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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5 김홍철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마련한다. 이즘 필자들과 독자들의 글을 공개하면서 이즘 편집진은 음악과 동의어라고 할 라디오 방송의 PD들이 갖는 미학적 시선과 경험을 들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이 뽑은 ‘인생 곡 톱10’을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다섯번째 순서는 KBS 라디오 김홍철 프로듀서다.

시작하며..

임진모 선배님이 인생 열 곡을 달라고 하신다. 응? 인생? 그러고 보니 한 번도 내 인.생.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은 것 같다. 딱히 돌아볼 뭐가 없어서 그랬을 거다. 50대 중반의 나이이니 인생이란 단어가 그리 어색할 것도 없을 터인데 워낙 찌질한 삶을 살아온 터라 부담스럽긴 하다. 그저.. Everything happens to me의 가사처럼 좀 모질란 라디오PD의 마음속을 훑고 지나갔던 노래들을 인생시간 순으로 추려본다.

#충격

산울림 /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충격이었다. 이게 뭐지? 무슨 노래가 이러냐? 1978년.. 중학교 2학년이었을 거다. 이 앨범은 대중가요의 이미지를 단박에 걷어 차버렸다. 기타 퍼즈음이 잔뜩 들어간 ‘아니 벌써’도 신기한 노래였지만 특히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는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뭔가 하기 싫은 듯.. 어설픈 듯.. 6분이 넘게 흥얼흥얼 읊조리는 김창완의 목소리는 무심한 가사(사랑 노래인지, 계절 노래인지,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와 어우러져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뒤집어 놓았다. 이후로 나는 산울림의 신보를 손꼽아 기다리며 동네 판(LP)가게를 매일 들르는 ‘판가게 죽돌이’가 되었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나는 둘째 김창훈의 베이스 연주를 참 좋아한다. 그의 베이스는 단단하고 리드미컬 하다. 산울림에게 특유의 록음악 색깔을 칠해 주었다.

벗님들 / 또 만났네

산울림이 주었던 충격 만큼은 아니지만 사춘기 소년의 마음속에 종을 울린 또 하난의 앨범은 벗님들 1집이다. 그 중에서도 ‘또 만났네’. 타이틀곡은 ‘그런 마음이었어’였지만 나는 이 곡이 더 좋았다. 시작부터 다짜고짜 들이대는 세련된 화음이라니. 가요의 화음이라면 아주 어릴적의 ‘봉봉사중창단’이나 ‘금과은’만 기억하던 당시의 나로서는 충격적인 음악이었다. 난생 처음듣는 경쾌한 화음이 뭔가 고급진 팝의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게다가 이들의 음악은 나름 펑키(funky)하다. 산울림과는 다른 종류의 그루브가 있다. 이치현의 기타연주는 지금 들어도 일품이다. 앞으로 선뜻 나서지 않고 간질 간질 봄바람 같은 연주가 흥을 돋운다.

가사 내용도 중3 사춘기 소년의 맘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 만났네 어제 본 그 아가씨. 미소짓네 주고받은 말 없어도. 사귀어보고 싶은 마음 하늘만 한데 왜 이렇게 말 못 하고 눈치만 보나..”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나 이상우의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으로 이어지는 유쾌한 사랑 노래이다.

#설렘

올리비아 뉴튼 존(Olivia Newton-John) / Come on over

내 인생엔 두 분의 올리비아 누님이 계신다. Newton-John 누님과 하세(Olivia Hussey) 누님이 바로 그분들이시다. 아.. 두 분 만큼은 아니어도 실비(Sylvie Vartan) 누님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긴 하다.

각설하고.. 이 곡에는 감히 인생이란 단어를 붙여도 좋다. 팝음악사에 획을 긋지 않았어도.. 명반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어도.. 나에게는 인생음악이다. 55년 살아오면서 내게 가장 큰 설렘을 준 음악이니 그럴 만도 하지 않을까. 이유는? 없다. 말할 필요 없다. 그냥 두근두근 설렜고 무조건 최고였다. 자켓 사진 속의 푸른 물과 파란 눈동자.. 늦가을의 새벽 안개 같은 신비로운 목소리.. Come on over. 듣고 있으면 왈칵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노래였다. 같은 앨범의 Greenleaves, Blue eyes crying in the rain도 나를 한 없는 감상으로 이끌어 잠 못 이루게 하곤 했다. 이후로 나는 군 위문공연에서 여 가수의 무대위로 뛰쳐 올라가는 군바리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질풍노도

유라이아 힙(Uriah Heep) / July morning

1980년 고1 때였을 거다. 형이 모아 놓은 ‘빽판(해적판)’들 속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듣게 되었다. 당시에 친구들과 음악 얘기를 할 때면 ‘먹어주는 한 방’이 필요했는데 그건 바로 “니들 유라이어힙의 줄라이모닝이라고 들어는 봤냐?”였다. 맘껏 잘난 척 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곡이다. 일단 10분이 넘는 길이로 먹고 들어간다. 도입부의 압도적인 키보드 사운드를 들려주면서 ‘어때? 니들과는 수준이 좀 다르지?‘하는 시선으로 그들을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었다.

떠오르는 순간부터 강렬한 빛을 뿜어내는 7월의 태양과 같은 노래. 감히 클래식으로 치자면 Richard Strauss의 교향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일출‘ 도입부나 생상스의 오르간교향곡 4악장에 비견할 수 있다 하겠다(오바 아이가?). 아무튼 나는 Uriah Heep의 July Morning과 Look at yourself, Easy Living 등을 들으며 반항기 가득한 10대 후반의 에너지를 분출했던 것 같다.

#떨림

스탄 게츠 & 주앙 지우베르투(Stan Getz & João Gilberto) / Corcovado

연애할 때.. 차가 있고 없고는 많은 유의미한 차이를 만든다. 1990년의 여름밤.. 서울대공원 미술관 올라가는 길이었던가. 세워둔 차 밖은 캄캄했고 계기판의 불빛만 아른거렸다. 풀벌레 소리가 들렸고 차안은 조용했으며 꼴깍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야릇한 긴장감.. 뭔가 해야하는 순간이 아니던가.

그녀(그 때의 그녀는 지금의 나의 아내가 되었다)가 부스럭거리며 가방에서 뭘 꺼낸다. “이거 듣자. 이거 되게 좋아” 카세트테입이다. ’응? 뭐 이런건.. 나중에 들어도 되는데..‘ 내키지 않았지만 주섬주섬 카세트를 꽂았다. 철컥.. 윙~ 테입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Quiet nights and quiet star.. quiet chords from my guitar..” 서툰 영어 발음의 여성보컬이 차안을 가득 채우고.. 우리의 떨림을 달래주었다. 고요한 밤.. 고요한 별.. 내 기타의 고요한 울림. 내 인생의 사랑노래는 바로 그 순간의 Corcovado.

#가을.. 알싸함과 청명함

음악프로그램을 하는 라디오 PD에게 고마운게 몇 가지 있다. 시간대로는 밤이요 날씨로는 비이고 계절로는 가을이다. 한 마디로 음악이 ’들리는‘ 조건들이다. 다음 두 곡은 1993년 라디오PD가 된 후 초창기에 ’눈이 부시게‘ 높푸른 하늘의 가을 아침에 종종 선곡표에 올렸던 노래이다.

챕터 투(Chapter Two) / Only love can break your heart

눈이 시린다. 스웨덴 듀오 Chapter Two가 부른 이곡을 들으면 그런 느낌이 든다. 시리도록 아름답고 시리도록 슬픈 노래. Johan Norberg의 기타와 어우러지는 Nils Landgren의 트럼본과 목소리는 따뜻하지만 듣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북구의 사랑노래는 알싸한 가을하늘 만큼 퍼렇다.

이브 뒤떼이 & 엔조 엔조(Yves Duteil & Enzo Enzo) / Au Parc Monceau

몽소공원에서. 프랑스.. 빠리(파리가 아니라 빠리..라고 읽어줘야 느낌이 산다).. 그리고 몽소공원. 이름만으로도 낭만이고 사랑이다. 맑은 가을날의 햇살 속에 잔디밭을 뛰노는 아이들과 산책하는 어른들과 벤치의 연인들. 청명한 하늘을 닮은 엔조 엔조의 목소리와 편안한 햇살같은 이브 뒤떼이의 음색을 들으며 걷는 가을날의 몽소공원. 코로나가 끝나야 갈 수 있겠지.

#밤과 술.. 찌질남의 절대고독

쳇 베이커(Chet Baker) / Everything happens to me

남자는 여자에게 채였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래 난 원래 되는 일이 없었어. 골프 예약하면 비오고.. 친구 불러 파티하면 이웃이 시끄럽다고 항의하고.. 아 맞다! 나 홍역에도 걸린 적 있다구. 그리고 딱 한 번 사랑에 빠졌는데.. 이것도 채여버렸어 엉엉~.’.

좀 과장해서 살 붙이면 노래 내용이 이렇다. 머피의 법칙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고독한 찌질남의 넋두리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쳇 베이커의 달관한 듯 읊조리는 목소리로 부르니 심오한 인생이 느껴진다. 있어 보인다. 술 한 잔 먹고 밤에 들으면 울컥하고 올라온다. 쳇 베이커니까. 술 없이 쳇 베이커를 듣는다는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오늘 밤도 핑계 김에 한 잔!

그리고.. 이 노래를 들으면 임희구님의 시가 생각난다.

-소주 한 병이 공짜-

금주를 결심하고 나섰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이
감자탕 드시면 소주 한 병 공짜란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삶이 이렇게 난감해도 되는 것인가
날은 또 왜 이리 꾸물거리는가

(중략)

불혹의 뚝심이 이리도 무거워서야
나는 얕고 얕아서 금방 무너질 것이란 걸
저 감자탕 집이 이 세상이
훤히 날 꿰뚫게 보여줘야 한다
가자, 호락호락하게

#단순함에 대하여

시릴 에메 & 디에고 퍼규레도 (Cyrille Aimee & Diego Figueiredo) / Just the two of us

단순함, 미니멀리즘이 주목받는 시대이다. 그래서 하는 일이 1일1버. 하루에 하나씩 버린다. 옷도 버리고 책도 버리고 욕심도 버리고. 이렇게 단순한 삶을 추구하다 보면 사고는 오히려 깊어져서 무소유 같은 철학적 깨달음 비스무리한 것에라도 가까이 가야 하는데.. 나는 그냥 사고 자체가 단순해져 버렸다.

하루끼가 그랬던가? 중년 이후 두 가지 말만 기억하면 잘 살 수 있다고. 그건 “그래서 뭐?!” “다 그런거지 뭐” 이 두 가지다. 하루끼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실례겠지만 사실 이게 하루끼가 말해서 위트있어 보이는 거지 “아 어쩌라고?!!” “배째!” 같은 중년의 단순 뻔뻔함 외에 다름 아니지 않나? 딱 내가 바라는 바다. 복잡한 건 개나 줘버리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

음악도 그렇다. 예쁜 목소리에 악기 하나. 딱 좋다. Cyrille Aimee의 매력적인 보컬과 Figueiredo의 기타. 모자람이 없다. 뭐가 더 들어오면 이 맛이 아닐 것 같다. 감각적 색감의 자켓 사진까지 노래의 맛을 더해준다. Grover Washington Jr.와 Bill Withers의 명연주를 어디 근본도 없는 애들한테 갖다 대냐고 버럭하실 분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그래서.. 뭐?!”

#시간에 대하여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Nick Cave & Bad Seeds) / Into my arms

어머니는 현재를 사신다. 점심때 뵈었는데.. 저녁에 전화 드리면 “요즘 왜 이리 뜸하냐” 하신다. 식사 중에 바로 직전에 드신 음식을 기억하지 못하시고 “내가 언제 만두를 먹었다 그래?”하시며 역정을 내시기도 한다. 지금 어머니는 매 순간 현재만을 사신다. 그런데.. 내 어린 시절 얘기를 하면 정말 좋아하신다. 환하게 웃으시며 당시를 기억하신다. 어머니는.. 지금 과거의 한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때로 가고 싶으실까. 과거를 현재로 소환할 수 있으면 그 또한 현재가 된다. 아주 행복한.

Into my arms. 영화 에서 아들이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집을 방문하는 장면에 흐르는 음악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Nick Cave의 심오하고 처절한 사랑노래. 인간은 시간과 죽음을 거스르지 못하나 사랑을 통해서 평화를 얻고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일까. Into my arms, oh Lord, into my arms.

#마치며

마지막 곡은 비워놓고 싶었다. 내 인생의 진짜 마지막 순간에 채워 넣어야 할 곡이 무엇일지.. 아직은.. 모르기 때문이다.

■ 프로필

김홍철 | kimpd33@naver.com

여러 직장을 전전한 후 1993년 1월 KBS 라디오 PD로 입사했다.

<차태현의 FM인기가요>, <박수홍 박경림의 FM인기가요>, <안재욱 차태현의 미스터라디오>, <당신의 아침 박은영입니다> 등을 만들어 연출했고 ‘KBS Cool FM’의 어울리지 않는 관리자 노릇을 잠깐 할 때 <김승우 장항준의 미스터라디오>를 기획했다.

현재는 ‘KBS 클래식FM’에서 고전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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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4 남태정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마련한다. 이즘 필자들과 독자들의 글을 공개하면서 이즘 편집진은 음악과 동의어라고 할 라디오 방송의 PD들이 갖는 미학적 시선과 경험을 들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이 뽑은 ‘인생 곡 톱10’을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네번째 순서는 MBC 라디오 남태정 프로듀서다.

얼마 전 대대적으로 집 정리를 했다. 한때 욕망과 허세를 대변하던, 많은 음반과 만화책은 아이들 책에 자리를 내주고, 방 한 켠의 보잘 것 없는 종이 박스 속에 밀려난 지 오래. 이제는 그곳에 자리한 짐마저도 버거워, 나의 삶 한 켠을 또 비워내기 위하여 먼지 쌓인 상자를 열게 되었다.

뚜껑을 열자 이들과 함께 잠들어 있던 지난 시절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버릴 것’, ‘살릴 것’으로 구분을 하다 보니, 어느새 기준은 음반과 책들에 스며든 추억이 되어버린 터, 재활용 쓰레기장으로 향할 것과 누런 종이 상자 속에 다시 넣어둬야 할 것의 갈림길에서 추억이 짙게 묻어 있기에 일단 함께하기로 결심한 몇 곡을 소개한다.

파이어 Inc (Fire Inc) / Tonight Is What It Means To Be Young

월터 힐(Walter Hill) 감독의 영화 ‘스트리트 어브 파이어(Streets Of Fire)’는 악당으로부터 납치된 공주를 왕자가 구출한다는 전형적인 이야기를 변용한 현대판 서부 활극이다. 팝스타 다이안 레인(Diane Lane)이 악당 윌렘 대포(Willen Dafoe)에게 납치당하고, 그녀의 전 남자친구였던 마이클 파레(Michael Pare)가 다이안 레인을 구출한다는 스토리와 거기에 멋진 음악들이 더해져 MTV식 ‘Rock And Roll Fable’이 완성된다.

화려한 곡 구성을 내세우는 프로듀서 짐 스타인먼(Jim Steinman)이 참여한 영화 오프닝과 엔딩 음악은 이야기 전개의 ‘기’, ‘결’에 부합한다. 대중적으로는 오프닝 곡 ‘Nowhere Fast’가 많은 인기를 얻었으나, 당시 10대 초입을 지난 나의 감성을 사로잡은 음악은 영화의 엔딩에 흐르던 ‘Tonight Is What It Means To Be Young’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홀연히 떠나는 남자주인공을 안타깝게 보내야만 했던 심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온갖 현란한 자극들이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지금 이 시대에, 이곡은 가장 솔직하고 순수한 자극으로 나의 마음을 여전히 뒤흔들고 있다.

아하(A-Ha) / Take On Me

역사에는 영상 음악의 시대가 1980년 MTV의 개국과 함께 등장한 버글스(Buggles)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부터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내게 있어 영상 음악 시대의 시작은 A-Ha의 ‘Take On Me’와 만난 순간부터이다. 아마 ‘쇼 비디오 자키’와 같은 오락 프로그램의 엔딩 크레딧에 흐를 때 접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음악은 그저 카세트 테이프를 사서 듣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 실사와 만화를 뒤섞은 ‘런어웨이’ 이야기는 만화와 음악을 좋아했던 나의 취향을, 그야말로 저격하고 말았다. 물론, 세련된 멜로디와 사운드, 맑으면서도 힘 있는 보컬까지 가세한 음악만으로도 시대를 관통하는 명작이다. 자유자재로 영상을 찍고 쉽게 편집하는 시대에 이제는 어설프게 느껴질지 모르나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 곡을 찾고, 수많은 커버 버전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이 음악의 가치를 증명해 준다.

조용필 / 단발머리

PD가 되기 전과 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취향을 설명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그 영화 어때?’ ‘진짜 재밌어.’ ‘그 음악 어때?’ ‘죽여주지!’ 이렇게 지극히 주관적인 호불호 정도로 취향을 이야기하던 것에서 ‘아, 그 영화는 미장센이 어쩌고저쩌고……’, ‘그 곡의 베이스 라인과 사운드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나름의 근거들을 설명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에 휩싸이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나한테 조용필의 음악에 대해 물어온다면?

그냥 좋다. 어려서 들었을 때도 좋았는데, 나이 들어 들으니 더 좋다. ‘단발머리’는 어렸을 때 동네 오락실에서나 들릴 법한 ‘뿅~뿅~뿅~’ 사운드가 재미있고 신기하게 느껴져 오래 전부터 나의 애창곡이자 애청곡이었다.

2년 전, 조용필 50주년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여러 뮤지션들과 평론가들을 통해 이 곡이 얼마나 훌륭한지 객관적인 근거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생전에 조용필의 팬이셨던 어머니와, 그리고 항창 트와이스에 빠져 있는 초등학생 딸아이도 흥얼거릴 정도로 시대를 아우르는 음악적 접점이 되고 있다는 데서 이 곡의 위대함을 절감한다.

데프 레파드(Def Leppard) / Hysteria

 픽션에서는 개연성이 떨어져 보이는 뻔한 감동이 현실이 되면 그 감동은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 커진다. 데프 레파드(Def Leppard)의 드러머 릭 앨런(Rick Allen)은 3집 앨범 ‘Pyromania’의 성공 후 팔이 절단될 정도의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어느 누가 봐도 밴드의 비참한 결말을 예측할 수밖에 없던 상황, 그러나 앨런이 남은 두 다리와 남은 한 팔로 4집 앨범 ‘Hysteria’에서 위대한 드러머로 부활한다.

위기와 절망의 순간을 극복한 릭 앨런과,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그를 기다리며 지지했던 동료들의 우정은 음악의 감동을 배가한다. 뛰어난 음악과 함께 감동적인 스토리가 합해져 이 앨범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팝스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 비슷한 시기에 발매한 앨범, ‘Bad’의 판매고를 훌쩍 뛰어 넘는 기록까지 세웠다.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 ‘Hysteria’는 3년에 걸친 그들의 인고의 시간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삶이 무거워진다고 느끼는 이 때, 그들의 음악과 음악 이야기는 여전히 나를 위로하고 응원해 준다.

오사나(Osanna) / Canzona(There Will Be Time)

 8,90년대 10대 시절을 보낸 팝 음악 애호가들에게 프로그레시브 음악, 아트락은 거쳐갈 수 밖에 없는 하나의 통과의례였다. 영화팬들이 헐리우드 오락 영화에 열광하던 시절 소위 유럽 예술영화, 독립 영화를 통해 새로운 자극을 얻는 것처럼, 영미권의 팝음악이 지배했던 시절의 유럽, 특히 이태리 아트락을 통해 음악의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뉴 트롤스(New Trolls), Latte E Miele(라떼 에 밀레) 등 수많은 이태리 아트락 가운데 처음으로 구매했던 아트락 음반이 Osanna의 ‘Milano Calibro 9’였다. 당시에는 라디오 방송에도 많이 소개되지 않아 그저 유명 평론가의 추천에 의지해 구입한 음반이 기대치와 달라 본전이 생각나던 적도 많았다. 그러나 이 음반의 ‘Canzona’ 만큼은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들었으니, 이미 금전적인 가치를 넘어 선 셈이다.

윤상과 티란티노 감독처럼 음악의 마니아라면 들어봤음직한 ‘일 포스티노(Il Postino)’의 영화 음악의 거장, 루이 바칼로프(Louis Enrique Bavalov)와 콜라보도 더욱 이 음악을 가치 있게 한다.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 / Childhood Memories

음악을 듣다보면 ‘내 맘대로 3대 음반’을 버릇처럼 꼽곤 한다. 내가 좋아하는 3대 록 앨범, 3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음반, 3대 가요 명반 등. 이런 의미에서 애장하는 영화 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의 3대 음반을 고르자면 영화 ‘미션(Mission)’,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그리고 바로 ‘원스 어펀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이다. 거친 팬풀루트 도입부가 인상적인 ‘Childhood Memories’는 당시 광고와 방송용 배경 음악으로도 사용되었던 엔니오 모리코네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개봉 당시에는 2시간 가까운 잔인한 가위질로 영화와 그 음악의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대학 입학 후 4시간 버전으로 다시 봤을 때, 현대 미국의 대서사시인 영화의 맥락이 연결되면서 영화에 함께 음악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되었고, 비로소 나만의 최고의 음반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참고로 나만의 엔네오 모리코네 3대 음반에 아깝게 탈락한 음반은 브라이언 드 팔마(Brian De Palma) 감독의 영화 ‘언터쳐블(The Untouchables)’ OST 음반이다.

김현철 / 동네

뮤지션 김현철을 생각하면 취권의 성룡이 떠오른다. 허허실실 마음씨 좋은 아저씨의 모습에서 그가 한때 강호를 평정했던 무림의 고수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다. 조용필이 속세와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음악계의 ‘도인’이라면, 김현철은 자전거와 술을 좋아하는, 언제 어디서나 마주칠 법한 동네 아저씨마냥 우리의 곁에 함께 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함께 한 술자리에서 긴장의 끈을 놓고 있다가 문득 화제가 ‘음악’이 되었을 때, 취기를 꿰뚫는 그의 날카로운 분석을 마주할 때면 경외심마저 들곤 한다.

‘동네’는 그가 무려 20살에 발표한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그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음악적 소재와 형식미를 조화롭게 갖춘 곡으로, 20대 김현철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만나기만 하면 ‘술 한잔’ 약속부터 잡는 그의 칼이 이제는 세월의 무게에 무뎌지지 않았을까 싶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 발표한 음반 ‘돛’을 통해, 그가 사람 좋은 웃음 속에 여전히 음악의 칼날을 노련하게 벼려오고 있는, 이 바닥의 고수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차게 & 아스카(Chage & Aska) ‘On your mark’

‘미래소년 코난’, ‘루팡 3세’ ‘천공의 성 나퓨타’ 등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매이션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On Your Mark’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단편 작품으로 동명의 타이틀곡을 당시 일본의 국민 듀오 차게 앤 아스카(Chage And Asak)가 불러 화제를 모았다. 2000년 한일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 열린 공연에서도 애니메이션과 함께 소개되었다. 과거의 아픔을 같이하고 함께 미래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통해 한일 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차게 앤 아스카는 여러 가지 구설수에 휘말리며 해체되었고, 한일 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의 음악,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한국의 팬들이 있고, 이제는 한국의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일본인도 그에 못지않게 많아졌다. 어쩌면 지금의 경색된 한일관계는 서로의 문화를 더 적극적으로 나누고 소통하는 데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할 듯하다.

그랜트 리 버팔로(Grant Lee Buffalo) / Rock of ages

소위 펄 잼(Pearl Jam), 너바나(Nirvana) 등의 시애틀 그런지와 그린 데이(Green Day), 오프스피링(Offspring) 등의 네오 펑크가 대세이던 90년대 중반, 잠시 미국에 머물렀던 순간 우연히 접하게 된 밴드 그랜트 리 버팔로(Grant Lee Buffalo)의 두 번째 앨범 ‘Might Joe Moon’의 마지막 트랙이다. 국내 라이센스 음반으로 발매되지 않았고, 인터넷 정보 검색이 본격적이지 않을 때라 아무런 사전 지식이나 편견 없이 음악 그 자체를 감상할 수 있었던 곡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빌보드 등 차트 중심의 음악이 주도하고 있지만, 그것의 바깥 세계에도 좋은 음악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음악이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을 믿지 않지만 이 음반만큼은 첫 만남에 이유도 모른 채 끌렸다. 아마도 돌이켜 보건데, 리드 보컬과 기타를 담당하고 있는 그랜트 리 필립스(Grant Lee Phillips)가 때로는 읖조리 듯, 때로는 토해내듯 하는 노래와 기타 연주가 청춘의 허허로움을 대변한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승환 / 변해가는 그대

이승환의 음반과 공연은, 그 당시에  해낼 수 있는 최고치를 이뤄내고야 만다. 20세기 말미에 발표된 이승환의 라이브 앨범 ‘무적전설’은 음반으로 접하는 음악과 공연으로 체험하는 음악의 차이를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 그중 ‘변해가는 그대’는 라이브 실황은 현장감을 극적으로 표현한 곡이다.

곡을 만든 유희열이 라이브용 편곡에도 참여하였으며, 공연에서 자신이 가진 것 이상의 에너지를 충분히 쏟아내고야 말도록 러닝 타임도 원곡의 두 배로 늘렸다. 공연의 엔딩곡으로 그롤링까지 해가며 가수가 지닌 모든 힘을 소진해야만 부를 수 있는 곡이기에 몇 회를 제외하고는 이후 공연에서 불리지 않았다. 

2019년 12월 1일,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 ‘무적전설’의 마지막은 ‘변해가는 그대’였다.  한동안 공연장에서 이 노래를 들을 수 없었던 팬들에게 이승환은 더 풍부하고 깊어진 에너지를 발산해 냈고, 그의 오래된 팬들은 무대를 불사르는 투혼에 눈물과 환호성으로 답했다. 이승환은 역시, 언제 어디서나 그가 할 수 있는 최고를 이루고야마는, 이 시대의 전설이다.

■ 프로필

남태정 | stevenam@naver.com

1996년 MBC 라디오국에 입사해 그간 < 유희열의 All That Music >, < 이소라의 FM음악도시 >, < 오늘 아침 이문세입니다 >, < 푸른밤 종현입니다 > 등을 연출했고, 2019년에는 U2의 내한공연을 유치했다.

현재는 < 배철수의 음악캠프 > 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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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3 김홍범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마련한다. 이즘 필자들과 독자들의 글을 공개하면서 이즘 편집진은 음악과 동의어라고 할 라디오 방송의 PD들이 갖는 미학적 시선과 경험을 들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이 뽑은 ‘인생 곡 톱10’을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세번째 순서는 KBS 라디오 김홍범 프로듀서다.

잔혹한 기획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음악 중에 10곡만 뽑으라니, 100곡이어도 고르기 어려울텐데 말이다. 1곡을 떠올리면 꼬리처럼 물고 나오는 다른 음악들이 나를 왜 안뽑아주냐고 울부짖는다. 내가 하찮은 기억력을 갖고 있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빼놓은 곡들은 훨씬 많을거다.

그래서 미리 양해의 말씀 드린다. 이 리스트는 내 인생의 음악 10곡이 아니라, 지금 생각나는 음악 10곡이다. 지금 이 순간 기억해내지 못한 수많은 아름다운 음악, 그리고 요즘에 빠져있어서 선택하지 않은 젊은 음악들에게 사과를 전하며…

윤상 / Back to the real life

나에게 있어 음악 중에서도 사운드에 큰 관심을 갖게 한 뮤지션이 있다면 단연 윤상이다. 그의 모든 앨범은 뛰어나지만. 그 중에서도 < Cliche > 앨범에 실린 곡들은 모두 시공간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목소리가 아닌 사운드가 노래하는 음악, 그게 윤상의 음악이다. 유행을 타지 않는 목소리는 덤이다.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 Closer

성장하는 뮤지션을 좋아한다. 그것도 완전히 새로운 틀을 만들어내는 뮤지션.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는 그런 면에서 이상형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리고 음악 구성만으로 엄청난 고양감을 선사하는 선동가이기도 하다. 그가 손을 대면 단순한 멜로디도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한다. 특히 < The Downward Spiral >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이 솟구친다.

루시드 폴 / 그대 손으로

내가 음악을 듣는 스타일은 리듬, 멜로디, 사운드 등 전체의 균형감에 집중하는 편이다. 하지만 루시드 폴의 음악을 마음에 담은 이후에는 ‘가사’에도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그의 음악은 시적인 가사를 통해 모든 음악의 요소를 초월해낸다. 그 중에서도 찰랑거리는 느낌의 ‘그대 손으로’는 단연코 루시드 폴의 초창기를 대표하는 수채화같은 음악이다.

라디오헤드(Radiohead) / No surprises

실로폰은 강하다. 강력한 드러밍이나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아니어도 사람의 마음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젠 하나의 예술집단이 되어버린 라디오헤드만의 음악 설계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게 만든다. 그 만큼 이 곡이 실린 < OK Computer >앨범은 완벽하다. 기술과 감성이 완전히 균형을 이룬다. 그리고 그 사이를 관통하는 톰 요크의 목소리라니…

신해철 / 일상으로의 초대

신해철의 음악은 들을 때마다 탐닉하게 된다. 모든 장르의 음악을 자유롭게 다뤘던 만큼 어떤 음악에서건 적재적소에 특유의 표현력을 뿜어낸다. 특히 이 곡은 내가 ‘재즈카페’와 함께 가장 깊이 빠졌던 곡. 그의 음악을 듣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의 ‘심연(深淵)’에 다다를 때가 있는데, 이 곡은 마음 속 가장 푸른 곳으로 데려다준다. 다시 그를 만나고 싶다.

다프트 펑크(Daft Punk) / Digital love

‘어떻게 하면 이런 ‘튠’을 만들어낼 수 있지?’하고 엄청나게 감탄을 했던 곡. 다프트 펑크의 마이너한 성향의 곡들도 좋아하지만, 대중성과 교묘하게 결합된 탐미스런 이 곡이야말로 그들만의 위대함을 표현하기에 좋은 곡이다. 그로인해 다프트 펑크의 음악은 등장한지 오래되었어도 여전히 나이가 들지 않고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마땅히 존경해야 할 존재다.

W / Shocking pink rose

그들의 장인정신을 사랑한다. 소리 하나하나 버릴게 없다. 새로운 사운드를 찾기 위한 그들만의 여정을 늘 응원해왔다. 특히 < Where the Story Ends >앨범은 우리 대중음악계에서 특별하게 빛나는 존재이기도 하다. 특유의 만화같은 가사와 결합되어 시너지를 일으키는 그들의 곡을 듣고 있노라면 나도 만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 항상 행복해진다.

Firehouse / Don’t treat me bad

당대의 슈퍼밴드들을 제치고 이 곡을 고른 이유는 단 하나다. 컨트리풍 사운드 속에서 재기 넘치게 울려 퍼지는 일렉트릭 기타의 커팅 플레이를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이 곡만 들으면 혼자 허공에 기타를 치게 된다. 그들의 고풍스러운 발라드 히트곡 보다 이 곡이 몇 배 더 사랑스럽다. 쟝쟝쟈가쟈가쟈가쟝쟝~

마이 앤트 메리 / 공항 가는 길

< Just Pop >. 앨범명처럼 가장 팝스런 곡들이 가득 담긴 작품이다. 모던록을 기반으로 하는 인디밴드의 노선으로는 드문 케이스였지만, 곡의 완성도로 모든 편견을 잠재워버렸다. 보편성의 위대함을 깨닫게 해준 앨범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 어떤 인디 앨범의 곡보다 지금도 편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

세풀투라(Sepultura) / Desperate cry

내 인생의 초반부는 ‘속도’였다. 빠르고 강한 음악만이 전부였다. 우리 세대가 모두 그렇듯 메탈리카, 메가데스, 앤스렉스, 슬레이어 등에 무진장 빠져있었으니까. 그 중에서 아직도 내가 많이 듣는 밴드는 세풀투라. 복잡하지 않아서다. 현재 EDM처럼 단순한 구성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불타오르게 한다. 특히 이 곡은 내가 구렁텅이 빠질 때마다 구원해주는 곡이기도 하다. 이유는 비밀!

■ 프로필

김홍범 | relax@kbs.co.kr

KBS 라디오PD. < 굿모닝팝스 >, < 메이비의 볼륨을 높여요 >, < 데니의 뮤직쇼 >, < 홍진경의 두시 >, < 이현우의 음악앨범 >, < 김C의 뮤직쇼 > 등을 연출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 52 Street >, < 네이버 이주의 발견 >, < 네이버 온스테이지 >, 월간 < 굿모닝 팝스 > 등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부족한 글을 끄적거려왔으며,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오피셜송 자문위원을 역임하고 지금은 < 한국대중음악상 >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현재 KBS 쿨FM < 강한나의 볼륨을 높여요 >를 연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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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2 남중권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마련한다. 이즘 필자들과 독자들의 글을 공개하면서 이즘 편집진은 음악과 동의어라고 할 라디오 방송의 PD들이 갖는 미학적 시선과 경험을 들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이 뽑은 ‘인생 곡 톱10’을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두번째 순서는 SBS 라디오 남중권 프로듀서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항상 부모님은 쓸데없는 짓 말고 공부나 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이 쓸데없는 짓으로 밥벌어 먹고 살고 있다. 옆방에 살던 삼촌의 카세트에서 몰래듣던 인기가요 테잎부터 방송반 선배가 소개해준 메탈음악, 그리고 라디오에서 우연히 접한 음악들까지.

지금껏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사라지지 않고 쓸데없이 남아 밥벌이를 도와주고 있는 감사한 곡들 중 10곡을 무순으로 소개한다.

너바나(Nirvana) ‘Smells like teen spirit’
아직도 이메일 아이디로 남아 계속 나를 쫓아다니는 커트 코베인은 내게 청춘의 지표같은 것들을 스윽 남기고 불꽃처럼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하자면 그가 죽기전에 남긴 것들을 내가 뒤늦게 온몸으로 받아들인 것이겠지. 씹던 껌을 다시 꺼내 씹듯이 매가리없이 부르다 갑자기 짜증내듯 터져나오는 보컬에 마구 때려부수던 것 같은 기타. 그리고 앨범 제목은 < Nevermind > 굳이 번역하자면 ‘신경꺼’라니. 얼마나 멋진가 말이다. 이 앨범을 포함해 단 세장의 정규앨범을 남기고 간 커트 코베인은 그 흔한 말처럼 ‘그는 갔어도 음악으로 남아’ 아직도 내 청춘들을 휘젓는다.

당시에도 비평가들은 곡 구성이 지나치게 단순하다, 만들다 만 것 같은 음악이다. 등등 열을 올렸었는데 한편으론 배우기 쉬워서 많은 학생들이 기타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때 기타나 배워 놓을 걸, 난 괜히 패션만 따라하다가 누더기 옷만 잔뜩 걸쳐입고 다닌 기억뿐이다. 이래저래 한심한 시절이었다.

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신해철의 음악은 대부분 훌륭하지만 가끔은 자의식이 과할때가 있다. 그래서 부담스러울때가 간혹있는데 초기 음악들은 아직 그 정도가 약해서 훨씬 좋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쓰는 편지’는 타자화된 나에게 보내는 메세지라는 영화적인 설정(?) 때문인지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과 니체의 상처가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은행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 삶은 살지 않기로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달라서 어제 받은 카드값 독촉전화 때문인지 아침부터 은행 잔고 액수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메탈리카(Metallica) ‘Master of puppets’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들어간 방송반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선배들이 많았는데, 특히 남자 선배들 중 두명이 메탈 덕후였다. 그 중 한명이 나에게 최고의 메탈 밴드라면서 소개해줬는데, 마구잡이로 때려부수듯이 내리꽃는 기타 사운드에 곧바로 매료되어, 그때까지 듣던 뉴키즈온더블락이니 마이클 잭슨이니 하는 음악들은 하찮게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이곡은 수십번을 들어도 완벽한 곡 구성에 멜로디, 스래쉬 메탈에 최적화된 제임스 헷필드의 보컬, 커크 허밋의 기타 속주까지 8분 30초여의 시간이 말그대로 속주처럼 지나갔다.

어헝헝 어헝헝하면서 따라부르다 보니 더욱 더 이곡이 좋아졌는지 결국엔 다음학기 내 첫 프로그램의 첫곡으로까지 선곡하게 됐다. 하지만 담당 선생님은 이 곡이 맘에 안 드셨는지 몽둥이를 들고 뛰쳐올라오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난 매우 속상했지만 한편으론 훈장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조용히 메탈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봄여름가을겨울 ‘영원에 대하여’

고등학교 방송국에서 만난 해원이는 음악을 나보다 훨씬 많이 알았는데, 이곡은 그 녀석의 소위 애창곡이었고 그 덕에 나는 이 앨범을 ‘영접’하게 됐다. 특히 이 노래는 가사가 엄청났는데, 그대와 함께 ‘영원에 대하여’ 얘기를 나눈다니 얼마나 허세로운 로맨틱인가. 해원이는 이 노래를 갓 배운 담배와 함께 부르곤 했는데 난 간주 점프없이 이곡을 끝까지 들어주곤 했다.

‘I photograph to remember’라는 부제가 붙은 4집은 아마도 봄여름가을겨울 앨범중에서 흥행에서는 가장 떨어지지만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음반으로 뽑는다. 타이틀 곡이었던 ‘영원에 대하여’ 뿐 아니라 ‘페르시아 왕자’나 ‘전도서’ 같은 연주곡들도 좋았는데 특히 정원영이 작사작곡한 ‘안녕 또 다른 안녕’은 숨겨진 명곡이다.

음악을 많이 알던 해원이는 대학에 가서는 연극을 하다가 졸업후엔 차를 팔았는데, 몇 해전 본인상 부고를 문자로 보내고는 진짜 ‘영원’으로 가버렸다. 이 곡을 들을때마다 해원이 생각을 많이 한다.

한영애 ‘불어오라 바람아’
이병우의 멜로디에는 공통점이 있다. 묘한 희망감에 눈물이 난달까. 어떤날의 ‘출발’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이곡에도 있다. 거기에 한영애의 탁한 보컬과 가사 덕분에 노래는 묘하게 호전적이기까지하다. 난 그때 쉽사리 성적이 오르지 않는 고3 수험생이었는데 빈 기숙사에서 불확실한 미래로 두려울때마다 이 노래를 즐겨 들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 가사들을 기도문처럼 따라부르면서.

전람회 ‘마중가던 길’
전람회에서 김동률에 가려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던 서동욱이 거의 유일하게 보컬로 전곡을 소화한 노래다. 목가적 분위기에 마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했던 성가대 오빠의 느낌으로 담담하게 이 곡을 마무리한다. 그녀를 마중가던 길에 ‘난 이제 잊혀지겠지’라고 얘기하는 정서란 어떤 것일까. 옛사랑, 외사랑, 짝사랑 등 사랑의 어두운 면을 그리는데 탁월했던 김동률의 곡은 서동욱의 불완전한 보컬과 만나 이 노래에서 한없이 쓸쓸한 가을 정경을 그린다. 자존감이 최저점이던 시절 수백번을 돌려들었던 노래. 그 지점을 빠져나오고는 잘 듣지 않게 됐다.

언니네 이발관 ‘푸훗’
주말이면 집으로 다들 가는 바람에 고3 기숙사는 텅빈적이 많았는데 그럴때 볼륨을 빵빵하게 올리고 이곡을 들었다. 청명한 아침 바람에 울려퍼지는 기타소리와 함께 이건 노래를 부르는건지 마는건지 대충 읖조리는 이석원의 보컬, 무엇보다도 왠지 대충만든거 같은 곡 짜임새. 가사도 이건 아무리 읽어봐도 애매모호한게 ‘가질 수 없는 걸 알기에 더욱 갖고 싶은 나에게 화가 나’다가 ‘천번을 만났던 천번을 만나왔던 두사람’이라고 막 얘기하다가 서정적인 멜로디로 끝이나는. 그런데 그게 너무 신선했다. 얼터너티브나 모던록의 정신은 이렇게 ‘푸훗’ 하면서 그냥 막한번 해보는거 아닌가 싶은.

배리 매닐로우(Barry manilow) ‘Even now’
라디오에서 선곡대결은 거의 구한말 시대부터 있던 코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느 라디오 코너에서는 패널들이 앉아서 비장한 각오로 준비한 곡들을 꺼내놓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곡도 그런 코너에서 처음 들었다. 아마도 김현철의 밤의 디스크쇼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한 패널이 이곡을 골라왔다. 헤어진 사람을 지금까지도 (Even now)도 잊지 못하는 구구절절함. 배리 매닐로우의 버터 듬뿍바른 목소리가 더해져 없던 옛추억도 만들고 싶어질 정도로 낭만적이었다.

그때 기억나는 한 패널은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Alan Parsons Project)의 곡들을 주로 선곡했는데 그는 주로 타이틀이 아니라 ‘나만 알 것 같은 음악’을 앨범 구석구석에서 털어왔다. 어느날은 ‘Don’t let it show’라는 특이한 싱글을 들고 왔는데 주구장창 ‘Old and wise’만 듣던 내게 꽤 충격을 줬었다. 이래저래 선곡대결이라는 코너는 내게 낭만적으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

김현철 ‘그런대로’
김현철 1집은 유일하게 그의 2집으로만 뛰어넘을 수 있다. 이곡이 들어있는 앨범 ’32도씨 여름’이 나오고 ‘그런대로’를 계속해서 들었다. 갑갑할 정도로 단순한 가사의 반복으로 진입하는 노래는 ‘그녀는 안녕이라 말하네’를 계속해서 얘기하다가 뭐 그냥 별다른 대책없이 ‘그런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라고 또 밝게 얘기하다가 학교 앞 길이 젖었네’라고 계속하더니 또 ‘그런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라고 처연하게 노래하는게 뭔가 술취한 아무렇게나 불러버린다. ‘달의 몰락’이 들어있는 3집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만 나에겐 아직도 술취한 듯 불러버린 이곡과 같은 이 정서를 되찾지 못하는거 같아 아쉽다.

제니퍼 원스(Jennifer warnes) ‘And so it goes’
이곡은 아침창 라디오에서 고민석 선배가 직접 출연해서 들려줬는데 난 아직도 그 아침의 공기가 또렷하게 기억난다. 라디오가 빛날때는 바로 그럴때가 아닌가 싶다. 누군가 내게 손내밀듯 툭 던지는 노래들. 빌리 조엘의 곡을 리메이크한 이곡은 고민석 피디의 목소리로 전달되어 김창완 DJ의 손에서 플레이 됐다. 그러면서 전혀 다른 느낌의 곡이 되어 버렸다.

난 아직도 라디오에서 음악이 중요하다고 믿는 (구세대이자 동시에) 확신범이다. 그리고 내가 선곡한 음악보다는 남이 선곡한 음악에 더 큰 희열을 느낀다. 전혀 기대치 못한 선곡. 그날의 공기와 DJ의 숙취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음악.

■ 프로필

남중권 PD / cobain999@sbs.co.kr 17년차 라디오 PD 겸 애아빠.

< 송은이 신봉선의 동고동락 >, < 최백호의 낭만시대 >, <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 > 등의 프로그램을 연출하다 뜻한 바 있어 편성기획팀에서 3년째 뉴미디어 사업 중. 아직도 선곡의 손맛을 잊지 못하고 프로그램으로 복귀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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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 정일서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마련한다. 이즘 필자들과 독자들의 글을 공개하면서 이즘 편집진은 음악과 동의어라고 할 라디오 방송의 PD들이 갖는 미학적 시선과 경험을 들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이 뽑은 ‘인생 곡 톱10’을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첫 순서는 KBS 라디오 정일서 프로듀서다.

돌이켜 보면 나의 학창시절과 청춘은 대체로 어두웠던 것 같다. 누구나 겪는 성장통이었으련만, 그때는 내게 그것이 퍽이나 가혹해서 매순간 버거웠었다. 진심으로 라디오와 음악이 있어 그 시절을 통과해올 수 있었다.

내가 라디오 PD가 되어야겠다 마음먹은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의 감정 중에 가장 깊고도 진실한 마음은 ‘슬픔’이 아닐까 한다. 슬플 때마다, 힘들 때마다 음악이 곁에 있었다. 그 때 이 음악들이 나의 위로였고, 나의 구원이었다.

○ 어떤날 / 너무 아쉬워하지 마 / 1986
그 때 내가 살던 동네인 방배동 골목 작은 음반가게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 음반 1장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음반을 통째로 마르고 닳도록 들었지만, 그 중 제일은 LP B면의 첫 곡으로 슬며시 앉아있던 이 곡이다. 그들이 한사코 그러지 말라고 노래하던 모든 것들이 한없이 아쉽고 슬펐더랬다.

○ 톰 웨이츠(Tom Waits) / Ol’55 / 1973
어쩌면 가장 큰 위로는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모두가 다 그래”라고 말해주는 것일지 모른다. 일상의 고단함이 엄습해 올 때 이 노래는 그것을 일깨워준다. 원, 투, 쓰리, 포(카운트 다운).. 짧은 피아노 인트로 뒤로 밀려오는 그의 메마른 목소리는 그 어떤 미성보다도 신산한 삶을 위무하는 힘이 있다.

○ 보즈 스캑스(Boz Scaggs) / We’re all alone / 1976
마이클 잭슨이 아무리 ‘You are not alone’이라고 노래해도 우리는 모두 근원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보즈 스캑스가 만든 노래로 프랭키 발리가 제일 먼저 불렀고 후에 리타 쿨리지의 노래로 가장 크게 히트했지만, 역시 원작자인 보즈 스캑스의 노래를 앞설 수는 없다. 더구나 뒤에는 곧 토토의 멤버가 될 이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으니 그 또한 믿음직스럽다.

○ 동물원 / 잊혀지는 것 / 1988
잊혀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동물원은 모든 것은 잊혀지는 것이라고 담담히 노래한다. 무심히 흐르는 시간에게 용서란 없다. 사랑도 꿈도 끝내는 잊히고, 우리는 서로의 타인이 되고야 만다. ‘그 모두는 시간 속에 잊혀져 긴 침묵으로 잠들어간다’. 김광석이 아무리 절창이어도, 그의 다시 부르기마저도 동물원의 원곡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 뉴 트롤스(New Trolls) / Adagio(Shadows) / 1971
클래식과 칸초네의 유구한 전통을 간직한 이태리 프로그레시브 록의 색채는 영국 밴드들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 대표 그룹 뉴 트롤스의 이 노래는 처음 바이올린 소리가 흐르는 순간부터 도무지 헤어나올 수가 없다. 지금도 내가 라디오에서 슬픈 노래를 틀어야 할 때 언제나 맨 처음 떠올리는 노래이다.

○ 카멜(Camel) / Stationary traveller / 1984
입대를 앞두고 마음이 황량하던 시절 지금은 사라진 부천의 음악다방 < 수목 >에서 듣고 또 들었던 음악이다. 내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슬피 우는 기타 소리. 처음에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목 놓아 운다. 앤드류 레이티머의 기타를 뒷받침하는 건반의 주인공은 톤 셔펜질, 카약의 창단 주역인 그는 이 때 잠깐 카멜로 이적했었다.

○ 이문세 / 옛사랑 / 1992
마치 연극의 종막에서 암전 후 배우의 목소리만 남은 것처럼 악기들이 모두 빠지고 리버브를 잔뜩 머금은 목소리만이 아련히 사라져가는 이 노래의 엔딩을 듣고 있으면 나는 항상 비지스의 < First of May >를 떠올린다. 그러고 보니 두 노래의 계절적 배경도 똑같이 겨울이다. 마음이 차갑다. 그런데 노래에서 눈은 내리지 않고 자꾸 올라간다. 이영훈은 탁월하다.

○ 라디오헤드(Radiohead) / Exit music / 1997
이제는 난수표 같은 음악 속으로 숨어버린 라디오헤드가 그 옛날 남긴 역작이다. 누군가는 세상에는 라디오헤드류와 아닌 류의 두 가지 음악밖에 없다고 했을 만큼 그들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바로 그 라디오헤드류의 정체가 무엇이던가? 바로 극한의 멜랑콜리, 극단의 우울이 아니던가? 그들이 온 세상 곳곳에 우울의 씨앗을 마구마구 흩뿌리던 시절이었다.

○ 카리 브렘네스(Kari Bremnes) / Waltz / 2003
그 해 여름 출장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만난 어느 평론가는 북구의 음악이 왜 슬픈가라는 어찌 보면 유치한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대지는 넓은데 사람이 많지 않으니 근본적인 외로움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 출장 도중 그 곳에서 이 노래를 처음 만났다. 노래 안에 외로움이 산다는 말에 진심으로 동의했다.

○ 브로콜리 너마저 / 보편적인 노래 / 2008
솔직히 고백하거니와 브로콜리 너마저는 내가 대놓고 편애하는 밴드이지만, 그 중에서도 최애곡은 이 노래다. 이 대체불가의 정서를 지닌 밴드가 포착해 낸 보편적인 슬픔은 정말 너무나 보편적이서, 그래서 너무나 동감이 되어서 눈물을 자아내고야 만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하던 일을 멈춘 채로 한동안 멍했었다.

■ 프로필
1995년부터 지금까지 26년째 KBS에서 라디오 PD로 일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던 귀에서 헤드폰을 빼는 일이 거의 없는 방송국에서도 소문난 음악광으로 예나 지금이나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음악 듣는데 쓴다.

그동안 연출한 프로그램으로는 < 황정민의 FM대행진 >, < 이금희의 가요산책 >, < 김광한의 골든팝스 >, < 전영혁의 음악세계 >, < 이상은의 사랑해요 FM >, < 신화 이민우의 자유선언 >, <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 < 이소라(강수지)의 메모리즈 >, < 장윤주의 옥탑방 라디오 > 등이 있다.

저서로는 《 팝 음악사의 라이벌들 》, 《 더 기타리스트 》, 《 365일 팝 음악사 》, 《 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 》,《 KBS FM 월드뮤직:음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공저), 《 당신과 하루키와 음악 》(공저) 등이 있다.