지만 남들과 똑같이 되기 싫다는 무서운 반항심은 이미 시대가 저물어가는 CDP를 사게 했다. 돈이 생기면 지금은 잠실새내역이 된 신천역 앞에 있던 음반 매장에 가 CD를 구경했는데, 어떤 정보도 없이 앨범을 사서 듣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 대그(DAG)의 < Apartment 635 >는 내가 발견한 최고의 보물이었다. 첫 번째 트랙이었던 이 곡은 멜로디 중심이 아닌 펑키(Funky) 리듬으로 연주된 음악 자체에 몸을 맡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숨겨진 소리를 찾는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으니 들을 때마다 새로운 곡이다.

이적 ‘매듭’
친구가 죽었다. 불과 사흘 전까지만 해도 나랑 술을 마시며 서류 합격을 축하해줬던 녀석이 사고를 당했고, 세상을 떠났다. 그날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고 싶었던 회사의 면접 날이었다. 그때의 감정은 꼬일 대로 꼬여 내 가슴의 커다란 매듭이 되어 남았다. 아직 이적의 노래를 듣지 못하는 이유는 유독 ‘매듭’을 좋아했던 친구가 떠올라서이다.

토토(Toto) ‘Georgy porgy’
이 글의 필자 이름을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실용음악과 출신인 나의 대학 시절 별명은 ‘조지 포지(Georgy porgy)’였다. 토토는 실용음악과 학생들의 우상이었고, 앙상블 수업 때면 토토의 음악은 연주곡의 필수 항목이었다. 별명 때문에 알게 된 이 곡은 건조한 피아노 리프 위에 ‘Georgy porgy pudding pie!’를 외치는 후렴구가 묘미더라. 이건 ‘좋아서’ 고른 인생곡이자 ‘진짜’ 내 인생과 직결돼있다.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 ‘Elephant’
고3 입시생이었을 때, 연습을 끝마치고 집으로 가던 새벽길을 가득 메운 곡이다. 연습실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거리 10분, 이 노래를 두 번 들으면 집에 도착했다. ‘내 인생은 어디로 가는가, 나의 도착점은 어디인가..’를 되뇌며 그때만큼은 누구보다 괴로운 내가 되어 귀가하던 새벽 1시, 잔잔한 기타 소리를 머금는 데미안 라이스의 목소리는 19살 소녀의 마음을 쿵, 쿵 내리쳤다. 세상 슬픈 일은 다 내 것인 것만 같게 느껴졌던 노래.

알 자로(Al Jarreau) ‘We’re in this love together’
기억한다. 혼자 떠난 여행, 생전 처음 밟는 땅에서 나는 이 노래를 주저 없이 틀었다. 햇살이 내리쬐는 벤치에 앉아 몇 번을 반복해 들었는지 모른다. 이 곡이 수록된 < Breakin’ away > 앨범은 전곡이 다 내 취향이다. 나를 퓨전 재즈에 흠뻑 젖게 한 내 인생의 명반. 이 노래만 있으면 뭐가 됐든 사랑에 빠질 수 있다. ‘We’re in this love together(우린 사랑에 빠졌어요) / We got the kind that’ ll last forever(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기대해요)’ 이 노래를 사랑하는 내 마음도 영원히 지속되리!

윤종신 ‘동네 한 바퀴’
이별 후, 윤종신의 ‘동네 한 바퀴’를 들으며 동네 열 바퀴는 걸었다. 이별 노래인데도 템포는 미디엄, 멜로디는 한없이 희망적이다. 그 덕분에 덜 슬프고, 덜 울었다. ‘몇 해 전 너와 나의 이별 이야기’. 이 노래에는 되찾을 수 없는 누군가의 시절이 담겨있다. 나 또한 그랬다. 인생곡이 뭐 있나, 나의 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그 곡이면 충분하다.

캣 스티븐스(Cat Stevens) ‘Morning has broken’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Morning has broken’을 오랜만에 들었다. 사실 처음이라고 해도 무방한 게, 어릴 적 어디선가 들었던 흐릿한 기억 때문에 익숙하다고 여겨지는 탓이다. 투박하고 꾸밈없는 피아노 인트로가 처음에는 좀 방정맞다 싶더니, 웬걸. 듣다 보니 이렇게 서정적일 수가 없다. 그의 다정한 목소리와 촌스러운 창법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 이 노래만 들었다. 원곡은 찬송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기독교는 기독교를 알아보는 법’인가, 우스운 생각도 해봤다.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 ‘Step’
그럴 때가 있다. 여행을 갔는데 괜히 창밖 풍경에 심취하고 싶을 때, 잠들기 전에 센치한 밤을 보내고 싶을 때! 한 마디로 그냥 분위기 잡고 싶을 때 듣는 음악이다. 둔탁한 드럼 사운드와 몽롱한 기타 소리, 특히 중간에 나오는 ‘뚬~ 뚜둠, 뚜둠’하는 허밍 소리는 너무 짧아서 아쉬울 지경이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냥 좋다.

황신혜 밴드 ‘짬뽕’
이 노래를 언제, 어떻게 알게 됐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중학교 때 죽어라 다니던 노래방에서 이 곡은 나의 18번이었다. (사실 함께 간 친구들이 내가 이 노래만 부르면 배꼽을 잡고 웃는 모습에 더 흥이 났다.) 황신혜가 ‘배우’ 황신혜인 줄 알았더니 익살스러운 남자의 목소리로 ‘짬뽕!’을 외치지를 않나, 게다가 알고 보니 황신혜 밴드의 ‘황신혜’는 ‘황당하고 신기하며 혜성 같은’의 줄임말이더라. 말 그대로 황당하고 신기했다. 세상에 이런 노래도 있구나 싶었다. 나는 아직도 짬뽕을 먹을 때면 이 노래가 생각난다.

브로콜리 너마저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중고 서점, 시디 코너에 갔다. 이름은 익숙하지만, 음악은 들어본 적이 없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시디를 샀다. 집에 와서 플레이어에 시디를 넣어 놓고는 책을 펼쳤다. 앨범의 두 번째 수록곡, 평범하기 그지없는 피아노 인트로가 흘러나왔다. 관심 없다. 갑자기 쟁쟁한 일렉트로닉 기타가 등장한다. 조금 놀랐다. “그런- 날이- 있어“ 덕원이 노래를 부른다. 자꾸 한 템포씩 쉬면서 노래를 하는데, 이게 나를 멈칫하게 만든다. 책장을 넘기던 손이 멈추고, 가사를 곱씹는다. 그래,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지! 그럼에도 위로받던 순간들을 불쑥불쑥 들춰낸다.

토이 ‘우리는 어쩌면 만약에..’
돌이켜보니 이별을 참 많이도 했다. 어릴 적의 이별은 무방비한 슬픔으로 가득 차서 애써 좋았던 순간들을 꺼내 보고, 애써 눈물을 흘려댔다. 난생처음 겪는 슬픔에 심취한 모양이다. 고조 없는 이 음악은 불 꺼진 방에서 가만히 듣기 딱 좋은 이별 송이었다. 담담한 윤상의 노래와 잔향이 짙게 깔린 일렉트로닉 피아노로 메워진 이 곡은, 슬픔을 부추기는 웬만한 발라드보다 더 슬펐다. 앞으로도 내 이별 송은 이 노래다. 아니, 이별은 이제 그만~~~

아론 네빌(Aaron Neville) ‘Don’t go please stay’
나의 아빠는 음악을 유독 사랑했다. 중학교 시절, 오래된 LP로 아빠가 들려준 이 곡은 우습게도 한국 발음으로 ‘똥-꼬(Don’t go)’로 시작되었다. 동생과 배꼽을 잡으며 웃어더랬다. 아론 네빌 특유의 느끼한 창법으로 보나, 촌스러운 멜로디로 보나 영 내 취향은 아니다만 이 곡을 듣자면 엘피판을 만질 거리던 아빠의 투박한 손길과 왁자지껄 웃던 동생의 모습, 그리고 주방에서 들리던 엄마의 칼질 소리까지 배경음악처럼 떠올라 마음 따뜻해지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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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Feature

IZM 필자들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음악 10곡’ – 임선희, 장준환

2010년대를 보내고 2020년대를 맞이하며 IZM이 새해 특집을 준비했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채우기 위해, IZM 필자들이 ‘내 인생의 음악 10곡’을 선정해 소개했다. 한 사람의 삶을 정의하는 데 10곡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취향과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총 8회에 걸쳐 진행될 ‘내 인생의 음악 10곡’의 여섯번째 차례는 임선희, 장준환 에디터다.

체리필터 ‘Head-up’
허세 가득했던 중학교 시절, 밴드부 정도는 들어가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선배가 ‘밴드부면 체리필터는 기본으로 알아야지’라며 압박했다. ‘낭만고양이’, ‘오리날다’처럼 메가 히트곡만 알았던 터라 당장 집에 가서 1집부터 시작했다. 첫 앨범의 첫번째 트랙 ‘Head-up’. 보컬 조유진의 휘슬 창법은 정말 강렬했다. ‘파리’나 ‘헤비메탈 콩쥐’를 뽑을까 고민했지만 첫인상이 주는 임팩트는 이길 수가 없다. 결국 밴드부는 꼰대의 싹을 보인 선배들 덕분에 한 달 만에 탈퇴했다만 어쨌든 인생곡을 찾게 해줬으니 감사하다.

보아 ‘아틀란티스 소녀(Atlantis princess)’
전주만 들어도 탁 트인 광경 속에 바람이 감싸는 기분이 든다. 어두운 부분은 잠시도 없는 이 노래는 괜히 짜증 나고 모든 게 귀찮은 날의 나를 위로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 같은 곡.

무디 블루스(Moody Blues) ‘Nights in white satin’
영화 < 다크 섀도우 >는 정말 재미도, 감동도 없다. 건진 건 오프닝에 나오는 ‘Nights in white satin’뿐이다. 나중에 이즘에 들어와서 프로그레시브 록의 대표 주자임을 배웠지만, 자세히 몰랐던 그 당시에도 멜로트론과 플루트 연주에 소름이 돋았다. 을씨년스러운 멜로디로 인해 집 가는 버스 안에서 처량한 주인공 역할 놀이에 심취하곤 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I’m not a girl, not yet a woman’
본격 성숙한 이미지에 집중하기 전,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갈팡질팡한 모습을 보였던 적이 있다. 소녀는 아닌데, 어른이기에는 뭔가 부족한. 누구나 그런 시기를 겪고 나도 그랬었다. ‘Womanizer’, ‘Toxic’같은 도발적인 노래도 좋다만 girl-next-door 콘셉트가 그립다. 더 이상 소녀가 아닌 나로서는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을 되새기고 싶은 날에 슬쩍 들어보곤 한다.

록시트(Roxette) ‘The look’
대단한 사연이 얽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방송을 보다가 BGM으로 흘러나오길래 ‘어 좋네?’ 하고 검색했을 뿐. 전주의 흥겨운 기타와 신시사이저에 곧바로 매료되어 하루 종일 들었다. 2019년 12월, 듀엣의 보컬 마리 프레드릭슨이 영면했다는 뉴스를 접했던 순간에도 나는 이 노래를 듣고 있었다.

힐러리 더프(Hilary Duff) ‘I am’
하이틴 스타 하면 마일리 사이러스, 데미 로바토가 있지만 조상 격인 힐러리 더프를 빼놓을 수 없다.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도, 한 시대를 풍미한 것도 아니지만 추억의 힘은 어마무시하다. ‘난 특별해, 난 멋져, 난 아름다워’같이 유치한 가사에도 감동을 받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아른거린다.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 ‘The chain’
시작은 < 스쿨 오브 락 >이다. 규율과 질서를 중시하던 깐깐한 교장 선생님이 스티비 닉스(Stevie Nicks)의 ‘Edge of seventeen’을 즐겨 듣는다는 장면이 계속 기억이 남았다. 교장 선생님처럼 나도 스티비에게 반해버렸다. 그렇게 그가 속했던 플리트우드 맥과 < Rumours > 앨범을 알게 되었고, 듣는 즉시 인생의 명반으로 남았다. ‘The chain’의 정수는 라이브 영상에 있다. ‘정말 신들린 듯이 노래하는구나’를 느끼고 싶다면 꼭 보길 추천한다.

비틀스(The Beatles) ‘please please me’
비틀스의 노래 중 인생 곡을 단 하나 고르라는 것만큼의 고역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수한 레전드 곡 사이에서 ‘Please please me’가 머리 속에 바로 떠올랐다. 들으면 크리스마스가 떠오르는, 왠지 몰라도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이다.

미카(Mika) ‘Love today’
옛날에는 단지 이지 리스닝의 밝은 댄스 팝이라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모두가 오늘을 사랑할 거야’라고 외치고 앨범 커버처럼 알록달록한 색채로 가득 찼지만 마냥 가볍지 않다. 부모님의 꼭두각시인 아이, 미성년자의 성매매, 왕따 등등 안타까운 현실에 처한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가사를 나중에 알고 나서야 이마를 탁 쳤다. 이래서 영어 공부를 해야 하나 싶다.

낵(Knack) ‘My sharona’
정확한 앨범명도 모른다. 표지에 EMI 레코드와 ‘Do you remember the time?’이 적혀 있는 것만 기억한다. 블론디, 컬처 클럽, 킴 와일드, 빌리 아이돌 등등 1970, 80년대를 수놓은 많은 가수의 노래가 담겨있었고 그중 하나가 낵의 ‘My sharona’였다. 전주의 드럼과 기타가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어느새 ‘마이 쉐로나!’를 외치고 있더라. 신나는 팝 록에다 내가 그 시절을 살아온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먹먹해진다. 어떻게 해서든 그 앨범을 찾아내야겠다.

다프트 펑크(Daft Punk)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음악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던 초등학생이 형의 MP3에서 우연히 마주한 전자음의 인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보코더에서 나오는 인위적인 낯선 음성도, 약간의 변조를 두고 반복되는 가사가 만들어내는 무섭도록 기계적인 분위기도. 모든 것이 새롭고 크게 다가올 나이지만, 특히 이 곡은 어린 친구의 콩콩 뛰는 가슴을 쉽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핸드폰에 녹음한 파일을 등굣길과 하굣길 내내, 마치 누군가와 전화하는 척 귀에 대어 듣고 다녔다. 아마 이 사건이 인생에 있어 변환점이 아니었나 싶다. 나를 음악의 세계로 인도했던 것은 한 프랑스 일렉트로니카 듀오의 능란한 디스코였다.

저스티스(Justice) ‘D.A.N.C.E’
여느 때처럼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다프트 펑크’를 검색하는 과정을 반복하던 도중, 인터넷 세상은 같은 나라 출신의 또 다른 아티스트를 내 눈앞에 내놓았다. 검은 배경 위 떡하니 놓인 거대한 십자가의 형상. 호기심에 듣게 된 ‘D.A.N.C.E.’는 내 귀를 세차게 잡아끌며 내면의 분석 본능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적당히 쉬운 ‘DVNO’부터 공격적인 파열음의 ‘Stress’까지, 나는 마치 하면 안 되는 비행처럼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이를 완벽히 섭렵하고 싶다는 욕구로 금단의 사운드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어쩌겠는가, 어린 친구는 결국 매일 밤 부모님 몰래 이 앨범을 들었으니.

콜드플레이(Coldplay) ‘Lost!’
어느덧 중학생이 되어 기본적인 영어 해석도 되겠다, 자신감이 붙을 즈음 본격적으로 빌보드 홈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접한 콜드플레이의 음악은 마치 저스티스로 마구 헤집어 놓은 마음의 영혼을 씻어내는, 일종의 정화 의식과도 같았으니, 명징한 기타 사운드 위로 매력적인 크리스 마틴의 음색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콜드플레이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태도로 전집을 전부 찾아 듣기 시작한 나는 결국 <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의 2번 트랙, ‘Lost!’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힘찬 박수 소리와 리드미컬한 퍼커션으로 마치 군대가 힘차게 전진하듯 다가온 이 곡, 확고한 방향은 없었어도 내게 늘 ‘정진’에 대한 벅찬 열망을 갖게 했다.

고릴라즈(Gorillaz) ‘Feel good inc’
결국 나에게도 오고야 올 것이 왔다, 고치기 여간 힘들다는 그 중2병. 또래들과 다른 걸 찾아다니며 내 가치와 존재를 입증받으려 했던 나는 방구석에서 그린데이와 뮤즈, 라디오헤드를 들으며 귀엽고 비관적인 힙스터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고릴라즈의 ‘Feel good inc.’를 본 순간 내심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내가 정착할 영토를 찾았구나!’하고. 이 얼마나 좋은 타깃인가. 실제 가수는 없고 캐릭터로만 이루어진 밴드, 비관적인 종말론의 세계관, 그리고 이들이 취하는 반(反) 문화적 삐딱함. 당시엔 고릴라즈의 특이함은 보잘것없던 내게 특별함을 부여하는 존재였다. 이제 와서 부끄럽게 고백하자면, 이때 나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캐릭터 ‘투디(2-D)’였다.

블러(Blur) ‘Girls and boys’
고릴라즈의 흐름에 몸을 맡기다 자연스레 도달한 지점은 블러였다. ‘GIrls and boys’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두 번이나 크게 놀랐다. 원래 이리 고운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는가에 한번, 그리고 세련되고 감각적인 록이 존재했다는 것에 대해 또 한 번. 이맘때쯤 나의 롤 모델은 데이먼 알반(Damon Albarn) 이었다. 그의 패션 스타일과 음악적 스타일, 그리고 그가 구사하는 제스처도 전부 예의주시했다. 개구쟁이같이 엉뚱하지만 냉철한 모습,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지만 실전은 달랐다. 어설프게 따라 하다 이상한 녀석 취급만 받은 나는 결국 본전도 못 챙겼다.

패닉 ‘강(江)’
매일 밤 네이트온으로 같이 음악 얘기를 나누던 동급생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패닉을 아주 좋아하던 친구였다. 당시 나는 이상한 사대주의에 빠져 오로지 해외에만 눈길을 보내던 바라 국내 음악은 거의 문외한 수준이나 다를 바가 없었는데, 그가 들려준 패닉의 음악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가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메리트를 곁에 둔 채 어리석게도 한참이나 먼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처음으로 패닉의 ‘강(江)’의 가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나는 음악을 들은 지 5년 만에 그제야 진정으로 곡을 음미하는 법을 배웠다.

크라잉넛 ‘밤이 깊었네’
마치 보물을 꺼내보듯 국내 음악을 하나하나 탐사하다 내가 도착한 곳은 바로 ‘조선 펑크’였다. 처음에 크라잉넛의 음악을 들었을 때는 ‘이게 뭐야’ 하듯 그냥 넘겼는데 자꾸 생각나더라. 노래를 특출나게 잘한다거나 연주가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그 특유의 투박한 노랫말과 유쾌한 쌈마이 감성이 뇌의 개척되지 않은 영역을 자극한 셈이다. 하굣길에 자주 들었던 3집 < 하수연가 >의 ‘밤이 깊었네’. 아직까지도 내 퇴근용 플레이리스트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이 곡은 반드시 지켜야 할 주의사항이 있다. 함부로 낮에 꺼내지 말 것, 그리고 꼭 밤의 버스 안에서 들을 것.

악틱 몽키스(Arctic Monkeys) ‘Cornerstone’
몸에 좋다는 것은 닥치는 대로 마구 먹던 시절이다. 개러지 록과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같은 수많은 작업물을 꼬리를 물어가며 꾸역꾸역 찾아 들었다. 소화가 안 될 정도로 과식을 하긴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후회하지 않는다. 이때 억지로 삼킨 영양분은 지금 음악관 성장에 큰 도움을 준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특히 ‘Cornerstone’은 수많은 건빵 같은 트랙들 사이 별사탕 같은 노래였다. 한없이 늘어지는 기타와 알렉스 터너의 성숙해진 보컬, 그리고 절절한 가사는 내 눈물샘을 여전히 쿡쿡 자극한다.

시규어 로스(Sigur Ros) ‘Svefn-G-Englar’
수능 당일 아침, 어떤 곡으로 문지방을 나서야 할지 한참 고민하다 선택한 곡은 다름 아닌 시규어 로스의 ‘Svefn-G-Englar’였다. 광대한 우주가 연상되는 공허한 신비, 이는 마치 시험을 앞두고 절대적인 안정을 취하려는 한 수험생의 포부를 담은 곡이었으리라. 물론 노래 덕분에 편안하게 시험장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정작 수능은 망치고 말았다. 그 후로 징크스 때문에 시험날에는 잘 꺼내지 않지만 평소 잠이 잘 오지 않을 때엔 이 노래를 곁에 틀어놓는다. 그날 집을 나서면서 그들의 음악에서 받은 안도감은 거짓이 아니었기에.

네온 인디언(Neon Indian) ‘Slumlord’
내 음악 인생은 방랑의 역사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듯 바다를 떠다니다 눈에 띄는 섬이 나타나면 정착하고, 슬슬 질리기 시작하면 다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가장 최근에 상륙한 곳은 ‘칠웨이브’의 영토다. 당시 친구가 알려준 영화 < 블레이드 러너 >에 빠져 있던 나는 적절한 시기에 네온 인디언(Neon Indian)과 와시드 아웃(Washed Out)으로 대변되는 뉴트로 감성과 사이버 펑크의 토지를 발견한 것이다. 그중 ‘Slumlord’는 짙게 깔린 사이키델릭 사운드로 환락이 지배하는 형광빛 미래를 그려내고 있었다. 전에 본 적 없는 키치함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다프트 펑크로 시작해 칠웨이브로 마무리하는, 내 음악 인생의 분기점을 전부 소개했다. 이제 슬슬 채비를 할 시간이다. 또다시 나를 사로잡을 무인도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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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Feature

IZM 필자들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음악 10곡’ – 신현태, 황선업, 정민재

2010년대를 보내고 2020년대를 맞이하며 IZM이 새해 특집을 준비했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채우기 위해, IZM 필자들이 ‘내 인생의 음악 10곡’을 선정해 소개했다. 한 사람의 삶을 정의하는 데 10곡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취향과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총 8회에 걸쳐 진행될 ‘내 인생의 음악 10곡’의 다섯번째 차례는 신현태, 황선업, 정민재 에디터다.

퀸(Queen) ‘Love of my life’
13세 : 어려서부터 형이 들었던 음악을 따라 좋아했다. 하루는 그와 EBS에 채널을 맞춰 라이브 공연을 보게 되었다. 툭 튀어나온 입과 짙은 콧수염, 흰색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괴상한 모습의 남자가 무대 위를 요란스럽게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숨을 가다듬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피아노 연주와 함께 노래 부르는데 그 모습에 엄청난 전율을 느꼈다. ‘Love of my life’였다. 듣자마자 빠져버렸다. 아마 처음으로 ‘이 음악은 소유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 같다. 형에게 저 사람들이 누군지 물어봤고, 곧장 동네 레코드 샵에 가서 무작정 퀸(Queen) 시디를 달라고 했다. 그 앨범은 < Greatest Hits >였고 재미있는 것은 이 음반에는 ‘Love of my life’가 수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음반과 수록곡의 개념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 이유는 다들 알겠지?

엑스(X) ‘Kurenai(紅)’
15세 : 용돈을 모아 산 CD플레이어에 처음으로 플레이했던 음반은 일본의 전설적인 록밴드 엑스(X)의 해적판 베스트였다. 형이 내 돈을 갈취해(?) 구입하고 오랜 시간 구석에 내팽개쳐놨던, 볼품없이 복사된 흑백 재킷에 정체를 알 수 없는 CD-R 알맹이의 구성이었다. 당시 거금이었던 오천 원이 아까운 마음에 대체 뭔가 싶어 틀었다가 감전이라도 당한 것 같은 큰 충격을 받았다. 첫 곡 ‘Kurenai(紅)’의 심벌 리버스 사운드를 듣고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짙은 화장과 과도한 치장은 지금 보면 우스운 모습이라고 생각도 되지만, 사춘기 신현태에게는 그들의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음악 글을 쓰는 필자로서 나는 언제나 내 전공은 록(Rock)이라고 말한다. 엑스(X), 엑스 재팬(X-Japan)은 나의 록 입문서였다.

메탈리카(Metallica) ‘Master of puppets(S&M Live)’
17세 : 엑스(X), 엑스 재팬(X-Japan)에 한창 빠져있을 때 이미 형을 통해서 메탈리카(Metallica)를 듣긴 들었었다. 근데 왜 고등학교에 올라와서야 그들에게 영혼을 바쳤냐면, 첫 곡이 ‘Until it sleep’이었기 때문이다. 이 곡을 아는 이들은 단박에 이 심정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나의 영향으로 비주얼 록을 듣던 친구가 많았는데, 내 록 패밀리였던 한 친구가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미국의 록 음악이 더 멋지다며 메탈리카의 < S&M >(1999)를 빌려줬다. 당시에는 인정하긴 싫었지만 정말 더 좋았다. 내가 알던 록 음악보다 더욱 웅장하고 화려하고 강했다. 단연 베스트는 ‘Master of puppets’였다. 제임스 헷필드(James Hetfield)의 육중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와 라스 울리히(Lars Ulrich)의 에너지 넘치는 드러밍. 그들의 라이브는 차원이 달랐다. 그렇게 메탈리카는 내 록 음악 인생을 변화시켜줬다.

라디오헤드(Radiohead) ‘Paranoid android’
19세 : 나만의 음악 세계가 만들어지게 된 결정적 사건은 라디오헤드(Radiohead)를 접하면서부터였다. 야간 자율학습을 11시까지 해야 하는 고등학교를 3년간 다니면서 아마 평생들을 음악을 다 들었던 것 같다. 음악 잡지 < 핫 뮤직 >과 임진모의 < 세계를 흔든 대중음악의 명반 >(2003)을 교본처럼 읽고 음악을 찾아 들었다. 당시에는 평론가의 말은 다 맞는 것 같았다. 아무리 좋아도 그들이 그르다면 내가 틀린 것으로 해석했다. “대체 이게 뭐가 좋다는 거야?”라는 의문 부호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래도 선지자(?)들이 좋다는 말에 그 ‘좋은 점’을 알고 싶어 무식하게 반복하고 관련 기사도 꾸준히 찾아 읽어봤다. ‘Paranoid android’로 시작된 ‘이해의 쾌감’은 꽤 큰 것이었다. 스스로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룬 기분이었다. 음악을 즐기는 것 이상으로 분석하며 들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계기였다.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Band on the run’
24세 : 군대를 전역하고 신촌에 있는 야드버즈(Yardbirds)라는 음악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음악을 배웠다. 온갖 장르의 음악을 아울렀던 사장님은 나에게 좋은 스승이었다. 이곳의 단골손님 중에 특별한 분이 계셨는데, 밴드 곱창전골의 리더 사토 유키에였다. 사장님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가끔 오셔서는 일일DJ로 그날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들려주시곤 했다. 올드 록을 좋아했던 그의 선곡은 내게 배움의 장이었다. 손님이 없어 한산하던 하루 그의 레파토리 중에서 두, 세곡의 겹쳐진 구성의 독특한 록 트랙에 매료되었다. “형님, 누구 곡이에요?”. “처음 들어보니?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곡이야”,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요?” 음악 좀 들었다고 자부해왔던 나는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에 대해 전혀 몰랐다. 이후 내 음악 인생은 180도로 바뀌었다. 수년 동안 비틀즈의 모든 음악과 멤버 전원의 솔로 전 디스코그라피를 파고 또 팠다. 음악에 늘 갈증을 느껴왔던 내게 비틀즈는 화수분이었다. 모든 것이 다 비틀즈에 있었다. 이후 나는 누구에게나 자랑스럽게 비틀즈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존 레논(John Lennon) ‘Oh Yoko!’
26세 : 나는 사랑꾼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사랑에 관련한 음악을 가장 좋아한다. 아마 그래서 비틀즈의 음악에 더 쉽게 빠졌는지 모른다. 존 레논의 음악에서 나는 내 사랑의 감정을 더욱 자극시키는 마법과 같은 것을 느꼈다. 늘 사랑스럽기만 했던 여자 친구에게 레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음악도 알려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지만 요코에게 바치는 ‘Oh yoko!’를 개사해 그녀에게 종종 불러주곤 했다. ‘한밤중에 당신의 이름을 불러요. 욕실 한가운데서 당신의 이름을 불러요. 면도를 하던 중 당신의 이름을 불러요. 꿈속에서 당신의 이름을 불러요.’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사랑 이야기였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느끼고 있던 사랑을 삶 속으로 녹아들게 했던 이 노래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 노래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Layla(Unplugged)’
30세 : 이번 특집에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뮤지션이다. 나에게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은 한 곡으로 요약이 어렵기 때문이다. 삶 깊숙하게 스며들어 비틀즈만큼이나 중요한 아티스트이며 기타리스트이다. 그의 연주를 들으며 셀 수 없이 감동했다. 내게 인생의 단 한 장의 음반을 뽑으라고 하면 찰나의 고민 없이 < Unplugged >(1992)를 선택할 것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살면서 가장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감정의 기복으로 음악이 필요할 때나 누군가 함께 아무런 음악이 필요할 때, 홀로 여행길에 오를 때 등 무의식의 의식 속에서 노래가 필요한 순간에는 이 음반을 제일 먼저 떠올렸다. 그중에서도 ‘Layla’는 나에게 기타 연주의 미학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스승과 같은 트랙이었다. 쓸데없이 어려운 화성을 쓴다거나 기교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스타일을 추구하지 않는다. 주가 되는 멜로디를 바탕으로 듣는 이에게 편함을 전달하는 연주가 중심이다. 그게 그렇게 어렵다는 것도 에릭 클랩튼을 통해서 배웠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Wave’
31세 : 작곡 전공을 한 여자 친구를 만나며 지방 여행을 종종 다녔다. 보통은 그를 위해 만든 음악 리스트를 선곡해 차 배경 음악에 깔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운전의 피로를 달래곤 했다. 이날의 여행지인 춘천을 향해가면서는 서로가 좋아하는 노래를 소개해줬다. 그녀는 입시 준비를 하며 접했다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의 ‘Wave’를 알려주었다. 이날 내내 들었던 ‘춘천 가는 기차’는 될 바도 아니었다. 눈앞에 펼쳐졌던 가을의 도로가 정말 아름답게 다가왔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황홀했다. 록만 듣는 아저씨로 알고 있었던 그녀도 노래로 행복해하는 나를 보며 즐거워했고, 그 이후 톰 조빔의 음악은 우리의 ‘메인 BGM’이 되었다.

비틀즈(The Beatles) ‘In my life’
34세 : 비틀즈에 한창 빠져있을 시기 이 노래의 가사를 이해한 이후 나는 이 곡을 언젠가의 내 프로포즈 곡으로 정했었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보편적인 사랑이 있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나는 여자 친구와 결혼을 결심하고 사랑과 내 마음을 담은 반지를 준비했다. 그녀와 함께했던 추억을 하나의 영상으로 엮어 ‘In my life’의 가사로 그녀를 향한 사랑의 다짐을 글로 써 내려갔다. ‘평생 당신을 가장 사랑할 거예요.’ 노래의 이야기는 우리의 사랑이 되어 그대로 전달되었다. 덕분에 이 도시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되었다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아름다운 기억이다.

데이빗 보위(David Bowie) ‘Word on a wing’
34세 :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생전 처음으로 우울증이라는 것을 겪었고 말 그대로 폐인 같은 시간을 보냈다. 생활처럼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있지만, 이때 내게 음악은 감상이 아닌 세상과의 단절 수단이 되었다. 언제나 무작위 재생이었다. 그러는 중에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목소리는 그 누구의 위로보다 크게 다가왔다. 평소에는 몰랐던 노래였다. < Station To Station >(1976)에 수록된 ‘Word on a wing’이라는 곡이었다. “대리님, 왜 한 달 내내 한 곡만 들으세요?” 음악을 좋아해 종종 나에게 추천을 받았던 회사 후배였다. 아이튠즈를 통해서 내가 듣는 음악을 따라 듣던 중에 새로운 것을 전혀 듣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돼 물어봤다고 했다. 사실 별생각이 없었다. 내가 진짜 그랬나 싶어 이후 이 노래가 어떤 노랜가 찾아봤다. 곡에 대한 보위의 이야기는 나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1970년대 말은 내게 있어 가장 어두운 날들이었어요. 두려움의 연속이었고, 정말 고통스러웠죠. 부지불식간에 이 노래는 조난신호와 같았고, 저는 동시에 제 구원의 목소리라 확신했어요.” – 데이빗 보위(2009, VH1 Storytellers),

서태지와 아이들 ‘Come back home’
1995년. 나에게 있어 음악을 ‘청취’에서 ‘소비’라는 개념으로 바꾸어 준 기념비적인 노래다. 무슨 소린고 하니, 내가 구매한 첫 음반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네번째 앨범이었다는 이야기. 처음으로 4,500원을 주고 집어온 테이프는 어린 마음에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재킷에 가사가 쓰여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특히 너무나 좋아했던 이 노래를 원할 때마다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케 했다. 학교에, 학원에 가지고 가 마구 자랑하기도 했던 ‘앨범’이라는 매개체와의 첫 만남, 다 이 노래 덕분이었다.

에미넴(Eminem) ‘Kill you’
1999년. 그야말로 컬쳐쇼크였다. 아, 본토의 힙합이란 이런 것인가. ‘에미넴’이란 이름 석자만 듣고 덜컥 구입한 앨범 속 언어 폭격은 내 정신을 초토화시켰다. 기상천외한 라임과 탄탄한 플로우, 공백이 많은 비트를 랩 하나로 꽉 채우는 래핑에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움을 연발. 물론 이 < The Marshall Mathers LP >의 트랙들은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지만, 이 곡은 인트로 후 실질적인 첫트랙이었던 덕분에 더욱 각별한 인상으로 내 안에 남아있다. 다만, 학원영어 선생님이 자기가 좋아하는 팝송을 가져오라고 했을 때 이 곡을 들고 갔던 건 흑역사 중 하나.

림프 비즈킷(Limp Bizkit) ‘Rollin'(Air Raid Vehicle)’
2000년. 솔직히 말해 나는 많은 팝 레전드를 공부로 뒤늦게 익힌 사람이다. 어렸을 땐 주위에 팝을 듣는 사람이 없어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명반을 리얼타임으로 즐기지 못했다. 더더욱 웃긴건 팝 입문을 뉴메틀로 시작했다는 사실. ‘하드코어’라 불리던 음악들을 선호했던 나는 서태지의 ‘울트라맨이야’를 기점으로 소개되던 여러 해외 밴드들을 하나 둘 씩 찾아 듣기 시작했고, 내 귀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 바로 ‘빡빡이 아저씨’ 프레드 더스트였다. 그 중에서도 이 곡은 가사를 정확힌 몰라도 들리는 발음대로 따라 부를 수 있었던 헤비 로테이션 넘버. 2013년 < 시티브레이크 >에서 이 곡을 직접 들었던 그 순간은, 내 페스티벌 경험 중 손꼽히는 기억이기도 하다.

두 애즈 인피니티(Do As Infinity) ‘Summer days’
2001년.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에는 아이리버의 MP3 CDP를 들고 다니며, 흔치 않게 일본음악을 즐겨 듣던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은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CDP를 빌려 쉬는 시간에 들어봤는데, 취향에 영 안 맞는 거다. – 뒤늦게 알고보니 그때 들었던 건 하마사키 아유미의 노래였다. 사실 지금도 하마사키 아유미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 그러던 중 ‘정말 이게 단가?’ 싶은 마음에 며칠 뒤 다시 한번 가져다 이어폰을 귀에 꽂았을 때 나온 것이 바로 이 노래였다. 거친 디스토션과 시원시원한 가창,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미자 누나로 불린 반 토미코의 음색은 나를 단숨에 열도음악에 발을 담그게 만들었다. 일본음악과의 떼어 놓을 수 없는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일본음악을 열심히 듣고 쓰고 있는 지금의 나는 아마 없었을 터.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 ‘Welcome to the black parade’
2006년.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앨범 중 가장 많이 들은 곡일 것이라 확신한다. 이 록 오페라 모음집은 나에게 있어 어느 레전드 뮤지션들의 작품보다도 이상적인 한 장이다. 어떤 트랙을 싱글컷해도 상관없을 정도의 균형잡힌 완성도, 전체를 관통하는 콘셉트와 일관성, 작품성과 대중성의 균형을 기적과도 같이 잡아낸 프로듀싱. 그 중에서도 이 노래는 화룡점정이다. 가사의 고조와 함께 절정으로 치닫는 구성은 드라마틱한 블록버스터를 연상케 한다. 라이브가 좀 별로면 어떠랴. 살아있는 자들의 기치를 소름이 돋도록 부르짖음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삶의 송가’가 어디 또 있을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돌아온 제라드 웨이는 배 나온 아저씨가 되었지만, 그건 다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증거일 테다. 이 노래를 들으며 치열하게 살아온 나와 내 친구들 모두 그를 닮은 아저씨가 되었으니까.

챠토몬치(チャットモンチ?) ‘シャングリラ(샹그리라)’
2007년. 나의 20대를 관통하는 아티스트가 누구냐 묻는다면 1초만에 튀어나올 그 이름 챠토몬치. 꿈만 꿀 뿐 행동하지 못하던 나를 북돋아준 것도, 낯선 곳에서의 적응을 도와준 것도, 위기 또한 기회일 수 있다고 소리쳐 준 것도, 다 그들이었다. 그나마 사람 역할하며 지금 살아갈 수 있는 건 꽤 많은 부분 그들의 음악과 함께였기 때문일 것이라는 내 안의 확신 같은 것이 존재할 정도로, 이 밴드는 나에게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노래는 처음 그들과의 연을 이어준 노래이자 팀의 시그니처 송으로,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우연히 듣고 그 뒤로 푹 빠져 버렸던 곡이다. 단순하지만 유니크한 짜임새와 가사, 그리고 멜로디. 팀으로서의 시너지와 하시모토 에리코의 재능이 반짝반짝 묻어나는 곡으로, 지금도 생각나면 자주 꺼내 듣곤 한다. 이제는 ‘완결’ 후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그들처럼, 지금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꾸준히 걸어가는 내가 되도록 다짐하면서 말이다.

트래비스(Travis) ‘Turn’
2010년. 대학시절의 나는 밴드공연이 너무 하고 싶었다. 어쭙잖게 기타를 배우며 이 곡 저 곡을 쳐보았지만, 원하는 곡을 치기에 내 실력은 형편없었다. 그럼에도 당시 활동하고 있던 아카펠라 동아리 정기공연 말미에 합주를 두 곡 정도 하기로 결정하고 이 노래 저 노래를 찾아보던 중 한 선배가 추천해준 게 바로 이 노래였다. 당시 나는 무조건 하드하고 빠르고 우당탕 깨부수는 곡들에 빠져있을 때라 기도 안 찼던 것이 사실이나, 어쨌든 내 실력과는 타협을 봐야 될 것이 아닌가. 딜레이만 잘 먹이면 프로 부럽지 않게 간지가 났던 이 노래는 악기가 모두 초보였던 우리 팀에게 ‘합주’의 재미를 알려주었던 그런 곡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보다도 이 노래를 좋아한다.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Grand Funk Railroad) ‘Inside looking out’
2011년. IZM에 들어와서 그 동안 안 듣던 팝을 공부하며 몰아 듣던 시절에 찾은 내 취향의 근원같은 곡이다. 애니멀즈(The Animals)의 원곡도 훌륭하지만, 개인적으로는 9분여에 가까운 대곡으로 재탄생한 이쪽에 비빌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4비트 하이햇으로 듣는 이와의 밀당을 예견케하는 인트로부터 블루스 터치가 가미된 폭발적인 기타연주, 터질땐 확실히 터뜨리는 마크 파너의 보컬까지. 이 당시에 정말 많고도 유명한 밴드들의 곡을 열심히 들었건만, 유독 기억에 남고 자주 플레이하게 되는 건 완곡 들으려면 버스정거장 세 개는 지나야 되는 바로 이 노래다. 거의 4분을 넘게 이어지는 잼 비스무리한 연주를 들으며 전율을 느끼는 것은, 나도 이렇게 티나지 않게 빛나보이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범프 오브 치킨(Bump of chicken) ‘天??測’
2013년. 일본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항상 느낄 것이다. 그 어디에도 말을 섞을 수 없는 고립감을. 그리고 외로움을. 그래서 내가 회사에 입사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실행했던 버킷리스트는 바로 일본의 로컬 록 페스티벌 관람이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도착한 2013년의 < Rock in Japan > 현장이. 모든 무대가 인상적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이틀째의 헤드라이너는 각별하다. 범프 오브 치킨이라는 거대한 존재감이 바로 몇미터 앞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던 그때. 순식간에 지나간 본 무대에 이어 나를 소름돋게 했던, 앵콜요청을 대신해 울려퍼지던 5만명의 ‘Supernova’ 합창. 항상 나 혼자만 숨어서 좋아했던 보상을 다 받은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구나’라는 감격에 눈물마저 찔끔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함께 따라 부른 뒤 등장한 후지와라 모토오의 한마디를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마지막 곡입니다, 天??測(텐타이칸소쿠)!”

조용필 ‘바람의 노래’
그리고 지금, 나는 이 노래와 함께 내 인생의 청춘과 젊음을 조금씩 떠나보내는 중이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겠네”

조수미 ‘Caro mio ben’
나에게 노래의 멋을 알려준 가수는 조수미다. 마리아 칼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 휘트니 휴스턴보다 조수미에게 먼저 빠졌다. 그의 1998년 이탈리아 가곡집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린이 합창단에 들어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합창단의 누나들은 독창 기회만 생기면 이탈리아 가곡집 1번 트랙에 실린 이 노래를 부르겠다고 나섰다. 지금도 ‘Caro mio ben’을 들으면 쿰쿰한 냄새가 나던 반지하 연습실의 공기가 떠오른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Tears in heaven’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건 아버지가 틀어놓은 에릭 클랩튼과 친구들의 1999년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 실황에서였다. 라인업에는 메리 제이 블라이즈, 밥 딜런도 있었는데 유독 구슬펐던 이 노래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한참이 지나 이 노래에 담긴 사연을 알게 된 후로는 이 곡이 더욱 각별해졌다. 나도 에릭 클랩튼의 애달픈 노랫말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다. “천국에서 너를 만난다면, 너는 내 이름을 알까?” 궁금증이 풀리려면 아직도 많은 세월이 흘러야만 한다는 게 슬프다.

본 조비(Bon Jovi) ‘Livin’ on a prayer’
나의 10대 시절은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아날로그에 가까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방안에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가 없었고, 휴대폰도 스무 살에 처음 생겼다. 자연히 라디오를 끼고 살았고, 레코드 가게를 가까이했다. 본 조비를 알게 된 계기도 라디오였다. 이 노래가 방송에 나오던 순간 나는 마음을 뺏겼다. 메탈리카를 좋아하던 친구는 곡을 받아 부르는 밴드는 록이 아니라며 이들을 깎아내렸지만, 나는 본 조비를 통해 록에 접속했다.

들국화 ‘그것만이 내 세상’
이 노래를 듣기 전까지 내게 전인권은 “인권이 라이프”를 외치는 이상한 아저씨였다. 인식이 바뀐 건 중학생 때다. 그가 십여 년 만에 새 앨범을 내고 장충체육관에서 개최한 단독 공연을 뒤늦게 찾아봤다. 전율이 일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부르는 그를 보며 나는 얼어붙었다.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는 샤우팅이었다. 그날 이후 난 전인권과 들국화의 팬이 됐고, 그로부터 수년이 흘러 대학로 학전블루에서 열린 들국화의 재결성 콘서트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마돈나(Madonna) ‘Vogue’
사실 마돈나의 노래로 내 인생의 10곡을 채워도 모자라다. 케이블 음악 채널에서 우연히 ‘Frozen’의 뮤직비디오를 본 이후 난 마돈나에게 서서히 스며들었다. 결정적인 노래는 ‘Vogue’였다. 발매 시기를 짐작할 수 없는 세련미에 먼저 놀랐다. 데이비드 핀처가 만든 뮤직비디오, MTV 시상식의 마리 앙투아네트 퍼포먼스는 말할 것도 없다. 이 노래로 LGBT를 알았고, 미국의 아이콘들을 배웠다. 그레타 가르보, 마릴린 먼로, 마를렌 디트리히, 조 디마지오, 말론 브란도… 순서도 잊히지 않는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Beat it’
마이클 잭슨과의 추억은 하나를 꼽기 어려울 만큼 많다. 내한 공연 당시 텔레비전 중계를 보던 날, 30주년 공연에 총출동한 스타들을 보며 감탄하던 날, < This Is It > 공연 발표 기자회견을 보며 설레던 날, 황급히 날아든 사망 속보에 새벽부터 어머니가 잠을 깨우던 날… 마이클 잭슨은 내게 팝 스타이자 록 스타였고 어린 날의 우상이었다. 그와 처음 만난 곡이 ‘Beat it’이었다. 그땐 나도 크면 빨간 가죽 재킷과 검은 슬랙스, 하얀 양말과 까만 구두가 어울리는 어른이 될 줄 알았다.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Overprotected’
그 시절의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독보적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잠시나마 우리 시대에 마돈나가 생긴 기분이었다고 할까. 카리스마로 무장한 퍼포먼스부터 한국에 와서 보여준 친근한 모습까지 순간순간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말하자면 그는 내 인생 최초의 동시대 팝스타였다. 우리 집에선 ‘I’m a slave 4 u’, ‘Toxic’ 등 그의 노래 중 상당수가 ‘야한 노래’로 낙인이 찍혀 감상 금지 대상이 됐지만, 팝 멜로디의 진수를 들려준 ‘Overprotected’만은 어머니도 허락한 좋은 노래였다.

퀸(Queen) ‘Bohemian rhapsody’
세상 모든 사람이 그랬듯, 어린 나 역시 이 노래를 처음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대체 어떤 합창단이 이렇게 멋진 오페라 파트를 불렀을까. 나중에 멤버들끼리 부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 당혹감이란! 구성의 측면에서도 여태껏 이보다 놀라운 노래는 없었다. 대체 이 노래는 발라드인가, 하드 록인가, 오페라인가. 결국 난 이 노래의 장르를 퀸 그 자체라고 얼버무리고 넘어가야 했다. 내게 이 노래만큼의 충격을 안길 노래는 죽을 때까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보아 ‘No.1’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자넷 잭슨을 좋아하던 내가 보아에게 끌린 건 당연하다. 그들 못지않은 춤꾼이면서 우리나라 사람이고, 나이 차이도 몇 살 나지 않았다. 게다가 노래까지 잘 부르는 것 아닌가. 보아의 ‘No.1’ 뮤직비디오와 무대를 보며 나는 넋을 잃었다. 곧바로 그의 행보를 좇기 시작했고, 그를 발판 삼아 음악에 더욱 몰두하게 됐다.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마이클 잭슨, 마돈나와 더불어 보아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뷰 당시 이 일화를 듣고 뿌듯하다는 표정을 짓던 그의 모습이 문득 생각난다.

엘리 골딩(Ellie Goulding) ‘How long will I love you’
운전병 시절 유일한 낙은 라디오였다. 라디오가 없었다면 지루한 대기 시간이 억겁처럼 느껴졌을 테다. 야간 순찰을 나간 어느 날, 산골짜기 소초에 차를 세워두고 심야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별들이 하늘에 떠 있는 동안,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오래.” 마침 별을 바라보고 있던 내게 이 노래는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때 그 마음은 진작 사라졌지만, 노래만은 그대로 남아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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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Feature

IZM 필자들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음악 10곡’ – 박수진, 이홍현, 황인호

2010년대를 보내고 2020년대를 맞이하며 IZM이 새해 특집을 준비했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채우기 위해, IZM 필자들이 ‘내 인생의 음악 10곡’을 선정해 소개했다. 한 사람의 삶을 정의하는 데 10곡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취향과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총 8회에 걸쳐 진행될 ‘내 인생의 음악 10곡’의 네번째 차례는 박수진, 이홍현, 황인호 에디터다.

서영은 ‘혼자가 아닌 나’
시작부터 신파다! 누가 나의 삶에 버거움을 주었나… 초등학생 때부터 엄마에게 혼나든 세상에게 혼나든 힘들 땐 꼭 이 노래를 들었다. 노래는 그대론데 짊어진 고민은 날로 무거워지니. 별 수 있나. 리플레이!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 ‘Complicated’
울 엄마의 박수진 키우기 프로젝트에는 두 가지 큰 목표가 있었다. 하나는 미스 춘향 대회 내보내기, 또 하나는 양희은 같은 포크 가수 만들기. 말하자면 가슴 아픈 이유로 모두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이 곡을 얻었다. 중학교 내내 통기타로 연습하던 곡. 내게 에이브릴 라빈은 ‘Sk8er Boi’보다 ‘Complicated’다.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 ‘Because of you’
내 안에 ‘소울’이 있는 줄 알았다. 너도 나도 씨야, 가비엔제이, 장혜진에 빠져 가창력, 코창력을 선보일 때 난 조용히 프린트한 가사지를 꺼내들고 이 곡을 연습했다. 그가 오디션 프로그램인 < 아메리칸 아이돌 >의 우승자란 것도 나중에 알았다. 모든 세상의 중심이 나인 줄만 알던 그때 그 시절 억지로 새긴 내 눈물 자국은 바로 이 곡에서 시작됐다.

3호선 버터플라이 ‘스모우크 핫 커피 리필’
단 하나의 명반을 뽑으라면 주저 없이 3호선 버터플라이의 < Dreamtalk >(2012)다. 대학 시절 처음 듣고 느낀 카타르시스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소음과 불협화음이 미끄러져 난해한데 뭔가 알 거 같은 그 감정. 음악이 내 마음을 그려내는 것만 같았다. 그 음반의 첫 곡. 스모크가 아닌 ‘스모우크’라 발음하는 시적 여운에 취한 자, 이 곡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니.

브로큰 발렌타인 ‘화석의 노래’
홍대의 라이브 클럽을 전전하며 이들을 처음 알게 됐다. 굵직하고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와 시원시원한 가창. 그리고 무엇보다 강한데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에 취해 다이어트를 위한 줄넘기를 돌리며 이들의 곡을 많이 불렀다. 뜨겁고 습한 방콕의 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보컬 반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그래서 더 믿기지 않았다. 열기 가득한 내 20대 초반을 담고 있는 곡.

트레이시 채프만(Tracy chapman) ‘Fast car’
유튜브를 타고 타며 음악을 듣다가 이 곡에서 딱 멈췄다. 나른하고 쫀쫀한 어쿠스틱 기타 선율과 중성적인 보컬의 목소리. 별 생각 없이 노래에만 꽂혀 반복 재생을 하다 몇 년 뒤 우연히 이 곡을 다시 만났다. 한 음악 강의에서였는데 알고 보니 흑인의 처연한 일상을 비유한 가치 있는 곡이더랬다. 내가 요새 그 강의 조교를 한다. 이즘과의 첫 만남 어찌 잊을 수 있으랴!

파이스트(Feist) ‘My moon my man’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 판의 미로 >처럼 몽환적이고 판타지스러운 노래다. 기본이 되는 베이스 리듬과 요기저기 가미되는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한번 들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파이스트의 보이스 칼라까지. 음악을 좀 제대로 들어볼까 싶어 당시 열심히 읽던 매거진에서 발견한 곡으로 이후 주구장창 플레이리스트에 있다. 이 노래의 백미가 무엇이냐 하면 중후반 몰아치는 사운드 격돌이니 놓치지 마세요.

스타세일러(Starsailor) ‘Alcoholic’
전반에 서린 멜랑꼴리한 비장미. 칼을 빼내듯 튀어나가는 속도감 있는 전개. 록, 어디까지 만나봤니 하면 한 때 전 이 정도로 ‘록에 젖어 있었습니다’ 답하며 살며시 이 노래를 귀에 꽂아 주고 싶다. 2012년 < 부산 록 페스티벌 >에 갈 요량으로 출연진을 검색하다가 이 곡을 알게됐고 이후 난 깨달았다. 뒤늦게 내 인생이여 음악이란 파도를 만나 헤엄치겠구나. 하지만 지금의 나는 삶에 허덕이는 가방 끈만 긴 학생이여라.

콜드플레이(Coldplay) ‘Don’t panic’
나도 안다. 콜드플레이가 지금 얼마나 비싼 음악을 하는지. 다만 ‘Viva la vida’, ‘Adventure of a lifetime’, ‘Paradise’ 등 듣자마자 황홀경이 그려지는 요즘 날의 그들도 좋지만 가끔은 1집 < Parachutes >(2000)의 감성이 그리울 때가 있다. ‘얘네가 그렇게 잘나간다며?’ 하며 전 음반을 구매할 목적으로 산 그들의 첫 음반. ‘Don’t panic’을 들으며 돌아나갈 수 없는 우울감과 서정성에 매료됐다.

켄트(Kent) ‘Socker’
켄트와 나의 접점은 없다. 스웨덴 밴드고 노래도 다 스웨덴어로 부른다. 그래서 난 이들의 노래를 멜로디로만 떠올린다. 그리고 내 멋대로 상상하는데 이 곡은 내게 슬프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기억된다. 어떻게 알게 됐는지도 모르고 그냥 어느 순간 내게 남아 있는 곡. 2016년 해체했고 마지막 음반의 타이틀 ‘Air ar inte langre dar(We are no longer there)’을 들으며 이들을 멋지게 보냈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Billie jean’
중학교에 다닐 때는 MP3 플레이어와 스마트폰을 수업 전에 내야 했기 때문에 교내에서 음악을 듣지 못했다. 괴로운 시간을 참지 못한 나는 쉬는 시간마다 복도를 무대 삼아 홀로 노래를 불러대며 욕구를 해소하곤 했다. 많은 곡 중 최고 애창곡은 이 노래. 당시 나의 영웅이었던 마이클 잭슨의 목소리, 표정, 춤을 엉성하게 따라 하며 딸꾹질 소리를 중간중간 섞어 넣으면 구경하던 친구들이 깔깔거리며 웃곤 했다. 지금도 춤이나 노래에 소질이 조금 있는 편이라 생각하는데, 그 끼의 시작이 여기인 것 같다.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Superstition’
처음 들었을 때 음악의 정점이 여기라고 생각했다. 마약을 섞은 듯 매혹적인 신시사이저 리프와 눈에 떠다니는 듯 선명한 보컬 멜로디, 춤을 참을 수 없게 하는 펑키 리듬, 정신없이 갈겨대는 악기 연주가 하나로 섞여 만들어진 경이로운 소음. 시간이 지나 수백 번도 넘게 들었지만 지금도 경탄이 터져 나온다. 뭐랄까, 음악가의 영혼 같은 게 담겨있다.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And Fire) ‘September’
재생하면 자동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빠데야!’를 따라 외치게 되는 노래. 좋은 음악의 정의나 훌륭한 예술의 조건, 그런 건 따질 겨를도 없다.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기분이 좋아지는, 내가 생각하는 좋은 ‘팝’의 표본.

라디오헤드(Radiohead) ‘No surprises’
그런 날이 있다. 머릿속에 우울한 생각만 가득하고 마음의 무거움이 무기력으로 이어지는, 신나는 댄스곡을 들어도, 달콤한 위로의 가사를 읽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그럴 때 나는 별수 없이 이 노래를 꺼내 듣는다. 감정의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멜로디, 극도로 절망적인 가사, 덤덤하게 읊조리는 보컬이 나에게 조용히 기댈 어깨를 빌려주며 슬픔에 젖을 시간을 내어주는 것 같다. 톰 요크는 이 곡이 자살에 관한 노래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나는 들을 때마다 그 내용을 담고 있다고 느낀다.

본 조비(Bon Jovi) ‘This ain’t a love song’
처음으로 외국 밴드 음악을 접할 무렵 본 조비를 좋아했다. 말랑말랑한 가요로 음악을 들은 나였기에 너무 강하고 극단적인 록보다는 선명하고 어렵지 않은 선율이 있는 그들의 음악에 손이 많이 갔다. 그중 가장 즐겨 들은 노래는 6집 < These Days >의 수록곡인 이 노래. 지금도 전주의 기타 리프만 들으면 가장 순수하게 음악을 듣던 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Monster’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무서워서 껐던 기억이 난다. 혁신이자 신기원, 힙합은 국내 곡 몇 개 말고는 몰랐던 나에게는 과하게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빠져들었다. 온갖 상스러운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노랫말이지만 사운드와 랩이 주는 쾌감에 재생을 멈출 수 없었다. 지금도 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찾아 듣는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i’
켄드릭 라마의 목소리는 내 마음속의 저항심을 대신 배설해주는 분출구 같다. 자신이 바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그것을 극복과 긍정으로 승화시켜 ‘난 나를 사랑해!’를 외치는 이 노래의 노랫말은 특히나 나에게 큰 울림이었다. 나에게 자신감을 가르쳐준 소중한 노래.

유재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20살 무렵, 지방에서 서울로 홀로 올라와 모든 걸 고군분투하던 때 접한 곡이다. 처음에는 서정적인 선율이 좋았는데 거듭 들을수록 가사에 마음이 움직였다. ‘이제 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빠르게 달려가는 세상 속 때로는 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여유가 필요하다. 이 노래는 나에게 그 여유를 내어준다.

김하온 ‘붕붕’
하늘과 바람, 자연이 떠오르는 힙합 노래. 발매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의 인생곡 중 하나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탁 트인 편곡과 빠르게 뱉는 랩이 나의 취향을 저격하고 젊음의 패기를 꾹꾹 눌러 담은 노랫말은 자유로움을 동경하는 나의 어떤 이념과도 닮아있다. 걱정, 고민을 버리고 하늘 위로 붕붕! 날아오르게 만드는 노래.

프린스(Prince) ‘Purple rain’
죽기 직전 딱 한 곡만 들을 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별 인사.

넬 (Nell) ‘기생충’
나도 대부분의 사람처럼 ‘기억을 걷는 시간’으로 넬을 처음 접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 이 밴드를 규정하는 건 어디에도 들어맞지 못하는 부적응자의 정서다. 2008년 이 곡을 처음 듣고 접신(接神)이라도 하는 듯한 도입부에, 어딘가 단단히 비뚤어진 듯한 가사에 매료됐다. 나는 이때 마침 중학교 2학년이었으니, 그랬을 만도 하다.

동경사변(東京事変) ‘전기가 없는 도시'(電 のない都市)
일본어는 하나도 모르지만 듣고 있자면 언제나 눈물이 흐른다. 시이나 링고 (椎名林檎)의 처량한 목소리와 서글픈 피아노 반주, 그 사이를 꽉 채우는 기타 사운드는 내 마음속에 있는 서글픔을 끌어내 함께 공명한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던 10대 소년은 이 노래를 듣고 자신의 치기 어린 분노속에 들어있던 외로움과 나약함을 직시할 수 있었다. 마음 놓고 울어도 된다고 허락을 받은 것만 같던 그 당시의 마음이 이 노래를 듣기만 하면 떠오른다.

모임별 ‘푸른전구빛’
소리의 질감에 대한 무신경을 단숨에 녹여버리고, 음악적 세계관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해준 곡이다. 결코 뛰어난 가창도, 연주도 들어있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 >의 퇴폐적 몽환에 더욱 귀 기울일 수 있다. 퇴폐나 몽환과는 거리가 있는 인생을 살면서도 사이키델릭한 음악을 들으며 슬픔에 대한 자기연민에 빠져 보낸 20대 초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언니네 이발관 ‘청승고백’
인디음악에 입문을 해야겠다며 유명한 앨범들을 닥치는 대로 듣다가 < 후일담 >을 접했다. 곡 제목도 확인하지 않고 순서대로 듣다가 후반부에 나온 3분짜리 기타 솔로에서 눈물을 흘렸다. 제목을 보고 내 청승맞음이 꼼짝없이 폭로 당한 기분에 나는 눈물이 채 가시기도 전에 웃음을 터뜨렸다. 내게 딱 필요했던 만큼의 자아비판이었다.

디어 클라우드 ‘무너져’
중성적인 목소리로 곡에 녹여낸 감정의 기승전결에 한번, 당신의 행동에는 ‘나에게만 통할 수 있는 무기’가 숨어있다는 가사에 다시 한번 감동했다. 내 삶에서 이별의 순간에는 항상 이 노래가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무너짐과 무기력, 나약함으로만 이별이 정의되던 시기는 시간과 함께 흘러갔다. 그러나 그 아픔의 방식에 대한 기억만은 남아, 내가 걸어온 길을 추억하게 해준다.

서태지 ‘Take five’
아이유가 팬들에게 ‘역조공’을 하기로 유명하지만, 자신의 팬을 향해 바치는 찬가로는 서태지가 한 수 위다. 파도치듯 분출하는 에너지에 몸을 맡기면 금방 공연장에 온 것만 같다.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2년 만에 전해온 첫 소식으로 이 노래를 접했다면 얼마나 가슴 벅찼을까. 이른바 “서태지 세대”에 내가 속하지 못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김윤아 ‘다 지나간다’
김윤아는 ‘파애’에서 시작해, ‘샤이닝’과 ‘피터의 노래’에 이르기까지 아픔을 노래해 왔다. 이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다 지나간다’는 단단한 진정성은 흔치 않은 안도감을 선사한다. 비록 그 종류가 다를지언정, 함께 ‘열병’과 ‘상념’의 시기를 겪어왔다는 동질감 덕분이다.

미츠키(Mitski) ‘First love / Late spring’
중2병을 극복한 나를 기다리는 건 대2병이었다. ‘당신의 말 한마디면 나는 내가 서 있는 절벽에서 뛰어내릴 수 있으니, 내가 기어 돌아오도록 말려달라’는, 여전히 감정에 휘둘리는 ‘키만 큰 어린애’의 모습에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가사의 내용만큼 날 것의 느낌이 살아있는 사운드는 곡의 몰입도를 극대화해, 기타 솔로에서 눈물을 참을 도리가 없다.

다프트 펑크(Daft Punk) ‘Robot rock’
이 정도로 반복적이고 단순한 구성의 곡이 이렇게 신날 수가 없다. 다프트 펑크는 록 팬인 내 머릿속에 로봇도 록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줬고, 그 덕분에 전자음악의 팬이 됐다.

버브 (The Verve) ‘The drugs don’t work’
제목에 끌려 우연히 MTV에서 공연한 어쿠스틱 편곡의 영상을 접했다. 영국의 록에서 날 선 에너지가 아닌, 달콤씁쓸한 서정성을 처음 발견한 경험이었기에 이 기억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통기타와 일렉기타, 그리고 리처드 애쉬크로프트의 목소리만으로 자아내는 감동은 음원의 그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이 곡이 듣고 싶을 때는 여전히 그 영상을 찾아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